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펌:이대진]귀주대첩과 관련된 영토회복의 정당성 근거.(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6. 12.
(5)회 2번 타이틀에 언급된 요 태조의 공략지역인 용화주, 노룡군, 하동군, 운주 ,계북,산북 등지..에서 용화주를 살펴 보았으므로 이번회는 이어지는 하동군, 노룡군을 보겠읍니다.

요사 본기 서언에 나오는 대로 본 요 태조의 공략루트는...


- 901년, 본부이리근(本部夷離菫)에 임명되어 실위(室韋),우돌(于厥),해(奚) 등지를 정벌.
- 902년, 하동(河東)과 대의 북쪽(代北)을 정벌하고 그 아래 구군(九郡) 공격.
- 903년, 여직(女直)정벌, 9월 하동(河東)회원등군(懷遠等軍)공격,10월 계의 북쪽(薊北)공격.
- 904년, 흑차자실위(黑車子室韋)공격,
- 905년, 흑차자실위(黑車子室韋)공격, 노룡군(盧龍軍) 수개의 주를 공격.
- 906년, 노룡군, 산북(山北)의 해(奚) 공격, 습의 제부족(霫諸部)과 동북여직(東北女直)공격


1. 하동군..

요태조는 하동군과 대의 북쪽을 공격하였는데 그 지역은..
하동(河東)과 대북(代北)은 아마도 하의 동쪽과 대의 북쪽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하동의 하(河)는 다른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황하라고 부르는 강입니다.
(5)회의 인용된 지도를 다시 보시면 아시겠지만 황하를 황자는 빼고 하(河)라고만 표시되어
있읍니다. 언제부터 황하라고 이름을 고쳤는지 알수는 없지만 분명히 황하가 아니라 그냥
하(河)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러니까 황하의 동쪽은 하동. 북쪽은 하북...남쪽은 하남...이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러니까 산의 서쪽은 산서,북쪽은 산북, 남쪽은 산남...이렇게 부르고..
대의 북쪽은 대북 이렇게 부르는 것이 확실한 듯합니다.

쉽네요.^^
저처럼 둔한 사람도 알 정도니요...^^

어쨋든 요태조가 공격한 하동(河東)과 대(代)는 당시 당나라 땅이었으니...
하동과 대를 살펴보겠읍니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한 바가 없고 또 가르침을 받은 바도 없어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제가 보는 것이니 이를 감안하셔야 하고 또 약간의 자료를 찾다 보니
지명이라는 것이 수시로 바뀌고 영토의 신축이 간단없이 있었기 때문에 정밀하게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읍니다.^^

물론 그런 것까지 모두 색출하여 파괴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줄은 알지만
그것은 전문가들이 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고 저같은 아마츄어들은 진실만을
추구하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신당서 지리 하동도
*新校本新唐書/志/卷三十九 志第二十九 地理三/河東道 - 999 -
①..河東道,蓋古冀州之域,漢河東、太原、上黨、西河、鴈門、代郡及鉅鹿、常山、趙國、廣平國之地.河中、絳、晉、慈、隰、石、太原、汾、忻、潞、澤、 沁、遼為實沈分,代、雲、朔、蔚、武、新、嵐、憲為大梁分.為府二,州十九,縣百一十.其名山:雷首、介、霍、五臺.其大川:汾、沁、丹、潞.厥賦:布、 襺.厥貢:布、席、豹尾、熊鞹、鵰羽.
-> 하동도, 모두 옛날 기주 지역이다.한나라 하동, 태원, 상당, 서하. 안문. 대군 및 거록.
상산,조국,광평국의 땅.하중,강,진,자.,습,석,태원,분,흔,로,택,심,요를 침분에 채우고,대,운,삭,울,무,신, 람, 헌을 대량분으로 한다.2부를 두었고, 19주가 있으며,현은 111개다.
명산은:뢰수、개、곽、오대산이고, 대천은:분、심、단、로이다.
부는:포、견.공은:포、석、표미、웅곽、조우이다.

