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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탁록과 치우성은 산서성 해주에 있다 치우가 황제 헌원(軒轅)과 전투를 하다 죽은 곳은 현 하북성 북부의 탁록(涿鹿)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지명을 고대의 그것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이지만, 하북성이 아니라 산서성 운성현(運城縣) 해진(解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산서성 남단인 해주(解州)의 염지(鹽池)를 중심으로 한 일대가 치우와 헌원이 전투를 벌린 지역임을 주장하는 아래의 근거 자료는 지나 웹에서 발췌한 것이다. 해진(解鎭)은 고대에 해량(解梁)이라고 불리웠었는데 해현지(解縣:解州誌)에는 "原解梁亦稱涿鹿" 이라는 기록이 있고, 안읍현지(安邑縣誌)에는 "他是安邑"蚩尤村"(今改爲從善村)人" 이라는 기록이 있다. 안읍에 치우촌이 있었는데 개명된 이름은 종선촌이라 한다. 당나라 시인 왕한(王翰)이 지은 解州의 시(詩) 중에는 .. 2009. 11. 24.
환단고기 산업... 사마천 사기도 위서 작성자: 조재범 흔히 식민사학계에서 [한단고기]위서론을 설파할 때, 문화나 부권, 모권, 산업 등의 근대적 용어가 나온다고 위서라고 몰아붙입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적어도 산업이란 용어가 [삼국사기]에도 나온다면 식민사학계에서 뭐라고 반응할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삼국사기]에서 산업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대목은 신라의 문무왕이 당나라 장수 설인귀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제가 그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又於就利山築壇 對勅使劉仁願 歃血相盟 山河爲誓 畵界爲封 永爲彊界 百姓居住 各營産業 "또 취리산(就利山)에 단을 쌓고 칙사 유인원을 상대로 삽혈로써 맹세하고 산하(山河)로써 서약한 후 경계를 긋고 푯말을 세워 길이 강계를 정하니 백성들이 거주하여 제각기 산업(産業)을 영위하였던 것이오." 적어도 산업이.. 2009. 11. 24.
흉노(匈奴)와 예(濊)와 신라는 서로 통한다 사건의 일치 《환단고기》 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부여(余)에게 명하여 지키고 다스리게 한 후 (추장 소시모리를 참수하게 하였다.) (•)의 부분은 진위가 의심되니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단군임검때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예濊를 토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기사가 단군임검때에 규원사화에 존재합니다. 《규원사화》 御國四十餘載, 而有猰猶之亂. 猰猶兪者, 獫狁之屬也, ...중략..., 卽使夫餘會集中外之兵, 討平之. 乃益封夫餘, 北方之地, 使宅牛首忽卽先平壤, 使夫婁居壬儉城, 令夫蘇修樂浪忽, 夫虞監唐莊京, 更封高矢氏於南方之地. 건 국한지 40여 년만에 알유猰猶의 난이 있었다. 알유猰猶는 험윤獫狁의 족속으로...중략... 부여로 하여금.. 2009. 11. 23.
수경주 저자의 패수에 관한 거짓말 패수에 관한 수경주의 기록 중에 저자의 거짓말을 찾아보도록 하자 水經注卷十四 [수경]浿水出樂浪鏤方縣東南過臨浿縣東入于海 [주]許慎云浿水出鏤方東入海一曰出浿水縣. 十三州志曰浿水縣在樂浪東北鏤方縣在郡東盖出其縣南逕鏤方也 昔 燕人衞滿自浿水西至朝鮮朝鮮故箕子國也箕子教民以義田織信厚約以八法而下知禁遂成禮俗戰國時滿乃王之都王險城地方數千里至其孫右渠漢武帝元封二年遣樓船將 軍楊僕左將軍荀彘討右渠破渠于浿水遂滅之若浿水東流無渡浿之理其地今髙句麗之國治余訪蕃使言城在浿水之陽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即樂浪郡治漢武帝置而西北 流故地理志曰浿水西至增地縣入海又漢興以朝鮮為逺循遼東故塞至浿水為界考之今古于事差謬盖經誤證也 [수경]패수(浿水)는 낙랑군 루방현(鏤方縣)을 나와서 동남쪽으로 림패현(臨浿縣)을 지나 동쪽으로 海로 들어간다(過 다음에 于가 있기도 한다) [주]허신(許.. 200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