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대동사강 기씨조선기 - 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3. 3.

箕氏朝鮮紀[初都遼陽城後都今平壤]

기씨조선기[처음에는 요양성에 도읍했다가 후에 지금의 평양에 도읍하였다]

太祖文聖王

太祖文聖王[姓子氏, 諱胥餘. 殷王族, 封箕國子爵, 故稱箕子]在位四十年. 壽九十三.
태조문성왕[성은 자씨이고 이름은 서여이다. 은국(殷國)의 왕족으로 기국(箕國)의 자작에 봉하여져서 기자(箕子)라고 불렀다]. 재위기간은 40년이고, 수명은 93년이었다.

【己卯】太祖文聖王元年[周武王元年]이라 初에 太祖이在殷하사 見王紂之無道하시고 告微子[微子紂之庶兄封微國子爵告稱微子]啓曰商[殷之初號]其淪喪하니라.
我岡爲臣僕이라하시고 被髪하사 佯狂爲奴[古者皆以罪人爲奴裨, 王因▨得罪故爲奴]하신대 紂이怒而囚之러니 周武王이[姓姬名發] 伐紂滅殷하시고 訪道하신대 太祖이 爲陳洪範九疇하시고 於是에 避周하사 率男女五千人하시고 東入朝鮮하시니 詩書, 禮樂, 醫藥, 陰陽, 卜莁, 百工技藝之類이 皆從焉이라. 太祖이 受朝鮮割與之地[明一統誌.., 箕子朝鮮城在永平府, 府在遼東城西二千里]하사 敎民以禮義하사 設八條之約[一曰.., 夫耕婦織伸之以服禮之書也. 二曰.., ▨井田之制經界均平也. 三曰.., 尙質朴之風奸倫以息也. 四曰不娶同姓嚴禁斷於嫁娶之節也. 五曰.., 盜役殺償明之以贖刑之律也. 六曰.., 依君臣之義定名分於主奴之地也. 七曰.., 謁力從事於君親曰兩也. 八曰盡心誠至於忠孝曰班也]
[1]하시고 區畫井田하사 勸課農桑하시니 德敎加於百姓하여 時和歲豊하야 野無盜賊하야 門戶不閉하니 朝野欣悅하야 作歌以頌其德하니 檀氏之諸候이 皆歸服하고 遠夷이 莫不入貢이어날 定都平壤城[卽桓氏故都遼陽城]하사 國號을 亦稱朝鮮하니 東西五千餘里오 南北이 七千餘里러라 時에 犯人條之禁而欲自贖者이 五十萬人이러라○太祖이 而德行之士王受兢으로 爲士師하고 封支子仲於于因하다.
【기묘년, BC1122】 태조문성왕 원년[주무왕 원년]이다. 처음에 태조가 은국(殷國)에 있었는데 은국(殷國) 주왕(紂王)이 도가 없음을 보고 미자(微子)[미자는 주왕의 서형으로 미국의 자작에 봉했기 때문에 미자라고 불렸다]인 계(啓)에게 “상국(商國)[은국(殷國)의 초기이름이다]이 초상을 당하였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복이라 하고 머리를 깎고 미친척하여 노비가 되리라[옛날에 모두 죄인은 노비가 되었다. 왕이 ▨로 인하여 죄를 얻었으므로 노비가 된 것이다]하니 주왕(紂王)이 노하여 그를 가두니, 주국(周國) 무왕(武王)[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발(發)]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은국(殷國)을 멸하고 도를 물었다. 태조(太祖)가 홍범9주를 베풀고 이에 주국(周國)울 피하여 남녀 오천명을 데리고 동으로 조선(朝鮮)에 오니 시서, 예악, 의약, 음양, 복무, 백가지 기예등을 가지고 왔다. 태조가 조선에서 분할해 준 땅을 받고[명일통지에서 말하기를 기자의 조선성은 영평부에 있고 영평부는 요동성 서쪽 2000리에 있다고 하였다] 백성을 예의로 가르치고 8조의 규약[번역생략]을 가르쳤다. 조세와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고 백성에 덕으로 가르침을 더하니 때에 화하여 풍년이 들므로 들판에 도적이 없고 문을 닫지 않으니 조선의 들판이 기뻐서 노래를 지어 그 덕을 칭송하니 단씨(檀氏)의 제후들이 모두 귀복하고 먼 오랑캐들도 입공하지 않는자 없었더니, 도읍을 평양성[즉 환씨의 옛 도읍 요양성이다]에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니 동서가 5000리이고 남북이 7000리였다. 때에 금한 것을 범한자 중에 속죄를 요구한 자가 50만명이었더라. 태조는 덕행을 하는 선비인 왕수긍(王受兢)을 사사(士師)로 삼고 지자(支子) 중(仲)을 우인(于因)에 봉하였다.

