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를 협박하여 쫓아 낸 <수성(차대제)>기 입니다.
<태조>가 죽은 해에 피살되고, <백고>가 섭니다.
꼼꼼히 보아 주시고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은 제 월말 업무(의식주해결)로 바빠서 시일이 걸립니다.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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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主次大帝紀
◎ 帝名<遂成>, <太祖>之胞弟也. 勇而有威秉軍. 立功(雖)多, 性嗜淫虐好酒. 脅太祖讓位得立.
○ 제의 휘는 <수성>으로 <태조>의 동복아우이다. 용감하고 위엄 있어 군권을 장악하였다. 세운 공이 많지만, 성품이 음란하고 포악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였다. <태조>를 위협하여 양위 받고 제위에 올랐다.
◎ 丙戌年, 十二月, 以<太祖>命攝行政事. 是年<羅>·<押督>相爭.
○ 병술(단기2479년/AD146), 월, <태조>가 정사를 떠맡으라고 명하였다. 이 해에 <신라>와 <압독>이 서로 싸웠다.
◎ 丁亥, 正月, 以<松>氏·<婍穆(度婁女)>·<紇>氏(干女桶口王妃)·<于>氏(恢女)·<陽>氏 (神女)爲五方仙后, 飾其宮園, 以珍禽異花玉綵緞, 以爲遊黨恣情之所, 四時移住. 度婁左輔. <尙>后生子<騄>.
<羅>選將材.
○ 정해(단기2480년/AD147), 저월, <송>씨·<기목(도루녀)>·<흘>씨(간녀통구왕비)·<우>씨(회녀)·<양>씨 (신녀)를 5방선후로 삼고, 그들이 있는 궁은 진기한 새와 이상한 꽃 그리고 옥과 채단으로 치장하여 함께 즐기는 무리들의 ‘자정지소’로 만들고, 철따라 옮겨 다니며 머물렀다. <상>후가 아들 <록>을 낳았다.
<신라>는 장수 될 인재를 가려 뽑았다.
◎ 戊子, 七月, 獵<倭山>. <彌儒>·<箊疾>·<陽神>勸受神璽. <羅>以<朴阿道>爲葛文王. <伯 固>聚<度婁>女<守禮>. 田于<平儒原>, 射白狐不中, 隨鳴不己. 門于巫師曰; “妖怪也. 匈然修德則轉爲福.” 主大怒曰; “匈則匈, 福則福. 汝何亂言.” 乃殺其巫. 主自知罪重, 不可修德, 故惡其勸悔也. <査健>子<山來>獻白駝, 以<비>公主妻之.
○ 무자(단기2481년/AD148), 칠월, <왜산>에서 사냥하였다. <이유>·<어질>·<양신>이 ‘신새(神璽)’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신라>에서는 <박아도>가 갈문왕이 되었다. <백고>가 <목도루>의 딸 <수례>와 혼인하였다. <평유원>에서 사냥하다가 흰 여우를 쏘았는데, 맞추질 못하여, 소리를 따라갔더니만 찾을 수 없었다. 무사에게 물었더니 “요망하고 괴이한 일입니다. 흉사도 덕을 쌓으면 복으로 변합니다.”라고 답하기에, 주는 화를 버럭 내어 말하길; “흉사는 흉사고, 복은 복이다. 너는 어찌 어지러운 말을 해대냐!” 하고는 그 무사를 죽여 버렸다. 주는 스스로 지은 죄가 무거워 덕을 쌓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뉘우치라 한 말에 나쁘게 대한 것이었다. <사건>의 아들 <산래>가 흰 낙타를 바쳐오니, <비>공주를 처로 주었다.
◎ 己丑, 正月, <孺>左輔, <箊疾>右輔. 四月, 丁卯晦, 日食. 五月, 五星聚東方, 太史誣以爲吉, 主喜. 十二月, 無氷.
<羅>, 正月, <得訓>沙湌, <宣忠>柰麻. 八月, 星孛天市. 十一月, 雷. 京都大疫.
○ 기축(단기2482년/AD149), 정월, <미유>를 좌보로, <어질>을 우보로 삼았다. 4월 정묘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5월, ‘오성’이 동방에 한데 모였다. 태사가 길조라 속여서 아뢰니, 주가 기뻐하였다. 12월, 물이 얼지 않았다.
<신라>에서는 정월에 <득훈>을 사찬으로 <선충>을 내마로 삼았고, 8월엔 혜성이 천시성좌를 범했다. 11월엔 경도에 돌림병이 크게 돌았다.
◎ 庚寅, <羅>, 自四月旱至七月而始雨. <松奇>左輔, <彌儒>右輔.
○ 경인(단기2483년/AD150), <신라>에서는 4월부터 가뭄이 들어 7월 되어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송기>를 좌보로, <미유>를 우보로 삼았다.
◎ 辛卯, 九月, 地震. <羅>, 二月, <雄宣>死, <大宣>伊湌知兵馬使. 三月, 雹.
先是, 上皇在<鶻川宮>, 夢見豹齒虎尾, 門於<高福章>曰; “人君之禍福在德不在夢.”, 巫則以爲同類相殘之兆, 故心□不悅. 主使<尙>后, 謁上皇, 而請璽. 上皇言夢及<高>·<巫>之釋后曰; “<福章>旣己善解, 何信離間之巫乎.” 十二月, 受寶于<鶻川宮>.
○ 신묘(단기2484년/AD151), 9월, 지진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2월에 <웅선>이 죽어 <대선>이 이찬 지병마사가 되었고, 3월엔 우박이 내렸다.
이에 앞서, 상황은 <골천궁>에 기거했는데, 꿈에 표범의 이빨과 호랑이 꼬리를 보았기에, <고복장>에게 물으니, 아뢰길; “인군의 화와 복은 덕을 행하느냐에 있지 꿈에서 오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었는데, 무당이 '동류상잔'의 징조라 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즐겁지 않았다.
주는 <상>후에게 상황을 찾아가서 옥새를 달라 하라고 시켰다. 상황이 꿈 이야기와 <고복장>과 무사의 해몽을 이야기 하였더니만, <상>후가 말하길; “<복장>이 이미 그것을 깔끔하게 해몽하였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무당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 하였다.
12월, (<수성>이) <골천궁>에서 어보를 받았다.
◎ 七年壬辰, 四月, 田<倭山>, 戱雪多選民女. 助戱<麻正>諫曰; “<東明>之田有三; 一曰天, 二曰軍, 三曰賢. 今, 以農時, 奪民妻女, 以戱謣如是, 非<代鏡>也.” 主怒, 以爲'吠主之狗', 射殺之.
<白面>左輔, <尙曲>右輔. 先是, <白面>上<三代鏡>繪五卷于上皇, 而右輔至. 又上<劒璽玉鞭之圖>及<大武神利勿>繪卷, 而陞左輔. <白面>畵璽于<鶻川宮>時, 勸上皇曰; “權歸, 而璽不歸, 徒失和, 而己不如授之, 以安其心.” 上皇可云. <守禮>生女于<錦林院>. 七月, 后父<尙溫>薨, 年七十二, 翌日曲又暴死, 年才四十六. 皆以后, 故驟貴登相, 故人望之絶, 反有快其雹者. 主欲收拾(取拾?)人望, 以<穆度婁>爲太輔, <度婁>稱病不出, 以<高福章>爲右輔. 十二月晦, <穆度瘻>薨, 年七十九, 主聞之安心.
