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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남당유고 고구려사략 고구려사초 제3대 대무신제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5.

○ 원년{단기2361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로 고쳤다. <다물후>인 <송의>를 태보 겸 주민대가로 삼고, 모친인 <송>후를 태후로 올렸으며, 비{妃}였던 <진>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동명릉}>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해에 나이 25세였다.

○ 2년{단기2362년/AD29}기축, 정월, 황후가 아들 <대해>를 낳았기에, 천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한남{汗南}>[국]이 가물고 황충이 일어 백성들이 굶게 되자,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1,000여 호가 되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서하>에서 살도록 하였다.  12월, <한{汗}>수변에서 크게 병마 훈련을 하였다. <오루>를 우보로 삼고 군사도 주관케 하고, <송옥구>는 <비류>패자를 삼고 형벌도 주관케 하였다.  <온조>가 나라이름을 {<한남{汗南}에서>} <백제>로 바꾸었으며, <해루>를 태보로 삼았다. <해루>는 <해소>의 둘째 아들이다.  <대불>이 <대소>의 딸 <고야>를 후로 삼았다.

○ 3년{단기2363년/AD30}경인, 3월, <오루>의 딸을 받아들여 제3황후로 삼았는데, 그녀의 모친은 <람>공주이다.  11월, <비류수> 위쪽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저절로 끓는 큰 솥을 얻게 되어 모든 군사가 배불리 먹었으며, 이 솥을 지고 다닐 사람도 얻었다.

○ 4년(단기2364년/AD31)신묘, 12월, 우보 <을두지>를 행군대주부로 삼고, 친히 <동부여>를 정벌하였다. <이물림>에 이르러 밤을 지내는데, 쇠붙이 소리가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더니, 금인장과 보인{보검} 등과 병물을 얻게 되었다. <고루>는 “하늘이 내려 준 것입니다.”라 하였고, 상은 엎드려서 받았다. 다음날엔 <북명>사람 <괴유>를 얻어 선봉으로 삼고, <적곡{赤峯부근?}>사람 <마로>를 얻어 유격으로 삼았더니, 진격하여 <가>와 <송강>을 취하여 감독하였다.  이 해에 상은 <추각소>의 처를 맞아들여 <대실>부인으로 삼았다.


                                                    원문출처 ;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07.pdf

◎ 元年戊子, 十一月, 改元<大武>. 以<多勿候><松義>為太輔․主民, 以母<松>后為太后, 以妃<珍>公主為皇后. 如<龍山>, 告卽位. 時, 年二十五.

○ 원년{단기2361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로 고쳤다. <다물후>인 <송의>를 태보 겸 주민대가로 삼고, 모친인 <송>후를 태후로 올렸으며, 비{妃}였던 <진>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동명릉}>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해에 나이 25세였다.

◎ 二年己丑, 正月, 皇后生子<大觧>, 大赦天下.  <汗南>, 旱蝗民飢, 来投者千余戶. 賑恤而置之<西河>.  十二月, 大鍊兵馬于<汗>濱. <烏婁>右輔․主兵. <松屋勾><沸流>沛者․主刑.  <溫祚>改國號曰<伯濟>, 以<觧婁>為太輔. <婁>, <觧素>之次子也.  <帶弗>以<帶素>女<高耶>為后.

○ 2년{단기2362년/AD29}기축, 정월, 황후가 아들 <대해>를 낳았기에, 천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한남{汗南}>[국]이 가물고 황충이 일어 백성들이 굶게 되자,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1,000여 호가 되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서하>에서 살도록 하였다.  12월, <한{汗}>수변에서 크게 병마 훈련을 하였다. <오루>를 우보로 삼고 군사도 주관케 하고, <송옥구>는 <비류>패자를 삼고 형벌도 주관케 하였다.  <온조>가 나라이름을 {<한남{汗南}에서>} <백제>로 바꾸었으며, <해루>를 태보로 삼았다. <해루>는 <해소>의 둘째 아들이다.  <대불>이 <대소>의 딸 <고야>를 후로 삼았다.

◎ 三年庚寅, 三月, 納<烏娄>女為苐三皇后. 其母, <藍>公主也.  十一月, 鍊兵于<沸流水>上, 得自熱大鼎, 一軍飽食, 又得負鼎者.

○ 3년{단기2363년/AD30}경인, 3월, <오루>의 딸을 받아들여 제3황후로 삼았는데, 그녀의 모친은 <람>공주이다.  11월, <비류수> 위쪽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저절로 끓는 큰 솥을 얻게 되어 모든 군사가 배불리 먹었으며, 이 솥을 지고 다닐 사람도 얻었다.

◎ 四年辛卯, 十二月, 以右輔<乙豆智>為行軍大注簿, 親征<東扶餘>. 至<利勿林({舂}得利界)>宿夜, 聞金聲, 使人尋之, 得金璽宝釼等兵物. <高婁>曰;“天賜也.”, 上拜受之. 翌日, 得<北溟>人<怪由>為先鋒, <赤谷>人<麻盧>為遊擊, 進援括<街(撫遠)>․<松江>.  是年, 上納<芻殼素>妻為<大室>夫人.

