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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도 수모(索摩)라고 불리던 소도(蘇塗)가 있었다

by 부르칸 2015. 4. 4.

서낭당은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제사지내던 곳으로 지금도 그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낭당은 아마 삼국지에 기록된 소도(蘇塗)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도가 만주족에게도 있음을 제가 이제야 발견하였습니다.

欽定盛京通志卷一百五
三韓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號為天君又立蘓塗建大木以懸鈴鼓事鬼神(後漢書
謹按滿洲祭祀典禮家各設立司祝與此所云以一人主祭者相合建大木之儀, 又與滿洲立杆祭祀之儀相合滿洲語稱神杆為索摩與蘓塗音亦相近又滿洲祭祀有神鈴及腰鈴手鼓等與此所云鈴鼓亦合但並不懸於神杆惟夕祭儀有大小鈴七枚繫於樺木桿梢懸於架梁之西與史所載有不同耳)
한문이 짧아서 대충 해석합니다.
삼 한 모든 나라는 각기 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그를 일컬어 천군이라 한다. 또한 소도를 건립하여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에 제사한다(후한서에서 인용. 근안: 만주제사전례에서는 각 집마다 사제를 세워 한 사람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것과 큰 나무를 세우는 풍속이 삼한과 비슷하다. 만주어로 신령스런 나무(神杆, 신간)를 수모(索摩, 만주어발음을 몰라 지나발음으로 했습니다)라 하는데 소도(蘓塗)와 그 음이 비슷하다.... 이하 번역 못합니다^^

欽定滿洲祭神祭天典禮卷三
髙麗布神旛懸於神杆之上
고려는 신령스런 깃발을 펴서 신령스런 나무(神杆, 신간)의 위에 매단다.

위로부터 삼한방언 소도(蘓塗)를 만주방언으로 수모(索摩)라고 하며 이 뜻은 신령스런 나무((神杆, 신간)라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런데 杆을 그저 "나무" 혹은 "막대" 혹은 "기둥"이라만 해석할수있지만, 강희자전을 찾아보니 좀 다릅니다.

杆...木名玉篇檀木也...
나무이름인데 박달나무이다.


정 말 만주족과 삼한에서 나무를 세워 제사를 지낼때 박달나무를 세워 제사를 지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檀과 杆, 이것은 고조선때 제정일치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때 임금은 단군(檀君)이었습니다. 단군이란 돌제단이 아닌 나무제단에 제사를 지내던 군주이었기 때문에 壇君이라 하지 않고 檀君이라고 한 것이며 이 檀君은 바로 고조선의 최고통치자이자 汗 또는 干이었던 것입니다. 즉, 고조선에서는 檀을 박달나무라는 의미로 보지 않고 신단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의미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후대에 여진족에게 와서는 신령스런 나무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바로 최고통치자이므로 나무(木)와 간(干)을 더하여 杆이라 하였고, 이 나무에서 제사를 지내던 干이 바로 檀君이므로 이것이 강희자전에 의미가 와전되어 박달나무라하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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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절귀(絶句)와 내용이 얽혀있어서 해석이 어려운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좌계는 다음과 같이 절구(絶句)하고, 문장을 셋으로 분류했습니다.

1) 又滿洲祭祀 有神鈴及腰鈴手鼓等與此 所云鈴鼓亦合
2) 但並不懸於神杆惟夕祭儀
3) 有大小鈴七枚繫於樺木桿梢 懸於架梁之西與史 所載有不同耳

1) 又滿洲祭祀 有神鈴及腰鈴手鼓等與此 所云鈴鼓亦合 의 해석

또한 만주(滿洲)의 제사(祭祀)에서는 ‘신령(神鈴)’과 ‘요령(腰鈴)-허리에 차는 딸랑이’, ‘손북’등과 (앞서서 말한 것을 함께) <영고(鈴鼓)>라고 일컫는 (제사때) 역시 합친다.

2) 但並不懸於神杆惟夕祭儀

단(但) 이때에는 신간(神杆)-신성(神聖)스런 난간을 뜻함 -에 저녁 의례(儀禮)때에는 함께 진설(陳設)하지 아니한다.

3) 有大小鈴七枚繫於樺木桿梢 懸於架梁之西與史 所載有不同耳의 해석

대소(大小)의 ‘작은 딸랑이’들이 7매(枚)가 자작나무 방패 끝에 묶여있는데, 이를 시렁(난간)서쪽에 사(史)와 -샤만(shaman)을 뜻함-함께 실려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의미추정:

생 각건대, 큰 나무를 세워서 딸랑이와 북을 매달아 놓고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은 ‘고정적’으로 매달아 둔 것이고, 영고(迎鼓)때에는 개인과 샤만들이 지니고 있는 신령(神靈), 요령(腰鈴), ‘손 북’등을 전부 이 입대목(立大木)한 곳에 합쳐서 ‘마치 X-mas tree)처럼 성대(盛大)하게 치장한듯 합니다.

이는 낮에 태양신의 ‘빛’에 의해서 축복받는 여러 소리나는 도구로써 밤새도록 놀게 하기 위한 방법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녁 때가 되면, 이를 회수해서 밤새도록 가무(歌舞)음주(飮酒)하면서 이런 흥(興)을 돋고는 의례를 하기 위해 치운듯 합니다.

그 런데, 이처럼 밤새도록 가무 음주하더라도, 입대목(立大木)한 옆에 가로질러 있는 시렁(난간) 서쪽에는 자작나무 방패 끝에 대소의 ‘작은 딸랑이’가 7개 달린것 - 아마도 북두칠성과 관련된듯-과 ‘조용히 기도만 하는 별도의 샤만’이 조용히 있는 것이, 평상시와 다르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달빛과 북두칠성’의 빛에 의해서 축복받는 무구(巫具)로써, 다음날 낮에 행사를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올린 사료(史料)는 영고(鈴鼓)의 구체적 풍경을 그려내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혹 해석에 이견(異見)이 계시거나, <의미추정>을 달리 하시는 분은 ‘남김없이’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영고(迎鼓) - 제천의례의 단서(端緖)를 읽을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을 올리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