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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웅녀(熊女)는 개마국(蓋馬國)의 공주님이시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2.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해석을 너무 기존의 이론적인 틀에 맞추어 해석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단군사화의 웅녀에 관한 것입니다.

웅족(熊族)은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족(桓雄族)과 대비시켜 그들을 일컫기를
- 천신족과 대비되는 지신족(地神族)이다
- 웅녀와의 결혼은 바로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의 상징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우리민족은 하늘의 신(神)인 하느님을 경배하는 사상을 가졌지만 땅을 신을 경배하는 사상은 없습니다.
또 한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은 더더욱 없습니다. 토테미즘은 동물을 신으로 믿고 경배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대표적인 나라로는 인도를 꼽을수있죠. 그들은 소를 경배하고 소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최근에 알게된 것인데 인도는 또한 길거리의 뱀도 잡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것이 바로 토테미즘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소고기는 없어서 못먹습니다. 돼지고기는 버릴데가 없습니다. 특히 단군사화에 나오는 곰의 쓸개는 아주 좋은 약재입니다. 동물을 신으로 믿고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즉, 웅족은 토테미즘의 상징이다라는 것은 완전히 틀린 해석입니다.

웅족은 어느나라를 가리키는가

《환단고기》
原住者爲虎新住者爲熊
원래 살던자들은 범(虎)이라 하였고, 새로 와서 살던 자들은 곰(熊)이라 하였다.

즉, 범(虎)과 곰(熊)이란 종족이나 속국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곰국(熊國)은 새로 와서 살던 자들이라 합니다. 그들이 이동을 하여 새로와서 살게되었는지, 아니면 신불(神市) 혹은 환국(桓國)이 영토를 확장하여 새롭게 살게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볼때는 그들은 이동하여 새롭게 살게 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록이 또한 환단고기에 보입니다.

《환단고기》
蓋馬國一云熊心國在北蓋馬大嶺之北
개마국(蓋馬國)은 또한 웅심국(熊心國)이라 하는데 북개마대령의 북쪽에 있다.

북 개마대령을 흑룡강 주변의 대흥안령 혹은 소흥안령 산맥으로 비정할 경우 이들은 바로 숙신이 되며 우리민족 중에 유일한 유목민족인 것입니다. 즉, 새로 와서 살던 웅족은 바로 북개마대령 북쪽에 살던 개마국 혹은 웅심국인 것입니다. 그리고 단군사화에 나온 웅족은 웅심국을 이야기로 꾸기게되자 그들을 곰에 비유하게 된 것이죠.

개마국이 어떻게 웅심국이 되느냐? 바로 이두문이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곰(熊)은 "고마"라고 불렀습니다. 즉, 熊心은 바로 "고마"라고 읽어야 하는데 熊은 뜻은 고마이며 뒤에 마음(心)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熊心을 웅심으로 읽지 말고 "고마"라고 읽으라고 하는 이두글자의 전형적인 예가 되는 것입니다. 熊의 훈(訓)의 반절을 취하고 心의 훈을 반절을 취하면 바로 "고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蓋馬를 음독하여 "개마"라고 하는 것과 그 음이 비슷합니다.  

신불(神市)나라에서는 왜 고마국(熊心國)과 연합하였는가?
단 군사화에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환검(桓儉)을 낳고 그가 고조선을 건국했다라는 것은 고마국(熊心國)을  이용하여 골치거리였던 범족(虎族)을 쫓아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마국(熊心國)은 신불(神市)의 속국 중에 제1인자이며 아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그리고 환검(桓儉)은 고마국(熊心國)의 공주에게 장가들어 아주 강력한 결속을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또한 환단고기에 보입니다.

《환단고기》
檀君......菲西岬河伯女爲后
단군은 비서갑 하백의 딸과 결혼하였다.

太白山北走屹屹然立於斐西岬之境有
태백산은 북쪽에 우뚝 길게 서있는데 이는 비서갑(斐西岬)의 땅이다.

환 검(桓儉)이 결혼한 비서갑 하백의 딸은 바로 북쪽에 있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북개마대령, 지금의 대흥안령과 소흥안령 산맥 북쪽에 있는 고마국(熊心國)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환검(桓儉)이 고마국(熊心國) 하백의 딸과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환검의 아버지때에 골치거리인 범족(虎族)을 고마국(熊心國)의 도움으로 몰아내고 국가를 안정시켰으며 그 아들인 환검도 고마국(熊心國)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을겁니다.

문자 사용의 변화
신 불(神市)나라에서는 사슴의 발자국을 본딴 글자를 이용하였습니다. 이것을 혹 훈민정음의 원형이라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의 한자(漢字)도 역시 사슴의 발자국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불(神市)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글자는 바로 상형문자이고 이것이 지나에 전해져서 현재의 한자(漢字)가 된 것인데, 지나인들이 이것을 곡해하여 자기네들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발명한 동기는 어쩔수없이 발자국을 본떴다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목민족인 거란 돌궐 등은 그들만의 표음문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목민족인 고마국(熊心國)도 표음문자를 가지고 있었을겁니다. 고조선에 이르러 고마국(熊心國)이 큰 세력으로 등장하자 그들이 사용하였던 문자가 고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며 이것이 아마 가림토이었을겁니다. 신불(神市)나라에서는 상형문자를 사용하다가 고조선이 건국되자 표음문자를 사용하게 된 것이죠.


풀지 못한 문제
백 제의 왕성을 고마성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고마국(熊心國)과 어떤 연관이 있을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마(熊心)가 원래 음인지 개마(蓋馬)가 원래 음인지 헷갈려서 그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네요^^. 환단고기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

三神惑說有以三爲新新爲白神爲高高爲頭故亦稱白頭山又云蓋馬奚摩離之轉音古語謂白爲奚謂頭爲摩離也白頭山之名亦起於是矣
삼 신산에 어떤 설에서「삼(三)은 신(新)이 되고 신(新)은 또 백(白)으로 되며, 백(白)은 신(神)이 되고 신(神)은 고(高)가 되고 고(高)는 바로 두(頭)가 된다. 때문에 또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고, 또 말하기를「개마(蓋馬)는 해마리(奚摩離)의 전음(轉音)이다.」라고 했다. 고어에는 흰 것을 해(奚)라 하고 두(頭)를 마리(摩離)라고 하니 백두산의 이름도 역시 이에서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