○ 4년(단기2364년/AD31)신묘, 12월, 우보 <을두지>를 행군대주부로 삼고, 친히 <동부여>를 정벌하였다. <이물림>에 이르러 밤을 지내는데, 쇠붙이 소리가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더니, 금인장과 보인{보검} 등과 병물을 얻게 되었다. <고루>는 “하늘이 내려 준 것입니다.”라 하였고, 상은 엎드려서 받았다. 다음날엔 <북명>사람 <괴유>를 얻어 선봉으로 삼고, <적곡{赤峯부근?}>사람 <마로>를 얻어 유격으로 삼았더니, 진격하여 <가>와 <송강>을 취하여 감독하였다.  이 해에 상은 <추각소>의 처를 맞아들여 <대실>부인으로 삼았다.

◎ 五年壬辰, 二月, 進軍於<柵城>之南, 營于高丘. 四面泥濘, 人馬俱沒于泥中. <高婁>太子軍, 與<帶弗>, 戰于泥中. 太子, 立於軍前督軍, 中流矢而落馬, 兵不能, 故不能救之. 上, 召<怪由>命救之, <怪由>拔劒號吼越泥擊之, 一軍賴鎰力, 直衝本陣, 執<帶弗>斬頭而出, 餘衆驚潰. <帶万>軍亦披靡而退已, 而知其兄死, 號哭誓死而進諸軍, 圍高丘数匝.

○ 5년{단기2365년/AD32}임진, 2월, <책성>의 남쪽까지 진군하여 높은 언덕에 진영을 차렸는데, 사면이 진창이어 인마가 모두 진창에 갇히게 되었다. <고루>태자의 군대가 진창 속에서 <대불{<동부여>왕}>과 맞붙어 싸웠다. 태자가 군대의 앞에 서서 싸움을 독려하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으나, 병사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이 <괴유>를 불러 태자를 구하라 명하였더니, <괴유>가 칼을 빼어들고 크게 고함지르며 진탕을 넘어 들어가 <대불>의 군사를 무찔렀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이에 힘입어 적의 본진으로 곧바로 들이쳐 <대불>을 잡아서 목을 치고 나왔더니, 살아남은 {<대불>의 본진} 군사들은 놀라서 무너졌다. <대만>의 군대 역시 아수라장에서 물러나더니만, 자기의 형이 죽은 것을 알고는, 울부짖으며 죽기를 맹세하고, 모든 군사를 진격시켜, 그 높은 언덕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 上, 憂惧, 曰;“恨, 不用<溫祚>之諫.” <乙豆智>曰;“聖母之神必有陰助. 陛下, 勿憂.” 果然, 大霧七日不辨呎尺, <帶万>恐有變而少退, 乃立萬偶疑兵于營而潛出. 天且凍泥得脫其圍, 暗夜倉皇, 失神馬․大鼎, 及至<利勿>. 兵飢不興. 得野獸而犒軍.

○ 상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온조>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라 일렀더니, <을두지>가 “성모의 신령께서 반드시 뒤에서 도우실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 아뢰었다. 과연, 7일간이나 큰 안개가 끼어 지척도 분간할 수 되었더니, <대만>도 변을 당할까를 걱정하여 좀 물러나기에, 병사의 모습을 닮은 수많은 허수아비를 진영에 세워놓고 몰래 빠져나왔다. 하늘{날씨}이 잠시 진창을 얼어붙게 하여 그 포위망을 벗어나긴 하였으나, 캄캄한 밤중의 창황 중에 신마와 큰솥을 잃어버린 채 <이물림>에 다다르게 되었다. 병사들도 굶주림에 힘을 낼 수 없게 되어, 들짐승을 잡아서 군사를 먹였다.

◎ 旣皈「北都」, 宴赴戰将卒数日. 吊死問疾, 慰其父母, 曰;“朕以不德, 輕伐<扶余>, 難殺<帶弗>, 未滅其國, 多失我軍. 朕之過也.” 國人, 感帝德義, 皆許殺身於國事, 稱曰<朱留>民志, 以為國士之本義.

○ 이윽고 「북도{위나암}」로 돌아오자 전장에 임했던 장졸들에게 여러 날 동안 먹고 마시게 하여 주었다. 죽은 이를 조문하고 상한 이를 살폈으며, 그 부모들을 위무하며, 이르길; “짐이 부덕하여, <부여>를 가벼이 보고 치려하였다가, <대불{<동부여>왕}>은 가까스로 죽였지만 그 나라는 멸하지도 못하고서, 우리 군사는 많이 잃었소. 짐의 과오이오.”라 하였다. 이에 나라사람들은, 황제의 덕과 의에 감복하여, 모두가 나랏일에는 몸을 바치겠으며, “<주유>백성들의 뜻”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의 본분이 되었다.

◎ 葬<高娄>太子于<桂>后陵. 上, 謂<珍>皇后, 曰;“<桂>后母子為國而死. 生子當如<桂>后.” <珍>后曰;“為人妻․子, 皆欲為夫而死. 陛下棄妾而遠征, 妾焉得死乎.” 上, 笑, 曰;“汝乃再生之人, 不亦可愛乎.” <珍>, 以<召>后之出, 容皃絶美, 性媚嫵要寵而己. 初為<解明>妻, 而不死不勤守寡. 上, 十歲, 以嚴命娶之. 生子女, 雖有外華皆近不肖, 故上言如是.

