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니 좀 실증이 나기 시작하고,
이 사초/사략에 남당 선생께서 지명비정하여 놓으신 것을 따라가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게 되어있음을 간과하시는 분이 있어 중단할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또다른 사략 저본과 비교하여 일부 글자를 삽입하여 번역한 곳이 한 줄쯤 있음도 첨언합니다.
꼼꼼히 살펴서 오독/오역이 없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2007/06/13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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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世<東襄大帝>紀
◎ 帝, 初號, <東川大王>, 諱, <位宮>, 亦作<夏位居>, 小字曰<郊彘>, <山上大帝>之長子也. 母, <香部>小后, <酒桶村>主<椽>翁之女也. 狀皃雅秀, 愛人下士, 且有勇力, 善騎射, 好武術, 新練兵士. 有<東明>大志, 喜怒不形. 侍女誤䨱肉羹于御衣, 則但問其無傷爾手而己. <于>后欲試其量, 乘其出外, 剪其愛馬之鬣則歸. 而見之. 以手撫鬣曰; "馬無鬣甚可憐. 上下莫不稱其寬仁大度然. 好略獵, 築宮室, 浸女色事. 征伐內外多事, 以是少之.
○ 제의 초호는 <동천대왕>, 휘는 <위궁> 또는 <하위거>, 아명은 <교체>이며, <산상대제>의 맏아들이다. 모친은 <향부>소후로서 <주통촌>주 <연>옹의 딸이다. {상은} 외모와 얼굴은 우아하고 출중했으며, 백성과 하급 관리를 아꼈고, 용력도 있고 기사(騎射)에도 뛰어났으며, 무술을 좋아하여 병사들도 새로이 조련하였으며, <동명>의 큰 뜻도 있었고, 즐겁거나 노여워도 표시내지 아니 하였다. 시녀가 잘 못하여 고깃국을 어의에 엎질렀을 때에는 시녀의 손과 몸에 탈이 없는 지를 물을 뿐이었다. <우>후가 그 도량을 가늠해보려고, {동양대제의} 애마를 타고 나가서 갈기를 잘라버리고 돌아오니, 그 모습을 보고나서도, 손으로 말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갈기털이 없으니 무척이나 가련해 보인다."라고만 하였다.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이나 {동양대제의} 인자함과 관대함을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사냥과 약탈을 즐겼고, 궁실을 지어 여색에도 빠졌다. 국내외 정벌도 많이 하였었는데, 이러하더니만, 뜸하여졌다.
◎ 元年丁未, 夏五月 七日夜, <山上大帝>以□潰之證, 崩, 于<金川宮>. <于>皇后急召太子, 行祥于殯, 召太輔<穆登>·左輔<于目>·右輔<尙齊>·國相<高優婁>·中畏大夫<明臨息夫>, 入內殿, 行太子卽位禮, 寶齡十九. <羽林>百僚擧燎山呼, 東將明矣. 夏六月, 以<明臨息夫>女<鱣>氏爲皇后, 號<皇林宮>, <于>后爲<金川>太后. <香部>小后爲<酒桶村>后, 賜姓<椽>氏. 七月, 莽大行<山上陵(吉林縣鳳凰山)>, 立廟于<艮嶺>. <于目>太輔, <尙齊>左輔, <息夫>右輔兼攝政大王, <高優婁>國相. 九月, 前太輔<靑山公><穆登>薨, 年七十五, <度婁>孫也.
<新羅><奈解>, 二月巡其西南郡邑考績, 三月還. 以海湌<康善>爲伊湌. 作詩<惱(思內樂).
<百濟><仇首>, 三月雹, 四月大旱, <仇首>親禱<東明>廟, 乃雨.
群臣請復役<大角宮>, 許之. 先是, <山上>爲<鱣>后採斑玉作此宮, 因不豫而停之, 至是復營. 上與皇后親督之, 飾以寶玉香木, 園以花鳥走泳, 極其奢侈.
○ 원년{단기2560년/AD227}정미, 하5월 7일 밤, <산상대제>가 '以□潰之證'으로 <금천궁>에서 죽으니, <우>황후가 급히 태자를 불러 빈소에 상제(喪祭)를 올리게 하였고, 태보<목등>·좌보<우목>·우보<상제>·국상<고우루>·중외대부 <명림식부>를 불렀더니, 내전으로 들어와 태자의 즉위예식을 치렀다. 보령 열아홉이었다. <우림>의 백료들이 섶을 불 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만세를 부르니, 동쪽 하늘이 밝아왔다. 하6월, <명림식부>의 딸 <전>씨를 황후로 올려 <황림궁>이라 불렀고, <우>후를 태후로 하고, <향부>소후를 <주통촌>후로 하고 <연(椽)>씨라는 성(姓)을 내렸다. 7월, <산상릉>을 풀{뗏장}로 덮고 <간령>에 사당을 세웠다. <우목>을 태보로, <상제>를 좌보로, <식부>를 우보 겸 섭정대왕으로, <고우루>를 국상으로 삼았다. 9월, 이전의 태보 <청산공><목등>이 나이 75세에 죽었다. 그는 <도루>의 손자이었다.
<신라>의 <내해>는 2월에 그 나라 서남부의 군과 읍을 순시하여 실 삼는 것을 살피고, 3월에 돌아갔다. 해찬 <강선>을 이찬으로 올렸다. <뇌(사내락)>라는 시를 남겼다.
<백제>의 <구수>는, 3월에는 우박이 내리고, 4월에는 큰 가뭄이 들자, 손수 <동명>묘에 빌었더니 비가 내렸다.
군신들이 <대각궁>을 다시 짓자고 청을 하니 허락하였다. 이에 앞서, <상상>이 <전>후를 위하여 무늬가 있는 옥을 캐어 이 궁궐을 짓다가 환후로 그만두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하는 것이었다. 상과 황후가 친히 살폈으며, 보옥과 향나무로 치장하고, 정원에서는 화초를 심고 새들이 달리고 헤엄치게 하여, 그 사치함이 극에 달하였다.
◎ 二年戊申, 春二月, 上·皇后·<酒桶>后·<于術>妃(皇后母)如<卒本>謁<東明>廟, 告卽位. 三月, 還御<大角宮>, 受百官朝賀, 大赦天下. 三月, 以<金川>后爲皇太后攝政王, 以<息夫>爲國公. <于術>爲國太妃, 加其奴婢庄園. 秋八月, 雷雨. 上如<酒桶宮>, 洗皇子<奢勾>. 十七朔而生, 故奢. 月如<勾>而生, 故曰<勾>. 上極愛之, 珍寶多與之.
<遼東><公孫恭>爲其兄子<淵>所擒, <淵>自稱太守, 而代領其衆.
○ 2년{단기2561년/AD228}무신, 봄 2월, 상·황후·<주통>후·<우술>비(황후모)가 <졸본>으로 가서 <동명>묘를 찾아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3월에 <대각궁>으로 환어하여 조당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는, 나라에 대사령을 내렸다. 3월, <금천>후를 황태후 섭정대왕으로 삼고, <식부>를 국공으로 하였다. <우술>을 국태비로 삼고 노비와 장원을 늘려주었다. 가을 8월에 뇌우가 있었다. 상이 <주통궁>에 납시어 황자 <사구>를 물로 씻어주었다. 17삭{17개월}만에 정상적인 기간을 훨씬 넘어서야 낳았기에 <사>라 하고, 그날 달의 모양이 갈고리{구}와 같아서 <구>라 이름 하였다. 상은 <사구>를 지극히 아꼈으며, 많은 진보를 <사구>에게 주었다.
<요동>의 <공손공>은 그 형의 아들 <공손연>에 의해 갇혀버렸고, <공손연>이 스스로 태수를 칭하고, 그 무리를 다스렸다.
◎ 三年乙酉, 正月, 皇太后妹<虎川宮>妃薨, 年七十. <虎>, 初爲<發岐>妻, 後爲<乙巴素>妻. 有脅力, 能騎射, <發岐>之亂, 大義絶夫, 以扶杜功, 封妃. 國有大政依三輔例收議. <朱>妃生子<朱元>.
二月, <鱣>皇后生<勝>公主于<大角宮>. 三月, 親練士卒於內城之原. 與皇太后謁<山上陵>. <于目>薨, <尙齊>太輔, <米何>左輔.
<羅><奈解>, 四月, 蛇鳴南庫三日. 九月地震, 十月大雪五尺. <濟><仇首>, 十月畋于<寒泉(未詳)>. 十一月大疾. <末曷>入寇<牛谷>界(惠山鎭界), <仇首>率三百精兵赴救, 過其伏兵而敗. <末曷>大掠人物牛羊而去. <仇首>以爲從<曷>而怨我. <吳>主<孫權>稱帝都<建業>.
○ 3년{단기2562년/AD229}을유, 정월, 황태후의 여동생 <호천궁>비가 나이 70에 죽었다. <호>는 처음엔 <발기>의 처였다가 후에는 <을파소>의 처가 되었다. 남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고 말 탄 채 활쏘기도 잘하였다. <발기>가 난을 일으키자, 큰 뜻으로 지아비와 헤어지고, 부두{사직을 떠받쳐 든든히 하고 정변을 막는}의 공을 세워, 비로 봉함을 받았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삼보들에게 시켜서 의견을 견주어 모으게 하였다. <주>비가 <주원>을 낳았다.
2월, <전>황우가 <대각궁>에서 <승>공주를 낳았다. 3월에 친히 궁성 내의 동산에서 군사를 조련하였다. 황태후와 함께 <산상릉>을 참배하였다. <우목>이 죽어, <상제>를 태보로, <미하>를 좌보로 삼았다.
<신라>, <내해>의 땅에서는 4월에 남쪽 창고에서 뱀이 사흘을 울었고, 9월엔 지진이 있었고, 10월엔 눈이 많이 내려 다섯 자나 쌓였다. <백제>에서는 <구수>가 10월에 <한천(미상)>에서 사냥하였고, 11월엔 돌림병이 크게 돌았다. <말갈>이 <우곡>의 경계(혜산진계)에 쳐들어와, <구수>가 정병 300을 이끌고 구하러 달려갔는데, 복병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가 패하였다. <말갈>이 사람과 재물 및 소와 양을 대대적으로 노략하여 돌아갔다. <구수>는 <말갈>의 일로 우리{고구리}를 원망하였다. <오>의 <손권>이 칭제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 四年庚戌, 春正月, 親習兵馬于<中川之原(拉林河流域)>. 二月, 改後宮八部爲六儀. 香部·藥部曰內儀, 丹部·浴部曰丹儀, 饍部曰廚儀, 茗部·醞部曰茶儀, 道部曰淑儀. 又加珍玩宝藏之. 后, 卽古藏部也, 謂宝儀. 以后母<于術>爲內儀, 小后亦曰<香>后. 秋七月, 國相<高優婁>以疾薨, 以左部于台<於漱>代之, 乃皇后之兄也, <香>后之子也. 俊厚容物有大臣風, 然貪財好色, 頗缺人望. 太輔<于目>難之以退. <尙齊>太輔, <息夫>左輔, <滇古>太子右輔. <乙大非>中畏大夫時, <于>太后與<酒桶>后出居<狐川>行宮. <大非>子<素介>爲行宮仙人.
<羅><奈解>, 三月, <奈解>殂, <伐休>孫<助賁>立, 父<骨正>, 母<玉帽>, <金仇道>之女也. 其妻<阿爾兮>, <奈解>女也. <奈解>臨終言, 以婿爲子, 國人乃立. <助賁>, 身長美儀采, 臨事明斷, 咸稱之. {伊湌<連忠>掌軍國事. 七月, 謁始祖廟.}
○ 4년{단기2563년/AD230}경술, 봄 정월, <중천지원>에서 친히 병마 훈련을 하였다. 2월, 후궁들과 8부를 6의로 바꿨다. 향부와 약부를 내의로, 단부와 욕부를 단의로, 선부를 주의로, 명부와 온부를 다의로, 도부를 숙의로 하고, 또한 진완보장도 더하여 주었다. 후(后)는 옛말로 장부(藏部)이어서, 보의(宝儀)라고 하였다. 후의 모친 <우술>은 내의라 하고, 소후는 <향>후라 하였다. 가을 7월에 국상 <고우루>가 병으로 죽어, 좌부의 우태 <어수>가 대신토록 하였는데, {<어수>는} 황후의 오빠이고, <향>후의 아들인데, 재주 있고 친절하고 편안하였고, 정사를 봄에 있어서는 대신의 기풍이 있었으나, 재산을 탐하고 색을 밝혀서 인망을 얻지 못하였었다. 태보 <우목>이 <어수>로는 국상의 자리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물러나게 하였다. <상제>가 태보가 되고, <식부>는 좌보, <전고>태자는 우보가 되었다. <을대비>가 중외대부를 하던 시절에 <우>태후는 <주통>후와 함께 <호천>의 행궁으로 나와서 살았다. <을대비>의 아들인 <을소개>는 행궁선인이 되었다.
<신라>에서는 <내해>가 3월에 죽어, <벌휴>의 손자인 <조분>이 섰다. <조분>의 부친은 <골정>이고, 모친은 <김구도>의 딸인 <옥모>이다. <조분>의 처는 <내해>의 딸이다. <내해>가 죽음에 임박하여 사위를 아들로 삼았고, 나라사람들이 <조분>을 세웠다. <조분>은 키가 크고 외모가 빛났는데, 정사에 임하여서는 명확하고 단호하다는 평이 나라 안에 널리 퍼져있었다. {이찬 <연충>이 나라의 군국지사를 관장하였다. 7월에는 시조묘를 배알하였다.}
◎ 五年辛亥, 春正月, <錦林>公主薨, <新大>之女, <息夫>之母, 年八十, 有賢德, 上下稱之. 葬于<質山>. 夏四月, <鱣>皇后生<鵂>公主.
<羅><助賁>, (二)七月, 以伊湌<于老>爲大將軍討<甘文>, 拔之, 以其地爲郡. <濟><仇首>(一八)四月, 雹如栗, 鳥雀中者死.
<魏>, 以<公孫淵>爲<遼東>太守車騎將軍, 襲我<玄菟城>, 命右衛將軍<朱希>擊破之.
○ 5년{단기2564년/AD231}신해, 봄 정월, <금림>공주가 죽었다. <신대>의 딸이고 <명림식부>의 모친이었는데, 나이 80에 죽었다. 상하의 사람들이 그녀의 현명함과 덕망 있었음을 칭송하였다. <질산>에 장사했다.
<신라><조분>이 7월에 이찬 <우로>를 대장군으로 삼고 <감문>을 치게 하여, 멸하였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백제> <구수>의 땅에서는 4월에 밤톨만한 우박이 내려 그에 맞은 꼬리 긴 새(鳥)와 참새(雀)가 죽었다.
<위>는 <공손연>을 <요동>태수 거기장군으로 삼았는데, 그가 우리{고구리}의 <현토성>을 기습하였고, 우위장군 <주희>가 이를 쳐서 깨뜨렸다.
◎ 六年壬子, 春正月, 大閱五部衛士于內城之原. 二月, <于>太后薦<蘇太>爲內儀, <太>讒預物, 非上子. 上乃疎<鱣>皇后, 命出居<淨宮>. 八十日, 以復后, 后作八十曲而悲之. 三月, <孫權>遣<周賀>渡海潛通<公孫淵>, <淵>以<宿舒>·<孫宗>登入<吳>稱獻貂皮·達·馬. 太輔<尙齊>, 以女事免, <乙大昆>代之. <羅><助賁>(三)四月, <倭>猝至圍<金城>, <助賁>躬戰破之, 追斬千余級. 十月, 畋于<虎川(今呼蘭河拉林之支流)>, 以慰<酒桶>后.
○ 6년{단기2565년/AD232}임자, 춘정월, 5부의 위사들을 내성의 언덕에서 대대적으로 사열하였다. 2월, <우>태후가 <소태>를 내의로 삼으라고 천거하였더니, 내의가 된 <소태>가 앞일을 참소하기를; "상은 {정실인 황후로부터는} 아들이 없겠다."고 하였다.** 상이 <전>황후와 소원하여지더니, <정궁>에 나가 살라고 명하였다. 80일이 지나자 불러들여져 후위를 복원하였다. 후가 80곡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서글펐다. 3월, <손권>이 <주하>를 보내어 <공손연>과 바다를 건너서 밀통하였고, <공손연>은 <숙서>와 <손종>을 <오>에 보내서 초피·새끼 양·말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태보 <상제>가 딸의 일로 하여 면직되었고, <을대곤>이 대신하였다. <신라>의 <조분>은 4월에 <왜>가 갑자기 쳐들어오니, 몸소 싸워서 물리치고, 추적하여 천여 급의 목을 베었다. 10월, <호천(금호란하납림지지류)>에서 사냥하여, 이로써 <주통>후를 위안하였다.
◎ 七年癸丑, 春三月, <鱣>皇后生<獜>公主于<大角宮>. 上命罷皇后宮仙人, 惡后生女, 后爲之不食. 時, 人爲后歌, 生女難. 秋九月, <孫權>遣<秦旦>·<黃彊>來朝, 言所獻金寶珍帶爲<淵>所奪, 不勝死罪. 上嘉其遠來, 賜以酒食, 賜皁衣<尙越>等, 護送其國, 賜<權>貂皮·鶡鷄皮等曰; "<淵>之爲人反覆不可信." 追後聞之, 則<淵>果殺<權>使<張彌>·<許晏>等傳首于<魏>. <魏>封<淵>大司馬<樂浪公>, 以力士爲使, 授詔欲擊. <淵>知其謀, 盛設兵威, 以帶衛受冊. <魏>以是含之.
