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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소도와 왕검의 명칭은 흉노에도 있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0.

                                                              一. 휴저(休屠)

 

  《사기(史記) · 흉노열전(匈奴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듬해 봄 한나라는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郭去病)에게 1만 기를 거느리고 농서(隴西)로부터 출격하게 했다. 곽거병은 언지산(焉支山)에서 천여 리나 진출해서 흉노를 공격하여 흉노의 수급 포로 1만 8천 여급을 얻고 휴저왕(休屠王)을 격파한 다음, 선우가 천제를 지낼 때 쓰는 금속제 금인상(金人像)을 손에 넣었다."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해 가을 선우는 혼야왕(渾邪王)과 휴저왕(休屠王)이 서쪽에 있어 한나라 군사에게 수만 명이나 죽기도 하고 포로가 되기도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그들을 불러들여 책임을 물어 그 두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혼야왕과 휴저왕은 두려운 나머지 한나라에 항복할 것을 꾀했다.

  한나라는 표기장군(驃騎將軍)을 시켜 이들을 맞으러 가게 했다. 혼야왕은 휴저왕을 죽이고 그 무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하나라에 투항했는데, 모두 4만여 명이었는데 숫자를 늘려 10만이라고 호언하였다."

 

  두 조목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휴저(休屠)는 분명히 흉노의 왕에 대한 칭호를 음사(音寫)한 것이다. 필자는 그 말의 어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그것은 몽골족 샤만교에서 통상 사용하는 술어요, 게다가 흉노 시대에 이미 음변(音變)이 발생했음을 발견하였다. 음변이 발생한 뒤의 일부 단어는 《몽골비사(蒙古秘史)》 속에 서로 관계있는 단어와 기본적으로 일치할 뿐만 아니라, 현대 몽골어 서면어와 서로 관계가 있는 말과도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어음상의 구별이라는 것은 겨우 고대 어음인 접두사h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서(漢書) · 흉노전(匈奴傳) 하(下)》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루약제선우(烏累若鞮單右) 함(鹹)이 5년 동안 재위하다가 천봉(天鳳) 5년에 죽고, 그 아우 좌현왕(左賢王) 여가 그 위를 이어, 호도이시도고약제선우(呼都而尸道皐鞮單于)이라고 칭했다. 흉노말로 효도를 일컬어서 "뤄디(若鞮)"라고 하였다. 호한야(呼韓邪)이후로부터 흉노는 한나라와의 관계가  친밀했으며,  한나라의 황제의 시호에 "효(孝)"라고 하는 것을 매우 선망해서  모두 선우에  "뤄디(若鞮)"라는 말을 더했다.

  호도이시도고약제선우(呼都而尸道皐鞮單于)가 왕위를 이은 뒤, 왕망이 금은으로 상을 내려 주는 것에 탐이 나서,  대차거(大且渠) 사(奢)와 운(雲)의 누이 동생 당우거차(當于居次)의 아들인 혜독왕(醯櫝王)을 함께 장안으로 보내어 왕망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89 ·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79》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우 장(長)이 재위한지 23년만에 죽고, 선우 한지(汗之)의 아들 선(宣)이 즉위하였다. 이저어려제선우(伊屠於閭鞮單于) 선(宣)이 원화 2년에 즉위하였다."

 

  한문 사적 중에서 출현하는 휴저(休屠) · 호도(呼都) · 혜독(醯櫝) 등은 모두 음변(音變)이 발생한 뒤의 같은 말로서, 《몽골비사(蒙古秘史)》 중에는 그 말의 접두어 h음이 탈락한 뒤에 역도올척(亦都兀惕) · 액독격날(額禿格捏) · 알탈견(斡脫堅) 등으로 음사되었다. 역도올척(亦都兀惕) 이 말은 《몽골비사(蒙古秘史)》 속에서 인명으로 나타난 것인데, 이 말은 돌궐의 관직명인 역도호(亦都護)와 같은 말이며, 이 관직명과 이름은 흉노의 관직명인 휴저(休屠)를 그대로 따른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현재 몽골어 서면어 중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독음이다. 현대 몽골어 서면어 중에는 이말에는  idugen, edufen, utugen 으로 읽는 세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대지여신 또는 여자무당을 가리킨다. 현재 몽골어 구어 중에는 udugan으로 읽어 여자무당을 가리키거나 또는 산파를 가리키기도 한다. 현대 몽골어 중에서 인명으로 나타날 때에는 그 사근과 원시 사의(詞義)가 아주 분명하게 되는 바, 현대 몽고인 중에  Iduheshig, Enuheshig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통이다.  Idu, edu는 동일한 말의 서로 다른 음변이며 그 뜻은 대지여신(大地女神)이며, iduheshig, eduheshig의 뜻은 대지여신이 준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휴저왕은 대지의 왕 또는 국토의 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역도올척(亦都兀惕) · 역도호(亦都護)는 대지여신의 사람들 혹은 대지여신의 자손으로 이해될 수 있다.