【壬午】四年이라 太祖이 以素車白馬로 賓周하실새 過故殷墟라가 見宮室毁壞하야 生麥黍하고 感作麥秀歌曰麥秀이 漸漸兮여 禾黍油油로다 彼狡童兮[指紂]여 不與我好兮로다 殷民이 聞之하고 莫不流涕러라
【임오년, BC1119】 4년이다. 태조가 흰 마차와 흰 말로 마차로 손님으로 주국(周國)에 갈때에 옛날 은국(殷國)의 터를 지나가다가 궁실이 무너지고 보리와 기장이 자라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감동하여 맥수가를 지었다.
보리가 무성하여 점점 자람이여
벼와 기장은 윤기가 흐르는구나
저 교화할 아이는[주왕(紂王)을 가리킨다]
나와 좋지 못하겠구나
은국(殷國)의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더라.

(按)梅山洪先生直弼 箕子朝周辨曰.., 箕子已知商之淪喪, 而曰.., 我岡爲臣僕所失願者素耳武王革命釋囚而訪道故爲武王陳洪範仍避地于朝鮮以傳道則可仕則不可也以稱十有三祀而知箕子之不臣於武王以王訪于箕子而知武王不臣箕子非武王之聖不能虛遜訪道非箕子之聖亦不能授法無慳是所謂天地氣象也二聖相與而不相矢有如是者何曾受茅於周廷亦何曾頒瑞於靑丘哉. 史記曰.., 武王乃封箕子於朝鮮者, 是不知武王箕子之心者也. 商容膠鬲爲殷朝之名賢而武王祗表商容之閭而不降其志亦不屈膠鬲爲己用任他孤竹二子採薇雷岺以成其風節乃所謂物各付物兩盡其道也 在四人猶然况于授法之聖者乎 箕子之長徃朝鮮如夫子之欲居九夷祗要遯世無悶我得其正用遂岡僕之志自契明夷之象聖德所臨爲東民所愛載耳豈有心於爲君哉行九井之制施八條之敎推道訓俗化夷爲華是亦天地之心也如此者亦何有於封哉不思用晦有懷故都乘白馬渡遼河奏言試功如虞廷之四朝者非義之所當出豈以聖人而爲之乎 史記又云 箕子朝周作麥秀之歌前編綱目亦云 十有六年夏箕子來朝馬遷信野人之語而綱目襲馬還之筆也 旣日封于朝鮮 不信 則又 何爲來朝如殷士之裸京永失忠聖之名哉 (이하 생략)

【戊午】四十年이라 太祖이 崩커시 太子莊惠王松이 立하다
【무오년, BC1083】40년이다. 태조가 죽어 태자 장혜왕(莊惠王) 송(松)이 제위에 올랐다.

莊惠王

莊惠王[諱松太祖子] 在位二十年
장혜왕[이름은 송이고 태조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0년이다

【己未】莊惠王元年이라 立宗廟하다
【기미년, BC1082】장혜왕 원년이다. 종묘를 세웠다.

【癸未】二十五年이라 王이 以衰老로 傳位太子한대 太子卽位하니 是爲敬孝王하다.
【계미년, BC1058】25년이다. 왕이 노약하여 제위를 태자에게 주니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곧 경효왕이다.

敬孝王

敬孝王[諱洵莊惠王子] 在位二十七年
경효왕[이름은 순이요 장혜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7년이다.

