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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21. 第二十世<長壽大帝>紀 제20세<장수대제>기(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27.
第二十世<長壽大帝>紀 제20세<장수대제>기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2.pdf

傳曰; 帝, 諱<巨連>, 亦曰<璉>. <永楽帝>之次子也. <平陽[昜]>后夢見<無量壽佛>而生. 魁傑・弘仁・孝友・愛民・通經史・習禮節・善将兵・有奇略. 至是, 卽位. 時, 年二十一.

전해오길 제의 휘는 <거련> 또는 <연>이라 하고, <영락제>의 둘째 아들이다. <평양>후가 꿈에 <무량수불>을 보고나서 낳았다. 걸출한 우두머리 같아보였으며 모든 이에게 인자하였고,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백성을 아꼈고, 경적과 사서에 통달하였으며 예절을 익혔고, 장수와 병사를 아주 적절하게 통솔하였으며 기이한 지략도 있었다. 때가 되어 즉위하니 스물 한 살이었다.

◎ 元年甲寅, 八月, 以<吐>后為太后, 以<天罡>后為上太后, 以<天龍>妃・<三山>妃為左・右后. 以太輔<朋連>為<燕王>使鎮<南蘇>, <淵鞱>太輔, <觧猩>左輔, <春>太子右輔, <淵鞴>中畏大夫, <胥狗>主兵大加, <勇德>左将軍.  九月, 葬大行于<黃山>. <春>太子作碑立之. 上, 與<天罡>・<吐>后入<鸞宮>飼鸞. 自八月, 黃鸞集于<鸞宮>而不去. 乃復居「西 都」. 使<天罡>・<天龍>居左宮, <吐山>・<三山>居右宮. 上, 又思念母后, 召<馬>・<胡>二姊于宮中, 迢福無時.  十月, 與二太后, 謁大行陵, 畋于<虵川原(楡河)>獲白獐賜<天龍>后, 是夕<天龍>后受幸得娠.  十二月, 雪深五尺. 上, 謁<天罡>于左宮<乳凰殿>, 負<瑚太>公主以慰之. <天罡>曰;“雪滿壑矣. 何以謁陵.” 上曰;“雪滿村矣. 何以賑民.” <天罡>, 謝, 曰;“六十老牝未及陛下.”

○ 원년{단기2747년/AD414}{갑인}, 8월, <토>후를 태후로, <천강>을 상태후로, <천룡>비와 <삼산>비를 좌・우후로 삼았고, 태보 <붕련>을 <연왕>으로 삼아 <남소>를 지키게 하였으며, <연도>를 태보로, <해성>을 좌보로, <춘>태자를 우보로, <연비>를 중외대부로, <서구>를 주병대가로, <용덕>을 좌장군으로 삼았다.  9월, 대행을 <황산>에 장사하였다. <춘>태자가 비석을 만들어 세웠다. 상이 <천강>후 및 <토>후와 더불어 <란궁{서도}>에 들어가서 <란>새{방울새}들에게 먹이를 주어 길렀다. 8월 이래로 노란 란새들이 <란궁>에 모여들더니 날아가지 않았다. 이에 다시금 <서도>에 거처하게 되었다. <천강>과 <천룡>은 좌궁에 기거하게 하고, <토산>과 <삼산>은 우궁에 기거하게 하였다. 상은, 또한 모후가 생각나면, <마}>・<호}> 두 누나를 궁중으로 불러서 아득한 복을 무시로 내렸다.
10월, 두 태후와 함께 대행의 릉을 배알하고, <사천(유하)원>에서 사냥하여 흰 노루를 잡아서 <천룡>후에게 주었다. 이날 저녁에 <천룡>후는 승은을 입고 아이가 생겼다.  12월, 눈이 다섯 자나 되게 내리자, 상이 <천강>을 좌궁 <유황전>으로 찾아뵙고, <호태>공주를 업어주어서, 위로하였다. <천강>이 “산골짜기에 눈이 가득한데, 어찌 무덤을 찾으셨습니까?”라 하니, 상은 “마을에 눈이 가득한데, 어찌 백성을 구휼하고 계십니까?”라 하였고, 이에 <천강>은, 고맙다 하면서, “60먹은 늙은 여자는 폐하를 당할 수 없겠소.”라 하였다.

◎ 二年乙卯, 正月, <宝金>・<腆支>・<馮跋>等遣使来貢. 上, 接見于<鎮南楼>, 命<春>太子享之以配頒<東明曆>.  上, 與<三山>后, 如「溫湯」禱子而還. 大閱于<汗>濱.  命<春>太子, 發勧農詔, 設「籍蚕司」而示民.  二月, 與四后, 謁庙告卽位, 大赦國中及<貊>・<余>・<羅>・<濟>・<倭>・<耶>等國.  三月, <魏><嗣>遣使来朝.  <宝金>, 與<倭>, 戦于<風島>, 克之.  七月, 上, 如<朱留宮>道場, 與<春>太子, 論時事, [曰]; “<慕>・<超>・<凉>・<檀>皆淫逸亡.” <春>太子曰;“淫者逸之始, 逸者虗之始, 虗者襲之始.” 上, 嘉之, 賜<春>太子妃<天乙>綵段五十匹・黃金百兩, 曰;“朕, 自東宮時, 見卿貞潔合於仙王之妃. 國之興亡係于宗女之貞與不貞耳.” <天乙>曰;“妾, 自幼受夫王之訓, 未甞邪念. <吐>皇后亦然. 陛下, 鑑之.” 上曰;“知之.” 乃命<吐>后「乞巧」. <吐>后曰;“妾才鈍質薄. 雖乞, 何益.”上笑, 曰;“汝, 以主絲之婦, 不乞. 何[女+丂{=巧}]. <天乙>謬矣.” <吐>后乃伏, 上抱入「溫湯」. <龍>后生子<獐>.
十月, <秦><姚興>送女<西平>于<魏><嗣>. [<魏>主<嗣>, 以後禮, 納之. 鑄金人不成, 乃以為夫人,而寵甚.]

○ 2년{단기2748년/AD415}을묘, 정월, <보금{新羅}>・<전지{百濟}>・<풍발{北燕}> 등이 사신을 보내와서 공물을 바쳤다. 상이 <진남루>에서 접견하고, <춘}>태자에게 명하여 즐겁게 해주고 <동명력>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상이 <삼산>후를 데리고 온탕에 가서 아들 낳기를 빌고 돌아왔다. <한{汗}>수가에서 크게 군사를 검열하였다.  <춘>태자에게 명하여 권농조서를 내리고 「적잠사」를 두어 백성들에게 시범을 보이게 하였다.  2월, 네 명의 후들과 함께 묘당을 찾아 즉위하였음을 고하고, 나라 안{직할지}과 <맥{㹮}>・<부여{余}>・<신라{羅}>・<백제{濟}>・<왜{倭}>・< 가야{耶}> 등의 나라에까지 크게 사면하였다.  3월, <북위>의 <탁발사>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였다.  <보금>이 <왜>와 <풍도>에서 싸워 이겼다.
7월, 상이, <주유궁{朱留宮}> 도장으로 가서 <춘{春}>태자와 당면한 정사를 논의하며, 이르길; “<모{慕=後燕}>・<초{超=南燕}>・<량{凉=後涼}>・<단{檀=南涼}> 모두 음란하고 방종하다가 망하였습니다.”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음란하면 방종하게 되고, 방종하면 빈틈이 있게 되며, 빈틈이 있으면 적의 기습을 불러들입니다.”라 하였다. 이 말에 상은 기뻐하며 <춘>태자비 <천을>에게 채단 50필과 황금 100량을 하사하고는, “짐이 동궁시절부터 지켜본바 경은 정결하시기가 선왕{仙王}의 왕비로서 합당하시었습니다. 나라의 흥망은 종실의 여인들의 마음이 정결한지 그렇지 않은지{또는, 곧은 지 곧지 않는지}에 달려있습니다.”라 일렀더니, <천을>이 말하길; “첩은 젊을 적부터 남편이신 왕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삿된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토>황후께서도 또한 그러 하실 것입니다. 폐하께서 <토>후를 시험해보세요.”라 하였다. 이에 상은 “알고 있습니다.”라 답하고는, <토>후에게 「걸교{乞巧; 칠석날 저녁에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 두 별에게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하여 달라고 비는 일}」를 해보이라 명하였더니, <토>후는 “첩은 재주도 둔하고 본디 천박한데, 걸교해 본들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이에 상은 웃으면서 “그대는 실 바느질{줄 엮기}을 주관하는 아낙임에도 「걸교」를 해보이지 않으니, 어찌 요염하다 하겠소? <천을>께서 잘 못 본 것이오.”라 하였다. <토>후가 승복하자, 상은 <토>후를 품에 안고 온탕으로 들어갔다.  <천룡>후가 아들 <장>을 낳았다.
10월, <진{後秦}>의 <요흥>은 딸 <서평>을 <위{北魏}>의 <탁발사>에게 보냈더니, [<위>의 <사>는 후에 예를 치르기로 하고 맞아들였다.] 금부처{金人}를 만들다가 이루지 못하더니, <서평>을 부인으로 삼아서 심히 아꼈다.