 

  Idugen, edugen, etugen은 대지 · 여자무당을 가리키며, boo는 남자 무당(박수)를 가리킨다. 양자를 비교해 보면 바로 어근 idu, edu, utu는 암컷을 가리키고, boo는 암컷을 가리키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으며, idu, edu, utu는 여자의 생식기를 가리키며, boo는 남성의 생식기를 가리킨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두 말은 아주 오래된 몽골어 단어로서 현대 몽골어 속에는 이 두 말을 어근으로 하는 파생어가 상당히 많는 바, 예를 들어 edur, udur, eduge, edugehe, utuhu, utug, udugehu, utugus 등이 있다. Idu, edu, utu의 원의는 최초, 최조(最早), 원초, 발생, 발원, 발원지 등인 바, 이는 대지여신 · 여자무당 · 여성생식기 산파 등으로 의미가 인신된다. 그 어의로부터 간파할 수 있는 것은 몽고족의 샤만교는 상고시기에 여성의 생식기를 인류번성의 근원으로 여겼고, 그와 같은 성숭배은 응당 여성생식기의 숭배에서 기원을 했던 것이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몽골족의 샤만교의 술어 속에서 boo란 말은 전적으로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boo를 어근으로 하여 파생된 말에 boor, boorongkhi, boorog, boorchog 등이 있다. Boo 이 말의 원의는 원 · 타원인데 그것이 남성 생식기 · 웅성 · 남자무당 등으로 인신된다. Idu와 boo는 의심할 나위도 없이 몽골족의 샤만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원 몽골어로서, idu와 boo는 몽골족샤만교에서 맨 처음으로 남녀의 생식기와 자성 · 웅성을 가리키는 가장 기본적인 대립 · 통일 개념이었다. 몽골족 샤만교 축문 속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샤만교는 일체의 유기와 무기물은 모두 자 · 웅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몽골족 샤만교의 관념 속에는 하늘은 부모요, 땅은 어머니이며, 하늘은 수컷이요, 땅은 암컷이며, 해는 수컷이요, 달은 암컷이며, 철은 수컷이요, 돌은 암컷이다......만약 자세히 구분한다면 무궁무진하다 할 것이다. 암 · 수와 같은 이러한 대립 · 통일 개념은 사먄교의 발전에 따라 점차 추상화 · 형상화 · 상징화되어 모두 일신교로 전화되었다. 최종적으로 고도로 추상화가 된 뒤에 하늘은 웅성(雄性)의 최고신으로 변화가 되었고, 땅은 자성(雌性)의 최고신으로 변화가 되었으며, 그들의 역사발전 과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자 · 웅은 몽골족 샤만교의 기원과 철학의 기초로 인식될 수 있다 할 것이다.

 

                                                                 二. 온우제(溫禺鞮)

 

  《사기(史記) · 흉노전(匈奴傳) 하(下)》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우가 말하기를, "효선황제(孝宣皇帝) · 효원황제(孝元皇帝)게서는 저의 부친이신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어여삐 여겨 장성 이북은 흉노의 차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곳은 온우도왕(溫偶駼王)이 사는 곳으로 저는 거기서 무엇이 생산되는 것인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청컨대 제가 사신을 보내서 좀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6년, 천자는 이윽고 연변 각군의 군사력을 대규모로 징발하여 여러 장수들을 사로로 나누어 변방으로 나아가서 북쪽의 흉노를 치라고 하였다. 남선우가 좌현왕(左賢王) 신(信)을 보내어 태복(太僕) 제동(祭彤) 및 오상(吳裳)을 따라 삭방(朔方) · 고궐(高闕)을 거쳐서 국경으로 나아가 탁야산의고림(皐林) 온우독왕(溫禺犢王)을 치도록 했다."

