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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23. 第二十三世<安原大帝>紀 제23세<안원대제>기(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3.
第二十三世<安原大帝>紀  제23세<안원대제>기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3.pdf

帝, 諱<宝延>, 字<興壽>, <明治帝>之苐二子也. 母, 曰<鯨>太后也. 美容儀, 善騎射, 身長七尺五寸. 有大量, 通武術, 亦能逢迎上意. <明治>, 常謂帝及大行, 曰;“汝兄弟互相傳位. 一心而分體, 非兩人也.” 以是, 大行起居常與帝, 同飮食衣服, 一如孿出, 大行有疾, 帝常侍側極盡無所不至. 臨崩, 命<椘雲>皇后跪上璽宝. 乃登祚. 改元<大藏>. 後, 尊為<世宗景皇帝>.

제는 휘가 <보연>이고 자는 <흥수>이었으며, <명치제>의 둘째 아들로서, 모친은 <경>태후이다. 용모와 예의범절이 아름다웠고 말 탄 채 활쏘기도 잘하였다. 신장은 7척 5촌이었다. 도량이 크고, 무술에 통달하였으며, 또한 능히 윗사람의 뜻을 받들어 모실 줄도 알았다. <명치>는 평소에 제와 대행에게 “너희는 형제간에 전위해라. 한 마음이면 몸이 나뉘었어도 두 사람이 아닌 것이다.”라 일렀다. 그랬다. 대행은 항상 제와 함께 기거하고, 같은 것을 먹고 마시며 의복도 같았더니, 쌍둥이로 태어난 것 같았다. 대행이 괴로워 할 땐, 제가 항상 곁을 지켰으며, 그 극진함이 이를 데 없었다. 죽음이 임박하자 <초운>황후에게 명하여 무릎 꿇고 상에게 새보를 바치게 하였고, 이에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대장>으로 년호를 바꿨다. 후에 <세종경황제>로 존호되었다.

◎ 辛亥<大藏>元年, 五月七日, 上, 與<椘雲>皇后, 卽位於<黃山>行宮之殯殿, 春秋五十三.
 上欲以<椘雲>更為皇后, <椘雲>以年老固辭之. 乃以<德陽>公主為皇后, 乃<椘雲>所生大行女也. 春秋三十二. <椘雲>為太后, 春秋六十一. 以皇姪<恪>太子為東宮, <椘雲>所生大行子, <德陽>之胞兄也. 宝齡三十五. <銀>公主為東宮正妃, 宝齡三十二, <勗>太后所生上女也. <慶安>公主為東宮次妃, 宝齡二十三. <安陽>公主所生上女也. <正陽>公主為東宮補妃, 宝齡二十四, <椘雲>所生大行女, <鯉>太子正妃也.  <寅陽>公主生上子<義成>太子.

○ 신해{단기2864/AD531}<대장>원년, 5월 7일, 상은, <초운>황후와 함께, <황산> 행궁의 빈전에서 즉위하였다. 춘추 53이었다.
 상이 <초운>을 다시금 황후로 삼으려 하자, <초운>은 나이가 들었음을 들어 고사하였다. 그리하여 <덕양>공주를 황후로 삼았다. <초운>이 낳은 대행의 딸이며, 춘추 32이었다. <초운>은 태후가 되었다. 춘추 61이었다. 황상의 조카 <각>태자를 동궁으로 삼았다. <초운>이 낳은 대행의 아들에 <덕양>의 동복 오빠이며, 보령 35세였다. <은>공주를 동궁정비로 삼았다. 보령 32살이었으며, <욱>태후 소생 상의 딸이었다. <경안>공주를 동궁차비로 삼았다. 보령 23살이고, <안양>공주 소생인 상의 딸이었다. <정양>공주를 동궁보비로 삼았다. 보령 24살로, <초운> 소생 대행의 딸이며 <리>태자의 정비였다.  <인양>공주가 상의 아들 <의성>태자를 낳았다.

◎ 以<梁義臣>為中畏大夫, <淵学>為司農卿, <梁博>為民部尙書, <朱金鈴>為右侍中, <桂春[娘]>為左侍中, <宣蜓>為女丞相.
 以<恂>太子妃<華陽>公主為副皇后, 春秋二十一, <魏>主<恪>女<胡>太后出也. 以<平陽宮(<宏>女四三)>・<紅院宮(<婁>氏三一)>為別宮皇后, 以<錦院><晋>貴嬪(<冠>女三九)為小后, 巡幸慰之. 上, 少時, 不晲粉黛所幸者数人, 而及壮以後漸內. 卽位之初, 命宗室女當夕, 又数微幸公卿家, 如有美妻女則引幸, 無遺女謁漸盛. <椘雲>諫之, 不聼. 又数如<椘雲宮>毁其尼道.

○ <양의신>을 중외대부로, <연학>을 사농경으로, <양박>을 민부상서로, <주금령>을 우시중으로, <계춘[랑]>을 좌시중으로, <선전>을 여승상으로 삼았다.
 <순>태자비인 <화양>공주를 부황후로 삼았다. 춘추 21이었으며, <위>주 <각>의 딸 <호>태후 태생이다. <평양궁(<굉>녀43)>과 <홍원궁(<루>씨31)>을 별궁 황후로 삼고, <금원>의 <진>귀비(<관>녀39)를 소후로 삼았으며, 두루 돌아 승은을 내리고 위무하였다. 상이 젊은 시절엔 해가 기울지 않았어도 분 바르고 눈썹 그리는 찾아가서 함께 하던 이들이 여럿이었고, 장성한 이후론 점차로 궐내로 불러들이더니만, 즉위 초엔 종실의 딸들에게 저녁을 감당하라 명하였으며, 아울러서 공경들의 집으로 몰래 찾아가서 예쁜 처들이나 딸들이 있기만 하면 데려다 승은을 입혔더니, 찾아서 고할 남아난 여인 없음이 점차 심하여졌다. 이에 <초운>이 말렸으나, 듣지 않고, <초운궁>에도 여러 번 드나들어서 니도{비구니의 도리≒수절함}가 훼손되게 하였다.