○ <고루>태자를 <계>후릉 경내에 장사했다. 상이 <진>황후에게 “<계>후 모자가 나라를 위해 죽었소. 당신도 마땅히 <계>후가 낳은 아들 같은 아들을 낳아주시오.”라 일렀더니, <진>후 왈; “당신의 처․자들 모두는 지아비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내버려두고 멀리 정벌에 나서셨으니, 제가 어떻게 죽을 수 있었겠습니까?”라 하니, 상은 웃으면서 “그대는 다시 사는 사람이니, 그 또한 사랑스럽지 않겠소?”라 하였다. <진>후는 <소>후의 소생인데, 그 용모가 지극히 아름답고 성품도 애교가 있으면서 아리따워서 총애를 받았다. 애초엔 <해명>의 처였었는데, 따라 죽거나 과부로 수절하지도 아니하였다. 상이 10살 때 엄명으로 그녀를 취하였었다. 그녀가 낳은 자녀들은 겉치레는 번듯하였으나 모두가 불초에 가까웠었다. 그리하여 상이 이런 말을 일렀던 것이었다.

◎ 三月, 失馬<巨婁>, 将<扶余>馬百匹, 俱至<鶴盤岺><車回谷>. 上出郊迎之. 撫鬣而慰之, 曰;“馬至, 而鼎不皈耶.”  夏四月, <曷思王><山解>, <解素>之子也, 知國之将亡, 與從者百余人, 至<鴨淥谷>, 見<海頭王(末曷酋長)>出獵. 而請同獵, <海頭>傲而無禮, 遂殺之, 而取其百姓. 請都于<曷>濱, 以治<河>北<布倫(水名)>之地(<海頭>之故地), 許之. <觧素>, 聖母所生<蛙>王之子也, 常諫<帶素>之無道而庇我及其沒次子. <解婁>皈我而輔<溫祚>. <山海>, 亦至是而皈, 以女納後宮. 以其艶而有德, 封為皇后. 皇后, 身香而皎潔如魚, 得傳上寵.

○ 3월, 잃었던 말 <거루>가 <부여>의 말 백 마리를 이끌고 함께 <학반령><거회곡>에 도착하였다. 상이 교외로 나가서 이를 마중하고, 갈기를 어루만져 위로하며, 말하길; “말이 돌아왔으니, 솥도 돌아오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여름 4월, <해소>의 아들인 <갈사>왕 <산해>가, 자기의 나라가 곧 망할 것을 알고는, 따르는 사람들 100여 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러서 <해두>왕(말갈추장)이 사냥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함께 사냥하자 청하였더니, <해두>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백성도 빼앗았다. <갈{曷}>수변에 도읍하고 <하>북의 <포륜(수명)> 땅(<해두>지고지)을 다스리며 살고 싶다고 청하였더니, 허락되었다. <해소>는, 성모가 낳은 <금와>왕의 아들인데, 늘 <대소>의 무도함을 간하면서 우리를 두둔하더니 둘째 아들을 잃게까지 되었다. <해루>는 우리에게 귀의하여 <온조>를 도왔고, <산해> 또한 이때에 귀의하여 딸을 후궁으로 바쳤다. 그 딸은 요염하기도 하였지만 덕망이 있어서 황후로 삼았더니, 몸에서는 향내가 나고 살결도 물고기 같이 희고 깨끗하여, 상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

◎ 七月, <曷思王>從弟<絡文(<解素>弟<解万>亦聖母所生也.<絡文>,<解万> 子)>, 亦将万余人来降, 曰;“願, 為聖人之民.” 上, 出郊迎之, 待以賓禮, 尋封為<安西>大王, 置之<掾那部(<勾茶國>地西)>. 時, <東扶余>大亂, 自相殘滅.  十月, ‘征<余>将軍’<怪由>卒. <由>, 以巨力之人, <柵>南之戰, 身被重創, 至是, 卒. 以一品大加禮, 葬于<北溟山>陽.

○ 7월, <갈사왕>의 종제인 <락문(<해소>제<해만>역성모소생야.<낙문>,<해만>자)> 또한 1만여 명을 이끌고 찾아와 항복하면서, “성인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상이 교외로 나가 맞이하여 손님으로 대접하고, <안서>대왕으로 삼아서 <연나부(<구다국>지서)>에 살게 하였다.  이때 <동부여>에서는 큰 난리가 일어나 서로를 잔인하게 죽였다.  10월, ‘정<여>장군’ <괴유>가 죽었다. <괴유>는 힘이 엄청 센 사람이어, <책성> 남쪽에서 전쟁할 때, {<고루>태자를 구하다가} 창을 여러 개나 맞았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야 죽었다. 1품 대가의 예로써 <북명산> 남쪽에 장사하였다.

◎ 六年癸巳, 正月, <[曷思]>后生子<好童>.  十一月, 遣使如<漢>, 求兵書․農書․孝經․史記等書, ■■通<漢>之■.

