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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81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3] ‘낙랑, 한반도에 있었다’ 쓴 중국 사서 하나도 없어 » 낙랑군에 있었다는 갈석산. 현재 하북성 창려현에 있는데 진시황과 조조가 올랐던 유명한 산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에 걸쳐 있었고 그 치소(治所:낙랑태수부)는 대동강변의 토성동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은 이 논리에 따라 한강 이북을 중국사의 강역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의 누리집은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고 이들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일제 식민사학과 중국 동북공정, 그리고 한국 주류 사학계는 낙랑군의 위치에 관해서는 삼위일체 한 몸인 것이다. 그러나 대동강변의 토성동은 낙랑군이 설치된 지 2천여년 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2018. 1. 6.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1]현재진행형 역사 왜곡 뒤엔 ‘쓰다·이병도 짙은 그림자’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 ① 식민사관과 노론사관 우리 시대의 ‘문제적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주류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다. 이 소장은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 사관이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 정설이나 통설로 굳어져 있는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한다. 한겨레는 앞으로 10여차례에 걸쳐 수요일치 지면에 이 소장의 글을 실을 예정이다. 한겨레가 이 소장의 주장을 수긍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장의 발언이 불씨가 돼, 우리 역사의 진실에 대한 논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를 덮으면서 잊혀진 독자들의 아스라한 기억들을 끄집어내, 역사가 우리 현실에 살아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소장.. 2018. 1. 4.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2] 중국이 밑돌 깔고 일제가 못박은 ‘평양’의 한사군 ② 한사군의 미스터리 현재 주류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구도에 따라 평양 일대를 한사군 낙랑군 지역이라고 비정하지만 일제도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통감부가 도쿄대 공대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게 평양의 석암동을 비롯한 전축분(벽돌무덤) 조사를 의뢰할 때만 해도 ‘고구려 고적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런 ‘고구려 유적’이 ‘한(漢) 낙랑군 유적’으로 바뀌게 된 데는 도쿄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역할이 컸다. 일제, 식민지성 강조하려 한사군을 조선사 시작점으로 조작 중국 기록 미심쩍은데도 실증사학 미명아래 한국사 정설로 도리이 류조는 만철(滿鐵)의 의뢰로 남만주 일대에서 ‘한(漢) 낙랑시대 고적조사 사업’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남만주 유적조사를 마친 그는 대동강변에서 중국식 기와.. 2018. 1. 4.
정운찬은 일본인 총리인가보다 일본사람 앞에선 무릎꿇은 왼쪽사진 우리나라 사람 앞에선 양반다리 하고 있는 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사격장에서 죽은 일본일을 안치한 부산대병원 영안실을 찾아서 무릎꿇은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용산참사때 죽은 희상자 유가족을 만나면서 양반다리 하고 있다. 분명 정운찬은 일본사람들의 총리이다. 아니라면 냄비근성이 다분히 있다. 정치인들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라고 세금으로 월급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세금을 받아쳐먹어놓고 일본사람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모습은 저사람의 사상을 의심스럽게 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133061&PAGE_CD=N0000&BLCK_NO=2&CMPT_CD=M.. 2018.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