◎ 六月, <魏>主<恭>遣使献賻, 上, 與<華陽>后接使于西殿, 聞;“<爾朱世隆>執政, <仲遠>鎮<徐>, <兆>在<幷>・<汾>, <天光>在<長安>, 各自貪暴掠奪, 政令不行, 租稅不入, 天下思乱. <爾朱>之失人心, 可知也. <高歓>, 自<兆>得兵, 出<信都>而立<元朗>為帝, 聲討<爾朱>. 十月, 大破<兆>於<廣阿>而進攻<鄴>, 其勢大振.”
 以司農卿<淵学>, 為刑部尙書. 以侍御史・駙馬都尉<王胥>, 為司農卿. <晋冠>, 禮部尙書. <晋德>, 「京兆」尹. <安昜{=陽}>公主, 為琳叢大夫. <于建忠>, 大府卿.
 十一月, 皇后, 與<平成>太子, 如<竜山>行宮. 烝報益甚, 上不禁之. 上, 亦與<椘>太后, 如溫宮, 爱<平成>聚麀, 無所不至.  上, 以朱木別建新宮, 欲為壮觀, 募匠于內外.

○ 6월, <위>주 <공>이 사신을 보내 부의를 바쳐왔더니, 상이 <화양>후를 데리고 서쪽의 전각에서 그 사신을 만나보았으며, “<이주세륭>이 정사를 틀어쥐었고, <중원>은 <서주>에 진을 쳤으며, <조>는 <병주>와 <분주>에 머무르고 있고, <천광>은 <장안>에 머무르고 있으며, 각자가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약탈하고 있으니, 정령이 통하지 않고 조세도 걷히질 않으며, 천하는 난리를 생각하고 있으니, <이주>가 세인의 마음을 잃었음을 알 만하다. <고환>은, <조>에게서 군병을 빌어 <신도>를 나가서 <원랑>을 임금으로 세우고 <이주>씨를 성토하더니만, 10월에 <조>를 <광아>에서 크게 깨뜨리고 <업>의 땅으로 진격하여, 그 세력이 크게 떨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농경 <연학>을 형부상서로, 시어사・부마도위인 <왕서>를 사농경으로, <진관>을 예부상서로, <진덕>을 「경조」윤으로, <안양>공주를 림총대부로, <우건충>을 대부경으로 삼았다.
 11월, 황후가 <평성>태자와 <룡산>의 행궁으로 갔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과 통정하거나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과 통정함이 날로 심하여져도, 상은 이를 금하지 않았다. 상 또한, <초>태후와 함께, 「온궁」으로 가더니 <평성>이 모아놓은 여인들을 탐하였으며, 이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상은 별도의 새 궁전을 주목{朱木}으로 웅장하게 지으려고, 내외의 장인을 불러 모았다.

◎ 壬子<大藏>二年, 春正月, 丙寅朔, 上, 與<椘>太后受朝於<竜山>溫宮.
 <原宗>, 廢<仇衡>而立<衡>弟<仇亥>, 尋奪之以其國為郡縣. 然, <加耶>諸族不服, 禍不絶焉.
 <德陽>皇后生<平安>公主於<龍山>溫宮. 上, 命<平成>洗之, 喜不自勝, 曰;“生子之楽, 未有如今日.” 賜皇后珠裙霓裳, <平成>錦冕一襲而愛之. 東宮, 欲以其女<淑>公主為<平成>妃而傳國, 命<銀>公主為<平成>補妃, 納<淑>公主於御寢. 上許之.

○ 임자{단기2865/AD532}<대장>2년, 춘정월, 병인일 초하루에 상이 <초>태후와 함께 <룡산>의 「온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원종>이 <구형>을 폐하고 <구형>의 동생 <구해>를 세우더니만, 종당에는 그 나라를 빼앗아 자기 나라의 군과 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야>의 제 족속들이 불복하여 화가 그칠 날이 없었다.
 <덕양>황후가 <룡산>의 「온궁」에서 <평안>공주를 낳았더니, 상은 <평성>에게 명하여 닦아주게 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르길; “자식 낳는 즐거움이 오늘 같은 적이 없었다.”라 하였으며, 황후에게는 붉은 속옷과 화려한 치마를 내려주었고, <평성>에게는 비단 면류관 일습을 내려주고 친밀하게 대하여 주었다. 동궁은, 자신의 딸 <숙>공주를 <평성>의 비로 삼아서 나라를 물려주고 싶었기에, <은>공주에게는 <평성>의 보비가 되라 명을 내렸고, <숙>공주는 주상의 침전에 바쳤더니, 주상이 허락하였다.

◎ <高歓>攻<鄴>, 為地道施柱而焚之, 城陷入地. 十七日, 拔<鄴>擒<劉誕>, 移<元朗>于<鄴>. <歓>自為丞相・柱國・大将軍. 子<澄>為驃騎大将軍, 年才十一歲, 能臨戦. <歓>, 時, 年三十七. 其妻<婁>氏, <師德>之族, 亦有巨力, 能助<歓>, 為軍事馳騁如飛.
 <恭>以<兆>女<梅>為妻. <世隆>, 與<兆>・<天光>・<度律>等, 更立, 誓約, 以圖相親. <斛斯椿>・<賀拔勝>, 欲圖之, 勧<世隆>召<兆>・<天光>等, 皆詣<洛陽>共討<高歓>. <天光>欲出<長安>, <賀拔岳>諫, 曰;“莫若且鎭<関中>以固根本, 分遣銳師, 與衆合勢. 進可以克, 退可以保.” <天光>, 不從, 自<長安>至<鄴>. <兆>自<晋陽>, <度律>自<洛陽>, <仲遠>自東都. 皆, 會于<鄴>衆號二十万, 来<洹水>而軍. <歓>, 與<高敖曹>, 出擊大破之. <兆>奔<晋陽>, <仲遠>奔「東都」.

○ <고환>이 <업>을 공격하며, 땅굴을 파고 나무기둥을 박아서 그 기둥에 불을 질렀더니, 성이 무너져 땅속으로 꺼져 내렸다. 17일엔 <업>을 빼앗고 <유탄>을 사로잡았으며, <원랑>은 <업>으로 옮겼다. <고환>은, 자신이 승상・주국・대장군이 되고, 아들 <징>을 표기대장군을 삼았더니, 나이 열한 살에 능히 싸움에 임하였다. 이때 <환>의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그의 처 <루>씨는, <루사덕>의 피붙이로, 근력이 엄청 세어서 능히 <환>을 도왔으며, 진을 치거나 말 타고 달리는 것이 나르는 것 같았다.
 <공>은 <조>의 딸 <매>를 처로 삼았으며, <세륭>은 <조>・<천광>・<탁진> 등과 함께 임금을 바꾸어 세우고 서약하여 서로 간에 친목을 도모하였다. <곡사춘>과 <하발승>은, 이들을 도모하고자 <세륭>에게 <조>와 <천광> 등 모두를 <락양{洛陽}>으로 불러 모아서 함께 <고환>을 토벌하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천광>이 <장안>을 나서려 하자, <하발악>이 간하길; “<관중>에 진을 두어 근본을 굳건히 한 다음, 날랜 군대를 나누어 보내 다른 무리와 합세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나아가면 이길 수 있고, 물러나더라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라 하였다. <천광>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장안>을 출발하여 <업>에 다다랐으며, <조>는 <진양>에서, <탁률>은 <락양>에서, <중원>은 「동도」에서 모두들 <업>으로 모여들어서 군대를 합쳤더니 20만군이 되었다. <원수>로 와서 진을 쳤더니, <고환>이 <고오조>와 출격하여 이들을 대파하였다. <조>는 <진양>으로 달아났고, <중원>은 「동도」로 달아났다.

