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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탁록과 치우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치우가 황제 헌원(軒轅)과 전투를 하다 죽은 곳은 현 하북성 북부의 탁록(涿鹿)이라고 우리는 알고있다. 현재지명을 고대의 그것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이지만, 하북성이 아니라 산서성 운성현(運城縣) 해진(解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산서성 남단인 해주(解州)의 염지(鹽池)를 중심으로 한 일대가 치우와 헌원이 전투를 벌린 지역임을 주장하는 아래의 근거 자료는 지나 웹에서 발췌한 것이다. 해진(解鎭)은 고대에 해량(解梁)이라고 불리웠었는데 해현지(解縣:解州誌)에는 "原解梁亦稱涿鹿" 이라는 기록이 있고, 안읍현지(安邑縣誌)에는 "他是安邑"蚩尤村"(今改爲從善村)人" 이라는 기록이 있다.안읍에 치우촌이 있었는데 개명된 이름은 종선촌이라 한다. 당나라 시인 왕한(王翰)이 지은 解州의 시(詩) 중에는 "涿鹿.. 2009. 12. 14.
패수(浿水)와 니하(泥河)의 의미 요사지리지에 보면 패수(浿水)는 일명 니하(泥河)라고 한다고 하였다. 패수(浿水)는 다 알듯이 평양(平壤)의 남쪽에 있던 강이다. 넓은 들판을 우리말로 '벌'이라 하였으니 平壤이란 '벌터'이고 浿水란 '벌내'임을 알 수 있다. 평양성과 패수는 넓은 들판에 흐르던 강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패수를 泥河(니하)라고 하였을까? 泥란 우리말로 진흙이다. 우리지명 중에 泥가 붙은 한자지명과 그 곳의 토박이들이 부르는 말을 비교하여보면 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泥洞(니동)을 "진고개" 혹은 "진골"이라고 한다.[1] 泥를 뜻으로 읽어 "진"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泥河도 "진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진"이란 긴(長)의 구개음이다. 따라서 泥河란 "긴 강"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白山의 남쪽 너른.. 2009. 12. 14.
백악산아사달의 위치와 옛 부여의 도읍과의 관계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산재되어 있고 헷갈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산재되어 있는 기록들을 모아 하나의 편년으로 만들다보니 여기가 저기인지 저기가 여기인지 알아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도읍의 이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 글에서는 후기 고조선의 도읍인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의 정확한 위치 비정보다는 그 곳은 고조선 봉국 중 하나인 옛 부여의 도읍이었다라는 것을 보이겠습니다. 대략의 위치는 그림에 보였습니다. 제외시켜야 할 것들우선 고조선 도읍이라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이름들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겠습니다. 임검성(壬儉城): 이는 도읍의 이름이 아니라 역대 단군이 살던 성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비슷한 것이지요. 壬은 북방색인 "검은"을 나타.. 2009. 12. 14.
혼동강은 남쪽으로 흐르던 압록강의 지류였다! 혼동강을 강단에서 현재의 송화강이라고 합니다.그러나 고대의 기록을 보면 혼동강은 남으로 흘렀던 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마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에 도착하였다. 오사채에서 잠을 잤다.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이곳으로부터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기록입니다.혼동강은 남으로 흐르고 압록강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이런 기록을 두고 만주원류.. 200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