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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고구려 임금이 기산(箕山)에서 사냥한 까닭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30.
고구려 임금은 기산(箕山)에서 사냥을 하곤 하였습니다.
기산(箕山)의 箕는 기자(箕子)의 箕와 같은데 이상하죠.
왜 그랬을까요?

해답은 고려사에 있습니다.
俠溪縣本高勾麗水谷城縣[一云買且忽.]新羅景德王改名檀溪爲永豐郡領縣. 高麗初更今名. 顯宗九年來屬後置監務. 有北蘇宮闕舊基.[北蘇卽縣之箕達山辛禑時據道詵密記遣權仲和等審得之與左蘇白岳山右蘇白馬山爲三蘇.]
협 계현은 본시 고구려 수곡성현이다(매차홀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개명하기를 단계(檀溪)라 하였고 영풍군에서 다스린 현이다. 고려 초에 다시 이름을 고쳐 지금과 같이 하였다. 현종 9년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북소궁궐(北蘇宮闕) 터가 있다(북소는 기달산(箕達山)을 두고 한 말인데 고려 우왕(禑王) 때에 도선밀기(道詵密記)에 의거하여 권중화 등을 파견 조사케 한 바 북소(北蘇) 기달산은 좌소(左蘇) 백악산 우소(右蘇) 백마산과 더불어 삼소(三蘇)를 이룬다고 한다)

수곡성현을 신라에서 단계(檀溪)라 하였고 이 곳에 기달산(箕達山)이 있다고 합니다.
왜 경덕왕이 단계(檀溪)라 하였을까요? 이유는 그곳에 기달산(箕達山)이 있기때문일 것입니다.

기달산(箕達山)은 음과 훈을 첩사(疊寫)한 것입니다. 달(達)은 고어로 '뫼'의 뜻이고 山도 역시 '뫼'입니다. 따라서 기달산은 기산(箕山)입니다.
단계(檀溪)란 단군(檀君)골인데 이를 한자로 檀溪라 한 것입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단군을 모신 골에 기산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기산은 箕는 기자(箕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단군은 고조선 시조인데 왜 이곳에 기산(箕山)이 있을까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後有帝桓仁者出爲國人所愛戴曰安巴堅亦稱居發桓也
장구한 세월 뒤에 한인(桓仁)이란 분이 나타나셔서 여러 사람들의 사랑으로 추대되어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하고 거발한(居發桓)이라고도 하였다.

이 환단고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안파견과 비슷한 말이 "거발한"이라는 것입니다. 즉, 국가의 시조를 일컬어 거발한이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역사에 중요한 환국 1대 임금님을 "거발한(居發桓)"이라 했습니다.

欽定遼史語解卷四
矩巴哩木, 唐古特語矩巴根本也哩木次第也卷六十一作厥拔离弭河名
구파리목은 당고특(Tangut)어이다. 구파(矩巴)는 근본을 말하며 리목(哩木)은 그 다음을 말하는 것이다. 권61에서는 "궐발"리미라고 하였는데 강이름이다.

欽定遼史語解卷八
果巴唐古特語頭人也卷十八作髙八
"과파"는 당고특어로 두목(頭人)을 말하는데 권18에서는 "고팔(髙八)"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방계인 거란족의 말을 보면 "궐발" "구파" "고팔" "과파"는 두목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거발한의 "거발"도 거란어의 "궐발"에 해당하며 역시 "두목" 즉 시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계(檀溪, 단군골), 기산(箕山), 거발한(居發桓)의 관계

단군(檀君)은 고조선 시조입니다.
그래서 그를 고조선에서는 거발한(居發桓)으로 일컬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모신 산을 기산(箕山)이라 한 것입니다.

* 기산(箕山)이란 훈사(訓寫)한 단어인데
箕는 우리말의 "키"입니다. "키"란 콩 같은 곡식을 "까부를때" 쓰는 기구입니다.
箕山은 "기산"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箕의 훈(訓)을 베껴서(寫) "가불" 혹은 "거발"로 읽어야 하며 箕山은 "거발산"이 됩니다.

* 단계(檀溪) 역시 단군골이며 단군은 국가 시조이므로 "거발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기산(箕山)이 기자(箕子)의 산이 아니라 국가 시조를 모신 산, 즉 거발산(居發山)이라는 결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