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섭라(涉羅)를 조사하다 섭라가 과연 어디일까? 한번 사서에 섭라국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고 그곳이 어디인지 추측해보자. 우선 섭라에 대한 기록이 맨처음 나온 위서를 찾아보자. 백제와 관련된 섭라(涉羅) 魏書卷一百 正始中, 世祖於東堂引見其使芮悉弗, 悉弗進曰: 「高麗係誠天極, 累葉純誠, 地産土毛, 無愆王貢. 但黃金出自夫餘, 珂則涉羅所産. 今夫餘爲勿吉所逐, 涉羅爲百濟所幷, 國王臣雲惟繼絶之義, 悉遷于境內. 二品所以不登王府, 實兩賊是爲.」 正始 연간에 세조가 동당(東堂)에서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인견(引見)하니, 예실불(芮悉弗)이 말하기를, “고구려는 여러 대에 걸쳐 천극(天極)를 충성스럽게 이어왔고 땅의 토산물을 왕공(王貢)에 빠뜨리지 않았다. 오직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가(珂)는 섭라(涉羅)에서 생산된다. 이제 부여는 물길.. 2009. 11. 27.
패수와 니하: 泥河란 무엇을 말하는가? 요사지리지에 보면 패수(浿水)는 일명 니하(泥河)라고 한다고 하였다. 패수(浿水)는 다 알듯이 평양(平壤)의 남쪽에 있던 강이다. 넓은 들판을 우리말로 '벌'이라 하였으니 平壤이란 '벌터'이고 浿水란 '벌내'임을 알 수 있다. 평양성과 패수는 넓은 들판에 흐르던 강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패수를 泥河(니하)라고 하였을까? 泥란 우리말로 진흙이다. 우리지명 중에 泥가 붙은 한자지명과 그 곳의 토박이들이 부르는 말을 비교하여보면 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泥洞(니동)을 "진고개" 혹은 "진골"이라고 한다.[1] 泥를 뜻으로 읽어 "진"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泥河도 "진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진"이란 긴(長)의 구개음이다. 따라서 泥河란 "긴 강"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白山의 남쪽 너른.. 2009. 11. 27.
부여의 영토는 어디일까? 우리의 고대사는 매우 왜곡되어 있다. 특히 상고사로 올라갈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우리는 흔히 부여라는 나라에 대하여 막현한 그림과 같은 생각만 가지고 있지 그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이 나라의 실상에 대해서 표면적인 것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식민사학무리들은 부여가 곧 현재 만주의 송원시라고 비정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송원시 옆에 "부여시"가 있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부여시는 20세기에 중국에서 만든 도시의 이름이다. 20세기에 만든 도시 이름을 따서 고대사를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현재 만주의 "부여시"의 옛 이름은 "백도랍"이다. 그런데 어찌 이곳이 옛날 부여가 될수있겠는가? 이제 부여가 어느 곳에 있었는지 알아보자 많은 이들이 중국사 지리지를 .. 2009. 11. 27.
고대우리말 군왕의 호칭: 태왕과 가한과 가독부에 대하여 조선사연구초에 기록하기를 고조선시대에 삼한이 있었고 이들은 곧 신한과 말한과 불한이며 한자로 辰汗 馬汗 潘汗이라고 쓴다고 하였다. 신한이란 최고 중의 최고요 이를 한자로 바꾸면 곧 태왕(太王)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신"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말에 이런 흔적이 있을까? 라는 것이지요. 그럴까요? 1) 신한(辰汗)의 "신" 여기서 "신"은 최고 최상의 뜻이라기보다는 문자그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고조선시대에 최고지도자는 하느님의 대표자로 사람들이 생각하였기에, 그를 이름하여 하늘과 달과 별의 신을 대표하는 지도자라고 이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정일치 사회는 우리역사가 고조선분열 후 열국시대에 이르면서 사라져서 고구려 건국부터는 제정일치사.. 2009.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