=> 당나라 하동도는 옛날 기주땅이라고 하면서 여러 지명과 관련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요태조가 하동과 함게 공격한 대군도 나와 있네요.
그러니까 하동과 대군은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은 대략 알겠네요..태원도 나오고요..
그런데 요사에는 하동과 대북을 공격하고 또 9군을 공격하였다고 나오는데...
어찌 그렇게 기록을 했을까요?
당나라 땅을 공격하면서요..당나라는 신당서 지리지에서 알수 있지만 행정구역이
도,부,주,현...이렇게 나오는데 말입니다..왜 9군(郡)이라고 적었는지 이상하네요..^^

어쨋든 하동이 옛날 기주땅이라고 하니까 옛날 기주땅을 알아볼 차례가 오네요..

진서 지리 기주
新校本晉書/志/卷十四 志第四/地理上/冀州 - 423 -
②冀州.案禹貢、周禮並為河內之地,舜置十二牧,則其一也.春秋元命包云:「昴畢散為冀州,分為趙國.」其地有險有易,帝王所都,亂則冀安,弱則冀強,荒 則冀豐.舜以冀州南北闊大,分以西為并州,燕以北為幽州,周人因焉.及漢武置十三州,以其地依舊名為冀州,歷後漢至晉不改.州統郡國十三,縣八十三, [二四]戶三十二萬六千.

-> 기주는 우공(서경의 하서(夏書)편명)과 주례를 상고해 보면 모두 하내의 땅으로 하고
있는데 순이 12목을 두었고 그 하나이다. 춘추원명포에 운하기를 “묘필이 흩어져 기주가
되었고 나뉘어 조국이 되었다.” 그 땅에는 험이 있고 있어서 제왕이 도읍이 어지러우면
기안, 약하면 기강. 황하면 기풍. 순이 기주의 남북이 넓고 크다하여 나눠 서쪽은 병주로
하였으며, 연이북은 유주로 하였다. 주나라 사람들은 이것으로 말하였다. 이에 한 무제가
13주를 설치했고, 그 땅을 옛이름으로 기주라 하였으며, 후한을 지나 진나라에 이르기
까지 고치지 않았다. 13군을 통하며 현은 83을 통한다. 호수는 3십2만 6천이다.

===> (3)회 ⑦번 글을 보시면 관련 내용이 있는데...
일부만 다시 옮기면...
“제요(이른바 요임금)가 천하를 9주로 나누었는데 순(이른바 순임금)이 기주와 청주의 땅이
커서 유주,병주,영주로 나눠어 12주가 되었다.유주는 발과 갈의 사이에 있으며, 병주의 북쪽에는 대,삭이 있고, 영주는 동쪽으로 요해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번 글 ②번에 기주는 우공과 주례에서 하내의 땅으로 하고 있다고 하고 있지요?
그래서

한서 지리지
*新校本漢書/志/卷二十八上 地理志第八上 - 1541 -
③河內曰冀州:其山曰霍,[一]藪曰揚紆,[二]川曰漳,曰汾﹑潞;[三]其利松﹑柏;民五男三女;畜宜牛﹑羊,穀宜黍﹑稷.
-> 하내를 기주라 말한다:산이 있는데 곽산이라고 부르고,[一]늪이 있는데 양우라 부르고,[二]내가 있는데 장,분,로 라고 부르고;[三]그 이로움은 송,백이고;민은 오남삼녀,우﹑양을 기르고,곡식은 서﹑직이 자란다.

④..新校本漢書/志/卷二十八上 地理志第八上 <註釋群> ... - 1541 -
[一] 師古曰:「在平陽永安縣東北.」
[二] 師古曰:「爾雅曰『秦有揚紆』,而此以為冀州,未詳其義及所在.」- 1542 -
[三] 師古曰:「漳水出上黨長子.汾水出汾陽北山.潞出歸德.」
->[1] 사고 왈:「평양 영안현 동북에 있다.」
[2] 사고 왈 :「이아가 말하길 『진나라에 양우가 있다』했는데 이것으로 기주라고 하였다.그 뜻과 있는 장소를 상세하지 않다」- 1542 -
[3] 사고 왈:「장수는 상당장자에서 나온다 .분수는 분양북산에서 나온다.노는 귀덕에서 나온다.」

===> ④번 글에 기주가 하내인데 그곳에 있는 산이 곽산이라고 되어 있지요?