○ 7년(단기2485년/AD152)임진, 4월, <왜산>에서 사냥하며, 민간에서 차출된 많은 여인들을 희롱하여 욕보이니, 놀이를 돕는 직책이었던 <마정>이 아뢰길; “<동명>께서는 세 가지의 사냥을 하셨는데, 그 하나는 천제를 지내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군사훈련을 위함이었고, 셋째는 인격수양을 위함이었습니다. 농사철에 민간의 처와 딸들을 빼앗아 이와 같이 망령되게 희롱하심은 <대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주가 노하여 '주인에게 짖는 개'라 하여 쏘아 죽였다.
<백면>은 좌보가, <상곡>은 우보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백면>은 상황께 <삼대경> 그림 다섯 권을 바치고 우보에 이르렀고, <검새옥편지도>와 <대무신><이물> 그림을 바치고 좌보로 승차하였었다. <백면>이 <골천궁>에서 옥새를 그리던 때, 상황께 권고하여 아뢰길; “권력은 주고 옥새를 주지 않으면,
그 무리는 실화(失和)하게 되니, 아예 옥새까지 주는 것만 같지 않게 됩니다. 옥새까지 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시지요."라 하니, 상황은 그리 하겠다고 하였다. <수례>가 <금림원>에서 딸을 낳았다. 7월, **<상>후의 부친이 나이 72세에 죽고, 바로 다음날 <상곡>이**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상>후로 인하여 높은 자리를 빨리 얻고 재상에 오르게 된 까닭에 죽은 이를 우러름은 끊기고, 반대로 그들 집안이 부서짐을 반기었다. 주는 사람들이 우러르는 사람을 쓰고자 하여, <목도루>를 태보로 삼았으나, 병이 있다 하여 출사하지 않았고, <고복장>을 우보로 삼았다. 12월 그믐날에 <목도루>가 나이 79세에 죽었는데, 주는 그 소식을 듣고 안심하였다.
◎ 八年癸巳, 正月, <彌儒>太輔, <箊疾>左輔, <尙岑>右輔, <尙蕃>中畏大夫. 六月, 霜. <箊疾>欲奪<高福章>之妻, 讒<福章>, 勸上皇勿授璽之事, 誅之, 而有財及妻女其子流散, 國人哀之.
○ 8년(단기2486년/AD153)계사, 정월, <미유>를 태보로, <어질>을 좌보로, <상잠>을 우보로, <상번>을 중외대부로 삼았다. 6월, <어질>이 <고복장>의 처를 빼앗으려고, <복장>이 상황에게 옥새를 <수성>에게 주지 말라고 청한 것을 참소하여, 죽게 하니, 재산과 처자식이 흩어져 버렸고, 나라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 九年甲午, 二月, <福章>奴義人刺<箊疾>于途, 不中, 而死之. <羅>, <逸聖>殂, 子<達那>立, 身長七尺, 豊準奇相. 伊湌<繼元>秉軍國政, 一吉湌<興宣>佑之. <索頭>, <査健>殂, 子<山>立.
○ 9년(단기2487년/AD154)갑오, 2월, <복장>의 가노였던 의로운 사람이 <어질>을 길에서 칼질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죽음을 당했다. <신라>에서는 <일성>이 죽어, 아들인 <달나>가 섰는데, (<달나>는 키가 칠 척인데다 뚱뚱하고 펑퍼짐한 기이한 얼굴이었다. 이찬 <계원>이 군권과 정사를 잡았고, 일길찬 <흥선>이 도왔다. <색두>에서는 <사건>이 죽고, 아들 <산>이 섰다.
◎ 十年乙未, 正月, <太祖>長子<萬勒>爲反, 而殺之. <勒>弟<莫德>恐禍, 而避之, 困而自縊于野, 國人痛哭, 上皇莫知.
○ 10년(단기2488년/AD155)을미, 정월, <태조>의 맏아들 <만륵>이 반란하였다가 죽임을 당하니. <만륵>의 동생 <모덕>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피하여 다니다가, 힘겨워서 들판에서 목매어 죽었는데, 상황은 이를 몰랐다.
◎ 十一年丙申, 四月, <羅>, 霜, 開<鷄立岺>.
○ 11년(단기2489년/AD156)병신, 4월, <신라>에서는 서리가 내렸고, <계립령>길을 확보했다.
◎ 十二年丁酉, 二月, <羅>置<甘勿>·<馬山>二縣, 三月, 勞<長岺鎭>戍卒, 賜征袍.
○ 12년(단기2490년/AD157)정유, 2월, <신라>가 <감물>과 <마산> 2현을 설치었다. 3월, <장령진>의 수졸들을 위로하고 군복을 나누어주었다.
◎ 十三年戊戌, 三月, <羅>開<竹岺(非高句麗之竹岺也)>. <倭>使至<羅>.
○ 13년(단기2491년/AD158)무술, 3월, <신라>가 <죽령(비고구려지죽령야)>길을 확보했다. <왜>의 사신이 <신라>에 왔다.
◎ 十五年庚子, 四月, <羅>, <閼川>水溢, 人家漂流, <金城>北門自毁.
○ 15년(단기2493년/AD160)경자, 4월, <신라>에서는 <알천>이 넘쳐서 집들이 물에 뜨거나 떠내려갔고, <금성>의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 十六年辛丑, 七月, <尙>后生子(馬+白). <羅>, 蝗, 而海魚多死.
○ 16년(단기2494년/AD161)신축, 칠월, <상>후가 아들 **<맥>**을 낳았다. <신라>가 황충 피해를 당하고,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 十七年壬寅, 四月, 北部大使者<尙蕃>入爲左輔, <伯固>北部大使者. 時,<箊疾>與<彌儒>爭權, 迎<蕃>而入<蕃>. 己亥(十四年), 五月, 讓右輔於<陽神>而出北部務, 拾人心, 三年, 頌聲大振. <箊疾>勸主, 爲太輔以副, 人心然. <儒>無辭意, <疾>自免. 人以爲<疾>欲□<儒>自□. 初, 主以<伯固>爲己子, 至是, 以爲上皇子, 以欲害之, 密遣人圖之. <羅>勞<沙道()城>戍卒. 主强報<守禮>爲宮人.
○ 17년(단기2495년/AD162)임인, 4월, 북부대사자 <상번>이 들어와 좌보가 되고, <백고>가 북부대사자가 되었다. 그때, <어질>이 <미유>와 권력을 다투다가, <상번>을 맞아들이니, <상번>이 (내직으로) 들어온 것이다. (<상번>은) 기해년(14년), 5월에 우보자리를 <양신>에게 양보하고 북부로 인심을 수습하러 3년간 나가 있었는데,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었다. <어질>이 주에게 권하여 아뢰길, 태보가 보좌하면 인심이 수그러들 것이라 했었다. <미유>가 자리를 내놓지 않으니, <어질>이 자리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어질>이 <미유>를 쫓아내려 했다가 자신이 쫓겨나게 되었다고 여겼다. 초에, 주는 <백고>를 자기의 아들로 여겼었는데, 이제 와서는, <백고>가 상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해치고자 하고는 몰래 사람을 보내 도모했다. <신라>가 <사도성>의 수졸들을 위무하였다. **주는 크게 보복하여, <수례>를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평범한) 궁인으로 만들었다.**
◎ 十八年癸卯, 二月, <麻靖>爲<狛>部使者, <尙>后密命護<伯固>, 又以<明臨答夫>爲<椽那宮>皀(皂)衣. 三月, <尙蕃>薨, 年六十一. <蕃>沈重下人, 爲<尙>氏之柱, 亦中途而折. 主惡<箊疾>, 以<陽神>爲左輔, <尙庚>爲右輔.
