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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연구

부소의 어원

by 부르칸 2013. 8. 27.

松의 고대말은 "부소"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아래 간단한 구절이다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孝昭王 三年築城 景德王因之

    송악군은 원래 고구려 부소갑이었다. 효소왕 3년에 성을 쌓고 경덕왕이 따라 불렀다. 


松岳(송악)이 원래 扶蘇岬(부소갑)이었으므로 한자를 차용한 부소(扶蘇)가 곧 松이란 논리이다. 


경덕왕은 한자의 음을 차용한 고대지명들을 漢譯하여 바꾸었다. 

과연 경덕왕이 '부소'의 뜻이 松이기 때문에 송악이라고 바꾸었을까?


고려사를 보자


    時新羅監干八元 善風水 到扶蘇郡 郡在扶蘇山 北見山形勝而童 告康忠曰 若移郡山南 植松 使不露巖石 則統合三韓者出矣 於是康忠與郡人徙居山南 裁松遍嶽 因改名松嶽郡

    그 때 신라(新羅) 감간(監干) 팔원(八元)이라는 사람이 풍수에 관한 방술을 잘 알았는데 마침 부소군(扶蘇郡)에 왔었다.부소군은 부소산 북쪽에 있었다.팔원이 부소산의 형세는 좋으나 나무가 없는 것을 보고 강충에게 말하기를 만일 부소군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나타나지 않도록만 하면 거기서 삼한(三韓)을 통일하는 자가 출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강충은 군 사람들과 함께 산 남쪽으로 이사를 하고 전 산에 소나무를 심어 군명을 송악군(松嶽郡)으로 고쳤다.


'부소'의 뜻이 松이 아니라 그곳에 소나무를 심었기에 송악(松嶽)이라고 고친것이다. 


그렇다면 '부소'는 무슨뜻일까?


고구려에도 부소라는 지명이 있고 

백제를 건국한 지역에 부아악이 있었으며

남부여 땅에도 扶蘇之陽泗泚河라는 동문선의 구절로 봐서 부소산이 있었고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한다.

제왕운기에 단군이 비서갑에서 마누라를 취하였다고 하였는데 '부소'와 '비서'는 그 음이 비슷한 바가 있다. 

추모왕이 도망나온 북부여을 '조리비서'라고 하였다 했다.

신지비사에 부소량 오덕지 백아강 가운데 부소량이 저울대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각 나라의 건국지마다 '부소' 또는 '비서'가 있었던 것은 이들이 松의 뜻이 아니라 무슨 신성한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