◎ 三年丙辰, 四月, <吐>后生女<織>. 以<華德>妻<好山>為<獐>太子乳母, <華德>為<獐>太子育成大夫.  <宝金>得盈車之魚而献, 其角如玉, 味美如蝦. <吐含山>崩, 水湧三丈二尺.  以<談喜>・<談明>為太后宮宮人.

○ 3년{단기2749년/AD416}병진, 4월, <토>후가 딸 <직>을 낳았다. <화덕>의 처 <호산>을 <장>태자 유모로 <화덕>을 <장>태자 육성대부로 삼았다.  <보금>이 수레 가득 차 넘치게 물고기를 얻었다 하고 바쳐왔다. 그 촉각{또는, 껍질}은 옥 같았으며, 맛은 좋아서 새우 같았다. <토함산>이 무너지더니, 물이 3장 2척을 끓어올랐다{또는, 뿜어져 올랐다.}.  <담희>와 <담명>을 태후궁의 궁인으로 삼았다.

◎ 四年丁巳, 五月, <訥祇>殺<宝金>而自立. 正月, <宝金>, 使<訥祇>・<曉辰>入朝, 賂于邊将而害之. 邊将, 恐朝廷, 而不敢害之. 事遂發. 上, 命評部・賓部, 治其罪. <訥祇>, 含而皈之, 與<天星>共謀而鴆<金>. 時, <宝金>, 有寵姬, 生子故也. 上欲治<訥祇>, <春>太子諫止之. <訥祇>, 甞以<天星>女三人為室, 而私<天星>, 云.  <腆支>徵東北人十五以上築<沙口城>. 兵平<觧丘>監之.  八月, <三山>后生子<獜>, 以<談允>妻<春風>為乳母, <談允>育成大夫.  潤十二月, <勃勃>伐<長安>.

○ 4년{단기2750년/AD417}정사, 5월, <눌기{訥祇=訥祗}>가 <보금>을 죽이고 자신이 보위에 섰다. 정월에, <보금>이 <눌기>와 <효진>을 입조하라 해 놓고 변방 장수를 시켜서 이들을 해치우라고 시켰는데, 그 변방 장수가 {<고구리>의} 조정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들을 해치지 못하였더니, 그 일이 드러나게 되었다. 상은 평부와 빈부에 명하여 그 죄를 다스리라고 하였었다. <눌기>는 입 다물고 돌아가서 <천성>과 공모하여 <보금>을 짐독으로 해치운 것이었다. 그 시절 <보금>은 아끼는 여자와 아들을 낳은 때문이었다. 이에 상이 <눌기>를 다스리려 하였었으나, <춘>태자가 간하여서 그만두었다. <눌기>는 이미 <천성>의 딸 셋을 들여앉히고서도 <천성>과 사통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지>가 동북지방의 15세 이상의 사람들을 징발하여 <사구성>을 쌓았는데, 병관좌평 <해구>가 그 일을 감독하였다.  8월, <삼산>후가 아들 <린>을 낳았다. <담윤>의 처 <춘풍>을 유모로, <담윤>을 <린>을 육성하는 대부로 삼았다.  윤12월, [<하{夏}>왕] <혁연발발>이 <장안>을 쳤다.

◎ 五年戊午, 正月, <訥祇>請還<宝海>, 許之. <馬連>, 與<宝海>, 生二女一子而不從去. 上, 不得已, 命為<角彦>妻.  二月, 改官等; 三輔, 二品, 金花. 畏・刑・兵・民・穀, 二品下, 銀花. 神・賓・薬・農・畜, 三品, 銀花. 衛・施・供・評・訓, 三品下, 雉花. 籍・廚・船・冶・匠・織・酒・七院, 四品, 雉花. 他皆從前.

○ 5년{단기2751년/AD418}무오, 장월, <눌기>가 <보해>를 보내 달라 청하여 허락하였다. <마련>이 <보해>와 2녀 1남을 낳고도 <보해>를 따라가지 않았다. 상은 부득이 <각언>의 처가 되라 명하였다.  2월, 관등을 고쳤다; 삼보는 2품으로 금화관을 쓰게 하였고, 외・형・병・민・곡을 주관하는 2품 하는 은화관을 쓰게 하였고, 신・빈・약・농・축을 관장하는 3품은 은화관을 쓰게 하였고, 위・시・공・평・훈을 관장하는 3품 하는 치화관{꿩깃털관}을 쓰게 하였고, 적・주・선・야・장・직・주・7원을 주관하는 4품은 치화관을 쓰게 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종전과 같게 하였다.

◎ 上, 問於<春>太子, 曰;“先帝戒我, 以終身二后. 我已不能守矣. 天子之宮道, 果何如乎.” <春>太子曰;“天子, 異於臣民, 廣嗣養氣, 以萬民為臣妾. 昔, 聖採供, 以次算以三千飛蝶, 而當夕短氣之. 主過勞而損祖宗. 宮制不一正, 后以下, 多則七八十人, 少不下三十余人矣.” 上曰;“無乃太過乎.” <春>太子曰;“專房則過矣. 補則無多数也.” 上曰;“<東明>三后, <光明>七后, <大武>五后. 朕欲取其中, 何如.” <春>太子曰;“聖矣.” 上曰;“補則幾人最可乎.” <春>曰;“七妃十六嬪二十八宮應天之宿矣.” 上曰;“好矣.” 上, 又問, 曰;“祖宗之法, 以龍交龍, 不取雜色. 近者頗多異議. 卿, 以為何如.” 春曰;“<[伏]羲>以女<禍>為后而生子二十人, <齊><桓>・<晉><文>皆用姊妹姑姪, 已有聖人之通法.” 上曰;“善. 朕亦以骨為貴, 五后當用龍骨, 七妃龍四仙三, 十六嬪雜用, 何如.” <春>曰;“聖哉.” 上又問曰;“祖宗之法, 禁殉, 年少更復承寵. 情則然矣, 道似缺然, 奈何.” <春>太子曰;“聖主好生, 故天子無母. 况其餘乎.” 上, 黙然良久, 曰;“决矣.” 遂定五后七妃之制. 命中畏大夫<淵鞴>定其節次, 命瓊叢大夫<龍莖>選宗室女堪為后妃者·琳叢大夫<岡>選外戚女堪妃嬪者, 薦之.  <龍>后生女<牝>.

○ 상이 <춘>태자에게 이르길; “선제께서 저에게 이르시길 평생 동안 후를 둘만 두고 살라 하셨는데, 저는 이미 그 것을 지킬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과연 천자의 궁중도리는 어떠한 것입니까?”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천자는, 신하나 백성과 달라서, 널리 후사를 두고 기운을 돋우며, 만민을 신하나 첩으로 둘 수 있습니다. 옛날의 성인들이 시중드는 이들을 뽑아서 씀을, 헤아려보니 3천 비접이나 되었는데, 저녁 일에 있어서는 짧게 냄새만 맡았습니다. 주상이 과로하면 조종이 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궁궐의 예법엔 정도가 하나만은 아니어서, 후 이하로는 많으면 칠팔십 명이었고 적어도 삼십 명은 되었습니다.”라 하였다. 상이 이르길; “하나도 두지 않으면 큰 잘못이 되나요?{또는, 너무 지나친 것 아니었나요?}”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특정한 여인에게만 가는 것은 지나친 것이어, 보조하는 이들을 두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상이 “<동명>께서는 세 명의 후를 두셨고, <광명>께서는 일곱 후를 두셨으며, <대무>께서는 다섯 후를 두셨었습니다. 짐도 이 들 숫자 중에서 택하려 하는데, 어찌함이 좋겠습니까?”라 물었더니, <춘>태자가 답하길; “훌륭한 생각이십니다.”라 하였다. 상이 묻기를; “보조하는 이는 얼마까지 둘 수 있는 것인가요?”라 하니, <춘>이 아뢰길; “{5후와} 7비·16빈으로 하시어서 28궁을 두시면 하늘의 성수에 맞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상은 “좋아 보입니다.”라 하였다. 상이 또 묻기를 “조종의 법도에 용골은 용골과 교접해야 하며 잡색은 취하지 않는다 하나, 근자엔 다른 의견들도 파다한데, 경의 의견은 어떠하십니까?”라 하니, <춘>이 답하길; “<복희>는 자신의 딸 <화>를 후로 삼아서 자식을 스물이나 두었으며, <제><환>{공}과 <진><문>{공} 모두는 자매 또는 고모{또는, 이모} 및 조카와 혼인하였으며, 이미 성인들의 통상적인 법도가 되었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옳거니! 짐 또한 골육을 귀하게 할 것입니다. 다섯 후는 용골로 하고, 일곱 비는 네 명의 용골과 세 명의 선골로 하며, 열여섯 빈을 잡색으로 하였으면 합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라 하니, <춘>은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라 하였다. 상이 또한 묻기를; “조종의 법도가 순사하지 못하게 하고 나이가 젊은  이는 다시금 이어서 총애를 받게 하였는바, 인정으로선 그러할지라도 법도로서는 흠결이 있어 보이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지존이신 주상님들은 살리시길 즐겨하시며, 천자는 어미도 따지지 않는 것인데, 항차 그 나머지야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라 하였다. 상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는 “결정하였습니다.”라 하고는, 5후·7비를 제도로 정하였다. 중외대부 <연비>에게는 그 절차를 정하라 명하였으며, 경총대부 <용경>은 후비로 합당한 종실의 여인들을 선발하고 림총대부 <강>은 외척들 중에서 비빈으로 합당한 여인들을 천거하라 명하였다.  <천룡>후가 딸 <빈>을 낳았다.