 

  또 다음과 같은 기록되어 있다.

   "3년, 북선우(北單于)가 다시 우교위(右校尉) 경기(耿夔)에게 패하였다는데 어느 곳으로 달아났는지를 몰랐다. 그 아우 우곡려왕(右谷蠡王) 오제건(於鞮鞬)이 자립해서 단우가 되어, 우온우건왕(右溫禺鞬王) · 골도후(骨都侯) 이하 부중 수천 명을 거느리고 포류해(蒲類海)에서 머물먼서 귀순할 것을 타진해 왔다. 대장군 두헌(竇憲)이 글을 올려 오제건(於除鞬)을 북선우(北單于)로 삼을 요구하자 조정에서는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했다.

 

  《후한서(後漢書) · 명제기(明帝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제동동(祭彤)이 일찍이 남선우 좌현왕 신(信)과 더불어 색방 · 고궐을 나와 탁야산(涿邪山)의 온우독왕(溫禹犢王)을 친 적이 있었다. 변방 구백여 리를 나와 작은 산을 보고 착오가 생긴 것으로 믿고, 이것은 탁야왕(涿邪王山)이구나 하고 말하고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왔다."흉노와 관계 있는 기록 속에서 겨우 온우건(溫禺鞬, 우언 오우 지엔) 하나만 보인다. 행간의 문장으로 보아, "鞬"건자는 분명히 "鞮"자의 잘못된 것이다.  어음상으로 보면 여러 종류의 음사(音寫) 가운데 "禺"자와 "偶"자의 음은 비슷하고, 또 "禺"자와 "禹"자의 음은 특히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여 "禹"자는 "禺"자가 잘못된 것이라 인정될 수 있다. 나머지 세 종류의 음사(音寫)인 온우도(溫偶駼, uenggaudu) · 온우독(溫禺犢, uengiudu) · 온우제(溫禺鞮, uengitutiei) 은 독음상 《몽골비사(蒙古秘史)》의 음사인 왕고척(王古惕, onggud)과 들어 맞는다. 《몽골비사》에서 이 말은 부락 이름으로 출현하였다. 온우제왕(溫우제王)은 저치왕(屠耆王) · 곡려왕(谷蠡王) 등과 더불어 흉노 기타 관직명과 똑 같은 관직명칭이거나 혹은 오게왕(烏揭王) · 오손왕(烏孫王)과 같이 온우제부락의 왕이다. 이러한 것과 무관하게 온우제(溫禺鞮)라는 말은 몽골족 샤만교에서 극히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이다. 온우제(溫禺鞮)는 복수이고, 그 단수형은 온우(溫禺)이며 또 고정되지 않은 자음 n을 가지고 있는 옹곤(翁袞, onggun이다. 따올지 빤자로프 선생은 그의 《흑교, 어떤 사람은 몽골인의 샤만교라고 한다(黑敎或稱蒙古人的薩滿敎)》라는 책에서 초기에는 단순한 조상 숭배였으나 나중에 아와서는 점차 옹군숭배로 변화되었다. 옹군이라고 하는 것은 몽골인들이 숭배하거나 혹은 두려워 하고 있는 죽은 자를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는 것이다. 따올지 빤자로프가 말한 것은 바로 우상숭배요 이는 학계의 홍곤 혹은 온우제숭배에 관해 비교적 보편적인 관점이다. 필자는 옹공 혹은 온우제숭배는 우상숭배와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몽골어의 옹곤 혹은 온우제라는 말은 샤만교 관념에서 매우 의무가 너무 광범한 개념이다. 옹곤수(翁袞樹) · 옹곤패(翁袞壩) · 옹곤산(翁袞山) · 옹곤마(翁袞馬) 등과 같이 일체의 숭배의 대상이 모두 옹곤을 머리에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옹곤 혹은 온우제란 이 개념은 우리가 현재 말하고자 하는 우상, 천지, 귀신, 자연, 선조, 토템 등 일체의 숭배대상이다. 온곤 혹은 온우제는 지위가 높거나 낮다든가, 크거나 작다든가, 구체 혹은 추상적이든가, 유형 혹은 무형 등의 구별이 있어, 예를 들면 하늘은 가장 높고 크며 무형적인 옹곤이요, 땅은 그 다음으로 큰 유형적인 옹곤이요 선조의 우상은 유형적인 옹곤 또는 선조 영혼을 담고 다니는 케리어(載體)는 선조의 영혼의 무형적 옹곤 등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적인 각도에서 몽골족의 샤만교는 개괄적으로 만물에는 영혼이 있고,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관념을 기초로 하는 Panuengiutieism이라 할 수 있다.