【甲申】敬孝王元年이라 王이 事上王至孝하야 雖祈寒暑雨라도 日必三朝러라
【갑신년, BC1057】경효왕 원년이다. 왕이 상왕(上王)을 공경하는데 있어서 지극한 효로 하였으니 비록 춥거나 더웁거나 비가 오거나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 문안하더라.

【辛卯】八年이라 上王이 崩커날 謚曰莊惠라하다
【신묘년, BC1050】8년이다. 상왕(上王)이 죽었서 諡
[2]號曰莊惠라하다
신묘 8년이라(BC1057) 상왕이 세상을 떠나므로 시호를 장혜라 하였다.

【庚戌】二十七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恭貞王하다.
【경술년, BC1031】27년이다. 왕이 죽어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공정왕이다.

恭貞王

恭貞王[諱伯敬孝王子] 在位三十年
공정왕[이름은 백이요 경효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30년이다.

【辛亥】恭貞王元年이라 分百官爲十五品하야 置上下大夫等官하고 定冠帶衣裳之制하다.
【신해년, BC1030】공정왕 원년이다. 백관을 나누어 15품으로 하고 상부 하부 대부 등의 관제를 만들어 이에 따른 갓과 띠와 옷차림새의 제도를 정하였다.

【庚辰】三十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文武王하다
【경진년, 】30년이다.  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문무왕이다.

文武王

文武王[諱椿恭貞王子] 在位二十八年
문무왕[이름은 춘이고 공정왕의 아들이다]의 재위기간은 28년이다.

【辛巳】文武王元年이라 以寅月爲歲首하다. 修定律度量衡하다. 設侍衛軍할새 爲六部五十九隧하고 旗旌을 皆靑하다
【신미년, BC1000】문무왕 원년이다. 인월(寅月)을 한 해의 처음으로 하였다. 법률과 도량형을 바로잡아 정하였다. 시위군(侍衛軍)을 설립하고 6부 59수(隧)로 하고 기정(旗旌)을 모두 파란색으로 하였다.

【戊申】二十八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太原王孔은 立四年에 崩하고 侄遼河伯莊이 卽位하니 是爲景昌王하다
【무신년, BC973】28년이다. 무신년 28년이라(BC973). 왕이 죽고 태자 태원왕 공(孔)이 즉위한지 4년에 죽으니 생질(甥姪)
[3]인 요하의 우두머리인 장(莊)이 즉위하니 이가 경창왕이다.

景昌王

景昌王[諱莊儒州候仁子文武王孫]
경창왕(이름은 장(莊)이고 유주후(儒州侯) 인(仁)의 아들이고, 문무왕의 손자이다.

【癸丑】景昌王元年새라 王이 以弟昭로 爲上大夫하다
계축년 경창왕 원년이라(BC968). 왕이 아우인 소를 상대부로 삼았다.
【癸亥】十一年이라 王이 崩하고 子卽位하니 是爲興平王하다.
계해년 11년이라(BC958). 왕이 죽고 이들이 즉위하니 이가 흥평왕이다.

興平王

興平王(諱遐景昌王子) 在位十四年
흥평왕의 이름은 하이고 경창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14년이다.

【甲子】興平王元年이라 冬에 大雨雹하야 牛馬多死하다. 始鑄子母錢하다
갑자년 흥평왕 원년이라(BC957). 겨울에 큰 우박이 내려 소와 말이 많이 죽었다. 처음으로 자모전을 주조하였다.

【丁丑】十四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 卽位하니 是爲哲威王하다
정축년 14이라. 왕이 죽고 태자가 왕에 오르니 이가 철위왕이다.

哲威王

哲威王(諱調興平王子) 在位十八年
철위왕의 이름은 조이고 흥평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18년이다.

【戊寅】哲威王年이라 春에 王이 巡北鄙하다
무인년은 철위왕 원년이라(BC943). 봄에 왕이 북쪽 마을을 순행하였다.

【乙未】十八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宣惠王하다.
을미년 18년이라. 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선혜왕이다.

