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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왜 니하(泥河)라고 하였을까? 니하의 의미를 찾아서... 요사지리지에 보면 패수(浿水)는 일명 니하(泥河)라고 한다고 하였다. 패수(浿水)는 다 알듯이 평양(平壤)의 남쪽에 있던 강이다. 넓은 들판을 우리말로 '벌'이라 하였으니 平壤이란 '벌터'이고 浿水란 '벌내'임을 알 수 있다. 평양성과 패수는 넓은 들판에 흐르던 강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패수를 泥河(니하)라고 하였을까? 泥란 우리말로 진흙이다. 우리지명 중에 泥가 붙은 한자지명과 그 곳의 토박이들이 부르는 말을 비교하여보면 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泥洞(니동)을 "진고개" 혹은 "진골"이라고 한다.[1] 泥를 뜻으로 읽어 "진"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泥河도 "진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진"이란 긴(長)의 구개음이다. 따라서 泥河란 "긴 강"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白山의 남쪽 너른.. 2009. 11. 27.
패수(浿水)와 열수(洌水)와 황수(潢水)는 다 같은 강인가? 패수와 열수 사기 조선열전 집해에 濕水(습수) 洌水(열수) 汕水(산수) 등 3개의 강이 있는데 이 강들이 합쳐져 洌水(열수)가 된다고 하였다. 이말은 위 3개의 강이 위만조선의 중요한 위치 즉 도읍에 있었던 강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면 위만조선의 도읍인 평양성에 있었던 가장 주된 강줄기는 열수라는 말이다. 한서지리지 주석에 보면 험독현이 왕검성이라는 주장과 패수의 동쪽이 왕검성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치를 이룬다. 이 말은 위만조선의 도읍이 어느때에는 요동군 험독현에 있었고 어느때에는 낙랑군 패수현에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위 습수 열수 산수는 요동군에 있던지 낙랑군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서지리지 낙랑군의 기록에 "탄열현에 열수가 나온다"고 하였다는 것으로부터으므로 위 습수와 산수는 모두 낙랑군에 있.. 2009. 11. 26.
왕검의 단서: 옹곤과 온우제에 나타난 몽골어원 몽골어의 옹곤 혹은 온우제라는 말은 샤만교 관념에서 매우 의무가 너무 광범한 개념이다. 옹곤수(翁袞樹) · 옹곤패(翁袞壩) · 옹곤산(翁袞山) · 옹곤마(翁袞馬) 등과 같이 일체의 숭배의 대상이 모두 옹곤을 머리에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옹곤 혹은 온우제란 이 개념은 우리가 현재 말하고자 하는 우상, 천지, 귀신, 자연, 선조, 토템 등 일체의 숭배대상이다. 온곤 혹은 온우제는 지위가 높거나 낮다든가, 크거나 작다든가, 구체 혹은 추상적이든가, 유형 혹은 무형 등의 구별이 있어, 예를 들면 하늘은 가장 높고 크며 무형적인 옹곤이요, 땅은 그 다음으로 큰 유형적인 옹곤이요 선조의 우상은 유형적인 옹곤 또는 선조 영혼을 담고 다니는 케리어(載體)는 선조의 영혼의 무형적 옹곤 등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 2009. 11. 26.
귀주대첩과 관련된 영토회복의 정당성 근거 (1) 거란의 10만 군사에 대응하여 우리 군사 20만 8천 3백명이 맞아 싸운 것인데 먼저 영주에 주둔하였다고 하네요.그런데 영주를 두고 번역본은 평남 안주라고 하고 있고.. 강감찬 장군이 흥화진에서 수공으로 적을 물리쳐 이긴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인데 흥화진의 한자는 興化鎭 으로 원문에 되어 있더군요. 또 대장군 강민첨은 자주 내구산에서 적을 유인하여 패퇴시켯다고 하는데 자주 내수간을 평남 순천이라고 번역해 놓았네요. 1.영토.... 영토회복과 수호는 국민과 국군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영토에 대하여 왜곡을 하여 두고 영토회복과 수호를 하라고 하면 잘못된 아비를 제 아비로 모시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왜곡은 하늘 아래 그 보다 더한 죄가 없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2009.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