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21. 第二十世<長壽大帝>紀 제20세<장수대제>기(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27.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2.pdf

◎ 二十一年癸巳, 正月, 納<松江>沛者<守山>妻<架>氏為宮人.  二月, <義隆>子<劭>以過受責, 呪其父事發. 恐廢而弑父自立. 上曰;“<義隆>義不隆反不如<義符>. 盖謂, 被殺於子, 反不如被殺於臣也. <劉裕>弑其主而為國, 其臣<徖謝>亦弑其君. 是, <裕>之敎也. <隆>以為有令望而代<符>, 是兄弟爭立而殺也. 其子<劭>欲立而殺<隆>, 兄弟相殺為父子相殺也. 是, <隆>之敎也. <裕>敎, 臣以弑君. <隆>敎, 子以弑父. <裕>, 但知為國之好, 而不知殆将自滅者乎. <慕容>然, 而不序屠相殺. <馮>亦然, 勇而無義臣弑君, 淫而無秩妻弑夫, ■■不理, 子弑父立. 可不畏乎. <宋>之禍, <炎将>不知至於何境矣. 果然, 五月, <駿>殺<劭>而立. 父子相殺轉為兄弟相殺也.  

○ <장수>21년{단기2786년/AD453}계사, 정월, <송강>패자 <수산>의 처인 <가>씨를 거두어서 궁인으로 삼았다.  2월, <의륭{宋太祖}>의 아들 <소>가, 잘못하여 질책을 듣더니, 아비를 저주하여 일을 벌였다. 폐위될까 겁이 나서 아비를 시해하고 자신이 선 것이었다. 상이 이르길; “<의륭>은 {이름답지 않게} 의롭기가 융성하지 못하여 도리어 <의부{宋少帝}>만 하지도 못하였소. 개략하여 말한다면, 아들에게 죽었으니, 오히려 신하들에게 죽었음만 같지 못하였소. <유유{宋高祖}>는 자신의 주군을 죽이고 나라를 다스리더니만, 그의 신하 <종사> 또한 그 주군을 죽였소. 이것이 <유유> 사건에서의 가르침이었소. <의륭>은 좋은 명망을 바라면서 <의부>를 대신하였지만, 이는 형제간의 보위쟁탈에 따른 죽임이었고, 그의 아들 <소>도 자리에 오르고자 <의륭>을 죽였으니, 형제간의 죽임이 부자간의 죽임을 낳은 것이었소. 이것이 <의륭>의 사건에서의 교훈인 것이오. <유유>는 신하들에게 군주를 시해하라 가르쳤으며, <의륭>은 아들에게 아비를 죽이라 가르친 것이었었소. <유유>는, 단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만을 좋아하였지, 장차 자신이 죽게 될 위태로움은 깨닫지를 못한 것이었소. <모용>{씨 집안}도 그러하였기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도륙하여 서로를 죽였었고, <풍{北燕}> 역시 그러하였기에 용감하기는 하였으나 의롭지 아니하여, 신하가 군주를 죽였고, 어지럽고 질서가 없어 처가 지아비를 죽였으며, .....하여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자리에 올랐소. 두려워할 일 아니겠소! <송>나라의 화는 <염장>이 어느 지경에 처할지를 몰랐다는 것이오.”라 하였다. 과연 5월이 되자 <유준>이 <소>를 죽이고 보위에 올랐다. 부자간의 죽임이 형제간의 죽임을 낳은 것이었다.

◎ <羅>, 大旱, 而七月群狼入其<始林>, 人畜被害, 云. 上謂<晃>太子, 曰;“權者人之所欲也. 與其相殺, 不如不為. <東明>傳國以仁化<光明>抱柔<溫祚>, 故父子兄弟無一人相忌, 唯<遂成>·<相夫>見黜.」 汝為瓊府, 宜以<宋>·<魏>·<燕>等為鑑, 以敎宗戚. <訥祇>之弑<宝金>亦是子殺父. 妻父非其父乎. 况其君者歟. 其禍如彼, 可以戒輩.” <晃>, 曰;“戒慾為本, 雅道為上, 尊崇高仙·碩儒, 勿以物華為重.” 上曰;“吾亦悟之矣. 其勿治宮室車馬, 放後宮雜女皈家.”

○ <신라>는 크게 가물었고, 7월에는 이리떼가 그들의 <시림>에 들어와 사람들과 가축들이 해를 입었다 한다. 상이 <황>태자에게 이르길; “권세란 것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바이나, 그것 때문에 서로를 죽인다면 가지지 않음만 못한 것이 된다. <동명>께서는 나라를 물려주고 어짊으로 가르쳤더니, <광명>은 <온조>를 끌어안아 달래게 되었었고, 그리하여 부자간에 그리고 형제간에 서로를 꺼리지 않게 되었으며, 오직 <수성>과 <상부>만이 쫓겨났을 뿐이었다. 너는 경부를 맡아서 마땅히 <송>・<위>・<연> 등을 거울삼아 종척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눌기>가 <보금>을 죽인 것 역시 아들이 아비를 죽인 것이다. 처의 아비는 자신의 아비가 아니란 말이냐? 하물며 그 군주를 죽이다니! 그 화는 저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니, 무리들을 깨우치게 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이에 <황>이 아뢰길;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아름다운 도를 따르게 하며, 고명한 선인{仙人}과 훌륭한 유사{儒士}를 존숭케 하고, 세속적인 영화로움을 중히 여기지 않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나 역시 그래야 함을 깨닫고 있음이다. 그러하니, 궁실과 거마를 수리하지 말고, 후궁의 잡녀{골품이 없는 여인}들은 내보내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하자꾸나.”라 하였다.

◎ 二十二年甲午, 二月, 上如<黃山>謁<平昜陵>取象而還. <王文>諫, 曰;“重母而不重父, 胡風也. 况取象之非禮乎. 乃止.” 時, <文>以老皈卧, 而不輟耕疏食自楽. 上曰;“朕羡卿矣. 雖欲為其, 能得乎. 天子之不得為庻人, 尤有甚於庻人之不得為天子者. 騎虎之勢也.”  七月, <阿瑟羅>戍卒再犯境. <訥祇>, 自<天星>·<曉辰>死後, 與<毗有>相婚, 而陰養不測之心, 至是露骨. <灌奴>小兄<朱虔>討<長嶺>三柵, 拔之. <訥祇>遣使来乞, 乃止. 時, <新羅>有雹■, <濟>有蝗災, 星變皆飢而窮. 國人歌之, 曰;“彼不道兮, 非雹則蝗. 我事爾, 天不乏粮滿家, 穰穰千万其羊.”

○ <장수>22년{단기2787년/AD454}갑오, 2월, 상은 <황산>으로 가서 <평양릉>을 찾아뵙고는 {<평양릉>의} 그림을 그려가지고 돌아왔더니, <왕문>이 간하여 아뢰길; “어미를 중히 여기고 아비를 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야만스런 풍속입니다. 그런데도 그림을 취하고 예를 저버리시겠습니까?”라 하였더니, {그림을 가까이 두기를} 그만두었다. 이때 <왕문>은, 늙어서 정사에서는 물러나 있었으나 쉬지 않고 논밭을 갈아서, 거친 음식으로 스스로 즐기고 있었더니, 상이 이르길; “짐은 경이 부럽소. 그리하고 싶다하여 그리 할 수 있겠소? 천자가 서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서인이 천자가 되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우니, 기호지세{범을 타고 달리다가 중도에 내리지 못하는 형세, 즉 뜻대로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려.”라 하였다.  7월, <아슬라>의 수졸이 또다시 경계를 범하였다. <눌기>는, <천성>과 <효진>이 죽은 후에, <비유>와 서로 통혼하고서 속으론 불측한 마음을 키우더니만, 이때에 이르러 그 속셈을 드러낸 것이었다. <관노>소형 <주건>이 <장령>을 쳐서 목책{또는, 작은 성채} 세 개를 빼앗았다. <눌기>가 사신을 보내 애걸하여 그만하고 멎었다. 이때 <신라>엔 우박이 내렸고, <백제>엔 황충 재앙이 일었으며, 별자리가 움직이고 모두들 배곯고 궁색하여 졌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들은 부도하더니만 우박 내리고 황충과 재앙이 일고 있음이고, 우리는 도리 지켜 섬겼더니 하늘이 양식이 모자랄까 온 집집 가득 채워주고 풍족한 풀로 천만의 양들을 살지게 하는구나.”라 노래하였다.

◎ 九月, 如<黃山>, 召<王文>, 賞菊.  <天龍>后崩於溫湯, 亦葬于<黃山>, 春秋六十三. 上, 謂<三山>后, 曰;“<竜>, 與汝, 事我四十五年如一日, 未甞少弛. 豈意一朝如是耶.” <三山>曰;“妾, 雖蒲柳, 莭食而無病. <竜>, 身強倍妾, 日食豚肉七斤而肥胖要寵. 雖曰事夫盡誠, 非為身之道, 身不存, 則安能事夫乎. 盖其誤也.” 上曰;“汝, 何言兄之過乎. 吾亦死則當從<竜>穴矣. 汝, 亦死, 則宜從<竜>穴. <竜>之過卽汝之過, 汝之過卽我之過.” <三山>黙然. <天竜>, 久掌宮權, 頗違<三山>之志, 故其言如是. 自是<三山>主之, <談明>副之.