○ 18년(단기2496년/AD163)계묘, 2월, <마정>을 <박>부사자로 삼고, <상>후가 밀명하여 <백고>를 보호하라 했다. 그리고, <명림답부>를 <연나궁>의 흡의(조의?)로 삼았다. 3월, <상번>이 나이 61세로 죽었는데, <상번>은 하인을 매우 중히 여겨 <상>씨 집안의 기둥으로 삼았는데, 역시 중도에 꺾였다. 주가 <어질>에게 못되게 하여, <양신>을 좌보로 삼고, <상경>을 우보로 삼아버렸다.
◎ 十九年庚辰, 二月, <守禮>生女, 主大喜, 封爲<尊昜>公主, 加<守禮>庄園奴婢, 寵幸漸加. 時<尙>后寵衰唯白雲, <守禮>專房, **<遂成>大事.** <羅>都龍見.
○ 19년(단기2497년/AD164)경진, 2월, <수례>가 딸을 낳으니, 주는 크게 기뻐하며, <존양>공주로 봉하고, <수례>에게 장원과 노비를 더하여 주고는, <수례>를 찾는 일이 점차 더하여졌다. 이때, <상>후는 찾아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흰 구름만 바라볼 뿐이었는데, <수례>는 총애를 독차지하고, <수성>은 (<수례>에게) 엄청 잘 하여 주었다. **
<신라>에서는 도성에 용이 나타났다.
◎ 二十年乙巳, 正月, 晦, 日食. 上皇病, <尙>后往慰之. 上皇曰; "我以母后遺詔, 兄弟相傳, 以汝讓之. 汝惑<遂成>, 於<遂成>而殺我子, 又逐<伯固>耶." 后泣曰; "此非妾志也." 上曰; "吾雖死, 可以見汝." 后曰; "吾當<殺遂>成, 以報汝恩." 上皇大喜, 遂復幸后, 而崩. 乃, 三月, 朔頭也, 春秋九十八. 殯于<鶻川宮>, 十月, 以遺詔, 以宮爲陵(小八浪界). <尙>后自以爲弑上皇之功臣, 復得主寵, 進'茛實膘卵', 主毒不足而不死, 欲執戟害后, 而倒<明臨答夫>, 遂入壯刺脅而殺之, 我不發**喪**, 召<箊疾>于內, 盡誅<彌儒>·<陽神>之黨及主心腹壯士數十人. 凡十日, 而盡. 然後迎<伯固>太子卽位, <尙>后與<箊疾>列擧主惡, 而上皇遺詔廢之, 曰; "<神明仙皇>戒, 以不可照惡, 故廢之.
○ 20년(단기2498년/AD165)을사, 정월,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다. 상황이 병이 들어, <상>후가 찾아가 위로하였더니, 상황이 이르길; "나는 모후가 남기신 명에 따라 형제간에 옥좌를 전위하고, 당신도 그에게 양보하였소. 당신은 <수성>을 꼬드겨서, <수성>이 내 아들을 죽이고, <백고>도 내쫓게 하였소."라 하니, 후가 울면서 받아 말하길; "그것은 제 뜻이 아니었었습니다."하였고, 상황은; "나는 죽어서도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오."라 하였는데, 후가 아뢰길; "저는 응당 <수성>을 죽여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황은 크게 기뻐하며, 후와 정을 나누고는 죽었다. 때는 3월 초두였고, 춘추 98세였다. <골천궁>에 빈소를 차리고 열 달이 지난 후에 유언에 따라 <골천궁>을 무덤(소팔랑계)으로 삼았다. <상>후는 스스로 상황의 공신을 죽여 주의 총애를 회복한 후 '간실표란(쇠갈비살에 독초씨앗을 넣어 만든 경단)'을 내었더니, 독이 부족하여 주는 죽지 않았고, 갈래창(미륵창)을 집어 후를 해치려 하였는데, <명림답부>가 도착하여 들어와서는 수성을 칼질하고 몸통을 껴안아 졸라 죽이고는, 나는 이 일을 밖에 알리지 않을 것이니, "<어질>을 안으로 불러들여 <미유>·<양신>와 그 무리들 및 주의 심복 장사들 수십 명을 모조리 죽이십시요." 열흘이나 걸려서 모조리 해치웠다. 그런 연후에 <백고>를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고, <상>후는 <어질>과 함께 주의 죄악을 열거하고는, 상황이 남긴 명에 따라 <수성>을 폐위시키고 말하길; "<신명선제>께서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신 가르침을 따라 <수성>을 폐위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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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와 같은 부탁 드립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3)

<태조>가 죽은 해에 피살되고, <백고>가 섭니다.
꼼꼼히 보아 주시고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은 제 월말 업무(의식주해결)로 바빠서 시일이 걸립니다.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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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主次大帝紀
◎ 帝名<遂成>, <太祖>之胞弟也. 勇而有威秉軍. 立功(雖)多, 性嗜淫虐好酒. 脅太祖讓位得立.
○ 제의 휘는 <수성>으로 <태조>의 동복아우이다. 용감하고 위엄 있어 군권을 장악하였다. 세운 공이 많지만, 성품이 음란하고 포악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였다. <태조>를 위협하여 양위 받고 제위에 올랐다.
◎ 丙戌年, 十二月, 以<太祖>命攝行政事. 是年<羅>·<押督>相爭.
○ 병술(단기2479년/AD146), 월, <태조>가 정사를 떠맡으라고 명하였다. 이 해에 <신라>와 <압독>이 서로 싸웠다.
◎ 丁亥, 正月, 以<松>氏·<婍穆(度婁女)>·<紇>氏(干女桶口王妃)·<于>氏(恢女)·<陽>氏 (神女)爲五方仙后, 飾其宮園, 以珍禽異花玉綵緞, 以爲遊黨恣情之所, 四時移住. 度婁左輔. <尙>后生子<騄>.
<羅>選將材.
○ 정해(단기2480년/AD147), 저월, <송>씨·<기목(도루녀)>·<흘>씨(간녀통구왕비)·<우>씨(회녀)·<양>씨 (신녀)를 5방선후로 삼고, 그들이 있는 궁은 진기한 새와 이상한 꽃 그리고 옥과 채단으로 치장하여 함께 즐기는 무리들의 ‘자정지소’로 만들고, 철따라 옮겨 다니며 머물렀다. <상>후가 아들 <록>을 낳았다.
<신라>는 장수 될 인재를 가려 뽑았다.
◎ 戊子, 七月, 獵<倭山>. <彌儒>·<箊疾>·<陽神>勸受神璽. <羅>以<朴阿道>爲葛文王. <伯 固>聚<度婁>女<守禮>. 田于<平儒原>, 射白狐不中, 隨鳴不己. 門于巫師曰; “妖怪也. 匈然修德則轉爲福.” 主大怒曰; “匈則匈, 福則福. 汝何亂言.” 乃殺其巫. 主自知罪重, 不可修德, 故惡其勸悔也. <査健>子<山來>獻白駝, 以<비>公主妻之.
