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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神市(신시, 신불)을 왜 檀國(단국)으로 썼을까? 「丸雄(환웅)」이 세운 나라를 神巿(신불)라 쓰기도 하고 檀國(단국)이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이름은 발음도 많이 다르고 뜻도 서로 다르므로 어떤 나라이름이 진짜인지 알 길이 없으며 과연 이 나라이름들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본 사론에서는 神巿이 왜 檀國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파헤쳐 보고자 한다. 神巿은 “신불”로 읽어야 하며 “불”은 곧 나라「國」를 뜻하는 옛말이다. 따라서 神巿와 檀國의 비교는 神과 檀만 비교하여 보면 된다. 神巿(신불)과 檀國(단국)의 관계神巿(신불)과 檀國(단국)이 같은 나라라면 어떻게 박달나무를 뜻하는 檀(단)이라는 글자가 하느님을 뜻하는 神(신)이라는 글자와 대등하게 쓰였냐는 질문이 대두된다. 이에 대답하기 위하여 神의 옛 글자에 대하여 알아보자. 강.. 2009. 12. 15.
조선역사지도첩과 고구려영토: 남한의 역사학계는 반성해야만 한다. 고구려 영토는 6세기 말~7세기 초 중국 흑룡강성과 내몽골자치주와 요녕성은 물론이고 연해주까지로 되어있다. 식민사학에 물들어 일본의 역사해석을 그대로 베껴쓰고 있는 게을러빠진 현재 남한의 역사학계는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BC 30세기에 건국된 전조선은 BC 15세기 후조선으로 교체되었고 이 시기에 고대국가인 부여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북부여는 후부여라고 한 듯 하다. 전조선의 수도가 현재 북한의 평양이라고 한 것으로봐서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게 깔려있으니 틀렸다. 단군조선의 수도는 현재 홍산문명지와 하가점하층문화지역으로 요하 상류와 대릉하 상류지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09. 12. 15.
백제의 영토는 압록강 북쪽까지 차지하였었다 백제는 통설에 북쪽 경계가 浿河까지라 하고 浿河를 대동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에 한산주를 빼앗기기 전까지 압록강 이북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27년(서기 9) 여름 4월에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한산(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가을 7월에 대두산성(大豆山城)을 쌓았다. 의심해하기로는 마한 멸망 후 대두산성을 쌓았으므로 대두산성 근처에 마한의 본거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하지만 의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두산성은 이외에도 마한의 잔여세력들이 반기를 들때 다시 등장합니다. 34 년(서기 16) 겨울 10월에 마한의 옛 장수 주근(周勤)이 우곡성(牛谷城)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친히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이를 토벌.. 2009. 12. 15.
욱리하(郁里河)의 위치는 산동성 청주(靑州)일까? 삼국사기 개로왕조에 등장하는 욱리하(郁里河)는 어디에 있었을까? 먼저 욱리하가 기재된 삼국사기를 살펴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3 개로왕 이 에 나라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안에는 궁실과 누각(樓閣)과 대사(臺) 등을 지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음이 없었다. 또 욱리하(郁里河)에서 큰 돌을 가져다가 곽(槨)을 만들어 부왕의 뼈를 장사하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았는 데 사성(蛇城) 동쪽에서 숭산(崇山) 북쪽에까지 이르렀다. 於是 盡發國人 烝土築城 卽於其內作宮25)樓閣臺 無不壯麗 又取大石於郁里河 作槨以葬父骨 緣河樹堰 自蛇城之東 至崇山之北(디지털한국학 자료 인용) 그런데, 지나의 수많은 지명중에서도 욱(郁)자가 들어간 지명은 찾기가 쉽지 않다. 즉, 매우 특수한 경우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 2009.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