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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21

고대 국가명 짓는 원리 우리민족의 옛말 중에 나라(國)를 뜻하던 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옛 나라이름에는 “나라”를 뜻하는 옛말들을 덧붙여서 사용하였다. 첫째는 “골”이다. 이 를 사용하여 나라이름을 지은 국가들은 대개 강가에 도읍을 건설하고 강을 “개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면 “개울”이 어떻게 “골”이 되는가? 두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을 “골짜기” 혹은 “골”이라 하는데, 이런 곳에 물이 흐르게 되면 “개울”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밭의 두둑과 두둑 사이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랑”이라 하며, 온돌방에 불길이 지나가도록 방구들 밑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래”라고 한다. 이 모두가 어원이 같은 말이며, 개울녘에 마을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면 그곳을 “골” 또는 “고을”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현재 고을이란 말.. 2014. 9. 2.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 발단은 AD238년의 공손씨 멸망에 있다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한 원인은 238년에 공손씨 멸망에 있더군요. 고구려가 吳와 魏 사이에서 동맹국을 선택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魏를 선택하고... 관구검이 공손씨를 공격할때 도와줍니다. 《삼국지》〈공손탁전〉 景初元年, 乃遣幽州刺史毌丘儉等齎璽書徵淵. 淵遂發兵, 逆於遼隧, 與儉等戰. 儉等不利而還. 경초 원년, 이에 유주자사 관구검 등에게 새서를 주어 공손연을 징벌하도록 보내었다. 공손연은 군사를 일으켜 요수遼隧에서 관구검 등과 싸웠다. 관구검 등은 불리하여 돌아왔다. 이때가 AD237년입니다. 결국 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와서 다음해에 다시 공손씨를 공격하죠. 《삼국지》〈공손탁전〉 二年春, 遣太尉司馬宣王征淵. ...중략.... 傳淵首洛陽, 遼東、帶方、樂浪、玄菟悉平. 2년 봄, 태위 사마선왕을 보내어 공손연.. 2013. 7. 2.
고구려 임금이 기산(箕山)에서 사냥한 까닭은.. 고구려 임금은 기산(箕山)에서 사냥을 하곤 하였습니다. 기산(箕山)의 箕는 기자(箕子)의 箕와 같은데 이상하죠. 왜 그랬을까요? 해답은 고려사에 있습니다. 俠溪縣本高勾麗水谷城縣[一云買且忽.]新羅景德王改名檀溪爲永豐郡領縣. 高麗初更今名. 顯宗九年來屬後置監務. 有北蘇宮闕舊基.[北蘇卽縣之箕達山辛禑時據道詵密記遣權仲和等審得之與左蘇白岳山右蘇白馬山爲三蘇.] 협 계현은 본시 고구려 수곡성현이다(매차홀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개명하기를 단계(檀溪)라 하였고 영풍군에서 다스린 현이다. 고려 초에 다시 이름을 고쳐 지금과 같이 하였다. 현종 9년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북소궁궐(北蘇宮闕) 터가 있다(북소는 기달산(箕達山)을 두고 한 말인데 고려 우왕(禑王) 때에 도선밀기(道詵密記)에 의거하여 권중화 등을 파견 조사케 .. 2012. 11. 30.
고각(鼓角)은 고구려에게 어떤 의미일까? 고각(鼓角)이란 기본적으로 군중(軍中)에서 쓰는 북과 나팔을 말한다. 고구려에는 고적(鼓笛)을 군대에서 신호로쓸 뿐만 아니라, 고각을 불고 기치(旗幟)를 들게 하니 모든 군사가 북치고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진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요고(腰鼓)는 각(角)과 함께 군대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각과 문헌자료를 살펴보면, 고(鼓)의 종류는 고, 요고, 제고, 담고, 구두고, 용두고 등 6종류로 파악된다. 각(角)에 관하여 악기명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문헌자료는 없으나, 와 에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뿔나팔’의 존재가 확인된다.이렇듯 고각은 군대에서 주로 사용하다가, 그후 민간 부분까지 확대 되었다. 그러나 아무르강 일대에 거주하는 고대아시아인들 가운데 신들과.. 2012.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