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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10세 우서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8.

제10세 단군왕검 장제

莊帝(장제)의 이름은 于西翰(우서한)이고 惠帝(혜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戊申(무신)년이고 재위기간은 8년이다.
莊帝諱于西翰惠帝太子也. 元年戊申在位八年.

戊申(무신, BC1993) 원년

큰아들 阿述(아술)을 태자로 삼았다. 90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법을 제정하고 널리 통용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1]  阿斯達(아사달국)의 威靖王(위정왕)이 죽었다 재위기간은 49년이다. 세자 求乙(구을)이 즉위하니 이가 和定王(화정왕)이다【원년은 己酉(기유)년이다.】.
戊申元年. 冊長子阿述爲太子. 制定九十稅一之法廣通有無以補不足. 阿斯達威靖王薨, 在位四十九年, 世子求乙立, 是爲和定王【元年己酉】.

己酉(기유, BC1992) 2년.

이해에 크게 풍년이 들어 한 줄기에 8개의 이삭이 생겼다. 帝(제)는 태자가 되었을 때부터 雄畧(웅략)과 大度(대도)가 있었고 겸하여 德行(덕행)도 있었다. 臣民(신민)이 모두 欽仰(흠앙)하였고, 寶位(보위)에 올랐을 때에도 국정을 잘 다스렸으며, 인재를 잘 등용하였고 장병들을 훈련시켰으며, 천하의 뜻을 다 통합하였다. 阿斯達國(아사달국)의 長壽村家(장수촌가)에서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사람의 몸에 사슴의 발을 하고 성품이 총명하였으니 이름을 鹿足夫人(록족부인)이라고 하였다. 후에 世子妃(세자비)가 되었다【역사에서 기록하기를 황해도 長壽山(장수산)에 鹿足夫人(록족부인)의 행적이 있다고 하였다.】.
己酉二年. 是歲大豊. 有一莖八穗之禾. 帝自爲太子時有䧺畧大度, 兼有德行, 臣民皆欽仰, 及踐寶位, 善治國政登用良材, 敎練將兵, 有綂合天下之志. 阿斯達國長壽村家生女人身鹿足爲性聰明 名曰鹿足夫人, 後爲世子妃【史曰, 黃海道長壽山有鹿足夫人跡】.

庚戌(경술, BC1991) 3년.

達突國(달돌국)의 사신이 내조하였다.
庚戌三年. 達突國使臣來朝.

辛亥(신해, BC1990) 4년.

帝(제)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몰래 나라 밖을 빠져나가 夏國(하국)의 지리와 정치와 백성의 실상과 풍속을 정찰하고 184일을 지내고 돌아와서 관제를 크게 바꾸었다.
辛亥四年. 帝微服潜出國境  偵察夏國地理政治民情風俗, 經一百八十四日, 而還大改官制.

癸丑(계축, BC1988) 6년.

支于粟(지우속)[2]을 上將(상장)이 되게 하고 烏干(오간)을 太宰(태재)가 되도록 명하였다.
癸丑六年. 命支于粟爲上將烏干爲太宰.

甲寅(갑인, BC1987) 7년.

三足烏(삼족오)[3]가 날아 동산가운데[苑中][4]로 들어왔다. 그 날개의 폭이 3척이었다.
甲寅七年. 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

乙卯(을묘, BC1986) 8년.

帝(제)가 죽고 태자 阿述(아술)이 제위에 올랐으니 이가 肅帝(숙제)이다.
乙卯八年. 帝崩太子阿述立是爲肅帝.

 

[1] 환단고기에는 20분의 1이라고 하였다. 규원사화에서는 90분의 1이라고 하였다.

[2] 단기고사에는 支干粟(지간속)이라고 하였다.

[3] 단기고사에는 烏(오)를 鳥(조)로 썼다.

[4] 단기고사에는 宮中(궁중)이라고 하였고 그 다음해에 于西翰(우서한) 檀君王儉(단군왕검)이 죽었으니 이는 분명 왕권침탈을 설명한 것이리라. 단기고사의 기록이 맞다면 아술은 우서한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