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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아사달의 위치는 요(遼)의 상경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6.

우리는 보통 고조선 첫 도읍인 "아사달"을 "아침의땅" 혹은 "첫 도읍"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사달이 아침땅이라는 해석은 朝에 해당하는 일본말 "아사"를 본뜬 것이고...
아사달이 첫도읍이라는 해석은 우리말 "아시"를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달을 아침땅으로 보는 것은 그 어원이 일본말일뿐만 아니라 소중화주의냄새가 깊게 베어 있죠.

중국에서 볼때 우리나라땅이 동쪽에 있으므로 해가 떠 오는 쪽이라는 뜻의 아침땅이라는 해석은 불가합니다.

중세조선때에 우리나라를 東國 혹은 海東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적절한 해석이라 볼 수 없죠.


또한 아사달을 "첫땅"이라고 보는 것은 더욱 이상한데...

"아사"의 '사'를 '시'로 바꿔 "아시"가 처음이라는 말이므로 첫도읍이란 뜻으로 아사달이라 하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시달이라고 해야지 아사달이 아니죠.

더군다나 중세국어를 참조하면 "아시"란 처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半"만 한다는 말입니다.


훈몽자회에 보면
饙이라는 글자를 해석하기를 "아시찔 분(아 분)이라고 하였으므로
한자의 뜻을 좇아 "아시"의 뜻을 해석하면 처음이 아니라 "초벌"이란 말입니다.
확장해석하여 "처음"이라고 할수도 있으나 아사달의 "아사"와 "아시"는 발음이 좀 다르죠.


아사달의 의미를 해석하려면 부소량을 먼저 해석해 봐야 합니다.


1) 부소량의 뜻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면 扶蘇岬을 松岳郡으로 바꿉니다.

국어학자들은 岬이 岳이므로 扶蘇가 松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훈몽자회에 樺의 뜻이 "봇"이라는 근거를 댑니다.

그러나 樺과 松은 전혀 다른 나무인데 어찌 松의 고어가 '봇'이 되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죠.


저는 "부소"는 한 단어가 아니라 두 단어로 봅니다.

'부扶'란 平地란 뜻이고, 소蘇란 松이란 말이죠.

즉, "부소"란 소나무 숲이 있는 평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소갑이란 구릉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평지산이고...

부소량이란 부소갑 지대에 있던 강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약간 구릉진 곳인 평지에 소나무 숲이 있고 그곳에 강이 흐른다면 이런 곳보다 명당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리라 봅니다.

2) 아사달의 뜻

아사달의 뜻을 알기 위하여 고려사를 참조해보면...
"부소량 오덕지 백아강에 삼경을 두면..."은 모두다 잘 아시므로 원문과 해석은 생략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3경을 말할때 아사달을 말하지 않고 부소량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사달은 "딸린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사에 보면...


有僧據讖云自扶踈山分爲左蘇曰阿思達
도참서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부소산으로부터 나뉘어 좌소로 이룬 곳이 바로 아사달이다


중요한 줄기는 부소산이고 이곳에서 왼쪽(동쪽)으로 작게 뻗혀 있는 것이 아사달이라고 한 것이지요(물론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들립니다).
즉, 아사달이란 부소산 줄기를 따라 딸린 땅이라는 말입니다.
중세국어를 참조하여 보면
"아사(아)"는 오늘날 말의 "아우"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확대해석하면 아사달이란 우리민족 聖地인 부소산의 아우가 되는 산이라는 말이죠.

고려사 도참서를 인용한 뜻과 정확히 일치하죠.


왜 그렇다면 부소산에 도읍을 못하고 아사달에 했느냐....

첫째로 산 중에 도읍을 할 수 없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聖地에 도읍을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聖地의 기운을 받은 딸린 땅에다가 도읍을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거란의 상경임황부

역사상 이렇게 소나무 숲의 동쪽에 도읍을 한 나라가 또하나 있었는데 바로 거란입니다.

상경도에는 平地松林이 있고 松山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지송림의 동쪽(왼쪽)에 임황부가 있죠.


고조선의 지리와 비교하여 보면 똑같습니다.

평지송림이란 정확히 "부소"의 뜻과 일치하며, 그 동쪽에 있던 임황부는 정확히 아사달과 일치합니다.

아마도 거란에서도 고려가 가지고 있었던 도참서를 가지고 있었거나, 혹은 고조선의 지리지명이 그대로 거란까지 전수되어 부소산을 평지송림이라 漢譯하고 아사달이 있던 곳을 그들의 임황부로 삼았던 것일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조선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契丹을 과연 거란이라고 불러야 겠느냐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契丹은 "쇠단"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금 사본기에 보면 " 요(遼)는 빈철(鑌鐵)로 호(號)를 삼았는데 그 견고함에서 취한 것이다. 빈철이 비록 견고하다 할지라도 마침내 역시 변하여 망가지는데, 오직 금만이 변하지 않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금의 색깔은 밝은데 완안부의 색은 오히려 밝으므로 여기서 대금(大金)이라 한다(遼以鑌鐵為號, 取其堅也鑌鐵. 雖堅, 終亦變壊, 惟金不變 不壊, 金之色白, 完顔部色尚白, 於是國號大金)"고 하였습니다.

즉, 契丹의 契는 "계"가 아니라 "쇠"입니다.

강희자전에 私列切(셜) 혹은 先結切(셜)라고 한 것은 契丹이 곧 "쇠단"이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丹이란 곧 땅이라는 말인데... 삼국사기에는 呑, 旦, 頓등으로 적혀 있죠.

우 선 呑(탄)으로 음차한 지명을 보면 首乙呑(수을탄, 경곡이라고도 함), 於支呑(어지탄, 익곡翼谷이라고도 함), 習比呑(습비탄, 습비곡習比谷이라고도 함) 등이 있고, 旦(단)으로 음차한 지명으로는 乙阿旦(을아단), 買旦忽(매단홀, 수곡성水谷城이라고도 함), 阿旦城(아단성) 등이 있으며, 頓(돈)으로 음차한 지명으로는 德頓忽(덕돈홀, 십곡현十谷縣이라고도 함)이 있습니다. 丹(단)으로 음차한 지명은 삼국사기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皆丹(개단)과 林丹(림단) 등이 있습니다. 지나인들은 우리나라의 영토를 빼앗고 “단”이 사용된 지명을 바꾸어 屯(둔)을 사용하였는데 臨屯(임둔)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