宣惠王

宣惠王(諱索哲威王子) 在位二十九年
선혜왕(이름은 색이고 철위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9년이다.

【丙申】宣惠王元年이라. 春에 王이 觀稼于郊할새 親持牛酒하야 以勞農民하다 置養賢院하고 選民聰俊者하야 習以六藝하고 懸直言聲於國門하야 使有寃者敲之하니 中外大悅이러라
병신년은 선혜왕 원년이라(BC925). 봄에 왕이 교외에 농사짓는것을 보고 친히 소와 술을 가지고 농민과 같이 일하였다. 양현원을 설치하여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을 골라 6가지 예를 연습하기 하고 국문에 직언하도록 하야 억울한 사람에게 두드리게 하니 크게 기뻐하였다.

【甲子】二十九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誼讓王하다
갑자년 29년이다. 왕이 죽으니 태자가 즉위하였으며 이가 의양왕이다.

誼讓王

誼讓王(諱師宣惠王子)在位五十三年
의양왕(이름은 사이고 선혜왕의 아들이다)의 재위기간은 53년이다.

【乙丑】誼讓王元年이라 建淸流閣於後苑하고 大宴群臣하다. 癘疫大熾어날 王이 親行旅祭하야 以穰之하다.
을축년은 의양왕 원년이라(BC896). 청류각을 후원에 세우고 잔치를 열었다. 염병이 크게 일어남으로 왕이 친히 다니며 제사를 하며 빌었다.

【丁巳】五十三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文惠王하다
정사년 53년이다. 왕이 죽으니 태자가 즉위하였는데 이가 문혜왕이다.

文惠王

文惠王(諱炎誼讓王子)在位五十年
문혜왕(이름은 염이다. 의양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50년이다.

【戊午】文惠王元年이라 立賑貸法하야 以恤貧民하라 置五敎長于州都하다
무오년은 문혜왕 원년이라(BC843).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을 구휼하였다. 각 주의 도읍에 5명의 교장을 두었다.
【丁未】五十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 卽位하니 是爲聖德王하다.
정미년 50년이다. 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성덕왕이다.

威德王

威德王(諱越文惠王子)在位十五年
위덕왕(이름은 월이고 문혜왕의 아들이다)의 재위기간은 15년이다.

【戊申】威德王元年이라 夏四月에 旱이어날 王이 親禱于白岳하니 大雨하다. 修築京城하다.
무신년은 위덕왕원년이라(BC793). 여름 사월에 가뭄이 있으니 왕이 친히 백악에서 하늘에 비니 큰비가 내렸다. 서울의 성을 고쳐 쌓았다.
【壬戌】十五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職이 卽位하니 是爲悼懷王이라 二年에 崩하니 無嗣이어날 群臣이 迎立文烈王하다.
임술년 15년이다. 왕이 죽어 태자 직(職)이 즉위하였는데 이가 도회왕이다.
도회왕은 2년에 죽었는데 후사가 없으므로 신하들이 문렬왕을 맞이하여 세웠다.

文烈王

文烈王(諱優密雲伯子文惠王孫)在位十五年
문렬왕(이름은 우이다. 밀운백의 아들이고 문혜왕의 손자이다) 재위기간은 15년이다.

【乙丑】文烈王元年이라 王이 聞長靜處士甘加察이 有才德하고 使人聘之하야 拜上大夫한대 加察이 固辭어날 王이 以賓禮待之하고 咨政得矢이러니 後에 加察이 隱太白山하다
을축년은 문열왕원년이라(BC776). 왕이 장정(長靜)의 처사 감가찰이 재주와 덕이 있다는 것을 듣고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 상대부가 될 것을 요청하니 가찰이 이를 거절하였다. 왕이 손님의 예로 그를 대우하고 정치에 대하여 묻고 맹세를 받았지만 후에 가찰이 태백산으로 숨었다.
【己卯】十五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睦이 卽位하니 是爲昌國王이라 十三年에 崩하고 太子 卽位하니 是爲 武成王이라 時年이 八歲라 大后ㅣ 聽政하다.
기묘년 15년이다. 왕이 죽고 태자 목(睦)이 즉위하니 이가 창국왕이다. 13년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무성왕이다. 이 해에 8살이므로 태후가 청정하였다.

