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단군조선(檀君朝鮮)때에 부여의 봉지는 전한(前漢)의 우북평군(右北平郡) 백랑현(白狼縣) 우리 역사상 “부여”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대략 4개가 있다. 하나는 단군조선이 그의 아들 부여에게 봉한 옛 부여가 있고(이하 옛부여 통칭)둘째는 해모수가 건국했다는 북부여가 있으며셋째는 해부루가 북부여 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동부여가 있으며넷째는 백제가 남한(南韓) 땅으로 이동하여 국명을 바꾼 남부여가 있다. 간혹 두 번째 북부여와 세번째 동부여를 서로 같은 나라라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부여를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해부루가 세운 부여의 이름은 동부여인데 고구려 북쪽에 있었기에 고구려 사람들이 북부여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북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잠깐 나오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북부여와 동부여를 헷갈리기 기록하였으며 중국사서에는 북부.. 2009. 12. 10. 환인(桓因)과 환국(桓國) 중에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昔有桓因[謂帝釋也]석유환인위제석야”은 판본에 따라 “昔有桓囯[謂帝釋也]석유환국위제석야”으로 적기도 하였다. 여기서 帝釋(제석)은 곧 하느님을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桓囯(환국)이라고 해놓고 이를 하느님이라고 주석하였을까?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기 위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도적떼들은 삼국유사의 “囯”은 틀렸고 因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삼국유사 전반에 걸쳐서 國을 이체자인 囯으로 쓴 곳은 없으므로 이는 필사본에 因의 이체자인 “囙”으로 된 것을 囯으로 잘못 인식하여 판각한 것이다.필사본의 因의 이체자인 (口+士)를 잘못 인식하여 囯으로 판각한 것이다.桓囯을 帝釋이라고 주석하는 것은 문맥의 흐름상 불가능하다.삼국유사에 “서자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 2009. 12. 10. 거란고전(契丹古傳) 전문번역과 역사해설 祖光 濱名寬祐가 지은 契丹古傳(거란고전)의 주석서인 契丹古傳詳解 중에서 원문만 뽑아 해석한 것이다. 본인은 契丹古傳(거란고전)의 영인본 직접 본적은 없으므로 濱名寬祐이 판독한 한자에 근거하여 해석하였다. 그리고 띄어쓰기와 쉼표와 마침표 등은 본인이 임의로 찍은 것이다. 장(章)은 契丹古傳詳解을 지은자가 붙인 것이나 이에 따른다. 제1장. 鏡(경)의 본래의 뜻曰若稽 諸傳 有之曰.., 神者 耀體 無以能名焉. 維鑑能象, 故稱鑑曰日神體, 讀如 戞珂旻.曰若稽(왈약계)의 여러 傳(전)에 이렇게 말하였다. “神(신)이라는 것은 빛나는 물체이고 능히 이름할 것이 없다. 다만 비춤「鑑」으로 형상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그 비춤을 日神體(일신체)라고 하며 戞珂旻(알가민)[1]과 비슷하게 읽는다.” 제2장. 日祖東大海に禊して.. 2009. 12. 10. 신지(臣智)의 우대호칭과 비격식호칭에 대하여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 보면 해석하기 좀 애매한 구절이 있다. 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報安邪踧攴濆臣離兒不例拘邪秦支亷之號 옛 신지(臣智)가 삼한(三韓)의 작은 나라들에 따라서 각각 부르는 형식이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해석하는 자마다 서로 다르다. 이유는 삼한의 작은 나라와 신지에 대한 명칭에 대한 절구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구절을 해석하기 전에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는 존칭접미사라는 것이 있다. “누구씨” 혹은 “누구님”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비존칭으로 쓰이는 것들이 과거에는 존칭으로 쓰이는 것들이 있다. 잘아는 “대 막리지(大莫離支)”의 “지”가 바로 존칭접미사이며 오늘날에는 비존칭으로 쓰여 “양아치” 혹은 “거러지(거지)” 등에 그 예가 보이고,.. 2009. 12. 10. 이전 1 ··· 78 79 80 81 82 83 84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