○ 6년(단기2366년/AD33)계사, 정월, <[갈사]>후가 아들 <호동>을 낳았다.  11월, <한>에 사신을 보내서 <병서>․<농서>․<효경>․<사기> 등 서적을 구하고, -----

◎ 七年甲午, 五月, <松>太后崩, 春秋六十七. 后, <松讓>之女. <光明帝>自<扶余>時, 依於后家. <義>薦之, 及卽位, 納之而生<都助>․<觧明>․帝及<解邑朱>․諸公主. 端麗有德, 好神仙, 善畵能樂, 以淡素養之.  十月, <松義>病欲請免. 子<純>隣於<秀>, 尋敗死.

○ 7년{단기2367년/AD34}갑오, 5월, <송>태후가 춘추 67세에 죽었다. 후는 <송양>의 딸이다. <광명제>가 <부여>에서 나와 <송>후의 집에 의탁한 적이 있다. <송의>가 그녀를 천거하였고, {상이} 즉위하자 불려 들어가 <도조>․<해명>․제{<대무>}․<해읍주> 및 여러 공주를 낳았다. 용모와 품행이 단려하고 덕성스러웠으며 신선에 탐닉하였고, 그림 솜씨도 좋았고 기악에도 능하였으며, 담담하고 소박하게 자식들을 길렀었다.  10월, <송의>가 병들어 물러나고 싶어 하였고, 아들 <순>은 인접한 <유수{<동한><광무제>}>에게 끝내 패하여 죽었다.

◎ 九年丙申, 十月, <盖馬>主<小噲>妻<半乙>, 殺<噲>, 而立子<叔乙>. <噲>子<厚滿>․<狗文>等相爭, <厚滿>先入城, 殺<叔乙>. <半乙>與<狗文>潛通而納之. <厚滿>来奔, 上親征誅<狗文>, 以其國為<蓋馬郡>.  十二月, <勾茶王><厚燐>聞<蓋馬>滅, 擧國来降. <厚潾>, <閃尼>子也. 以其<掾那部>讓於<絡文>, 而陰有反意. 及<噲>死, 援<狗文>而約伐<西河>․<南口>, 事發而國除, 以其都為<南蘇>. 西路皆拓.  太輔<松義>薨, <松>太后胞兄也. 其母<貫貝>氏, 勸<松讓>献國, 戒<義>以忠, <義>守其母訓, 為國盡忠, 持身儉約, 歷事三世, 德望蘇然, 勝於父矣. 以其弟<屋句>為左輔, <乙豆智>太輔. <麻勁>右輔. <勁>, <摩離>子也. <盖馬>反衆與<漢>人来侵<句麗城>, <玄菟>太守<勾鄒>徃救, 疾作而薨, <松屋勾>代之而平之.
<劉秀>使<吳漢>滅<蜀>, 殺<公孫述>夷其族.

○ 9년{단기2369년/AD36}병신, 10월, <개마>주 <소쾌>의 처 <반을>이 <소쾌>를 죽이고 아들 <숙을>을 세웠다. <소쾌>의 아들인 <후만>과 <구문>은 서로 다투었는데, <후만>이 먼저 입성하여 <숙을>을 죽였더니, <반을>은 <구문>을 밀통하여 맞아들였다. 이에 <후만>이 도망해 오자, 상이 친히 <구문>을 정벌하고 <개마국>을 <개마군>으로 만들었다.  12월, <구다>왕 <후린>이 <개마>가 멸망했음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후린>은 <섬니>의 아들이다. <후린>은 <연나부>를 <락문>에게 넘겨주었었지만, 속으로는 뒤집을 생각이 있었다. <소쾌>가 죽자 <구문>을 도와주고 나서는 <서하>와 <남구>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였었으나, 이 일이 발각되어 나라가 통째로 <고구리>에게 거두어들여졌고 그 도읍도 <남소>의 차지가 되었다. {이리하여 <고구리>의} 서쪽으로 가는 길이 모두 열리게 되었다.  태보 <송의>가 죽었다. <송>태후의 동복 오빠이다. 그 어미 <관패>씨는 <송양>에게 나라를 {<고구리>에} 바치라 권하였었고, <송의>에겐 충성하라고 가르쳤었다. <송의>는 모친의 훈계를 잘 따라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으며, 자신은 검약하여 3대가 벼슬을 하였더니, 덕망이 소연하여 아비를 능가하였다. 그의 동생 <옥구>는 좌보가 되었다. <을두지>를 태보로, <마경>을 우보로 삼았다. <마경>은 <마리>의 아들이다.  <개마>의 반중과 <한>인들이 함께 <구려성>에 쳐들어 왔는데, <현도>태수 <구추>가 달려가서 구하다가 병이 나서 죽었고, <송옥구>가 대신하여 싸워서 이를 평정하였다.
<유수>가 <오한>을 시켜서 <촉>을 멸하게 하고, <공손술>을 죽이고 그의 족당들을 평정하였다.

◎ 十年丁酉, 七月, <漢>兵又猝至<丘利城>, 上親至<南口>督戰. <屋句>曰;“被今盜賊蜂起, 何暇無名之戰哉. 此皆邊将之窺利擅侵也. 待其師老, 而出奇破之必矣.” 乃入<蔚岩>, 而斷其来路. 賊拔<盖馬>, 而馳至圍<蔚岩>数里, 日加而兵益多. 盖以為城中無水而攻之愈急也, 乃用<豆智>計, 以魚酒饋之, 賊知有水而退. 時, 上, 自<南口>来援, 夾擊大破之. 是謂<蔚岩大戰>. 賊慮其中斷而不直至<南口>, 與小城虛勞而致敗. <盖馬>諸城悉平.  冬, <溫祚>傳位<多婁>.