○ 9월, <황산>으로 가서 <왕문>을 불러내 국화를 즐겼다. <천룡>후가 온탕에서 죽었고, 역시 <황산>에 장사하였더니, 춘추 63세였다. 상이 <삼산>후에게 이르길; “<천룡>은, 그대와 함께, 나를 섬기길 45년을 하루같이 하면서 흐트러짐이 적었었소. 어찌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나 있었겠나?!”라 하였더니, <삼산>이 아뢰길; “첩은, 약한 체질이나, 먹기를 삼갔더니 병이 없습니다. <천룡>은, 튼튼하기가 첩의 배는 되었으나, 하루에 돼지고기를 일곱 근씩이나 먹어대어 살이 찐 채 총애를 바랐었습니다. 설사 말로는 성의를 다하여 지아비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몸을 가다듬는 도리를 다하지 않아서, 몸이 살아남지 못하였으니, 어찌 능히 지아비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는 <천룡>의 잘못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자네는 어찌 윗사람의 잘못을 입에 담고 있소. 나도 죽으면 응당 <천룡>의 릉혈에 따라 묻힐 것이오. 자네도 죽거든 마땅히 <천룡>의 릉혈로 오시오. <천룡>의 잘못은 즉 자네의 잘못이고, 자네의 잘못은 곧 내 잘못이었네.”라 하였다. 이에 <삼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나, <천룡>이 오랫동안 궁 안을 장악하고 분별함에 있어서 <삼산>의 뜻을 거슬렀었기에 그런 말을 하였던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삼산>이 궁 안의 주인이 되었고, <담명>이 보좌하였다.

◎ 二十三年乙未, 二{三?}月, <宋><駿>来告喪献方物. 遣長史<董騰>徃吊之. <騰>, 来投<宋>人也. <駿>, 秘其喪, 而今才告訃, 飛報渡海如矢. 彼之暗昏如是, 妄自尊大, 可笑者也. 然, 来者不拒, 故酬應之耳.  三月, 如<美川陵>聞<毗有>獵于<漢山>. 将軍<風豚>請襲而檎之. 上曰;“出其不意雖似好策, 安知其非無備乎. 凢事, 皆先計而行則雖敗不至大損, 無究而臨發雖成而不利. 况<毗[有]>之為人, 辯而輕人, 淫而好遊, 其能久乎. 久則蠧國而己置亦自傷, 何費虗力哉.” 果然, 是年九月, <毗有>暴殂, 子<慶司>立. <毗有>者, <腆支>之通其婦而生者也. <慶司>者, <毗有>之通<觧須>妻而生者也. <毗有>之妻無子而養之. <毗有>又通<餘蠆>之妻而生子<餘殷>, 通<燕吉>之妻而生子<餘杞>, 皆有寵而爭嗣. <毗有>妻, 遂害<毗有>, 立<慶司>, 云.

○ <장수>23년{단기2788년/AD455}을미, 2월, <송>의 <유준{宋世祖孝武帝;AD453-464}>이 찾아와서 상이 났음을 알리고 방물을 바쳤기에, 장사 <동등>을 보내어 가서 조문하게 하였다. <등>은 찾아와서 투항하여 살고 있는 <송>의 사람이었다. <준>은, 상이 났어도 숨기고 있다가, 이제 겨우 부음을 고하면서도, 알리기엔 서둘러서 살같이 해{海=넓은 물/땅?}를 건넜다. 그들의 어둡고 혼미함이 이러하였음에도, 망령되이 스스로를 높이고 크게 여기고 있었으니, 가소로운 자이었다. 연이나, 찾아오는 것은 막지 않았고, 그렇기에 답례할 뿐이었다.  3월, <미천릉>에 갔다가 <비유>가 <한산>에서 사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군 <풍돈>이 기습하여 사로잡자고 청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불의에 나가는 것이 비록 좋은 계책 같긴 하나, 그들도 대비함이 없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잖소? 대저 일을 함에 는 항상 먼저 계획을 세운 연후에 행하여야만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은 것이거늘, 철저함 없이 임의로 일을 벌여서는 설혹 성사하여도 이롭지 않게 될 것이오. 더구나 <비유>는, 사람됨이 말 많고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며 도리에 어긋나고 놀기를 좋아하니, 능히 오래가기나 하겠소? 기다리기만 하여도 나라와 자신을 좀먹을 것이고, 그대로 놔두어도 저절로 상할 것인데, 무엇하러 쓸데없이 힘들인단 말이요?”라 하였다. 과연 이해 9월에 <비유>가 갑자기 죽었고, 그 아들 <경사{부여경=개로왕}>가 섰다. <비유>는 <전지>가 제 며느리와 내리붙어 낳은 녀석이었고, <경사>는 <비유>가 <해수>의 처와 붙어서 낳은 녀석이었는데, <비유>의 처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경사>를 길렀었다. <비유>는, 또 <여채>의 처와 붙어서 아들 <여은>을 보았고, <연길>의 처와 붙어서는 아들 <여기>를 보았는데, 모두가 귀여움을 받더니 후사자리를 놓고 다투었다. 이에 <비유>의 처가 <비유>를 해치우고 <경사>를 세운 것이라 한다.

◎ 二十四年丙申, 二月, 右輔·太師<王文>薨, 年七十. <文>, 以<黃山>田夫之子, 好學篤行為國儒宗. 雖貴尙公主而不忘在野, 勤儉自守, 戒子女無得濫越過分. 人以為仙之仙.  九月, <三山>后崩, 春秋六十一. 葬于<竜>陵之側.

○ <장수>24년{단기2789년/AD456}병신, 2월, 우보이며 태사인 <왕문>이 나이 70에 죽었다. <문>은, <황산>에서 농사짓는 필부의 아들이었으며, 학문하기를 좋아하고 행위가 도탑더니 나라의 유종{유학의 우두머리}이 되었으며, 귀하게 되어 공주와 살면서도 논밭 매던 시절을 잊지 않았고, 근검하고 자신의 직분을 지켰으며, 자식들에게도 참람하지 않고 분수를 넘지 않게 가르쳤다. 사람들은 그를 선인 중의 선인이라 칭송하였다.  9월, <삼산>후가 춘추 61세에 죽어 <천룡>의 무덤 곁에 장사하였다.

◎ 二十五年丁酉, 二月, 大風拔木. 四月, <羅>以霜, 殺麥.  <勖多>女<齊雲>生.  <越王><勇德>薨, 年八十一. 賜其妻<胡連>年穀.  八月, <蟹>太子右輔, <葉彦>瓊叢大夫.  九月, 如<三山陵>.  以<淵吉>為<荊>王相.

○ <장수>25년{단기2790년/AD457}정유, 2월, 큰 바람으로 나무가 뽑혔다.  4월, <신라>에서는 서리가 내려 보리가 죽었다.  <욱다>의 딸 <제운>이 태어났다.  <월왕{越王; 越땅을 다스린 高句麗 官爵}><용덕>이 나이 81살에 죽어, 그의 처 <호련>에게 매년 곡식을 내려주게 하였다.  8월, <해>태자를 우보로 <섭언>을 경총대부로 삼았다.  9월, <삼산릉>엘 갔었다.  <연길>이 <형>땅의 왕상이 되었다.

◎ 二十六年戊戌, 三月, 大閱<黃山>.  命<丸都>大加<靑彦>修<仙記>百二十卷.  四月, 定民四秩, 豪族·圡族·寓族·賤族. 賤族之子, 才質可者許入國學, 而得士則使之免賤為圡. 宗室外戚與豪族相婚者, 必經瓊琳之許, 然後落豪而入戶籍.  七月, 定<長夏>道場, 奏議月評之例.  八月, <訥祇>殂. 子<慈悲>立, <曉辰>之出也. <訥祇>, 有反骨弑<宝金>, 而終亦背反朝廷, 與<毗有>私通. 災異不絶, 必竟自滅. 春, 有地震, <金城>南門自毁. 是乃示兆而不察, 云.

○ <장수>26년{단기2791년/AD458}무술, 3월, <황산>에서 크게 검열을 하였다.  <환도>대가 <청언>에게 명하여 <선기> 120권을 수찬하게 하였다.  4월, 백성을 4등급으로 구분하였다. 호족{상류층}・토족{토박이}・우족{임시거처족}・천족{천민}으로 한 것이다. 천족의 아들도, 재질이 좋으면 국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였으며, 재능이 인정되어 출사하게 되면, 천족을 면하고 토족으로 되게 하였다. 종실과 외척이 호족과 혼인하면, 반드시 경림부를 거쳐서 허락을 받고 난 연후에, 호족으로 내려가서 호적에 들어가게 하였다.  7월, <장하>도장을 세워 의논할 것을 모아 올려 매월 평가함을 규범으로 하였다.  8월, <눌기>가 죽었다. 그의 아들 <자비>가 섰는데, <효진>이 낳았다. <눌기>는 골육{골품}에 반감이 있어 <보금>을 죽였으며, 종당에는 또한 조정{고구리}을 배반하였고, <비유>와 사통하였다. 재해와 이변이 끊이질 않았으니, 필경 자멸한 것이었다. 봄엔 지진이 일어 <금성>의 남문이 저절로 무너졌었고, 이것이 나쁜 조짐이었는데도 살피지 않았었다고 한다.

◎ 二十七年己亥, 二月, 親耤于<西河>, 而響父老, 曰;“近来以来, 林木鬱宻成抱, 豚羊彌滿, 五穀豐登, 太倉之粟, 久不賑矣. 此, 皆汝等各守. 以敎子女之致, 朕深嘉之.” 仍賞篤農·特農·薬農等百十二人.  四月, 如<越王>宮慰<胡連>后, 因謂<蟹>太子, 曰;“<宋><駿>, 猜忌骨肉, 誅殺相反. 此, 是一念之差也. 骨肉之間, 宜相損而相供, 何自主而自厚. 務人而不務己者自成, 務己而不務人者自敗. 况骨肉乎. 卿, 其曉諸瓊琳歟.” <蟹>曰;“欽哉. 加勅必使體聖.”  <倭>船百余, 襲<羅>囲<月城>, 無功而退. <羅>兵, 追擊<北豆海口>, 而鏖之.