곽산은 현재 산서성 남부의 곽현에 있는데 ①벌 글에도 오대산을 비롯한 몇개의 산과
같이 언급되는데 ④번의 [1]에 보면 안사고가 주석을 달기를...
곽산은 평양 영안현 동북에 있다. 라고 말한 것을 미뤄 보아, 평양은 그보다 서남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고요..그 평양은 이른바 요임금이 수도로 삼은 곳이죠..

그리고 그 북쪽의 태원은 이른바 순임금이 도읍으로 정한 곳이라 하고요.

사기 본기 제요
*新校本史記三家注/新校本史記/本紀/卷一 五帝本紀第一/帝堯 - 15 -
⑤帝堯者,[一]放勳.[二]
제요는 방훈이다

*新校本史記三家注/新校本史記/本紀/卷一 五帝本紀第一/帝堯 <註釋群> - 15 -
⑥..[一]集解謚法曰:「翼善傳聖曰堯.」 索隱堯,謚也.放勳,名.帝嚳之子,姓伊祁氏.案:皇甫謐云「堯初生時,其母在三阿之南,寄於伊長孺之家, 故從母所居為姓也」.正義徐廣云:「號陶唐.」帝王紀云(제왕기운):「堯都平陽(요도평양),於詩為唐國.」徐才宗國都城記云:「唐國,帝堯之裔子所 封.其北,帝夏禹都,漢曰太原郡,在古冀州太行恆山之西.其南有晉水.」括地志云:「今晉州所理平陽故城是也.平陽河水一名晉水也.(평양하수일명진수 야)」
-> 필요부분만 보면요..^^
(전략)...제왕기에 운하길 :「요는 평양에 도읍했는데 시에 당국이라 했다.」
서재종국도성기에 운하길:「당국은 제요의 후손이 봉받은 곳이다.그 북쪽은 제하우의 도읍인데,한나라는 태원군이라 불렀으며,옛날 기주 태행 항산의 서쪽에 있다.그 남쪽에 진수가 있다.」괄지지에 운하길:「지금 진주의 리에 있는 평양고성이 그것이다.
평양하수는 일명 진수다.」

이러니까 확실하지요?
하내는 기주이고 기주에 곽산이 있고 곽산은 산서성 남쪽이고 그곳은 요임금이 도읍한
평양의 동북쪽이고 그 북쪽에 태원이 있고...이러니까...
기주는 당나라 하동의 옛땅이고...그 하동땅을 요나라 태조가 공략을 했으니
요나라 ..거란은 산서성 북쪽지역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많이 말했는데 영주의 북쪽이라 하였지만 기주를 나눠 병주와 유주로 만들고
또 영주를 만들었으며, 병주에 북쪽에 대(代)가 있으니 요태조가 공격한 하동과 대는
산서성 북쪽지방이었던 것입니다.

산서성 북쪽 만리장성 이북에서 장성을 넘어 산서성으로 진격해 온 것이죠.


2. 대(代)

요태조가 902년에 하동과 같이 공격한 대를 보겠읍니다.

요 위에 인용한 (3)회 ⑦번글을 다시 보세요..
몇번 이야기 되었지만 “병주의 북쪽에는 대,삭이 있고..” 이런 내용이 있읍니다.

그래서 병주를 보면 대의 위치도 알게 되겠죠..