<羅><助賁>, 四月, 大風飛屋瓦. 五月, <倭>寇東邊. 七月, <于老>與<倭>戰于<沙道(今豆滿江北沿海嫂河半島界也)>, 乘風縱火焚舟, 賊赴水死盡. 是謂<嫂河大戰>. 左輔<米何>薨, <息夫>代之, <穆能>右輔.
○ 7년{단기2566년/AD233}계축, 춘3월, <전>황후가 <대각궁>에서 <린>공주를 낳았다. 상이 황후궁의 선인을 파면하라 명하였는데, 이는 딸을 낳은 황후를 박대한 것이었다. 황후는 이로 인하여 먹지를 않았다. 그 시절, 사람들은 황후를 위해 노래를 하였는데, “딸을 낳으면 어려워진다네...”라고 하였다. 추9월, <손권>이 <진단>과 <황강>을 보내 래조하여 <공손연>에게 빼앗겼던 금보진대를 바치겠다 말하여 죽을죄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상은 멀리에서 왔음을 보아 흡족해 하고 술과 음식을 내려주었고, 조의 <상월> 등을 시켜서 그 나라로 호송하여 주게 하였고, <손권>에게 초피·갈계피 등을 하사하여 이르길; "<공손연>은 사람됨이 뒤집기를 잘 하여 믿을 바 못 된다 하였다." 후에 이를 들은 <공손연>은 <손권>의 사신인 <장미>·<허안> 등을 죽이고, 그 목을 <위>에 보냈다. <위>는 <공손연>을 대사마·<낙랑공>으로 삼았고, 력사에게는, 사신을 삼아 보내면서, 조서로써 {공손연을} 격살하라고 하였는데, <공손연>이 그 음모를 알아차리고는 병사를 크게 늘어세워 위엄을 보이면서 책명을 받는 곳을 둘러싸게 하였다. <위>는 이로써 척살계획을 없었던 것처럼 하였다.
<신라> <조분>의 땅에서는 4월에는 큰바람으로 집과 기왓장이 날아갔고, 5월에는 <왜>가 동쪽 변경을 도적질 했으며, 7월에는 <우로>가 <왜>와 <사도(금두만강북연해수하반도계야)>에서 싸웠는데, 바람의 도움으로 {왜적들이 타고 온} 배를 불사르니, <왜적>들은 물에 이르러 모조리 죽었다. 이를 <수하대전>이라 한다. 좌보 <미하>가 죽어, <식부>가 이를 대신하였고, <목능>이 우보가 되었다.
◎ 八年甲寅, 春正月, 宴<吳>使于<大角宮>. 謁<酒桶>后于<狐>. 時, 后生女<方乙>. 夏四月, <曹叡>遣使來獻兵書寶劍玉床等, 請兵滅<公孫淵>而討<吳>. 太輔<乙大昆>薨, 年七十. <大昆>, 以<巴素>之長子, 立朝五十年. 有大臣之風, 不以公混私, 決大事, 治大獄, 多有力焉. 然<巴素>沒, 屬娶<虎川>生子, 未免聚鹿之恥, 可勝歎哉. <尙齊>復相. 秋九月, <于>太后崩, 葬于<山上陵>側, 植松七重, 以遮其面.
<濟>主<仇首>殂, 在位二十一年, 其子<沙伴>立幼, <肖古>弟<古爾>廢<沙伴>而自立.
冬十月, 上迎<酒桶>太后于<虎川>入居. <于>太后崩, 所總執政事於是. <椽>氏兄弟驟登樞, 以代<于>氏<朱>氏. 國人歎外戚沙麓之患, 而莫可奈何. 時, <酒>后, 春秋四十六, 而胖强如少女, 連生私子, 上不能禁, 皆封爲列王公主. <朱>妃生子<朱國>.
○ 8년{단기2567년/AD234}경인, 춘정월, <오>의 사신에게 <대각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주통>후를 <호>로 찾아뵈었다. 이때, <주통>후는 딸 <방을>을 낳았다. 하4월, <조예>가 사신을 보내어 병서와 보검 및 옥상 등을 바치며, 군사를 일으켜 <공손연>을 멸하고 <오>를 쳐달라고 부탁하였다. 태보 <을대곤>이 나이 70에 죽었다. <대곤>은 <을파소>의 장자로 입조한 지 50년이었는데, 대신의 기풍이 있었고, 공과 사를 혼동하지 않고 큰일을 처결하고, 큰 옥사도 다스렸으며, 많은 일에 힘을 썼었다. <파소>가 죽자, 자연스럽게 <호천>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기에, 취록지치(聚鹿之恥{사슴에 비유되는 왕비 등을 간음하는 부끄러운 일})를 면할 수는 없었으니, 한탄할 일이라 할 것이다. <상제>가 재상의 자리에 복귀하였다. 추9월에 <우>태후가 죽자, <산상릉> 곁에 묻어주고는,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어 얼굴을 가려주었다.
<백제>주 <구수>가 재위 21년에 죽어, 그의 아들 <사반>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니, <초고>의 동생 <고이>가 <사반>을 폐위하고 자신이 보위에 섰다.
동10월, 상이 <주통>태후를 <호천>으로 맞아들여 기거하게 하였다. <우>태후가 죽으니, 이때부터 상이 정사의 모두를 맡아보게 되었다. <연>씨 형제가 대신의 자리에 올라 <우>씨와 <주>씨를 대신하게 되었다. 나라사람들은 외척들에 의한 사록지환(沙麓之患{외척의 발호에 의한 우환})을 어찌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이때, <주통>후는 나이가 46살이었는데, 태반이 젊은 여자와 같이 튼튼하여, 계속하여 사생아를 낳아대는데도 상은 이를 말릴 수 없었고, 그 사생아 모두를 왕과 공주로 봉하였다. <주>비가 아들 <주국>을 낳았다.
◎ 九年乙酉, 春正月, 詔曰; "孝子, 人之大本也. 朕爲父母不自垂範, 何以治民意. 我母后自誕朕, 躬累遭艱難辛苦到此, 思念其情, 可不矜憐. 朕以天下養此. 一人卑無遺感. 凡我臣民, 體此大旨. 如有長生不老, 神仙之藥, 補氣甦元之術, 可延母壽者, 進于太后, 宜加爵賞功." 命有司, 選民孝母者, 三十七人, 賜宴于太后宮. 夏四月, <鱣>皇后生<桷>公主于<大角宮>. 上怒, 削后邑<龍岩>·<桓那>之地, 而出居<淨宮>, 以內儀小后<桶>公主爲皇后.
<羅><助賁>, 正月, 東巡郡國, 撫恤其民.
○ 9년{단기2568년/AD235}을유, 춘정월, 조서를 내려서 이르길; "효는 사람이 갖추어야 큰 바탕이다. 짐이 부모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였으니, 어찌 백성의 뜻을 다스릴 수 있으리오. 내 모후께서 짐을 낳으시고, 몸소 여러 번 간난신고를 만나시어 오늘에 이르셨으니, 그 정을 생각하면 존경스럽고, 어찌 가련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짐은 세상의 모든 것을 들여서라도 이 분을 돌보고자 하오. 한 사람이 비천하여 져서라도 유감스러운 일을 없게 하려 하는 것이오. 나의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이 큰 뜻을 헤아려주시오. 장생불로하는 신선지약이나 기운을 보하여 젊음을 되찾게 할 수 있는 재주로써 모친의 생명을 늘릴 수 있는 것이 있어, 태후께 보내주면, 작위를 더하여 주고 그 공에 상을 내릴 것이오."라 하였고, 관리에게는 명하여 모친에게 효도하는 백성 37인을 가려내어 태후의 궁에서 잔치를 벌여 주었다. 하4월, <전>황후가 <대각궁>에서 <각>공주를{또 딸을} 낳으니, 상이 노하여 후의 작위와 주었던 <용암>과 <환나>읍을 삭탈하여 <정궁>으로 나가 살게 하였고, 내의 소후 <통>공주를 황후로 삼았다.
<신라>의 <조분>이 정월에 동쪽의 군국(郡國)을 순시하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구휼하였다.
◎ 十年丙辰, 春二月, <孫權>使<胡術>來謁請和, 辭意甚慢, 禮物且薄. 上怒, 謂<胡術>曰; "爾王事<淵>甚厚, 而何事朕甚薄乎." <術>曰; "禮, 數因風波入海, 辭意與<淵>相同." 上曰; "年前<旦彊>給朕汝復, 爾邪." 命, 下獄治之. 太輔<息夫>興疾入諫, 乃置<玄菟>監之. <術>逃走, 爲<淵>所殺. 其徒<周仙>, 年少能通吾語, 爲<朱通>家臣, 太輔<穆臣>亦諫而免. 夏五月, 上觀稼于西郊, 親採鍾麥. <桶>皇后特寵自恣, 上復召<鱣>后入宮. <鱣>上書哀乞曰; "臣妾身多水氣, 恐又生女, 不敢再配聖躬." 上曰; "朕夢見先帝責我曰女勝於子無爭位之危. 朕今覺之. 其勿憂而入."
<索頭><涉眞>殂, <應鹿>立. <朱>妃生<洙>公主. <羅><助賁>, 二月, 取<骨火國>爲郡, 以其主<阿音夫>爲老客, 賜宅庄安之. 時, 朝{遂}以萬一之備, 割<竹嶺>以南之地, 築城池, 故<助賁>知勢, 不得已, 而停北拒而南下者也. <濟><古爾>, 十月, 獵西海大島(身彌島), {千}射鹿四十.
○ 10년{단기2569년/AD236}병진, 춘2월, <손권>의 사신 <호술>이 찾아와 배알하여 화친을 청하였는데, 그 언사가 심히 방자하고 예물 또한 야박하기에, 상이 화가 나서 <호술>에게 이르길; "너희 왕이 <공손연>은 끔찍하게 섬기면서, 짐을 섬기는 것은 이리도 야박한가?"라 하자, <호술>이 "예물은 바다에서 여러 번 풍파를 만났기 때문이며, 감사하는 뜻은 <공손연>에게 함과 하나같습니다."라고 답하자, 상이 이르길; "지난해에 <단강>이 내게 가져 온 것은 너의 두 배나 됐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라 하고는, "옥에 가두어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태보 <식부>가 병든 몸으로 들어와서 간언하니, <현토>를 시켜 <호술>을 지키게 하였다. <호술>이 도주하다가 <공손연>에게 잡혀서 죽었다. 함께 왔던 <주선>은 우리말에 능통하여 <주통>이 가신으로 삼았는데, 태보 <목신>이 간언하기에 풀어주었다. 하5월, 상이 서쪽 교외로 나가서 농사를 살피고, 친히 보리종자도 거두었다. <통>황후가 자기의 자태를 지독하게 뽐내어서, 상이 다시금 <전>후를 입궁하라고 불렀더니, <전>후가 글을 올려 애걸하기를 "소첩의 몸은 수기(水氣)가 많아서 또 딸을 낳을까 두렵습니다."라 하였고, 상이 다시 이르길; "짐이 꿈에 선제를 뵈었더니, 짐을 책망하여 이르시길 '딸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제위를 다툴 위험이 없다.'라고 하시었소. 짐이 그것을 깨달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시오."라고 하였다.
<색두>의 <섭진>이 죽어 <응록>이 섰다. <주>비가 <수>공주를 낳았다. <신라>는 <조분>이 2월에 <골화국>을 취하여 군으로 만들고, <골화국>의 주인이었던 <아음부>는 노객으로 삼아 집과 땅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였다. 이 때, 조정이 만일을 대비하여 <죽령>이남의 땅에 성을 쌓고 물구덩이를 팠는데, 이는 <조분>이 자기의 세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부득이 북쪽에 요새를 두어 남으로 내려오려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었다. <백제>의 <고이>가 10월에 서해의 큰 섬(신미도)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천>이 사슴 40마리를 쏘았다.
◎ 十一年丁巳, 春三月, <鱣>皇后生<獐>公主, 泣而不食, 上亦泣.
<劉昕鮮>·<于嗣>·<吳林>等侵<帶方>·<樂浪>等小國, 與<淵>表裡. <淵>自稱<燕>王而驕慢, 上乃遣使如<魏>議討<淵>之計. <魏>使<毌丘儉>爲<幽州>刺史, 與<鮮卑>·<烏桓>等屯<遼隊>徵<淵>. <淵>出擊破之. <毌>欲再戰, 以大雨十日, <遼水>大漲, 故恐有失, 而引還<右北平>. 我軍乘虛, 襲取<玄菟>西地百余里. 太輔<穆臣>薨, 年七十七. <息夫>代之, <能>左輔.
○ 11년{단기2570년/AD237}정사, 춘3월, <전>황후가 <장>공주를 낳고 눈물 흘리며 먹기를 피하니, 상도 또한 눈물을 흘렸다.
<류흔선>·<우사>·<오림> 등이 <공손연>과는 표리와 같은 <대방>·<낙랑> 등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였다. <공손연>이 스스로 <연>왕이라 칭하며 교만하여 있자, 상이 <위>에 사신을 보내 <공손연>의 계략을 토벌하자고 상의하였다. <위>가 <관구검>을 <유주>자사로 삼으니, <선비>·<오손>과 함께 <요대>에 진을 치고서는 <공손연>을 응징하려고 하였다. <공손연>이 (먼저) 나와서 <관구검>을 격파하였다. <관구검>은 다시 싸우고 싶었으나, 큰비가 열흘이나 내려서 <요수>가 넘실대니, 군사를 잃을까 겁나서 <우북평>으로 철수하였다. 우리 군대는 이 허실을 틈타서 <현토>의 서쪽 땅 백 여리를 취하였다. 태보 <목신>이 나이 77살에 죽으니, <식부>가 이를 대신하고, <목능>이 좌보가 되었다.
◎ 十二年戊午, 春正月, 大雪五日. 太輔<息夫>妻<玉陽>公主薨, 後二日, <息夫>亦薨, 年七十. 有渠父之風, 勤儉自守, 戒子女, 能直諫, 常言太后于政人, 以爲賢相. 上與<鱣>皇后臨吊葬, 以大王之禮, 以<穆萇>女<蠶>爲內儀小后. <萇>, <能>之子也.
<司馬懿>遣使來請共滅<淵>賊. 乃命<朱希>, 爲主簿大加, 引五千兵, 出<南蘇>, 觀望聲援. 八月, 滅<淵>, <懿>背約驕慢, 上怒絶之.
<濟><古爾>, 正月, 設壇祀天地, 用鼓吹. 二月, 畋于<釜山(在平壤北)>五旬, 乃返. 四月, 震, 王宮門柱, 黃龍自其門飛出.
○ 12년{단기2571년/AD238}무오, 춘정월, 연달아 닷새 동안 많은 눈이 내렸다. 태보 <식부>의 처 <옥양>공주가 죽으니, 이틀 후에 <식부>도 나이 70에 죽었다. 도량이 넓어 아버지 같은 기풍이 있었고, 근검하여 자신을 지켰고, 자녀를 잘 가르쳤으며, 직간하기를 잘 하였었고, 정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항상 태후를 부탁하였다. 이로 인하여 현명한 재상이 되었다. 상과 <전>황후가 참석하여 대왕의 예로 장사하였고, <목장>의 딸 <잠>을 내의 소후로 삼았다. <장>은 <목능>의 아들이다.
<사마의>가 사신을 보내 함께 <연>을 멸하자고 청하였다. 이에 상은 <주희>에게 명하여 주부대가로서 5천병을 이끌고 <남소>에서 출병하여 관망하며 성원하게 하였다. 8월에 <연>이 멸망하였는데, <사마의>가 약속을 저버리고 교만하여 있으니, 상이 <사마의>와의 관계를 끊었다.
<백제>의 <고이>가 정월에는 제단을 쌓고 천지에 제사하였는데, 북과 나발을 사용하였으며, 2월에는 <부산(재평양북)>에서 50일 동안 사냥하다가 돌아갔고, 4월에는 그 땅에 지진이 있었는데, 왕궁의 문기둥에서 황룡이 날라나왔다.
◎ 十三年己未, 春正月, 宴宗室公卿之老母于太后宮. 親率伶人, 奏歌舞滑稽, 以爲太后. 親練軍士于<西川>.
<羅>使至獻玉石, 求<竹嶺>之地, 不許. <濟>自正月不雨, 至五月而雨. <魏><曹叡>死, <司馬懿>執政.
○ 13년{단기2572년/AD239}기미, 춘정월, 태후의 궁에서 종실과 공경의 노모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상이 친히 재인들을 거느리고 악기도 타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익살도 부려서 태후를 위하고자 하였다. 친히 <서천>에서 군사를 조련하였다.
<신라>의 사신이 와서 옥돌을 바치며 <죽령> 땅을 얻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백제>에서는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더니만 5월이 되어 비가 내렸다. <위>의 <조예>가 죽으니, <사마의>가 정사를 거머쥐었다.