○ <장수>27년{단기2792년/AD459}기해, 2월, 친히 <서하>에서 땅을 일구고는 부로들을 대접하면서, 이르길; “얼마 전 이후로는 숲과 나무가 울밀하여졌고 아름 들이가 되었으며, 돼지와 양도 널리 가득하고, 오곡도 풍성하게 잘 여물어서 양곡창고도 크게 지었으며, 오래도록 구휼하지 않아왔소. 이것은 모두 그대들 각자가 지켜서 이룬 것이오. 자녀들을 잘 가르쳐서 이룬 것이니, 짐은 매우 흐뭇하오.”라 하고는, 착실하게 농사하였거나 특별한 작물을 기르거나 약재 기르기 등을 한 112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4월, <월왕>의 궁으로 가서 <호련>후를 위로하는 일로 <해>태자에게 이르길; “<송>의 <준>은 시기하다가 골육을 주살하거나 서로 반목하였는데, 그것은 생각 하나의 차이였던 것이오. 골육지간에는 마땅히 서로 간에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 간에 이바지해 주어야 함이거늘, 어찌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탐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을 위해 애쓰면서 자신을 위해 애쓰지 않으면 저절로 성사하게 되고, 자신을 돌보면서 남을 돌보지 않으면 저절로 망하는 법이야. 하물며, 골육 간에는 어떠하겠나? 경은 이를 모든 경림들이 깨닫게 하겠는가?”라 하였더니, <해>가 아뢰길; “받잡겠습니다. 더욱 부지런히 하여 성상의 뜻하심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왜>선 100여척이 <신라>를 습격하여 <월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런 공도 없이 물러났다. <신라> 군병이 이들을 <북두해구>에까지 추격하여 모조리 죽였다.

◎ 二十八年庚子, 正月, 始用政曆按事.  二月, 命修<檀林神宮>·<祖環廟>·<達賈祠>.  三月, 褒國中孝子順孫三百二十人.  八月, 與<椘連>后如<平昜陵>, 仍訪<王文>故宅賜其弟子未得士者蔭職.  九月, <柔然>遣使来献駱駝.  <好>妃生<好賢>公主.

○ <장수>28년{단기2793년/AD460}경자, 정월, 정사책력을 써서 정사를 보살피기 시작하였다.  2월, <단림신궁>과 <조환묘{종묘}> 및 <달가사>를 고쳐짓게 하였다.  3월, 나라 안의 효자와 순손 320인을 포상하였다.  8월, <초련>후와 함께 <평양릉>엘 갔다가, <왕문>의 옛집에 들러서 벼슬이 없는 아우와 자식들에게 음직{과거시험 등을 거치지 않고 하사한 벼슬}을 내렸다.  9월, <유연{5세기 이후 고비사막 북부와 남부를 오가며 유목하다가 6세기 중에 돌궐에 흡수됨}>이 사신을 보내 낙타를 바쳐왔다.  <호>비가 <호현>공주를 낳았다.

◎ 二十九年辛丑, 三月, 與皇后<談明>, 如<天罡>陵, 仍如<平昜陵>. 皇后, 入宮四十六年, 雅貞溫仁, 事帝以誠. 而生八子七女而猶且剛壮可産. 上, 寵爱之, 委以宮中之事. 亦預大政頗有善决. 人稱稀有之聖后. 盖天姿英明禀質亦好, 可謂龍中之龍, 鳳中之鳳也. 上謂后, 曰;“歲月如流, 汝年又過一紀如是, 又幾年而汝與我皆敀矣. 生前修身積善以為子孫, 何如.” 后曰;“妾以不似厚蒙聖恤, 多産子女而未甞有苦, 此乃陛下大慈之蔭也. 妾以為人之修善不必高擧. 始於易行宜如前而無墜, 不必架空而做事也.” 上頷之.  <慈悲>以<美海>女為妻. <曉辰>欲得公主以為其婦. 至是, <訥祇>得罪而不許下降, 故自相婚嫁. <羅>之背國, 自此益甚.

○ <장수>29년{단기2794년/AD461}신축, 3월, 황후 <담명>과 함께 <천강>의 무덤을 찾았다가 <평양>의 무덤에도 갔었다. 황후는, 입궁한 지 46년을 우아하고 정숙하였으며 따사롭고 어질었고, 정성으로 제를 섬기고 8남 7녀를 낳았음에도 오히려 몸이 야물고 건장하여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이 총애하여 궁중의 일을 맡겼더니, 역시 큰 정사에 간섭하기는 하였으며 꽤나 잘 처결하였기에, 사람들은 보기 드문 훌륭한 황후라 칭송하였다. 대략 자태가 출중하고 영명하며 성품 또한 좋았으니, 용 가운데의 용이고 봉새 가운데의 봉새라 할 만하였다. 상이 후에게 이르길; “세월이 유수와 같더니 그대의 나이 역시 환갑을 이리도 지났소. 이제 몇 년 있으면, 그대와 나 모두 돌아갈 때가 되었구려. 살아생전에 몸이나 돌보고 선행을 쌓아서 자손들을 위함이 어떻겠소?”라 하였더니, 후는 답하길; “첩은 성총을 두터이 받은 것 같지 않은데도, 많은 아들과 딸을 낳았으며, 아직 애 낳는 어려움은 모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큰 자비로움을 베풀어 주셨음입니다. 첩은 사람들이 선행을 닦음에 있어 필히 높은 지경에 이르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일로 하여서 의당 이전과 같기만 하고 나빠지지만 않으면 되옵니다. 높이려 하여도 헛될 뿐이고, 새로이 일을 이루기는 필시 어려울 것입니다.”라 하였고, 이에 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비>가 <미해>의 딸을 처로 삼았다. <효진>은 공주를 얻어서 자신의 며느리를 삼고자 하였었다. 지금에 이르러 <눌기>가 죄를 얻자, 신분이 낮은 이에게 출가함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 서로 간에 혼인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신라>가 나라{<고구리>}를 등짐이 더욱 심하여졌다.

◎ 三十年壬寅, 三月, <魏>使<敦益>, 来献駱駝, 言;“<鲸>太子薨于<鄯善>.” 上廢朝擧哀. 太子以玉葉之親, 為道遠征, 殞身絶域, 平生不御肉饌錦衣. 在國及<魏>, 皆尙公主而又有侍妾, 生子女十五人. 在<魏>者七人·<鄯善>者二人. 朝廷遠送費資為[幣]不少. 上, 以<鯨>太子有讓國大義, 追尊為<崇德仙帝>. 立其庙, 使其長子<懷衵>主之.  五月, <倭>破<羅><活開城>虜千人去.  <助多>子<羅雲>生, 或云上子.  九月, 如<龍山>行<東明大祭>, 上<芻牟大帝>之號. 命<天師><晃>太子為<東盟>主. 以「五斗米」為贄, 故曰<五斗米>, 敎亦曰<米道>.

○ <장수>30년{단기2795년/AD462}임인, 3월, <위>의 사신 <돈익>이 와서 낙타를 바치며 말하길; “<경>태자가 <선선>땅에서 죽었다.”고 하였다. 상은 조정을 폐하고 거애하였다. 태자는 옥엽의 친족으로서, 길을 열기 위하여{또는, 선도를 위해} 멀리 나가서 외딴 곳에서 죽었으며, 평생토록 고기반찬을 입에 대거나 비단옷을 입지도 않았다. 나라 안에서 있거나 <위>의 땅에 머물 때에 공주와의 사이에서 그리고 시첩들과의 사이에서 열다섯의 자녀를 두었다. <위>에서 살고 있는 자녀가 일곱이고, <선선>땅에 살고 있는 자녀는 둘이 있다. 조정은 비용과 물자를 멀리 보내주어서 폐백물자가 모자라지 않게 하였다. 상은 <경>태자가 나라를 양보한 큰 의로움이 있었기에 <숭덕선제>로 추존하였으며, 그의 사당을 세우고 그 장자 <회일>이 맡아서 돌보게 하였다.  5월, <왜>가 <신라>의 <활개성>을 깨뜨리고 천 명을 잡아갔다.  <조다>의 아들 <라운>이 태어났다. 혹은 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9월, <룡산>에 가서 <동명대제>를 지내고 <추모대제>란 시호를 올렸다. <천사><황>태자를 <동맹>주로 삼았으며, ‘쌀 다섯 말’로 폐백하게 하였더니, <오두미>라는 말이 생겼고, 가르침 또한 <미도>라 불렀다.

◎ 三十一年癸卯, 正月, <越王>宮<胡連>后崩, 春秋七十三. 上之胞姊也. 戊午入後宮補妃, 後生<昶>太子, 陞為皇后. 至是, 崩. 性嚴謹, 善敎子. 故久掌瓊府育院, 多治績. 上, 哀慟之, 命権葬于<平昜陵>側, 使<昶>主其祀. <勇德>子<胡景>亦別祀.  二月, <倭>, 侵<羅><揷良>, 大敗而去. <羅>, 築二城於海邊, 而備<倭>.  四月, <宋>, 使<藩雲>来, 献玉器薬材七十事.  如<崇德祠>納<懷衵>女為妃. 是為<鲸>皇后, 其母<{鲸}>女<丙連>也.  九月, 如<西河>宴豊, 置<奉天臺>·<人濟院>.

