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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귀주대첩 옛영토(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7.
(1)편에서 귀주대첩의 한 지역으로 거란군이 공격해온 고려의 흥화진은 거란의 흥화군이라는 것을 확인
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흥화진은 현재의 압록강 남쪽의 평안도 지역으로 학교에서 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거란에서
말하는 흥화군의 위치를 검증한다면 우리 교과서 역사의 진위를 판가름할 수 있게 됩니다.

1. 흥화군의 위치...
거란의 흥화군은 금사 지리지에 나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금사 지리지 북경로
*新校本金史/志/卷二十四 志第五/地理上/北京路 - 562 -
①..興州,寧朔軍節度使. 本遼北安州興化軍 ,皇統三年降軍置興化縣,
[三五]承安五年升為興州,置節度,軍名寧朔(영삭),改利民寨為利民縣,撥梅堅河徒門必罕、寧江(영강)、
速馬剌三猛安隸焉.貞
祐二年四月僑置于密雲縣.戶一萬五千九百七十.縣二:又有利民縣,承安五年以利民寨升,泰和四年廢.
興化倚.遼舊縣,[三六]皇統三年降興化軍置,隸大定府,承安五年建興州於縣,為倚郭.舊有白檀鎮.
宜興本興化縣白檀鎮,泰和三年陞為縣來屬.

==>>금사에 보이는 흥주가 바로 본래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해 줍니다.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이 금나라의 흥주이고, 고려의 흥화진입니다.

그런데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금나라 흥주.고려의 흥화진이 금사 지리지 북경로에 속합니다.
북경..

그리고 위에 금사 지리지 북경로 옮겨온 글에 (영강)이 보이시죠..

금나라 흥주.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에 영강이 있다는 것인데...

요사 지리지에는 북안주 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고 안주(安州)는 있읍니다.


그래서 영강주를 찾아봤는데...
역시 기대한 대로 요사지리지에 영강주가 있었읍니다.

요사 지리지 동경도
*新校本遼史/志/卷三十八 志第八 地理志二/東京道/寧江州 - 477 -
②..寧江州,混同軍,觀察.清寧中置.初防禦,後升.兵事屬東北統軍司.統縣一:
混同縣.
==>별다른 이야기는 없는데 영강주는 청녕 중에 설치를 했다는 것을 볼수 있읍니다.
청녕은 요나라가 1050년경이후에 쓰기 시작한 연호이고 거란의 3차 침입은 10***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시 요사 지리지에 영주를 찾아 보니까...

*新校本遼史/志/卷三十八 志第八 地理志二/東京道/寧州 - 474 -
③..寧州,觀察.統和二十九年伐高麗,以渤海降戶置.兵事隸東京統軍司.統縣一:
新安縣.

통화(統和)라는 연호는 요나라 성종임금 치세중입니다..983년에서 1011년 까지요.
그러니까 요나라 성종 통화 29년에 고려를 정벌하여 설치한 것이 영주라는 말인데
통화 29년이 강조의 난으로 거란이 2차 침입한 해라고 하네요..


안주를 찾아보면..
*新校本遼史/志/卷三十八 志第八 地理志二/東京道/安州 - 476 -
④..安州,刺史.[三0]兵事隸北女直兵馬司
별말 없이 병사는 여직병마사가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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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사 지리지에 대한 의문..

흥화군=흥화진에 대한 것이 요사 지리지에서는 찾을수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①번 기록과 같이 금사지리지에서,그것도 북경로에서 요나라 당시의
흥화군을 찾을수 있었던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흥화군은 요나라 성종이 고려에게 항복받는 것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인데
이것이 요사에 기록되지 않고 금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여기서 추론을 한번 해보면,

요사를 만드는 사가들이 고의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금사 지리지 북경로에 있는 흥주,흥화군을, 요사 지리지는 영강주와 영주,
안주 등으로 바꾸어 기록하여 왜곡의 흔적을 감추려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또 ④번의 금사 지리지에 있는 안주(安州)의 기록이나 ②, ③번의 영강주.영주에 대한
기록이 매우 이상한 것이죠..


④번의 기록은 안주의 병사를 북여진병마사가 한다는 기록이 이상한데..

