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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6세 오사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8.
원년은 갑신년(BC2137)이다. 큰아들 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임금의 아우 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帝(제)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第六世檀帝(제6세 단제)

光帝諱烏斯丘仁帝太子也 元年甲申在位三十八年
光帝(광제)의 이름은 烏斯丘(오사구)이고 仁帝(인제)의 太子(태자)이다. 원년은 갑신년이고 재위기간은 38년이다.

甲申元年

. 冊長子丘乙爲太子. 封皇弟烏斯達爲蒙古里汗【王也】. 其後孫繁衍爲內外蒙古族, 卽元皇之祖也. 秋 夏主相遣使入朝, 請結好隣國之交. 十月, 帝北巡, 祭三神于太白山, 得不老草, 是謂人蔘, 又稱仙藥. 自是, 神仙不死之說與人蔘採摘之事密有關聯頗多恠異也.
甲申(갑신, BC2137) 원년. 큰아들 丘乙(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皇(황)의 아우 烏斯達(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帝(제)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乙酉二年

. 春遣使于夏國回謝國交. 阿斯達國阿闍王薨在位三十三年, 世子摩耶立是爲期平王【元年丙戌】.
乙酉(을유, BC2136) 2년. 봄에 사신을 夏國(하국)에 보내어 국교에 대하여 回謝(회사)하였다.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阿闍王(아도왕)이 죽었으며 재위기간은 33년이다. 세자 摩耶(마야)가 즉위하니 이가 期平王(기평왕)【원년 丙戌(병술)】이다.

戊子五年

. 鑄圓孔貝錢. 八月夏人來獻方物. 十月朝野之事命書之于石, 公諸民間.
戊子(무자, BC2133) 5년. 圓孔貝錢(원공패전)을 주조하였다. 8월에 夏國(하국)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10월에 朝野(조야)에 관한 일을 돌에 글로 새겨넣도록 명령하고 민간에 널리 알렸다.

庚寅七月

. 設造船工場于薩水【在遼東今州南河也】之上.
庚寅(경인, BC2131) 7년. 조선공장을 薩水(살수)【遼東(료동)의 지금 州(주) 남쪽 강에 있다】에 건설하였다.

癸巳十年

. 春建乾淸宮二十五年而完成. 東西六百間, 南北百間, 上層可坐萬人, 下層可立四丈高竿.
癸巳(계사, BC2128) 10년. 봄에 乾淸宮(건청궁)을 25년만에 완성하였다. 동서로 600간이고 남북으로 100간이며 윗층은 좌석이 1,0000이며 아래층은 높이가 4길인 솟대가 있다.

庚子十七年

. 畎部黃部來朝 設宴優待.
庚子(경자, BC2121) 17년. 畎部(견부)와 黃部(황부)가 來朝(래조)하였다. 잔치를 베풀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壬寅十九年

. 帝命築平壤城【扶餘】. 城外種柳四圍, 使民心柔順. 夏主相失德, 其臣羿弑之, 奪其位. 帝命息達率藍眞弁三部之兵, 以征之國威益彰. 天下聞之畏服.
壬寅(임인, BC2119) 19년. 帝(제)는 平壤城(평양성)【扶餘(부여)】을 쌓도록 하고 성 밖의 둘레에는 버드나무를 심게하여 민심을 유순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덕을 잃어 그 신하 羿(예)가 그를 죽여 주상의 위치를 찬탈하였다. 帝(제)는 息達(식달)에게 藍(람)과 眞(진)과 弁(변) 등 3부의 병사를 이끌고 그들을 정벌하여 국위를 더 밝게 빛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천하가 이를 듣고 두려워 복종하였다.