○ 무자(단기2481년/AD148), 칠월, <왜산>에서 사냥하였다. <이유>·<어질>·<양신>이 ‘신새(神璽)’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신라>에서는 <박아도>가 갈문왕이 되었다. <백고>가 <목도루>의 딸 <수례>와 혼인하였다. <평유원>에서 사냥하다가 흰 여우를 쏘았는데, 맞추질 못하여, 소리를 따라갔더니만 찾을 수 없었다. 무사에게 물었더니 “요망하고 괴이한 일입니다. 흉사도 덕을 쌓으면 복으로 변합니다.”라고 답하기에, 주는 화를 버럭 내어 말하길; “흉사는 흉사고, 복은 복이다. 너는 어찌 어지러운 말을 해대냐!” 하고는 그 무사를 죽여 버렸다. 주는 스스로 지은 죄가 무거워 덕을 쌓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뉘우치라 한 말에 나쁘게 대한 것이었다. <사건>의 아들 <산래>가 흰 낙타를 바쳐오니, <비>공주를 처로 주었다.
◎ 己丑, 正月, <孺>左輔, <箊疾>右輔. 四月, 丁卯晦, 日食. 五月, 五星聚東方, 太史誣以爲吉, 主喜. 十二月, 無氷.
<羅>, 正月, <得訓>沙湌, <宣忠>柰麻. 八月, 星孛天市. 十一月, 雷. 京都大疫.
○ 기축(단기2482년/AD149), 정월, <미유>를 좌보로, <어질>을 우보로 삼았다. 4월 정묘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5월, ‘오성’이 동방에 한데 모였다. 태사가 길조라 속여서 아뢰니, 주가 기뻐하였다. 12월, 물이 얼지 않았다.
<신라>에서는 정월에 <득훈>을 사찬으로 <선충>을 내마로 삼았고, 8월엔 혜성이 천시성좌를 범했다. 11월엔 경도에 돌림병이 크게 돌았다.
◎ 庚寅, <羅>, 自四月旱至七月而始雨. <松奇>左輔, <彌儒>右輔.
○ 경인(단기2483년/AD150), <신라>에서는 4월부터 가뭄이 들어 7월 되어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송기>를 좌보로, <미유>를 우보로 삼았다.
◎ 辛卯, 九月, 地震. <羅>, 二月, <雄宣>死, <大宣>伊湌知兵馬使. 三月, 雹.
先是, 上皇在<鶻川宮>, 夢見豹齒虎尾, 門於<高福章>曰; “人君之禍福在德不在夢.”, 巫則以爲同類相殘之兆, 故心□不悅. 主使<尙>后, 謁上皇, 而請璽. 上皇言夢及<高>·<巫>之釋后曰; “<福章>旣己善解, 何信離間之巫乎.” 十二月, 受寶于<鶻川宮>.
○ 신묘(단기2484년/AD151), 9월, 지진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2월에 <웅선>이 죽어 <대선>이 이찬 지병마사가 되었고, 3월엔 우박이 내렸다.
이에 앞서, 상황은 <골천궁>에 기거했는데, 꿈에 표범의 이빨과 호랑이 꼬리를 보았기에, <고복장>에게 물으니, 아뢰길; “인군의 화와 복은 덕을 행하느냐에 있지 꿈에서 오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었는데, 무당이 '동류상잔'의 징조라 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즐겁지 않았다.
주는 <상>후에게 상황을 찾아가서 옥새를 달라 하라고 시켰다. 상황이 꿈 이야기와 <고복장>과 무사의 해몽을 이야기 하였더니만, <상>후가 말하길; “<복장>이 이미 그것을 깔끔하게 해몽하였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무당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 하였다.
12월, (<수성>이) <골천궁>에서 어보를 받았다.
◎ 七年壬辰, 四月, 田<倭山>, 戱雪多選民女. 助戱<麻正>諫曰; “<東明>之田有三; 一曰天, 二曰軍, 三曰賢. 今, 以農時, 奪民妻女, 以戱謣如是, 非<代鏡>也.” 主怒, 以爲'吠主之狗', 射殺之.
<白面>左輔, <尙曲>右輔. 先是, <白面>上<三代鏡>繪五卷于上皇, 而右輔至. 又上<劒璽玉鞭之圖>及<大武神利勿>繪卷, 而陞左輔. <白面>畵璽于<鶻川宮>時, 勸上皇曰; “權歸, 而璽不歸, 徒失和, 而己不如授之, 以安其心.” 上皇可云. <守禮>生女于<錦林院>. 七月, 后父<尙溫>薨, 年七十二, 翌日曲又暴死, 年才四十六. 皆以后, 故驟貴登相, 故人望之絶, 反有快其雹者. 主欲收拾(取拾?)人望, 以<穆度婁>爲太輔, <度婁>稱病不出, 以<高福章>爲右輔. 十二月晦, <穆度瘻>薨, 年七十九, 主聞之安心.
○ 7년(단기2485년/AD152)임진, 4월, <왜산>에서 사냥하며, 민간에서 차출된 많은 여인들을 희롱하여 욕보이니, 놀이를 돕는 직책이었던 <마정>이 아뢰길; “<동명>께서는 세 가지의 사냥을 하셨는데, 그 하나는 천제를 지내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군사훈련을 위함이었고, 셋째는 인격수양을 위함이었습니다. 농사철에 민간의 처와 딸들을 빼앗아 이와 같이 망령되게 희롱하심은 <대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주가 노하여 '주인에게 짖는 개'라 하여 쏘아 죽였다.
<백면>은 좌보가, <상곡>은 우보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백면>은 상황께 <삼대경> 그림 다섯 권을 바치고 우보에 이르렀고, <검새옥편지도>와 <대무신><이물> 그림을 바치고 좌보로 승차하였었다. <백면>이 <골천궁>에서 옥새를 그리던 때, 상황께 권고하여 아뢰길; “권력은 주고 옥새를 주지 않으면,
그 무리는 실화(失和)하게 되니, 아예 옥새까지 주는 것만 같지 않게 됩니다. 옥새까지 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시지요."라 하니, 상황은 그리 하겠다고 하였다. <수례>가 <금림원>에서 딸을 낳았다. 7월, **<상>후의 부친이 나이 72세에 죽고, 바로 다음날 <상곡>이**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상>후로 인하여 높은 자리를 빨리 얻고 재상에 오르게 된 까닭에 죽은 이를 우러름은 끊기고, 반대로 그들 집안이 부서짐을 반기었다. 주는 사람들이 우러르는 사람을 쓰고자 하여, <목도루>를 태보로 삼았으나, 병이 있다 하여 출사하지 않았고, <고복장>을 우보로 삼았다. 12월 그믐날에 <목도루>가 나이 79세에 죽었는데, 주는 그 소식을 듣고 안심하였다.
◎ 八年癸巳, 正月, <彌儒>太輔, <箊疾>左輔, <尙岑>右輔, <尙蕃>中畏大夫. 六月, 霜. <箊疾>欲奪<高福章>之妻, 讒<福章>, 勸上皇勿授璽之事, 誅之, 而有財及妻女其子流散, 國人哀之.
