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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소도와 왕검의 명칭은 흉노에도 있었다 一. 휴저(休屠) 《사기(史記) · 흉노열전(匈奴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듬해 봄 한나라는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郭去病)에게 1만 기를 거느리고 농서(隴西)로부터 출격하게 했다. 곽거병은 언지산(焉支山)에서 천여 리나 진출해서 흉노를 공격하여 흉노의 수급 포로 1만 8천 여급을 얻고 휴저왕(休屠王)을 격파한 다음, 선우가 천제를 지낼 때 쓰는 금속제 금인상(金人像)을 손에 넣었다."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해 가을 선우는 혼야왕(渾邪王)과 휴저왕(休屠王)이 서쪽에 있어 한나라 군사에게 수만 명이나 죽기도 하고 포로가 되기도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그들을 불러들여 책임을 물어 그 두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혼야왕과 휴저왕은 두려운 나머지 한나라에 항복할 것을 꾀했다.. 2009. 11. 20.
인삼의 특질로 바라본 고려 요동론 해동역사에 우리나라의 인삼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 특질을 분류하여보면 고려가 요동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동역사 권26》[1] 인삼은 백제(百濟)의 것을 중하게 치는데, 형체가 가늘고 단단하며 희다. 기운과 맛은 상당(上黨)에서 나는 것보다 박(薄)하다. 다음으로는 고려의 것을 쓰는데, 고려는 바로 요동(遼東)으로, 형체가 크고 허(虛)하며 연(軟)하여 백제의 인삼만 못하다. 백제는 지금 고려에 신속(臣屬)되었는바, 고려에서 바치는 인삼에는 두 가지 종류가 겸해 있으니, 어느 것을 취에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쓰기에는 모두 상당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명의별록(名醫別錄) 주(注)에서 인용. 고려와 고구려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써서 헷갈리는데요… 우선 위 .. 2009. 11. 18.
포구수와 밀운과 백단 사서란 원래 과거의 일을 기록하다보니 소략해지고 왜곡되기 마련이며, 그것이 고착되어 하나의 통념이 되어버리면 고쳐지기 어렵다. 밀운과 포구수도 그러하다. 현재 학계는 포구수를 현재의 조하라고 한다. 그러나 면밀히 조사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鮑丘水出禦夷北塞中…중략…又南, 逕鎭東南九十里西密雲戌西 포구수는 어이진 새의 가운데에서 나와서…중략…남쪽으로 흐르다가 어이진 동남쪽 90리에 서밀운 수비성 서쪽을 지난다. 여기 어이진을 나와서 서밀운을 지난다고 하였고, 서밀운은 어이진 동남족 90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밀운과 어이진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保安右衛, 在懷安城?...중략...御夷?城, 在衛西北, 보안保安 우위右衛는 회안懷安성 안에 있다...중략... 어이진御夷? 성城은 보안우위(衛.. 2009. 11. 18.
포구수가 지나던 밀운(密雲)은 지금의 밀운시가 아니다 수경주에 보면 포구수(鮑丘水)는 밀운(密雲)을 지난다고 해놓고선, 유수(濡水)가 백단(白檀)을 지난다고 하였다. 우선 밀운이란 지명을 보면... 위국(魏國)에서 밀운군을 설치하고 그곳에 밀운현, 요양현(要陽縣), 백단현을 둔 것이다. 그리고 이 밀운현이 지금까지 내려와 현재의 밀운시가 되었고 현재의 백하와 조하가 합류하여 조백신하가 되는 곳이다. 하나의 밀운군에 밀운현과 백단현이 있다는 것은 이 두 곳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밀운을 지나는 강은 포구수(현재 백하라고 함)이고 백단을 지나는 강은 유수(현재 난하라고 함)라고 하니 이해가 좀 가지 않는다. 아래 지도를 보면 필자가 말하는 바가 더 잘 이해될 것이다. 검은색줄은 백하와 조백신하를 나타낸디ㅏ. 백하는 조하와 "밀운시"에서 합류한 후부.. 2009.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