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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살수(薩水)란 성(城) 주변을 흐르던 자연 해자(垓子)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6.

살수(薩水)를 많이 말하기를 청천강이라고 합니다. 그 근거로는 아래 삼국사기 기록입니다.

삼국사기 상주(尙州)에 속한 군현 중에
삼 년군은 본디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보령군이다. 영현이 두 개가 있다. 청천현은 본디 살매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三年郡 本三年山郡 景德王改名 今保齡郡 領縣二 淸川縣 本薩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살매(薩買)란 이두자로 푸른물, 즉 청천(淸川)이란 뜻을 가진다는 것이죠.
그 러나 신라의 상주(尙州)가 현재의 청천강 유역이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살매(薩買)가 청천(淸川)이라고 김부식이 써 놓고서는 살수(薩水)는 어딘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김부식이 어리석지는 않았습니다. 삼국사기에서 살수(薩水)를 모르는 지역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여기저기 헷갈리게 기록되었다는 말이며 이것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의 축약형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록을 하나씩 살펴봅시다.(제가 한문이 짧아 대충번역하니까 양해를 구합니다)

欽定盛京通志卷二十八
薩水 新唐書男建以兵五萬襲扶餘李勣破之薩賀水上. 明一統志薩水在鴨渌江東平壤城西. 按薩水即薩賀水應在邉界
살수: 신당서에서 기록하기를 남건이 5만의 병사로 부여성을 엄습하였고 이적이 살하수(薩賀水)에서 파하였다. 명일통지에서 기록하기를 살수(薩水)는 압록강 동쪽 평양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안: 살수 즉 다시말해 살하수는 당연히 변두리에 있어야 한다.

성경통지에서 살수를 살하수와 같은 강일수도 있다고 보고 있는것입니다. 기록에 보인 살하수와 살수는 그 위치가 비록 다르지만 부여성과 평양성 주변에 있는 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살하수에 대한 기록을 찾아봅시다.

欽定大清一統志巻四百二十一
薩賀水在開州西南一作薛賀水唐乾封三年李勣等伐髙麗别將薛仁貴克扶餘城髙麗趨救與李勣遇於薛賀水合戰勣大破之追拔大行城是也舊志薛賀水出北山中東南流入鴨渌江
살 하수는 개주 서남에 있다. 혹 설하수(薛賀水)라고 하기도 한다. 당 건봉 3년 이적 등이 고구려를 벌할때 설인귀가 부여성을 이기고 이적과 같이 그들을 쫓아 설하수(薛賀水)에서 이겼다. 옛기록에 말하기를 설하수(薛賀水)는 북산(北山) 가운데서 나와 동남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서는 살하수(薩賀水)를 설하수(薛賀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혹시 賀자를 빼고 설수(薛水)라고 기록한 곳이 있을까 하여 찾아봤습니다. 있더군요.

册府元龜卷一百三十五
宇文述等敗績於薛水
우문술 등이 설수(薛水)에서 패하였다.

이 상의 기록으로 보아 설수는 살수와 분명히 같은 곳이고, 설하수는 살하수와 분명히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위 기록에 보인 압록강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요하라면 개주 서남에 있는 살하수는 분명 압록강 동쪽에 있던 살수와 같은 강으로 볼수있습니다. 그리고 위 기록에 보인 설수 살수 살하수 설하수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성곽에서 멀지 않다는 것이죠. 수서의 기록에 보면 東濟薩水去平壤城三十里(동으로 살수를 건너 평양성까지 30리)라고 한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薩 혹은 薩賀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을까 하여 살하(薩賀)와 발음이 비슷한 살합(薩哈)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欽定金史語解卷八
薩哈小圍也卷一作撒改卷二作撒喝卷四作三合卷六十作撒海併改
살합(薩哈)은 작게 둘러쌓는 것(小圍)을 말한다. 권1에서 薩을 撒이라 썼다. 군1에서 撒喝이라 했다. 권4에서는 삼합(三合)이라 했다. 권6에서는 撒海이라 했는데 모두 고쳤다.

여기서부터 살수 혹은 살합수는 도성을 둘러싸는 강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평양성은 앞으로 패수(沛水 혹은 浿水)가 흐릅니다. 아마 살수(薩水)란 패수 주위를 흐르던 강으로 그 말 뜻으로부터 자연해자를 이루던 강으로 주 방어선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기록이 역시 지나의 사서에 보입니다. 바로 현재의 산동성 서남쪽 서주(徐州) 주변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선 제가 첨부한 지도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위 지도는 청나라때 지도입니다. 沛라고 표시된 패현에 남쪽으로 흐르는 강인 포수(包水)는 엄밀히 말하면 패수(沛水)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오른쪽으로 설성(薛城, 薩城)이 보이고 이곳에 흐르는 강이 바로 살수(薩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 사수(泗水)가 보입니다.

 

위 지도는 현대에 만든 중국역사지도집입니다. 설성(薛城)에 흐르던 강을 명확하게 살수(薩水, 薛水)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이 강들의 중심에 조양호(朝陽湖, 지도에는 照陽湖)가 보입니다. 사수, 살수, 패수 등이 보이는 곳이 꼭 삼국사기 평양성을 보는 듯 합니다. 아래 기록을 봅시다.

明一統志卷十八
泡水在沛縣西即豐水循泗亭驛前入于泗
포수(泡水)는 패현(沛縣) 서쪽에 있고...생략

漷水在沛縣東北出山東滕縣界流入朝陽湖達于薛水
형수(漷水)는 패현(沛縣) 동쪽에 있는데 산동의 등현(滕縣) 경게에서 출발하여 살수(薛水)에서 조양호(朝陽湖)로 들어간다.

薛水在沛縣東出滕縣之境西流會漷水自金溝上闡入于泗
살수(薛水)는 패현 동에 있는데...생략

즉, 살수란 엄밀히 말하면 살합수(薩哈水)이어야하며 이 강은 도성의 주변을 흘러 적의 침입을 막아내던 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양성이 이전함에 따라서 같이 그 이름이 이동한 패수(沛水, 浿水)와 마찬가지로 보통명사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청천강(靑川江)은 더 이상 살수(薩水)라고 해서는 안되며 삼국사기의 기록 그대로 살매(薩買)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살수(薩水)와 살매(薩買)는 다른 것입니다.

끝으로 왜 명나라때 우리영토도 아니던 산동성 등지에 저렇게 우리만의 강이름이 존재하느냐를 생각해보면... 이곳은 아마도 고조선 시절 우리의 영토이었는데 그 지역의 강이름이 그대로 명나라때까지 이어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은 고구려시절 살수대첩이 회수(淮水)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 산동성 등지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의심도 해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강회(江淮)는 바로 회수(淮水)인 것일수도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