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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백제 초기 영토는 대릉하 부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17.
백제는 초기에 마한의 영토를 분양받았습니다.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보입니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 安之,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신채호선생의 동서양자 상환의 주장에 따라 동북은 아마 서북일 것입니다. 백제는 초기에 마한 땅 서북쪽 100리의 땅에서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요서지역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를 증거할 만한 지역이 삼국사기에 보입니다. 

삼국사기 온조왕조를 읽어보면
十一年, 夏四月, <樂浪>使<靺鞨>襲破<甁山>柵, 殺掠一百餘人. 秋七月, 設<禿山>․<狗川>兩柵, 以塞<樂浪>之路.
11년 여름 4월,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의 목책을 습격해서 파괴한 다음 1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다. 가을 7월, 독산과 구천 두 곳에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하였다.

여기서 구천狗川이 어디인지 찾아보면 되죠. 구수狗水를 찾아봤습니다
欽定熱河卷七十二, 水四, 分隷各屬諸水, 承德府
狗水 元一統志狗水在惠州東一百八十里源自指頭山崖出東流一百二十里入利州界合於凌河按此當發源平泉州(即八溝廳)南境東流入建昌縣境
구 수는 원일통지에 말하기를 惠州의 동쪽 180리에 있다고 했다 그 강은 지두산(指頭山)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120리를 흘러 리주(利州)로 들어가 릉하(凌河)와 합한다. 생각건대 그 강은 당연히 평천주平泉州에서 발원하여 그 남쪽 땅에서 동으로 흘러 건창현(建昌縣) 땅으로 들어간다.

마한 땅의 위치와 구수(狗水)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구수(狗水)는 삼국사기 구천(狗川)이 분명합니다. 이 강은 대릉하 부근에 있었던 것이죠.

그 리고 또한가지  구수(狗水)의 발원지인 지두산(指頭山)이 어디인지 봅시다. 지두산(指頭山)은 제가 볼때 이두자입니다. 指는 손가락이란 말이며 頭는 머리라는 뜻이죠. 指는 뜻의 반절을 훈독하여 "소"가 되므로 指頭山은 따라서 소머리산으로 읽어야하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이 소머리산이 또한 백제와 낙랑과의 경계에 존재하는 기록이 보입니다. 

온조왕이 11년에 구수(狗水)에 목책을 세운 뒤 7년 뒤인 18년에 소머리산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삼국사기 온조왕조에 보면 

十 八年, 冬十月, <靺鞨>掩至, 王帥兵, 逆戰於<七重河>, 虜獲酋長<素牟>, 送<馬韓>, 其餘賊盡坑之. 十一月, 王欲襲<樂浪><牛頭山城>, 至<臼谷>, 遇大雪, 乃還.
18년 겨울 10월, 말갈이 습격해왔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칠중하에서 그들과 싸웠다. 추장 소모를 생포하여 마한에 보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생매장하였다. 11월,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을 습격하기 위하여 구곡까지 갔다. 그러나 눈이 크게 내렸으므로 되돌아왔다.

우두산(牛頭山) 이것은 소머리산입니다. 지두산(指頭山)도 소머리산이죠. 다른 산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마한의 영토가 요서까지인점,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천(狗川)이 구수(狗水)라는 점, 그리고 구수(狗水)의 발원지가 지두산(指頭山)인데 구천(狗川)에 목책을 세우고 7년 뒤에 우두산(牛頭山)을 습격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두산(牛頭山)과 지두산(指頭山)은 같은 산입니다. 

이 모두를 종합하여 볼때 백제가 초기에 낙랑과 싸운것은 최씨낙랑국이 아니라 한나라 낙랑군이며 이 위치는 대릉하 서쪽으로 생각되며 이 곳에 바로 백제의 초기영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