○ 10년{단기2370년/AD37}정유, 7월, <한>의 병사들이 또다시 <구리성>에 갑자기 밀려들어서, 상이 친히 <남구>에 나아가 독전하였다. <옥구>가 아뢰길; “저쪽 나라{東漢}는 지금 도적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고 있는데, 어찌 한가하게 명분 없는 싸움을 걸어오겠습니까? 이런 싸움은 대개 변방장수가 {개인의} 이득을 엿보며 제멋대로 {조정의 뜻과 무관하게} 침입한 것이니, 저 군사들의 사기가 무디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가서 기발나게 쳐부수어야 합니다.”라 하고는, <울암>으로 들어가 그들이 들어올 길을 끊었다. 적은 <개마>를 뭉개고 치달아와서 <울암>밖 수{数} 리를 겹겹이 포위하더니, 날이 갈수록 병사의 숫자는 많아졌다. 대략 성 안에는 물이 없었음에 공격을 점점 서둘렀음 이었다. 이에 <을두지>의 계략을 쓰기로 하고, 적에게 물고기 안주와 술을 먹였더니, 적들은 성 안에 물이 많은 줄 알고 물러났다. 이때, 상이 <남구>로부터 구원하러 왔기에, 협격하여 적들을 크게 쳐부쉈다. 이 전쟁을 <울암대전>이라 한다. 적은 침로의 중간이 끊김을 걱정하여 더 이상 <남구>로 곧장 쳐들어오지는 못하고 작은 성{울암}과 헛고생만하다가 패하였다. <개마>의 여러 성들 모두가 평온하게 되었다.  겨울에 <온조>는 <다루>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 十三年更子, 四月, <乙豆智>薨. <松屋句>太輔, <麻勁>左輔, <烏娄>右輔.  七月, <買溝谷>人<尙須>, 與其弟<尉須>․堂弟<于刀>等, 率衆千余․牛馬萬余頭, 而来謁. 以<尙須>為大畜大加. <買溝谷>卽<水谷城>也.

○ 13년{단기2373년/AD40}경자, 4월, <을두지>가 죽었다. <송옥구>를 태보로, <마경>을 좌보로, <오루>를 우보로 삼았다.  7월, <매구곡>사람 <상수>가 친동생인 <위수>와 종제인 <우도>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사람들과 소와 말 만여 마리를 끌고 와서 알현하였다. <상수>를 ‘큰짐승대가’로 삼았다. <매구곡>은 곧 <수곡성>이다.

◎ 十四年辛丑, 冬十一月, 有雷無雪. 是歲, <淹淲>大漲, <彌鄒忽>盡被水害, 移其民於<西河>. 以<淹淲王><虎力>為<龍山公>. 初, <芻牟帝>, 以<沸流>為<淹淲>沛者, 食其邑. <光明>初, 進封王, 娶<曼>公主, 生<昜人>. <昜人>, 娶<真>公主, 生<虎力>. 三世六十七年而國除.  以<涉得>為<紫蒙王>. <得>, <臣>之子也. 其母<乙蒸>, 賢, 敎<得>以禮義. 為人忠厚.  上, 以<紫蒙>反復無常, 遣<得>治之.  <烏>皇后生子<解憂>.

○ 14년{단기2374년/AD41}신축, 겨울 11월, 천둥은 치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이 해에 <엄표>수가 크게 불어나, <미추홀>이 수해로 초토화 되어, 백성들을 <서하>로 옮겼다. <엄표왕><호력>은 <용산공>으로 삼았다.  애초에 <비류>는, <추모제> 시절엔 <엄표>패자가 되어 그 읍을 다스렸고, <광명>초엔 봉왕되었었다. <만>공주와 혼인하여 <양인>을 낳았고, <양인>은 <진>공주와 혼인하여 <호력>을 낳았다. 3대 67년 만에 나라가 통째로 <고구리>에게 거두어들여진 것이었다.  <섭득>을 <자몽왕>으로 삼았다. <섭득>은 <섭신>의 아들이고, 그 모친 <을증>은 현명하여 <섭득>에게 예의를 가르쳤다. 사람됨이 충성심이 두터웠다.  상이, <자몽>은 배반하기를 밥 먹 듯 하여, <섭득>을 보내 다스리도록 한 것이었다.  <오>황후가 아들 <해우>를 낳았다.

◎ 十五年壬寅, 三月, 黜大加<仇都>・<逸苟>・<焚永>等為庶人. 三人, 皆以<召>皇后舊臣, 奪人妻妾財貨, 恣其所慾. 人皆忿死, 以致洪水, 使<沸流國>除. 法當斬誅, 以其為<東明>舊臣不忍極法, 放為庻人. 以<南部>使者<鄒殼素>為<沸流部>長(<順奴>沛者也), 以化之.  九月, 行<東明大祭>于<龍山>.  <多婁>献<汗南>故地, 而南下.  遣兵伐<新羅>, 以助<多婁>.

