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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환단고기 상충된 기록 "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5.
한단고기 상고사 부분을 풀이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불의 발견"입니다. 문제점이 두가지로 요약되는데

* 불의 발견 연대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불의 발견"이 어느 곳에서는 한국(桓國)이라고 했다가 어느 곳에서는 단국(檀國)이라고 했기때문입니다.
* 건국 후 불을 발견했다고 하는 점이 문제입니다.
 역사상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불을 발견하여 무리를 짓고 살다가 국가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한단고기 기록은 반대로 국가를 건설하고 불을 발견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상충된 기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제가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1) 불의발견 연대가 맞지 않는 이유는 개천(開天)의 주체자가 다르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桓國)에서 불을 발견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삼성기전 상편》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羣居于天界掊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氏
어 느날에 어린남녀 800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와 한인桓因이 무리를 돌봄으로써 천계에 살았다. 돌을 쳐 불을 일으켜 처음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이 나라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일컬어 하느님天帝桓因이라 한다.

天帝桓因를 하느님이라 한 것은 天帝桓因가 첩사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天帝은 자체가 하느님이란 뜻을 한역漢譯한 것이고 이것을 우리말로 하느님이라 하는데 한인桓因으로 음사(音寫)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기서는 분명 "돌을 쳐 불을 일으켜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이는 한국(桓國)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국(檀國)때에 불을 발견하고 음식을 익혀먹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신시본기》
震域留記神市紀云...중략...高矢禮...중략...擊石取火從此民得火食
진역유기 신시기에서 말하기를 고시씨는 돌을 쳐 불을 일으키고 백성들은 그것을 따랏고 불을 얻어 음식을 익혀먹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은 1만 1천년 전의 역사이기 때문이죠.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그림이나 말로 전하여지다가 문자로 기록되었으니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후대의 위작입니다.

신 시본기와 삼성기가 다른 점은 한단고기가 참고한 사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을 그냥 합본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시본기에는 환웅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말이 없으나 진역유기를 참고하여 썼다는 규원사화에는 하느님 한인桓因의 아들 한웅桓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나라를건국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규원사화 조판기》
桓雄天王...중략...持天符三印, 率風伯雨師雲師等三千之徒, 下降太白之山檀木之下
환웅천왕은 ...중략...천부삼인을 가지고 풍백우사 운사 등 3000의 무리와 함께 태백산 단목하에 내려와 ...

즉, 삼성기 계통의 사서는 한인이 내려와 건국하여 불을 발견하였다고 하였고, 진역유기 계통의 사서는 한인의 아들 한웅이 내려와 건국하여 불을 발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가지 계통의 사서는 각각 그 역년도 다르다.

삼성기 계통의 사서에는 한국(桓國)이 3301년, 단국(檀國)이 1565년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역유기 계통의 사서, 정확하게는 규원사화에서는 11000년이라고 합니다.

규원사화 저작연대가 1675년이므로 이 연도를 기준으로 산정하여보면
삼성기 계통의 사서는 한국역년 + 단국역년 + (2333) + (1675) = 8874년입니다.
규 원사화에서는 한웅이 건국 이래로 11000년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위 8874년에서 한국역년을 빼야 규원사화에서 말하는 한웅이 건국한 이래로의 역년과 비교과 되므로 (단국역년) + (2333) + (1675) = 5573년밖에 안됩니다. 대략 8874년을 11000년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5573년을 11000년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규원사화에서 환웅이 건국한 단국은 결국 삼성기계통의 사서에서 말하는 한국(桓國)의 역년까지 포함했다는 말입니다. 쉽게 그림으로는 아래와 같다는 것입니다.  

삼성기계통:    한국 3301년 존속 --> 단국 1565년 존속  --> 고조선건국
진역유기계통: 단국 6992년 존속 -----------------------> 고조선건국


3) 어떤 기록이 맞는 것일까?

이렇게 심하게 차이나는 기록 중에 무엇이 과연 바른 것일까요?
아마도 삼성기 계통이 맞을겁니다.
왜냐하면 건국신화는 앞의 것을 차용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를 들면 추모성왕의 건국신화입니다. 추모왕은 아시다시피 하백녀가 햇빛을 받아 알을 낳고 죽이려 하기에 도망가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고 설화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시조와 비슷합니다. 논형에 보면 고리국왕의 시비가 달걀만한 기운이 내려와 아들을 낳았고 그가 고리국에서 도망하여 부여를 건국하였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환웅은 단국을 건국하고 그의 설화를 만들기를 그 이전 국가인 한국에서 차용해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의 업적을 빛나게 하기 위하여 불도 단국때에 발견되었다라고 설화를 만들었을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져보면 한국桓國에서 발견되었다는 불도 한인의 업적을 크게 하기 위하여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 이전에 이미 불이 발견되었던 것인데 시조의 업적으로 기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조를 크게 보이게 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환웅의 건국설화가 과장되이 전해져서 한인이 건국한 한국은 그저 천계天界에 있는 하느님으로만 잘못전해져서 한국桓國은 없고 한인桓因만 있는 단군설화가 생겨나게 되고 이것이 삼국유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전하여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