왜냐하면 금사 지리지에서 흥화군은 요나라의 북안주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④번의 안주가 위치한 북쪽에 북안주가 위치할 것이 상식적이므로,
북여진 병마사가 병사의 일을 하는 것에서 북여진보다 더 북쪽의 여진병마사가
있어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이 교과서 역사가 말하는 현재 압록강 이남의 평안도 지역에
있었다면, 요나라는 이 지역의 이름을 안주의 북쪽 이라는 북안주(北安州)興化軍
이 아니라 남안주(南安州)興化軍으로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주가 있고나서 그외 동서남북이 붙은 안주를 만들었을 것이고
교과서 역사에서 요나라는 고려보다 북쪽에 있으니...^^


다음..
③번 기록을 보시면 더 이상한 것을 볼수 있읍니다.
다시 반복하여 옮기면...
③..寧州,觀察.統和二十九年伐高麗,以渤海降戶置.兵事隸東京統軍司.統縣一:
新安縣.

영주는 통화 29년에 고려를 정벌한 이야기가 있고 발해가 항복한 발해의 호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통화 29년의 요사 고려 열전에 보면,

*新校本遼史/列傳/卷百十五 列傳第四十五 二國外記/高麗 - 1520 -
...(전략)...二十九年正月,班師,所降諸城復叛.至貴州南嶺谷,[四]大雨連日,霽乃得渡,馬駝皆疲乏,
甲仗多遺棄.次鴨淥江,以所俘人分置諸陵廟,餘賜內戚、大臣.
→ 29년 정월, 군사를 파하자, 항복한 제성들이 다시 반역하였다. 귀주남령곡에 이르러
큰 비가 연일 와 날이 개어서 물을 건넜으나, 말과 낙타가 지쳐 갑옷과 무기를 많이
버렸다.압록강에 이르러 포로들을 제능묘에 나누어 배치하고, 나머지는 척신들에게 주었다.

==> 이렇게 되어 있으니 고려를 정벌하고 나서 영주를 설치할수 없었을 것이죠?
모두 다시 거란에게 반역하여 고려로 복속되었으니 말입니다.


②번 기록이 이상한 것은,
요나라 청녕 연호는 1050년대에 쓰여진 것이므로, 10***의 제 3차 침입에서는 뺏지 못한
것을 1050년경에 고려에게 뺏어서 연강주를 두었다는 말이 되고, 이것이 금나라 흥주, 흥화진에 있는
지명이므로, 10***에서 1050년 사이에 여러 전쟁들이 또 있었고 영토의 첨삭이 고려와 요나라 간에
수없이 여러차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되겠지요?

어쨋든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이 고려의 흥화진으로서 요나라 안주의 북쪽에 있는 지명
이라면, 지도상의 위치로 보아 거꾸로 남안주가 되어야 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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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사절요의 지명과 요사 지리지의 지명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페이지를 바꾸어 같은 글 제목의 첫글"귀주대첩과 관련된 영토회복의 정당성 근거.(1)"의
고려사 절요 ①번 기록을 보시면,

왕이.... 군사 20만 8천3백명을 영주(寧州 평남 안주(安州))에 주둔하게 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사 절요의 영주는 요사 지리지 영주,이번 글 ③번,와 다른 곳일까요?
같은 곳일까요?

고려사 절요 번역문은 영주를 평남 안주(安州)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안주는
요사 지리지의 안주, 이번 글 ②번, 과 같은 곳일까요? 다른 곳일까요?

고려의 흥화진이 요나라 북안주 흥화군인데 이것은 금사 지리지에 흥주를 말하는
것이고, 그 흥주에 영강이 있고, 군명(軍名)은 영삭(寧朔)인데 ..이번 글①번 참조..
과연 고려사 절요의 영주는 지금 평안남도의 안주일까요?


그리고 요사지리지에는 왜 북안주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흥화군은 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요?

요사 지리지의 안주에는 왜 상세한 내용이 없을까요?
요사 지리지의 영주와 영강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왜 없는 것일까요?

역사왜곡을 위해 고의로 빼버린 것은 아닐까요?
모든 역사 기록을 짜 맞추고 혼란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요?



위에서 알수 있듯이...
금사 지리지에서 확인된 요나라 흥화군=고려 흥화진 등은 금사 지리지 북경로에 속하는
것이고, 기타 관련지명들도 요나라 동경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흥화군=흥화진이 속하는 요나라 동경도, 금나라 북경로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살펴서, 흥화진=흥화군의 위치를 확인해 보고 강감찬 장군이 싸운 지역이
한반도가 아닌 것을 살펴 보려 합니다..

흥화진이 한반도에 없다면, 흥화진은 강동 6주의 한 지명이니 강동 6주라는 것도
허구라는 것이고 한반도에는 강동 6주라는 것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고려의 영토는 한반도는 물론 대륙에도 있었다는 것도 자연 확인되는
것이죠..

역사왜곡이야 다 아는 것이니...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