○ 15년{단기2375년/AD42}임인, 3월, 대가 <구도>・<일구>・<분영> 등을 서인{벼슬 없는 평민}으로 만들어서 내쳤다. 세 사람 모두 <소>황후의 옛 신하이었는데, 사람들의 처․첩․재물․돈 등을 강탈하여 욕심 내키는 대로 방자하였다. 이에 {이 꼴을 당한} 사람들 모두가 울화통이 터져 죽는 일이 마치 홍수 같았기에, <비류국>을 시켜서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법을 따르면 응당 목 베어 죽일 일이었으나, <동명>의 옛 신하는 극형을 면하게 되어 있어, 내쫓아서 서인으로 만든 것이었다. <남부>사자 <추각소>를 <비류부>의 우두머리{<순노>패자야}로 삼아서 이들을 교화하게 하였다.  9월, <용산>에서 <동명대제>를 지냈다.  <다루>가 <한남{汗南}> 옛 땅을 {<고구리>에} 바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쳐서, <다루>를 도왔다.

◎ 十七年甲辰, 七月, 小<松>太后崩. <松>太后之妹, 而上之乳母也. 上長於后, 以后五女皆為妃. 春秋六十八.

○ 17년{단기2377년/AD44}갑진, 7월, 작은 <송>태후가 죽었다. <송>태후의 여동생이며 상의 유모였다. 상은, {작은 <송>태}후의 품에서 자라났고, 이 작은 <송>태후의 딸 다섯 모두를 비로 맞았었다. 춘추 68세였다.

◎ 二十年丁未, 三月, <楽浪>反, 上親征其都<沃沮>拔之. <崔理>北走<南沃沮>.  <蚕支落>部<戴升>反, 屬于<漢>. 本<盖馬>臣也. 奸譎無比, 徃来<赤城>・<蠶支落>・<河間>, 而蠶食<盖馬>者也.

○ 20년{단기2380년/AD47}정미, 3월, <낙랑>이 배반하여, 상이 친히 그 도읍인 <옥저>를 빼앗았다. <최리>는 <남옥저>로 패주하였다.  <잠지락>부의 <대승>이 배반하고 <한{漢}>에 붙었다. 본래 <개마>국의 신하였었는데, 간교하고 속임수가 비할 데 없어, <적성>・<잠지락>・<하간>을 오가면서 <개마>국을 잠식하였었다.

◎ 二十一年戊申, 四月, <曷思>后生<再思>太子.  <松屋句>薨. <麻勁>太輔, <烏婁>左輔, <松宝>右輔.

○ 21년(단기2381년/AD48)무신, 4월, <갈사>후가 <재사>태자를 낳았다.  <송옥구>가 죽었다. <마경>을 태보로, <오루>를 좌보로, <송보>를 우보로 삼았다.

◎ 二十二年乙酉, 正月, 遣将軍<于刀>․<烏義>等伐<戴升>于<潛支落河>柵, 斬于柵南(<奈曼王>府), 進拔<赤城>・<蠶支>, 遂率<紫蒙>王<滿離斯古>․<涉得>等, 分四道進攻<右北平>・<漁陽>・<上谷>・<太原>等地, 奪其宝玩․美色․絹織․珍味等多数.  歲, 以為常<蔡彤>大惧, 約修年貢, 乞和.  是年, <芦花>太后生於<柵城>. <王文>女也. 母<高耶>, <帶素>女也.

○ 22년{단기2382년/AD49}을묘, 정월, 장군 <우도>와 <오의> 등을 보내 <잠지락하>책에서 <대승>을 쳐부수고 목책의 남쪽에서 목을 베었으며, 진격하여서 <적성>과 <잠지>를 빼앗고는, <자몽왕>들인 <만리사고>와 <섭득> 등을 이끌고 네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우북평>・<어양>・<상곡>・<태원> 등을 공략하고 그곳의 보물․노리개․미색․비단․진미 등 다수를 빼앗았다.  년 중 내내 이리하였더니, <채동>은 늘 크게 두려워하였던 나머지 매년 조공하기로 약속하며 화친을 구걸하였다.  이 해에 <책성>에서 <호화>태후가 출생하였다. <왕문>의 딸이고, 모친은 <대소>의 딸 <고야>였다.

◎ 二十四年辛亥, 三月, <東部>雹. <扶余>太師<王文>卒. <加順>․<富覃>等作亂, 上遣<松宝>․<絡寄>定其亂, 而擒其女主<高耶>為后. <東扶余>四十七國, 皆為國土. 自<觧夫婁>歷<金蛙>・<帶素>・<高耶>, 四世百十年, 而國除. 中間<帶弗>竊位十九年.

○ 24년{단기2384년/AD51}신해, 삼월, 「동부」에 우박이 내렸다.  <부여>태사 <왕문>이 죽었다.  <가순>과 <부담> 등이 반란을 일으켜, 상이 <송보>와 <락기>를 보내서 이를 평정하고, 여주인 <고야>를 잡아다 후로 삼았다. <동부여> 47개의 나라는 모두는 나라{<고구리>}의 땅이 되었다{대략 현금 <눈강>이동x<동요하>・<송화강>이북x<흑룡강>이남・이서?}. <해부루>로부터 <금와>・<대소>・<고야>를 거쳐서 4대 110년을 이어오다가 나라가 통째로 <고구리>에게 거두어들여진 것이었다. 중간에 <대불>이 19년간 보위를 훔친 적이 있었다.

