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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진서(晉書) · 지리지(地理志)》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전제 글: 장진근1. 글 머리에 필자는 본란에서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진서(晉書)》 특히 《지리지》 부분에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것임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것을 재론하는 번잡함을 피하고 그 요점만을 소개하고 진서 지리지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는 어떤 점이 필요한지를 논급하려고 한다. 첫째, 《진서》는 제왕이 역사 편찬에 직접 관여한 어찬사서이다. 그는 다름 아닌 당태종 이세민이다. 필자가 최근 국립중앙도서관 장서에서 발견했다던 《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考)》에 는 사마천을 위시해서 《고금역대찬사제유성씨(古今歷代撰史諸儒姓氏)》명단 150명이 들어 있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당태종이 올라 있고 거기에는 "칭제찬진서(稱制撰晉書)"라고 써 있는데 그 말은 진서를 제찬(制撰)하였다고 뜻이다. 《진서.. 2010. 1. 28.
전삼한(前三韓)의 오류 4: 위만조선의 영토가 만주까지였던가? 사서의 기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억지로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면 항상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다. 여기 眞番朝鮮(진번조선)을 眞朝鮮(진조선)과 番朝鮮(번조선)으로 해석하면 어떤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살펴봄으로써 前三韓(전삼한)설의 허상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기 조선열전》 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眞番臨屯皆來服屬 그래서 위만은 병사와 재물와 위엄을 얻어 그 변방 소국을 침략하여 항복을 받았다. 眞番臨屯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다. 어떤이들은 이 기록에 나오는 眞番臨屯은 그저 주변 소국 진번국과 임둔국이고 眞番朝鮮(진번조선)이 眞朝鮮(진조선)과 番朝鮮(번조선)이라는 억지를 부리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삼한(前三韓)의 오류 1: 연국(燕國)이 만주를 차지했었던가?”과 “전삼한(前三韓)의 오류 2: 眞番을 해.. 2010. 1. 25.
연나라 남쪽의 갈석산 [백송 글]갈석산의 위치는 고대로부터 학자들 간에 큰 논쟁이 되어 왔다.근래에 와서는 여러 학자가 산동성 무체현에 있는 갈석산이야말로 『상서 우공』에 기록된 갈석산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통설로 인정받고 있던 하북성 창려현의 갈석산 지위를 흔들고 있는 양상이다.갈석산의 위치에 대한 것은 사서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고, 학자들의 이론 또한 다기하다. 지금은 중국의 학자들이 둘로 나뉘어서 하북성과 산동성 양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이에 필자 또한 여러 사서의 기록과 현 중국의 몇몇 학자들의 논고를 참고 삼아서 소견을 밝혀 본다. 1.갈석은 연나라의 남쪽에 있었다. ○史記十九 蘇秦列傳(사기 소진 열전)소진이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2010. 1. 25.
전삼한(前三韓)의 오류 3: 朝鮮眞番(조선진번)은 무엇인가? 1) 前三韓(전삼한) 논거 복습필자의 글을 하나씩 좇아가며 읽어온 사람은 “1) 前三韓(전삼한) 논거 복습”을 생략하고 다음의 “2) 朝鮮眞番(조선진번)은 무엇인가?”로 넘어가도 좋다.前三韓(전삼한) 혹은 三朝鮮(삼조선) 설의 근거는 무척 간단하며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 조선열전이다. 《사기 조선열전》朝鮮王滿者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集解 徐廣曰., 一作莫】朝鮮【如淳云 燕嘗略二國以屬己也】為置吏築鄣塞조선(朝鮮)의 임금 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의 연나라의 전성기때부터 일찍이 眞番【혹은 莫으로도 쓴다】朝鮮【연나라는 일찍이 2개의 나라를 침략하여 복속시켰다】을 침략하여 복속시켰고 관리를 두고 요새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신채호 선생은 조선사연구초에서 위의 사기 조선열전을 확대.. 2010.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