◎ 十四年庚申, 春正月, 多雪, 猪獐之獲甚多. 行先農祭于內城北郊. 二月, <鱣>皇后生<龜>公主, 上泣. 三月, 太后生<屈>太子, 上喜, 太后笑曰; "陛下, 喜怒不形, 近頗異前泣. 女而喜, 弟何也." 上曰; "<于>太后生時, 未嘗弛念, 今頗放心. 是臣之短也. 當改之."
<帶方>人<弓遵>自稱<魏>太守, 略邊通<羅>·<倭>, 生梗甚多. 命<於灌>率輯<臣智>等, 擊殺之.
<濟><古爾>, 侵<羅>西邊, 四月, 以<眞忠>爲左將軍, 委其內外兵馬. 七月, 大閱, 于<石川(今普通江)>, 有雙雁起於川上, <古爾>射之皆中, 自以爲神, 而人以爲不吉.
冬十二月, <然弗宮>奉禮<椽葉>生子<若友>. 上夢見白龍入, <然弗>太子之懷. 心常異之, 至是, 白龍果現于<溫湯>, 而<若友>生. <葉况>之女, 其母<尊>公主, 上之胞妹也. 時, 年十四. 上大喜之, 親幸<溫湯>, 賜衣, 以駙馬<椽况>爲中畏大夫, 以慰太后之心. <况>, 太后之姪, <尙>太后之女, <于>太后時, 全家避于<壅口>, 至是, 始大赫.
○ 14년{단기2573년/AD240}경신, 춘정월, 눈이 많이 내려, 잡힌 돼지와 노루가 엄청 많았다. 내성 북쪽 교외에서 선농제를 지냈다. 2월, <전>황후가 <귀>공주를 낳으니, 상이 눈물을 흘렸다. 3월 태후가 <굴>태자를 낳으니 상이 기뻐하자, 태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폐하는 기쁘거나 노하여도 표시내지 않으시더니만, 근래에는 파안하시니 이전에 눈물 흘리던 것과는 다르십니다. 이 여인이 기쁘니 동생이야 어떠하겠습니까?"라 하니, 상 왈; "<우>태후가 아이를 낳을 땐 생각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었으나, 지금은 파안하여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신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연히 이를 고치겠습니다."라 하였다.
<대방>사람 <궁준>이 스스로 <위>의 태수를 칭하면서 변방을 침략하고, <신라> 및 <왜>와 소통하여, 많은 근심거리가 생겼다. <어관>에게 명을 내리니, <신지> 등을 이끌고 나가서 이를 쳐 죽였다.
<백제>의 <고이>가 <신라>의 서쪽 변방을 쳤더니, 4월에 <진충>이 좌장군이 되어서 내외 병마의 일을 맡았다. 7월에 {<고이>가} <석천(금보통강)>에서 군대를 대대적으로 사열하였는데, {그때} <석천>의 위에서 기러기 한 쌍이 날아오르니, <고이>가 쏘아서 모두를 맞추고는, 자신을 신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일로 여겼다.
동12월, <연불궁>의 봉례인 <연엽>이 아들 <약우>를 낳았다. 상이 꿈에 백룡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연불>태자를 마음에 품은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늘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 지금에 이르러 백룡이 <온탕>에서 나타나 <약우>로 태어났다. <연엽>은 <연황>의 딸이며, 상의 동복 여동생인 <존>공주의 딸이다. <연엽>의 나이는 이때 열 넷이었다. 상이 이를 크게 기뻐하며, 친히 <온탕>으로 행차하여, 옷을 하사하고는, 부마 <연황>을 중외대부로 삼아 태후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연황>은 <상>태후의 조카인 태후의 조카인데, <우>태후 시절엔 모든 가족이 <옹구>로 피하여 살다가, 이때가 되어 처지가 크게 바뀐 것이었다.
◎ 十五年辛酉, 春正月, 太后不豫, 廢朝錄人, 親行祈禱, 命祀天壇·地神·名山大川. 三月, 快差大宴<椽>氏·<明臨>氏之族.
夏五月, 上與太后·皇后·<然弗>太子如<卒本>謁廟陵, 告王孫, 觀麥田, 行鳩祭. 秋八月, 封<葉>氏爲<然弗>太子妃, 賜金·銀·轎·綵叚{段}·無數, 以<尊>公主爲內儀小后, 加其田宅·奴婢. <禾>妃生<洛>公主
○ 15년{단기2574년/AD241}신유, 춘정월, 태후가 위독하여 조정을 폐하고, 죄수를 다시 살폈으며, 천단과 지신 및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라 명하였다. 3월에 쾌차하니, <연>씨와 <명림>씨의 족당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다. 하5월, 상은 태후·황후·<연불>태자와 더불어 <졸본>으로 가서 사당과 무덤을 배알하여, 왕손이 생겼음을 고하고는, 보리밭을 둘러보고 {보리종자를 물어다 준} 비둘기에게 제사하였다. 추8월, <엽>씨에게는, <연불>태자비를 봉하고, 금·은·교·채단을 셀 수 없을 만큼 하사하였다. <존>공주에게는 내의 소후로 높여주고, 전택과 노비를 더하여 주었다. <화>비가 <락>공주를 낳았다.
◎ 十六年壬戌, 春正月, 左輔<穆能>以病免. 夏五月, 上親率五道將軍, <方丑>·<須古>·<朱希>·<絃>·<穆萇>等, 引兵十万, 攻<西安平>, 拔之. 是謂<安平大戰>. 初<懿>拔<遼東>, 而移其主力于此, 欲東至. 是其設破壤, 生口珍寶, 皆歸于我. 時, 左輔<穆能>養城南, 與大評得來力, 疾, 入諫曰; "窮兵, 則引禍, 不如養力, 而待時." 上苦其不退曰; "國老只可養疾, 撫孫可也. 何預征伐如是耶." 命進肉羹而飮之, <能>不飮曰; "小臣亦皇家之裔, 安可使陛下陷危. 而不諫如欲出兵. 請殺臣." 上怒爲<蠶>后曰; "汝祖害我." <蠶>恐失寵, 强<能>而出, <能>疾劇, 而薨. 家人不敢葬. 上自<安平>歸, 大宴君臣曰; "如此快事. 恨不得與<穆>老同." 上與<蠶>后親葬<能>, 以國公太輔之禮曰; "汝祖, 雖我不知事忠, 則忠矣." 時, <蠶>后最有寵生皇子, 故<明臨>氏<椽>氏等頗{顔}有妬色.
<羅><助賁>, 年登, 其<古陀郡>生嘉禾. <濟><古爾>, 二月, 開稻田于南澤. 四月, <古爾>以其叔父<質>爲右輔, <質>忠敎謀事無失. 七月, <古爾>出西門, 觀射.
○ 16년{단기2575년/AD242}임술, 춘정월, 좌보 <목능>이 병으로 면직되었다. 하5월, 상이 친히 5도의 장군 <방축>·<수고>·<주희>·<현>·<목장> 등을 거느리고 십만 병을 이끌어 <서안평>을 쳐서 멸하였다. 이를 <안평재전>이라고 한다. 초에 <사마의>가 <요동>을 빼앗고 거기로 자신의 주력을 옮겨 동쪽을 도모하려 하였었다. 지금 그 땅이 어지러워지니 백성들과 진보가 모두 우리 것이 되었다. 그 시절, 좌보 <목능>이 성남을 돌봄에 있어, 대평{이름 모르는 사람이나 "대평"이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과 함께 가서 힘쓰다가 병이 들었는데, 들어와서 간언하기를; "병력이 궁핍하면 결국 화를 불러들이게 되니, 힘을 키워야만 합니다. 때를 기다리지요."라 하였는데, 상이 그 말을 고까워하며 물러서지 않고 대꾸하기를; "노인네께서는 병이나 키우시고, 손자나 어루만지시지, 무슨 까닭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와서} 정벌을 그리 예단하십니까?"라 하고는, "고깃국이나 {한 그릇} 올려드려라!" 하고 명하였다. <목능>은 고깃국을 마시지 않으며 말하길; "소신 역시 황가의 후손이인데, 가만히 있다가 폐하를 위험에 빠지시게 하겠습니까. 간언하지 않는 것은 출병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신을 죽여주십시오."라 하였다. 이에 상이 노하여 <잠>후에게 말하길; "당신의 할아버지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라 말하니, <잠>후는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목능>을 억지로 나가게 하였더니, <목능>은 병이 극심하여져 죽었다. 집안의 식구들은 감히 장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이 <안평>에서 돌아와 군신들에게 큰 잔치를 벌여주고 이르기를; "여차하여 일이 잘 풀렸소. <목>씨 노인께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소."라 하였다. 상은 <잠>후와 함께 <목능>을 국공 태보의 예를 갖추어 장사하고 이르길; "{그 때는 비록} 당신의 할아버지가 나에 충성하는 것을 몰랐었지만, 그것이 바로 충성이었소."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잠>후는 총애를 가장 많이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명림>씨와 <연>씨의 얼굴에는 질투의 빛이 있었다.
<신라>의 <조분>의 땅에서는 곡식이 잘 여물었고, <고타군>에서는 좋은 벼가 생겼다. <백제>의 <고이>는 2월에 <남택> {또는 남쪽의 습한 땅}에서 벼농사를 시작하였고, 4월에는 <고이>가 숙부 <질>을 우보로 삼았더니, <질>은 실수하지 않게 일을 꾸미는 것을 충성되게 가르쳤고, 7월에는 서문 밖에서 활쏘기 하는 것을 참관하였다.
◎ 十七年癸亥, 春正月, 立<然弗>太子爲正胤. 以<葉>氏爲正胤妃, <尊>公主爲正胤淑儀. <明臨鱣>皇后爲天宮大皇后, 還<龍岩>·<桓那>·<虎川>之地爲湯沐. 時, <鱣>后生<棟>太子, 故上愛后殊, 甚寵復如舊. 以<勝>公主爲<奢句>妻. <桶>公主生<于漱>女<五斗>于<西川>離宮, 是爲<西川帝>愛后<五斗星>后也. 草, <西川>鯉宅女夢得娠, 故曰<五斗>.
<古爾>, 正月, 設壇祀天地山川. 上曰; "<古爾>欺人孤兒. 天其{歃}歟." <鱣>后曰; "至誠則感天. 何愧於前, 而棄於後." 上曰; "善." <倭>獻美女錦{緞}, 以請假路攻<新羅>, 不許.
○ 17년{단기2576년/AD243}계해, 춘정월, <연불>태자를 정윤으로 세웠다. <엽>씨를 정윤비로 하고, <존>공주는 정윤숙위로 하였다. <명림전>황후는 천궁대황후로 하고, <용암>·<환나>·<호천>의 땅을 돌려주어 탕목으로 하게 했다. 이때, <전>후가 <동>태자를 낳으니, 상이 후를 유별나게 아껴주어, 깊은 총애가 옛날과 같아졌다. <승>공주를 <사구>의 처로 삼았다. <통>공주가 <우수>의 딸 <오두>를 <서천>의 이궁에서 낳았는데, 이 <오두>가 {훗날에} <서천제>의 애후인 <오두성>후가 된다.
<고이>가 정월에 제단을 쌓고 천지산천에 제사하였는데, 상이 말하길; "<고이>는 외로운 아이를 속였다. 하늘이 잘도 받아 마시겠다."라 하니, <전>후가 말하길;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할 것입니다. 어찌 앞서 한 일이 부끄럽다 하여 뒤의 일까지 내버려두겠습니까?"라 하니, 상이 "그렇겠다."라 하였다. <왜>가 미녀와 비단을 바치고는 <신라>를 공격할 길을 허락하여 달라고 청하니, 들어주지 않았다.
◎ 十八年甲子, 春三月, 微行至<酒桶村>, 見採薪女<淵>氏之美, 納于後宮, 爲宝儀, 奉禮. 群臣諫之, 不聽. 上欲知臣民之隱密, 往往微行于公卿胥吏之家. 眷其妻女, 又訪民戶亦然, 故衆望蘇然. 七月, 毌丘儉入寇<玄菟>, 上將步騎二万逆擊于<沸流水(兆兒{皃}河)>上, 大破之, 斬首三千余級. 是謂<沸水大戰>.
<羅><助賁>, 正月, 以伊湌<于老>爲舒弗邯兼知兵馬使. 以我割其<竹岺>以南之地爲短. 此本<樂浪>·<卒本>之地, 皆是我土也. <羅>·<濟>之浸蝕此壤, 盖因邦家西進. 誠{極}可憎之事也.
○ 18년{단기2577년/AD244}갑자, 춘3월, 미행하여 <주통촌>에 이르러서 땔나무를 하는 <연>씨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후궁으로 맞아들여서 <보의>로 삼고 예를 올렸더니, 신하들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상은 신하와 백성들의 은밀한 곳을 알고 싶어서, 왕왕 공경이나 서리들의 집을 방문하여 처와 딸들을 둘러보고, 백성들의 집 또한 그리 하였더니, 많은 이들이 집집마다 꽃이 피고 넉넉하여지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7월에 <관구검>이 <현토>에 쳐들어와 노략질 하니, 상이 보기 2만 병을 이끌고 나아가서 <비류수(조아{모}하)>의 위쪽에서 이를 크게 쳐부수고, 3천여 급을 베었다. 이를 <비수대전>이라 한다
<신라>의 <조분>이 정월에 이찬 <우로>를 서불감 겸 지병마사로 삼았다. 우리가 <죽령>이남의 땅을 잠시 차지하였었다. 이 땅은 본래 <낙랑>과 <졸본>의 땅이었었다. <신라>와 <백제>가 이 땅을 먹어들어 왔는데, 대략 그 나라의 사람들이 서쪽으로 퍼져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지극히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 十九年乙丑, 春, 巡東海觀魚于達<明淵>, 微行至<九極村>, 納其長者女<麥>氏, 顔色絶美, 容儀端雅窈窕. 上大可之, 以爲茶儀尙禮, 賜田宅奴婢, 爵其兄弟. <朱>妃生<朱玉>太子.
冬十月, 命<穆萇>·<朱全>伐<羅><長岺>·<蛙峴>取之, <于老>敗走<馬頭柵>躬燒柴火慰其傷卒, <朱全>欲追之, <萇>曰; "知止則無殆, 窮狗莫逐." <于老>之燒卒<正>, 欲見窮而欲反, 無隨其計可也.
○ 19년{단기2578년/AD245}을축, 봄, 동해를 순시하며 고기 잡는 것을 돌아보다 <명연>에 이르러서는, <구극촌>에 미행하여 촌장의 딸 <맥>씨를 맞아들였는데, 얼굴이 기막히게 예쁘고, 모습이 단아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웠다. 상이 크게 좋아하여, 상시에 차를 따르는 궁인으로 삼고, 전택과 노비를 내리고는, 형제들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주>비가 <주옥>태자를 낳았다.
동10월에, <목장>과 <주전>에게 명하여 <신라>의 <장령>과 <와현>을 쳐서 빼앗으니, <우로>는 <마두책>으로 쫓겨 가서 싸리나무를 불 놓아 부상한 졸병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주전>이 이들을 추격하려 하니, <목장>이 말하길;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은 것이니, 끝까지 개를 몰아대는 게 아니다."고 하였다. 불 놓던 <우로>의 병졸 <정>이 끝장을 보고 싶어 반격하려 하였으나, {<우로>가} 그 계획을 따르지 않았음이 옳았다.
◎ 十九{二十}年丙寅, 春正月, 詔曰; "兵者, 國之元氣也. 國家有事於南西, 涵養元氣, 凡有勇義之士, 通其一技一藝者, 皆詣主簿試, 才無欠一人." 二月, <鱣>皇后生<德>公主. 秋八月, 上與<朱>后·<葉>妃·<麥>妃等閱兵于<西川>而畋<杜訥(伯都訥之北界)之原>, 忽聞<毌>賊迂回而來急. <于根>等迎戰, 我寡被衆, 且接其銳鋒, 頗有難色. 上乃抄鐵騎五千衝其陣於<梁口>之谷(今大□)大破之, 獲其兵仗馬匹無數. 上與<朱>后, 受<俘母>之大軍, 又至<于根>, 戰死. <母>方陣而前勢如破竹, 又聞南路失守, 且挾后妃, 不得如意, 乃引勁騎千余而退于<鴨淥>之原(今哈爾濱). <朱全>軍亦敗, 死者萬人. 上東遷<壅口>. 十月, <毌>入都城, 掠民收宝, 上聞之痛哭曰;"恨不聽<穆能>之言." <麥>妃請奔其鄕, 乃至<竹嶺>, 軍士殆盡.