◎ 四月, 上, 親選後宮三十人於瓊琳薦姬中, 納于後宮, 定殿房僚屬. 上所選, 多是腆厚豊秀之嬪, 而巧娟者少矣. 上, 謂<春>太子, 曰;“人所難行在乎克己. 朕, 年方壮, 易於使氣, 自可難制國之大事. 唯信於叔父三人. 朕若犯過, 無憚直諫可也. 叔妻<天乙>・<胥>妻<天龍>, 皆非薦中而自願當之, 非敢選也. 有欲接乎, 至人求其方弗也, 抑亦不能克己之慾歟.” <春>太子曰;“臣與<胥狗>為陛下之股肱, 安得不供乎. 實是率先垂範也.” 上, 嘉其言, 遂后二妃.
太后生子<談太>. 以<龍德>妻<胡連>為乳母, <龍德>為育成大夫.
十月, <訥祇>遣<宝海>入貢言; <美海>亦自<倭>皈, <羅>亦大豊, 云.

○ 4월, 상이 손수 후궁 30인을 경총대부와 림총대부가 천거한 여인들 중에서 선택하여 후궁으로 들이고, 궁전과 방을 정하여 주고 각자에 딸리는 관원도 정하여주었다. 상이 친히 골랐는데, 착하고 후덕하며 훤칠하고 고상해 보이는 빈들이 많았고, 교태 있고 예쁜이는 적었다.
상이 <춘>태자에게 이르길; “사람들에게 있어서 해내기 어려운 것이 극기{克己}라 합니다. 짐은, 나이가 이제 막 장년{壮年}이 되었으니 기운만 믿기 쉬운지라, 나라의 큰일들을 스스로 다스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로지 숙부 세 분만을 믿을 것입니다. 짐이 잘못을 범하거든 기탄없이 직간하여 주셔야 할 것입니다. 숙부{<춘>태자}의 처 <천을>과 <서구>의 처 <천룡> 모두는 천거된 이들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는데도, 그들 스스로가 감당하길 원한 것이지, 감히 {제가} 뽑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접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면, 진인들이야 방도를 구하여 떨어내겠지만, 애써보아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욕정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 하였다. 이에 <춘>태자가 아뢰길; “신과 <서구>는 폐하의 고굉지신입니다. 감히 이바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실 그리하여야 솔선수범하는 것이 되옵니다.”라 하였다. 상은 그 말이 가상하여, 이윽고 두 비{<춘>태자의 <천을>비와 <서구>의 <천룡>비}를 후로 삼았다.
태후가 아들 <담태>를 낳았다. <용덕>의 처 <호련>을 유모, <용덕>을 육성대부로 삼았다.
10월, <눌기>가 <보해>를 보내어 들어와 공물을 바치면서 말하길, <미해> 또한 <왜>에서 돌아왔으며, <신라> 또한 대풍이 들었다고 하였다.

◎ 六年己未, 正月, <胥狗>妻<天龍>生子<好太>. 以<淵兢>妻<芙雲>為乳母如例. 選后之日, 上, 以<天龍>年最高, 先當. 上曰;“侄以少艾, 敢勞大姑如是.” <天龍>[曰];“妾榮極矣. 願生好太, 故名之也.”  戊戌, 星孛<太微>.
四月, <訥祇>, 以水湧, 移<牛谷城>.  <倭>遣子来學, 命置<伊弗蘭寺>.  上, 如<元殿>, 謁太后而抱<談太>慰之. 太后曰;“妾聞仙・佛皆非正道. 儒以忠孝貞信為敎, 云. 果然耶.” 上曰;“儒者, 行也.” 太后曰;“妾, 自幼徒染仙敎, 歷事五朝以供為忠. 故, 天不厭之, 尙無疾病, 堪擧螽慶, 感泣不已. 若有正道, 願與同叅.” 上, 乃命「五部」各薦高儒, 至者八人皆峩冠博帶威儀齊齊. 上, 與太后, 酙酒勧之, 聞其昌言. 太后, 感喜, 曰; “如此好道, 今始聞矣. 願為師傳, 加以爵祿.” 皆不受而去. <黃山>人<王文>, 以高行, 聞招而不至.

○ 6년{단기2752년/AD419}기미, 정월, <서구>의 처 <천룡>이 아들 <호태>를 낳았기에, <연긍>의 처 <부운>을 전례와 같이 유모로 삼아주었다. 후를 선발하던 날, 상은 <천룡>이 나이가 가장 높아서 맨 먼저 맞이하였었다. 상이 이르길; “조카가 나이가 어린데도 감히 대고모를 이렇듯 수고하시게 하였습니다.”라 말하였더니, <천룡>이 아뢰길; “첩에겐 광영이 지극한 일이었습니다. 좋고 큰 일이 생겼으면 싶었기에 이름을 <호태>라고 지었습니다.”라 하였다.  무술일에 살별이 <태미좌>로 흘렀다.
4월, <눌기>는 물{용암?}이 {<토함산>이 무너진{터진} 이래 계속하여?} 솟아나오기에 <우곡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왜>가 아들을 학문하러 보내왔기에, <이불란사>에 머물게 하였다.  상이 <원전>으로 가서 태후를 찾아뵙고는 <담태>를 안아주고 위로하였더니, 태후가 아뢰길; “첩이 듣기엔, 선도와 불도 모두 정도가 아닌 듯합니다. 유도가 충{忠}・효{孝}・정{貞}・신{信}을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런 가요?”라 하였더니, 상은 “유도는 행하여 지키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태후가 아뢰길; “첩은, 어릴 적부터 선도에 젖어 있으면서도, 다섯 조정을 섬기길 충성으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늘도 그것이 싫지는 않았는지, 오래도록 질병도 없었으며, 자식 많이 낳는 경사도 감당하였었으니, 기뻐서 감읍함이 그치지 않았었습니다. 바로 된 도리가 있다면, 바라건대 함께 살폈으면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5부」에 명하여 유도가 높은 자를 천거하게 하였더니, 여덟 사람이 들어왔고, 그들 모두는 높은 모자를 쓰고 넓은 허리띠를 하고 있었으며 위엄 있는 모습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상이 태후와 함께 술을 따르고 마시라 권하였다. 그들의 훌륭한 말을 듣자, 태후가 즐거워하더니, “이런 훌륭한 도리가 있었음을 지금 처음 듣습니다. 원컨대 스승이 되어 도리를 전하여 준다면, 작위와 봉록을 얹어주겠소.”라 하였다. 그들 모두는 받지 않고 가버렸다. <황산>사람 <왕문>의 행실이 고매하다고 들었기에, 불렀더니, 오지 않았다.

◎ 九月, 上, 與<岡>太子妃<加連>, 設<黃山>道場七日而為<平昜[陽]>后祀祭. 招<仙>・<釋>高行. <文>又不至. 上, 乃與太后, 親訪之. <文>, 命其妻<侏>献酒, 以壽, 曰;“短者長之, 長者短之.” 上請出山, <文>指浮雲而笑. 太后問克己之道, <文>曰;“自然協洽, 可也. 不必克念也.” 上, 尤嘉之, 曰;“菊耶人耶, 人耶菊耶. 盖黃菊滿庭與人, 俱香.” 上, 不覺 㤉{간사할 아; 엎드린 모양 가}然, 而歸.
十一月, 丁亥朔, 日食. <春>太子妻<天乙>生子<鉀>太子. 以<龍莖>妻<華丸>為乳母如例. 以選嬪<談喜>・<談明>・<斗蓮>・<楚連>, 順次當夕于<元殿>, <椽花>・<免完>・<觧凰>・<白莖>等當夕于<善殿>.  <吐山>后生 子<元>, 以<蟹>妻<春鸞>為乳母如例.

○ 9월, 상이, <강>태자비 <가련>과 함께 <황산>에서 7일간 도장을 열었으며, <평양>후 제사를 올렸다. <선가>와 <석가>에 행실이 높은 이를 청하였으나, <왕문>은 또 오지 않았다. 이윽고 상이, 태후와 함께, 친히 그를 찾았다. <문>은, 자신의 처 <주>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축수하며 말하길; “흠이 있는 것은 오래 가고,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라 하였다. 상이 산에서 나와 주길 청하였으나, <문>은 허공에 뜬 구름을 가리키며 소리 없이 웃기만 하였다. 태후가 극기하는 도리를 물었더니, <문>은 “자연과 어우러져서 넉넉하면 될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남까지 떨쳐버릴 필요는 없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상은 유별나게도 즐거워하더니만, “국화인가 사람인가, 사람인가 국화인가. 뜰에 가득한 노란 국화 속에 사람이 함께 있으니, 모두에서 향내가 나는구나.”라 하였다. 상은 {즐거움에} 취하여 아{가?}연한 채로 돌아왔다.
11월, 초하루 정해 일에 일식이 있었다. <춘>태자의 처 <천을>이 아들 <갑>태자를 낳았다. <용경>의 처 <화환>을 전례에 따라 유모로 삼았다. 빈으로 뽑힌 <담희>・<담명>・<두련>・<초련>이 순차로 <원전>에서 저녁을 감당하고, <연화>・<면완>・<해황>・<백경> 등은 <선전>에서 저녁을 감당하였다.  <토산>후가 아들 <원>을 낳았다. <해>의 처 <춘란>을 전례에 따라 유모로 삼았다.