○ <장수>31년{단기2796년/AD463}계묘, 정월, <월왕{=<용덕>}>궁에 있던 <호련>후가 춘추 73세에 죽었다. 상의 동복 누님이었다. 무오년{改宮時 즉 AD418}}에 후궁으로 들어와서 보비가 되었으며, 후에 <창>태자를 낳고는 황후로 승차하였었다. 이때에 와서 죽은 것이다. 매우 삼가는 성품으로서, 자식들을 잘 가르쳤기에, 오랫동안 경부의 육원을 관장하였으며, 치적도 많았다. 상이 애통히 여겼으며, 명령하여서 권도로 <평양릉> 곁에 장사하도록 하였고, <창>태자가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으며, <용덕>의 아들 <호경{=<호련>이 낳은 <용덕>의 아들}>도 별도로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2월, <왜>가 <신라>의 <삽량>{성}을 침입하였다가 크게 패하여 물러갔다. 이에 <신라>는 해변{물가}에 성 두 개를 쌓아서 <왜>에 대비하였다.  4월, <송>이 <번운>을 시켜 찾아와서 옥기와 약재 70 가지를 바쳤다.  <숭덕사>로 가서 <회일{=<鯨>태자의 아들}>의 딸을 거두어서 비로 삼았다. 이 이가 <경{<懷衵>女}>황후가 된다. 모친은 <{경}>의 딸 <병련>이었다.  9월, <서하>로 가서 풍년 축하 연회를 베풀고, <봉천대>와 <인제원>을 설치하였다.

◎ 三十二年甲辰, 三月, 鑄<楡葉錢>禁<貝錢>・雜銀.  新妃<鲸>氏新宮成, 宴<懷衵>兄弟姊妹及<丙連>, 親賜綵段・馬匹以差. <懷衵>母<龍彦>年高八耋, 賜御廚供饌, 秩依后禮. 遣<董泗>・<許引>等于<宋>, 貿彩段而皈. 五月, <宋>, <駿>死, 云. <駿>, 殺其兄弟, 奪其妻女, 猶懷疑忌, 每多悪夢. 至是, 入其宗廟, 梁折而碎頭, 医不得活之. 或云, <{証}>妻噉勢而殺之. 亦云, <劭>妻淨, 說未可的之.  上, 如<勇德祀>, 惻然良久,뱡命改<勇德陵>, 以<胡景>為<越王>. 上, 漸老, 容皃聲音益肖<勇德>, 寬勤腆實之性亦似<勇德>, 食性亦頗相似<龍彦>. 以為癸巳五月, <勇德>因驟雨躍入<平昜{陽}宮>, 因宮之午睡而潛烝而生帝. <平昜{陽}>, 畏<永楽>之怒, 而諱之, 云. <馬連>・<胡連>亦甞有聞, 云. 上, 常疑其真假, 至是, 遂有尊<勇德>之意.  四月, <鲸>妃生女<鲸>公主.  五月, 命<晃>太子, 追尊<勇德>為帝. <晃>, 以為宻事不可發, 而諫之.  送<道琳>于<濟>採其虗實.

○ <장수>32년{단기2797년/AD464}갑진, 3월, <유엽전>을 주조하고 <패전>과 잡은 사용을 금하였다.  새로 들인 비인 <경{<懷衵>女}>씨의 신궁이 완성되어 <회일>의 형제자매와 <병련>에게 연회를 베풀고는, 친히 채단과 마필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회일>의 모친인 <용언>은 나이가 80줄로 높았기에, 수랏상 차리는 부엌이 음식을 이바지하게 하고, 서열로는 후의 예를 따르게 하였다. <동사>와 <허인> 등을 <송>에 보냈더니, 채단을 무역하여 돌아왔다. 5월에 <송>의 <유준>이 죽었다 한다. <준>은, 형제를 죽이고, 그들의 처와 딸을 빼앗았으나, 오히려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꺼려하였고, 매일 수많은 악몽에 시달렸다. 이즈음에 종묘에 들어갔다가 들보가 부러져 내려서 머리가 부서졌다. 의술로 살릴 수 없었다. <{증}>의 처가 불알을 물어뜯어 죽였다는 말도 있고, 또한 <소>의 처는 정숙하여 그랬을 리 없다는 얘기도 있다.  <상>이, <용덕>의 사당엘 갔다가 처연하여 말없이 있더니만, 명을 내려 <용덕>의 무덤을 고치게 하고 <호경>을 <월>왕으로 삼았다. 상은, 점차 늙어가면서, 용모와 목소리는 점점 <용덕>을 닮아갔고, 너그럽고 부지런하며 후하고 꽉 찬 성품 또한 <용덕>과 비슷하였으며, 식성 또한 꽤나 <용언>과 서로 비슷하였다. 계사년{영락3년/단기2726년/AD393} 5월에 <용덕>은 내리는 비를 피하여 종종 <평양>후의 궁으로 뛰어들었었으며, 그리하여 궁에서 낮잠도 자게 되었었고, 몰래 증하였다가 제를 낳았는데, <평양>은 <영락>의 노여움을 겁내어 이를 숨겼으며, <마련>과 <호련>도 또한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상은 늘 이의 진실여부를 의심하여 오다가, 이때에 이르러 결국 <용덕>을 존숭하려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4월, <{경}>비가 <{경}>공주를 낳았다.  5월, <황{晃}>태자에게 <용덕{勇德}>을 제{帝}로 올리라 명하였더니, <황>은 숨겨진 일이었고 드러냄은 불가하다고 여기어서 이를 말렸다.  <도림>을 <백제>로 보내서 그들의 허와 실을 염탐하게 하였다.

◎ 三十三年乙巳, 二月, <靑彦>自<魏>還, 曰;“<濬>夢見悪鬼, 禱之.”上使太卜<羲元>卜之, 不吉. 卜<宋>, 亦然. 未幾, <濬>殂. <宋>亦被殺於其臣, 猪<彧而>立, 云. 上謂左右, 曰;“自余卽位以来, 東西人主之被弑者, 不少. 此, 不徒其主之不仁, 而己其臣亦無敎訓之故也. 卿等之敎子女, 果何如哉.” 群臣曰;“臣等, 落地以来, 知天之高. 臣等子女, 亦如之. 至於愚婦愚夫, 皆然. 此乃<東明>聖德之所照. 何可, 與<裕>·<皝>·<珪>等之國, 同日而論哉.” 上曰;“善矣. 益勉加誠, 必入<東盟>而朝夕誦講, 然後可識皇恩矣. 汝等夫妻必先之, 以導汝子孫百代為朕忠犬可也.” 群臣, 皆俯伏, 致辞. 上曰;“器有大小而合, 天高然後覆地, 物皆然. 臣民自主, 則其國不久.”  五月, <濬>殂. 子<弘>立, 年十二. 時, <羅>, 有火水山崩十七所, 而且有蝗災.  七月, 上與<鲸>妃與溫湯. 以妃有娠故也. 進封<懷衵>為<椘王>, 賜<椘王>妃<丙連>翟服.

○ <장수>33년{단기2798년/AD465}을사, 2월, <청언>이 <위>에서 돌아와 아뢰길; “<탁발준>이 꿈에 악귀를 보고나서 빌었습니다.”라 하였다. 상이 태복<희원>에게 점을 쳐보라 하였더니 불길하였고, <송> 또한 점괘가 그와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탁발준>이 죽었으며, <송{=<前廢帝><劉子業>}>도 신하에게 피살되었고, 돼지새끼 <욱이>가 보위에 올랐다는 말이 들렸다. 이에 상은 좌우에게 이르길; “내가 즉위한 이래 동쪽과 서쪽 사람들의 주인이 적잖게 시해되었소. 이것은 그 주인들이 어질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신하들 역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오. 경들의 자녀 교육은 과연 어떠하시오?”라 하였더니, 신하 무리들이 아뢰길; “신들은 세상에 던져진 이래 하늘의 높으심을 알고 있사오며, 신들의 아들딸들 역시 그러합니다. 우매한 여인네나 우매한 필부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하옵니다. 이는 <동명>성덕의 돌보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어찌 <{유}유>・<모용황>・<탁발규> 들의 나라와 같은 햇빛이라고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상은 “옳은 말이오. 더한층 힘쓰고 정성을 배가하며, 반드시 <동맹>에 들어가서 조석으로 의론하고 배우게 되면 가히 황은을 알게 될 것이오. 그대들 부처가 반드시 먼저 실행하고 나서, 그대들 자손들도 세세토록 짐을 위한 충복이 되라고 이끌어야 할 것이오.”라 하였다. 군신들 모두가 부복하여 치사하였다. 상이 이르길; “그릇은 대소가 있어야 합해지고, 하늘은 높아진 다음에야 땅을 덮을 수 있소. 만물만사 모두가 그러한 것이오. 신하들과 백성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나라는 오래 갈 수 없을 것이오.”라 하였다.  5월, <탁발준>이 죽었다. 그 아들 <탁발홍>이 섰으며,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이 시절, <신라>에서는 불이 나고 물난리가 났으며, 산이 열일곱 군데나 무너졌으며, 게다가 황충 재앙도 있었다.  7월, 상이 <경{<懷衵>女}>비를 데리고 온탕엘 갔다. 비가 임신하였기 때문이었다. <회일>을 <초왕>으로 작위를 올려주고, <초왕{椘王; 椘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비 <병련>에게는 적복을 하사했다.

◎ 三十四年丙午, 正月, <再曾桀婁>自<濟>来降.  <濬>妻<馮>氏, 為其子<弘>, 請婚以備六宮, 云辞以已婚者非其正后故也.  二月, <鯨>妃生<瓘>太子.  七月, <馮>氏, 又令<程駿>来請宗室女. 乃送以<皐連>女<元>氏.  <拓跋>氏生<跋>公主.

