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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수서 말갈전 번역 그러나 그 나라는 수(隋)와 아주 멀리 떨어져있고, 속말부와 백산부만이 가까웠다. 수 양제 초에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자주 그들을 물리치니, 그의 우두머리인 도지계(度地稽)가 그 부락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양제는 그에게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를 제수하고, 유성(柳城, 지금의 요령성 조양일대를 지칭함)에 거주시켜 변방 사람과 내왕을 하게 하였다. 중국의 풍속을 좋아하여 관대(冠帶)를 청하니, 양제는 이를 가상히 여겨 비단(錦綺)를 내려주고 총애하였다. 요동정벌(遼東征伐)때에도 도지계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종군하였는데, 전공을 세울 때마다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대업(大業)13년(A.D. 617 ; 고구려 영양왕28)에 양제를 따라 강도(江都)에 갔다. 얼마후 유성으로 돌아갔는데, 중도에서 이밀.. 2009. 12. 18.
북사 물길전 번역 수양제(隋煬帝) 초에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그들을 자주 물리치자, 거수 돌지계(突地稽)가 그 부락을 거느리고 항복해 왔으므로,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에 제수하여 유성(柳城)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그가 변방 사람들과 왕래하면서도 중국의 풍속을 좋아하여 관(冠)과 허리 띠(帶)를 착용하겠다고 청하니, 양제는 그를 갸륵하게 여겨 비단(錦綺)를 상으로 내리고 총애하였다. 요동의 전쟁에는 돌지계가 그 무리들을 거느리고 종군하였는데, 전공을 세울 때마다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대업(大業) 13년(A.D. 617 ; 고구려 영양왕28)에 돌지계는 양제가 행행(幸行)한 강도(江都)로 호송하였는데, 얼마 후에 유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도중에 이밀(李密)이 병사를 파견하여 오는 것을 기다리다 쳐부수니 가까스로 죽음을.. 2009. 12. 18.
책부원귀 발해전 번역 현종 선천(先天) 2년(713) 2월에 말갈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하였다. 대조영은 성력(聖曆) 연간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으로 등극하였다. 영주(營州)에서 동으로 2000리나 되고 군사가 수만명이나 되었다. 이에 이르러 낭장(郎將) 최흔(崔訢)을 보내 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고 의연히 그를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으로 삼았다. 이때로부터 해마다 사절을 보내 조근하고 공물을 바쳤다. 玄宗先天二年(713) 二月 拜高麗大首領高定傅爲特進 是月 封靺鞨大祚榮爲渤海郡王(大祚榮, 聖曆千自立爲振國王在營州東二千里. 兵數萬人, 至是, 遣郞將崔訢往冊命祚榮左驍衛員外大將軍渤海郡王. 仍以其所統爲汗州都督, 自是每歲遣使朝貢.) 개원(開元) 7년 3월에 홀한주도독, 발해군왕 대조영이 .. 2009. 12. 18.
송막기문 발해전 번역 발해국은 연경(燕京 ; 지금의 북경)이나 여진(女眞)의 도읍에서 1,500리 떨어져 있는데, 돌로 성을 쌓았다. 동쪽으로는 바다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 나라의 임금은 옛날부터 대씨(大氏)를 성으로 삼았다. 유력한 성씨로는 고(高)·장(張)·양(楊)·두(竇)·오(烏)·이(李) 등 몇 종류에 불과하다. 부곡(部曲)이나 노비 등 성씨가 없는 자들은 모두 그 주인(의 성)을 따른다. 부인들은 투기가 심하다. 대체로 다른 성씨들과 서로 10자매라는 (의자매) 관계를 맺어 번갈아 남편들을 감시하며 첩을 두지 못하게 한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독살을 모의하여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다. 한 남편이 바람을 폈는데 그 아내가 깨닫지 못하면 아홉 자매가 떼지어 가서 비난한다. 이처럼 다투어 투.. 200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