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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8세 달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8.
원년은 무인년인데 36년동안 제위에 있었다. 맏아들 한율을 태자로 삼았다. 7년은 갑신년이다. 몽고리 사람이 천리마를 바쳤으나 거절하였다. 8년은 을유년이다. 갈모 후가 배반하였으므로 이를 토벌하였다.정해 10년 가을에 夏(하국)의 소강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 을축 12년 武成王(무성왕)이 檀聖廟(단성묘)를 秋山(추산) 아래에 세웠다. 경인 13년. 武成王(무성왕)이 백성들에게 8가지의 법규를 가르쳤다.

제8세 단제

文帝諱達門平帝太子也 元年戊寅在位三十六年.
文帝(문제)의 이름은 達門(달문)이고 平帝(평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戊寅(무인)년이고 재위기간은 36년이다.

무인 원년

冊長子翰栗爲太子. 命乙支仙爲首宰, 淵石泉爲上將, 吳漢爲太傳, 陳無竸爲攝司職, 關基乙爲肅政使.
戊寅(무 인, BC2083) 원년. 큰아들 翰栗(한율)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乙支仙(을지선)을 首宰(수재)이 되게 하고 淵石泉(연석천)을 上將(상장)이 되게 하였으며 吳漢(오한)을 太傳(태전)이 되게 하였고 陳無竸(진무경)을 攝司職(섭사직)이 되게 하였고 關基乙(관기을)을 肅政使(숙정사)가 되도록 명령하였다.

갑신 7년

春, 蒙古里人有, 獻千里馬者. 帝曰天子之行有一定之路, 吉行一日四十里, 私行一日五十里, 前揚國旗, 後有隨車, 不可獨行. 朕今乘千里馬獨先行何處耶. 終不受, 乃下詔曰, 朕不受獻馬者, 使四方無有來獻者也.
甲申(갑신, BC2077) 7년. 봄에 蒙古里(몽고리) 사람이 있어 천리마를 바쳤다. 帝(제)는 “천자가 가는 것은 일정한 길이 있어 吉行(길행)은 1일에 40리요 私行(사행)은 1일에 50리이다. 앞에서는 國旗(국기)를 날리며 뒤에서는 수레가 따르니 홀로 다닐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천리마를 타고 홀로 어디를 앞서가리오.” 마침내 받지 않으시고 “내가 지금 말을 받지 않는 것은 사방에서 와서 바치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을유 8년

葛毛侯叛遣兵討平之.
乙酉(을유, BC2076) 8년. 葛毛侯(갈모후)가 배반하자 병사를 보내 토평하였다.

정해 10년

秋夏主少康遣使來朝.
丁亥(정해, BC2074) 10년. 가을에 夏(하국)의 主(주) 少康(소강)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