武成王

武成王(諱平昌國王子)在位二十六年
【癸巳】武成王元年이라 初置水軍하고 繕造舟艦하다 行養老禮할새 大會公卿士庶年七十以上하야 大宴十旬하다
계사년은 무성왕 원년이라(BC748) 처음에 수군을 만들고 군함을 만들었다. 양로(養老)의 예를 행하니 공경(公卿)과 사대부와 서인 중에 70세 이상된자들을 모아서 100일동안 크게 잔치를 열었다.
【戊午】二十六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貞敬王하다.
무오년 26년이다. 왕이 죽으니 태자가 즉위하였는데 이가 정경왕(貞敬王)이다.

貞敬王

貞敬王(諱闕武成王子) 在位十九年
정경왕(이름은 궐이고 무성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19년이다.

【己未】貞敬王元年이라 夏五月朔에 日食晝晦하고 鳥鵲亂鳴하야 飛入人家어날 王이 問群臣曰何以則弛此變고 對曰惟王은 修德政하사 省刑罰하고 簿賦歛
[4]하소서 王曰善다.
기미년(BC722)은 정경왕의 원년이라 여름 5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고 새와 까치가 어지럽게 울어대며 집으로 날아들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어찌하여 이 변고에 안심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오직 왕께서는 덕으로 정치를 하사 형벌을 없애고 세금을 가볍게 하소서’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辛未】十三年이라 大饑어날 乃擇商民이 能通齊魯語者數十人하야 與舟子一千人으로 載魚䀋銅鐵하고 渡海至齊魯하야 貿米萬餘斛而還하야 以恤饑民하고 仍减百官祿之半하다
신미년 13년이다. 크게 기근이 일어났다. 이내 제(齊)와 로(魯)의 말을 할줄아는 수십명의 상인을 가려뽑아 뱃사람 1000명과 더불어 생선과 소금과 동과 철을 싣고 바다를 건너 제와 로에 도착하였다. 쌀 일만 여곡을 사서 돌아와 백성을 구휼하였고 백관들의 녹봉도 반으로 줄였다.

【丁丑】十九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 卽位하니 是爲樂成王이라
정축년 19년이다. 왕이 죽으니 태자가 즉위하였는데 이가 낙성왕이다.

樂成王

樂成王(諱懷貞敬王子)在位二十八年
낙성왕(이름이 회이고 정경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8년이다.

【戊寅】樂成王元年이라 春三月에 王이巡郡縣하야 問民疾苦하다. 王이 親製宗廟樂章하니 凡十五章이러라
무인년은 낙성왕원년이라(BC703). 봄 3월에 왕이 군과 현을 순행하여 백성들에게 그들의 질고를 물어보았다. 왕이 친히 종묘음악을 만들었는데 대략 15장이다.

【乙巳】二十八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孝宗王하다.
을사년 28년이다. 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효종왕이다.

孝宗王

孝宗王(諱存樂成王子)在位十七年
효종왕(이름은 존이고 낙성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17년이다.

【丙午】孝宗王元年이라 王이 遺上大夫鮮于益於齊하야 結好하다 設濟養院於京師하고 收國內鰥募孤獨無告者하야 以處之하고 給衣食하야 使終其年하다. 立犯贓律하다.
병오년은 효종왕의 원년이라(BC675). 왕이 상대부 선우익을 제국(齊國)에 보내어 결호하게하였다. 제양원을 경사(京師)에 설치하고 나라 안의 갈곳없는 자들을 그곳에 살게 하였고 옷과 음식을 공급하여 죽을때까지 살게 하였다. 뇌물과 장물(贓物)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다.

【甲寅】九年이라 置博士舘하고 選公卿中才德兼備者하야 處之하고 令共議軍國大事하다 齊遺公孫恪하야 來聘하다.
갑인년 9년이다. 박사관을 설치하고 공경 중에 재능과 덕망이 모두 있는 자를 뽑아 그곳에 살게 하였고 군사와 나라의 큰 일을 논의하도록 하였다. 제국(齊國)이 공손각(公孫恪)을 보내 내빙하였다.