○ 20년{단기2579년/AD246}병인, 춘정월, 조서를 내려 알리길: "병사는 국가의 으뜸이 되는 기운이오. 나라의 서남쪽에 일이 있어, 으뜸이 되는 기운을 함양하려 하니, 용의지사들 중에서 기(技)와 예(藝)에 하나라도 능통한 이들이라면 모두들 주부를 뽑는 시험에 응하시오.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흠결이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하오."라 하였다. 2월, <전>황후가 <덕>공주를 낳았다. 추8월에 상이 <주>후·<엽>비·<맥>비 등을 데리고 <서천>으로 가서 병사를 사열하고, <두눌원(백도눌지북계)>에서 사냥을 하다가, 돌연히 <관>적이 멀리 돌아서 급히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근>이 맞아 싸웠으나, 우리는 수가 적고 저쪽은 수가 많았고, 막상 그들의 예봉을 마주하니, 자못 어려워 보였다. 상이 철기 5천을 대충 꾸려서 그들의 진영을 <양구곡(今大□)>에서 쳐 받아 크게 이겼고, 노획한 병장과 마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상은 <주>후와 함께 <부모>가 끌고 온 대군과 합친 후에 <우근>에게로 갔더니, 이미 싸우다 죽었었다. <부모>가 방진을 쳐서 파죽지세로 밀고 나아가다가, 남쪽의 통로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또다시 듣자, 후비들을 데리고 있는데다가 상황이 녹녹하지 않아 날랜 기병 천여 기와 함께 <압록원>으로 물러났다. <주전>의 군대 역시 패하여, 죽은 이가 만 명이나 되었다. 상이 동쪽의 <옹구>로 옮겼다. 10월, <관구검>이 도성에 들어와 백성을 노략하고 보물들을 챙겼다는 소식을 듣자 상이 통곡하며, <목능>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맥>비가 자기의 친정 동네로 피하기를 청하였다. <죽령>에 이르렀더니, 군사의 거의 모두는 죽어 있었다.
◎ 東部于台<密友>募士, 力戰. 上間行入山谷中, 聚散卒, 自衛百姓, 素慕聖德, 皆願死戰. <王頎>追兵, 與田民山尺, 相持, 敵衆我寡, 且無寸鐵勢, 其危急. 廚使<紐由>詐降, 饋<頎>隱刀刺殺之, 斬其幕將數人, 賊大亂. 上遂督民兵, 大破其衆. 時, <毌>賊己退. <穆萇>來迎上曰; "朕不聽汝父之諫而至此" 追贈<能>太輔安國公, 得來大主簿<萇>. 中畏大夫<萇>, 初, 娶<山上>女<玉川>公主, 至是, 又以上女<術>公主妻之, <于術>出也. 追贈<紐由>爲東部大使者, 賜其子<多優>繼之. 賜<密友>, <巨谷>·<靑木谷>. 賜<屋句>, <鴨淥>·<杜訥河原>. <朱>妃多産, 謹守, 故進封爲皇后.
<濟><古爾>, 夏大旱, 無麥. <毌>賊之亂, <樂浪><劉茂>·<帶方><王遵>亦自南入助<毌>. <古爾>乘其虛, 襲二國多掠邊民.
<羅><助賁>, 十月, 東南有白氣如匹練. 十一月, 地震其都.
○ 동부의 우태 <밀우>는 사람들을 모아서 힘써 싸웠다. 상은 산곡으로 숨어들어 흩어진 군졸을 모아 스스로 백성을 지켰더니, 평소에 상의 성덕을 흠모하였기에 모두들 죽기로 싸우길 원하였다. <왕기>의 추격군대가 들판에서 농사짓거나 산중에서 사는 사람들이 서로 대적하고 있었는데, 적은 수가 많고 우리 쪽은 수가 적을뿐더러 촌철지세도 없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창간 관리 <뉴유>가 거짓으로 항복하고는, <왕기>를 음식을 만들고 칼을 숨겨서 베어 죽이고, 막장도 여러 명을 목을 베었더니, 적들은 어수선하여졌다. 상이 백성과 병사를 독려하여 <왕기>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이때, <관구검> 군대는 이미 물러나 있었다. <목장>이 와서 상을 맞이하니, 상이 "짐이 자네 부친의 말을 듣지 않아 이리 되었다."하고는, <목능>을 태보 국태공으로 추증하고는, 찾아온 대부부 <목장>도 {자신의 사람으로} 맞아들였다. 중외대부 <목장>은 이전에 <산상>의 딸 <옥천>공주에게 장가를 들었었고, 지금에 와서는 또 <우술>이 낳은 상의 딸 <술>공주를 처로 삼게 되었다. <뉴유>에게는 동부대사자를 추증하고, 그의 <다우>가 동부대사자의 자리를 잇게 하였고, <밀우>에게는 <거곡>과 <청목곡>의 땅을 하사하고, <옥구>에게는 <압록>과 <두눌하원>의 땅을 하사하였다. <주>비는 자식을 많이 낳고, 근신하여 자신을 지키었다 하여 황후로 봉하였다.
<백제> <고이>의 땅에서는 여름이 가물어서 보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관구검>이 난리를 피우는 동안 <낙랑>의 <유무>와 <대방>의 <왕준>이 남쪽으로부터 쳐들어와 <관구검>을 도왔는데, 그 허를 틈타서 그 두 나라를 기습하여 변방과 백성을 노략한 것이 많았다.
<신라> <조분>의 땅에서는, 10월에는 동남쪽 땅에서는 비단 필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허연 기운이 있었고, 11월에는 도읍에 지진이 있었다.
◎ 二十一年丁卯, 春二月, 移都<平壤>. 七月, 太子妃<葉>氏生子<逸友>. 宝儀奉禮<淵>氏生<淵>太子.
<羅><助賁>, 五月, 殂, 取乘雙魚而上天, 母弟<沾解>立. 七月, <沾解>謁其始祖廟, 封父<骨正>爲<世神葛文王>.
<濟><古爾>, 正月, 祭天地於南壇. 三月, <眞忠>右輔, <直勿>左將知兵馬使.
○ 21년{단기2580년/AD247}정묘, 춘2월,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7월, 태자비 <엽>씨가 아들 <일우>를 낳았다. 보의봉례 <연>씨가 <연>태자를 낳았다.
<신라>에서는 <조분>이 5월에 죽었는데, 두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타고 승천하였고, <조분> 모친{옥모}의 남동생 <첨해>가 섰다. 7월에는 <첨해>가 시조의 사당을 배알하고, 부친 <골정>을 <세신갈문왕>으로 봉하였다.
<백제>에서는 <고이>가 정월에 남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였고, 3월엔 <진충>이 우보가 되고, <직물>이 좌장 지병마사가 되었다.
◎ 二十二年戊辰, 春二月, 與<新羅>定界和親. 以<葉>氏爲內儀小后, <麥>氏**{爲丹儀小后, <淵>氏爲恭儀小后, <貫那>氏爲宝儀小后, <蠶>氏爲}**<地宮>大皇后. 上遭變以來, 倦於政事, 唯以遊獵浸色爲事, 命太子攝行政事, 命<要>公主爲太子妃, <酒>后出也, 年才十二. 秋七月, <酒桶>太后, 以(暑)痢, 崩, 春秋六十. 后, <酒桶>村長<椽栢>之女也. 其母<於>氏夢見槐王持金尺入{懷}而生后, 豐美有德. <山上>微行通之生聖窮, 及爲太后, 多亂政事, 淫穢頗失前望. 葬于<酒桶村>後合于<東川陵>, 皆其遺志也. <朱>后生子<朱城>太子. 九月, 上畋于<狐川>, 謁<酒桶陵>, 有感而疾作不能言而崩, 葬于<東川(烏)壤之岡(今海浪河黃崗子界)>. 先是, 上與<酒>后占此地, 至是, 同壙異室. <淵>后赴燒而殉, <鱣>皇后·<蠶>后·<麥>氏·<葉>氏等, 皆欲赴火號泣. <擗踊>太子與<桶>公主·<要>公主, 扶諸后救之然. 朝士·後宮·民女之殉于陵前者不絶, 掩柴相連, 人以爲<柴原>, 百姓歌之曰多情天子化爲龍, 陵前掩柴總天花.
○ 22년{단기2581년/AD248}무진, 춘2월, <신라>와 경계를 정하고 화친하였다. <엽>씨를 내의소후로 삼고, <맥>씨는 **{단의소후로, <연>씨는 공의소후로, <관나>씨는 보의소후로, <잠>씨는}** <지궁>대황후로 삼았다. 상은 변{<관구검>의 침입}을 당한 이후로 정사에 권태를 느끼고 오로지 떠돌며 사냥하는 것과 여색에 빠지길 일로 삼고, 태자에게 정사를 맡아보라고 명하였으며, <요>공주에게는 태자비가 되라고 명하였다. <요>공주는 <주>후의 소생이고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추7월에 <주통>후가 더위와 설사병으로 춘추 67세에 죽었다. <주통>후는 <주통>촌장 <연백>의 딸이다. 모친 <어>씨가 꿈속에서 괴왕이 금자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나서 태기가 있어 낳았으며, 체구가 풍족하고 아름다웠으며 덕스러웠다. <산상>이 미행하여 그 훌륭한 분을 낳았는데 나중에 태후가 되었는데, 정사를 많이 어지럽혔고, 음란하고 몸을 함부로 놀리고 편벽되어 장래를 저버렸었다. <주통촌> 뒤의 <동천릉>에 함께 장사하였는데, <주통>후가 남긴 뜻에 따른 것이었다. <주>후가 아들 <주성>태자를 낳았다. 9월에 상이 <호천>에서 사냥하고, <주통릉>을 배알하고는 병이 들어 말도 못하게 되어서 죽었는데, <동천(오)양지강(금해랑하황강자계)>에 장사하였다. 이전에 상이 <주>후와 함께 이곳을 점지하였었는데, 지금 한 구덩이에 서로 다른 방을 가지게 되었다. <연>후가 쫓아와서 몸에 불 지르고 죽었고, <전>황후·<잠>후·<맥>씨·<염>씨들도 모두 불 곁으로 와서 울부짖었다. <벽용>태자가 <통>공주·<요>공주와 함께 여러 후들을 끄집어내어 목숨을 구하게 하였다고 한다. 조정의 사람들과 후궁들 그리고 민간의 여자들이 무덤 앞에서 순사하는 것이 끊이지 않으니, 싸리나무로 둘러쳐서 막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곳을 <시원>이라 불렀고, 백성들은 노래하기를; "정이 많았던 천자가 용이 되니, 무덤 앞 싸리울엔 하늘 꽃이 만발하였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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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읍니다.
똑 같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이 사초/사략에 남당 선생께서 지명비정하여 놓으신 것을 따라가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게 되어있음을 간과하시는 분이 있어 중단할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또다른 사략 저본과 비교하여 일부 글자를 삽입하여 번역한 곳이 한 줄쯤 있음도 첨언합니다.
꼼꼼히 살펴서 오독/오역이 없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2007/06/13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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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世<東襄大帝>紀
◎ 帝, 初號, <東川大王>, 諱, <位宮>, 亦作<夏位居>, 小字曰<郊彘>, <山上大帝>之長子也. 母, <香部>小后, <酒桶村>主<椽>翁之女也. 狀皃雅秀, 愛人下士, 且有勇力, 善騎射, 好武術, 新練兵士. 有<東明>大志, 喜怒不形. 侍女誤䨱肉羹于御衣, 則但問其無傷爾手而己. <于>后欲試其量, 乘其出外, 剪其愛馬之鬣則歸. 而見之. 以手撫鬣曰; "馬無鬣甚可憐. 上下莫不稱其寬仁大度然. 好略獵, 築宮室, 浸女色事. 征伐內外多事, 以是少之.
○ 제의 초호는 <동천대왕>, 휘는 <위궁> 또는 <하위거>, 아명은 <교체>이며, <산상대제>의 맏아들이다. 모친은 <향부>소후로서 <주통촌>주 <연>옹의 딸이다. {상은} 외모와 얼굴은 우아하고 출중했으며, 백성과 하급 관리를 아꼈고, 용력도 있고 기사(騎射)에도 뛰어났으며, 무술을 좋아하여 병사들도 새로이 조련하였으며, <동명>의 큰 뜻도 있었고, 즐겁거나 노여워도 표시내지 아니 하였다. 시녀가 잘 못하여 고깃국을 어의에 엎질렀을 때에는 시녀의 손과 몸에 탈이 없는 지를 물을 뿐이었다. <우>후가 그 도량을 가늠해보려고, {동양대제의} 애마를 타고 나가서 갈기를 잘라버리고 돌아오니, 그 모습을 보고나서도, 손으로 말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갈기털이 없으니 무척이나 가련해 보인다."라고만 하였다.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이나 {동양대제의} 인자함과 관대함을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사냥과 약탈을 즐겼고, 궁실을 지어 여색에도 빠졌다. 국내외 정벌도 많이 하였었는데, 이러하더니만, 뜸하여졌다.
◎ 元年丁未, 夏五月 七日夜, <山上大帝>以□潰之證, 崩, 于<金川宮>. <于>皇后急召太子, 行祥于殯, 召太輔<穆登>·左輔<于目>·右輔<尙齊>·國相<高優婁>·中畏大夫<明臨息夫>, 入內殿, 行太子卽位禮, 寶齡十九. <羽林>百僚擧燎山呼, 東將明矣. 夏六月, 以<明臨息夫>女<鱣>氏爲皇后, 號<皇林宮>, <于>后爲<金川>太后. <香部>小后爲<酒桶村>后, 賜姓<椽>氏. 七月, 莽大行<山上陵(吉林縣鳳凰山)>, 立廟于<艮嶺>. <于目>太輔, <尙齊>左輔, <息夫>右輔兼攝政大王, <高優婁>國相. 九月, 前太輔<靑山公><穆登>薨, 年七十五, <度婁>孫也.
<新羅><奈解>, 二月巡其西南郡邑考績, 三月還. 以海湌<康善>爲伊湌. 作詩<惱(思內樂).
<百濟><仇首>, 三月雹, 四月大旱, <仇首>親禱<東明>廟, 乃雨.
群臣請復役<大角宮>, 許之. 先是, <山上>爲<鱣>后採斑玉作此宮, 因不豫而停之, 至是復營. 上與皇后親督之, 飾以寶玉香木, 園以花鳥走泳, 極其奢侈.
○ 원년{단기2560년/AD227}정미, 하5월 7일 밤, <산상대제>가 '以□潰之證'으로 <금천궁>에서 죽으니, <우>황후가 급히 태자를 불러 빈소에 상제(喪祭)를 올리게 하였고, 태보<목등>·좌보<우목>·우보<상제>·국상<고우루>·중외대부 <명림식부>를 불렀더니, 내전으로 들어와 태자의 즉위예식을 치렀다. 보령 열아홉이었다. <우림>의 백료들이 섶을 불 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만세를 부르니, 동쪽 하늘이 밝아왔다. 하6월, <명림식부>의 딸 <전>씨를 황후로 올려 <황림궁>이라 불렀고, <우>후를 태후로 하고, <향부>소후를 <주통촌>후로 하고 <연(椽)>씨라는 성(姓)을 내렸다. 7월, <산상릉>을 풀{뗏장}로 덮고 <간령>에 사당을 세웠다. <우목>을 태보로, <상제>를 좌보로, <식부>를 우보 겸 섭정대왕으로, <고우루>를 국상으로 삼았다. 9월, 이전의 태보 <청산공><목등>이 나이 75세에 죽었다. 그는 <도루>의 손자이었다.
<신라>의 <내해>는 2월에 그 나라 서남부의 군과 읍을 순시하여 실 삼는 것을 살피고, 3월에 돌아갔다. 해찬 <강선>을 이찬으로 올렸다. <뇌(사내락)>라는 시를 남겼다.
<백제>의 <구수>는, 3월에는 우박이 내리고, 4월에는 큰 가뭄이 들자, 손수 <동명>묘에 빌었더니 비가 내렸다.
군신들이 <대각궁>을 다시 짓자고 청을 하니 허락하였다. 이에 앞서, <상상>이 <전>후를 위하여 무늬가 있는 옥을 캐어 이 궁궐을 짓다가 환후로 그만두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하는 것이었다. 상과 황후가 친히 살폈으며, 보옥과 향나무로 치장하고, 정원에서는 화초를 심고 새들이 달리고 헤엄치게 하여, 그 사치함이 극에 달하였다.
◎ 二年戊申, 春二月, 上·皇后·<酒桶>后·<于術>妃(皇后母)如<卒本>謁<東明>廟, 告卽位. 三月, 還御<大角宮>, 受百官朝賀, 大赦天下. 三月, 以<金川>后爲皇太后攝政王, 以<息夫>爲國公. <于術>爲國太妃, 加其奴婢庄園. 秋八月, 雷雨. 上如<酒桶宮>, 洗皇子<奢勾>. 十七朔而生, 故奢. 月如<勾>而生, 故曰<勾>. 上極愛之, 珍寶多與之.
<遼東><公孫恭>爲其兄子<淵>所擒, <淵>自稱太守, 而代領其衆.
○ 2년{단기2561년/AD228}무신, 봄 2월, 상·황후·<주통>후·<우술>비(황후모)가 <졸본>으로 가서 <동명>묘를 찾아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3월에 <대각궁>으로 환어하여 조당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는, 나라에 대사령을 내렸다. 3월, <금천>후를 황태후 섭정대왕으로 삼고, <식부>를 국공으로 하였다. <우술>을 국태비로 삼고 노비와 장원을 늘려주었다. 가을 8월에 뇌우가 있었다. 상이 <주통궁>에 납시어 황자 <사구>를 물로 씻어주었다. 17삭{17개월}만에 정상적인 기간을 훨씬 넘어서야 낳았기에 <사>라 하고, 그날 달의 모양이 갈고리{구}와 같아서 <구>라 이름 하였다. 상은 <사구>를 지극히 아꼈으며, 많은 진보를 <사구>에게 주었다.