◎ 四月, <斛斯椿>等, 殺<世隆>・<天光>・<度律>等, 傳首於<歓>. <歓>, 入<洛陽>幽<恭>, 而立<脩>.  左輔<淸河公><谷瑃>進爵太輔・上柱國.
 五月, 以<俶>公主妻<平成>. 公主, 宝齡十六. <平成>, 十五, 身長於公主. 公主臀大於<平成>. 相誇其長大而不下. 上, 笑, 曰;“大亦好, 長亦好. 吾孫必長且大矣.” <俶>, 東宮<恪>女, <銀>公主出也. <恪>, 以<平成>為嗣, 将傳大位計耳.
 <高歓>鴆殺<恭>於門下外省, 年三十五. 是, 稱<節閔帝>, <宏>之姪也. 百司會葬用殊禮.
 <平成>, 如<紅院>, 假稱帝, 命而通之. 他日, 上如<紅院>, <院>問其真假. 上曰;“彼則我也. 何有真假.” <院>曰;“吾, 亦知之, 故不敢拂矣.” 自後, <平成>数往<紅院>專其房. <院>曰;“殿下爱妾如是, 白日無情, 恐妾老而為弊履.” <平成>, 見其泣下, 而刺臂誓不相棄.

○ 4월, <곡사춘> 등이 <세륭>・<천광>・<탁률> 등을 죽여서 그 목을 <고환>에게 보냈더니, <고환>은 <락양>으로 들어가서 <공{節閔帝}>을 유폐하고 <수{孝武帝}>를 세웠다.  좌보 <청하공><곡춘>이 작위가 올라서 태보・상주국이 되었다.
 5월, <숙>공주를 <평성>의 처로 삼았는데, 공주는 16살이었다. <평성>은 15살인데 키가 공주보다 컸고, 공주는 <평성>보다 볼기가 컸다. 서로가 자신의 키가 크거나 볼기가 큰 것을 자랑하며 지려들지 않았다. 이에 상이 웃으며 이르길; “{볼기가} 커도 좋고 {키가} 커도 좋다. 내 자손은 필시 {키도} 크고 {볼기도} 크겠구나.”라 하였다. <숙>은 동궁 <각>의 딸이고 <은>공주 태생이었다. <각>은 <평성>을 후사로 삼아서 장차 보위를 물려주고자 함이었다.
 <고환>이 문하외성에서 <공>을 짐독으로 죽였다. 나이 35살이었다. 이 이를 <절민제>라 하며, <굉>의 조카이었다. 모든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각별한 예의로 장사하여 주었다.
 <평성>이, <홍원>에게로 가서, 거짓으로 제를 칭하고 명을 내려, 통정하였다. 훗날 상이 <홍원>에게로 갔더니, <원>은 진정으로 상이 왔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물었고, 상이 “그가 즉 나인데, 어찌 진짜와 거짓을 따진단 말이오.”라 답하였더니, <원>이 아뢰길; “저 역시 그리 알아서 감히 거스르지 않았었습니다.”라 하였다. 이 이후로 <평성>은 수차 <홍원>을 찾아가 독차지하여버렸더니, <원>이 말하길; “전하께서 첩을 사랑하심이 이와 같으시나, 세월은 무정하니, 첩이 나이 들면 헌신짝 같아질까 두렵습니다.”라 하였다. <평성>은, 그녀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더니만, 팔뚝을 칼로 베어서 서로 저버리지 말자고 맹서하였다.

◎ 六月, 上, 命<紅>皇后, 與<平成>如<獣林>溫宮.  太輔・上柱國<淸原公><谷瑃>薨, 年六十九. <瑃>, 以美皃事<太宗>, 為龍陽臣久居宮中, 掌大府財宝. 又以泉府令, 多鑄金・銀・銅錢. 妻・女・妹皆得上寵, 列居後宮. 權傾內外. 而為人恭謹端潔・愛人下士. 有急人恤窮之行, 戒子孫以孝友盡忠. 人稱其賢. 然, 閨門無檢, 烝報無常, 而晏然無恥. 畜財累巨万, 埋黃金為子孫, 計者百万. 計宮中, 珍宝之亦皈於<瑃>者甚多. 其先, <屛>太子之裔<張>, 皇后金尺・大綬章・七十斤金魚・玉馬等, 尙傳于家累世, 落魄貧寒而守之不賣.

○ 6월, 상이 <홍>황후에게 명하여 <평성>과 함께 <수림>의 「온궁」으로 가게 하였다.  태보・상주국이었던 <청원공><곡춘>이 나이 69살에 죽었다. <춘>은, 용모가 아름다워 <태종{=明治帝}>을 섬기게 되었으며, 용양신{男色重臣}이 되어 오랫동안 궁중에 있으면서 대부의 재물과 보화를 관리하였다. 또한, 천부령으로 있으면서 여러 번 금・은・동전을 주조하기도 하였다. 처와 딸 및 여동생도 상의 총애를 받아 후궁에 줄줄이 머물렀다. 권력이 {<곡춘>집안의} 내외{남자와 여자들}에게 쏠렸었다. 그러나, 사람됨이, 공손하며 조신하였고, 단정하고 깔끔하였으며, 다른 사람들과 아랫사람들을 아꼈고, 사정이 급한 이가 있으면 그 곤궁함을 구휼하기도 하였으며, 자손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간에는} 우애로 지내고 {나라엔} 충성을 다하라고 하였더니, 사람들이 그를 현명하다고 칭송하였었다. 하지만, 규방 문을 단속하지 않아 아래 위를 가리지 않고 치붙음이 무상하였더니, 마음 편히 먹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었다. 모은 재물도 많아서 수만금이 되었고, 황금을 땅속에 묻어두어 자손을 위한 것도 백만금이 되었으며, 따져보면 궁중의 진보들도 <춘>에게 돌아간 것이 심히 많았었다. 그의 조상은 <병>태자 후예 <장>이어서, 황후금척 및 대수장과 70근 금어 및 옥마 등을 집안에서 여러 대를 전하였고, 혼백이 쇠락하고 빈한해졌어도 그것들을 지켜냈고 팔지 않았었다.