○ 8년(단기2486년/AD153)계사, 정월, <미유>를 태보로, <어질>을 좌보로, <상잠>을 우보로, <상번>을 중외대부로 삼았다. 6월, <어질>이 <고복장>의 처를 빼앗으려고, <복장>이 상황에게 옥새를 <수성>에게 주지 말라고 청한 것을 참소하여, 죽게 하니, 재산과 처자식이 흩어져 버렸고, 나라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 九年甲午, 二月, <福章>奴義人刺<箊疾>于途, 不中, 而死之. <羅>, <逸聖>殂, 子<達那>立, 身長七尺, 豊準奇相. 伊湌<繼元>秉軍國政, 一吉湌<興宣>佑之. <索頭>, <査健>殂, 子<山>立.
○ 9년(단기2487년/AD154)갑오, 2월, <복장>의 가노였던 의로운 사람이 <어질>을 길에서 칼질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죽음을 당했다. <신라>에서는 <일성>이 죽어, 아들인 <달나>가 섰는데, (<달나>는 키가 칠 척인데다 뚱뚱하고 펑퍼짐한 기이한 얼굴이었다. 이찬 <계원>이 군권과 정사를 잡았고, 일길찬 <흥선>이 도왔다. <색두>에서는 <사건>이 죽고, 아들 <산>이 섰다.
◎ 十年乙未, 正月, <太祖>長子<萬勒>爲反, 而殺之. <勒>弟<莫德>恐禍, 而避之, 困而自縊于野, 國人痛哭, 上皇莫知.
○ 10년(단기2488년/AD155)을미, 정월, <태조>의 맏아들 <만륵>이 반란하였다가 죽임을 당하니. <만륵>의 동생 <모덕>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피하여 다니다가, 힘겨워서 들판에서 목매어 죽었는데, 상황은 이를 몰랐다.
◎ 十一年丙申, 四月, <羅>, 霜, 開<鷄立岺>.
○ 11년(단기2489년/AD156)병신, 4월, <신라>에서는 서리가 내렸고, <계립령>길을 확보했다.
◎ 十二年丁酉, 二月, <羅>置<甘勿>·<馬山>二縣, 三月, 勞<長岺鎭>戍卒, 賜征袍.
○ 12년(단기2490년/AD157)정유, 2월, <신라>가 <감물>과 <마산> 2현을 설치었다. 3월, <장령진>의 수졸들을 위로하고 군복을 나누어주었다.
◎ 十三年戊戌, 三月, <羅>開<竹岺(非高句麗之竹岺也)>. <倭>使至<羅>.
○ 13년(단기2491년/AD158)무술, 3월, <신라>가 <죽령(비고구려지죽령야)>길을 확보했다. <왜>의 사신이 <신라>에 왔다.
◎ 十五年庚子, 四月, <羅>, <閼川>水溢, 人家漂流, <金城>北門自毁.
○ 15년(단기2493년/AD160)경자, 4월, <신라>에서는 <알천>이 넘쳐서 집들이 물에 뜨거나 떠내려갔고, <금성>의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 十六年辛丑, 七月, <尙>后生子(馬+白). <羅>, 蝗, 而海魚多死.
○ 16년(단기2494년/AD161)신축, 칠월, <상>후가 아들 **<맥>**을 낳았다. <신라>가 황충 피해를 당하고,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 十七年壬寅, 四月, 北部大使者<尙蕃>入爲左輔, <伯固>北部大使者. 時,<箊疾>與<彌儒>爭權, 迎<蕃>而入<蕃>. 己亥(十四年), 五月, 讓右輔於<陽神>而出北部務, 拾人心, 三年, 頌聲大振. <箊疾>勸主, 爲太輔以副, 人心然. <儒>無辭意, <疾>自免. 人以爲<疾>欲□<儒>自□. 初, 主以<伯固>爲己子, 至是, 以爲上皇子, 以欲害之, 密遣人圖之. <羅>勞<沙道()城>戍卒. 主强報<守禮>爲宮人.
○ 17년(단기2495년/AD162)임인, 4월, 북부대사자 <상번>이 들어와 좌보가 되고, <백고>가 북부대사자가 되었다. 그때, <어질>이 <미유>와 권력을 다투다가, <상번>을 맞아들이니, <상번>이 (내직으로) 들어온 것이다. (<상번>은) 기해년(14년), 5월에 우보자리를 <양신>에게 양보하고 북부로 인심을 수습하러 3년간 나가 있었는데,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었다. <어질>이 주에게 권하여 아뢰길, 태보가 보좌하면 인심이 수그러들 것이라 했었다. <미유>가 자리를 내놓지 않으니, <어질>이 자리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어질>이 <미유>를 쫓아내려 했다가 자신이 쫓겨나게 되었다고 여겼다. 초에, 주는 <백고>를 자기의 아들로 여겼었는데, 이제 와서는, <백고>가 상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해치고자 하고는 몰래 사람을 보내 도모했다. <신라>가 <사도성>의 수졸들을 위무하였다. **주는 크게 보복하여, <수례>를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평범한) 궁인으로 만들었다.**
◎ 十八年癸卯, 二月, <麻靖>爲<狛>部使者, <尙>后密命護<伯固>, 又以<明臨答夫>爲<椽那宮>皀(皂)衣. 三月, <尙蕃>薨, 年六十一. <蕃>沈重下人, 爲<尙>氏之柱, 亦中途而折. 主惡<箊疾>, 以<陽神>爲左輔, <尙庚>爲右輔.
○ 18년(단기2496년/AD163)계묘, 2월, <마정>을 <박>부사자로 삼고, <상>후가 밀명하여 <백고>를 보호하라 했다. 그리고, <명림답부>를 <연나궁>의 흡의(조의?)로 삼았다. 3월, <상번>이 나이 61세로 죽었는데, <상번>은 하인을 매우 중히 여겨 <상>씨 집안의 기둥으로 삼았는데, 역시 중도에 꺾였다. 주가 <어질>에게 못되게 하여, <양신>을 좌보로 삼고, <상경>을 우보로 삼아버렸다.
◎ 十九年庚辰, 二月, <守禮>生女, 主大喜, 封爲<尊昜>公主, 加<守禮>庄園奴婢, 寵幸漸加. 時<尙>后寵衰唯白雲, <守禮>專房, **<遂成>大事.** <羅>都龍見.
○ 19년(단기2497년/AD164)경진, 2월, <수례>가 딸을 낳으니, 주는 크게 기뻐하며, <존양>공주로 봉하고, <수례>에게 장원과 노비를 더하여 주고는, <수례>를 찾는 일이 점차 더하여졌다. 이때, <상>후는 찾아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흰 구름만 바라볼 뿐이었는데, <수례>는 총애를 독차지하고, <수성>은 (<수례>에게) 엄청 잘 하여 주었다. **
<신라>에서는 도성에 용이 나타났다.
