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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살수(薩水)의 의미와 어원에 대하여 살수(薩水)의 "살"을 청(靑)으로 해석하여 현재 청천강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그러나 고구려가 우리민족과 완전히 다른 민족이 아니라면 푸른색을 "살"이라고 했을 리가 없다.본 글에서는 살수가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살수(薩水)를 혹 살하수(薩賀水)라고 지나사서에 적혀있기도 한데 이는 지나인들이 잘못알고 쓴 것이다.이전에 본 블로그에 살수란 자연해자를 일컷는 것이라 했으나, 그 글은 小圍의 해석을 잘못하여 쓴 것이므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청사만어사전을 찾아보면 薩哈이란 滿文爲 saha. 漢義爲敎猎, 令砌, 知道了. 日下舊聞考 卷三. 薩哈, 滿洲語小圍也, 舊作撤合라 하였으므로 대충해석하면 "小圍란 사냥을 가르칠때 섬돌을 쌓아서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냥하는 방.. 2009. 12. 18.
기후(箕詡)가 도읍한 곳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기준이 도망한 곳은 압록강 이남이 아니라 산동과 하남 근처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글을 다시 인용하여보면...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1, 남은(南殷)에 대한 변증설.일찍이 어떤 책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미처 듣고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기자(箕子) 만년에 국세(國勢)가 미약해진 데다 또 위만(衛滿)의 난(亂)으로 인해 남쪽 지방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이것이 이른바 남은(南殷)이다. 남은은 위만과 여러 번 싸웠으나 싸울 때마다 패하였다. 위 글을 토대로 단순히 은나라 수도에 마한이 있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준이 도망가기 전의 수도는 과연 어디였을까 기록을 토대로 찾아봤습니다. 潛夫論卷九昔周宣王亦有韓侯其國也近燕故詩云普彼韓城燕師所完其後韓西亦姓韓為衛滿所伐.. 2009. 12. 17.
고려사 김위제(金謂磾)전 전문번역 김위제(金謂磾)는 숙종(肅宗) 원년(元年)에 위위승(衛尉丞) 동정(同正)이 되었다. 신라(新羅) 말기에 도선(道詵)이란 승려가 당국(唐國)에 들어가 일행(一行)의 지리에 대한 법을 배우고 돌아와 비기(秘記)를 지어 전했다. 위제(謂磾)가 그것을 배워 남경(南京)으로 천도하기를 상서하여 청하며 말하기를 “도선기(道詵記)에서 이르기를 고려(高麗)의 땅은 삼경(三京)이 있는데 송악(松嶽)이 중경(中京)이고, 목멱양(木覓壤)이 남경(南京)이며, 평양(平壤)이 서경(西京)이 됩니다. 11월, 12월, 1월, 2월은 중경(中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3월, 4월, 5월, 6월은 남경(南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7월, 8월, 9월, 10월은 서경(西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36개의 나라가 조공할 것입니다.”라고.. 2009. 12. 17.
기자(箕子)의 어원과 풍백(風伯)과의 관계 앞서 발조선은 바람국(發藍國)으로 치우의 자손인 서여(西余)가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서여(西余)는 은국(殷國)에서 망명해 온 기자(箕子) 서여(胥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신단(辰檀)의 정통을 이은 바람국(發藍國)이 곧 기국(箕國)이라는 것을 밝히고 지나인들이 바람국의 다른 이름인 기국(箕國)을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왜곡한 위사임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신단(辰 檀)의 정통을 이은 국가는 치우의 자손 서여(西余)가 세운 바람국(發藍國)이다. 《한단고기》의 저자는 이를 모른 체 서여(西余)에 대한 기록이 〈번한세가〉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우여(徐于餘)라는 각색된 인물을 만들어 우리 역사를 혼란스럽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할 것이다. 〈번한세가〉를 보면 치두남(蚩.. 2009.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