癸卯二十年

. 蘇奈伐上奏曰.., 治天下之務 正風俗親賢才爲本 當國財强兵士爲要 故並用文武爲長久之策也 國雖大 好戰必亡 㤀戰必危 故古之聖帝明王平天下之道在於恩威並行. 是以戮好而安民則殺之亦可, 伐罪而安國則伐之惟義. 俱文治而施恩則譬如蒼蝇之臭集 而竟致腐敗, 武治而行威則譬如飛霜之垂掩而終無活力 治政之方在於其機能之如何耳. 基下曾不見春生秋殺時序之運又不察日陽月陰消長之化乎. 伏願基下 革新政令 肅淸軍紀 督督勵民志 君臣合體 繼承祖業以成萬代 不萎之神聖國家焉. 帝嘉納 以蘇奈伐爲上將 方民伯爲太宰.
癸卯(계 묘, BC2118) 20년. 蘇奈伐(소나벌)이 임금께 아뢰어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가까이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나라의 재산을 돌보고 兵(병)과 士(사)를 강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文(문)과 武(무)를 병용하는 것이 나라를 오래 유지하는 책략입니다. 나라가 비록 크다 할지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며 망령되이 전쟁을 하면 반드시 위태로우니 그러므로 옛날의 聖帝(성제)와 明王(명왕)들의 천하를 평정하는 도리는 은혜와 위엄을 병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죽여 백성이 편안하면 살인도 역시 가능하며 다른 나라의 죄를 벌하여 나라가 편안하면 벌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文治(문치)만으로 은혜를 베풀면 이는 파리가 냄새나는 곳에 모여서 마침내 부패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武治(무치)로 위엄만 드러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드리워 마침내 활력이 없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정치하는 방법은 그 機(기)를 능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基下(기하)께서 일찍이 春生秋殺(춘생추살)의 時序(시서)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또한 기하께서 日陽月陰(일양월음)의 消長(소장)의 변화를 살피지 못하셨습니까? 기하께 엎드려 원하오니 정치를 혁신하시고 군기를 새롭게 바로잡으시며 백성의 뜻을 督勵(독려)하고 君臣(군신)간에 하나됨을 이루서 조상들의 업을 계승하시고 만대에 이루어 不神聖國家(신성국가)가 시들지 않게 하옵소서.”  帝(제)는 嘉納(가납)하고 蘇奈伐(소나벌)를 上將(상장)으로 삼았고 方民伯(방민백)을 太宰(태재)로 삼았다.

乙巳二十二年

. 期平王巡左海, 遇白陽道人, 載車同歸先問政敎
乙巳(을사, BC2116) 22년. 期平王(기평왕)[1]이 左海(좌해)로 순행하여 白陽道人(백양도인)을 만나 수레에 실어 같이 돌아왔다. 그 전에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丙午二十三年

. 期平王登思皇峯望帝都而不勝感歎.
丙午(병오, BC2115) 23년. 期平王(기평왕)이 思皇峯(사황봉)에 올라 帝(제)의 도읍을 바라보고 감정이 복받쳐 감탄하였다.

辛亥二十八年

. 驟雨之際, 龍淵有瑞光照耀, 稱之謂龍化.
辛亥(신해, BC2110) 28년. 소나기가 내릴 때에 龍淵(룡연)에 상서로운 빛이 비추고 빛나니 그것을 일컬어 龍化(룡화)라 하였다.

癸丑三十年

. 命農官方進敎民以稼道
癸丑(계축, BC2108) 30년. 農官(농관)에게 명하여 나라 여러 곳으로 나아가 백성들에게 벼심는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였다.

丙辰三十三年

. 阿斯達博士 魯可律 曰, 山地從脉掘得溫泉. 期平王從其言, 而掘地, 果溫泉湧出.
丙辰(병진, BC2105) 33년. 阿斯達(아사달) 博士(박사) 魯可律(로가율)이 “산과 땅의 맥을 따라서 땅을 파면 온천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평왕은 그 말을 따라 땅을 파서 온천이 용출함으 얻었다.

辛酉三十八年

. 帝西巡發病而還. 六月崩. 太子羊加丘乙立, 是爲平帝.
辛酉(신유, BC2100) 38년. 帝(제)가 서쪽으로 순행하여 병을 얻었으므로 돌아왔다. 6월에 죽었는데 羊加(양가)인 태자 丘乙(구을)이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平帝(평제)이다.

 

 

[1]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제2세 왕이다. 아버지는 가륵 단제의 동생인 가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