◎ 二十年乙巳, 正月, 晦, 日食. 上皇病, <尙>后往慰之. 上皇曰; "我以母后遺詔, 兄弟相傳, 以汝讓之. 汝惑<遂成>, 於<遂成>而殺我子, 又逐<伯固>耶." 后泣曰; "此非妾志也." 上曰; "吾雖死, 可以見汝." 后曰; "吾當<殺遂>成, 以報汝恩." 上皇大喜, 遂復幸后, 而崩. 乃, 三月, 朔頭也, 春秋九十八. 殯于<鶻川宮>, 十月, 以遺詔, 以宮爲陵(小八浪界). <尙>后自以爲弑上皇之功臣, 復得主寵, 進'茛實膘卵', 主毒不足而不死, 欲執戟害后, 而倒<明臨答夫>, 遂入壯刺脅而殺之, 我不發**喪**, 召<箊疾>于內, 盡誅<彌儒>·<陽神>之黨及主心腹壯士數十人. 凡十日, 而盡. 然後迎<伯固>太子卽位, <尙>后與<箊疾>列擧主惡, 而上皇遺詔廢之, 曰; "<神明仙皇>戒, 以不可照惡, 故廢之.
○ 20년(단기2498년/AD165)을사, 정월,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다. 상황이 병이 들어, <상>후가 찾아가 위로하였더니, 상황이 이르길; "나는 모후가 남기신 명에 따라 형제간에 옥좌를 전위하고, 당신도 그에게 양보하였소. 당신은 <수성>을 꼬드겨서, <수성>이 내 아들을 죽이고, <백고>도 내쫓게 하였소."라 하니, 후가 울면서 받아 말하길; "그것은 제 뜻이 아니었었습니다."하였고, 상황은; "나는 죽어서도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오."라 하였는데, 후가 아뢰길; "저는 응당 <수성>을 죽여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황은 크게 기뻐하며, 후와 정을 나누고는 죽었다. 때는 3월 초두였고, 춘추 98세였다. <골천궁>에 빈소를 차리고 열 달이 지난 후에 유언에 따라 <골천궁>을 무덤(소팔랑계)으로 삼았다. <상>후는 스스로 상황의 공신을 죽여 주의 총애를 회복한 후 '간실표란(쇠갈비살에 독초씨앗을 넣어 만든 경단)'을 내었더니, 독이 부족하여 주는 죽지 않았고, 갈래창(미륵창)을 집어 후를 해치려 하였는데, <명림답부>가 도착하여 들어와서는 수성을 칼질하고 몸통을 껴안아 졸라 죽이고는, 나는 이 일을 밖에 알리지 않을 것이니, "<어질>을 안으로 불러들여 <미유>·<양신>와 그 무리들 및 주의 심복 장사들 수십 명을 모조리 죽이십시요." 열흘이나 걸려서 모조리 해치웠다. 그런 연후에 <백고>를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고, <상>후는 <어질>과 함께 주의 죄악을 열거하고는, 상황이 남긴 명에 따라 <수성>을 폐위시키고 말하길; "<신명선제>께서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신 가르침을 따라 <수성>을 폐위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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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와 같은 부탁 드립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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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간실표란(茛實膘卵)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간(茛)은 ㉠미나리아재비 ㉡독초(毒草) 이름 으로 그 뜻이 나와있고, 표(膘)는 ‘소 옆구리 살’이군요. 아마도 “표란(膘卵)는 속칭 ‘소고기’ 가운데 ‘떡살’이라고 칭하는 고소한 부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무척 맛있는 ‘소고기’안에 아마도 여기에 독초(毒草)인 ‘미나리아재비’의 열매를 넣어서 독약(毒藥)으로 쓴 듯 합니다. 정육점 주인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약초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 ‘간실표란’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98세나 되는 태조황제께서 상후와 정(情)을 나누고, 복상사로 돌아가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사료(史料)가 일단 충격적입니다.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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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1. 고쳐야할 곳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오(誤) : ‘七年壬辰.........翌日曲又暴死, 年才四十六.’을 “다음날, 슬퍼하다가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었다.”로 해석한 부분 정(正) “다음날 상곡(尙曲)이 갑자기 나이 46세로 죽었다.”로 해야 됩니다. 2. 추론(推論)과정 원문(原文) ‘七年壬辰.............七月, 后父<尙溫>薨, 年七十二, 翌日曲又暴死, 年才四十六. 皆以后, 故驟貴登相, 故人望之絶, 反有快其雹者.’의 해석에서.... 해석(解釋) : ‘7년(단기2485년/AD152)임진..........7월, <상>후는 부친이 나이 72세에 죽으니, 다음날, 슬퍼하다가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상>후로 인하여 높은 자리를 빨리 얻고 재상에 오르게 된 까닭에 죽은 이를 우러름은 끊기고, 반대로 그들 집안이 부서짐을 반기었다.’로 하셨는데, 문제되는 부분: ‘后父<尙溫>薨, 年七十二, 翌日曲又暴死,’을 “<상>후는 부친이 나이 72세에 죽으니, 다음날, 슬퍼하다가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었다.”로 해서 첫 번째 죽은 분은 상후(尙后)의 아버지인 상온이<尙溫>이 나이 72세 죽음이 확실하나, 다음날 슬퍼하다가 갑자기 나이 46세에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 명확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 “두 사람 모두가 <상>후로 인하여 높은 자리를 빨리 얻고 재상에 오르게 된 까닭에.......” 하고 ‘두 사람이 죽고, 황후(皇后)의 족벌(族閥)인 상(尙)씨 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갑자기 죽은 사람의 이름은 상곡(尙曲)! 그런데 ‘七年壬辰, ..........<尙曲>右輔.’란 앞 문장이 있습니다. 해석하신대로...“7년(단기2485년/AD152)임진.........<상곡>은 우보가 되었다.”입니다. 따라서 ‘翌日曲又暴死, 年才四十六.’의 해석은 “다음날 상곡(尙曲)이 갑자기 나이 46세로 죽었다.”로 해야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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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十六年辛丑, 七月, <尙>后生子(馬+白).의 기록에서 ‘馬+白’ 글자를 자전(字典)에서 찾아보니 그 뜻은 ‘소트기’이고 ‘맥’이라고 읽는 글자임을 발견했습니다. 려우교생타(驢牛交生駝)로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당나귀’와 ‘소’가 접붙이어, 마치 낙타(駱駝)처럼 생긴 트기인 것 같습니다. (백?)이 아니라 (맥!)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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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심사숙고(深思熟考)해서 해석해야 할 부분이 두 군데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폐주차대기’에서 등장하는 두 여자주인공은 수례(守禮)와 상후(尙后)이기 때문입니다. (1) 첫 번째 심사숙고해서 해석할 부분. - ‘十七年壬寅,’ 조(條)의 ‘主强報<守禮>爲宮人.’의 해석 이 구절은 다음의 전문(全文) 가운데 (**).....(**)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 十七年壬寅, 四月, 北部大使者<尙蕃>入爲左輔, <伯固>北部大使者. 