 

  《사기(史記) · 흉노열전(匈奴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매년 정월에는 각 부락의 추장들이 단우의 왕정(王庭)에서 소집회를 갖고, 춘제(春祭)를 행한다. 매년 5월께는 용성(龍城)에서 대집회를 성대하게 갖고 그들의 선조 · 천지 · 귀신 등에게 제사를 지낸다. 매년 가을날에는 초원이 누렇고 말들이 살찐 계절을 맞아 대림(대林)에서 커다란 집회를 갖고 인구와 가축들의 수량을 총계를 내서 세금을 매기는 데 편하도록 한다.. ....... 선우는 매일 아침 새벽에 영장(營帳)을 나와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예배를 하고, 저녁에는 달에게 예배를 한다. 그들이 자리에 앉는 방법은 나이 많은 어른이 왼쪽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인용한 글에서 말하는 조상과 천지 · 귀신에 제사를 지낸다거나 해와 달에게 예배를 하는 것은 바로 온우제 숭배라 할 수 있다.

 

 

 

 

 

 

 

<title>匈奴與薩滿教文化</title>

匈奴與薩滿教文化

 

 

 

烏其拉圖(副教授)

010021  中國內蒙古大學蒙古學學院

電子信箱:mjpd@imu.edu.cn

 

【提要】 匈奴是最早出現在漢文史籍上的北方民族之一, 研究匈奴人所操語言是揭開匈奴人語言所屬、族源、族屬等一系列問題的關鍵。復原、考釋匈奴語不僅僅是個語言學問題,它還涉及當時文化的方方面面。本文在復 原、考釋部分匈奴語詞的基礎上對以匈奴官號出現的一些薩蠻教詞語進行分析,旨在闡釋薩蠻教的起源、哲學基礎以及相關的文化內涵。

【關鍵詞】 匈奴 官號 薩蠻教 文化

 

 

在中國北方民族中,匈奴是最早組成國家的民族。「匈奴」這一音寫始見於司馬遷《史記》,可《史記》裡該詞的音寫也並不一致。《史記‧匈奴列傳》云:「唐、虞以上有山戎、獫狁、葷粥,居於北蠻。」[1]關 於獫狁、葷粥,學界較普遍地認為,這是「匈奴」一詞的不同音寫。唐、虞之世荒遠無可稽考,所以匈奴政權的歷史上限是模糊的。匈奴研究中,匈奴人所操語言問 題是國內外學術界一直關注而又未能解決的學術難題。事實上,匈奴人所操語言是揭開匈奴人語言所屬、族源、族屬等一系列問題的關鍵。由於復原、考釋匈奴語詞 不僅僅是個語言學問題,它是涉及當時文化各個方面的綜合性研究,本文在復原、考釋部分匈奴語詞的基礎上[2]對 匈奴語詞中出現的一些薩滿教術語進行了分析。經過復原、考釋,有關薩滿教術語都是以匈奴官號的形式出現的,而且都與蒙古族薩滿教術語完全一致。這說明,匈 奴人篤信薩滿教,其宗教氣氛十分濃厚,匈奴政權可能是政教合一的,至少具有政教合一的色彩。在薩滿教研究中,學界已發現了阿爾泰語系各語族都有一些相同的 名詞術語,甚至有些術語與印第安人薩滿教術語相同或相似,但各語族的薩滿教術語系統並不完全一致。這裡選擇的是以匈奴官號出現的薩滿教術語,這些都屬於蒙 古族薩滿教關鍵名詞。

 

一 休屠

 