○ <장수>34년{단기2799년/AD466}병오, 정월, <재증걸루>가 <백제>에서 항복하여 왔다.  <탁발준>의 처 <풍>씨가 자신의 아들 <홍>을 위해 청혼하여 6궁을 갖추려 하면서, 이미 혼인하였던 이는 정후가 될 수 없음에 사양하겠다고 알려왔다.  2월, <경{<鯨>太子子<懷衵>女}>비가 <관>태자를 낳았다.  7월, <풍>씨가 또 <정준>에게 령을 내려 종실의 딸을{딸이라도} 달라고 청하기에, <고련>의 딸 <원>씨를 보내주었다.  <탁발{<賀蘭>女}>씨가 <발>공주를 낳았다.

◎ 三十五年丁未, 二月(閏正月), <程駿>来献綵段百疋, <皐連>妻<宝仁>受之.  四月, <古爾萬年>来謁.  <慈悲>, 修戦艦, 以備<倭>.  七月, 以<元>氏娠, <宝仁>・<皐連>徃<魏>. 生女<{马}宝>.  九月, <魏>, <李>后生子<宏>, <馮>太后頃之,<魏><弘>親政. <魏><天宮寺>{鑄}像,高四十三尺,銅十萬斤,金六百斤.

○ <장수>35년{단기2800년/AD467}정미, 2월(윤정월), <정준>이 찾아와서 채단 100필을 바쳤고, <고련>의 처 <보인>이 이를 받았다.  4월, <고이만년>이 찾아와 배알하였다.  <자비>가 전함을 수리하여 <왜>에 대비하였다.  7월, <원{<皐連>女}>씨가 아이가 생기자, <보인>과 <고련>이 <위>로 갔으며, 딸 <{마}보>를 낳았다.  9월, <위>의 <이>후가 아들 <굉>을 낳자, <풍>태후는 <굉>에 정신을 쏟고, <위>에서는 <홍>이 친정을 하였다. <위>의 <천궁사>가 불상을 {주조}하였는데, 높이가 43척이었고, 구리 십만 근과 금 육백 근이 들었다.

◎ 三十六年戊申, 二月, 以<末曷>兵一万, 攻<悉直城>, 拔之.  四月, <魏>又請他女, 上笑, 曰;“<馮>女欲自嫁, 則朕當納之.” 又曰;“<呂雉>觧袴<平城>, <賀蘭>奔歓<月海>, 千古之勝事. <馮>家殘物, 何可比於此哉.”  九月, 如<黃山>賞菊.  十月, 癸酉朔, 日食. <魏>又請婚.  <宝仁>亦生<弘>女. 是, <宝{萬}>公主.

○ <장수>36년{단기2801년/AD468}무신, 2월, <말갈>병 1만으로 <실직성>을 쳐서 빼앗았다.  4월, <위>가 또 다른 딸을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상이 웃으며 이르길; “<풍>녀 자신이 출가하고 싶다면, 짐은 응당 맞아들이겠소.”라 하고, 또한 이르길; “<여치>가 속곳을 벗었던 <평성>의 일과 <하란>이 달려와서 <월해>에서 합환한 일은, 천년에 한 번 있을 훌륭했던 일이었소. <풍>씨 집안 찌꺼기가 어찌 이들과 견줄 수나 있겠소.”라 하였다.  9월, <황산>으로 가서 국화를 즐겼다.  10월 계유일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위>가 또 청혼을 해왔다.  <보인>이 또 <홍>의 딸을 낳았으며, <보만>공주이다.

◎ 三十七年己酉, 二月, <魏>又請婚. <安楽王><真>·尙書<李敦>等来, 献彩段, 辞以年幼.  八月, <慶司>, 来侵<帶方>, 敗去.  十月, <慶司>, 葺<﨎峴>. 又設大柵於<靑木嶺>, 分<北漢山>戌卒而, 守之. 上, 命勿禁而觀其動靜.

○ <장수>37년{단기2802년/AD469}기유, 2월, <위>가 또 청혼을 하였다. <안락왕> <진>과 상서 <이돈> 등이 찾아와 채단을 바치면서, 나이가 어리면 사양하겠다고 하였다.  8월, <경사>가 <대방>에 쳐들어왔다가 패하여 물러갔다.  10월, <경사>가 <쌍현>성을 고쳤으며, 또한 <청목령>에 큰 책을 설치하고 <북한산>의 수졸의 나누어다 지키게 하였다. 상은 내버려두고 그 동정을 살피라고 명하였다.

◎ 三十八年, 二月, <魏>, 婚, 又来促婚, 納幣及黃金千兩・白馬五十匹.  上, 與<晃>太子等儒臣及仙臣, 議立郡學·頒士大夫婚制. 仙儒異見, 数月不決. 時, <慈悲>築<三牟城>. <晃>, 恭勤・好學・淸儉而不至陋, 介士多歸之.

○ <장수>38년{단기2803년/AD470}, 2월, <위>가, 혼인하더니, 또 찾아와서 혼인을 재촉하며, 예물을 바치고 황금 천 냥 및 백마 50필도 바쳤다.  상은, <황>태자 등의 유신{儒臣}들은 물론 선신{仙臣}들과도 함께, 군학{郡學; 國學 다음 등급의 學院}을 세우는 것과 사대부{또는, 선비/무사 및 대부}들의 혼례 제도를 반포하는 것을 의론하였으나, 선신과 유신들 사이의 이견으로 여러 달이 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이즈음, <자비>는 <삼모성>을 쌓았다. <황>은 공손하며 부지런하고 학문하길 좋아하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천박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더니, 많은 개사{ 갑병 또는 지조가 굳은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들었다.

◎ 三十九年辛亥, 正月, 擧茂才, 得<烏鳞>等八人.  二月, 如<西河>祭農壇, 親耕.  遣将軍<淵吉>·<胡海>等, 将兵三萬與<肅愼>軍三千, 伐<室韋>至<北海>. 拓地二千餘里, 獲其金人十二而還.  二月<慈悲>築<笔{芼?}老城(堤川)>.  疫疾流入自<帶方>. 命飭救療.  <羅>京, 地裂二丈.  九月, <奴久>等入<魏>得田地.  上, 聞<羅>有琴師居<狼山>下東里. 家貧, 懸鶉而楽道自若. 聞舂杵而作<磪楽>. 欲聘之, <晃>太子諫, 曰;“國中之賢有未盡用, 况外人乎.” 上曰;“朕, 以天下為一家. 豈有內外哉.” <晃>曰;“<黃竜>·<加耶>好楽而亡. 聖人不務聲色.”乃止.  <魏>, <弘>傳位于子<宏>. <弘>有遺世意, 而子幼母頑. 可謂不幸.  

○ <장수>39년{단기2804년/AD471}신해, 정월,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 받아서 <오린> 등 여덟 사람을 뽑아 들였다.  2월, <서하>로 가서 농단에 제사하고 친히 땅을 일구었다.  장군 <연길>과 <호해> 등을 보내서 3만 장병과 <숙신>군 3천을 함께 거느리고 <실위>를 쳐서 <북해>에 이르렀다. 2천여 리의 땅을 넓히고 금으로 만든 사람 열두 개를 노획하여 돌아왔다.  2월, <자비>가 <필{모?}로성(제천)>을 쌓았다.  역질이 <대방>에서 흘러들었다. 경계하여 병이 퍼짐을 막고 치료하라 명하였다.  <신라>의 도읍에서는 땅이 두 길이나 되게 갈라졌다.  9월, <노구> 등이 <위>로 들어가서 경작지{또는, 사냥터}를 얻었다.  상이, <신라>의 <랑산>아래 동쪽 마을에 금{=가야금}을 잘 타는 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세가 빈한하여 헤어진 옷을 걸치고도 도를 즐기며 태연자약 하고, 절구 찧는 소릴 듣고는 <최요>를 지었다. 이를 듣고는 모시어 들이고 싶어 하자, <황>태자가 간하여 아뢰길; “나라 안의 현자들도 아직 다 쓰지 못하고 있사온데 나라바깥 사람을 찾으십니까?”라 하였다. 이에, 상이 “짐은 천하를 한 집안{나라}로 만들고자 하는데 어찌 안과 밖을 따지겠소.”라 답하자, <황>은 “<황룡>과 <가야>는 풍류를 좋아하다 망하였습니다. 성인은 성색에 힘쓰지 않는다 합니다.”라 아뢰었고, 그러자 그만두었다.  <위>의 <홍>이 아들 <원굉{<北魏><高祖><孝文帝>;<皐連>女所生<弘>子;氏<拓 拔>姓<元>}>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다. <홍>은, 세상일을 잊으려는 뜻이었으나, 아들은 어리고 어미는 재주가 없었으니, 불행한 일이었다 할 만하다.

◎ 四十年壬子, 正月, <柔然>遣使来献土物.  四月, 如<黃山>, 聞<宋><彧>死, 其嬖臣<李道兒>之子<昱>立.  <魏>使, 来献薬材, 言<慶司>誣告殺使投海之事, 以離間請援. 上, 笑, 曰;“奴将自盡矣.” 果然, <慶司>, 怒<魏>不聼其讒, 而絶之. 時, <道琳>已與<慶司>相親俱言. 帝, 喜安逸, 不肯征伐, 天下可得稍安. 勧修宮室・城郭・陵墓之役, 用其所畜.

○ <장수>40년{단기2805년/AD472}임자, 정월, <유연>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쳐왔다.  4월, <황산>에 갔다가, <송>의 <욱{彧}>이 죽고 그가 아끼던 신하인 <이도아{<이도성>이 그 녀석}>의 아들 <욱{昱}>이 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의 사신이 찾아와서, 약재를 바치며 <경사>가 사신을 무고하여 죽이고 물에 버린 일을 얘기하여서 이간하며,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상은 웃으며 이르길; “그 놈은 곧 저절로 지칠 것이다.”라 하였다. 과연, <경사>는 <위>가 그의 참언을 들어주지 않음에 노하여, <위>와 절연하였다. 이즈음 <도림>은 이미 <경사>와 서로 친하여져서 함께 화기애애하였다. 이에 제{帝}는 안일함을 반기고 정벌을 수긍하지 않았더니, 천하는 점차 편안하여 졌다. 궁실과 성곽 및 릉묘를 널리 고치게 하였으며, 그간 모아놓은 것{재물}을 쓰도록 하였다.