時,<箊疾>與<彌儒>爭權, 迎<蕃>而入<蕃>. 己亥(十四年), 五月, 讓右輔於<陽神>而出北部務, 拾人心, 三年, 頌聲大振. <箊疾>勸主, 爲太輔以副, 人心然. <儒>無辭意, <疾>自免. 人以爲<疾>欲□<儒>自□. 初, 主以<伯固>爲己子, 至是, 以爲上皇子, 以欲害之, 密遣人圖之. <羅>勞<沙道()城>戍卒. (**) 主强報<守禮>爲宮人.(**) ○ 17년(단기2495년/AD162)임인, 4월, 북부대사자 <상번>이 들어와 좌보가 되고, <백고>가 북부대사자가 되었다. 그때, <어질>이 <미유>와 권력을 다투다가, <상번>을 맞아들이니, <상번>이 (내직으로) 들어온 것이다. (<상번>은) 기해년(14년), 5월에 우보자리를 <양신>에게 양보하고 북부로 인심을 수습하러 3년간 나가 있었는데,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었다. <어질>이 주에게 권하여 아뢰길, 태보가 보좌하면 인심이 수그러들 것이라 했었다. <미유>가 자리를 내놓지 않으니, <어질>이 자리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어질>이 <미유>를 □하려 했다가 자신이 □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초에, 주는 <백고>를 자기의 아들로 여겼었는데, 이제 와서는, <백고>가 상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해치고자 하고는 몰래 사람을 보내 도모했다. <신라>가 <사도성>의 수졸들을 위무하였다. (**) 주는 <수례>를, 크게 보복하여, (평범한) 궁인으로 만들었다.(**) 이는 ‘폐주차대기’에 처음으로 수례(守禮)가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그 전의 ‘태조황제기’에 보면 수례(守禮)와 상후(尙后)이야기가 동시에 나오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천(史穿) 선생께서 번역한 것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후(尙后)와 수례(守禮)가 두 여주인공이므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역시 (**)....(**)로 표기해 보고 의미를 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二十二年癸酉, 正月, 以<遂成>爲皇太弟, 置<東宮>, 僚七十八人, (**) 以<尙>后爲<遂成>妃. (**) <羽突>太輔, <乙布>左輔, <尙溫>右輔. (**) 六月, <遂成>妃生<遂成>子<駿>. 以<穆度婁>爲東宮大夫, 其妻<松花>生女<守禮>於<柵城>, 西來爲<駿>乳媼. (**) 始築<牛山城(□□)>, 以爲避暑之地. ○ 22년(단기2466년/AD133)계유, 정월, <수성>을 황태제로 하여 동궁을 설치하고 관료 78인을 딸려주고, (**)<상>후를 <수성>의 비로 삼아주었다.(**) <우돌>을 태보로, <을포>를 좌보로, <상온>을 우보로 삼았다. (**) 6월, <수성>의 비가 <수성>의 아들 <주>을 낳았다. ( <목도루>를 동궁대가로 삼았는데, 그의 처 <송화>가 <책성>에서 딸 <수례>를 낳았기에, 서쪽으로 와서 <준>의 유모가 되었다. (**) <우산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피서지로 삼기 위함이었다. 일단 상후(尙后)는 태조황제께서 아우인 ‘수성’을 위해 ‘以<尙>后爲<遂成>妃.’ - “<상>후를 <수성>의 비로 삼아주었다.”임은 확실합니다. 또한........ ‘六月, <遂成>妃生<遂成>子<駿>. 以<穆度婁>爲東宮大夫, 其妻<松花>生女<守禮>於<柵城>, 西來爲<駿>乳媼.’은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 대로.... “6월, <수성>의 비가 <수성>의 아들 <주>을 낳았다. ( <목도루>를 동궁대가로 삼았는데, 그의 처 <송화>가 <책성>에서 딸 <수례>를 낳았기에, 서쪽으로 와서 <준>의 유모가 되었다.”입니다. 즉 수성(遂成)의 비(妃)가 그 아들 주<駿>를 낳자, 이의 유모(乳母)로써 수례(守禮)를 데리고 왔는데, 이 수례(守禮)의 아버지는 동궁대가(東宮大家)로써 아마도 ‘황태자의 사부(師父)’로 모셔진 사람인 것이지요. ‘딸’은 유모(乳母)이고, 아버지는 ‘황태자의 사부(師父)’이라는 것입니다. 수례(守禮)의 어머니가 송화(松花)인데, “책성(柵城)에서 수례(守禮)를 낳았다.”는 것도 범상한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유리(類利)가 고주몽-동명성왕을 만나러 갈 때, 다음과 같은 기사(記事)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原文) : 禮氏無可止之術議於解素. 解素曰嫂勿慮時至矣. 阿兄欲行母后大祭密遣松義而作聖母像, 吾見此人可作大事且其母亦柵城人也. 禮氏大憙與類利隨義而來解素授黃金百斤曰以此悅其民衆然後謁父可也, 예씨(禮氏)는 막을 방법이 없음을 알고 해소(解素)에게 계책을 의논하였다. 해소가 말하기를 “형수는 걱정하지 마라. 때가 이르렀다. 나의 형이 모후(母后: 유화(柳花)를 뜻함)의 제사에 성모상(聖母像)을 만들려고 송의(松義)를 은밀히 보냈다, 나는 그 사람(:송의(松義)를 뜻함)을 만나서 큰일을 만들 것이다 (**)또한 그(송의) 어머니는 책성(柵城)사람이다.(**)” 예씨(禮氏)가 크게 기뻐하여 유리와 함께 (송)의를 따랐는데 해소(解素)가 황금 백근(百斤)을 주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그 민중을 기쁘게 한 연후에 아버지(추모)를 알현(謁見)하면 가(可)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책성(柵城)은 -좌계는 이를 ‘결승(結繩)’으로 쌍방향적으로 언어를 시각화시키면서 국제교류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만 - 아무튼, 남당(南堂) 유고(遺稿)에서는 ‘만인(萬人)이 존중하여야하는 곳’ 이란 어떤 함의가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수례(守禮)는 등장할 때부터, 수성왕(遂成王)의 아들 주<駿>의 ‘유모(乳母)’이자 ‘교육자’로 채택이 된 듯하고, 더구나 그 아버지가 동궁대가(東宮大家)입니다. 그런데, ‘十七年壬寅,’ 조(條)에서 유의(有意)해야할 점은....태조황제와 수성왕(遂成王)이 왕권(王權)은 물론, 상후(尙后)까지 인계하는 좋은 사이로 출발했는데, 여기서 변화가 생김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대로, “초에, 주는 <백고>를 자기의 아들로 여겼었는데, 이제 와서는, <백고>가 상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해치고자 하고는 몰래 사람을 보내 도모했다.”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직후에 ‘(**) 主强報<守禮>爲宮人.(**)’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 문장은 그 전(前)의 수례(守禮)의 직책이 ‘수성왕(遂成王) 아들인 주<駿>의 ‘유모(乳母)’이자 ‘교육자’이었음을 생각하면....... (**) 주는 <수례>를, 크게 보복하여, (평범한) 궁인으로 만들었다.(**) 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즉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보복했는가?”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좌계가 생각할 때에는 이 수례(守禮)라는 여인이 미모(美貌)여서, 수성왕(遂成王)이 은총(恩寵)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궁(東宮)의 ‘유모(乳母)이자 교육자’라는 원래의 직위(職位)를 유지시키게 해야한다는 신하(臣下)들의 의사(意思)를 아랑곳 없이, 은총(恩寵)을 준 행위의 - 이는 섹스(sex)를 한 행위를 뜻함 - 보답(報答)으로 강제적으로 궁인(宮人)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는 생각을 합니다. 즉 유모(乳母)와 ‘교육자’의 삶에서 왕(王)의 ‘애인(愛人) 역할’인 궁인(宮人)으로 만든 사건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백고’와의 기맥(氣脈)이 통하는 ‘유모(乳母)와 교육자’로 지목되어 사천(史穿) 선생의 추측대로 “이것들은 사전(事前)에 싹을 잘러야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둘 중의 하나입니다. 