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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신당서 동이전 유귀국(流鬼國) 번역문 #新唐書卷220-列傳第145-流鬼-03/01◉去京師萬五千里, 直東北, 少海之北, 三面皆阻海, 其北莫知所窮. 人依嶼散居, 多沮澤, 有魚鹽之利. 地蚤寒, 多霜雪, 以木廣六寸․長七尺系其上, 以踐冰, 逐走獸. 土多狗, 以皮爲裘. 俗被髮, 粟似莠而小, 無蔬蓏它穀. 勝兵萬人. 南與鄰, 東南航海十五日行, 乃至. 十四年, 其王遣子更三譯來朝, 授騎都尉遣之.유귀는 경사에서 1만 5천리 떨어져 있고 흑수말갈에서 곧장 동북쪽으로 작은 바다의 북쪽에 있으며 삼면이 모두 바다에 막혀있고 그 북쪽은 끝 닿는 곳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작은 섬에 의지하여 흩어져 거처하며 습지와 못이 많고 바닷고기와 소금의 혜택이 있다. 땅은 일찍 추워지고 서리와 눈이 많으며 넓이가 6촌에 길이 7척인 나무를 사용하여 그 위쪽을 끈으로 매어 얼음 .. 2010. 1. 17.
낙랑군 수성현은 하북성 서수현? 新校本晉書/志/卷十四 志第四/地理上/平州 樂浪郡漢置.統縣六,戶三千七百.朝鮮周封箕子地. 屯有 渾彌 遂城秦築長城之所起. 鏤方 駟望진서 지리지 평주조에는 “낙랑은 한나라에서 설치하고, 관할 현은 6개이며 호는 3천 7백이다. (관할 현으로서) 조선은 주나라에서 기자에게 봉해 준 땅이며, 둔유, 혼미, 수성(遂城)은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나는 곳이며, 둔유, 사망이 있다.” 통전(通典) 주군(州郡) 전에 『易州今理易縣 春秋至戰國屬燕 秦置上谷郡 晉書曰 在谷之上頭 故曰上谷 漢屬涿郡 後漢因之 晉為范陽國 後魏亦為上谷郡 隋初置昌黎郡 後兼置易州 煬帝初州廢 置上谷郡 大唐因之 領縣八 易漢故安縣故城在今縣南 有淶易二水 有燕臺 昭王求仙處 又有漢范陽縣故城 在縣東南, 遂城古武遂也 秦築長城之所起, 淶水漢之遒縣 遒即由反, 容城漢舊縣 .. 2010. 1. 15.
發朝鮮(발조선)과 風夷(풍이)의 관계 신채호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은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는데 신조선(眞朝鮮)과 불조선(番朝鮮)과 말조선(馬朝鮮)이라고 하였다. 더나아가관자(管子)에 기록된 發朝鮮(발조선)은 ‘불조선’의 전음(轉音)이고 지나국(支那國)에서 가까우므로 기록에 보였다고 하였다.그러나 현재 고조선이라 불리는 신단(辰檀)은 3개의 영역으로 나뉜바 없으며 불조선(番朝鮮)이 신단(辰檀)의 서남쪽에 위치한 적도 없었고 말조선(馬朝鮮)이 신단(辰檀)의 동남쪽에 위치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말조선(馬朝鮮)으로 인식되었던 말한(馬韓, 마한)은 신단(辰檀)의 서남쪽에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 쫓기어 건국되었고, 불조선이라 불리던 변진(弁辰)은 신단(辰檀)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삼조선.. 2010. 1. 15.
구당서 고구려 열전 번역문 고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있으니, 곧 한(漢) 낙랑군(樂浪郡)의 옛 땅으로서 장안(長安)의 동쪽 5천 1백 리에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쪽은 바다를 건너 백제(百濟)에 이르고 북쪽은 말갈(靺鞨)에 이른다. 동서가 3천 1백 리요 남북이 2천리이다. 그 관직에서 가장 높은 것을 대대로(大對盧)라 부르고 1품에 비견된다. 나라의 일을 총괄하여 주재하는데 3년에 한 차례씩 교체하는데, 만약 그 직위에 적합한 자면 연한의 제한에 거리끼지 않는다. 교체하는 날에는 혹은 서로 공경하여 복종하지 않고, 모두 군대를 이끌고 서로를 공격하여 이기는 자가 대대로가 된다. 왕은 단지 궁문을 닫고 스스로 지킬 .. 2010.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