◎ 四十一年癸丑, 二月, <晃>太子妃<瑚太>公主, 以周紀, 享上及五后. 上, 以<晃>多文功, 封為<吳王>, 曰;“汝是<吳>太伯也.” 賜<瑚太>妃及<泣>妃翟服.  <慈悲>, 以<伐智>・<德智>為左・右将軍而葺<明活城>, 欲遷都, 又築<一牟>・<沙尸>・<廣石>等等城. <伐智>・<德智>, 曾来<西 都>留學者也, 多與<西 都>人及<漢>人等相通, 漏聞<伯濟>必亡之說, 而自備也.  <魏>使来朝而去, <柔然>継至献玉盃・玉馬而請婚.  八月, 遣使于<魏>及<柔然>.  是年, <統坤堂>成.

○ <장수>41년{단기2806년/AD473}계축, 2월, <황>태자비 <호태>공주가 환갑을 맞이하여 상과 다섯 후들에게 향연을 베풀어 올렸다. 상은 <황>이 문공을 많이 세웠음에 <오왕{吳王; 吳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을 봉하면서 이르길; “너는 이제 <오>에서는 최고의 우두머리야.”라 하고는, <호태>비와 <읍>비에게는 적복을 내려주었다.  <자비>가 <벌지>・<덕지>를 좌・우 장군으로 삼아서 <명활성>을 고치더니, 천도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일모>・<사시>・<광석> 등등의 성을 쌓았다. <벌지>와 <덕지>는 일찍이 「서도」로 와서 머물며 공부한 자들이어서 많은 「서도」사람들과 그리고 <한>인들과도 자주 교통하여 <백제{伯濟}>가 필경 망할 것이라는 흘러나온 소문을 들었기에, 자신들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위>의 사신이 와서 입조하였다가 떠나가자, 이어서 <유연>의 사람들이 찾아와 옥배와 옥마를 바치고 청혼하였다.  8월, <위>와 <유연>에 사신을 보냈다.  이해에 <통곤당>이 완성되었다.

◎ 四十二年甲寅, 二月, 大閱于<黃山>, 以<梁王><華德>為征南大将軍, 以<桀>・<萬>等為鄕導・先鋒.  七月, 上, 如<朱留宮>, 而還至<黃山>行<永楽>大祭, 謂宗室・三輔, 曰;“先帝, 欲雪<國罡>之恥, 而天不假壽. 朕, 養兵待機, 已久. 今, 其期已熟. 兒童皆唱, <伯濟>骸骨南渡水, <慈悲>為之警界, 云. 人心察天心, 于黙黙之中. 此乃<慶奴>必亡之秋也.” 諸臣異口同讚. 上, 命<華德>引兵三万, 先發.

○ <장수>42년{단기2807년/AD474}갑인, 2월, <황산>에서 크게 사열하고는, <양왕{梁王; 梁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화덕>을 정남대장군으로 삼고, <걸{재증걸루}>과 <만{고이만년}> 등을 향도로 삼아 선봉에 세웠다.  7월, 상이, <주유궁>으로 갔다가 <황산>으로 돌아와서는, <영락>대제를 지내고서 종실과 삼보들에게 이르길; “선제{영락대제}께서는 <국강{국강상왕=고국원제}>의 치욕{<백제>군에게 화살을 맞고 죽은 것}을 씻고자 하셨으나, 하늘이 목숨에 짬을 주시지 않았었소. 짐은 병력을 키워서 그 기회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소. 지금 때가 이미 무르익었소. 아이들 모두가 <백제> 해골들은 남쪽으로 물을 건너 도망가고, <신라>사람들은 몸 사리고 경계를 지킨다는 말을 하고들 있소. 인심은 암암리에 천심을 살피는 것이니, 이제는 <경{부여경, 개로왕}> 그놈이 기필코 망할 때가 되었소.”라 하였다. 모든 신하들도 이구동성으로 찬동하였다. 상은, <화덕>에게 명하여, 3만병을 이끌고 먼저 떠나라 하였다.

◎ 時, <新羅>築<一牟>・<沙尸>・<廣石>・<沓達>・<仇禮>・<坐 羅>等城, 以備<濟>. <濟>民, 日三驚以為北兵大至, 抑宸如穴居, 知兩而預感矣.  <宋>人<稽冲>等来, 言;“<休範>, 擧兵入<建康>討<李昱>, 為<蕭道成>所殺.” <彧>, 嬖<道兒>, 而與<陳>妃生<昱>, 殺其弟十五人. 獨<休範>, 守愚供其妻子, 而得免. 至是, 不得少忍而被殺. <道成>, 以武夫, 自稱帝, 使黃金同土價, 而外飾畏者, 內欺孤寡, 亦<馬懿>・<劉裕>之類也.

○ 이때, <신라>는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의 성을 쌓아서 <백제>를 대비하고 있었다. <백제> 백성들은 북쪽의 군병이 크게 몰려 온 줄로 알고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놀라서는 집을 버리고 토굴거처로 달려갔다. 양 편을 잘 알아 미리 감을 잡았던 것이었다.  <송>땅의 사람 <{계}충>이 와서 알리길; “<휴범>이, 거병하여 <건강>으로 가서 <이욱{=劉昱=<宋>後廢帝}>을 토벌하려다가, <소도성{<齊>太祖=高帝}>에게 피살되었습니다.”라 하였다. <욱{彧}>은, <도아{<도성>이 그 자식}>와는 남색하면서, <진>비와 붙어서는 <욱{昱}>을 낳았고, 자신의 동생 열다섯을 죽였는데, <휴범>이만은 홀로 어리석은 체하면서 <욱{彧}>의 처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죽음을 면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조금을 더 참지 못하였다가 피살된 것이었다. <도성{<제><태조><고제>;AD479-482}>이는 무부로서 황제를 자칭하였다. 황금 보기를 흙같이 하며 겉치레를 꺼려하는 자였으나, 속으로는 외로운 임금을 속였었으니, 역시 <마의{馬懿}>나 <유유{<宋><高祖><武帝>}>와 같은 부류이었다 할 것이다.

◎ 上曰;“<懿>生<裕>, <裕>生<道成>, 理也. <{餘}令>生<{䨖}>而易馬, <道兒>生<昱>而稱<劉>, 亦理歟. <昱>, 以十二, 輕恣無憚, <陳>事淫穢, 賜以欺孤之好機, <道成>之簒奪不久矣.” 時, <魏><馮>女亦與嬖臣<李奕>淫穢. <宋>・<魏>, 自稱修文好道, 其穢行如是. 上曰;“朕之後宮, 雖曠百日, 而無怨. <陳>・<馮>輩淫獣中淫獣也.” <晃>太子, 曰;“上好禮, 下自正. 乃陛下之謂也. 如<馮>・<陳>者非徒淫, 産而己. <濬>・<彧>畜之如是.” 上曰;“畏哉. 汝言朕不敢不戒, 可書諸鑑以戒後帝.” 遣長史<箊真>于<宋>, <乙荘>于<魏>. 上, 将状<慶>奴, 観此二國動靜.  

○ 상이 이르길; “<의>가 <유> 같은 이를 생기게 하고, <유>가 <도성{<齊>太祖=高帝}>이 같은 자가 생기게 한 것을 제대로 된 일이라면, <여령>이 <{제}>를 낳고 말을 바꾸어 탄 것과 <도성>이가 <욱>을 낳고 <유>씨로 {성을 바꿔} 칭한 것 역시 제대로 된 일이잖소?”라 하였다. <욱{昱}>은 {나이가} 열둘로 {어려서} 경솔하고 방자하였으며, <진>{비}는 음란하고 추접한 짓을 일삼았으니 임금을 기만할 호기를 준 것이었고, <도성>이 보위를 찬탈한 것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이 시절, <위>의 <풍>녀 또한 폐신 <이혁>과 음란하고 추접하게 놀아났었고, <송>과 <위>는 스스로는 문{文}을 세우고 도{道}를 좇는다고는 하였지만, 그들의 더러운 행실이 이와 같았더니, 상이 이르길; “짐의 후궁들은 설사 100날을 홀로 두어도 원망함이 없소. <진>후와 <풍>녀 무리들은 추접스런 짐승 중에서도 추접스런 짐승이오.”라 하였다. 이에 <황>태자는 “상전이 예의를 따르면 아랫사람들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고 하니, 곧 폐하를 두고 하는 말입지요. <풍>녀와 <진>녀가 설사 음란하지 않았다 하여도, 낳아놓기만 하면 그리 되었으니, <준>과 <욱>이 그리 되도록 키워냈던 것입니다.”라 아뢰었고, 상은 “두려운 일이로고! 너는 짐이 감히 삼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구나. 살펴야 할 모든 것들을 글로 써서 후세의 황제들이 조심하게 하여라.”라고 일렀다.  장사 <어진>을 <송>으로, <을장>을 <위>로 보냈다. 상은 <경>이 놈에게 곧 베풀 생각이 있어서, 이 두 나라를 살핀 것이었다.