《史記‧匈奴列傳》載:「其明年[3]春, 漢使驃騎將軍去病將萬騎出隴西,過焉支山千餘里,擊匈奴,得胡首虜(騎)萬八千餘級,破得休屠王祭天金人。」又載:「其秋,單于怒渾邪王、休屠王居西方, 為漢所殺虜數萬人,欲召誅之。渾邪王與休屠王恐,謀降漢,漢使驃騎將軍往迎之。渾邪王殺休屠王,並將其眾降漢,凡四萬餘人,號十萬。」[4]從兩條引文可知,「休屠」這一音寫顯然是匈奴的王號。筆者通過對該詞的語音分析後發現,這是蒙古族薩滿教常用術語,而且在匈奴時代已發生了音變。發生音變後的一些詞語不僅與《蒙古秘史》裡的相關詞語基本一致[5],而且與現代蒙古語書面語的相關詞也基本一致,語音上的主要區別僅僅在於有無古代語言的詞首「h」音。

《漢書‧匈奴傳下》載:「單于鹹立五歲,天鳳五年[6]死,弟左賢王輿立為呼都而屍道皋若鞮單于。匈奴謂孝曰『若鞮』,自呼韓邪後,與漢親密,見漢謚帝為『孝』,慕之,故皆為若鞮。呼都而屍單于輿既立,貪利賞賜,遣大且渠奢與雲、『雲』女弟當於居次子醯櫝王俱奉獻至長安。」[7]後漢書‧卷八十九‧南匈奴列傳第七十九》載:「單于長立二十三年薨,單于汗之子宣立。伊屠於閭鞮單于宣,元和二年立。」[8]漢文史籍中出現的「休屠」[9]、「呼都」[10]、「醯櫝」[11]等都是發生音變後的同一個詞,《蒙古秘史》中,該詞的詞首「h」音脫落後音寫為「亦都兀惕」[12]、「額禿格捏」[13]、「斡脫堅」[14]等。「亦都兀惕」一詞在《蒙古秘史》裡是以人名出現的,該詞與突厥官號「亦都護」[15]是同一個詞,該官號和人名無疑因襲了匈奴官號「休屠」。該詞在現代蒙古語書面語中仍保存了古老的讀音。現代蒙古語書面語中,該詞有三種讀法:idugenedugenutugen,指大地女神或女薩滿。在現代蒙古語口語中讀作udugan,指女薩蠻,又指接生婆。現代蒙古語中,作為人名出現時,其詞根和原始詞義顯得十分清楚,現代蒙古人中經常有IduheshigEduheshig等人名。「Idu」、「edu」是同一個詞的不同音變,意為「大地女神」,「iduheshig」、「eduheshig」意為「大地女神的賜予」。因此,「休屠王」可以理解為大地之王或國土之王,「亦都兀惕」、「亦都護」可以理解為大地女神的人們或大地女神的子孫。

Idugen」、「edugen」、「utugen 指大地、女薩滿,「boo」指男薩滿。把兩者加以比較就可發現:詞根「idu」、「edu」、「utu」指雌性,「boo」指雄性;「idu」、「edu」、「utu」指女性生殖器,「boo」指男性生殖器。這兩個詞是非常古老的原蒙古語詞,現代蒙古語裡以這兩個詞為詞根的派生詞相當多,如eduruduredugeedugehuutuhuutugudugehuutugus等。「Idu」、「edu」、「utu」的原意為最初、最早、原初、發生、發源、發源地,其引申義為大地女神、女薩滿、女性生殖器、接生婆。從其語義可以看出,蒙古族薩滿教在遠古時期把女性生殖器看成是人類繁衍的源頭,其性崇拜應源於對女性生殖器的崇拜。人們一般認為,蒙古族薩滿教術語裡,「boo」一詞是專門指男薩滿的。實際上,以「boo」為詞根的派生詞有boorboorongkhiboordengboorogboorchog等。「Boo」一詞的原意為圓、橢圓,其引申義為男性生殖器、雄性、男薩蠻。「Idu」和「boo」無疑是蒙古族薩滿教產生之前就有的原蒙古語詞,所以「idu」和「boo」 是蒙古族薩滿教最初的指男女生殖器和雌性雄性的最基本的對立統一的概念。從蒙古族薩滿教祝文裡可以清楚地看出,薩滿教把一切有機和無機物都分為雌、雄。蒙 古族薩滿教觀念裡,天為父,地為母,天為雄,地為雌,日為雄,月為雌,鐵為雄,石為雌……如果仔細分辨,則無所窮盡。「雌」、「雄」這一對立統一概念隨著 薩滿教的發展逐漸抽像化、形象化、象徵化,並向一神教轉化。最終,被高度抽像化以後,天變成了雄性的最高神,地變成了雌性的最高神,完成了它的歷史發展進 程。從這個意義上可以認為,雌、雄是蒙古族薩滿教的起源和哲學基礎。