◎ <瑃>父<蒹>得尼女為妻而生<瑃>夢<芻牟>来言;“吾, 以<鄭共>賜汝為子.” 故初名<共太守>, 賜姓名<谷瑃>. 自是, <谷>氏大興. <瑃>, 外儉內奢, 多藏美女, 畜子女数百人, 皆美麗明敏. 兄弟叔侄相婚, 不肯沆美種於外. 唯入後宮者誕龍孫而已. 女<霏>, 以上命, 下嫁<王勳>. <勳>雖通而<霏>不送精使不能娠. 上, 聞之, 責<霏>不生<勳>子, <霏>曰;“妾家女不誕<王>子, 但生<谷>氏兒, 不生他人兒. 然, 上命如此當生子.” 遂與<瑃>合而生子<彪>, 皃不類<勳>而容皃言語行動一如<瑃>. <勳>, 心知之, 曰;“此兒, 吾妻弟也.” 及<王>皇后崩, <勳>寵衰, 復入後宮與諸王子相通而娠, 不肯為<勳>妻. <勳>, 以<霏>為宮人而不能制, 但受節制而己.

○ <춘>의 아비 <겸>이 비구녀를 처로 얻어 <춘>을 낳았더니, 꿈에 <추모>가 찾아와 이르길; “내가 <정공>을 너에게 주어 아들이 되게 하겠노라.”라 하였기에, 초명을 <공태수>라 하였었고, 하사받은 성과 이름이 <곡춘>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곡>씨는 크게 일어났다. <춘>은, 밖으로는 검소해 보였어도, 내면은 호사로웠다. 집안에는 많은 미녀를 모아두어서 낳아놓은 자녀는 수백 인이 되었으며, 모두들 미려하고 명민하였다. 형제숙질 간에 서로 혼인하여 좋은 씨앗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오로지 후궁으로 들어간 이들만 황상들의 자손을 낳아 줄 뿐이었다. 딸 <비>가 상의 명령으로 <왕훈>에게 하가하였는데, 비록 <훈>이 통정하였어도 그의 정기가 이르지 못하게 하여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상이 이 말을 듣고 <비>가 <훈>의 자식을 낳지 않음을 책망하였더니, <비>가 아뢰길; “첩의 집안 딸들은 <왕>씨의 자식은 낳지 않습니다. 단지 <곡>씨의 아이를 낳을 뿐 다른 사람들의 아이는 낳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상께서 이리 명령하시니 아이를 낳겠습니다.”라 하고는, 궁리 끝에 <춘>과 합방하여 아들 <표>를 낳았다. 그 아이의 외모가 <훈>을 닮지 않았고, 그 용모와 말하는 품새나 행동거지가 <춘>과 여일하였더니, <훈>이 이를 심증으로 알아차리고 말하길; “이 아이는 내 처의 동생이오.”라 하였다. <왕>황후가 죽어 <훈>이 받는 총애가 쇠하여지매, 다시금 후궁으로 들어가서 여러 왕자들과 상통하여 아이를 낳았었으니, <훈>의 처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훈>은, <비>가 궁인이 되자, {<비>를} 다스릴 수는 없어졌고, 단지 {<비>에게} 절제를 받을 뿐이었었다.

◎ 七月, <高歓>擊<兆>取<晋陽>為大丞相府, <兆>北走<秀容>求救於<奚>王<[梪]出>. <歓>, 遣子<澄>来献錦・絹・宝玩・馬脳・赤玉等, 自稱<高婁>太子之裔, 請為臣屛. 上, 厚待, 而送之.
 <文[藏]>妻<淵華>生女<成>氏. 先是, 上, 詣<文藏>家謁<孔子>象, 而通<淵華>, 曰;“<孔>聖有知, 必賜我一子.” 至是, 生女. 上取之為公主. <華>, <義臣>所生<淵学>女也. 柔娟能文章, 與<文藏>相爱為夫婦, 先帝不能禁之. 至是, 又得上寵, 母女皆為<內翰>之重鎭. 時, 年二十二.

○ 7월, <고환>이 <조>를 치고 <진양>을 빼앗아 대승상부로 삼았고, <조>는 <수용> 땅으로 패주하여 <해>왕 <두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고환>이, 아들 <징>을 시켜서 비단과 명주 및 귀한 노리개와 마름질 한 말가죽 그리고 붉은 옥 등을 바치며, 자기는 <고루>태자의 후예라고 하면서 주변을 지키는 신하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상이 후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문장>처 <연화>가 딸 <성>씨를 낳았다. 이전에, 상이 <문장>의 집을 찾아갔다가 <공자>의 초상을 찾아뵌 연후에 <연화>와 함께 잠자리를 하며; “<공자>성인께서도 아실 것이니, 필시 내게 아들 하나를 주실 것이야.”라 하였었는데, 지금 딸을 낳았더니, 상이 그 딸을 취하여 공주로 삼았다. <연화>는 <양의신> 소생 <연학>의 딸이며, 온유하고 아리따웠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 <문장>과 서로를 아끼다가 부부가 되었더니, 선제께서도 말릴 수 없었었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또 상의 총애도 받게 되었으니, 모녀 모두가 <내한>의 중진이 된 것이었다. 이때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 十一月, <魏>葬<胡>太后. <恂>太子徃會之. 上, 與<華陽>皇后, 露袒於西殿而飮酒食肉, 曰;“吾欲生一女, 才色如汝母.” <華陽>曰;“陛下, 何言才色乎. 母, 無行, 而為衆奴輪辱終投水, 死亦被汚. 此, 豈可效也. 妾不願之. 且以悲餘, 娠子不吉.” 上, 不從, 竟抱后入帳盡日為歓, 后不敢不順. <胡>太后沈水, 為槍手輩所輪奸而救命, 終不得, 棄尸於水濱. 面目如生, 漁人納于舟中, 又淫之而取其翠山及髮. 故其言如是.
 <高歓>以女妻<脩>. 上曰;“<爾朱榮>以女妻<子攸>而見誅. <歓>, 亦學<榮>而欲見誅乎.” <隆>太子, 奏, 曰;“臣知<高歓>之為人. 不為人所圖者也. 似踈而宻, 大而小.”
 <椘雲>太后生上子<扲>太子. 上, 親洗, 慰之, 曰;“周紀之年, 生此佳兒, 雖喜而不敢言喜.” 太后, 抱帝而吻, 曰;“夫婦之楽有在於此. 汝, 何言也.” 上遂宿於太后之産側.

