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위만조선의 배신자들(한사군은 하북성) 퍼온곳 http://cafe.naver.com/whqusgh/2204 -위만조선의 배신자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한(漢)나라에 투항하여 봉후(封侯)된 자는 모두 다섯명이 다. 상(相) 한음(韓陰) 혹은 한도(韓陶) -> 적저후(荻詳侯) 공로 : 조선의 상(相)으로서 한병(漢兵)이 이르러 성을 포위하자 항복하였다. 식읍 : 발해(勃海) 540戶 기간 : 元封 三年 四月 丁卯일에 봉후되어 19년을 해먹다가, 延和 二年에 죽었다. 후사가 없었다. 장군 왕협(王 ) -> 평주후(平州侯) 공로 : 조선 장수로서 한병(漢兵)이 이르자 항복하였다. 식읍 : 태산 양부현(泰山 梁父縣) 1,480戶 기간 : 元封 三年 四月 丁卯일에 봉후되어 1년 후에 사망하였고, 후사가 없어 후국(侯國)은 삭제되었다. 이.. 2009. 11. 18. 정인보 선생이 밝힌 평양토성 출토 소위 낙랑 봉니(封泥) 저자: 봉오선생 출처: http://cafe.naver.com/manchuria 1. 글 머리에 요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자주 들여다 보는 구이넷(coo2.net)이란 사이트가 있다. 필자도 가끔 그곳에 들어가 잡문을 기고한 바 있다. 거기에는 옛날 평양 일대가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치소였음을 입증하는데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낙랑 봉니가 모두 가짜였음을 북한에서 밝힌 것처럼 소개가 되었으나 사실은 그같은 위조 주장은 정인보 선생께서 이미 밝히셨음을 그 분의 저서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에서 확인하였으니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쓴다. 다만 《조선사연구》라는 책이 출간된 것은 1946년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그 책의 초고가 언제 작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분께서는 연희 전문에.. 2009. 11. 18. 잘못알고 있던 내원성來遠城과 보주保州와 압록강 강단에서는 내원성來遠城과 보주保州와 개주開州 등이 지금의 압록강 하구에 있다고 하고 있으나 그들이 얼마나 사서를 안읽어봤는지 알 수 있다. 무경총요는 송나라 병서(兵書)인데 그곳에 지리관련 기록이 있다. 군인들이 이 책을 보고 전쟁을 대비하여 지리를 배우는 책이다. 따라서 지리를 잘못알면 큰일나므로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였다고 필자는 자신할 수 있다. 개주(開州), 발해의 옛 성이다. 虜[요나라?]의 왕이 동쪽으로 신라를 토벌하고 그 요해처에다 도시를 건설하고 주를 삼았으며 다시 개원군(開遠軍)을 설치하였다. 서쪽으로 래원성(來遠城)까지 120리이다. 서남쪽으로 길주(吉州)까지 70리이다. 동남쪽으로 석성(石城)까지 60리이다. 내원성(來遠城),虜가 경술년에 신라를 토벌하고 성을 쌓고 지켰는데 즉 중국 대.. 2009. 11. 18. 가탐도리기 傍海壖 번역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過 烏牧島 貝江口 椒島 得新羅西北之長口鎮.... 가탐도리기의 傍海壖의 번역이 좀 헷갈리는군요. 海壖란 해변이라는 말입니다. 東傍海壖는 "동쪽으로 해변을 곁에 두고"라고 번역을 해야하죠. 南傍海壖도 역시 "남쪽으로 해변을 곁에 두고"라고 번역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논리상 맞지 않습니다. 주해도편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大謝島와 龜歆島와 淤島와 烏湖島와 馬石山과 都里鎮은 발해의 서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青泥浦와 桃花浦와 橐駝灣과 烏牧島와 椒島는 발해의 북쪽에 있습니다. 만약 東傍海壖이 앞문장에 걸린다면 東傍海壖는 西傍海壖이어.. 2009. 11. 18. 이전 1 ··· 99 100 101 102 103 104 105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