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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2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⑪ 무장독립투쟁 연구 빈약한 이유 ‘현대사 연구 금기’는 독립운동사 말살 의도 » 1961년 11월에 있었던 독립운동자동인회 발기 총회 기념식. 맨 앞줄 오른쪽에서 다섯째가 참의부 참의장을 역임한 김승학이고, 그 오른쪽 옆이 이강, 그 옆이 김창숙이다. 뒷줄 오른쪽에서 일곱째가 김승학과 함께 1963년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에 참여했던 오광선이다.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역사학도들에게 현대사는 일종의 금기 영역이었다.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가 만들었다는 이 금기는 표면상 현대사는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명분이었다. 청동기 시대가 되어야 고대 국가가 시작된다는 국사 교과서의 공식이 단군 조선을 부인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한국에만 있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 또한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 2010. 10. 27.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⑩ 정조독살설 진실과 거짓 사관 ‘심환지, 정조 독살 의혹 어의 비호했다’ 기록 조선 후기에는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일정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한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정치구조이다. 이 구조에 주목한 것은 청의 강희제였다. 그는 효종에 이어 서른넷의 현종이 사망하자 “임금의 수명이 길지 못하다”, “신하의 제재를 받아 정치를 펼치지 못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숙종 12년(1686) 윤4월에는 “조선은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해서 우리 조정(청)의 보호가 없다면 몇 번이나 왕위를 도둑질 당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편지 나눌 정도로 친해 독살 안했다? 박정희 암살한 건 측근 김재규 부장 심환지, 죽은 정조 정책·인물들 말살 정말로 친했다면 왜 그렇게 했겠나.. 2010.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