◎ 七年甲寅, 二月, 上親耤, 太后與<吐>后親蚕.  三月, 太后行求仙道場三日. 上, 謂太后, 曰;“<秦皇>・<漢武>皆不得焉. 節食服薬, 可也.” 太后, 笑, 曰;“妾, 春氣方壮爽然無病, 何用薬乎. 所求者, 在乎真氣也.” 上曰;“真氣, 亦在乎自身也.”  三月, <腆支>死, <久爾辛>立. 遣<淵息>吊之.  <華德>妻<好山>生女<藍>, 補妃也.  四月, 立「四學」于「五部」. 敎學者, 仙佛儒也. 軍學者, 騎射用兵也. 藝學者, 曆星数医也. 政學者, 史辯農工也. 又立技院. 使民皆得一技以傳家.

○ 7년{단기2753년/AD420}갑인, 2월, 상이 친히 땅을 갈고, 태후가 <토>후와 함께 친히 누에치기를 하였다.  3월, 태후가 사흘간 신선이 되는 방도를 구하는 도장을 열었더니, 상이 태후께 이르길; “<진><시황>과 <한><무제> 모두가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음식 먹기를 줄이고 약을 복용하면 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태후가 웃으며 말하길; “첩은 춘기가 왕성하고 마음도 상긋하며 병도 없는데, 무슨 소용으로 약을 먹겠습니까? 구하고자 하는 것은 진기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진기 또한 있을 곳이 자기의 몸 아니든가요?”라 하였다.  3월, <전지>가 죽고 <구이신>이 섰다. <연식>을 보내서 조문하였다.  <화덕>의 처 <호산>이 딸 <람>을 낳았다. 보비였다.  4월, 「5부」에 「4학」을 세웠다; 교학{敎學}에서는 선{仙}・불{佛}・유{儒}를 가르치고, 군학{軍學}에서는 기사{騎射}와 용병{用兵}을 가르치고, 예학{藝學}에서는 역{曆}・성{星}・수{数}・의{医}를 가르치고, 정학{政學}에서는 사{史}・변{辯}・농{農}・공{工}을 가르치게 하였다. 또한 기원{技院}을 세워서, 백성들 모두가 기술 한 가지씩을 배워서 가내에서 물려지도록 하였다.

◎ 上, 與五后・妃・嬪, 宴于百花丹園. 公卿妻女之能歌舞美娟者亦多會焉. 亦與太后, 親缶而挑興妃・嬪之姑, 未當夕者呈技較媎. 而至昏乃罷, 諸嬪待命. 上抱<馬連>而入寢, <馬>曰;“何棄娟而取妾耶.” 上曰;“姊猶母后故不禁愛矣.” 遂與之纒話到晨, 竟未合而天白. 上驚起, <馬>哀求, 曰;“未得受身, 則何以娠乎.” 上笑, 曰;“姊, 何急乎. 明日来無盡矣.” <馬>乃泣而出. 上之寡念等慾如是, 宮人徃徃有如例而自傷, 宮詞有曰; “<無量壽佛>淡於水, 嬌鸎妖鷰謾自啼.”

○ 상이 다섯 후와 비빈들과 함께 온갖 꽃이 붉게 핀 동산에서 연회를 열었다. 가무에 능하거나 예쁜 공경들의 처와 딸들 역시 많이 모였다. {상} 또한 태후와 함께 친히 장구 쳐서 {또는, 장군으로 술을 돌려} 비・빈인 여인들의 흥을 돋우었더니, 아직 밤을 함께 하지 못한 비・빈들은 재주를 뽐내고 교태를 겨루었다. 날이 저물어 파하자, 여러 빈들이 명을 기다렸는데, 상은 <마련>을 품에 안고 침소에 들었다. 이에, <마련>은 “어찌 예쁜이들을 마다하시고 첩을 취하셨는지요?”라 물었다. 상은 웃으면서 “누님이 모후를 닮은지라 아끼지 않을 수 없었소.”라 하고는, 몸을 끌어안고 얘기하다가 새벽이 되었고, 끝내 합환하기 전에 날이 밝았다. 상이 갑자기 일어나니, <마연>이 갈구하여 아뢰길; “아직 씨를 받지 못하였사온데, 어찌 아이를 가질 수 있겠사옵니까?”라 하였고, 이에 상이 “누님은 무얼 그리 급하게 생각하시오. 내일은 끝없이 많잖소!”라 하였더니, <마련>은 눈물 흘리며 나갔다. 상이 돌아보며 삼가고 욕정을 다스림이 이러하였더니, 궁인들은 왕왕 모두가 그래야 하듯이 스스로 상심하였으며, 궁 안에서는 “<무량수불>이 물보다도 더 덤덤하니, 아리따운 꾀꼬리와 요염한 제비들은 스스로를 업신여기어 눈물만 흘린다네.”라는 노래가 돌았다.

◎ 五月, <馮跋>献人蔘百斤・虎[皮]二十張・白綿布十五匹. 上命求棉種.  七月, <魏>使, 来献土物, 議伐<燕>分之. 上曰;“<燕>・<魏>皆出於<鮮卑>, 宜相和睦, 何相伐之. 若使<賀蘭>觧于<平城>, 則事可諧矣.” 使, 黙然良久, 曰;“老后己衰, 不可與陛下見.” 上, 笑, 曰;“汝, 何緊於弄乎.”  上, 聞<劉裕>簒<晋>, 謂<春>太子, 曰;“<牛金>, 以陰穢之人, 竊<晋>百余年, 賢於<馬懿遠>矣.” <春>太子, 曰;“<呂不韋>・<李園>・<董賢>・<王莽>等, 皆以淫穢, 奏功盖天不禍, 淫者生之理也. 人君宜戒之, 國朝亦有例焉.” 上, 頷之, 曰;“善.”  <羅>, 旱飢, 民多賣子.

○ 5월, <풍발>이 인삼 100근, 호[피] 20장, 면포 50필을 바쳐왔다. 상은 목화씨가 필요하다고 명하였다.
7월, <위>의 사자가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는 <연>을 토벌하여 그 땅을 나누어 갖자고 의론하였다. 이에 상은 “<연>과 <위> 모두는 <선비>에서 나왔으니, 마땅히 서로 화목해야 함인데, 어찌 서로를 토벌하려 하는가? <하란>이 <평성>에서 벗게 하여준다면, 그 일도 함께 해볼 만하겠소.”라 일렀다. 사신은, 입 다문 채 한참을 있더니만, “나이 드신 후께서는 몸이 쇠하시어 폐하를 만나 뵐 수 없으시옵니다.”라 아뢰었다. 이에 상은 웃으며 이르길 “그대는 농담 한 마디에 무얼 그리 긴장하시오?”라 하였다.  상이, <유유>가 <진>을 찬탈하였음을 듣고는, <춘>태자에게 이르길; “<우금>은, 음흉하고 더러운 인간이지만, 100여년 된 <진{晋}>을 훔친 것을 보면, <마의원>보다는 현명해보입니다.”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여불위>・<이원>・<동현>・<왕망> 등은 모두 음흉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공적을 상주하여 하늘을 가리고 화{禍}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간사한 자들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인군 된 자는 마땅히 그것을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정 중에서도 그러한 예가 있었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습니다.”라 하였다.  <신라>는 가뭄이 들어 굶주리더니만 많은 백성들이 자식을 팔았다.

◎ 八年辛酉, 正月, 上, 如<元殿>, 謁太后.  二月, 與<春>太子, 如<西河>, 練兵.  <加洛><吹希>遣使来告立.  四月, <魏><嗣>献<賀蘭>女<拓跋>氏. 使<鯨>太子, 率仙師<折雨>・<封蟻>, 而去荅<賀蘭>. <賀蘭>, 似有觧帶之意, 願與帝會于<海漠>. 上欲許, <春>太子諫之. 上曰;“<周><穆>, 以單騎, 會<王母>於<崑崙>. 以此観之, <海漠>, 門前也. 約以八月相逢.” 群臣危之, 上獨晏然.  五月, <胥狗>, 引軍三萬南下, 大閱于<川西>, 招<契丹>十二部落・<奚>五部落, 徵其牛馬軍丁. 封<胥狗>為<梁>王・鎮北大将軍, 以<華德>為扈衛将軍.

○ 8년{단기2754년/AD421}신유, 정월, 상이 <원전>으로 태후를 찾아뵈었다.  2월, <춘>태자가 <서하>로 가서 병사를 훈련하였다.  <가락>의 <취희>가 사자를 보내와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4월에 <위>의 <탁발사>가 <하란>의 딸 <탁발>씨를 바쳐왔다. <경{鯨}>태자를 시켜, 선사 <절우{折雨}>와 <봉의{封蟻}>를 데리고, 가서 <하란>을 답방하도록 하였다. <하란>은 해대할{허리띠를 풀 또는 冠帶관계를 풀} 의향이 있는 것 같았으며, <해막>에서 제와 만나기를 바랐다. 이에 상이 허락하고자 하였다. <춘>태자가 말렸더니, 상은 “<주><목>왕도 단기로 가서 <곤륜>에서 <왕모>를 만났소. 이것에 비하면, <해막>은 바로 문 앞인 것입니다. 8월에 만나자고 약속하시오.”라 하였다. 군신들은 위험하다 하였고, 상 혼자서만 느긋하였다.  5월, <서구>가 3만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천서>에서 크게 사열하고는, <거란> 12부락과 <해> 5부락에게 요구하여 그들의 우마와 군정을 징발하였다. <서구>를 <양왕{梁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진북대장군으로 봉하고, <화덕>을 호위장군으로 봉하였다.