신중하게 생각을 하셔서 해석에 반영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2) 두 번째 심사숙고해서 해석할 부분 - ‘十九年庚辰’의 기사(記事) 가운데 ‘遂成大事.’ 위 첫 번째 심사숙고해서 해석할 부분은 두 번째 심사숙고해서 해석할 부분과 맞닿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궁인(宮人)이 된 수례(守禮)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심사숙고할 분야에서 수례가 수성왕의 아들인 ‘주’의 유모(乳母)이자 ‘교육자’에서 ‘백고 일파’로 지목되어 ‘싹’을 자른 것으로 해석이 되면, ‘十九年庚辰’의 기사(記事) 가운데 ‘遂成大事.’의 해석은 수례(守禮)입장에서 “드디어 수성왕(遂成王)의 애정(愛情)을 획득해서 ‘존양공주’로 칭해지고, 침실을 독차지해서 수례(守禮)가 ‘마침내 큰 꿈을 이루게 되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수례(守禮)가 ‘백고와 갈은 기맥(氣脈)이 통하는 수성왕 아들의 유모(乳母)이자 교육자이었지만’ 수성왕의 애정(愛情)을 몹시 원하는 여인이었다. ”라는 사전(事前) 설정(設定)이 되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수성왕(遂成王)과의 사이에 처음부터 애정(愛情)을 흠뻑 나눈 사이의 궁인(宮人)으로 사전(事前) 설정(設定)하게 되면, ‘遂成大事.’의 뜻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즉 “드디어 대사(大事- 왕(王)을 폐위(廢位)하는 사건)가 이루어졌다.”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좌계는 ‘遂成大事.’의 뜻을 지금 말씀드린 견해(見解)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문(原文)과 해석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입니다. ◎ 十九年庚辰, 二月, <守禮>生女, 主大喜, 封爲<尊昜>公主, 加<守禮>庄園奴婢, 寵幸漸加. 時<尙>后寵衰唯白雲, <守禮>專房, (**)遂成大事.(**) <羅>都龍見. ○ 19년(단기2497년/AD164)경진, 2월, <수례>가 딸을 낳으니, 주는 크게 기뻐하며, <존양>공주로 봉하고, <수례>에게 장원과 노비를 더하여 주고는, <수례>를 찾는 일이 점차 더하여졌다. 이때, <상>후는 찾아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흰 구름만 바라볼 뿐이었고, <수례>가 총애를 독차지했다. (**) 마침내 대사(大事)가 이루어졌다. (**) <신라>에서는 도성에 용이 나타났다. 좌계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時<尙>后寵衰唯白雲, <守禮>專房,’ - 즉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셨듯이 “이때, <상>후는 찾아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흰 구름만 바라볼 뿐이었고, <수례>가 총애를 독차지했다.”고 ‘두 여주인공의 입장’이 격렬히 대비되는 문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천(史穿) 김성겸 님. 그러나 이는 “동일한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른 해석의 차이라고 봅니다. 좌계 역시 “어느쪽의 해석도 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사천(史穿) 선생의 심사숙고해서 판단함이 필요한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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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여 주신대로, 1. <상온)과 <상곡> 두사람이 죽은 일이 맞다고 봅니다. 또한 (백?)은 (맥)으로 정정하겠읍니다. 2. <태조기>를 보면; <상온>은 큰 딸(천화), 둘째 딸(은화), 셋쨰 딸(난화)를 <태조>에게 줍니다. 그리고 <태조>는 <상>후로 나오는 <천화>를 <수성>에게 주었고, <수성>은 <백고>를 해치우려 하고는, <목도루>, <백고>, <수례>에 대한 강력한 보복으로, <목도루>와 <송화>의 사이에서 생긴 딸인 <수례>를 <백고>의 품에서 빼앗아 자신의 궁인으로 떨구었다가 상통하여 자신(수성)의 딸을 낳은 것을 보고는 아주 잘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수성>은 형의 부인과 조카의 부인을 모두 빼앗아 가진 것입니다. 3. <수성>의 아들 <준>의 유모는 <수례>가 아니고 <목도루>의 처인 <송화>로 보입니다. 별도의 이견이 아니 계신다면 이 정도로 정정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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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선생님. 1. 수성의 아들의 유모(乳母)를 ‘수계’로 본 것은 원문(原文)을 다시 세심하게 보니, 좌계가 접속구문의 걸리는 위치를 잘못 잡은 오독(誤讀)이었습니다. ‘심사숙고’해야 할 부분의 해석에 대해서는 ‘상후(尙后)’의 출자(出自)와 ‘인척관계’에 대한 ‘불찰(不察)’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좌계가 심사숙고 못한 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2. *[정정(訂定) 제안(提案)]* ‘<守禮>專房, **遂成大事.**’의 해석에 관해서는 수성(遂成)을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문자(文字)의 해석보다는 고유명사(固有名詞)인 수성왕(遂成王)자신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事)’의 개념에 사친이효(事親以孝), 사군이충(事君以忠)에서 보다시피. ‘적극적으로 모시고, 친밀하게 대접하다’는 뜻의 사(事)로 보입니다. 따라서 수성대사(遂成大事)는 “수성왕(遂成王)이 각별히 친밀을 다해 대했다.”는 뜻으로 해석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는 사천(史穿) 선생이 좌계에 준 답신(答信)의 내용 - “<수성>은 <백고>를 해치우려 하고는, <목도루>, <백고>, <수례>에 대한 강력한 보복으로, <목도루>와 <송화>의 사이에서 생긴 딸인 <수례>를 <백고>의 품에서 빼앗아 자신의 궁인으로 떨구었다가 상통하여 (**)자신(수성)의 딸을 낳은 것을 보고는 아주 잘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을 그대로 압축하여 놓은 말과 다름 아닙니다. 하하. 늘 해석(解釋) 문제와 관련해서, 인간의 두뇌(頭腦)가 ‘자신의 고정관념’에 얼마나 묶이는 지 실감을 하게 됩니다. 신기(神奇)하기 까지 합니다. 사천(史穿) 선생과 좌계가 왜 모두 ‘수성대사(遂成大事)’의 수성(遂成)을 수성왕(遂成王) 자신을 뜻하는 것임을 ‘떠올리지 못하였는지?!“ 그래서 늘 학문(學問)은 겸손(謙遜)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더 이상 정정(訂定)할 곳은 없는 듯합니다. 4. 주신 답신(答信) 가운데, 2.에 해당하는 부분은 ‘길고 긴 해석 작업’이 끝난 뒤, 해설(解說)에서 꼭 담아야할 내용으로 보입니다. 5. 명해석의 건필(健筆)을 계속 앙망(仰望)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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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遂成大事"에 대하여는 우선은 좌계 선생님의 의견을(<遂成>大事.) 따르기로 합니다. 하지만, 아직 찜찜한 것은; <목도루>의 딸이고 적통인 <백고>의 처였던 <수례>가, 일찍부터 서로 각별하였던 3 가문 중 <상온>의 딸인 <천화(송후)>와 함께 "끝내는 <수성>에게 되갚는 큰 일(大事)"로 번역/해석/해설하고 싶은 심정이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