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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흉노(匈奴)의 옹곤와 왕검... 휴저(休屠) 《사기(史記) · 흉노열전(匈奴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듬해 봄 한나라는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郭去病)에게 1만 기를 거느리고 농서(隴西)로부터 출격하게 했다. 곽거병은 언지산(焉支山)에서 천여 리나 진출해서 흉노를 공격하여 흉노의 수급 포로 1만 8천 여급을 얻고 휴저왕(休屠王)을 격파한 다음, 선우가 천제를 지낼 때 쓰는 금속제 금인상(金人像)을 손에 넣었다."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해 가을 선우는 혼야왕(渾邪王)과 휴저왕(休屠王)이 서쪽에 있어 한나라 군사에게 수만 명이나 죽기도 하고 포로가 되기도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그들을 불러들여 책임을 물어 그 두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혼야왕과 휴저왕은 두려운 나머지 한나라에 항복할 것을 꾀했다. 한.. 2009. 12. 31.
신당서 발해 열전 번역문 바다와 접해 있으니 일본으로 통하는 길[日本道]이고, 남해부는 신라로 통하는 길[新羅道]이다. 압록부는 당나라에 조공하러 가는 길[朝貢道]이고, 장령부는 당나라 영주로 통하는 길[營州道]이며, 부여부는 거란으로 통하는 길[契丹道]이다. 발해의 민간에서는 임금을 가독부(可毒夫)라고 부르지만 보통 성왕(聖王) 또는 기하(基下)라고 한다. 임금의 명령은 교(敎)라고 한다. 임금의 아버지는 노왕(老王), 어머니는 태비(太妃), 왕비는 귀비(貴妃), 큰 아들은 부왕(副王), 다른 아들은 왕자(王子)라고 부른다. 관청으로는 선조성(宣詔省)이 있는데, 좌상(左相), 좌평장사(左平章事), 시중(侍中), 좌상사(左常侍), 간의(諫議) 등의 관리가 소속되어 있다. 중대성(中臺省)에는 우상(右相), 우평장사(右平章事), 내.. 2009. 12. 31.
신당서 고구려 열전 번역문 고려(高麗)는 본래 부여(夫餘)의 별종이다. 국토는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新羅)에 이르고, 남으로는 역시 바다를 건너 백제(百濟)에 이른다. 서북으로는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와 접하고, 북은 말갈(靺鞨)과 접한다. 그 나라의 왕이 살고 있는 곳은 평양성(平壤城)으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부르는데, 한 대(漢代)의 낙랑군(樂浪郡)으로 장안에서 5천리 밖에 있다.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을 쌓았으며, 남쪽은 패수(浿水)와 연해있다. 왕은 그 좌측에 궁궐을 지어놓았다. 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는데 별도라 부른다. 물은 대요(大遼)와 소요(少遼)가 있다. 대요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흐른다. 소요는 요산(遼山)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역시 남으로 .. 2009. 12. 31.
구당서 해(奚) 열전 번역문 해(奚)는 대체로 흉노(匈奴)의 별종이다. 거주지는 선비(鮮卑)의 옛 땅이니 바로 동호(東胡)의 경계로서 당나라 장안에서 동북쪽으로 4,000여리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거란(契丹)과 접하고 서쪽으로 돌궐(突厥)에 이르며 남쪽으로 백랑하(白狼河 ; 대릉하)까지 이르며, 북쪽으로 습(霫)에 이른다. 영주(營州)에서 서북쪽의 요락수(饒樂水)부터 그 나라에 이른다. 뛰어난 병사는 3만여명이며 다섯 부족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족마다 사근(俟斤) 한 사람이 있다. 풍속은 돌궐과 비슷해서 항상 물과 풀을 쫓아다니며 목축을 생업으로 삼아 옮겨다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다. 머무는 곳은 융단 장막이며 수레를 사용하여 군영을 만드는데 항상 500명을 두어 지키도록 한다. 이 밖의 부락은 모두 산간 계곡에 흩어져 있으므로 .. 2009.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