<요동>의 <공손공>은 그 형의 아들 <공손연>에 의해 갇혀버렸고, <공손연>이 스스로 태수를 칭하고, 그 무리를 다스렸다.
◎ 三年乙酉, 正月, 皇太后妹<虎川宮>妃薨, 年七十. <虎>, 初爲<發岐>妻, 後爲<乙巴素>妻. 有脅力, 能騎射, <發岐>之亂, 大義絶夫, 以扶杜功, 封妃. 國有大政依三輔例收議. <朱>妃生子<朱元>.
二月, <鱣>皇后生<勝>公主于<大角宮>. 三月, 親練士卒於內城之原. 與皇太后謁<山上陵>. <于目>薨, <尙齊>太輔, <米何>左輔.
<羅><奈解>, 四月, 蛇鳴南庫三日. 九月地震, 十月大雪五尺. <濟><仇首>, 十月畋于<寒泉(未詳)>. 十一月大疾. <末曷>入寇<牛谷>界(惠山鎭界), <仇首>率三百精兵赴救, 過其伏兵而敗. <末曷>大掠人物牛羊而去. <仇首>以爲從<曷>而怨我. <吳>主<孫權>稱帝都<建業>.
○ 3년{단기2562년/AD229}을유, 정월, 황태후의 여동생 <호천궁>비가 나이 70에 죽었다. <호>는 처음엔 <발기>의 처였다가 후에는 <을파소>의 처가 되었다. 남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고 말 탄 채 활쏘기도 잘하였다. <발기>가 난을 일으키자, 큰 뜻으로 지아비와 헤어지고, 부두{사직을 떠받쳐 든든히 하고 정변을 막는}의 공을 세워, 비로 봉함을 받았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삼보들에게 시켜서 의견을 견주어 모으게 하였다. <주>비가 <주원>을 낳았다.
2월, <전>황우가 <대각궁>에서 <승>공주를 낳았다. 3월에 친히 궁성 내의 동산에서 군사를 조련하였다. 황태후와 함께 <산상릉>을 참배하였다. <우목>이 죽어, <상제>를 태보로, <미하>를 좌보로 삼았다.
<신라>, <내해>의 땅에서는 4월에 남쪽 창고에서 뱀이 사흘을 울었고, 9월엔 지진이 있었고, 10월엔 눈이 많이 내려 다섯 자나 쌓였다. <백제>에서는 <구수>가 10월에 <한천(미상)>에서 사냥하였고, 11월엔 돌림병이 크게 돌았다. <말갈>이 <우곡>의 경계(혜산진계)에 쳐들어와, <구수>가 정병 300을 이끌고 구하러 달려갔는데, 복병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가 패하였다. <말갈>이 사람과 재물 및 소와 양을 대대적으로 노략하여 돌아갔다. <구수>는 <말갈>의 일로 우리{고구리}를 원망하였다. <오>의 <손권>이 칭제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 四年庚戌, 春正月, 親習兵馬于<中川之原(拉林河流域)>. 二月, 改後宮八部爲六儀. 香部·藥部曰內儀, 丹部·浴部曰丹儀, 饍部曰廚儀, 茗部·醞部曰茶儀, 道部曰淑儀. 又加珍玩宝藏之. 后, 卽古藏部也, 謂宝儀. 以后母<于術>爲內儀, 小后亦曰<香>后. 秋七月, 國相<高優婁>以疾薨, 以左部于台<於漱>代之, 乃皇后之兄也, <香>后之子也. 俊厚容物有大臣風, 然貪財好色, 頗缺人望. 太輔<于目>難之以退. <尙齊>太輔, <息夫>左輔, <滇古>太子右輔. <乙大非>中畏大夫時, <于>太后與<酒桶>后出居<狐川>行宮. <大非>子<素介>爲行宮仙人.
<羅><奈解>, 三月, <奈解>殂, <伐休>孫<助賁>立, 父<骨正>, 母<玉帽>, <金仇道>之女也. 其妻<阿爾兮>, <奈解>女也. <奈解>臨終言, 以婿爲子, 國人乃立. <助賁>, 身長美儀采, 臨事明斷, 咸稱之. {伊湌<連忠>掌軍國事. 七月, 謁始祖廟.}
○ 4년{단기2563년/AD230}경술, 봄 정월, <중천지원>에서 친히 병마 훈련을 하였다. 2월, 후궁들과 8부를 6의로 바꿨다. 향부와 약부를 내의로, 단부와 욕부를 단의로, 선부를 주의로, 명부와 온부를 다의로, 도부를 숙의로 하고, 또한 진완보장도 더하여 주었다. 후(后)는 옛말로 장부(藏部)이어서, 보의(宝儀)라고 하였다. 후의 모친 <우술>은 내의라 하고, 소후는 <향>후라 하였다. 가을 7월에 국상 <고우루>가 병으로 죽어, 좌부의 우태 <어수>가 대신토록 하였는데, {<어수>는} 황후의 오빠이고, <향>후의 아들인데, 재주 있고 친절하고 편안하였고, 정사를 봄에 있어서는 대신의 기풍이 있었으나, 재산을 탐하고 색을 밝혀서 인망을 얻지 못하였었다. 태보 <우목>이 <어수>로는 국상의 자리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물러나게 하였다. <상제>가 태보가 되고, <식부>는 좌보, <전고>태자는 우보가 되었다. <을대비>가 중외대부를 하던 시절에 <우>태후는 <주통>후와 함께 <호천>의 행궁으로 나와서 살았다. <을대비>의 아들인 <을소개>는 행궁선인이 되었다.
<신라>에서는 <내해>가 3월에 죽어, <벌휴>의 손자인 <조분>이 섰다. <조분>의 부친은 <골정>이고, 모친은 <김구도>의 딸인 <옥모>이다. <조분>의 처는 <내해>의 딸이다. <내해>가 죽음에 임박하여 사위를 아들로 삼았고, 나라사람들이 <조분>을 세웠다. <조분>은 키가 크고 외모가 빛났는데, 정사에 임하여서는 명확하고 단호하다는 평이 나라 안에 널리 퍼져있었다. {이찬 <연충>이 나라의 군국지사를 관장하였다. 7월에는 시조묘를 배알하였다.}
◎ 五年辛亥, 春正月, <錦林>公主薨, <新大>之女, <息夫>之母, 年八十, 有賢德, 上下稱之. 葬于<質山>. 夏四月, <鱣>皇后生<鵂>公主.
<羅><助賁>, (二)七月, 以伊湌<于老>爲大將軍討<甘文>, 拔之, 以其地爲郡. <濟><仇首>(一八)四月, 雹如栗, 鳥雀中者死.
<魏>, 以<公孫淵>爲<遼東>太守車騎將軍, 襲我<玄菟城>, 命右衛將軍<朱希>擊破之.
○ 5년{단기2564년/AD231}신해, 봄 정월, <금림>공주가 죽었다. <신대>의 딸이고 <명림식부>의 모친이었는데, 나이 80에 죽었다. 상하의 사람들이 그녀의 현명함과 덕망 있었음을 칭송하였다. <질산>에 장사했다.
<신라><조분>이 7월에 이찬 <우로>를 대장군으로 삼고 <감문>을 치게 하여, 멸하였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백제> <구수>의 땅에서는 4월에 밤톨만한 우박이 내려 그에 맞은 꼬리 긴 새(鳥)와 참새(雀)가 죽었다.
<위>는 <공손연>을 <요동>태수 거기장군으로 삼았는데, 그가 우리{고구리}의 <현토성>을 기습하였고, 우위장군 <주희>가 이를 쳐서 깨뜨렸다.
◎ 六年壬子, 春正月, 大閱五部衛士于內城之原. 二月, <于>太后薦<蘇太>爲內儀, <太>讒預物, 非上子. 上乃疎<鱣>皇后, 命出居<淨宮>. 八十日, 以復后, 后作八十曲而悲之. 三月, <孫權>遣<周賀>渡海潛通<公孫淵>, <淵>以<宿舒>·<孫宗>登入<吳>稱獻貂皮·達·馬. 太輔<尙齊>, 以女事免, <乙大昆>代之. <羅><助賁>(三)四月, <倭>猝至圍<金城>, <助賁>躬戰破之, 追斬千余級. 十月, 畋于<虎川(今呼蘭河拉林之支流)>, 以慰<酒桶>后.
○ 6년{단기2565년/AD232}임자, 춘정월, 5부의 위사들을 내성의 언덕에서 대대적으로 사열하였다. 2월, <우>태후가 <소태>를 내의로 삼으라고 천거하였더니, 내의가 된 <소태>가 앞일을 참소하기를; "상은 {정실인 황후로부터는} 아들이 없겠다."고 하였다.** 상이 <전>황후와 소원하여지더니, <정궁>에 나가 살라고 명하였다. 80일이 지나자 불러들여져 후위를 복원하였다. 후가 80곡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서글펐다. 3월, <손권>이 <주하>를 보내어 <공손연>과 바다를 건너서 밀통하였고, <공손연>은 <숙서>와 <손종>을 <오>에 보내서 초피·새끼 양·말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태보 <상제>가 딸의 일로 하여 면직되었고, <을대곤>이 대신하였다. <신라>의 <조분>은 4월에 <왜>가 갑자기 쳐들어오니, 몸소 싸워서 물리치고, 추적하여 천여 급의 목을 베었다. 10월, <호천(금호란하납림지지류)>에서 사냥하여, 이로써 <주통>후를 위안하였다.
◎ 七年癸丑, 春三月, <鱣>皇后生<獜>公主于<大角宮>. 上命罷皇后宮仙人, 惡后生女, 后爲之不食. 時, 人爲后歌, 生女難. 秋九月, <孫權>遣<秦旦>·<黃彊>來朝, 言所獻金寶珍帶爲<淵>所奪, 不勝死罪. 上嘉其遠來, 賜以酒食, 賜皁衣<尙越>等, 護送其國, 賜<權>貂皮·鶡鷄皮等曰; "<淵>之爲人反覆不可信." 追後聞之, 則<淵>果殺<權>使<張彌>·<許晏>等傳首于<魏>. <魏>封<淵>大司馬<樂浪公>, 以力士爲使, 授詔欲擊. <淵>知其謀, 盛設兵威, 以帶衛受冊. <魏>以是含之.
<羅><助賁>, 四月, 大風飛屋瓦. 五月, <倭>寇東邊. 七月, <于老>與<倭>戰于<沙道(今豆滿江北沿海嫂河半島界也)>, 乘風縱火焚舟, 賊赴水死盡. 是謂<嫂河大戰>. 左輔<米何>薨, <息夫>代之, <穆能>右輔.
○ 7년{단기2566년/AD233}계축, 춘3월, <전>황후가 <대각궁>에서 <린>공주를 낳았다. 상이 황후궁의 선인을 파면하라 명하였는데, 이는 딸을 낳은 황후를 박대한 것이었다. 황후는 이로 인하여 먹지를 않았다. 그 시절, 사람들은 황후를 위해 노래를 하였는데, “딸을 낳으면 어려워진다네...”라고 하였다. 추9월, <손권>이 <진단>과 <황강>을 보내 래조하여 <공손연>에게 빼앗겼던 금보진대를 바치겠다 말하여 죽을죄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상은 멀리에서 왔음을 보아 흡족해 하고 술과 음식을 내려주었고, 조의 <상월> 등을 시켜서 그 나라로 호송하여 주게 하였고, <손권>에게 초피·갈계피 등을 하사하여 이르길; "<공손연>은 사람됨이 뒤집기를 잘 하여 믿을 바 못 된다 하였다." 후에 이를 들은 <공손연>은 <손권>의 사신인 <장미>·<허안> 등을 죽이고, 그 목을 <위>에 보냈다. <위>는 <공손연>을 대사마·<낙랑공>으로 삼았고, 력사에게는, 사신을 삼아 보내면서, 조서로써 {공손연을} 격살하라고 하였는데, <공손연>이 그 음모를 알아차리고는 병사를 크게 늘어세워 위엄을 보이면서 책명을 받는 곳을 둘러싸게 하였다. <위>는 이로써 척살계획을 없었던 것처럼 하였다.
<신라> <조분>의 땅에서는 4월에는 큰바람으로 집과 기왓장이 날아갔고, 5월에는 <왜>가 동쪽 변경을 도적질 했으며, 7월에는 <우로>가 <왜>와 <사도(금두만강북연해수하반도계야)>에서 싸웠는데, 바람의 도움으로 {왜적들이 타고 온} 배를 불사르니, <왜적>들은 물에 이르러 모조리 죽었다. 이를 <수하대전>이라 한다. 좌보 <미하>가 죽어, <식부>가 이를 대신하였고, <목능>이 우보가 되었다.
◎ 八年甲寅, 春正月, 宴<吳>使于<大角宮>. 謁<酒桶>后于<狐>. 時, 后生女<方乙>. 夏四月, <曹叡>遣使來獻兵書寶劍玉床等, 請兵滅<公孫淵>而討<吳>. 太輔<乙大昆>薨, 年七十. <大昆>, 以<巴素>之長子, 立朝五十年. 有大臣之風, 不以公混私, 決大事, 治大獄, 多有力焉. 然<巴素>沒, 屬娶<虎川>生子, 未免聚鹿之恥, 可勝歎哉. <尙齊>復相. 秋九月, <于>太后崩, 葬于<山上陵>側, 植松七重, 以遮其面.
<濟>主<仇首>殂, 在位二十一年, 其子<沙伴>立幼, <肖古>弟<古爾>廢<沙伴>而自立.
冬十月, 上迎<酒桶>太后于<虎川>入居. <于>太后崩, 所總執政事於是. <椽>氏兄弟驟登樞, 以代<于>氏<朱>氏. 國人歎外戚沙麓之患, 而莫可奈何. 時, <酒>后, 春秋四十六, 而胖强如少女, 連生私子, 上不能禁, 皆封爲列王公主. <朱>妃生子<朱國>.
○ 8년{단기2567년/AD234}경인, 춘정월, <오>의 사신에게 <대각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주통>후를 <호>로 찾아뵈었다. 이때, <주통>후는 딸 <방을>을 낳았다. 하4월, <조예>가 사신을 보내어 병서와 보검 및 옥상 등을 바치며, 군사를 일으켜 <공손연>을 멸하고 <오>를 쳐달라고 부탁하였다. 태보 <을대곤>이 나이 70에 죽었다. <대곤>은 <을파소>의 장자로 입조한 지 50년이었는데, 대신의 기풍이 있었고, 공과 사를 혼동하지 않고 큰일을 처결하고, 큰 옥사도 다스렸으며, 많은 일에 힘을 썼었다. <파소>가 죽자, 자연스럽게 <호천>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기에, 취록지치(聚鹿之恥{사슴에 비유되는 왕비 등을 간음하는 부끄러운 일})를 면할 수는 없었으니, 한탄할 일이라 할 것이다. <상제>가 재상의 자리에 복귀하였다. 추9월에 <우>태후가 죽자, <산상릉> 곁에 묻어주고는,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어 얼굴을 가려주었다.
<백제>주 <구수>가 재위 21년에 죽어, 그의 아들 <사반>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니, <초고>의 동생 <고이>가 <사반>을 폐위하고 자신이 보위에 섰다.
동10월, 상이 <주통>태후를 <호천>으로 맞아들여 기거하게 하였다. <우>태후가 죽으니, 이때부터 상이 정사의 모두를 맡아보게 되었다. <연>씨 형제가 대신의 자리에 올라 <우>씨와 <주>씨를 대신하게 되었다. 나라사람들은 외척들에 의한 사록지환(沙麓之患{외척의 발호에 의한 우환})을 어찌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이때, <주통>후는 나이가 46살이었는데, 태반이 젊은 여자와 같이 튼튼하여, 계속하여 사생아를 낳아대는데도 상은 이를 말릴 수 없었고, 그 사생아 모두를 왕과 공주로 봉하였다. <주>비가 아들 <주국>을 낳았다.
◎ 九年乙酉, 春正月, 詔曰; "孝子, 人之大本也. 朕爲父母不自垂範, 何以治民意. 我母后自誕朕, 躬累遭艱難辛苦到此, 思念其情, 可不矜憐. 朕以天下養此. 一人卑無遺感. 凡我臣民, 體此大旨. 如有長生不老, 神仙之藥, 補氣甦元之術, 可延母壽者, 進于太后, 宜加爵賞功." 命有司, 選民孝母者, 三十七人, 賜宴于太后宮. 夏四月, <鱣>皇后生<桷>公主于<大角宮>. 上怒, 削后邑<龍岩>·<桓那>之地, 而出居<淨宮>, 以內儀小后<桶>公主爲皇后.
<羅><助賁>, 正月, 東巡郡國, 撫恤其民.