 

二 溫禺鞮

 

《漢書‧匈奴傳下》[16]載:「單于曰:『孝宣、孝元皇帝哀憐父呼韓邪單于,從長城以北匈奴有之。此溫偶駼王所居地也,未曉其形狀所生,請遣使問之。』」《後漢書‧南匈奴傳》[17]載:「十六年[18], 乃大發緣邊兵,遣諸將四道出塞,北征匈奴。南單于遣左賢王信隨太僕祭彤及吳棠出朔方高闕,攻皋林溫禺犢王於涿邪山。」又載:「三年,北單于復為右校尉耿夔 所破,逃之不知所在。其弟右谷蠡王於除鞬自立為單于,將右溫禺鞬王、骨都侯已下數千人止蒲類海,遣使款塞。大將軍竇憲上書,立於除鞬為北單于,朝廷從 之。」《後漢書‧明帝紀》[19]載: 「彤嘗與南單于、左賢王信出朔方高闕塞擊溫禹犢王於涿邪山。出塞九百餘里,見小山,為信所誤,云『是涿邪王山』,無所得而還。」有關匈奴的記載裡,「溫禺 鞬」僅此一見。從行文看,「鞬」字顯然是「鞮」字之訛。從語音上看,幾種音寫裡的「禺」字與「偶」字音近,而「禺」字與「禹」字音殊形近,可認為「禹」字 為「禺」字之訛。所剩三種音寫「溫偶駼」[20]、「溫禺犢」[21]、「溫禺鞮」[22]在讀音上與《蒙古秘史》的音寫「汪古惕」[23]吻 合。在《蒙古秘史》中,該詞以部落名稱出現。所以,匈奴的「溫禺鞮」一詞有兩種可能:一,為匈奴官號;二,為溫禺鞮部落名稱。「溫禺鞮王」與屠耆王、谷蠡 王等匈奴其它官號一樣,是官職名稱,或者是與烏揭王、烏孫王一樣,是溫禺鞮部落王。不管怎樣,「溫禺鞮」一詞是蒙古族薩滿教極其重要的概念之一。「溫禺 鞮」為複數,其單數為「溫禺」[24]或帶有不固定輔音「n」的「翁袞」[25]。道爾吉‧班札羅夫先生在其《黑教或稱蒙古人的薩滿教》一書中說:「初期是單純崇拜祖先,到後來逐漸變成了崇拜翁袞。所謂翁袞,是蒙古人祭拜他們所尊敬或恐怖的死者對象。」[26]道爾吉‧班札羅夫所說的就是偶像崇拜,這是學界關於翁袞或溫禺鞮崇拜較為普遍的觀點。筆者認為,翁袞或溫禺鞮崇拜不等於偶像崇拜。

蒙 古語的「翁袞」或「溫禺鞮」一詞在薩滿教觀念裡是非常寬泛的概念。如翁袞樹、翁袞壩、翁袞山、翁袞馬等,一切崇拜的對象都可能冠之以「翁袞」。所以,「翁 袞」或「溫禺鞮」這一概念包含我們現在所說的偶像、天地、鬼神、自然、先祖、圖騰等一切崇拜的對象。翁袞或溫禺鞮有地位的高低、大小、具體和抽像、有形和 無形等區別,比如,天為最高、最大、無形的翁袞,地為第二大、有形的翁袞,先祖的偶像為有形的翁袞又是先祖靈魂的載體,先祖的靈魂為無形的翁袞,等等。所 以,我們可以從哲學角度把蒙古族薩滿教概括為以萬物有靈、靈魂不滅觀念為基礎的「泛溫禺鞮主義」。

