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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조선은 정말 주신인가? (하필 숙신어로 나라이름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24.
모두들 알다시피 조선은 주신은 전음(轉音)에 해당되며 만주어로 소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숙신 식신 직신 등과도 통하는 말이라고 만주원류고에서 말하고.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속이란 뜻을 같는 단어로 "주신"과 비슷한 말은 우리말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가지 의문점은 단군의 나라이름이 왜 배달민족 정통언어로 만들지 않고, 만주어로 나라이름을 지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얼핏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군의 나라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가 하는 잘못된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단군의 나라이름이 왜 만주어의 전음으로 되었는지 풀어보겠습니다. 

임검씨가 나라를 여는 과정은 단군세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4세 되던 갑진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 함을 듣고 그를 비왕(椑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임 검씨는 처음부터 배달나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배달나라 속국인 웅씨의 나라를 다스려 배달나라의 비왕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왕으로 있은지 24년만에 비로소 배달나라를 이어 받고 조선을 개국하죠. 이러한 내용은 삼한관경본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태 백산은 북쪽을 달리는 산으로 높게 비서갑(菲西岬)의 땅에 우뚝 서 있다....중략.... 산 이름은 불함이라 하더니 지금은 또 완달(完達)이라 하니 그 음이 비슷한 바 있다. 뒤에 웅녀의 군(君)이 천제의 신임을 받아 세습하여 비서갑의 왕검이 되었다....중략....  웅녀군의 후손으로서 여(黎)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책봉 받아서 왕검이 되매...중략.....뒤에 460년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비왕(椑王)이 되었다. 섭정하신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전쟁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한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여기서도 볼수있듯이 임검씨가 배달나라를 이어받기 전에 배달의 비왕으로 있으면서 웅씨국을 다스렸음을 알 수 있고, 그 후에 구한(배달민족)을 통일하여 조선을 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웅씨국은 태백산 북쪽을 달리는 비서갑 근처로 오늘날 완달산 부근에 있으며, 배달국의 북쪽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웅씨국은 환국에서도 보입니다. 환국본기에 보면요....
「개마국(蓋馬國)은 일명 웅심국(熊心國)이라 하니 북개마(北蓋馬) 대령(大嶺)의 북쪽에 있으며」
여 기서도 역시 웅심국(웅씨국)은 북쪽에 있다고 나옵니다. 저는 이 북개마대령이 대흥안령산맥이나 소흥안령산맥으로 생각되고, 이곳은 바로 신지(神誌)가 다스린 완달산 지역의 숙신의 지역과도 비슷한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웅심국의 사투리와 숙신국의 사투리가 서로 비슷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유목민족이고 기마민족으로 농경민족인 토종 배달민족과는 그 말이 조금 달랐을 것입니다(웅심국이 토착민이 아니다라는 것은 아래에 보입니다). 

따라서, 임검씨가 배달나라 전체를 다스리기 전에는 웅심국의 비왕이었으므로, 웅심국의 세력을 기반으로하여 배달나라를 장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나라이름을 지을때 웅심국의 방언으로 "소속"이란 뜻의 "조선"이라고 이름한 것 같은데, "조선"을 숙신의 방언으로 하면 "주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임검씨가 웅심국의 비왕으로 있다가 배달국 전체를 장악하여 남하하는 과정이 규원사화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속말수(粟末水)의 북쪽에 발해 중경(中京) 현덕부(顯德府)의 땅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단군이 처음으로 도읍을 정한 임금성으로」
즉, 처음 도읍한 곳은 속말수 북쪽... 바로 북개마대령 남쪽, 대흥안령 남쪽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웅심국이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10년 후에 임검씨는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 평양성이라고 합니다. 
「우수하(牛首河)의 물가에 거처한 지 10년만에 백산(白山)의 남쪽 패수(浿水)의 북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평양이라 하니 곧 두번째의 임금성이다.」
즉, 임검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길때가 바로 배달국 전체를 차지한 때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곁가지로 한가지 더한다면요....
이러한 웅심국의 세력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건설은 문자사용에도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됩니다.  
배달민족은 원래 만주 시베리야 그리고 산동반도 부근의 토착민으로 그 원래 문자 사용은 상형문자이고 배달민족이 개발한 상형문자는 지나인들이 더 발전시켜 오늘날의 한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군조선이 건국되면서 웅심국의 세력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토착민이 사용하던 상형문자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웅심국은 토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족이기때문이죠. 유목민족인 거란, 몽골, 돌궐등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한글과 (아주 약간) 비슷한 표음문자를 사용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웅심국이 정말로 유목민족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성기에 보면요...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 무리였다.」
즉, 웅심국은 원래 환국에 살던 민족이 아니라 새로 들어와 살던 민족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곰무리, 즉 웅심국이 원래는 유목민이었으나 환국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돌궐문자같은 문자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표음문자는 환국 배달국에서는 그들의 세력이 크지 않기때문에 사용되지 못하다가, 단군왕검이 웅심국을 기반으로 조선을 열고 나서 비로소 그들의 표음문자가 조선에서 통용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가림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