○ 11월, <위>가 <호>태후를 장사하였다. <순>태자가 가서 그들과 함께하였다. 상이, <화양>황후와 함께, 서쪽 전각에서 어깨를 드러낸 채로{조의를 표하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이르길; “나는 재색이 그대의 어미와 같은 딸을 하나 낳았으면 하오.”라 하였다. 이에 <화양>이 아뢰길; “폐하, 어찌 재색을 말씀하십니까? 어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떼거리 놈들에게 내돌려 능욕을 당하고 나서 물속에 던져졌으며, 죽어서도 몸이 더럽혀졌었습니다. 이러할진대, 어찌 닮을 일이겠습니까? 첩은 그리 되기를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슬픔이 남아 있는 채 자식을 잉태하면 상서롭지도 않을 것입니다.”라 하였으나, 상은 듣지 않고 후를 품어 안고 장막으로 들어가서 하루가 다하도록 합환하였으며, 후는 감히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호>태후가 물에 던져졌음은, 창을 꼬나든 무리들에게 내돌려 간음을 당하면서도 목숨은 건지고자 하였었으나, 끝내는 그리 되지도 못하고 시신으로 물가에 버려진 것이었음이고, 얼굴과 눈이 살아있는 듯하여, 어부가 거룻배 안으로 들여서 또한 음행하고는 궁둥이 살과 머리 터럭을 베어 갔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고환>이 딸을 <수>에게 처로 주었다. 이에 상이 이르길; “<이주영>이가 딸을 <자유>에게 주고 나서 죽음을 당하였는데, <환>이가 또 <영>이한테서 배우다니 죽음을 당하고 싶단 말인가!"라 하였다. 이에 <륭>태자가 아뢰길; “신이 알기에는 <고환>이는 사람됨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모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술한 듯하지만 치밀{密}하고, 능대능소{能大能小=能小能大; 두루 능란함}하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다.
 <초운>태후가 상의 아들 <금>태자를 낳았다. 상이 친히 닦아주고 위로하면서, 이르길; “환갑이 된 나이에 이리도 훌륭한 아이를 낳았으니, 비록 기쁜 일이지만 감히 기쁘다는 말을 못하겠소.”라 하였더니, 태후가 제를 껴안아 입을 맞추면서, 말하길; “부부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데, 당신은 무슨 말씀이시오?”라 하였다. 상은 못이기는 듯 태후가 아이를 낳은 곁에서 밤을 지냈다.

◎ 癸丑<大藏>三年, 春正月, 庚寅朔, 受朝於<抱真宮>. 宗室女十人當夕, 五人被幸. <宝君>太子妃<太原>公主(二九)・叔<平公>妃<謝婉(二一)>・<陸>太子 妃<繭>公主(十九)・<興孝>太子妃<平原>公主(三五)・<平成>太子妃<俶>公主 (十七). 上, 命<俶>公主, 終夜侍枕. 上, 親為受便, 愛之如珠.
 <恪>太子, 上書自辞東宮, 曰;“臣, 性懶散好遊, 不宜. 有為志在江湖. 臣子<平成>好學守禮. 請, 東 宮 之位傳之. 而臣, 欲晏居養疾, 逍遙雲外.” 上, 知其有淸寒之僻, 而不可力止, 乃以<平成>為東宮. 改封<恪>為<漢王>, 位吊宮上. 以<銀>公主為東宮正妃, <慶安>公主為<漢王>正妃, <宣婉>為<漢王>貴嬪. <正陽>公主為<王胥>妻, 爵二品.

○ 계축{단기2866/AD533}<대장>3년, 춘정월, 경인일 초하루, <포진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종실 여인 10인이 저녁을 감당하였는데, 5인이 승은을 입었다. <보군>태자비<태원>공주(29세)・숙<평공>비<사완(21세)>・<육>태자 비<{견}>공주(19세)・<흥효>태자비<평원>공주(35세)・<평성>태자비< 숙>공주(17세)였다. 상이 <숙>공주에겐 밤새도록 잠자리 시중을 들라 명하였다. 상은, 손수 변도 받아주면서, 옥구슬인양 그녀를 아껴주었다.
 <각>태자가, 글을 올려 스스로 동궁 자리를 내어놓으며, 아뢰길; “신은 성격이 나태하고 돌아다니며 놀기를 좋아하니 마땅치도 않습니다. 뜻으로 삼을 것을 강호에서 찾았습니다. 신의 자식 <평성>은 학문을 좋아하고 예의를 알고 있습니다. 동궁자리를 그 아이에게 물려주게 하여주시길 청하옵니다. 그리되면 신은 마음 편히 살면서 병을 돌보며 구름 밖을 소요하고자 하옵니다.”라 하였더니, 상은 그의 성품이 지나치게 맑고 차가움을 아는지라 힘들여 말릴 수도 없었다. <평성>을 동궁으로 삼았으며, <각>은 <한왕{漢王; 漢中?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으로 고쳐 봉하고 그 지위는 동궁보다 높게 하였으며, <은>공주는 동궁정비로, <경안>공주는 <한왕>정비로, <선완>은 <한왕>귀빈으로 삼았다. <정양>공주는, <왕서>의 처로 삼고, 2품의 작위로 하였다.

◎ 二月, 東宮, 如<鄴>, 尙<玉陵>公主[而]来. 亦<胡>太后女也. 其父, <談福>云. 或云<懌>出.
 <高歓>, 歲首, 襲<兆>大破於<赤谼岺>. <兆>, 入<竆山>, 自縊於梪. <歓>臨視而厚葬之. <慕容紹宗>, 携<榮>妻子及<兆>餘衆, 而来降<歓>, 皆厚待之, 見<榮>女<子攸>妻之美, 入其帳而通之, 曰;“臣, 蒙皇后厚恩, 當以赤忠事之.” 后曰;“未亾人, 流落至此, 願丞相憐之.” 自是, 為<歓>寵妾生子<浟>. 是為<竹>妃. 與<恭>妻<梅>妃, 皆入<歓>之後宮.