◎ 八月, <華德>, 連戦連勝, 圍其都城. <慶>奴, 知不能久守, 先使妻子脫圍南奔, 将軍<風玉>獲而献之. <慶奴>妻<阿吾知>·<加馬只>, <文周>妻<吾魯知>, <昆支>妻<紫麻>等, 画眉行酒無悲哀之相. 上, 謂<阿吾知>, 曰;“若使<肖>·<須>等守其先規, 則汝等豈至如此.” <阿吾知>曰;“妾等久慕上國風化. 今, 見之, 果知<東明>聖祖之尊如天日下臨, 不勝憙幸.”上, 笑謂中畏, 曰;“此輩, 何罪. 賜之肥肉.” 命待, 淸而受幸, 皆踊舞呈歌, 旣而四女皆受幸. <加馬>·<紫麻>尤有寵焉.  

○ 8월, <화덕>이 연전연승하여 {<백제>의} 도성을 포위하였고, <경>이 놈은, 오래도록 지켜낼 수 없음을 알았던지라, 먼저 처자들에게는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도망치게 하였는데, 장군 <풍옥>이 이들을 잡아서 바쳤다. <경>이 놈의 처인 <아오지>와 <가마지>, <문주>의 처 <오로지>, <곤지>의 처 <자마> 등은 곱게 차리고 술을 따랐는데, 슬프고 애통한 기색이 없었다. 상이 <아오지>에게 이르길; “<초고>와 <구수> 등이 앞 사람들의 본을 따랐던들 너희들이 이리 되었겠느냐?”라 하였더니, <아오지>가 아뢰길; “첩 등은 오래도록 상국의 기풍을 따르고자 하여왔었고, 지금에 와서야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동명>성조의 높으심은 하늘의 해가 땅에 내려와 계심과 같습니다. 모시게 되어 그 기쁨을 어쩌지 못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중외대부에게 이르길; “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기름진 고기를 내어 주시오.”라 하고는, 깨끗이 하고서 성총받기를 기다리라고 명하였더니, 모두가 춤사위를 밟고 노래를 불러 바쳤으며, 이윽고 모두가 승은을 입었다. <가마>와 <자마>가 더욱 귀여움을 받았다.

◎ 九月, 上, 聞北城拔, 引<加>·<紫>而将入其城, 命先淸路. <濟>民達夜掃灑. 匈漢<困得>大醉来糞, 巡軍<巨末>見而斬之, 頭落路上. 邏騎捕之欲置於法. 法, 汚{驆}者誅, <困得>·<巨末>同罪. 上命赦<巨末>, 曰;“<巨末>激於忠憤, 不辨自諫. 過也, 非罪也. <困得>之妻子財産與之<巨末>.” <困得>果豪族也. 憤之亡憑醉汚驆, 其族皆坐. <巨末>以小卒, 猝冨豪, 得美妻妾以娛之. 人皆羡其. 犯科而蒙宥, 轉禍為福. <巨末>曰;“若非聖上之明, 吾亦已塵矣.” 遂築壇禱皇. 群臣以汚驆之故諫上入北城. 遂御<阿旦城>受俘.  <慈悲>, 引兵出境, 観望不敢来其所, 為甚可痛. <文周>等, 可謂懸狗也.  九月五日, <桀婁>檻<慶>而至. 上欲活之, 群臣請斬乃献首級于<國罡陵>. 以其生口八千為五部奴婢, <慶司>妻妾及宮人賜公卿及有功諸将為婢妾.  以<跋>太子妃<淵洽>為皇孫<羅雲>宮人.

○ 9월, 상은 북쪽의 성을 차지하였다는 얘길 들었기에, <가>와 <자>를 데리고 그 성중으로 들어가려고, 먼저 길을 깔끔히 정리하라 명하였다. <백제>의 백성들이 밤늦도록 쓸고 물을 뿌렸는데, 흉측한 놈인 <곤득>이 대취하여 오다가 {그 길바닥에} 똥을 쌌더니, 순군 <거말>이 이를 발견하고 목을 베었고, 그 머리가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에 순라 기병이 <거말>을 잡아서 의법처리하려 하였다. 법에 따르면 거둥길을 더럽힌 자는 주살 감이었고, <곤득>과 <거말>은 같은 죄를 지은 것이었다. 상이, 명을 내려 <거말>의 죄를 면하여 주고, 이르길; “<거말>은 충정에 못 이겨 격분한 것이었고, 스스로 말하여 변명하지도 않았다. 실수를 한 것이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곤득>의 처자와 재산을 <거말>에게 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곤득>은, 알아보니 호족이었는데, 분함 마음에 취하였음을 빙자하여 거둥길을 더럽힌 것이기에, 그 가족 모두를 연좌시켰다. <거말>은, 지체 낮은 병졸이었는데, 졸지에 부호가 되고, 예쁜 처첩까지 얻게 되어 즐거웠고, 사람들 모두는 그를 부러워하였다. 법을 어겼어도, 용서를 받았으며, 전화위복이었다. 이에 <거말>은, “성상의 밝으심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흙먼지가 되었을 것이다.”라 하고는, 단을 쌓고 황상을 위하여 빌었다. 군신들은 거둥길이 더렵혀졌다 하여 상께 북쪽 성으로 들어가도록 간하였다. <아단성>으로 들어가서 포로들을 접수하였다.  <자비>는 군병을 이끌고 국경으로 나와서, 관망할 뿐 가까이 오지를 못하였으니, 마음이 매우 아팠을 것이고, <문주> 등은 목줄매인 강아지 꼴이었다.  9월 5일에 <재증걸루>가 <경사>를 함거에 싣고 도착하였고, 상은 <경사>를 살려주고 싶었으나, 군신들은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국강릉>에 바치길 청하였다. 사로잡은 8천 명은 5부에 나누어 주어 노비로 삼았으며, <경사>의 처첩과 궁인들은 공경들과 공을 세운 모든 장수들에게 비첩으로 삼게 하사하였다.  <발>태자비 <연흡>을 황손 <라운>의 궁인으로 삼았다.

◎ 四十三年乙卯, 正月, <慈悲>恐禍及已移居<明活城>.  宴<華德>夫妻于<溫水宮>. <德>, 年八十六. <好山>, 年九十. 皆健壮能視事. <好山>, 上之胞妹, 甞以補妃生<藍山>公主, 亦為<華德>妻. <德>子<好德>, 亦年六十七, 而英勇能立陣頭, 亦娶上女. <織>公主生<好德>子<陽德>, 亦有渠父之風. 一門三世, 皆從南征之役. 上, 以<好贤>公主又妻<陽德>, 命世為駙馬.
三月, <楚>太子, 自<魏>還, 告;“<李奕>, 與<馮>太后, 恣淫益甚, 為<弘>所疾.” 上曰;“<弘>, 無謀, 必為<馮>擒矣.”

○ <장수>43년{단기2808년/AD475}을묘, 정월, <자비>가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이미 <명활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화덕> 부처에게 <온수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화덕>의 나이 86살이었고, <호산>의 나이는 90살이었는데, 둘 다 건장하여 능히 일을 맡아볼 수 있었다. <호산>은 상의 동복 여동생으로 일찍이 보비가 되어 <람산>공주를 낳았었다. <람산>공주 역시 <화덕>의 처가 되었다. <화덕>의 아들 <호덕> 또한 나이가 67살인데도 뛰어나게 용맹하여 군진의 머리에 능히 설 수 있었으며, 역시 상의 딸을 취하였다. <직>공주가 <호덕>의 아들 <양덕>을 낳았는데, 그 또한 도량이 큰 아비의 기풍이 있었다. 한 집안 3대 모두가 남쪽을 정벌하는 일에 참여하였었다. 상이 <호현>공주를 또 <양덕>에게 처로 주고 대대로 부마가 되라고 명하였다.
3월, <초>태자가 <위>에서 돌아와 고하길; “<이혁>이 <풍>태후와 함부로 놀아남이 날로 심하여지더니, <홍>이에게 질시당하고 있다.”고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홍>이는 꾀가 없어서 필시 <풍>에게 잡힐 것이다.”라 하였다.

◎ 五月, <好德>下<濟>五十余城, <文周>逃于<慈悲>. 上, 怒<慈悲>逆天, 欲伐之. <晃>太子諫, 曰;“貴在知止, 不可逐二鹿矣.” 乃止之.
六月, 遣<風玉>太子于<慈悲>, 議分<濟>地. <慈悲>, 以其女二人献于太子, 侍枕. 太子, 以<慈悲>不奉詔, 責之. <慈悲>, 疑貮不斷.
十月, <慈悲>, 以<熊津>之地, 借<文周>使拾殘衆. 上曰;“<劉備>, 借<荊州>, 而與<吳>相爭. <慈悲>, 必為<文周>所蠶矣.”