《史記‧匈奴列傳》載:「歲正月,諸長小會單于庭,祠。五月,大會蘢城,祭其先、天地、鬼神。秋馬肥,大會蹛林,課校人畜計。……而單于朝出營,拜日之始生,夕拜月。其坐,長左而北向。」[27]引文裡所說的祭其先、天地、鬼神、拜日、拜月就是溫禺鞮崇拜。

 

三 骨都侯

 

 《史記‧匈奴列傳》載:「置左、右賢王,左、右谷蠡王,左、右大將,左、右大都尉,左、右大當戶,左、右骨都侯。……左右賢王、左右谷蠡王最為大國,左、右骨都侯輔政。」[28]《後漢書‧南匈奴傳》載:

 

異 姓大臣:左、右骨都侯,次左、右屍逐骨都侯,其餘「日逐」、「且渠」、「當戶」諸官號各以權力優劣、部眾多少為高下次第焉。單于姓虛連題;異姓有呼衍氏、 須卜氏、丘林氏、藍氏四姓,為國中名族,常與單于婚姻。呼衍氏為左,藍氏、須卜氏為右,主斷獄聽訟,當決輕重,口白單于,無文書簿領焉。[29]

 

從漢文史籍看,「骨都侯」和「屍逐骨都侯」無疑是匈奴官號,這個音寫顯然考慮了音譯和意譯,有意用了「侯」字,所以不能把「侯」字作字面上理解。從引文可知,四異姓骨都侯的主要職責是「主斷獄聽訟」,所以都是斷事官。

關於骨都侯,《集解》曰:「骨都,異姓大臣。」《索隱》按:「《後漢書》云:『骨都侯,異姓大臣。』」《通鑒》胡註:「韓氏骨都侯、當於骨都侯、呼衍骨都侯、郎氏骨都侯、粟籍骨都侯,凡五。」「骨都」[30]為詞根形音寫,「骨都侯」[31]為帶有粘附成份的音寫。「骨都」,《秘史》作「忽圖」[32],「骨都侯」作「忽都忽」[33]。 在《蒙古秘史》中,以「忽圖」作詞根的人名相當多。「骨都侯」顯然是薩滿教的固有名詞,其意很抽像,可理解為福祿、受賜。該詞與薩蠻教天、地兩神崇拜緊密 相連,可擴展為受天賜予者、受地賜予者。匈奴人用於官號的「骨都侯」一詞在十三世紀以後的可汗號、喇嘛教以及人名中被廣泛使用,而且在喇嘛教和人名中沿用 至今。

 

四 胡

 

《漢書‧匈奴傳上》載:「單于遺漢書云:『南有大漢,北有強胡。胡者,天之驕子也。』」[34]從單于所遺書信可知,「胡」是匈奴人自己的音寫,而且,匈奴單于把「胡」明確地解釋為「天之驕子」。[35]這裡出現的「胡」無疑是蒙古語「ku」的音寫,意為子。《漢書‧匈奴傳上》載:「單于姓攣鞮氏,其國稱之曰『撐犁孤塗單于』。匈奴謂天為『撐犁』,謂子為『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言其象天單于然也。」[36]《史 記‧匈奴列傳》索隱引《玄晏春秋》曰:「士安讀《漢書》,不詳此言,有胡奴在側,言之曰:『此胡所謂天子』,與古書所說附會也。」「胡者」既然是「天之驕 子」,那麼在這裡為何又把「孤塗」解釋為「子」呢?士安對這一點感到茫然。胡奴言的「此胡所謂天子」一語值得玩味,他顯然懂得「胡」與「孤塗」都是「天 子」之意,但對「胡」、「孤」為詞根的音寫、「塗」字為粘附成份的音寫,當時是不可能解釋清楚的。「子」在任何語言裡都是再平常不過的詞,不可能弄錯, 《漢書》和胡奴的解釋都是準確無誤的。從其語音和解釋可以斷定,「塗」[37]字只能是蒙古語名詞複數粘附成份「d」、「t」的音寫。「胡」、「孤」為詞根「ku」的音寫,意為子,「孤塗」為「子」之複數。從古至今,蒙古語族的「ku」和突厥語族的「ogul」在語音和語義上幾乎沒有發生任何變化,所以,「胡」為操蒙古語族諸部落的自稱當不容置疑。