○ 9년{단기2568년/AD235}을유, 춘정월, 조서를 내려서 이르길; "효는 사람이 갖추어야 큰 바탕이다. 짐이 부모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였으니, 어찌 백성의 뜻을 다스릴 수 있으리오. 내 모후께서 짐을 낳으시고, 몸소 여러 번 간난신고를 만나시어 오늘에 이르셨으니, 그 정을 생각하면 존경스럽고, 어찌 가련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짐은 세상의 모든 것을 들여서라도 이 분을 돌보고자 하오. 한 사람이 비천하여 져서라도 유감스러운 일을 없게 하려 하는 것이오. 나의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이 큰 뜻을 헤아려주시오. 장생불로하는 신선지약이나 기운을 보하여 젊음을 되찾게 할 수 있는 재주로써 모친의 생명을 늘릴 수 있는 것이 있어, 태후께 보내주면, 작위를 더하여 주고 그 공에 상을 내릴 것이오."라 하였고, 관리에게는 명하여 모친에게 효도하는 백성 37인을 가려내어 태후의 궁에서 잔치를 벌여 주었다. 하4월, <전>황후가 <대각궁>에서 <각>공주를{또 딸을} 낳으니, 상이 노하여 후의 작위와 주었던 <용암>과 <환나>읍을 삭탈하여 <정궁>으로 나가 살게 하였고, 내의 소후 <통>공주를 황후로 삼았다.
<신라>의 <조분>이 정월에 동쪽의 군국(郡國)을 순시하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구휼하였다.
◎ 十年丙辰, 春二月, <孫權>使<胡術>來謁請和, 辭意甚慢, 禮物且薄. 上怒, 謂<胡術>曰; "爾王事<淵>甚厚, 而何事朕甚薄乎." <術>曰; "禮, 數因風波入海, 辭意與<淵>相同." 上曰; "年前<旦彊>給朕汝復, 爾邪." 命, 下獄治之. 太輔<息夫>興疾入諫, 乃置<玄菟>監之. <術>逃走, 爲<淵>所殺. 其徒<周仙>, 年少能通吾語, 爲<朱通>家臣, 太輔<穆臣>亦諫而免. 夏五月, 上觀稼于西郊, 親採鍾麥. <桶>皇后特寵自恣, 上復召<鱣>后入宮. <鱣>上書哀乞曰; "臣妾身多水氣, 恐又生女, 不敢再配聖躬." 上曰; "朕夢見先帝責我曰女勝於子無爭位之危. 朕今覺之. 其勿憂而入."
<索頭><涉眞>殂, <應鹿>立. <朱>妃生<洙>公主. <羅><助賁>, 二月, 取<骨火國>爲郡, 以其主<阿音夫>爲老客, 賜宅庄安之. 時, 朝{遂}以萬一之備, 割<竹嶺>以南之地, 築城池, 故<助賁>知勢, 不得已, 而停北拒而南下者也. <濟><古爾>, 十月, 獵西海大島(身彌島), {千}射鹿四十.
○ 10년{단기2569년/AD236}병진, 춘2월, <손권>의 사신 <호술>이 찾아와 배알하여 화친을 청하였는데, 그 언사가 심히 방자하고 예물 또한 야박하기에, 상이 화가 나서 <호술>에게 이르길; "너희 왕이 <공손연>은 끔찍하게 섬기면서, 짐을 섬기는 것은 이리도 야박한가?"라 하자, <호술>이 "예물은 바다에서 여러 번 풍파를 만났기 때문이며, 감사하는 뜻은 <공손연>에게 함과 하나같습니다."라고 답하자, 상이 이르길; "지난해에 <단강>이 내게 가져 온 것은 너의 두 배나 됐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라 하고는, "옥에 가두어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태보 <식부>가 병든 몸으로 들어와서 간언하니, <현토>를 시켜 <호술>을 지키게 하였다. <호술>이 도주하다가 <공손연>에게 잡혀서 죽었다. 함께 왔던 <주선>은 우리말에 능통하여 <주통>이 가신으로 삼았는데, 태보 <목신>이 간언하기에 풀어주었다. 하5월, 상이 서쪽 교외로 나가서 농사를 살피고, 친히 보리종자도 거두었다. <통>황후가 자기의 자태를 지독하게 뽐내어서, 상이 다시금 <전>후를 입궁하라고 불렀더니, <전>후가 글을 올려 애걸하기를 "소첩의 몸은 수기(水氣)가 많아서 또 딸을 낳을까 두렵습니다."라 하였고, 상이 다시 이르길; "짐이 꿈에 선제를 뵈었더니, 짐을 책망하여 이르시길 '딸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제위를 다툴 위험이 없다.'라고 하시었소. 짐이 그것을 깨달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시오."라고 하였다.
<색두>의 <섭진>이 죽어 <응록>이 섰다. <주>비가 <수>공주를 낳았다. <신라>는 <조분>이 2월에 <골화국>을 취하여 군으로 만들고, <골화국>의 주인이었던 <아음부>는 노객으로 삼아 집과 땅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였다. 이 때, 조정이 만일을 대비하여 <죽령>이남의 땅에 성을 쌓고 물구덩이를 팠는데, 이는 <조분>이 자기의 세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부득이 북쪽에 요새를 두어 남으로 내려오려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었다. <백제>의 <고이>가 10월에 서해의 큰 섬(신미도)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천>이 사슴 40마리를 쏘았다.
◎ 十一年丁巳, 春三月, <鱣>皇后生<獐>公主, 泣而不食, 上亦泣.
<劉昕鮮>·<于嗣>·<吳林>等侵<帶方>·<樂浪>等小國, 與<淵>表裡. <淵>自稱<燕>王而驕慢, 上乃遣使如<魏>議討<淵>之計. <魏>使<毌丘儉>爲<幽州>刺史, 與<鮮卑>·<烏桓>等屯<遼隊>徵<淵>. <淵>出擊破之. <毌>欲再戰, 以大雨十日, <遼水>大漲, 故恐有失, 而引還<右北平>. 我軍乘虛, 襲取<玄菟>西地百余里. 太輔<穆臣>薨, 年七十七. <息夫>代之, <能>左輔.
○ 11년{단기2570년/AD237}정사, 춘3월, <전>황후가 <장>공주를 낳고 눈물 흘리며 먹기를 피하니, 상도 또한 눈물을 흘렸다.
<류흔선>·<우사>·<오림> 등이 <공손연>과는 표리와 같은 <대방>·<낙랑> 등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였다. <공손연>이 스스로 <연>왕이라 칭하며 교만하여 있자, 상이 <위>에 사신을 보내 <공손연>의 계략을 토벌하자고 상의하였다. <위>가 <관구검>을 <유주>자사로 삼으니, <선비>·<오손>과 함께 <요대>에 진을 치고서는 <공손연>을 응징하려고 하였다. <공손연>이 (먼저) 나와서 <관구검>을 격파하였다. <관구검>은 다시 싸우고 싶었으나, 큰비가 열흘이나 내려서 <요수>가 넘실대니, 군사를 잃을까 겁나서 <우북평>으로 철수하였다. 우리 군대는 이 허실을 틈타서 <현토>의 서쪽 땅 백 여리를 취하였다. 태보 <목신>이 나이 77살에 죽으니, <식부>가 이를 대신하고, <목능>이 좌보가 되었다.
◎ 十二年戊午, 春正月, 大雪五日. 太輔<息夫>妻<玉陽>公主薨, 後二日, <息夫>亦薨, 年七十. 有渠父之風, 勤儉自守, 戒子女, 能直諫, 常言太后于政人, 以爲賢相. 上與<鱣>皇后臨吊葬, 以大王之禮, 以<穆萇>女<蠶>爲內儀小后. <萇>, <能>之子也.
<司馬懿>遣使來請共滅<淵>賊. 乃命<朱希>, 爲主簿大加, 引五千兵, 出<南蘇>, 觀望聲援. 八月, 滅<淵>, <懿>背約驕慢, 上怒絶之.
<濟><古爾>, 正月, 設壇祀天地, 用鼓吹. 二月, 畋于<釜山(在平壤北)>五旬, 乃返. 四月, 震, 王宮門柱, 黃龍自其門飛出.
○ 12년{단기2571년/AD238}무오, 춘정월, 연달아 닷새 동안 많은 눈이 내렸다. 태보 <식부>의 처 <옥양>공주가 죽으니, 이틀 후에 <식부>도 나이 70에 죽었다. 도량이 넓어 아버지 같은 기풍이 있었고, 근검하여 자신을 지켰고, 자녀를 잘 가르쳤으며, 직간하기를 잘 하였었고, 정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항상 태후를 부탁하였다. 이로 인하여 현명한 재상이 되었다. 상과 <전>황후가 참석하여 대왕의 예로 장사하였고, <목장>의 딸 <잠>을 내의 소후로 삼았다. <장>은 <목능>의 아들이다.
<사마의>가 사신을 보내 함께 <연>을 멸하자고 청하였다. 이에 상은 <주희>에게 명하여 주부대가로서 5천병을 이끌고 <남소>에서 출병하여 관망하며 성원하게 하였다. 8월에 <연>이 멸망하였는데, <사마의>가 약속을 저버리고 교만하여 있으니, 상이 <사마의>와의 관계를 끊었다.
<백제>의 <고이>가 정월에는 제단을 쌓고 천지에 제사하였는데, 북과 나발을 사용하였으며, 2월에는 <부산(재평양북)>에서 50일 동안 사냥하다가 돌아갔고, 4월에는 그 땅에 지진이 있었는데, 왕궁의 문기둥에서 황룡이 날라나왔다.
◎ 十三年己未, 春正月, 宴宗室公卿之老母于太后宮. 親率伶人, 奏歌舞滑稽, 以爲太后. 親練軍士于<西川>.
<羅>使至獻玉石, 求<竹嶺>之地, 不許. <濟>自正月不雨, 至五月而雨. <魏><曹叡>死, <司馬懿>執政.
○ 13년{단기2572년/AD239}기미, 춘정월, 태후의 궁에서 종실과 공경의 노모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상이 친히 재인들을 거느리고 악기도 타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익살도 부려서 태후를 위하고자 하였다. 친히 <서천>에서 군사를 조련하였다.
<신라>의 사신이 와서 옥돌을 바치며 <죽령> 땅을 얻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백제>에서는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더니만 5월이 되어 비가 내렸다. <위>의 <조예>가 죽으니, <사마의>가 정사를 거머쥐었다.
◎ 十四年庚申, 春正月, 多雪, 猪獐之獲甚多. 行先農祭于內城北郊. 二月, <鱣>皇后生<龜>公主, 上泣. 三月, 太后生<屈>太子, 上喜, 太后笑曰; "陛下, 喜怒不形, 近頗異前泣. 女而喜, 弟何也." 上曰; "<于>太后生時, 未嘗弛念, 今頗放心. 是臣之短也. 當改之."
<帶方>人<弓遵>自稱<魏>太守, 略邊通<羅>·<倭>, 生梗甚多. 命<於灌>率輯<臣智>等, 擊殺之.
<濟><古爾>, 侵<羅>西邊, 四月, 以<眞忠>爲左將軍, 委其內外兵馬. 七月, 大閱, 于<石川(今普通江)>, 有雙雁起於川上, <古爾>射之皆中, 自以爲神, 而人以爲不吉.
冬十二月, <然弗宮>奉禮<椽葉>生子<若友>. 上夢見白龍入, <然弗>太子之懷. 心常異之, 至是, 白龍果現于<溫湯>, 而<若友>生. <葉况>之女, 其母<尊>公主, 上之胞妹也. 時, 年十四. 上大喜之, 親幸<溫湯>, 賜衣, 以駙馬<椽况>爲中畏大夫, 以慰太后之心. <况>, 太后之姪, <尙>太后之女, <于>太后時, 全家避于<壅口>, 至是, 始大赫.
○ 14년{단기2573년/AD240}경신, 춘정월, 눈이 많이 내려, 잡힌 돼지와 노루가 엄청 많았다. 내성 북쪽 교외에서 선농제를 지냈다. 2월, <전>황후가 <귀>공주를 낳으니, 상이 눈물을 흘렸다. 3월 태후가 <굴>태자를 낳으니 상이 기뻐하자, 태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폐하는 기쁘거나 노하여도 표시내지 않으시더니만, 근래에는 파안하시니 이전에 눈물 흘리던 것과는 다르십니다. 이 여인이 기쁘니 동생이야 어떠하겠습니까?"라 하니, 상 왈; "<우>태후가 아이를 낳을 땐 생각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었으나, 지금은 파안하여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신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연히 이를 고치겠습니다."라 하였다.
<대방>사람 <궁준>이 스스로 <위>의 태수를 칭하면서 변방을 침략하고, <신라> 및 <왜>와 소통하여, 많은 근심거리가 생겼다. <어관>에게 명을 내리니, <신지> 등을 이끌고 나가서 이를 쳐 죽였다.
<백제>의 <고이>가 <신라>의 서쪽 변방을 쳤더니, 4월에 <진충>이 좌장군이 되어서 내외 병마의 일을 맡았다. 7월에 {<고이>가} <석천(금보통강)>에서 군대를 대대적으로 사열하였는데, {그때} <석천>의 위에서 기러기 한 쌍이 날아오르니, <고이>가 쏘아서 모두를 맞추고는, 자신을 신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일로 여겼다.
동12월, <연불궁>의 봉례인 <연엽>이 아들 <약우>를 낳았다. 상이 꿈에 백룡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연불>태자를 마음에 품은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늘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 지금에 이르러 백룡이 <온탕>에서 나타나 <약우>로 태어났다. <연엽>은 <연황>의 딸이며, 상의 동복 여동생인 <존>공주의 딸이다. <연엽>의 나이는 이때 열 넷이었다. 상이 이를 크게 기뻐하며, 친히 <온탕>으로 행차하여, 옷을 하사하고는, 부마 <연황>을 중외대부로 삼아 태후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연황>은 <상>태후의 조카인 태후의 조카인데, <우>태후 시절엔 모든 가족이 <옹구>로 피하여 살다가, 이때가 되어 처지가 크게 바뀐 것이었다.
◎ 十五年辛酉, 春正月, 太后不豫, 廢朝錄人, 親行祈禱, 命祀天壇·地神·名山大川. 三月, 快差大宴<椽>氏·<明臨>氏之族.
夏五月, 上與太后·皇后·<然弗>太子如<卒本>謁廟陵, 告王孫, 觀麥田, 行鳩祭. 秋八月, 封<葉>氏爲<然弗>太子妃, 賜金·銀·轎·綵叚{段}·無數, 以<尊>公主爲內儀小后, 加其田宅·奴婢. <禾>妃生<洛>公主
○ 15년{단기2574년/AD241}신유, 춘정월, 태후가 위독하여 조정을 폐하고, 죄수를 다시 살폈으며, 천단과 지신 및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라 명하였다. 3월에 쾌차하니, <연>씨와 <명림>씨의 족당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다. 하5월, 상은 태후·황후·<연불>태자와 더불어 <졸본>으로 가서 사당과 무덤을 배알하여, 왕손이 생겼음을 고하고는, 보리밭을 둘러보고 {보리종자를 물어다 준} 비둘기에게 제사하였다. 추8월, <엽>씨에게는, <연불>태자비를 봉하고, 금·은·교·채단을 셀 수 없을 만큼 하사하였다. <존>공주에게는 내의 소후로 높여주고, 전택과 노비를 더하여 주었다. <화>비가 <락>공주를 낳았다.
◎ 十六年壬戌, 春正月, 左輔<穆能>以病免. 夏五月, 上親率五道將軍, <方丑>·<須古>·<朱希>·<絃>·<穆萇>等, 引兵十万, 攻<西安平>, 拔之. 是謂<安平大戰>. 初<懿>拔<遼東>, 而移其主力于此, 欲東至. 是其設破壤, 生口珍寶, 皆歸于我. 時, 左輔<穆能>養城南, 與大評得來力, 疾, 入諫曰; "窮兵, 則引禍, 不如養力, 而待時." 上苦其不退曰; "國老只可養疾, 撫孫可也. 何預征伐如是耶." 命進肉羹而飮之, <能>不飮曰; "小臣亦皇家之裔, 安可使陛下陷危. 而不諫如欲出兵. 請殺臣." 上怒爲<蠶>后曰; "汝祖害我." <蠶>恐失寵, 强<能>而出, <能>疾劇, 而薨. 家人不敢葬. 上自<安平>歸, 大宴君臣曰; "如此快事. 恨不得與<穆>老同." 上與<蠶>后親葬<能>, 以國公太輔之禮曰; "汝祖, 雖我不知事忠, 則忠矣." 時, <蠶>后最有寵生皇子, 故<明臨>氏<椽>氏等頗{顔}有妬色.
<羅><助賁>, 年登, 其<古陀郡>生嘉禾. <濟><古爾>, 二月, 開稻田于南澤. 四月, <古爾>以其叔父<質>爲右輔, <質>忠敎謀事無失. 七月, <古爾>出西門, 觀射.
