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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영토는 전라도에서 요서지역까지 4천리 영토

by 부르칸 2015. 4. 6.

제왕운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王來欲渡蓋斯水(왕래욕도개사수) : 주몽왕이 도망하여 개사수를 건너려 하니
魚鼈化作橋梁橫(어별화작교량횡) : 고기와 자라가 다리로 변하여 가로 놓였다
漢元立昭二甲申(한원립소이갑신) : 한나라 원제 입소 이년 갑신에
開國馬韓王儉城(개국마한왕검성) : 마한의 왕검성에 개국하였다

立昭는 아마도 建昭라고 생각됩니다. 기원전 37년이죠.

삼국유사에도 고구려는 마한이라고 최치원의 말을 인용합니다.
崔致遠云馬韓麗也辰韓羅也
마한은 고구려이고 진한은 신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보입니다.

1. 고구려는 마한의 중심지에서 건국되었다.
2. 왕검성은 꼭 고조선 진한의 수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오늘날 수도라는 말일 것이다.

이 두가지를 짤막하게나마 생각해보면

1) 고구려 건국지, 졸본부여, 낙랑군 조선현, 마한 왕검성
위 세 지역은 다 비슷한 지역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많습니다.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건국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강단에서는 이를 현재 환인지역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난하 부근입니다.

구당서 권119상 동이열전 고구려전
“高麗者,…… 其國都於平壤城, 卽漢樂浪郡地故也”
고구려는 그 도읍이 평양성인데 즉 한 낙랑군 옛 땅이다.

졸본부여도 고조선 서쪽 북경근처입니다.

규원사화
封仙羅於盎肅之地, 後數年, 又封道羅東武, 以表其功, 卽後之沃沮沸流卒本(朝)諸國也.
선라(仙羅)를 앙숙의 땅에 봉했다가 그 몇 년 뒤에 또 도라(道羅)와 동무(東武)를 봉하여 그 공덕을 표창하니, 곧 뒤에 옥저(沃沮) 비류(沸流) 졸본(卒本) 등의 뭇 나라들이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初虞舜置幽營二州於藍國之隣帝遣兵征之盡逐其君封東武道羅等以表其功
제순유우(帝舜有虞)가 유주 영주의 두 주를 람국(藍國)의 이웃에 두었기 때문에 단제께서 병사를 보내어 이를 정벌하여 그 왕들을 모두 다 쫓아내시고, 동무(東武)와 도라(道羅) 등을 그곳의 제후로 봉하여 그 공을 표창하였다.

규 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조합하면 도라 동부는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고 그 공을 표창하기 위해 유주와 영주의 땅에 옥저 비류 졸본의 제후로 봉하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건국하였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초기 건국지는 유주와 영주땅입니다. 대량 영정하 난하 근처죠. 그리고 제왕운기 기록에 따라 이곳은 마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마한이 낙랑 땅 근처라는 기록도 보입니다. 아래 기록의 낙랑을 낙랑국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낙랑군을 말하는 것이고 마한 땅이 그곳까지 미쳤다는 기록입니다.

《後漢書》 卷 85 東夷列傳 韓傳
馬韓在西有, 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마한은 서쪽에 있어 54국이 있고 그 북쪽은 낙랑군 남쪽은 왜와 접하였다.

고구려가 낙랑군 근처라는 기록도 보입니다.
《後漢書》 卷 85 〈東夷列傳〉
高句麗傳 高句驪 在 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 濊 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地方二千里, 多大山, 深谷, 人隨而為居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천 리에 있는데 남쪽은 낙랑군 조선현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하였다. 땅은 사방으로 2천 리인데 큰 산과 깊은 계곡이 많다

종 합하면 고조선은 나라를 세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그 구역을 韓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한 땅에 속한 봉국 중에 비류 졸본 옥저가 있었인데 그 중 마한의 왕검성이고 졸본부여 중심지인 곳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은 漢나라 낙랑군 근처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한은 한 낙랑군인 북경 부근에서 시작하여 요서지역 요동지역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땅을 아루르는 큰 지역이고 삼국지에서는 이를 두고 4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왕검성과 왕험성은 그냥 수도라는 의미
고조선 수도도 왕검성이라고 합니다.
위만조선의 수도를 왕험성이라고 합니다.
마한의 수도도 왕검성이라고 합니다.

고조선 수도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이고
위만조선의 수도는 고조선과 秦나라 사이 공터입니다.
마한의 수도는 현재의 평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서에는 모두 왕검성 혹은 왕험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검성이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수도를 나타내는 일반명사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