무자 11년

八夫婁奏曰, 治國平天下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盖人之智能 先 格其物情 知其物理, 然後 漸致發達, 故 格物致知 則可以知民生日用之宜也. 夏葛 冬裘 所以保身也. 飯米 食肉 所以養體也 然則, 修身爲齊家之本, 齊家爲治國之本, 治國爲平天下之道也. 盖, 在常時不可無臨戰之勢, 守己如堅壁高壘, 攻己如猛將精卒, 侵於誘惑者 奇正相交, 隳於懈怠者隱見難測, 一生願得者 敢冒危劇, 爲成一功者 能涉百險, 勝敗翻覆者 不許暫時之弛緩, 虛實因果者 輒起毫末之怠慢, 奚可以秒刻間放心乎. 是以知行不可無堅甲利兵, 意志不可無强弓硬矢, 武裝實力尙有豊足, 隊伍士卒恒存勇氣, 智能謀士 運籌帷幄之中村, 畧主將 指揮於陣營之內, 然後 義勇斯振, 武威宣耀. 大抵 臨戰之地 衛者衛之懲者懲之 的在於凱旋. 此亦一時誇力勵氣而已, 最後勝捷惟是一物而已[1], 何也. 彼 勝敗無常者 在於一時利鈍置之度外者也, 使 七顚八起 九死一生 竟致 必勝 而 後己者 自量其理念之誠實 而在於 忍耐者也. 若有此, 則有何阻險而有何困難乎. 顚沛之中 希望尙存, 猛爆之下 志氣愈高, 心如萬古靑山, 行如千里長程, 所期必在於克成. 然後已[2]也 臣以爲能知修身之道而實行之則治國亦可能也. 帝曰, 善㢤, 八夫婁治國用兵之道得之於修身, 而已[3]拜爲上將, 督勵三軍.
戊子(무 자, BC2073) 11년. 八夫婁(팔부루)가 아뢰어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도리는 明德(명덕)을 밝게 하고 백성을 가까이하며 지극한 선함에 이르는데 있습니다. 대개 사람의 지능은 먼저 만물의 실상을 연구하고 그 이치를 깨달은 후에야 점차 발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을 연구하고 깨닫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 마땅히 써야 할 바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거친 베로 옷을 해 입고 겨울에는 갖옷을 입는 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밥과 고기를 먹는 것은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즉 몸을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고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도리입니다. 대개 항상 전쟁에 임하는 형세가 없는 것은 불가하며, 방어하여 다스리는 것은 견고한 성벽과 높은 성과 같아야 하고, 공격하여 다스리는 것은 매서운 장수와 정예 병사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유혹됨에 침략을 받은 자는 거짓됨을 바르게 하고 서로 교통하여야 하고, 나태함에 무너진 자는 아무도 모르게 어려움 측량해 봐야 하며, 일생동안 얻고자 하는 자는 위태로움과 혹독함을 감히 무릅써야 하며, 하나의 공이라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능히 100가지 험한 것도 넘어갈 수 있어야 하고, 승패를 뒤바꾸고자 하는 자는 잠시라도 느슨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하며, 허한 것과 실한 것의 원인과 결과는 털끝만한 나태함이 문득 일어남에 있으니, 어찌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있겠나이까? 이것은 지식과 행함에 있어서 견고한 갑옷의 이익을 갖는 병사가 없이는 불가한 것과 같으며 의(意)와 지(志)는 강한 활과 돌화살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과 같습니다. 전투장비와 실력을 반드시 풍족하게 갖추어야 하고 여러 병사들은 항상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지능있는 모사자는 휘장 안에서 궁리하고 계획하여야 하며, 슬기로는 장군은 진영 안에서 지휘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후에야 의용(義勇)이 떨치어지며 무위(武威)가 밝게 빛날 것입니다. 대저 전쟁이 임하는 곳에서 지킬 것은 지키며 징벌할 것은 징벌하는 것은 승리하여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일시적으로 힘을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최후의 승첩은 오히려 이것에 있는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승패의 무상함을 일시적인 이로움으로 여기고 가소롭게 여기는 도외자(度外者)이며, 또한 칠전팔기(七顚八起)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마침내 승리하지만 후에 자기 스스로 그 이념과 성실을 헤아려보는 인내자(忍耐者)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으면 어떤 험한 것이 있더라도 무슨 곤란함이 있겠습니까? 넘어져 이마가 처박혀도 오히려 희망은 존재하며 사납게 터지는 곳에서도 의지는 오히려 높으니, 마음은 만고의 푸른 산과 같고 행함은 천리의 장정과 같으니 계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후에야 신하들이 능히 수신의 도리를 알고 실행한즉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帝)가 “맞다”고 하셨다. 八夫婁(팔부루)는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이용하는 도리를 자기 몸을 닦는 데서 얻었으니 上將(상장)으로 배수를 받아 三軍(삼군)을 독려하였다.

을축 12년

武成王建檀聖廟於秋山下.
乙丑(을축, BC2072) 12년. 武成王(무성왕)이 檀聖廟(단성묘)를 秋山(추산) 아래에 세웠다.

경인 13년.

武成王敎民八條之規.
庚寅(경인, BC2071) 13년. 武成王(무성왕)이 백성들에게 8가지의 법규를 가르쳤다.

신묘 14년

武成王造別宮于韓里.
辛卯(신묘, BC2070) 14년. 武成王(무성왕)이 별궁을 韓里(한리)에 지었다.

병신 19년

麻西子爲人荒滛. 一日, 求美酒, 以進, 帝甘飮而醉, 曰 此傷性之狂藥也. 後世必有以酒亾國敗家者多矣遂斷而遠之.
丙申(병 신, BC2065) 19년. 麻西子(마서자)는 사람을 거칠고 음탕하게 한다. 어느날 좋은 술을 구해 진상하니 帝(제)께서 달게 마시시고 취하셔서 “이것은 성품을 상하게 하는 미치광이 약이구나. 후세에 반드시 술로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패하는 경우가 많겠구나”하시며 드디어 마서자로 만든 술을 끊고 멀리하시었다.

무술 21년

阿斯達大饑, 發倉粟求恤.
戊戌(무술, BC2063) 21년. 阿斯達(아사달)에 큰 기근이 있어 倉粟(창속)을 발하여 구휼하였다.

경자 23년

夏主少康遣使入朝獻書通交.
庚子(경자, BC2061) 23년. 夏(하국)의 主(주)로 있는 少康(소강)이 사자를 보내 입조하고 책을 바쳐 통교하였다.