關於自稱為「胡」[38]的 問題,往往不被人們理解,這就需要從蒙古族薩蠻教的角度加以考察。以往,學界對「胡」考來考去,從未把聚光點對準天地,沒有從蒙古族薩蠻教的角度去考察。 上面談到過蒙古族薩蠻教在其發展過程中天變成了雄性的最高神、地變成了雌性的最高神,道爾吉‧班札羅夫在其《黑教或稱蒙古人的薩蠻教》一書中有過較精闢的 論述。他說:「實際上,他們[39]是把天看作自然界的陽性根源,而把地看作是陰性根源。前者賦予生命,後者賦予形體。他們把前者叫做父,把後者叫做母。」[40]把天稱為「父」,把地稱為「母」,這一古老的薩蠻文化內容在蒙古族中至今仍完好地保存著。在蒙古族薩蠻教觀念裡,人類是上蒼和大地之子。以《蒙古秘史》為代表的中世紀蒙古語裡,「ku[41]一詞無性別之分;現代蒙古族牧民口語裡,「ku」一詞也無性別之分;匈奴時代的蒙古語中,「ku」一詞更不可能有性別之分。該詞既是蒙古語裡的常用詞,又是從薩蠻教角度泛指人——天子、天之驕子。古漢語中,「天子」指統治天下之帝王,匈奴人之「胡」顯然無高下次第之分。後來,漢文史籍把當時操蒙古語族的、從薩蠻教觀念出發的自稱「胡」逐漸變成了對北族的泛稱。

 



 

[1] 《史記‧匈奴列傳》,中華書局點校本。

[2] 請參閱拙作《匈奴人語言所屬初探》(《內蒙古大學學報》1998年第四期)、《部分匈奴語詞之復原考釋》(《內蒙古大學學報》1999年第四期)。

[3] 即元狩二年,公元前121年。

[4] 請參閱拙作《匈奴人語言所屬初探》(《內蒙古大學學報》1998年第四期)、《部分匈奴語詞之復原考釋》(《內蒙古大學學報》1999年第四期)。

[5] 《蒙古秘史》是13世紀中葉寫成的著作,明代各版本中都用了一套統一的漢字注音方法。然而,由於漢字字音的變化,不少注音已經無法在現代漢語中得到體現,因此,為避免誤導,本文的相關引文刪除了《蒙古秘史》中的部分注音漢字。

[6] 公元18

[7] 《漢書‧匈奴傳下》,中華書局點校本。

[8] 《後漢書‧南匈奴列傳》,中華書局點校本。

[9] Xieudu,蒙古中帶有詞首「h」音。

[10] Xutu,蒙古中帶有詞首「h」音。

[11] Xieiduk,蒙古中帶有詞首「h」音。

[12] 《蒙古秘史》238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13] 《蒙古秘史》113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14] 《蒙古秘史》201節、255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15] 請參閱韓儒林先生《穹廬集‧突厥官號考釋》,上海人民出版社1982年版。

[16] 中華書局點校本。

[17] 中華書局點校本。

[18] 公元73

[19] 中華書局點校本。

[20] uengaudu

[21] uengiudu

[22] uengiutiei

[23] onggud。《蒙古秘史》202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24] onggu

[25] onggun

[26] 道爾吉‧班札羅夫 []《黑教或稱蒙古人的薩蠻教》,內蒙古大學歷史系蒙古史研究室編印《蒙古史研究參考資料》第十七輯,1965年版。

[27] 《史記‧匈奴列傳》,中華書局點校本。

[28] 《史記‧匈奴列傳》,中華書局點校本。

[29] 《後漢書‧南匈奴傳》,中華書局點校本。

[30] kuettu

[31] kuettgeu

[32] kutu。《蒙古秘史》124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

[33] 《蒙古秘史》135節,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34] 《漢書‧匈奴傳上》,中華書局點校本。

[35] 匈奴人不可能連自己的日常用語都解釋得面目全非。

[36] 《漢書‧匈奴傳上》,中華書局點校本。

[37] du

[38]

[39] 指蒙古人。

[40] 《蒙古秘史》頁202,額爾登泰、烏雲達賚校勘本,內蒙古人民出版社1980年版。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