【丁巳】十二年이라 春三月 甘露降于宮苑이어날 群臣이 進頌한대 王이 謙讓不受하다 冬十月에 北狄酋頡利都頭-來朝하다
정사년 12년이다. 봄 3월에 단 이슬이 궁궐 뜰에 내렸는데 신하들이 이들 진상하려했지만 왕이 거절하였다. 겨울 10월에 북적(北狄) 두목 힐리도두(頡利都頭)가 내조하였다.

【壬戌】十七年이라 王이 有疾屢月에 不視朝러니 有方士伯一淸者하야 自言得軒轅煉丹術하야 有回生延壽之妙어날 群臣이 引見王하고 請試其術하대 王曰人之壽夭ㅣ不在天乎아하고 遂却하고 卽而오 王이 崩커날 太子卽位하니 是爲天老王하다
임술년 17년이다. 왕이 여러달동안 병이 있어 조회를 하지 않았었다. 방사백(方士伯)인 일청(一淸)이라는 자가 있어 스스로 말하기를 헌원(軒轅)의 연단술(煉丹術)을 얻어 다시 태어나 생명을 연장하는 기묘함이 있다고 하였다. 신하들이 물러나 왕을 뵈어 그 연단술을 시험하자고 청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있지 아니한가’라고 하여 물리쳤다. 왕이 죽으니 태자가 즉위하였고 이가 천로왕이다.

天老王

天老王(諱孝孝宗王子) 在位二十四年
천로왕(이름은 효이고 효종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4년이다.

【癸亥】天老王元年이라 王이 在東宮時에 惑一淸이러니 至是하야 延入宮하야 爲國師하고 待之甚厚하니 群臣이 不悅이러라.
계해년 천로왕의 원년이다(BC658). 왕이 동궁에 있을적에 일청에게 미혹되었었다. 이때에 이르러 궁에 끌어들여 국사로 삼고 그를 대접함이 매우 심하니 신하들이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庚午】八年이라. 起求仙臺于紇骨山하고 高五百丈이라 築以紋石하다. 造太淸舘하다.
경오년 8년이다. 구선대를 흘골산에 세웠는데 높이가 500장이었고 무늬있는 돌로 쌓았다. 태청관을 만들었다.

【己卯】十七年이라 王이 聞齊桓公卒하고 遣使吊之하다. 王이 出遊沸流江上할새 使樂工으로 奏迎仙樂하고 宮女로 作迎仙舞하다.
기묘년 17년이다. 왕이 제국(齊國) 환공이 죽었다함을 듣고 조문사신을 보냈다. 왕이 비류강가에서 놀때에 악공으로 하여금 영선악(迎仙樂)을 연주하게 하고 궁녀(宮女)들로 하여금 영선무(迎仙舞)를 짓도록 하였다.

【丙戌】二十四年이라. 王이 傳位于太子하고 稱天老王이라하니 太子卽位하니 是爲修道王하다.
병술년 24년이다. 왕이 태자에게 재위를 물려주고 천로왕이라고 칭하였다.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수도왕이다.

修道王

修道王(諱襄天老王子) 在位十九年
수도왕(이름은 양이고 천로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19년이다.

【丁亥】修道王元年이라. 王이 亦惑一淸하야 加封一淸하야 爲國太師하고 恩寵日降하니 於是에 一淸이 恃勢驕泰하야 擅作威福이어날 石州人冉西赤이 詣闕叩頭하며 極論一淸之罪한대 王이 怒하야 竄于氈城하야 使監牧塲하니 赤이 憂憤하야 成疾而卒하다
정해년은 수도왕의 원년이다(BC634). 왕이 역시 일청에게 미혹되어 그에게 봉작을 더하여 국태수로 삼고 사랑과 은총을 날마다 내리었다. 이때에 일청이 힘을 믿고 교만함이 매우 컸으므로 제멋대로 직원을 남용하고, 권세를 틀어쥐고 제 마음대로 휘둘렀다. 석주(石州)사람 염서적(冉西赤)이 대궐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일청의 죄를 극론하니 왕이 화가 나서 전성(氈城)으로 달아나 감독을 시켜 마소를 치니 염서적이 분하고 근심하여 병을 얻어 죽었다.

