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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위만이 망명할때 건넌 강은 패수가 아니며 황하(黃河)의 지류인 추수(溴水)라는 곳이다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할 때 건넜다고 말하는 패수(浿水)가 맞는가? 위만의 망명에 대한 기록 패 수(浿水)란 고대에 평양(平壤)에 흐르던 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곳에나 패수(浿水)가 존재할 수가 없죠 평양에 흐르던 강이 패수이고, 패수가에 건설된 도시가 바로 평양입니다. 참고로 신채호선생의 조선사연구초에 보인 평양 패수에 관한 글을 인용하시니 참고하세요. "사책에 보면 平壤, 平穰, 平那, 卞那, 百牙, 樂浪, 樂良, 浿水, 浿江, 浿河 등은 다만 “펴라”를 가종의 假音으로 쓴 자니, 平壤, 平穰, 平那, 卞那, 百牙는 다 그 음의 초성을 讀하여 “펴라”가 되고, 樂浪, 樂良은 樂의 뜻 “풍류 ”의 초성을 讀하며, 浪과 良은 그 음 “랑”의 초성 중성을 독하여 “펴라”가 되고, 浿水, 浿江, 浿河는 浿.. 2012. 5. 17.
백제 초기 영토는 대릉하 부근 백제는 초기에 마한의 영토를 분양받았습니다.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보입니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 安之,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신채호선생의 동서양자 상환의 주장에 따라 동북은 아마 서북일 것입니다. 백제는 초기에 마한 땅 서북쪽 100리의 땅에서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요서지역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를 증거할 만한 지역이 삼국사기에 보입니다. 삼국사기 온조왕조를 읽어보면 十一年, 夏四月, 使襲破柵, 殺掠一百餘人. 秋七月, 設․兩柵, 以塞之路. 11년 여름 4월,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의 목책을 습격해서 파괴한 다음 1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다. 가을 7월, 독산과 구천 두 곳에 목책.. 2012. 5. 17.
혼동강은 남쪽으로 흘르던 압록강의 지류였다!!!! 혼동강을 강단에서 현재의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을 보면 혼동강은 남으로 흘렀던 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에 도착하였다. 오사채에서 잠을 잤다.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이곳으로부터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기록입니다. 혼동강은 남으로 흐르고 압록강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런 기록을 두고.. 2011. 12. 24.
장당경과 당장경의 어원 장당경은 당장경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고열가 단군옹검이 세력을 떨치던 發藍國(바람국)을 피하여 숨은 곳이다. 1) 장당경 한자로 藏堂京이라고도 쓰고 藏唐京라고도 쓴다. 여기서 첫 글자 藏는 훈독하여야 하고, 두번째 글자 堂 혹은 唐은 당연히 음독하여야 하며 세번째 글자 京은 훈독하여야 한다. 藏은 감추었다는 말이다. 즉, 發藍國(바람국)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두려워 숨겨진 곳으로 갔으니 藏으로 쓴 것이다. 대개 옛날에는 제왕들은 그들의 세력이 미약해질 것을 준비하여 자신들의 고유세력이 있는 곳을 두었으니 이런 곳이 장당경이다. 堂 혹은 唐은 "당"이나 이는 "땅"으로 읽어야 한다. 京은 말 그대로 "도읍"이라는 말이다. 즉, 장당경이란 "숨겨진 땅에 있는 도읍"이라는 말이 된다. 고구려에서는 졸본이 장당.. 2011.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