진서 지리지 병주
*新校本晉書/志/卷十四 志第四/地理上/并州 - 428 -
⑦...并州.案禹貢蓋冀州之域,舜置十二牧,則其一也.周禮:正北曰并州,其鎮曰恒山.春秋元命包云:「營室流為并州,分為國.」州不以水為號,又 不以恒山為稱,而云并者,蓋以其在兩谷之間也.漢武帝置十三州,并州依舊名不改,統上黨、太原、雲中、上郡、雁門、代郡、定襄、五原、西河、朔方十郡,又 別置朔方刺史.後漢建武十一年,省朔方入并州.靈帝末,羌胡大擾,定襄、雲中、五原、朔方、上郡等五郡並流徙分散.建安十八年,省入冀州.二十年,始集塞 下荒地立新興郡,後又分上黨立樂平郡.魏黃初元年,復置并州,自陘嶺以北並棄之,至晉因而不改.并州統郡國六,縣四十五,戶五萬九千三百.

이번 글 ②번과 비교해 가면서 보십시오.
-> 병주. 우공에 따르면 모두 기주 지역이다. 순임금이 12목을 두었는데 그중에 하나다.
주례: 정북쪽을 병주라 부르고, 항산이 진산이다,춘추원명포에 운하길:「영실흘러 병주가 된다,나뉘어 (?)국이 된다」주가(?)수가 되지 않아 이름붙여 졋다,또 항산이 되지않아 이름하게 되었으니,병이라 말하는 것은,모두 양곡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한무제가 13주를 설치했는데 ,병주는 옛이름 그래도 고치지 않았다,상당、태원、운중、상군、안문、대군、정양、오원、서하、삭방 등 10군을 통할하고,또 별도로 삭방자사를 두었다.후한 건무11년에 삭방을 덜어 병주에 편입시켰다.


===> 이번 글 ②번에서 기주의 서쪽을 덜어 병주를 두었다 하더니 주례에서는 정북쪽을
병주라고 하고 있지요?왜 이런지는 잘 모르겠읍니다.^^
어쨋든 순임금이 12주를 설치했는데 한무제때 삭방군을 두어 13주가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고요 상당.태원,운중...“대군(代郡)”이 확실히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읍니다.

사실 지명이라는 것이 계속 변동을 하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역사공부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②번글이나 ⑦번 글에 춘추원명포에서 인용하는 묘필이나 영실과
같은 것은 별자리인 것 같읍니다.
그러니까 그냥 흘려 보시고요..더 관심있으신 분은 따로 보면 되겠지요.^^


또 대군과 관련하여 지명이 변하는 것을 본다면 ...

후한서 군국지 대군
新校本後漢書/志/志第二十三 郡國五/幽州/代郡 - 3527 -
⑧代郡 秦置.雒陽東北二千五百里.[一]十一城,戶二萬一百二十三,口十二萬六千一百八十八
-> 대군은 진나라가 설치했다.낙양 동북쪽으로 2천 5백리다 .

후한서 군국지 대군 주석군
新校本後漢書/志/志第二十三 郡國五/幽州/代郡 <註釋群> - 3527 -
⑨[一] 古今注曰:「建武二十七年七月屬幽州.」
-> [1] 고금주 왈:「건무 이십칠년 칠월 유주에 속하게 했다 .」

=> ⑦번 글에서 주례에서 순임금이 설치하였다고 주장한 병주를 한무제까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하더나 건무(후한 광무제 연호) 27년에 유주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군요..

지명은 계속 변하고 영토의 크기도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에 따라서 지명도 변하고
12주의 경계도 계속 변한다는 것을 알수 있읍니다.
한 시대에 말해진 대군(代郡)이 다른 시대가 되면 다른 지역의 이름으로 변하였다는
것도 알수 있고요..
어쨋든 이런 지명의 변천을 모두 조사하여 둔 것이 있다면 더 명확하게 될 것이고
없다면 또 역사공부하는 사람들이 위원회라도 만들어 조사에 착수를 하든가 하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깝게 갈 듯합니다.^^


3. 그때 그때 달라요..

이번에 처음으로 관련된 것을 조금 보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너무
다른 증거를 많이 발견하였는데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실 것이고,
교과서 역사와 다른 역사도 모두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은 되는데...