○ 2월, 동궁이 <업>으로 가서 <옥릉>공주와 혼인하여 돌아왔다. 역시 <호>태후의 딸이다. 부친은 <담복>이었는데, 혹은 <역>의 소생이라 하기도 한다.
 <고환>이 세수{년초}에 <조>를 습격하여 <적홍령>에서 크게 이겼다. <조>는 <궁산>으로 도망하여 들어갔다가 독두나무에 목매어 죽었고, <환>은 그가 죽는 것을 곁에서 확인하고 후하게 하여 묻어주었다. <모용소종>이 <이주영>의 처자와 {아들} <이주조>의 남은 무리를 데리고 <고환>에게 찾아가 항복하였더니, 모두를 후하게 대하여 주었다. {<고환>은} <이주영>의 딸인 <자유>의 처가 미모임을 보더니만 장막으로 들여서 통정하고, 말하길; “신은 황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응당 황후를 충심을 다하여 보살펴 드릴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후{<자유>의 처}가 말하길; “따라죽지 못한 사람으로 떠돌다가 이 지경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승상께서는 가련하게 여겨주시길 바랍니다.”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환>의 총첩이 되어 아들 <유>를 낳았다. 이 여인이 <죽>비이며, <공>의 처였던 <매>비와 함께 둘 다 <환>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 三月, 中畏大夫<梁義臣>, 兼吏部尙書, 掌銓選任用, 常在帝寢同起居注狐媎, 權傾內外. 時, 人言, 管當天下.
上, 微行至<峰姬>庄留歓, 而皈過<鴒山>, 見山水明媎苬草而坐, 問前村大庄乃<幸州>刺使<李義臣>家也. <義臣>, 以茂才, 得先帝寵姬<賀仙>為妻. 上, 亦甞愛<仙>, 而未及一席而離別已十余年矣, 忽思舊事, 命<龍郞>持節徃召之. 時, <仙>, 寡居, 與其子<義卿>守丧. 日暖好, 天氣春心方濃, 忽報<龍郞>持節書来. 授<仙>, 四拜伏讀, 書曰;“偶到此中, 聞卿守寡. 思念旧懷, 願與相逢一氣宿, 雲則幸何如也.” 輕裙椘服勿嫌隨来. <仙>, 見書怳惚, 顛倒而来. 上, 抱濡於林間盡歓, 曰;“起.” 曰;“吾将擇汝好夫矣.” <仙>曰;“妾子<義卿>, 年十三, 可以代其父. 妾豈生他人之子哉. 妾之夫唯, 聖上與<義卿>而己.” 上曰;“財, 可以食歟.” <仙>曰;“水耕山樵, 可免飢寒. 何求冨貴.” 上乃以<義卿>為籍圉郞, <仙>為蚕室夫人賜宅園中, 累徃幸之. <仙>, 年三十, <賀國>之女也.

○ 3월, 중외대부 <양의신>이 리부상서를 겸하게 되어 사람을 가려 뽑아 임용하는 일을 담당하더니, 항상 제의 침소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여우같은 여인들을 들여보냈더니, 권력이 내외함에 기울게 되었고, 그 시절에, 사람들은 천하를 감당해 다스린다 말하였다.
상이, 미행하여 <봉희장>에 머무르며 즐기다가 돌아오는 길에, <령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수가 밝고 지초가 하늘거림을 보더니 풀밭에 앉았고, 저 앞마을의 큰 농막에 대해 물었더니, <행주>자사 <이의신>의 집이었다. <의신>은 재주가 많아서 선제의 총희 <하선>을 처로 맞게 되었었다. 상 또한 일찍이 <선>을 애모하였으나, 자리를 함께 하기도 전에 헤어져서 이미 10여년이 지났던 터였다. 홀연 옛 일이 생각나자, <룡랑>에게 서찰을 지니고 가서 불러오라 명하였다. 이때, <하선>은 홀로되어 살면서 자신의 아들 <의경>과 함께 상청을 지키고 있었다. 햇볕은 따듯하고 날씨도 좋아 춘심이 사방에 짙었는데, 갑자기 <룡랑>이 편지를 지니고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선>에게 주어지자, 4배 한 후 엎드려 읽었고, 쓰여 있길; “우연히 이곳에 이르렀다가, 경이 홀로되어 있음을 들었소. 옛 정이 생각나니 서로 만나서 잠시 머물고 싶소. 얘기인즉 회포를 풀고 싶은데, 어찌 생각하시오?”라 되었더니, 속옷을 가뿐히 하고 고운 옷차림으로, 싫은 기색 없이 따라 나섰다. <하선>은 서찰을 보더니만 정신이 아뜩하여져서, 엎어지고 넘어지며 찾아왔고, 상은 부둥켜안고 숲 속에서 흥건하게 즐기고, 몹시 기뻐하며 “일어나보게나.”라 하였고, {또} 이르길; “내가 곧 자네에게 좋은 지아비를 골라주겠네.”라 하였더니, <하선>이 아뢰길; “첩의 아들 <의경>은 나이가 열 셋이어서, 가히 아비를 대신할 만합니다. 첩이 어찌 다른 사람의 자식을 낳겠습니까? 첩의 지아비는 오로지 성상과 <의경>뿐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이 “재물은 먹고 살만은 하였었나?”라 물었더니, <선>이 아뢰길; “무논에다 농사짓고 산에서 땔나무 하였더니, 배고픔과 추위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부귀를 구하였겠습니까?”라 하였다. 이윽고 <의경>은 적어랑으로 삼았고, <선>은 잠실부인을 삼아서 동산 가운데에다 집과 마른 땅을 주고는 누차 오가면서 승은을 내렸다. <선>의 나이는 30으로, <하국>의 딸이었다.

◎ 四月, 東宮, 與<玉陵>, 来, 言;“<脩>欲制<歓>遠結<関中>.” 上, 慮<脩>有失, 與<華陽>・<玉陵>・<平陽>等, 禱<魏>祚.
 <梁義臣>兼東宮大夫. 東宮, 爱<義臣>, 請為大夫. 上, 爱東宮, 而許之. <義臣>遂與東宮相通. 時, 朝廷, 昇平日久, 上下奢侈. 徒尙飮食, 淫乱為樂, 坐談虛. 誕惰氣彌滿, 一人作之十人食之. <太宗>之治漸衰, 識者憂之.
 <紅>皇后生<平成>女<桂雲>公主, <德陽>皇后與<平成>徃慰之. <紅>后妹<金蘭>始被<平成>幸. <繭>公主娠上女<蛾>, 上, 賜衣, 頻召入寢.
 <契丹>王<加尸突>, 出獵, 為虎所噉而死. 其妻<酢彦>欲立其子<娛尸突>, 其弟<好頓>, 為<北丹>王, 引<霫>兵来襲, 擒<酢彦>為妻, 以<娛尸突>為子. 時, <契丹>多虎傷人. 俗稱;“虎興, 則國興而不剪.”
 司農卿<王胥>進量田張八千五百卷于大府. 上與<德陽>后, 受之, 賜宴群臣, 賞量田寺技工五千余人. 凢九年而成. 命頒新稅天下均賦. 比前三倍.