◎ 二十七年甲寅, 四月, <好童>太子, 将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其}女, 為之, 破鼓角, 而迎王師大軍. 自<沃沮>浮海而入拔其都, 虜<崔理>夫妻而皈, 以其地為<竹岺郡>. <樂浪>, 自<柴吉>, 四世八十餘年, 而國除.  七月, <大解>太子薨.

○ 27년{단기2387년/AD54}갑인, 4월, <호동{好童}>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을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崔理}>의 새 도읍(압구){=남옥저}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좋아지냈다. 그녀는 <호동>을 위해 북과 나발을 망가뜨리고, 왕이 거느린{또는, 왕사의} 대군을 받아들였다. <옥저{沃沮= AD47년 3월까지는 최리 낙랑의 도읍}>에서부터 대군을 이끌고 배로 물을 건너 들어가서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 내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그 땅은 <죽령군{竹岺郡}>으로 삼았다. <낙랑{현금의 요동반도 지경임; 화북・화남・동해곡 평원에 해수가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시절?}>은 <시길{柴吉}>로부터 4대 80여년에 나라의 문을 닫은 것이었다.  7월, <대해{大解}>태자가 죽었다.

◎ 二十八年乙卯, 二月, 築<盖馬>・<河城>・<丘利>・<高顯>・<南口>・<紫蒙(昆都)>・<句麗>・<車蘭>・<河陽>・<西安平>等十城, 以備<漢>及<鮮卑>.  <麻勁>病免. <烏娄>太輔, <松宝>左輔, <乙祥>右輔.

○ 28년{단기2388년/AD55}을묘, 2월, <개마>・<하성>・<구리>・<고현>・<남구>・<자몽(곤 도)>・<구려>・<거란>・<하양>・<서안평> 등 10성{요서10성}을 쌓아 <한>과 <선비>에 대비하였다.  <마경>이 병으로 물러나니, <오루>가 태보로, <송보>가 좌보로, <을상>이 우보로 되었다.

◎ 二十九年丙辰, 七月, <楽浪>餘衆與東<沃沮>反. 遣将軍<菸卑神>伐<東沃沮>, 拔之, 為<海西郡>. 置<楽浪>余衆于<桓阿(桓因界)>.

○ 29년(단기2389년/AD56)병진, 7월, <낙랑>의 남은 무리들이 동쪽의 <옥저{=남옥저?}>{무리}와 함께 반란하였다. 장군 <어비신{菸卑神}>을 보내서 동쪽의 <옥저>를 빼앗아 <해서군{海西郡; 대략 현금 嫩河 및 遼河 以西?}>으로 만들고, <낙랑>의 남은 무리들은 <환아{桓阿}>에서 살게 했다.

◎ 三十二年己未, 四月, 如<孤岸淵>觀魚, 釣赤翅白魚薦于庙.  七月, 「西 都」大水, 漂沒民屋.

○ 32년{단기2392년/AD59}기미, 4월, <고안연>에 가서 물고기 잡이를 보았다. 붉은 지느러미 달린 흰 물고기를 낚아서 묘당에 올렸다.
7월, 「서도{<芻牟>末都, <光明>初都}」에 큰물이 져 민가가 뜨고 잠겼다.

◎ 三十三年庚申, 十一月, <好童>伏劒而死. <好童>顔色美好. <烏>皇后, 愛而欲狎之不得, 反讒于上, 曰;“<好童>無禮.” 上不肯罪之, 后乃聲言于外. <好童>, 不自釋, 曰;“我若釋之, 顯母之惡而貽父之憂” 遂自殺.

○ 33년{단기2393년/AD60}경신, 11월, <호동>이 칼에 엎어져 죽었다. <호동>의 안색은 곱고 호감을 샀다. <오>황후가 <호동>을 탐내어 희롱하고 싶었었는데 그리 되지 아니하였더니, 상께 거꾸로 “<호동>이 무례하였다.”고 참소하였고, 상은 그 말을 곧이들어 <호동>을 벌주려 하지 않으니, <황후>가 언성을 높여 소리가 밖으로 나갔다. 이에 <호동>은 스스로 밝히고자 하지 않으며, 말하길; “내가 밝히면 어머니{여기서는 <오>후, <호동>의 생모는 <갈사>후}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고 아버지께서 걱정하시게 된다.”라 하고는 스스로 죽어버린 것이었다.

◎ 三十四年辛酉, 四月, <松宝>妻<乙蒲>生子<豆智>. <蒲>以為上子, 不受. 自先帝時, 公卿之妻被幸者, 多献子. 至是, 弊益甚, 故廢其風.

○ 34년{단기2394년/AD61}신유, 4월, <송보>의 처 <을포>가 아들 <두지>를 낳았다. <을포>가 상의 아들로 하려 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선제 때부터 공경들의 처가 승은을 입으면, 많은 이가 {이 일 후에 낳은} 아들을 {상에게} 바쳐왔었는데, 이 때에 이르자 그 폐단이 아주 심하였기에, 이 풍속을 폐한 것이었다.