◎ 八月, 上, 與<華德>, 自<盖馬>入<勾麗>會<賀蘭>於<月海>而還, 謂<春>太子, 曰;“<嗣>有心疾不久. 若與<賀蘭>表裡, 可以伐之.” <春>曰;“不然. <嗣>雖不爽, 其子<稍>可冼. <索頭>愛族耿耿不滅, 難可猝圖. 且使得之, 外受多敵, 難可守矣. 况<羅>・<濟>・<馮拔>面從內違, 不知變生何日. 不可生梗于外而與機于內也. 政經不云乎. 遠者交之, 近者攻之. 接者割之, 離者近之. 以守継征, 以化継守. 故<東明>征伐, <光明>守之. 陛下, 亦宜守先帝之域, 消化南方然後, 可以西進.” 上曰;“叔父之言, 善.”  起如<天乙>殿, 抱<春羊>而御餐, 曰;“吾欲以一妹賜汝夫. 誰可乎.” <乙>曰;“彼欲辟穀, 賜之何益.” 上, 怒, 曰;“汝為吾妻, 而尙妬舊夫乎.” 乃<斗蓮>為<春>太子妃, 卽命合巹.  九月, 如<元殿>, 賞菊聞筩絃, 賜<王文>・<朱羲>・<鄭蒙>等爵大夫・年穀・綵段. 皆儒士也.

○ 8월, 상이 <화덕>과 함께 <개마>에서 <구려>로 들어가 <하란>을 <월해>에서 만나고 돌아왔다. <춘>태자에게 이르길; “<사>가 마음에 병이 있어서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오. <하란>과 표리를 이룬다면 정벌할 수 있을 것 같았소.”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그렇지 않습니다. <사>는 비록 쾌차하지 못하여도, 그의 아들 <초>가 치욕을 씻으려 할 것입니다. <색두>는 족속 아끼기를 명확히 하는지라 멸망하지 않아왔으니, 섣불리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빼앗았다 하여도 밖으로부터 많은 적을 마주해야 할 것이니 지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신라>와 <백제> 그리고 <풍발>도 면전에서는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따르지 않으니, 어느 날에 변고가 생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밖으로 골칫거리를 만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안에서도 그런 틈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정경도 말하지 않습니까? 멀리 있는 자와는 교류하고 가까이 있는 자는 쳐야 하며, 붙어있는 이들은 떼어놓고 떨어져 자들과는 가까이 지내야 하며, 잘 지키고 나서 정벌하고 잘 타일러서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동명>께서 정벌하여 얻으신 것을 <광명>께서는 지켜내신 것입니다. 폐하 역시 응당 선제께서 이루신 땅을 지켜내시고, 남방을 소화하신 후에, 서쪽으로 가심이 옳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숙부의 말씀이 옳으십니다.”라 하고는 일어나 <천을>전으로 가서 <춘양>을 품에 안고 수랏상을 대하며, 이르길; “나는 여동생 하나를 그대의 지아비에게 주고 싶은데, 누가 좋겠소?”라 물었더니, <천을>이 아뢰길; “그이는 곡식도 멀리하는데, 무얼 더 주시려 하십니까?”라 답하였다. 이에 상은 화를 내며 이르길; “당신은 내 처가 되었는데도 옛 남편을 받들며 투기하는 것이오?”라 하고는 <두련>을 <춘>태자에게 비로 주었으며, 즉시 명하여 합근하게 하였다.  9월, <원전>으로 가서, 국화꽃을 감상하고 퉁소와 거문고 소리를 들었으며, <왕문>・<주희>・<정몽> 등에게 대부의 작위와 매년 먹을 곡식과 채단을 하사하였다. 이들 모두는 유사{儒士}들이었다.

◎ 十月, 上, 與<春>太子, 座<鸞宮>南堂, 論國事. 上曰;“守成之道, 當以冨國強兵為主. 計将安出.” <春>曰;“上好勤則冨, 上好勇則強, 未若儉而蓄, 義而忠.” 上, 喜形于色, 曰;“叔父之言, 善.” 因命<天乙>勧酒, 曰;“吾女皆幼, 故以妹妻卿. 想不如<乙>矣.” <春>曰;“<乙>后雖美少淫, <斗>妻敬執婦道而不淫.” <天乙>謂<春>太子, 曰;“吾為汝少時之妻, 故媎汝以淫. 今汝已老矣, <斗>只勉強事汝者, 畏聖上之命也. 豈有媎汝之意哉.” 上與<春>太子豪笑而罷.

○ 10월, 상이, <춘>태자와 함께, <란궁{서도}>의 남당에 앉아 국사를 의논하였다. 상이 이르길; “지키는 방도로는 응당 부국강병을 위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계책은 장차 어찌 내놓으시겠습니까?”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상께서는 근면하시니 부국을 이루실 것이며, 용감하시니 강국도 될 것이고, 아직 검소하지 않으셨다면 모으면 되실 것이고, 의로우시니 충성이 있을 것입니다.”라 답하였다. 상은 얼굴이 싱글벙글하여져서, 이르길; “숙부의 말씀이 맞습니다.”라 하였다. 이런 전차로 <천을>에게 명하여 술을 권하게 하고는, 이르길; “내 딸들이 모두 어려서 누이동생을 경에게 처로 드렸습니다. <천을>보다는 못할 것이란 생각입니다.”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을>후는 예쁘긴 하나 약간 밝히는 정도였으며, <두>는 부인의 도리는 잘 지키지만 전혀 밝히질 않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천을>이 <춘>태자에게 말하길; “내가 당신의 젊은 시절의 처였을 땐 당신에게 교태를 부렸었지요. 지금 당신은 이미 늙으셨는데도, <두>가 힘들여 확실히 당신을 섬기는 것은 상의 명이 무서워서 이지, 어찌 당신에게 교태를 부릴 마음이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이 소리에 상과 <춘>태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를 파하였다.

◎ <馬連>生女. 上, 徃洗之, 曰;“汝母好泣, 可名<泣>.” <馬>妃, 打上, 曰;“汝, 何弄我耶. 我, 以奇数越夫幾人, 而才生汝女, 亦憐乎. 此女, 不可不受福.”仍下淚. 上, 抱妃拭淚而慰之, 曰;“思念母后, 吾豈棄汝哉. 天下事汝, 皆為之.” <馬>妃, 乃喜, 使其女<宝昜>薦枕, 時年十五. <夏>太子女也. <馬連>, 十四為<夏>太子妃, 生子<夏陽>及<宝昜>. 而<夏>太子遊<海山>不返, 為<宝海>妻如<羅>. <宝金>強通之欲納後宮, 與<天星>相妬而皈<宝海>. 皈為<角彦>妻生子<胡彦>. 上旣定宮制, <馬連>自願受幸. 上, 亦以其酷似<平昜>, 寵愛殊常, 而未甞狎之. <馬>, 以為美不足, 以無寵常泣. 旣承寵又洽以泣, 故曰<泣>公主.  十二月, 上, 與太后, 大宴宗室外戚於<鸞宮>, 封<春>太子為<齊王>, <斗蓮>為<齊王>妃賜翟服. 以<王文>為主賓大夫.

○ <마련>이 딸을 낳았다. 상이 찾아가서 물로 닦아주며 “너의 어미는 울기를 잘 하였으니, 이름을 <읍>이라 하면 되겠다.”라 하였더니, <마>비가 상을 툭 치면서 말하길; “당신이 어찌 저를 가지고 농을 하십니까? 저는 운수가 기구하여 남편과 어긋나서 이런 저런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당신의 딸을 낳았으니, 가련하지 않습니까? 이 딸아이는 복을 받지 못하여서는 아니 되옵니다.”라 하고는 눈물 흘렸다. 상은 비를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안하여 이르길; “모후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어찌 그대를 버릴 수 있겠소. 천하가 그대를 섬길 것이며, 모두가 그리하게 할 것이오.”라 하였더니, <마>비는 비로소 즐거워하면서, 자기의 딸 <보양>을 시켜 잠자리를 펴게 하였다. 이때 나이 열다섯이었고, <하>태자의 딸이었다. <마련>은 나이 열넷에 <하>태자의 비가 되어서 아들 <하양>과 {딸} <보양>을 낳았는데, <하>태자가 <해산>을 유랑하며 돌아오지 않았기에 <보해>의 처가 되어 <신라>로 따라갔었다. <보금>이 억지로 상통하고 후궁으로 들이려 하매 <천성>과 서로 다투었고, 다시금 <보해>에게 돌아갔었다가, {<신라>에서} 돌아와서는 <각언>의 처가 되어 아들 <호언>을 낳았었다. 상이 궁내의 제도를 정하자, <마련>은 자원하여 승은을 입고자 하였으나, 상 역시 그녀가 너무나도 <평양>을 닮아서 총애하기는 보통과는 남달랐었으나 동침해주지는 않았더니, <마련>은 자신이 예쁘지 않아서 승은을 입지 못한다고 여기에 매일 눈물짓고 살았었고, 승은을 입고 나서도 또한 흡족함에 울었다. 그리하여 <읍>공주라 부르게 되었었다.  12월, 상이, 태후와 함께, <란궁>에서 종실들과 외척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었으며, <춘>태자를 <제왕{齊王; 齊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으로 봉하였고, <두련>을 <제왕>의 비로 삼아서 적복{깃털로 꾸민 옷}을 하사하였다.  <왕문>을 주빈대부로 삼았다.

