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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의 올바른 해석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은 해석을 가지각색으로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臣智와 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하였다."로 번역하였다. 어떤이는 "한의 신지들이 격분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하였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위 번역 모두 매끄럽지 못한데 왜냐하면 激을 번역을 생략하였기때문이다.백납본을 보면 이에 대한 해답이 있다. 백납본은 臣智激韓忿이 아니라 臣幘沾韓忿으로 되어있다. 즉, 臣智와 韓의 무리가 격분하여가 아니라 臣幘沾韓이 화를 내어로 해석해야한다. 그리고 여기서 臣幘沾韓이란 곧 臣濆沽韓을 잘못 베껴쓴 것이며 臣濆沽韓이란 臣濆沽國을 말한다. 즉 경초년간에 있던 帶方郡崎離營의 공격은 臣濆沽國에서 시작되어 韓의 모든 작은나라로로 확장되어갔던 것이다. 2010. 3. 26.
낙랑군이 식민지라고 생각하면 일제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은 것 漢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세운 4개의 군이 식민지인가? 아직도 이런 사관에 사로잡혀서 낙랑군 위치를 무조건 압록강 북쪽으로 위치시켜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다거나 낙랑군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가지고 우리민족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이 여전히 일본의 식민통치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식민지라는 것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모든 땅을 점령하고 점령한 나라의 모든 땅을 자기네식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漢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군현을 설치하였지만, 위만조선이 우리민족의 전부가 아닐찐대 어찌 그곳이 식민지가 될수 있겠는가? 낙랑군과 현도군은 길고긴 역사속에서 그저 잠시 중국이 차지했던 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자.. 2010. 3. 18.
신당서 흑수말갈 열전 번역문 연간(A.D. 742~755;신라 경덕왕1~14)에 여덟 번 와서 고래 눈알(鯨睛), 담비(貂鼠), 흰토끼가죽(白兎皮)를 바쳤다. 철리(鐵利)는 개원(開元) 연간(A.D. 713~741;신라 聖德王 12~孝成王 5)에 여섯 번 왔다. 월희는 (개원 연간에) 일곱 번 오고, 정원(貞元) 연간 (A.D. 785~804;신라 원성왕 1~애장왕 5)에 한번 왔다. 우루(虞婁)는 정관(貞觀) 연간(A.D. 672~649;고구려 營留王 10~寶藏王 8)에 두 번오고, 정원(貞元) 연간 (A.D. 785~804;신라 元聖王 1~哀莊王 5)에 한번 왔다. 뒤에 발해가 강성해지자, 말갈은 모두 그들에게 복속되어 다시는 왕과 만나지 못하였다. 흑수말갈(黑水靺鞨)은 숙신(肅愼) 땅에 있는데, 읍루((挹婁)라고도 하며, 후위.. 2010. 3. 14.
독도발언 사실이면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들이 주장함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독도발언이 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일본측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교과서 해설서에 실어야 한다고 말하니,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대답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걸가지고 지금 시민소송단이 손해배상을 요미우리신문에 청구하여 재판중인가보다. 오늘 신문을 보니 참 재밌다. 요미우리신문은 서면자료에서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적 마찰을 낳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신빙성 있는 사실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채 이 기사를 보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고 한다[1]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헌법상 영토보전 책무를 저버리는 것은 명백한 탄핵사유"라고 지적했다고 한겨레신문에서 말했으며,[2]민주당 부대변인 이재명은 .. 2010.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