◎ 三十七年甲子, 八月, <多婁>與<新羅>爭<蛙山>.  <涉得>遣子<射旭>來朝.  冬十月, 上, 崩於「西 都」. 遺命傳位於皇太弟<解邑朱>. 春秋六十一, 葬于<大獸林原>.

○ 37년{단기2397년/AD64}갑자, 8월, <다루>가 <신라>와 <와산>을 놓고 싸웠다.  <섭득>이 아들 <사욱>을 보내 입조하였다.  동10월, 상이 「서도」에서 죽었다. 황태제인 <해읍주>에게 전위한다는 명을 남겼다. 춘추 61세였으며, <대수림원>에 장사했다.

※ 論曰; <大武>, 勇毅沈鷙, 能成大業, 継<光明>守成之後, 征<扶余>, 討<盖馬>, 遠及<上谷>・<太原>, 使<漢>人膽寒. 又能孝友, 見其子之不肖而傳于弟, 可謂知大體. 然, 溺於<烏>后而殺<好童>. 縮<濟>․<羅>而遺禍于後. 盖英雄有惟薄之患, 聖人養兄弟之禍者. 此歎.  <東明>・<光明>・<大武>三代之治, 謂之<三代鏡>. <麗>人以之為<政經>, 能傳七百年.  <光明>・<大武>不愧為<東明>之子孫.

※ 찬자가 살피기를; “<대무>는 용감하며 굳세고 심히 사나웠으며, 능히 대업을 이루었다. <광명>을 이어서 지키기를 이룬 후에 <부여>를 정벌하고 <개마>를 토벌하였으며, 멀리는 <상곡>과 <태원>까지 정벌하여 <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었다. 또한 효심과  우애가 있었으며, 자신 아들이 불초하였음에 동생에게 제위를 넘겼다. 대업에 대한 큰 틀을 알고 있었다 할 만하였다. <오>후에게 빠져서 <호동>을 죽게 했으며, <백제>와 <신라>를 다스림에서는 후세에 화를 남겼다. 대개 영웅들은 가벼이 생각한 것들로 하여 우환이 따르게도 하는데, 성인{대무}도 형제들에게 닥쳐올 화를 키웠으니, 이것이 한탄스러웠다.  <동명>・<광명>・<대무> 3대의 치적을 일컬어 <삼대경>이라 한다. <고구리>사람들은 이를 <정경>으로 삼아서 능히 7백년을 이어 나아갔었다. <광명>과 <대무>는 <동명>의 자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았었다.”고 하였다.//



강영구 (2008-01-24 11:19:19)  
시간이 조금 여유가 생겨서 살펴봤습니다. 한두개의 오자와 결자를 보충해보았습니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5년 :生子女, 雖有外華, 皆近不肖, 故上言如是.자녀를 낳고나더니만 겉치레만 근사하려 하였지, 하는 일 모두는 불초에 가까웠었기에, 상이 이렇게 타일렀던 것이었다.=>이렇게 해석하면 마치 <진>황후가 겉치레를 떨고 불초한 느낌이 듭니다. 不肖란 말이 자식을 부모에 비교해서 쓰는 말이니 여기서는 그녀가 낳은 자녀가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루>태자 같이 살신성인하는 자식을 낳아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近은 幾(거의 기)의 의미로 파악됩니다.
“(그녀가) 낳은 자녀는 비록 외모는 화려하였으나 모두 불초에 가까웠다. 그래서 상이 이처럼 말씀하신 것이다.”
·3월 :常諫<帶素>之無道而庇我, 及其沒次子<解婁>皈我而輔<溫祚>늘 <대소>의 무도함을 간하면서 우리를 두둔하였었고, 이미 죽은 둘째 아들 <해루>는 우리에게 귀의하여 <온조>를 돕기에 이르렀었다. =>선생님께서는 次子가 <해루>인 것으로 해석하셨지만, 저는 <해소>의 둘째 아들로 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해소>가 <대소>의 실정을 간하고 그때마다 고구리를 두둔하므로 그 둘째 아들을 잃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7년 :以淡素養之담담소박하게 할 뿐이었다. =>淡素로써 자식들을 길렀다.
·10년 :日加而兵益多해가 뜨거워지고 있고 병사들은 매우 많았더니,=>날이 갈수록 병사의 수가 많아졌다.
· 賊慮其中斷而不直至<南口>적은 침로의 중간이 끊겼음에 더 이상 <남구>로 곧바로 쳐들어오지는 못하고 =>여기서 慮의 해석이 빠졌습니다. “적들은 중간이 끊길 것을 걱정하여 곧장 <남구>로 들이치지 못하고”
·32년 :赤翅白魚■于庙.붉은 날개 달린 흰 물고기{물짐승}가 묘당으로 ■하였다. =>낚시해서 잡은 물고기니까 翅를 ‘지느러미’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자는 薦(드리다, (제수를) 올리다 천)입니다. ‘붉은 지느러미를 가진 흰 물고기를 묘당에 제물로 올렸다.’
·33년 :顯母之惡而胎父之憂 =>胎를 貽(끼치다, 남기다 이)로 바꿔야겠습니다.
·34년 :自先帝時 선제의 시절엔 =>自를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선제 때부터’
김성겸 (2008-01-24 20:12:42)  
고맙습니다. 고생스러웠던 부분이 해결되었습니다.!!
계속 도와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