【辛卯】五年이라 天老王이 服一淸之丹藥이라가 毒發而崩하다. 王이 惑一淸之說하야 稱修道王하다.
신묘년 5년이다. 천로왕이 일청의 단약을 먹고 독이 발하여 죽었다. 왕이 일청의 설명에 미혹되어 수도왕이라고 칭하였다.

【丁酉】十一年이라. 起神山于浿江中하고 造樓臺于其上하고 飾以金碧하다.
정유년 11년이다. 신산을 패강 가운데에 세우고 그 위에 망루와 돈대를 짓고 벽을 금으로 치장했다.

【辛丑】十五年이라 大臣西門長壽ㅣ 謀誅一淸이러니 有人이 告一淸한대 一淸이 誣奏長壽ㅣ 將叛하야 賜死하다
신축년 15년이다. 대신 서문장수가 일청을 죽이려고 꾀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일청에게 알렸다. 일청은 거짓으로 왕에게 서문장수가 장차 배반하려 한다고 아뢰었으므로 그를 죽였다.

【乙巳】十九年이라 命一淸弟子盧龍하야 率手千餘人하고 以大船數十으로 徃東海求神仙이러니 遇風船覆하야 唯盧龍이 僅免而還이어 下大夫公孫康이 進言請治其罪한대 王이 怒하야 下康于獄하다. 王이 服丹藥이라가 發悶尋崩커 太子卽位하니 是爲徽襄王하다.
을사년 19년이다. 일청의 문하생 노룡에게 명령하여 손수 1천여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큰 배 수십척으로 동해에 가서 신선을 구하였다. 우연찮게 배가 폭풍을 만나 뒤집히니 오직 노룡만이 겨우 살아남아 돌아왔다. 하대부(下大夫) 공손강(公孫康)이 임금께 나아가 그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였지만 왕이 노하여 공손강을 옥에 가두었다. 왕이 단약을 먹고 마음이 갑갑하여 곧 죽었다.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휘양왕(徽襄王)이다.

徽襄王

徽襄王(諱通修道王子) 在位二十一年
휘양왕(이름은 통이고 수도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1년이다.

【丙午】徽襄王元年이라 誅一淸盧龍二人하니 都人이 相賀러라. 赦公孫康하야 爲上大夫하다.
병오년은 휘양왕 원년이다(BC615). 일청과 노룡의 목을 베었다. 도읍의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였다. 공손강을 용서하여 상대부로 삼았다.

【壬戌】十七年이라 公孫康이 旣見寵에 遂窺財利하야 言於王曰今國用이 不足하니 宜徵闤闠稅(▨戶稅) 以益之하소서. 王이 從之하니 於是에 康이 因緣弄奸하야 收稅以充私藏하니 人心이 騷怨이러라
임술년 17년이다. 공손강이 이미 왕의 총애를 받아 드디어 재물과 이익을 맛보았는데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지금 나라에 쓸 것이 부족하니 마땅히 환궤세(闤闠稅)(호구세를 말한다)를 징수하여 쓰임을 더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그에 따르니 이때에 공손강이 인연을 농간하여 거두어들인 세금을 사사로이 감추니 인심이 근심스럽게 원망하였다.

【丙寅】二十一年이라. 王이 崩하고 太子卽位하니 是爲奉日王하니 時年이 五歲라 叔父諍이 聽政하니 諍에 爲人이 正直이러라.
병인년 21년이다. 왕이 죽어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봉일왕이다. 이 해에 봉일왕이 5살인데 숙부 쟁이 청정하니 쟁은 사람됨이 정직하더라.



[1] 한자가 잘 보이지가 않아서 제대로 입력 안된 글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원문 참조

[2] 원문에 謚으로 되어 있는데 諡를 잘못쓴 것이다.

[3] 원문에 侄(질)로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아서 姪(질)로 번역하였다.

[4] 斂이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