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패수(浿水)는 동쪽으로 흘렀는가 서쪽으로 흘렀는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30.

패수(浿水)는 고대에 평양성 비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이지만 그 흐르는 방향이 사서에 따라 동으로 흘렀다가 서쪽으로 흘렀다가 하여 아주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분명 어느 한쪽은 위작이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패수는 고대 우리말로 냇가를 나타내는 "펴라"를 이두식으로 표현한 것임과 우리나라 주거습성을 고려하면 그 방향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패수(浿水)의 말의 뜻을 알아봅시다.
옛 적부터 우리나라는 강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를 건설하였고, 특히 강을 남쪽으로 두고 산을 북쪽으로 두고 마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도시를 건설한 강의 이름을 "펴라"라 하였고 이를 한자를 사용하여 표현하여 패수(浿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발전하여 도성을 건설하게 되면 그 도시의 이름을 平壤이라고 적고 역시 발음도 "펴라"라고 하였습니다.(자세한 것은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등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즉, 浿水란 도회지가 건설된 중심이 되는 강을 이름하는 것이고, 平壤이란 강을 중심으로 건설된 도회지를 이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패수(浿水)와 평양(平壤)은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에 있어야만 하여, 이때 패수(浿水)는 평양(平壤) 중심에서 남쪽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패수에 대한 기록을 봅시다.

- 설문해자 권11상: 동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出樂浪鏤方東入海: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을 나와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한서 권28하: 서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水西至增地入海】: 패수현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같은 패수의 기록을 가지고 하나는 동쪽으로 흐른다고 하고 하나는 서쪽으로 흐른다고 하고 있으니, 강단은 한서가 맞다고 하면서 야단법석을 떱니다. 강단은 자신들의 역사를 축소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서가 패수가 흐르는 방향에 대한  대한 주석이 위작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평양과 패수의 위치가 어떤지를 봅시다.

- 삼국지 권30 오환선비동이전 가운데 인용된 위략을 보면
燕乃遣将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潘汗為界....及漢以盧綰為燕王朝鮮與燕界於溴水..
연 (燕)나라가 장수 진개를 보내 조선을 공격하여 서방 2천여리를 취하고 만번한(滿潘汗)을 경계로 하였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노관을 속국 연나라의 왕으로 삼고 조선과 연나라의 경계를 패수(溴水: 선학들이 패수의 오자라고 했음)로 삼았다.

즉, 이는 처음에 만번한을 경계로 하였고, 나중에 한나라에 이르러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 사기 조선열전
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為置吏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逺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
연나라는 전성기때에 진번 조선을 공격하여 자기땅으로 삼아 장새를 쌓고 관리를 두었다. 진이 연을 멸하여 요동 밖 徼로 삼았다. 한이 일어나자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요동의 옛 성을 수리하여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

이는 위략에 나온 기록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 진나라는 연나라가 뺏은 만번한을 요동 밖 徼로 삼고, 한나라는 이곳이 너무 멀어서 영토를 뒤로 물려 패수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만번한 즉 위만조선의 수도인 번한성보다 패수가 서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기 조선열전을 좀더 봅시다.
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都王險
위만이 그 무리 천여명과 망명을 하였는데 상투를 틀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고진공지(秦故空地) 상하장에 거하였다....왕험성에 도읍하였다.

즉, 위략의 기록과 비교하여 패수 동쪽에 있는 진나라가 요동 밖 徼로 삼은 곳인 고진공지(秦故空地)가 만번한이며 이곳에 도읍하여 왕험성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만번한(위만의 번한성), 왕험성, 고진공지 모두 같은 곳으로 패수 동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 한서 권28하의 요동군 험독현의 주석을 보면...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
응소가 말하기를 험독현은 조선왕 만의 도읍이다. 강에 의지하기가 험하여 험독이라 했다.
신찬이 말하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므로, 요동군 험독은 왕험성과 관계없다(의역했습니다)고 하였다.
사고가 말하기를 신찬의 말이 맞다.

여기에 분명히 말하기를 패수의 동쪽에 왕험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패수를 평양성의 남쪽에 흐르도록 하고, 패수를 평양성의 동쪽에 놓아보도록 그려보면 패수의 흐름방향이 저절로 나옵니다.

첨부한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패수 1)은 강이 평양의 남쪽에 있어 우리나라 관습에도 맞고, 평양도 패수의 동쪽에 있어서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패수 2)는 패수가 평양의 동쪽에 있어 기록과 일치하지만 패수가 평양의 북쪽에 있으므로 이는 우리나라 습관과 맞지 않으므로 강은 절대로 서쪽으로 흐를 수 없는 것입니다.
패수 3)은 한서의 기록대로 강을 서쪽으로 흐르도록 위치시켰고, 우리나라 습관에 맞도록 평양의 남쪽에 패수를 위치시켰지만 패수가 평양의 서쪽에 있다는 기록과 어긋납니다.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은 한서지리지에 기록된바, 패수는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후대의 위작이 분명합니다.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패수는 현재 난하 서쪽에 위치하여야 하며, 고조선 평양은 적어도 난하에 걸쳐있는 도시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에 맞게 잡는다면 패수는 영정하 등지의 강이어야 하며 낙랑도 이 부근에 위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