○ 16년{단기2575년/AD242}임술, 춘정월, 좌보 <목능>이 병으로 면직되었다. 하5월, 상이 친히 5도의 장군 <방축>·<수고>·<주희>·<현>·<목장> 등을 거느리고 십만 병을 이끌어 <서안평>을 쳐서 멸하였다. 이를 <안평재전>이라고 한다. 초에 <사마의>가 <요동>을 빼앗고 거기로 자신의 주력을 옮겨 동쪽을 도모하려 하였었다. 지금 그 땅이 어지러워지니 백성들과 진보가 모두 우리 것이 되었다. 그 시절, 좌보 <목능>이 성남을 돌봄에 있어, 대평{이름 모르는 사람이나 "대평"이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과 함께 가서 힘쓰다가 병이 들었는데, 들어와서 간언하기를; "병력이 궁핍하면 결국 화를 불러들이게 되니, 힘을 키워야만 합니다. 때를 기다리지요."라 하였는데, 상이 그 말을 고까워하며 물러서지 않고 대꾸하기를; "노인네께서는 병이나 키우시고, 손자나 어루만지시지, 무슨 까닭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와서} 정벌을 그리 예단하십니까?"라 하고는, "고깃국이나 {한 그릇} 올려드려라!" 하고 명하였다. <목능>은 고깃국을 마시지 않으며 말하길; "소신 역시 황가의 후손이인데, 가만히 있다가 폐하를 위험에 빠지시게 하겠습니까. 간언하지 않는 것은 출병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신을 죽여주십시오."라 하였다. 이에 상이 노하여 <잠>후에게 말하길; "당신의 할아버지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라 말하니, <잠>후는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목능>을 억지로 나가게 하였더니, <목능>은 병이 극심하여져 죽었다. 집안의 식구들은 감히 장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이 <안평>에서 돌아와 군신들에게 큰 잔치를 벌여주고 이르기를; "여차하여 일이 잘 풀렸소. <목>씨 노인께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소."라 하였다. 상은 <잠>후와 함께 <목능>을 국공 태보의 예를 갖추어 장사하고 이르길; "{그 때는 비록} 당신의 할아버지가 나에 충성하는 것을 몰랐었지만, 그것이 바로 충성이었소."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잠>후는 총애를 가장 많이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명림>씨와 <연>씨의 얼굴에는 질투의 빛이 있었다.
<신라>의 <조분>의 땅에서는 곡식이 잘 여물었고, <고타군>에서는 좋은 벼가 생겼다. <백제>의 <고이>는 2월에 <남택> {또는 남쪽의 습한 땅}에서 벼농사를 시작하였고, 4월에는 <고이>가 숙부 <질>을 우보로 삼았더니, <질>은 실수하지 않게 일을 꾸미는 것을 충성되게 가르쳤고, 7월에는 서문 밖에서 활쏘기 하는 것을 참관하였다.
◎ 十七年癸亥, 春正月, 立<然弗>太子爲正胤. 以<葉>氏爲正胤妃, <尊>公主爲正胤淑儀. <明臨鱣>皇后爲天宮大皇后, 還<龍岩>·<桓那>·<虎川>之地爲湯沐. 時, <鱣>后生<棟>太子, 故上愛后殊, 甚寵復如舊. 以<勝>公主爲<奢句>妻. <桶>公主生<于漱>女<五斗>于<西川>離宮, 是爲<西川帝>愛后<五斗星>后也. 草, <西川>鯉宅女夢得娠, 故曰<五斗>.
<古爾>, 正月, 設壇祀天地山川. 上曰; "<古爾>欺人孤兒. 天其{歃}歟." <鱣>后曰; "至誠則感天. 何愧於前, 而棄於後." 上曰; "善." <倭>獻美女錦{緞}, 以請假路攻<新羅>, 不許.
○ 17년{단기2576년/AD243}계해, 춘정월, <연불>태자를 정윤으로 세웠다. <엽>씨를 정윤비로 하고, <존>공주는 정윤숙위로 하였다. <명림전>황후는 천궁대황후로 하고, <용암>·<환나>·<호천>의 땅을 돌려주어 탕목으로 하게 했다. 이때, <전>후가 <동>태자를 낳으니, 상이 후를 유별나게 아껴주어, 깊은 총애가 옛날과 같아졌다. <승>공주를 <사구>의 처로 삼았다. <통>공주가 <우수>의 딸 <오두>를 <서천>의 이궁에서 낳았는데, 이 <오두>가 {훗날에} <서천제>의 애후인 <오두성>후가 된다.
<고이>가 정월에 제단을 쌓고 천지산천에 제사하였는데, 상이 말하길; "<고이>는 외로운 아이를 속였다. 하늘이 잘도 받아 마시겠다."라 하니, <전>후가 말하길;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할 것입니다. 어찌 앞서 한 일이 부끄럽다 하여 뒤의 일까지 내버려두겠습니까?"라 하니, 상이 "그렇겠다."라 하였다. <왜>가 미녀와 비단을 바치고는 <신라>를 공격할 길을 허락하여 달라고 청하니, 들어주지 않았다.
◎ 十八年甲子, 春三月, 微行至<酒桶村>, 見採薪女<淵>氏之美, 納于後宮, 爲宝儀, 奉禮. 群臣諫之, 不聽. 上欲知臣民之隱密, 往往微行于公卿胥吏之家. 眷其妻女, 又訪民戶亦然, 故衆望蘇然. 七月, 毌丘儉入寇<玄菟>, 上將步騎二万逆擊于<沸流水(兆兒{皃}河)>上, 大破之, 斬首三千余級. 是謂<沸水大戰>.
<羅><助賁>, 正月, 以伊湌<于老>爲舒弗邯兼知兵馬使. 以我割其<竹岺>以南之地爲短. 此本<樂浪>·<卒本>之地, 皆是我土也. <羅>·<濟>之浸蝕此壤, 盖因邦家西進. 誠{極}可憎之事也.
○ 18년{단기2577년/AD244}갑자, 춘3월, 미행하여 <주통촌>에 이르러서 땔나무를 하는 <연>씨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후궁으로 맞아들여서 <보의>로 삼고 예를 올렸더니, 신하들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상은 신하와 백성들의 은밀한 곳을 알고 싶어서, 왕왕 공경이나 서리들의 집을 방문하여 처와 딸들을 둘러보고, 백성들의 집 또한 그리 하였더니, 많은 이들이 집집마다 꽃이 피고 넉넉하여지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7월에 <관구검>이 <현토>에 쳐들어와 노략질 하니, 상이 보기 2만 병을 이끌고 나아가서 <비류수(조아{모}하)>의 위쪽에서 이를 크게 쳐부수고, 3천여 급을 베었다. 이를 <비수대전>이라 한다
<신라>의 <조분>이 정월에 이찬 <우로>를 서불감 겸 지병마사로 삼았다. 우리가 <죽령>이남의 땅을 잠시 차지하였었다. 이 땅은 본래 <낙랑>과 <졸본>의 땅이었었다. <신라>와 <백제>가 이 땅을 먹어들어 왔는데, 대략 그 나라의 사람들이 서쪽으로 퍼져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지극히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 十九年乙丑, 春, 巡東海觀魚于達<明淵>, 微行至<九極村>, 納其長者女<麥>氏, 顔色絶美, 容儀端雅窈窕. 上大可之, 以爲茶儀尙禮, 賜田宅奴婢, 爵其兄弟. <朱>妃生<朱玉>太子.
冬十月, 命<穆萇>·<朱全>伐<羅><長岺>·<蛙峴>取之, <于老>敗走<馬頭柵>躬燒柴火慰其傷卒, <朱全>欲追之, <萇>曰; "知止則無殆, 窮狗莫逐." <于老>之燒卒<正>, 欲見窮而欲反, 無隨其計可也.
○ 19년{단기2578년/AD245}을축, 봄, 동해를 순시하며 고기 잡는 것을 돌아보다 <명연>에 이르러서는, <구극촌>에 미행하여 촌장의 딸 <맥>씨를 맞아들였는데, 얼굴이 기막히게 예쁘고, 모습이 단아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웠다. 상이 크게 좋아하여, 상시에 차를 따르는 궁인으로 삼고, 전택과 노비를 내리고는, 형제들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주>비가 <주옥>태자를 낳았다.
동10월에, <목장>과 <주전>에게 명하여 <신라>의 <장령>과 <와현>을 쳐서 빼앗으니, <우로>는 <마두책>으로 쫓겨 가서 싸리나무를 불 놓아 부상한 졸병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주전>이 이들을 추격하려 하니, <목장>이 말하길;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은 것이니, 끝까지 개를 몰아대는 게 아니다."고 하였다. 불 놓던 <우로>의 병졸 <정>이 끝장을 보고 싶어 반격하려 하였으나, {<우로>가} 그 계획을 따르지 않았음이 옳았다.
◎ 十九{二十}年丙寅, 春正月, 詔曰; "兵者, 國之元氣也. 國家有事於南西, 涵養元氣, 凡有勇義之士, 通其一技一藝者, 皆詣主簿試, 才無欠一人." 二月, <鱣>皇后生<德>公主. 秋八月, 上與<朱>后·<葉>妃·<麥>妃等閱兵于<西川>而畋<杜訥(伯都訥之北界)之原>, 忽聞<毌>賊迂回而來急. <于根>等迎戰, 我寡被衆, 且接其銳鋒, 頗有難色. 上乃抄鐵騎五千衝其陣於<梁口>之谷(今大□)大破之, 獲其兵仗馬匹無數. 上與<朱>后, 受<俘母>之大軍, 又至<于根>, 戰死. <母>方陣而前勢如破竹, 又聞南路失守, 且挾后妃, 不得如意, 乃引勁騎千余而退于<鴨淥>之原(今哈爾濱). <朱全>軍亦敗, 死者萬人. 上東遷<壅口>. 十月, <毌>入都城, 掠民收宝, 上聞之痛哭曰;"恨不聽<穆能>之言." <麥>妃請奔其鄕, 乃至<竹嶺>, 軍士殆盡.
○ 20년{단기2579년/AD246}병인, 춘정월, 조서를 내려 알리길: "병사는 국가의 으뜸이 되는 기운이오. 나라의 서남쪽에 일이 있어, 으뜸이 되는 기운을 함양하려 하니, 용의지사들 중에서 기(技)와 예(藝)에 하나라도 능통한 이들이라면 모두들 주부를 뽑는 시험에 응하시오.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흠결이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하오."라 하였다. 2월, <전>황후가 <덕>공주를 낳았다. 추8월에 상이 <주>후·<엽>비·<맥>비 등을 데리고 <서천>으로 가서 병사를 사열하고, <두눌원(백도눌지북계)>에서 사냥을 하다가, 돌연히 <관>적이 멀리 돌아서 급히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근>이 맞아 싸웠으나, 우리는 수가 적고 저쪽은 수가 많았고, 막상 그들의 예봉을 마주하니, 자못 어려워 보였다. 상이 철기 5천을 대충 꾸려서 그들의 진영을 <양구곡(今大□)>에서 쳐 받아 크게 이겼고, 노획한 병장과 마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상은 <주>후와 함께 <부모>가 끌고 온 대군과 합친 후에 <우근>에게로 갔더니, 이미 싸우다 죽었었다. <부모>가 방진을 쳐서 파죽지세로 밀고 나아가다가, 남쪽의 통로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또다시 듣자, 후비들을 데리고 있는데다가 상황이 녹녹하지 않아 날랜 기병 천여 기와 함께 <압록원>으로 물러났다. <주전>의 군대 역시 패하여, 죽은 이가 만 명이나 되었다. 상이 동쪽의 <옹구>로 옮겼다. 10월, <관구검>이 도성에 들어와 백성을 노략하고 보물들을 챙겼다는 소식을 듣자 상이 통곡하며, <목능>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맥>비가 자기의 친정 동네로 피하기를 청하였다. <죽령>에 이르렀더니, 군사의 거의 모두는 죽어 있었다.
◎ 東部于台<密友>募士, 力戰. 上間行入山谷中, 聚散卒, 自衛百姓, 素慕聖德, 皆願死戰. <王頎>追兵, 與田民山尺, 相持, 敵衆我寡, 且無寸鐵勢, 其危急. 廚使<紐由>詐降, 饋<頎>隱刀刺殺之, 斬其幕將數人, 賊大亂. 上遂督民兵, 大破其衆. 時, <毌>賊己退. <穆萇>來迎上曰; "朕不聽汝父之諫而至此" 追贈<能>太輔安國公, 得來大主簿<萇>. 中畏大夫<萇>, 初, 娶<山上>女<玉川>公主, 至是, 又以上女<術>公主妻之, <于術>出也. 追贈<紐由>爲東部大使者, 賜其子<多優>繼之. 賜<密友>, <巨谷>·<靑木谷>. 賜<屋句>, <鴨淥>·<杜訥河原>. <朱>妃多産, 謹守, 故進封爲皇后.
<濟><古爾>, 夏大旱, 無麥. <毌>賊之亂, <樂浪><劉茂>·<帶方><王遵>亦自南入助<毌>. <古爾>乘其虛, 襲二國多掠邊民.
<羅><助賁>, 十月, 東南有白氣如匹練. 十一月, 地震其都.
○ 동부의 우태 <밀우>는 사람들을 모아서 힘써 싸웠다. 상은 산곡으로 숨어들어 흩어진 군졸을 모아 스스로 백성을 지켰더니, 평소에 상의 성덕을 흠모하였기에 모두들 죽기로 싸우길 원하였다. <왕기>의 추격군대가 들판에서 농사짓거나 산중에서 사는 사람들이 서로 대적하고 있었는데, 적은 수가 많고 우리 쪽은 수가 적을뿐더러 촌철지세도 없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창간 관리 <뉴유>가 거짓으로 항복하고는, <왕기>를 음식을 만들고 칼을 숨겨서 베어 죽이고, 막장도 여러 명을 목을 베었더니, 적들은 어수선하여졌다. 상이 백성과 병사를 독려하여 <왕기>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이때, <관구검> 군대는 이미 물러나 있었다. <목장>이 와서 상을 맞이하니, 상이 "짐이 자네 부친의 말을 듣지 않아 이리 되었다."하고는, <목능>을 태보 국태공으로 추증하고는, 찾아온 대부부 <목장>도 {자신의 사람으로} 맞아들였다. 중외대부 <목장>은 이전에 <산상>의 딸 <옥천>공주에게 장가를 들었었고, 지금에 와서는 또 <우술>이 낳은 상의 딸 <술>공주를 처로 삼게 되었다. <뉴유>에게는 동부대사자를 추증하고, 그의 <다우>가 동부대사자의 자리를 잇게 하였고, <밀우>에게는 <거곡>과 <청목곡>의 땅을 하사하고, <옥구>에게는 <압록>과 <두눌하원>의 땅을 하사하였다. <주>비는 자식을 많이 낳고, 근신하여 자신을 지키었다 하여 황후로 봉하였다.
<백제> <고이>의 땅에서는 여름이 가물어서 보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관구검>이 난리를 피우는 동안 <낙랑>의 <유무>와 <대방>의 <왕준>이 남쪽으로부터 쳐들어와 <관구검>을 도왔는데, 그 허를 틈타서 그 두 나라를 기습하여 변방과 백성을 노략한 것이 많았다.
<신라> <조분>의 땅에서는, 10월에는 동남쪽 땅에서는 비단 필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허연 기운이 있었고, 11월에는 도읍에 지진이 있었다.
◎ 二十一年丁卯, 春二月, 移都<平壤>. 七月, 太子妃<葉>氏生子<逸友>. 宝儀奉禮<淵>氏生<淵>太子.
<羅><助賁>, 五月, 殂, 取乘雙魚而上天, 母弟<沾解>立. 七月, <沾解>謁其始祖廟, 封父<骨正>爲<世神葛文王>.
<濟><古爾>, 正月, 祭天地於南壇. 三月, <眞忠>右輔, <直勿>左將知兵馬使.
○ 21년{단기2580년/AD247}정묘, 춘2월,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7월, 태자비 <엽>씨가 아들 <일우>를 낳았다. 보의봉례 <연>씨가 <연>태자를 낳았다.
<신라>에서는 <조분>이 5월에 죽었는데, 두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타고 승천하였고, <조분> 모친{옥모}의 남동생 <첨해>가 섰다. 7월에는 <첨해>가 시조의 사당을 배알하고, 부친 <골정>을 <세신갈문왕>으로 봉하였다.
<백제>에서는 <고이>가 정월에 남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였고, 3월엔 <진충>이 우보가 되고, <직물>이 좌장 지병마사가 되었다.
◎ 二十二年戊辰, 春二月, 與<新羅>定界和親. 以<葉>氏爲內儀小后, <麥>氏**{爲丹儀小后, <淵>氏爲恭儀小后, <貫那>氏爲宝儀小后, <蠶>氏爲}**<地宮>大皇后. 上遭變以來, 倦於政事, 唯以遊獵浸色爲事, 命太子攝行政事, 命<要>公主爲太子妃, <酒>后出也, 年才十二. 秋七月, <酒桶>太后, 以(暑)痢, 崩, 春秋六十. 后, <酒桶>村長<椽栢>之女也. 其母<於>氏夢見槐王持金尺入{懷}而生后, 豐美有德. <山上>微行通之生聖窮, 及爲太后, 多亂政事, 淫穢頗失前望. 葬于<酒桶村>後合于<東川陵>, 皆其遺志也. <朱>后生子<朱城>太子. 九月, 上畋于<狐川>, 謁<酒桶陵>, 有感而疾作不能言而崩, 葬于<東川(烏)壤之岡(今海浪河黃崗子界)>. 先是, 上與<酒>后占此地, 至是, 同壙異室. <淵>后赴燒而殉, <鱣>皇后·<蠶>后·<麥>氏·<葉>氏等, 皆欲赴火號泣. <擗踊>太子與<桶>公主·<要>公主, 扶諸后救之然. 朝士·後宮·民女之殉于陵前者不絶, 掩柴相連, 人以爲<柴原>, 百姓歌之曰多情天子化爲龍, 陵前掩柴總天花.