◎ 九年壬戌, 正月, <燕王><朋連>入朝. 上, 賜酒慰之, 曰;“祖王勞矣.” <朋連>曰;“臣年七十二, 尙不遺矢勝於廉, 頗唯願盡瘁而死.” 上, 命<談喜>薦枕. <朋連>, 却之, 曰;“臣, 少好色而今則傷矣. 不敢奉命.” 上曰;“七十不能子, 非吾家風也.”又命<霞帽>侍之. <霞>, 謂<朋連>, 曰;“老賊隂匈兼此衰牝, 何以堪汝耶.” <朋連>, 笑, 曰;“天子有命, 汝何多言.” 遂與<喜>・<霞>留連七日, 二嬪皆得娠矣. 上, 大喜賜<喜>・<霞>彩段, 曰;“<燕王>尙壮與此, 吾無憂矣.” 乃命<喜>・<霞>從<朋連>皈<南蘇>.  <楚連>生子<椘>, <觧凰>生子<觧狗>. 上, 命<淵岳>為<椘>大夫, <觧庚>為<狗>大夫, 各以其妻乳之.

○ 9년{단기2755년/AD422}임술, 정월, <연왕{燕王; 燕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붕련>이 입조하였다. 상이 술을 내리고 위로하며 이르길; “할아버지 왕께서는 노고가 많으셨습니다.”라 하였더니, <붕련>이 아뢰길; “신은 나이가 일흔 둘이오나 지저분한 것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살기를 바라왔고, 자못 오로지 바라기는 심신이 지칠 만큼 열심히 일하다가 죽기를 원합니다.”라 하였다. 상이 <담희>에게 명하여 잠자리를 깔아드리라 하였더니, <붕련>은 물리치면서 아뢰길; “신은 색을 좀 즐겼더니, 지금은 좀 몸이 이지러졌습니다. 감히 명을 받들 수 없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나이 70에 아들을 만들 수 없음은 우리의 가풍이 아닙니다.”라 하면서 <하모>에게 시중들라 명하였더니, <하모>가 <붕련>에게 말하길; “늙는다는 적은 음흉하여 이 쇠한 여인도 해치고 있으니, 어찌 당신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이에 <붕련>은 빙긋이 웃으면서 “천자의 명이 떨어졌는데, 그대는 무슨 말이 많소?”라 하고는 <희> 및 <하>와 함께 연 7일을 묵더니만, 두 빈 모두는 아이가 생겼다. 이에 상은, 크게 기뻐하여 <희>와 <하>에게 채단을 하사하며, 이르길; “<연왕>께서 이리도 건장하시니 나는 걱정이 없음입니다.”라 하고는, <희>와 <하>에게 <붕련>을 따라서 <남소>로 가라 명하였다.  <초련>이 아들 <초>를 낳았고, <해황>이 아들 <해구>를 낳았다. 이에 상은 <연악>을 <초>대부로, <해경>을 <구>대부로 삼고, 각각의 처는 유모가 되게 하였다.

◎ <賀蘭>, 遣使, 献不死薬. 上, 笑, 曰;“吾妻多誠.” <天龍>后, 怒, 曰;“汝爱狗<蘭>如此, 吾等恥之.” 上, 亦怒, 曰;“吾爱汝最甚, 房亦多矣. 汝反拂我耶.” 太后, 謝, 曰;“吾兒, 年少, 恃寵而如此. 願, 陛下恕之.” 上, 乃抱<天竜>, 而謝之. 太后, 下帳而出, 曰;“<龍兒>去夜夢龍盤. 願, 陛下幸之.” 上, 遂與<竜>后, 終日不起. 翌日, 遂與太后・<天竜>, 如「溫湯」五日而還, 又如<鯉宅><鵞場>.
二月, 上, 與<天竜>后, 親耤而宴國中老農五十人, 巡視「四學」.  改築<平壤城>修宮室.  補后<天龍>生<梁太>.

○ <하란>이 사신을 보내 불사약을 바쳐왔기에, 상이 웃으며 말하길; “내 처의 정성이 가득함이다.”라 하였더니, <천룡>후가 화를 내며 말하길; “당신이 개 같은 <란>이를 그리도 좋아하시니, 우리들은 치욕스럽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 또한 노하여 이르길; “나는 그대를 가장 아껴왔고 또한 자주 방으로도 찾아갔었는데, 그대는 오히려 나를 거스르고 있음이오.”라 하였다. 태후가 사과하며 아뢰길; “내 <룡>이 이것이 나이가 젊어서 총애만 믿고 이러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용서하여 주세요.”라 하였다. 상이 마침내 <천룡>을 끌어안고 사과하였더니, 태후가 장막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오며 아뢰길; “<룡>이 이것이 지난밤 꿈속에서 똬리 튼 용을 보았다 합니다. 폐하께서는 이 아이의 거소를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라 하였다. 상은 이에 <천룡>후와 하루 종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기침하지 않았다. 다음날엔 태후 및 <천룡>과 온탕으로 가더니 닷새가 지나서 돌아왔고, 또 다시 <리택>의 <아장>엘 갔다.
2월, 상이, <천룡>후와 함께, 친히 땅을 일구고, 나라{도성} 안의 나이 든 농부 50인에게 연회를 베풀었으며, 4학{敎學, 軍學, 藝學, 政學}도 순시하였다.  <평양성>을 고쳐쌓고 궁실도 수리하였다.  보후 <천룡>이 <양태>를 낳았다.

◎ 四月, <魏>, 以<鲸>太子為天師開道場, 遣使来問其先. 盖<犍>・<珪>之時略有所修, 而因乱又失也. 初, <涉臣>, 以其女<臯頭>妻<乙豆智>, 旣而又娶<臯頭>女<乙蒸>生<涉得>. <涉得>生<射滿>, <射滿>生<應點>. <應點>, 生<樹健>, 尙<神明>女<荻>公主生<荻仁>. <荻仁>生<樹山>, <樹山>尙<太祖>女<裶>公主生<樹真>. <樹真>生<涉仁>, <涉仁>生<涉真>, <涉真>生<應勃>, <應勃>生<伊鹿肥>, <伊鹿肥>生<奴律>, <奴律>生<倚[남쪽오랑캐 이]>・<倚盧>. <伊鹿肥>, 又尙<中川>女<雲>公主生<悉祿官>, 與<奴律>妻生<弗>. <弗>生<鬱律>, <鬱律>生<犍>, <犍>生<寔>, <寔>生<珪>矣. <涉臣>, 皈化以来受朝延恩, 遇次於<濟>而等於<羅>, 世作舅甥如此. 故自<涉得>時已奉仙師, 至是大昌.  五月, <劉裕>死, 南人之来投者日加, 命皆賜宅安之. <嗣>以其子<燾>監國.

○ 4월, <위>가 <경>태자를 천사로 삼고 도장을 열었으며, 사신을 보내서 자기들의 선대에 대하여 물었다. <탁발십익건>과 <탁발규>시절 동안엔 대략 꾸려가진 바 있었으나, 난리로 인하여 또다시 잃은 것이었다. 애초에, <섭신>은 딸 <고두>를 <을두지>에게 처로 주었으며, 나중에 <고두>가 낳은 딸 <을증>을 취하여 <섭득>을 낳았다. <섭득>이 <사만>을 낳았고, <사만>이 <응점>을 낳았다. <응점>은 <수건>을 낳았으며, <신명제>의 딸 <적>공주를 취하여 <적인>도 낳았다. <적인>은 <수산>을 낳았고, <수산>은 <태조>의 딸 <비>공주를 취하여 <수진>을 낳았으며, <수진>은 <섭인>을 낳았다. <섭인>은 <섭진>을 낳았고, <섭진>은 <응발>을 낳았으며, <응발>은 <이록비>를 낳았다. <이록비>는 <노율>을 낳았고, <노율>은 <의이>와 <의로>를 낳았다. <이록비>는 또 <중천>의 딸 <운>공주를 취하여 <실록관>을 낳았고, <노율>의 처와의 사이에서는 <불>을 낳았다. <불>은 <울률>을 낳았고, <울률>은 <건>을 낳았으며, <건>은 <식>을 낳았고, <식>이 <규>를 낳았던 것이다. <섭신>이 귀화한 이래 조정의 은혜를 받아왔는데, 한 자리에서 만나면 서열로는 <백제>의 다음이었고 <신라>와는 동등하였다. 세세토록 장인과 사위의 사이로 있었던 것이 이와 같았다. 이러한 까닭에 <섭득>시절부터 이미 선사를 받들어오더니, 지금에 와서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5월, <유유{<宋>高祖, 都<建康>}>가 죽자, 남쪽 사람들이 찾아와서 항복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명을 내려서 모두에게 집을 주고 편안히 살 수 있게 하였다. <탁발사>는 아들 <탁발도>를 시켜 감국하게 하였다.