○ 4월, 동궁이 <옥릉>과 함께 돌아와서 아뢰길; “<원수{=<北魏><孝武帝>}>가 <고환>을 제압하려고 멀리 있는 <관중>과 결연하였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은 <원수>의 잘못이 염려되어서, <화양>·<옥릉>·<평양> 등{<魏>에서 出嫁하여 온 여인들임}과 함께, <위> 천자의 집안이 잘 되길 신명에게 빌었다.
 <양의신>이 동궁대부를 겸하게 되었다. 동궁이 <의신>을 좋아하여 대부로 삼아달라고 청을 하였고, 상은 동궁을 아끼어 허락하였다. 이윽고, <의신>이 동궁과 통하게 되었다. 이 시절, 조정이 조용하고 평안한 나날이 오래도록 유지되었더니, 상하가 사치하였다. 단지 먹고 마시기를 밝히고, 음란하기를 즐거움으로 삼았으며, 앉아서 얘기를 나누면 헛된 것이었고, 게으른 풍조가 일어 널리 퍼져서 한 사람이 거둔 것을 열 사람이 먹어대는 격이었다. <태종{明治帝}>의 다스림이 점차 쇠락하고 있었으니, 식자들은 이를 걱정하였다.
 <홍>황후가 <평성>의 딸 <계운>공주를 낳았더니, <덕양>황후가 <평성>과 함께 찾아가서 위안하였다. <홍>후의 여동생 <금란>이 <평성>의 승은을 입기 시작하였다. <견>공주가 <상>의 딸 <아>를 임신하자, 상이 옷을 내려주고는 빈번히 잠자리로 불러들였다.
 <거란>의 왕 <가시돌>이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먹혀 죽었다. 그의 처 <초언>이 자신의 아들 <오시돌>을 세우려 하였더니, <가시돌>의 동생 <호돈>이, <북단{북거란}>왕이 되어 <습>의 군병을 이끌고 기습하여, <초언>을 사로잡아 처로 만들고, <오시돌>은 아들로 삼았다. 이 시절, <거란>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잦았는데, 세간에서는  “호랑이가 흥하여도, 나라는 흥할 뿐 갈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농경 <왕서>가 양전{좋은 밭}을 기록한 장부 8,500권을 대부에 바쳤다. 상은, <덕양>후와 함께, 이를 받고나서 군신들에게는 잔치를 베풀었으며, 양전시{좋은 밭을 만든 관청}의 기공들 5천여 사람에게는 상을 내렸다. 장장 9년에 걸쳐서 이룩한 것이었다. 명을 내려 새로운 세법을 반포하고 고르게 세금을 매겼다. 이전에 비교하니 3배가 되었다.

◎ 八月, 上, 微行, 至刑部尙書<于建忠>家, 觀稼, 對酒, 曰;“昔, 兄皇, 至<大房淸>家, 觀耕而賛之, 曰; `不意, 今日, 復見<安國公>.' 朕, 於此日, 又見<安國公>.” <[建]忠>曰;“臣, 本農夫, 故容易為此. <淸>則作之也.” 盖<淸>與<[建]忠>友好然. <建忠>質慤無文, 故其言如此, 其妻, 觧之, 曰;“<淸>之作, 藝也. 雖少而精. <建忠>之作, 力也. 雖多而麤.” <建忠>, 怒, 叱其妻, 曰;“汝, 為三子而庇<淸>邪.” 其妻, 與<淸>相通, 而生三子, 故言也. <淸>, 美容儀, 有伺意阿諛之態, 然內實剛直. <建忠>, 外朴內實, 然少有妬猜之之病. <淸>, 輒賛揚而悅其意, 以觧其慍. <建忠>, 視事不知日昃, 儉勤太過, 人皆嗤之. 不以為意公, 退私稼如未官. 時, 妻<觧淑>, 皃美而敏, 年四十六尙如少婦, 事先帝及上皆得幸, 至是又娠上子. 上, 累至其家, 寵賜不絶. 人以為妻陰.

○ 8월, 상이, 미행을 나가, 형부상서 <우건충>의 집으로 가서 농경을 돌아보았으며, 술상을 대하고, 이르길; “지난날 형황께서는 <대방청>의 집으로 가시어 농경을 살피시고 칭찬하며, 이르시길; ‘뜻하지 않게, 오늘, <안국공{安國公; 나라를 평안하게 하시는 분}>을 다시금 뵙소.’라고 말씀하셨는데, 짐도 오늘 또한 <안국공>을 뵙게 되었소.”라 하였더니, <[건]충>이 아뢰길; “신은 본디 농부였기에 이 일 하기가 용이합니다. <청>이 농사일을 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라 하였다. 개략 <청>은 <[건]충>과 우호 한 듯하였고, <건충>은 바탕이 성실하고 때가 묻지 않아{또는, <건충>은 바탕이 성실하고 학문한 것이 없어} 이리 말하였음이었다. 그런데, 그의 처가 끼어들어{또는, 이를 풀어서; 또는, <해>가} 아뢰길; “<청>은 재주로 이룬 것이어서 비록 조금을 하였어도 면밀하였고, <건충>이 해놓은 것은 힘으로 밀어댄 것이어서 설사 많은 것을 해놓았어도 거칠기만 합니다.”라 하자, 이에 <건충>은, 화가 나서 자신의 처를 질책하며, 말하길; “당신은 아들 셋 때문에 <청>이를 비호하는 거요?”라 하였다. 그의 처가 <청>과 상통하여 세 아들을 낳았었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청>은 얼굴과 행동거지가 멋있고 다른 이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비위를 맞추었으나 속으론 실속 있고 강직하였으며, <건충>은 겉도 소박하고 속으로도 실속 있어 보였으나 <건충>을 시샘하는 병이 좀 있었더니, <청>은 번번이 <건충>을 칭찬해 띄워주어서 <건충>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노여움을 풀어주었었다. <건충>은 일을 보면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근검하기가 크게 지나쳐서 다른 이들 모두가 그를 비웃었다. 공무에는 뜻이 없어 자기 집으로 퇴청하면 농사를 하였는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던 듯하였다. 이즈음, 처 <해숙>은, 얼굴도 예쁘고 영리하며, 나이가 마흔여섯 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며느리 같았다. 선제와 상을 모시면서 모두에게서 승은을 입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상의 자식을 가지게 되었더니, 상이 누차 그의 집으로 발걸음 하여 총애하길 끊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의 음덕이라 하였다./(계속)


강영구 (2008-01-17 18:22:44)  
사천 선생님, 제가 너무 바쁘게 가서 부담을 드리나 염려스럽습니다. 사실 부지런히 봐도 제 생각만큼 나아가질 않습니다.