○ 22년{단기2581년/AD248}무진, 춘2월, <신라>와 경계를 정하고 화친하였다. <엽>씨를 내의소후로 삼고, <맥>씨는 **{단의소후로, <연>씨는 공의소후로, <관나>씨는 보의소후로, <잠>씨는}** <지궁>대황후로 삼았다. 상은 변{<관구검>의 침입}을 당한 이후로 정사에 권태를 느끼고 오로지 떠돌며 사냥하는 것과 여색에 빠지길 일로 삼고, 태자에게 정사를 맡아보라고 명하였으며, <요>공주에게는 태자비가 되라고 명하였다. <요>공주는 <주>후의 소생이고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추7월에 <주통>후가 더위와 설사병으로 춘추 67세에 죽었다. <주통>후는 <주통>촌장 <연백>의 딸이다. 모친 <어>씨가 꿈속에서 괴왕이 금자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나서 태기가 있어 낳았으며, 체구가 풍족하고 아름다웠으며 덕스러웠다. <산상>이 미행하여 그 훌륭한 분을 낳았는데 나중에 태후가 되었는데, 정사를 많이 어지럽혔고, 음란하고 몸을 함부로 놀리고 편벽되어 장래를 저버렸었다. <주통촌> 뒤의 <동천릉>에 함께 장사하였는데, <주통>후가 남긴 뜻에 따른 것이었다. <주>후가 아들 <주성>태자를 낳았다. 9월에 상이 <호천>에서 사냥하고, <주통릉>을 배알하고는 병이 들어 말도 못하게 되어서 죽었는데, <동천(오)양지강(금해랑하황강자계)>에 장사하였다. 이전에 상이 <주>후와 함께 이곳을 점지하였었는데, 지금 한 구덩이에 서로 다른 방을 가지게 되었다. <연>후가 쫓아와서 몸에 불 지르고 죽었고, <전>황후·<잠>후·<맥>씨·<염>씨들도 모두 불 곁으로 와서 울부짖었다. <벽용>태자가 <통>공주·<요>공주와 함께 여러 후들을 끄집어내어 목숨을 구하게 하였다고 한다. 조정의 사람들과 후궁들 그리고 민간의 여자들이 무덤 앞에서 순사하는 것이 끊이지 않으니, 싸리나무로 둘러쳐서 막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곳을 <시원>이라 불렀고, 백성들은 노래하기를; "정이 많았던 천자가 용이 되니, 무덤 앞 싸리울엔 하늘 꽃이 만발하였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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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읍니다.
똑 같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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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정말 ‘동양대제기’는 길군요. 참으로 힘든 일을 하셨습니다. 1. 이년무신(二年戊申)조(條)의 ** ~ ** 문장에 대하여. 원문(原文) ‘**十七朔而生, 故{奢}月如<勾>, 而生故曰<勾>.**’에 별표를 한 것은 아마도 사천(史穿)선생께서 이미 해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미심쩍음이 있어서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리(定理)를 고대 아시아의 구장산술(九章算術), 주비산경등에서는 구(勾),-고(股),- 현(弦)이라고 표현합니다. 수학적 비율로는 3 : 4 : 5가 됩니다. 여기서 구(勾)는 ‘무릅에서 장단지를 거쳐 발가락 끝’까지 ‘ㄱ’자 모양으로 된 것을 뜻합니다. 고(股)는 넓적다리(허벅지)이고, 현은 그 사이를 뜻합니다. 그런데 사(奢)는 ‘넘치다’라는 뜻이 있어서 17삭(朔)에 걸쳐서 나온 사람을 설명하는 것에 어울리는 언어입니다. 구(勾)를 쓴 것은 원래 10달 걸리면 ‘장난지’정도의 길이인데, 발길이 만큼 “ 7달 정도 넘쳤다.”는 뜻으로 썼다고 봅니다. “이 7달과 구(勾)를 동일시여기는 것은 북두칠성처럼 생긴 구진(句陳)이란 별자리와 유감(遺憾)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는 ‘고구리(高句麗)의 구(句)에 해당하는 별’로 중시여기고, 구(句)로 안쓴 것은 기휘(忌諱)라고 생각됩니다. 해석(解釋) **17삭 만에 낳았는데, {사}월이 <구>와 같아서, 태어나자 <구>라 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상은 <{사}구>를 지극히 아꼈으며, 많은 진보를 <{사}구>에게 주었다.”로 보면, 더욱더 이런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어옵니다. 해석 자체에 문제는 없고, 단지 해명(解明) - 자료로써만 말씀드립니다. 2. 삼년 을유(三年乙酉) 조(條)에 ‘以扶杜功’의 해석에 대해 이 ‘以扶杜功’은 사직(社稷)을 ‘떠받치고(=부(扶)’, 정변(政變)을 ‘막는 (=두(杜)것’을 합쳐서 설명한 것입니다. 친절하게 설명함이 좋을 듯 합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 <호>는 처음엔 <발기>의 처였다가 후에는 <을파소>의 처가 되었다. 남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고 말 탄 채 활쏘기도 잘하였다. <발기>가 난을 일으키자 큰 뜻으로 지아비와 헤어지고, (**) 사직을 붙들고, 정변(政變)을 막는 (**)공(功)을 세워, 비로 봉함을 받았다. 3. 사년 경술(四年庚戌)조(條)에 **~**에 대하여. 이 기사(記事)에는 먼저 “가을 7월에 국상 <고우루>가 병으로 죽어, 좌부의 우태 <어수(於漱)>가 대신토록 하였는데, 황후의 오빠이고, <향>후의 아들이다.”라는 소개가 나와 있고, 다음과 같은 원문(原文)이 등장합니다. 원문(原文) **俊厚容, 物{勿}有大臣風, 然貪財好色, 頗缺人望. 太輔<于目>難之以退.**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 **재주 있고 친절하고 편안하였으나, 대신의 기풍이 없었으며, 자연히 재산을 탐하고 색을 밝히어서, 인망을 얻지 못하였었다. 태보 <우목>은 <고우루>를 대하기 어려워서 물러났었다.** 이 해석 역시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긴 했지만, 좀 미심쩍다.”고 **~**로 표시한듯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물(物)의 뜻은 유학(儒學)의 사물(四物) - 즉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뜻입니다. 즉 ‘정치(政治) 현장(現場)에서 하는 일’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문(原文)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합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 재주 있고 친절하고 편안하였으며, ‘정치-현장(=물(物)’에서는 대신(大臣)의 풍모가 있었으나, 재산을 탐하고 색(色)을 밝히어서, 인망을 얻지 못하였다. 태보(太輔)인 우목(于目)이 “어렵겠다.”라고 생각해서 퇴진(退陣)시켰다. 주의(注意) 즉 물러난 사람은 ‘고우루’가 아니라 ‘어수(於漱)’라는 것이지요. 4. 육년임자(六年壬子)조(條)의 **~** 에 대해서 원문(原文) **<于>太后薦<蘇太>爲內儀, 太讒, 預物非上子.**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解釋) 2월, **<우>태후가 <소대>를 내의로 삼으라고 천거하였더니, 재물을 맡겼지 아들을 (낳아서) 바치는 것이 아니어서, 크나큰 참소가 일었다.** 이 역시 해석은 하셨지만, “좀 미심쩍다.”라고 생각하시어 별표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관점(觀點) 그런데 태참(太讒)은 ‘미래를 점치는 궁중 예언가’의 직책으로 보입니다. ‘預物非上子’에서 예물(預物)은 ‘미래를 예언(預言)하는 것’이어서, 결국 비상자(非上子) 즉 “애를 못낳는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지요. 내의(內儀)는 임금의 소후(小后)로써 ‘궁중내의 의전(儀典)을 관장하는 황후’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내의(內儀)가 아이를 낳을수 없다.”는 예언은 매우 중요하고, 만약 이 예언이 ㅌ틀릴 경우에는 태참(太讒)은 즉시 파면되는 중대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예언을 했고, 그대로 된 듯합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우 태후가 ‘소태’를 내의(內儀)로 천거했더니, 태참(太讒)이 예언하기를 “아들이 못낳을 것이다.”라고 했다. 5. 팔년 갑인(八年甲寅) 조(條)의 ‘多有力焉.’에 대해 이는 을대곤(乙大昆)에 대한 설명인데,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대로 이나, ‘多有力焉.’의 뜻은 “힘쓰고 많은 일을 해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을대곤>은 <을파소>의 장자로 입조한 지 50년이었는데, 대신의 기풍이 있었고, 공과 사를 혼동하지 않고 큰일을 처결하였고, 큰 옥사도 다스렸으며, (**) 많은 일에 힘을 썼다.(**) 주의(注意) 고구리의 명재상 아들이기 때문에, ‘세력이 많음은 당연하고, 중언부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6. 취록지치(聚鹿之恥)와 사록지환(沙麓之患) ‘8년{단기2567년/AD234}경인’에는 ‘취록지치(聚鹿之恥)’와 ‘사록지환(沙麓之患)’란 용어가 나옵니다. 주(注)를 달아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취록지치(聚鹿之恥)는 ‘사슴과의 수간(獸姦)’을 뜻하고, 사록(沙麓)은 ‘왕비(王妃)가 태어난 곳’을 상징하는 말인데, 일반인들은 생소(生疎)해 하니깐 말입니다. 이 사록(沙麓)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비(妃)인 원후(元后)가 태어난 곳’인데 말이 아름다워서 ‘대개 왕비가 태어난 곳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왕비(王妃)들에 기대인 ‘외척(外戚)의 환(患)’을 뜻한다고 봅니다. 7. 16년 임술(十六年壬戌) 조(條)의 궁병(窮兵)과 “汝祖雖我不知事忠則忠矣.”의 해석에 대해. (사건(事件)의 전개) 이는 ‘동양대제’께서 10만대병을 거느리고, 안평대전(安平大戰)을 일으킬때, 좌보(左輔)목능(穆能)이 들어와 "窮兵則引禍, 不如養力, 而待時."를 하는 것을 사천 선생은 해석하시기를 ---- “들어와서 간언하기를; "궁병하면 화를 불러들이게 되니, 힘을 키움만 같지 못하니, 때를 기다리지요."라 하였는데,” 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궁병(窮兵)이라고 말하면,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들어오서 간언하기를 : “(**)병력이 부족하면(**) 화를 불러들이게 되니, 힘을 키움만 같지 못하니, 때를 기다리지요.”라고 했다. 문제는 이를 들은 ‘동양대제’께서 사천 선생께서 해석하신대로... (심각한 사건 전개과정) 상이 그 말을 고까워하며 물러서지 않고 대꾸하기를; "노인네께서는 병이나 키우시고 손자나 어루만지시지요! 어찌 이렇게 정벌을 예측하실 수 있습니까?"라 하고는, "고깃국이나 올려드려라!" 하고 명하였다. <목능>은 고깃국을 마시지 않으며 말하길; "소신 역시 황가의 후손이인데, 가만히 있다가 폐하를 위험에 빠지시게 하겠습니까. 간언하지 않는 것은 출병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신을 죽여주십시오."라 하였다. 이에 상이 노하여 <잠>후에게 말하길; "당신의 할아버지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라 말하니, <잠>후는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목능>을 억지로 나가게 하였더니, <목능>은 병이 극심하여져 죽었다. (승전(勝戰)후의 ‘동양대제’의 말씀) 문제는 ‘동양대제’께서 승전(勝戰)후에 와서 한 말이 바로 “汝祖雖我不知事忠則忠矣.”입니다. 그런데 이 뜻은------------- 대안해석(代案解釋) “당신의 할아버지께서는 -汝祖- 비록 내가 임금을 진정으로 모시고 충섬함을 몰랐으나, -雖我不知事忠의 뜻임 - 충성심 그 자체였오!!”라고 말씀하셨다. 주의(注意) : 다시 말하면, ‘동양대제’는 우국충정으로 한 말을 고깝게 대하여 좌보(左輔) 목능(穆能)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몹시 미안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신 후에,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대로.... “그리하여 <잠>후는 총애를 가장 많이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명림>씨와 <연>씨의 얼굴에는 질투의 빛이 있었다.”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동양대제’께서 돌아가셨을 때 -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정이 많았던 천자가 용이 되니, 무덤 앞이 싸리울엔 하늘 꽃이 만발하였다."고 하였다.>> 기록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8. 정말 길군요.. 사천 선생님. 정말 이번 ‘동양대제기’는 깁니다. 일단 눈에 띠는 대로, 살펴보았지만, 워낙 긴 글이라서 틈틈이 다시 뜯어보고 혹 질정(質定)할 점이 있으면, 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장정의 해석 - 사천(史穿) 선생이 존경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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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부지런히도 보아주시니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눈이 침침해져서 솜 쉬었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정정토록 하겠읍니다.// 다음 편인 <중천대제기>도 길이가 비슷하고, 좀 뒤에 나오는 <미천대제기>는 <동양대제(중천제)>기의 2.5배쯤 되기에 꽤나 고생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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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2년 무신(二年戊申) 조(條)의 ‘**十七朔而生, 故奢月如<勾>, 而生故曰<勾>.** 上極愛之, 珍寶多與之.’의 해석을 과감히 다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 : **17삭{여덟달 반} 만에 낳았는데, 넉넉하게 보아 준 뱃속에서 걸린 달 수 <구{아홉}>와 같아서, 태어나자 <구>라 이름 하였다.** (재탐색(再探索)을 해본 결과) 1. ‘1삭(朔)=1달’이 정확합니다. 좌계는 상식적으로 삭(朔)하게 되면, 그 앞에 숫자를 붙여서 ‘~달’로 나타내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십삭(十朔)이 지나서 출산(出産)을 하고....”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17%2=8.5’란 계산을 하신 것 같아서, “2삭(朔)이 한 달인가?!”하는 의아심이 들어서 다시 천문(天文)관계 서적을 살펴보았습니다. ‘1삭(朔)=1달’이 맞습니다. 2. 달의 모양새는 회(晦)·삭(朔)·현(弦)·망(望)로 구분된다. 그러면서, 달(月)에 대한 표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달의 모양새가 ‘그믐달’을 회(晦)라 칭하고, ‘초생달’을 삭(朔)이라 칭하고, ‘반달’을 현(弦)이라고 칭하는데, 상현(上弦)달과 하현(下弦)달로 구분해주고, ‘보름달’을 망(望)이라고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3. 구(勾)의 정확한 의미 = ‘갈고리’모양의 초생달 문제는 ‘2년 무신(二年戊申)’ 조(條)의 ‘17삭(朔)’은 ‘17달’이란 기간(期間)을 뜻하는 것인데, 하필이면, 사구(奢勾)가 태어난 날짜 - 즉 시점(時點)이 ‘초생달’이 뜨는 시점(時點)으로 삭(朔)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즉 사구(奢勾)왕자께서 태어난 날이 ‘초생달’이 뜨는 때였던 것이지요. 가. 사(奢)를 붙인 이유. 따라서 17삭(朔)은 ‘17달’의 기간(期間)을 뜻하는 개념이고, 일반적인 십삭(十朔) 보다 ‘넘쳐서 태어났기에’ ---“넘친다.”는 뜻으로 사(奢)를 썼고, 나. 구(勾)를 붙인 이유. 그런데 사구(奢勾)왕자가 태어난 날이 마침 또 ‘초생달’ 즉 삭(朔)이 있는 때가 된지라, 초생달 모양의 구(勾)를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구(勾)는 수학적으로는 직각(直角)을 뜻하나, ‘직각과 비슷한 갈구리’도 구(勾)로 표현합니다. 결국 사구(奢勾)란 이름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넘친 초생달”이 되겠지요. 이런 재탐색(再探索)해서 확인된 천문지식을 반영해서 해석을 하자면.... 원문(原文)의 새로운 절구(絶句) ‘**十七朔而生, 故奢, 月如<勾>而生, 故曰<勾>.** 위 문장을 네 덩어리의 개념으로 나누어서 절구(絶句)해주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대안해석(代案解釋) : 17달 걸려서 왕자를 낳았기에 - 이것이 ‘十七朔而生’의 뜻임. - 이런 이유로 ‘넘칠’ 사(奢)를 이름에 붙였으며 - 이것이 ‘故奢’의 뜻임. - 달모양이 마치 갈구리 같을 때 태어났으므로, -이것이 ‘月如<勾>而生’의 뜻임 - 이런 이유로 ‘갈구리’ 구(勾)를 이름에 붙였다. - 이것이 ‘故曰<勾>’의 뜻임. 교필(校筆)의 미흡함과 명쾌함이 없었음을 사과드립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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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것에도 천문이 들어 있을 줄이야... 생물학적(전공이 축산/영양/사료학입니다)으로 17달이 걸릴 수는 없어서 그리고 아들을 엄청 기다리던 상황이어서 다 채우지 않고 나온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포상한 줄 알았읍니다. 제가 무식하니, 앞으로 더욱 의존하겠읍니다. 거절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17달 걸려서 {애타우다가, 실제로는, 초기에는 거짖이었거나, 하나는 떨어지고 새로 생겨서 나왔을 가능성} 태어났고, 태어난 날의 달 모습이 갈구리 모양인 날이어서 <사구>라 했다...라는 진실이 들어 잇었던 것 같습니다.~~휴~우~~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