◎ 十年癸亥, 四月, <訥祇>養老于南堂, 與其妻<曉辰>行酒・賜穀帛, 以悅之.  七月, 招內外儒者, 講<孝經>及天文.  十一月, 遣<蟹>太子于<魏>, 叅其道場.

○ 10년{단기2756년/AD423}계해, 4월, <눌기>는 남당에 노인들을 모시어 그의 처 <효진>과 함께 술을 따라 권하고 곡식과 비단을 하사하고는 크게 즐거워하였다.  7월, 나라 안팎의 유학하는 이들을 초치하여 <효경>과 천문을 강설하게 하였다.  11월, <해>태자를 <위>로 보내서 도장을 참관케 하였다.

◎ 十一年甲子, 正月, 如「溫湯」. 時, 溫泉有九. <北都>有東・西溫泉, <中川><獣林>有<獣林>溫泉, <東都>有溫泉・冷泉, <汗南>亦二溫泉, <勾茶>亦有二溫泉.  <魏>, <燾>立.  二月, <訥祇>来朝, 設宴七日.  九月, 大豊, 宴父老于<西河>.  <魏>與<柔然>相戦.  是年, 鑄<貝葉錢>, 行之.

○ 11년{단기2757년/AD424}갑자, 정월, 온탕에 갔다. 이 시절, 온천은 아홉 곳이 있었다. <북도>엔 동쪽 온천과 서쪽 온천이, <중천>의 <수림>엔 <수림>온천이, <동도{初都}>엔 온천과 냉천이, <한남>에도 두 곳의 온천이, <구다>에도 두 곳의 온천이 있었다.  <위>에서는 <도>가 보위에 섰다.  2월, <눌기>가 래조하여 7일간 연회를 열었다.  9월, 대풍이 들어서 <서하>에서 부로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위>와 <유연>이 서로 싸웠다.  이해에 <패엽전>을 주조하여 유통되게 하였다.

◎ 十二年乙丑, 正月, <魏>使<乙苾>・<崔元>来朝献土物.  三月, 如<西河>大閱. 上, 謂<西河>守<穆彦>, 曰;“自汝守<西河>, 民安其業, 而願留者三[倍]. 何以治乎.” <彦>對, 曰;“臣, 素無學術, 聦明不及於人, 故未有才幹. 故只以誠心治之, 發奮忘食而己.” 上, 叩勝而歎, 曰;“誠哉. 昔, <東明>之聖猶問畜於<馬黎>, <黎>曰‘無誠無成, 誠而後成者.’此之謂也. 兵者曰兵者詐也. 朕以為兵亦誠而己. 豈可曰詐乎.” <春>太子曰;“聖哉言也.” 記之于笏.  命沿路連抱之木至於自朽而勿伐. <東明>之時, 木朽而革陳矣. 人口漸繁, 木不待抱, 故有是命也.  五月, <夏>主<勃勃>, 遣使来貢, 尋死.  補后<天竜>生女<笻>亦曰<叔太>.

○ 12년{단기2758년/AD425}을축, 정월, <위>가 <을필>과 <최원>을 시켜서 입조하고 토물을 헌상하였다.  3월, <서하>로 가서 크게 검열하였다. 상이 <서하>수 <목언>에게 “그대가 <서하>를 지켜온 이래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눌러 살기를 원하는 이가 세 배로 되었는데, 어찌 다스린 것이오.”라 물으니, <목언>은 “신은 본래 학문과 기술을 배운 것이 없어 남들 같이 총명하지도 못하옵니다. 따라서 재간도 없었고, 그리하여 단지 정성으로 다스리면서 분발하여 먹는 것을 잊었더니 그리 되었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상은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하여 이르길; “정성이라! 옛적의 <동명>성인조차 <마려>에게 짐승 기르기를 물으셨더니, <마려>가 대답하기를 ‘정성이 없으면 되는 것이 없고, 정성을 다하고 나면 이루어진다.’라고 하였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소. 병법가는 병법을 속임수라 하지만, 짐은 군병 움직이길 역시 정성으로 하였더니 이리 되었소. 어찌 속임수라고 말할 수 있겠소.”라 하였다. 이에 <춘>태자는 “성스러운 말씀이십니다.”라 하고는 홀에다가 그 말을 기록하였다.  길을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되는 나무를 저절로 죽어서 썩어질 때까지 뽑거나 자르지 말라고 명하였다. <동명>시절엔 나무가 죽어서 썩어야 진을 새로이 하였었다. 인구가 점차로 번성하면 나무들이 아름드리가 되어지길 기대할 수 없게 되겠기에, 이런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5월, <하>주 <혁연발발>이,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바쳤는데, 얼마 후에 죽었다.  보후 <천룡>이 딸 <공>을 낳았다. <숙태>라고도 하였다.

◎ 十四年丁卯, 二月, 移居于<平壤>新宮. 宮殿・府司之規模雄壮, 有國以来初有也. 上, 顧, 謂左右, 曰;“昔, 我<東明>, 居於茅茨, 而能成大業. 朕, 以不爽居此金殿, 将何以報答<東明>耶. 宜爾百僚, 各以其技誠心事君, 以光<東明>之國.” 群臣拜伏.  十二月, <久爾辛>殂. 長子<毗有>立, 美皃有口辯.

○ 14년{단기2760년/AD427}정묘, 2월, <평양>의 새 궁으로 이거하였다. 궁전과 관사의 규모의 웅장하기가 나라가 있어 온 이래로 처음 있는 것이었다. 상이 돌아 본 후에 좌우들에게 이르길; “옛날 우리 <동명>께서는 띠 풀 지붕에 사시면서도 대업을 잘도 이루셨소. 짐은 이렇게 금으로 지은 궁전에 머물기가 마음이 개운하지 않소. 장차 <동명>께 어떻게 보답한단 말이오. 그대 백료들은 각자가 가진 재주와 성심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어서 <동명>의 나라를 빛내주어야 할 것이오.”라 하였더니, 군신들이 엎드려 절하였다.  12월, <구이신>이 죽어서, 그의 장자 <비유>가 섰는데, 미모인데다 구변도 있었다.

◎ 十五年戊辰, 三月, 與太后, 如<獣林>仍幸「溫湯」, 宴<天原公>子女及<觧發>子女及<獣林>・<國壤>子女列王公主. 時, 太后, 與<獣林>, 婚日也.  <毗有>, 巡國賑民, 與<倭>使五十人, 宴飮而納<倭>女, 云.  <魏>虜<勃勃>子<昌>.  <吳>人<謝萬義>来朝, 使主賓大夫<王文>待之.  七月, 如<胥狗宮>, 宴<胥狗>子女. <胥狗>妃<天竜>, 年過一紀無復産子之望, 請退補后, 故慰之也. <天竜>, 以太后之胞妹, 持身貞重, 黃馬改宮之時, 選為補皇后生二太子, 而姅収退還, 以<角彦>妻<馬連>為補皇后.  以<蟹>太子為中畏大夫.

○ 15년{단기2761년/AD428}무진, 3월, 태후와 함께, <수림>으로 가서는 온탕으로 거둥하여, <천원공>의 자녀들 및 <해발>의 자녀들과 <수림> 및 <국양>의 자녀인 왕들과 공주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시일로는 태후와 <수림>이 혼인한 날이었다.  <비유>가, 나라를 순시하며 백성을 진휼하고, <왜>의 사신 50명과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고는 <왜>의 딸을 맞아들였다 한다.  <위>가 <발발>의 아들 <창>을 사로잡았다.  <오> 땅 사람 <사만의>가 찾아와 입조하였기에, 주빈대부 <왕문>을 시켜 접대하게 하였다.  7월, <서구궁>으로 가서 <서구>의 자녀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서구>의 비 <천룡>은 나이가 들더니 한 기{1년}가 지나도록 아들 낳을 가망이 없자 청하여 보후자리를 물러났기에, 그를 위로함이었다. <천룡>은, 태후와는 동복 자매간인데, 몸가짐을 정숙하고 무겁게 하였기에, 황마{무오/AD418}년 개궁{궁인을 바꾸던}시절에 보황후로 뽑히어서 태자 둘을 낳았으나, 경도가 쇠하여 물러나 돌아왔었고, <각언>의 처 <마련>이 보황후가 되었었다.  <해>태자를 중외대부로 삼았다.

◎ 十六年己巳, 正月, 上, 如<卒本>, 尊<東明聖皇>為<芻牟大帝>, <琉璃明皇>為<光明大帝>, <朱留神皇>為<大武神帝>, <國祖仙皇>為<神明仙帝>, <太祖上皇>為<太祖皇帝>.  三月, 上, 如<于慎>墓, 納<于勤>妻<陰>氏為宮人.  四月, <魏>用<崔浩>伐<柔然>.  <訥祇>築失堤, 岸長二千百七十步.  <宋>使, 入貢, 徃<濟>.  十月, <毗有>, 以<觧須>為上佐平. <餘信>死.