신축 24년

帝南幸黃山谷, 見有罪人被縛者, 下車泣, 問曰 汝何事犯罪也. 惟天下有罪者應知不少也. 國初三聖之代, 民皆以三聖之心爲心. 寡人爲君, 民各自以己心爲心. 寡人以是爲悲. 盖人智不足而造僞, 力不足而多欺, 財不足而爲盜, 爲民之主者, 使民處乎不安之地, 而何可得一日之安乎.
辛丑(신 축, BC2060) 24년. 帝(제)가 남쪽으로 黃山谷(황산곡)을 순행하다가 죄인이 결박을 당하여 있는 것을 보시고 수레에서 내려 울며 물어보았다. “너는 무슨일로 죄를 범하였느냐?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죄를 범하는 자가 응당 적지 아니함을 알겠구나. 국초 三聖(삼성)의 시대에는 백성이 모두 三聖(삼성)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았었는데, 과인이 임금이 되니 백성들이 각기 스스로 자기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으니 과인이 이로 인하여 슬프구나. 대개 사람이 아는 것이 부족하면 거짓을 짓게 되고 힘이 부족하면 속이기를 많이 하고 재물이 부족하면 도적질을 하게 되는데, 백성의 주인된 자로서 백성을 불안한 땅에 살게하면서 어떻게 하루라도 평안히 지낼 수가 있겠는가?”

임인 25년

阿斯達國秋山下淡水大蛤多出爭取之.
壬寅(임인, BC2059) 25년. 阿斯達國(아사달국)의 秋山(추산)아래에 담수에서 대합이 많이 나오므로 그것을 취하려고 다투었다.

갑진 27년.

阿斯達國馬嘶嶺上得紅點白身之馬
甲辰(갑진, BC2057) 27년. 阿斯達國(아사달국)의 馬嘶嶺(마시령) 위에서 붉은 점이 있는 흰 말을 얻었다.

경술 33년.

帝命築扶餘山城.
庚戌(경술, BC2051) 33년. 帝(제)가 명하여 扶餘山城(부여산성)을 쌓았다.

신해 34년

夏主杼來掠東海及三壽等地得一狐有九尾而侵邊帝遣八夫婁拒守之.
辛亥(신해, BC2050) 34년. 夏(하국)의 主(주)인 杼(저)가 동해를 노략질하였고 三壽(삼수) 등의 땅에서 여우를 하나 얻었는데 꼬리가 9개였고 변경을 침략하였다. 帝(제)는 八夫婁(팔부루)를 보내 막아 지키게 하였다.

임자 35년

帝下命會列國諸汗于常春【今長春卽新京】, 執盟貢幣者 大國二 小國二十酋長三百六十 墟落三千三百六十. 大會諸汗, 帝率众祭三神于九月山【在長春弓闕山】, 使神誌發理作告効詞【三神古祭祈祝之文】曰
壬子(임자, BC2049) 35년. 帝(제)는 모든 나라의 汗(한)들을 常春(상춘)【지금의 長春(장춘) 즉 新京(신경)이다】에 모이도록 명령하였다. 모여서 예물을 바친다고 맹세한 자들은 큰 나라는 2이고 작은 나라는 20이며 추장이 다스리는 나라는 360이며 촌락[墟落]이 3360이었다. 모든 汗(한)들이 다 모이었는데 帝(제)는 무리를 이끌고 九月山(구월산)【長春(장춘)에 弓闕山(궁궐산)이 있다.】에서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었고, 神誌(신지)인 發理(발리)로 하여금 告効詞(고효사)【三神(삼신)에게 옛날에 제사지내며 祈祝(기축)하는 문장이다.】짓게 하였는데 아래와 같다.

朝光先受地三神赫世臨桓因出象先樹德宏且㴱諸神議遣䧺承詔始開天王儉受大命懽聲動九桓魚水民其穌草風德化新怨者先解怨病者先去病一心存仁孝四海盡光明眞韓鎭國中治道咸維新慕韓保其左番韓控其南峻岩圍四壁聖主幸新京如秤錘極器極器白牙岡秤榦蘇密郞錘者安德鄕首尾均平位賴德護神精興邦保太平朝降七十國永保三韓義王業有興隆興廢莫爲說誠在事天神
帝乃與諸汗立約曰凡我同約之人以桓國五訓爲永久遵守之案祭天之禮以人爲本爲邦之道以食爲先農者萬事之本祭者五敎之源宜與國人共治爲産先講重族次宥囚俘竝除死刑責禍保境修好會盟專以一施共和之心謙卑自養以爲仁政之始也. (번역생략)
時諸汗皆執盟貢幣而退
때에 모든 汗(한)들이 모여 맹세하고 예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계축 36년.

帝崩 太子羊加翰栗立是爲惠帝.
癸丑(계축, BC2048) 36년. 帝(제)가 죽었다. 太子(태자)인 羊加(양가)로 있던 翰栗(한율)이 제위에 오르니 이가 惠帝(혜제)이다.

 

 

[1]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

[2]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

[3]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