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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신당서 동이전 유귀국(流鬼國) 번역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17.
#新唐書卷220-列傳第145-流鬼-03/01
◉<流鬼>去京師萬五千里, 直<黑水靺鞨>東北, 少海之北, 三面皆阻海, 其北莫知所窮. 人依嶼散居, 多沮澤, 有魚鹽之利. 地蚤寒, 多霜雪, 以木廣六寸․長七尺系其上, 以踐冰, 逐走獸. 土多狗, 以皮爲裘. 俗被髮, 粟似莠而小, 無蔬蓏它穀. 勝兵萬人. 南與<莫曳靺鞨>鄰, 東南航海十五日行, 乃至. <貞觀>十四年, 其王遣子<可也余莫貂皮>更三譯來朝, 授騎都尉遣之.
유귀는 경사에서 1만 5천리 떨어져 있고 흑수말갈에서 곧장 동북쪽으로 작은 바다의 북쪽에 있으며 삼면이 모두 바다에 막혀있고 그 북쪽은 끝 닿는 곳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작은 섬에 의지하여 흩어져 거처하며 습지와 못이 많고 바닷고기와 소금의 혜택이 있다. 땅은 일찍 추워지고 서리와 눈이 많으며 넓이가 6촌에 길이 7척인 나무를 사용하여 그 위쪽을 끈으로 매어 얼음 위를 걸어가고 짐승을 쫓는다. 그 땅에는 개가 많아서 그 가죽으로 갖옷을 만든다.
풍속에 머리를 늘어뜨리며 곡식은 가라지와 흡사하나 그보다 작고 채소나 풀열매 및 별다른 곡류가 없다. 날랜 군사가 1만 명이다. 남쪽은 막예 말갈과 인접하며 동남쪽으로 바닷길을 15일 항해하여 가면 닿는다. 정관(627~649) 14년에 그들의 왕이 아들 가야여막초피를 보내 세 번의 통역을 거쳐 들어와 예방하니 기도위에 제수하여 보냈다.

#新唐書卷220-列傳第145-流鬼-03/02
◉<龍朔>初, 有<儋羅>者, 其王<儒李都羅>遣使入朝, 國居<新羅><武州>南島上, 俗朴陋, 衣大豕皮, 夏居革屋, 冬窟室. 地生五穀, 耕不知用牛, 以鐵齒杷土. 初附<百濟>, <麟德>中, 酋長來朝, 從帝至<太山>, 後附<新羅>.
용삭(661~663) 초에 담라가 있어 그 왕 유리도라가 사신을 보내 들어와 예방하였는데, 그 나라는 신라의 무주 남쪽 섬에 자리하며 풍속은 질박하고도 촌스럽고 큰 돼지 가죽을 옷으로 입으며 여름에는 가죽으로 만든 집에 거처하고 겨울에는 굴을 파서 집을 만든다. 그 땅에는 오곡이 나고 밭갈이에 소를 사용할 줄 모르며 쇠이빨로 된 고무래로 땅을 간다 처음에는 백제에 복속되었으며 인덕(664~665) 연간에 추장이 들어와 예방하고 황제를 좇아 태산에까지 이르렀고 후에는 신라를 붙좇았다.

#新唐書卷220-列傳第145-流鬼-03/03
◉<開元>十一年, 又有<達末婁>․<達姤>二部首領朝貢. <達末婁>自言<北扶餘>之裔, <高麗>滅其國, 遺人度<那河>, 因居之, 或曰<他漏河>, 東北流入<黑水>. <達姤>, <室韋>種也, 在<那河>陰, <涷末河>之東, 西接<黃頭室韋>, 東北距<達末婁>云.
개원(713~741) 11년에 또 달말루와 달구 등 두 부락의 수령들이 조공하였다. 달말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로서 고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혹은 타루하라고 하는 물줄기가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에 유입된다 하였다. 달구는 실위의 종족으로 나하의 남쪽, 동말하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황두실위와 접하며 동북쪽으로는 달말루에 이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