○ 16년{단기2762년/AD429}기사, 정월, 상이, <졸본>으로 가서, <동명성황>을 <추모대제>로, <유리명황>을 <광명대제>로, <주유신황>을 <대무신제>로, <국조선황>을 <신명선제>로, <태조상황>을 <태조황제>로 존호를 높였다.  3월, 상이 <우신>의 무덤에 갔다가, <우근>의 처 <음>씨를 맞아들여 궁인으로 삼았다.  4월, <위>가 <최호>를 써서 <유연>을 쳤다.  <눌기>는 유실된 제방을 쌓았는데, 호안의 길이가 2,710보였다.  <송>의 사신이 들어와서 공물을 바치고는 <백제>로 갔다.  10월, <비유>가 <해수>를 상좌평으로 삼았다. <여신>이 죽었다.

◎ 十七年庚午, 九月, <馮跋>死. 弟<弘>立, 遣使来朝.  十月, <燕王><朋連>薨, 年八十. 以<朋連>子<多連>襲封<燕王>, 使鎮<南蘇>. <多連>妻<春鸞>, <春>太子女也, 從母<天乙>出入宮中, 頗有上寵. <多連>, 有勇力能騎射, 從其父守<南蘇>十八年, 能知守略, 故任之.  <于勤>妻<陰>氏生上<陰>公[主].

○ 17년{단기2763년/AD430}경오, 9월, <풍발>이 죽었다. 동생인 <풍홍>이 보위에 오르고, 사신을 보내 입조하였다.  10월, <연왕><붕련>이 나이 80에 죽었다. <붕련>의 아들 <다련>을 <연>왕에 세습하여 봉하고 <남소>를 지키게 하였다. <다련>의 처 <춘란>은, <춘>태자의 딸인데, 그 어미인 <천을>을 따라 궁중을 출입하더니만 상의 총애를 자못 받았다. <다련>은, 용력이 있고 기사에도 능하였으며, 자신의 부친을 따라 <남소>를 18년이나 지켰고, 지키는 방략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보임된 것이었다.  <우근>의 처 <음>씨가 <음>공주를 낳아서 바쳤다.

◎ 十八年辛未, 二月, <談明>生女<明真>.  四月, 如山宮.  <倭>, 侵<羅>東, 圍<明活城>, 無功而去.  八月, 始行「月歌會」.  召博士<胡筧>等, 講<春秋>・<史記>, 以為常例.  十月, 行<故國原>大祭.

○ 18년{단기2764년/AD431}신미, 2월, <담명>이 딸 <명진>을 낳았다.  4월, 산궁에 갔다.  <왜>가, <신라>의 동쪽을 칩입하여 <명활성>을 포위하였었으나, 아무런 공도 없이 물러갔다.  8월, 바야흐로 「월가회」를 열었다.  박사 <호견> 등을 불러서 <춘추>와 <사기>를 강설하도록 하였더니 상례화 되었다.  10월, <고국원{옛 나라의 언덕, 또는 나라의 옛터에 있는 언덕}>대제를 거행하였다.

◎ 十九年壬申, 三月, <羅>, 人無穀食松皮, 賜粟二千斛.  四月, 以<王文>為主刑大加, <胡筧>為大評者, <陰時>為採供使. <時>, <于勤>之妻父. <勤>妻有寵而生女. <時>, 亦以儒者, 能詩語淸談. 上, 喜聞漢文之文詞, 雅行與此徒或圍碁談詩. 使<天龍>・<三山>二后享之, 以為方外之友.  種菊・牧丹・白蓮于御園及殿庭, 而賞之.

○ 19년{단기2765년/AD432}임신, 3월, <신라>에서는 사람{백성}들이 곡물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먹기에, 조{좁쌀} 2천 곡{斛;10斗;섬}을 하사했다.  4월, <왕문>을 주형대가로, <호견>을 대평자로, <음시>를 채공사로 삼았다. <음시>는 <우근> 처의 아비였다. <우근>의 처는 승은을 입고 딸을 낳았으며, <음시> 또한 맑고 깔끔한 시를 짓고 사념 없는 얘기에 능한 유자였다. 상은, 한문자로 쓰인 글귀와 가사를 즐겨 들었으며, 멋진 풍류를 하였고, 혹은 이 무리들과 함께 바둑을 두거나 시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천룡>과 <삼산> 두 후를 시켜서 이들을 대접하였으며, 세속 밖의 친구로 여겼다.  국화와 모란 및 흰 연꽃을 어원과 궁전 뜰에 심고 감상하였다./(계속)



강영구 (2008-01-11 18:57:28)  
잡다하게 많이 썼습니다. 번거롭다고 여기지 마시고 그저 참고로 하시면 고맙겠습니다.

·2년 7월 :上嘉之, 賜<春>太子妃<天乙>綵段五十匹․黃金百兩, =>해석에 황금 100근이라고 되어 있는데, 100냥이라고 바꿔야겠습니다.
·4년 8월 :以<談允>妻<春風>為乳母, 이에 <담윤>의 처로 유모를 삼아주고 =>해석에 <춘풍>이 빠졌습니다.
·5년 :昔, 聖採供以次算以三千龍蝶, =>龍자가 飛자가 아닌지 살펴봐주십시오.
·無乃太過乎 “아예 없었거나 훨씬 많았던 이는 없었나요?” =>無乃가 보통 추측을 나타내는 의문문에 쓰이므로 “혹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5년 4월 :叔妻<天乙>․<胥>妻<天龍>皆非薦中, 而自願當之, 非敢選也. 有欲接乎, 至人求其方弗也, 抑亦不能克己之慾歟. =>이 문장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方弗이 彷彿을 이렇게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抑은 ‘그렇지 않으면, 또는’이란 쓰임이 있는데, 여기가 그렇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숙부의 처 천을과 서구의 처 천룡이 모두 천거한 가운데 있지 않던데, 그 자신들은 천거되길 원했으나 감히 선발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것은) 지인이 방불(흐릿함, 분명하지 않음)을 추구하는 것을 본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극기할 수 없는 욕심이었습니까?” 여전히 해석이 분명하지 못하군요...
·6년 4월 :移<牛谷城> =>독음을 <우곡성>으로 해야겠습니다.
·“妾聞仙․佛皆非正道. 儒以忠․孝․貞․信為敎, 云. 果然耶” =>“첩이 듣기로는 선, 불이 모두 정도가 아니고 유가 충효정신을 가르침으로 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해석해봅니다.
·尙無疾病堪擧螽, 慶感泣不己.오래도록 질병도 없었으며 황충이 일어도 감당하는 복이 있었으나, 기뻐서 감읍함은 없었습니다. =>螽이 여기서는 황충을 뜻한다기 보다는 螽斯로서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문장 구조 상 慶을 螽에 붙여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경사’라고 하면 어떨까요? 또 不己를 不已로 해서 ‘그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7년 4월 :亦與太后親缶而挑興妃嬪之姑, =>缶가 ‘장고를 치다’는 뜻이 있으므로 한번 살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姑자는 뜻이 뚜렷하지 않군요. 남당선생이 오기한 것은 아닌지....
·宮人徃徃有如例而自傷, =>해석이 빠졌습니다. “궁인들이 간혹 그와 같은 경우를 당하여 스스로 해침이 있었다.”라고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無量壽佛>淡於水, 嬌鸎妖鷰謾自啼.”“<무량수불>이 물가에는 별 마음이 없었으니, 아리따운 꾀꼬리와 요염한 제비들은 게으름 피우다 스스로 눈물 흘려 훌쩍였다네.”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무량수불이 물보다 더 담담하니, 아리따운 꾀꼬리와 요염한 제비들은 하릴없이 스스로 눈물만 흘리네.”
·8년 5월 :<거란> 12부락과 <해> 5부락을 불러서 그들의 우마와 군정을 징발하였다. =>招가 ‘요구하다, 구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8월 :“<嗣>有心疾不久, =>不久 해석이 빠졌습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計将安出 묘안이 곧 나와야 할 것입니다. =>뜻은 차이가 없으나 문장이 의문문이므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차 어떤 계책을 내놓으시겠습니까?”
·10월 :此女不可不受福.”仍下淚.이 딸아이는 복을 받지 못하여 눈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하였다. =>원문에서처럼 “이 딸아이는 복을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하고 말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고 해석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寵愛殊常而未甞狎之.동침해주지는 않고 하찮게 여겼었더니, =>狎자가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동침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 같습니다. 그냥 동침하지는 않았다. 라고 해석하면 어떻겠습니까?
·盖<犍>․<珪>之時略有所修而因乱又失也. =>선조의 계보가 건, 규의 시절에는 대략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난리를 만나 실절했기 때문에 그것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2년 정월 :連抱之木 =>‘아름드리 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5년 3월 :주빈대가 <왕문> =>주빈대부 <왕문>
김성겸 (2008-01-11 23:45:03)  
강 영구 선생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한문 번역에 캄캄하던 눈이 좀 잘 보이게 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절구를 하거나 방점 등 무슨 표식이 없이 글자가 주욱 늘어선 한문을 번역한다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됩니다.
김영채 (2008-01-19 12:18:44)  
(1) 6년기사 해석 : <연긍>의 처를 전례와 같이 유모로 삼아주었다. -> <연긍>의 처 <부운>을 전례와 같이 유모로 삼아주었다.
(2) 7년기사 해석 : <화덕>의 처 <호선>이 딸 <람>을 낳았다. -> <화덕>의 처 <호산>이 딸 <람>을 낳았다.
김성겸 (2008-01-20 16:52:11)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