○ 5월, <호덕>이 <백제>의 50여 성을 점령하였더니, <문주>는 <자비>에게로 도망쳤다{<고구리>에 의한 <백제>의 1차 멸망?}. 이에 상이 <자비>가 하늘을 거역함에 노하여 정벌하려 하다가, <황>태자가 “멈출 줄 아는 것도 귀중한 것입니다. 두 마리의 사슴을 쫓아서는 아니 됩니다.”라 간하였더니, 그만두었다.
6월, <풍옥>태자를 <자비>에게 보내서, <백제> 땅을 나누는 문제를 의논케 하였다. <자비>는 자신의 딸 둘을 태자에게 바쳐서 시침 들게 하였다. 태자는 <자비>가 조서를 봉행하지 않기에 책망하였고, <자비>는 오락가락하면서 단안을 내리지 못하였다.  
10월, <자비>가 <웅진>땅을 <문주>에게 빌려주어 남은 무리를 수습하게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유비>가 <형주>를 빌리더니 <오>와 서로 다투었소. <자비>는 필시 <문주>에게 잠식당할 것이오.”라 하였다.//(계속)



강영구 (2008-01-14 16:37:06)  
·21년 정월 :“<義隆>義不隆反不如<義符>. 盖諰被殺於子, 反不如被殺於臣也“ =>‘의롭긴 하나 너그럽지 못하였으니’를 (이름은 의가 융성한다는 뜻인데) ‘의로움인 융성하지 못해’라고 해석하면 어떨까요? 諰자가 謂자가 아닌가 합니다. ‘대체로 자식에게 피살되는 것이 신하에게 피살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로 해석해봅니다.
·<劉裕>弑其主而為國, =>爲를 ‘위한다’고 해석하셨는데,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륭이나 유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묘사를 하느 것에 비추어 ‘다스린다’로 단순 해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裕>, 但知為國之好, 而不知殆将自滅者乎’도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좋다는 것만 알았지 장차 자신을 죽게 할 것은 알지 못한 것이었던가!’하고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합니다.
·<隆>以為有令望而代<符><륭>은 좋은 내일을 바라면서 <부>를 대신하였지만 =>令望을 ‘좋은 내일을 바라다’로 해석하셨는데, 이런 쓰임이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 令이 여기서는 ‘아름다운, 좋은’의 의미로 쓰였고, 望은 ‘명망이 있다’로 쓰인 것 같습니다. ‘좋은 명망’이나 ‘훌륭한 명망’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겠고, 그냥 명망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吾亦悟之矣.其勿治, 宮室車馬放, 後宮雜女皈家.=>저는 다르게 해석해봅니다. “나도 역시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궁실, 거마를 늘리지 않고 후궁 가운데 잡녀들은 귀가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其가 간혹 ‘아마도’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곳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放자는 아래에 붙여 ‘놓아주다’로 해석하였습니다.
·豈意一朝如是耶 =>해석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달리 해봅니다. 지금 상황이 천룡황후가 갑자기 죽어서 장수왕이 매우 낙담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런 느낌을 살리면 더 좋을 듯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소!”
·9월 :竜之過卽汝之過過, 過過卽我之過.=>龍之過卽汝之過 汝之過卽我之過라고 해야겠습니다. “용의 잘못이 곧 너의 잘못이고, 너의 잘못이 곧 나의 잘못이다.”
·23년 2월 :故酬應之耳 오고 갈 뿐이었다.=>(찾아오면) 답례만 할 뿐이다.
3월 : 况<毗[有]>之為人, 辯而輕人, 淫而好遊, 其能久乎. =>“더욱이 비유의 사람됨이 변이경인, 음이호유하니 능히 오래갈 수 있겠는가?” 아래 보면 장수왕의 예상과 같이 비유가 갑자기 죽네요.
·25년 2월 :<勖多> =>모다->욱다
·26년 8월 :<訥祇>, 有反骨弑<宝金>, =>반골기질이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27년 2월 :林木鬱宻成, 抱豚羊彌滿, =>抱를 成에다 붙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아름드리가 되었다 뭐 그런 뜻 같아요.
4월 :何自主而自厚 어찌 {각자가} 임금이 되려고만 하면서 도타워 질 수 있었겠소.=>여기서는 임금이 되려고 한다는 뜻보다는 형제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卿其曉諸瓊琳歟 경은 경림에 해당하는 모든 이를 훤히 파악하고 계신 것이죠?”=>골육 간에 상부상조하라는 취지를 경림에 밝히라는 권고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8년 :二十八年更子 ->二十八年庚子
·29년 :입궁한 지 40년을 ->46년
·盖天姿荴明禀質亦好. 可謂龍中之龍, 鳳中之鳳也.아마도 자태가 출중하고 두루 밝아서 의견을 품신함 또한 훌륭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용 가운데의 용이고 봉새 가운데의 봉새라 할 만하였었다. =>荴자를 英으로 바꾸야겠습니다. “대개 타고난 자태가 영명하고 타고난 성품 또한 훌륭하여 용 중의 용이고 봉황 중의 봉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물 흐르듯 하더니 =>흔히 쓰는 말로 ‘세월이 유수 같아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제 위험한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몇 년 있으면
·妾以為人之修善不必高擧 =>‘以爲’를 ‘~라고 여긴다’의 의미로 써서 “첩은 사람이 수선을 하되 반드시 고거(거창한 일)한 것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래 문장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30년 5월 :<助多>子<羅雲>生 =>조다가 위에서 나온 勖多가 아닌지 살펴봐주십시오.

·33년 2월 :器有大小, 而合天高然後, 覆地物皆然. =>저는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器有大小而合, 天高然後覆地, 物皆然’ “그릇은 대소가 있기 때문에 합해진다. 하늘이 높고 난 다음에 땅을 덮을 수 있듯이 만물만사가 모두 그러하다.” 그릇을 뚜껑을 덮을 때 아래는 작고 덮개는 커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42년 7월 :此乃<慶>奴必亡之秋也 =>秋를 가을이라고 하지 말고 ‘때’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晃>太子, 曰;“上好禮下自正万, 陛下之謂也” =>万자가 乃자가 아닐까 합니다. “上이 好禮하면 下는 저절로 正하니 곧 폐하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如<馮>․<陳>者非徒淫, 産而己{濬}. <彧>畜之如是 <풍>녀와 <진>의 무리 같은 것들은 음행으로 지새지 않아도 낳아놓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물길을 잡습니다. <욱>이 쌓아놓은 것이 이리 하였던 것입니다. =>풍과 진 같은 자들이 음예함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준, 욱은 이처럼 음예함을 길렀습니다. (말이 어려운데, 풍과 진이 음예하였는데, 준과 욱은 한술 더 떠서 더 심했다는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43년 :命世為駙馬평생토록 부마로 있으라고 명하였다.=>世는 3대가 부마가 된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대대로 부마가 되도록 명했다’라고 해석하면 어떨런지요.
·<弘>所疾 =>여기서 疾을 ‘미워하다, 질시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어떨까 합니다.
김성겸 (2008-01-15 10:38:11)  
강 선생님, 고맙습니다.
말씀을 되새기며 교필하여 차분히 다듬어 놓겠습니다.
강영구 (2008-01-15 11:07:53)  
위에서 제가 吾亦悟之矣.其勿治, 宮室車馬放, 後宮雜女皈家를 해석할 때 治를 '늘리다'로 썼는데, 그것보다는 '꾸미다'로 하는 것이 더 가까울 듯합니다.
김성겸 (2008-01-15 17:34:36)  
강 선생님, 고맙습니다.
[其勿治宮室車馬放後宮雜女皈家] 중 其勿治의 治를 다스리다. 늘리다, 꾸미다, 또는 고치다, 고쳐서꾸미다. 등등 여러가지로 번역될 수 잇을 것으로 봅니다.

장수대제가 태자의 말을 이해는 하겠으나, 어떤 선택을 하였을른지...?
1. 주변국과의 외교를 위한 입장으로 말하였다고 번역할 때와
2. 여인들을 끼고 일어나는 불상사를 줄이는 것으로 말한 것으로 번역할 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인과 권력 쟁탈 문제로 시끄러웠던 나라들과는 <고구리>가 확연히 다르게 웅장하였다라면,
모든 것을 안에서 녹여 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
其勿治, (1)宮室車馬放, (2)後宮雜女皈家로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其(1)勿治宮室車馬, (2)放後宮雜女皈家 로 함이 옳다고 느껴집니다.
엄청 고민스럽습니다.
강영구 (2008-01-15 18:13:20)  
죄송합니다만 거기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문장 자체만 보고 읽었기 때문에 '방후궁'으로 푸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황태자가 '계욕, 아도'로써 말할 때 장수대제는 알았다고 긍정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궁실거마, 후궁 등은 그대로 둬라고 한다면 앞에 '然'자가 들어와야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저는 객일뿐이어서 무책임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사천 선생님은 주인이시니 마음에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최종 선택은 선생님의 몫입니다. 양해바랍니다.
김영채 (2008-01-23 23:01:55)  
(1) 장수 21년기사 : 盖諰, 被殺於子 -> 盖謂, 被殺於子
(2) 장수 22년기사 : 我事爾, 天不乏粮滿家 -> 我事以 道, 天不乏粮滿家
(3) 장수 25년기사 : <{助}多>女<齊雲>生 -> <勖多>女<齊雲>生, 해석: <{조}다>의 딸 <제운>이 태어났다 -> <욱다>의 딸 <제운>이 태어났다
(4) 장수 31년기사 : 其母{□□□□}也 -> 其母{□□丙連}也, 해석: 그 모친은 □□□□이었다. -> 그 모친은 □□병련이었다.
(5) 장수 32년기사 해석 : 새로 들인 비인 <경>씨의 신궁이 완성되어 <회월>의 형제자매와 -> 새로 들인 비인 <경>씨의 신궁이 완성되어 <회일>의 형제자매와
(6) 장수 33년기사 : 東西人主之被殺者 -> 東西人主之被弑者
(7) 장수 34년기사 해석 : <준>의 처 <풍>씨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청혼하여 -> <준>의 처 <풍>씨가 자신의 아들 <홍>을 위해 청혼하여
(8) 장수 42년기사 : 上曰;“朕後宮雖曠百日 -> 上曰;“朕之後宮雖曠百日
(9) 장수 42년기사 해석 : <여령>이 <제>를 낳고 말을 바꾸어 탄 것과 <도성>이 <욱>을 낳고 -> <여령>이 <제>를 낳고 말을 바꾸어 탄 것과 <도아>가 <욱>을 낳고
(10) 장수 43년기사 : 亦有渠夫之風 -> 亦有渠父之風
김성겸 (2008-01-27 16:17:35)  
김 영채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도 제가 해 놓은 것이 형편없어 포기하신 줄로 알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