그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증언하여 역사회복을 하지 않고 있는지 매우
의문입니다.^^

설마 소생처럼 무식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시는지..
아니면 증거가 너무 많아서 역시 정리가 안되어서 그러시는지...하여간
진실은 나눌수록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자주정신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은 해 보게 됩니다.^^

헌대 역사를 공부하신 식견이 풍부하신 분들이 아직까지 정리를 하지 못한
원인을 하나 발견을 하였는데...

지명들이 그때 그때 달랐기에 그러하였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를 테면 태원이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지명이 지역을 옮겨 다니며,
같은 이름의 대군이라도 지역을 옮겨 다니며 대군이 되었을 것이며..
하동(河東)이라도 하(河)가 어느 하(河)인가에 따라 하동(東)쪽의 지역과
지명들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정리가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아직까지 진실을 용기 있게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사항 역시 기록으로 증명되기에..그리 비난할 수 만도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모르면야 모르되 알면서 그러하니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진실을 밝히기를
촉구해 보는 것이죠..^^,,헌대 그 많은 세월동안에 그거 하나 정리를 못하였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한서 지리지
新校本漢書/志/卷二十八上 地理志第八上 - 1543 -
⑩..漢興,因秦制度,崇恩德,行簡易,以撫海內.至武帝攘卻胡﹑越,開地斥境,南置交阯,北置朔方之州,[一]兼徐﹑梁﹑幽﹑并夏﹑周之制,改雍曰涼, 改梁曰益,凡十三(郡)[部],置刺史.先王之既遠,地名又數改易,[二]是以采獲舊聞,考詩書,推表山川,以綴禹貢﹑周官﹑春秋,下及戰國﹑秦﹑漢 焉.[三]

新校本漢書/志/卷二十八上 地理志第八上 - 1543 -
⑪[一] 師古曰:「胡廣記云,漢既定南越之地,置交阯刺史,別於諸州,令持節治蒼梧,分雍州置朔方刺史.」
[二] 師古曰:「數音所角反.」
[三] 師古曰:「中古以來,說地理者多矣,或解釋經典,或撰述方志,競為新異,妄有穿鑿,安處互會,頗失其真.後之學者,因而祖述,曾不考其謬論,莫能尋其根本.今並不錄,蓋無尤焉.」

순이 우의 치수이후에 9주를 12주로 나눈 것은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나왔고요.
위 내용을 간략하면 말하면..
-> 한나라가 흥성해지면서 한 무제가 영토를 넓혀서 13군을 두고 지명의 이름을
여러차례 고쳤다.
[3] 사고 왈 :「중고이래로,지리를 말한 자들이 많았다.,어떤 이는 경전의 해석을 하고,어떤 이는 방지를 찬술하였는데 ,새롭고 특이함을 다투어, 망령되이 천착하기도 하고,서로가 추정하는 곳에 안주하기도 하여,자못 그 진실을 잃어버렷다.
후학들이 그와 같은 것을 따라 그대로 서술하였으니 일찌기 그 오류를 헤아릴수 없었고 그 근본을 찾을수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아울러 기록하지 못하니, 모두 잘못이 없다. 」

===> 저 유명하다는 학자도 잘못 기록한 것도 잘못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는데..
하물며....^^

따라서 지명에 대한 기록들을 모두 신뢰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왜냐하면 지명의 오류를 오류로 기록하였다고 자복을 하고 그렇게 오류로 기록한
것이 잘못이 없다고 까지 하였으니..
(아마 ②번과 ⑦번에서 병주를 기주의 서쪽과 북쪽에 있다고 다르게 기록한
것도 이러한 오류에 의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봅니다.)

지명은 대부분 잘못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상당한 추리력과 판단력을 동원하여 진실에 다가가지 않으면
진실을 거부하는 잘못을 하게 된다는 점도 알게 됩니다.^^


------
*진도가 좀 느리지만 너무 많은 증거들로 인해 증거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한 것도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다음회에 요태조 공격루트인 노룡군을 살펴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