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신당서新唐書 북적 실위室韋 열전 번역문 실위는 거란의 별종으로 동호의 북쪽 변방에 있으니 아마도 정령의 후예일 것이다. 땅은 황룡의 북쪽에 자리하고 노월하의 곁에 있으니 경사에서 곧장 동북쪽 7천 리이며, 동쪽은 흑수말갈이고 서쪽은 돌궐이며, 남쪽은 거란이고 북쪽은 바다에 접해있다. 그 나라는 군자잉 없이 단지 큰 추장이 있어 모두 막하돌이라 부르는데 그 부락을 관할하여 돌궐에 붙좇는다. 작은 곳은 1천 호이고 큰 곳은 수천 호이며, 하천과 게곡에 연하여 흩어져 물과 풀을 좇아 거처하며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 매번 수렵하게 되면 곧 서로 불러 모이게 하고 일을 마치면 돌아가는데 서로 복속이나 제재하지 않는 까닭에 비록 용맹하여 굳세어 전투를 즐긴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능히 강국이 되지 못하였다.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어 사람이 끌어 경작을 하.. 2009. 12. 21. 신당서新唐書 북적 거란契丹 열전 번역문 거란은 본래 동호 종족으로 그들의 선조가 흉노에 의해 격파되자 선비산에 의지하여 자리잡았었다. 위나라 청룡(233~237) 연간에 부락의 추장 가비능이 점차 사납고 교만해지더니 유주자사 왕웅(王雄)에게 살해되자 그 무리들이 마침내 미약해져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으로 달아났다. 원위(元魏-북위) 때 이르러 스스로 거란이라 불렀다.그 땅은 경사에서 곧장 동북방 5천 리 남짓에 있으며, 동쪽은 고려에 이르고 서쪽은 해(奚)이며 남쪽은 영주(營州)이고 북쪽은 말갈 및 실위로서, 냉형산(冷 山)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스스로 견고하게 여긴다. 활로서 수렵하며 거처는 고정된 곳이 없다. 그들의 군장은 대하(大賀)씨이며 날랜 군사가 4만 명이 있고 여덟 부락로 나뉘어져 돌궐에 신하로 복속되어 사근(俟斤.. 2009. 12. 21. 통전通典 백제百濟전 번역문 通典 卷第一百八十五 邊防一 東夷上 百濟 百濟,卽後漢末夫餘王尉仇台之後,後魏時百濟王上表云:「臣與高麗先出夫餘。」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晉時句麗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自晉以後,呑幷諸國,據有馬韓故地。其國東西四百里,南北九百里,南接新羅,北拒高麗千餘里,西限大海,處小海之南。國西南海中有三島,出黃漆樹,似小檟樹而大。六月取汁,漆器物若黃金,其光奪目。自晉代受蕃爵,自置百濟郡。義熙中,以百濟王夫餘腆佗典反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宋、齊並遣使朝貢,授官,封其人。 전백제는 즉 후한말 부여왕 위구태의 후손이다. 후위 때에 백제왕이 표를 올려서 말하기를 “신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일찍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 백여가구가 바다를 건넘으로써 국호를 백제라고 했다. 진나라때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와.. 2009. 12. 21. 대방군과 현도군의 위치에 대한 이상한 기록... 마한을 보통 생각하기에 최씨낙랑국 남쪽일 것이라 생각하며 그곳에서 백제가 시작하였다고 합니다.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으로보아 마한은 적어도 난하까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기록이 몇몇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좀 다른 기록이 보입니다.通志卷四十一朝鮮都王險(漢樂浪郡), 濊都濊在髙句麗之北(漢滄海郡), 三韓皆都帶方郡之東大海中東西以海為限南與倭接北與樂浪方可四千里(위만)조선은 도읍이 왕험성이다(한나라 낙랑군이다), 예(濊)는 예(濊)에 도읍했는데 현도군 고구려현의 북쪽이다(한나라 창해군이다). 삼한은 모두 대방군의 동쪽 대해(大海) 가운데에 도읍했는데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제한되었고 남쪽은 왜와 접하고 북쪽은 낙랑군과 접했으므로 거의 4천리이다. 보통 마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대방군의.. 2009. 12. 21. 이전 1 ··· 53 54 55 56 57 58 59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