·원년 :上, 少時, 不睨晲粉黛所幸者数人, =>睨자 하나를 빼야겠습니다.
·女謁 :1)여자가 임금의 사랑을 믿고 권세를 부려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히는 일, 2)후궁에 아첨하여 임금에 가까이하는 일
·2년 :生子之楽, 未有如今日 =>공주를 낳았기 때문에 ‘자식을 낳은 기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子<澄>為驃騎大将軍 :澄의 음을 ‘징(맑은 징)’으로 해야겠습니다.
·莫若且鎭<関中>以固根本, 分遣銳師, 與衆合勢, 進可以克, 退可以保 =>“관중에 진을 두어 근본을 굳건히 한 다음 날랜 군대를 나누어 보내 다른 무리와 합세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나아가면 이길 수 있고, 물러나더라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莫若~’이 ‘~과 같은 것은 업다. 즉 ~이 가장 좋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4월 :殿下爱妾如是白日, 無情恐妾老而為弊履 =>“전하께서 저를 이처럼 사랑하시는데, 세월이 무정하여 제가 늙으면 헌신짝 신세가 될까 두렵습니다.”라고 해석해봅니다.
6월 :唯入後宮者誕龍孫. =>용손을 ‘뛰어난 자손’이라고 풀이하였는데, ‘황제의 자손’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妾家女不誕王子, 但生<谷>氏兒, 不生他人兒.” 然, 上命如此當生子. =>비가 ‘생자’까지 말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어떨런지요. “~그러나 상께서 이처럼 명하시니 자식을 낳겠습니다.”
·11월 :上不從, 竟抱后入帳盡日. 為<歓>不敢不順. =>歡 다음에 后자가 하나 빠졌습니다. “상이 따르지 않고 마침내 후를 껴않고 장막으로 들어가 진종일 환락하니 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3년 :<陸>太子妃<{萠?}> =>여기서도 繭이 맞는 듯합니다.
2월 :崴首 =>그냥 ‘년초’로 풀이하는 게 좋겠습니다.
3월 :鳹山 ->鴒山(령산)
·曰;“吾将捀汝好天矣.” <仙>曰;“妾子<義卿>, 年十三, 可以代其父. 妾豈生他人之子哉. 妾之夫唯, 聖上與<義卿>而己.” =>말이 안 되는 해석을 하셨습니다. 여기엔 몇 개의 오자가 있습니다. 捀은 擇이고, 天은 夫입니다. 다시 바로 해석하면, “‘내가 장차 너에게 좋은 남편을 간택하여 주겠노라.’하니 <선>이 말하길 ‘저의 아들 <의경>이 나이가 13세가 되어 그 아비를 대신할만한데 제가 어찌 다른 사람의 자식을 낫겠습니까? 저의 지아비는 오로지 성상과 의경뿐입니다.’라고 했다.”
·<仙>為蚕室夫人賜宅遠, 中累徃幸之.=><仙>為蚕室夫人賜宅園中 累徃幸之.
4월 :上慮<脩>有失與<華陽>·<玉陵>·<平陽>䓁禱<魏>祚. =>“상이 수가 실수할까 염려하여 <화양>, <옥릉>, <평양> 등과 함께 <위>의 복을 빌었다.”라고 해석해봅니다. 화양, 옥릉, 평양이 모두 위 출신의 비빈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徒尙飮食淫乱為樂 =>徒가 여기서는 ‘다만, 단지’로 쓰였습니다. 尙은 ‘바라다, 추구하다’로 쓰였습니다. 즉 “단지 음식과 음란함을 즐거움으로 추구했다.”로 풀이하는 것이 어떨까요?
·坐談虛誕憎氣彌滿, =>憎이 惰를 그렇게 옮긴 것 같군요. ‘게으른 기운, 게으른 풍조’
·<□>公主娠上女<蛾> =>결자가 繭(고치 견)이군요. 고치(繭)에서 나방(蛾)이 나왔습니다.
·此田三倍. =>오자가 있습니다. ‘比前三倍’ ‘전에 비해 3배를 징수했다.’
·8월 :<建忠>之作力也. 雖多而麃 =>雖多而麤(거친 추)가 맞지 않을까 합니다. 精과 麤가 대비되는 것이지요.
·汝為三子而庇<淸>, 邪 =>邪를 붙여야겠습니다. “너는 세 자식 때문에 청을 감싸는가?”
·<淸>, 輒賛揚, 而悅其意以觧其溫 =>뒤의 溫은 慍(성내다 온)이 맞겠습니다. “<청>이 문득 (건충을) 찬양하여(칭찬을 늘어놓아)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노여움을 풀었다.”
·<建忠>, 視事不知日昃, 儉勤太過. 人皆嗤之, 不以為意公. 退私稼如未官.=>뜻에 별다른 차이는 없으나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건충>이 날이 저무는지 모르게 일을 보고 근검하고 부지런함이 지나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비웃으며 공무에 뜻을 두지 않고 사가에 오면 마치 벼슬이 없을 때처럼 농사일을 한다고 하였다.”
김성겸 (2008-01-17 20:16:37)  
강 선생님,
정말 빠르고 많은 것을 한꺼번에 살펴주십니다. 고맙습니다.
김영채 (2008-02-04 22:20:51)  
(1) 처음 : 是, 大行起居常與帝 -> 以是, 大行起居常與帝, 帝常侍側極盡 -> 帝常侍側極盡忠誠, 해석도 반영하여 합니다.
(2) 신해 대장원년 5월기사 : <慶陽>公主為東宮次妃 -> <慶安>公主為東宮次妃, 해석: <경양>공주를 동궁차비로 삼았다 -> <경안>공주를 동궁차비로 삼았다, <桂春良>為左侍中 -> <桂春良{=娘}>為左侍中, 해석 : <계춘량>을 좌시중으로 -> <계춘량{랑}>을 좌시중으로, <금원>의 <진>귀비를 소후로 삼고는 -> <금원>의 <진>귀비(관녀39{세})를 소후로 삼고는
(3) 신해 대장원년 6월기사 : <安昜>公主為琳叢大夫 -> <安昜{=陽}>公主為琳叢大夫, 해석 중 : <중의>는 <서주>에 진을 쳤으며 -> <중원>은 <서주>에 진을 쳤으며,
(4) 임자 대장2년 5월기사 : 以<淑>公主妻<平成> -> 以<俶>公主妻<平成>, <淑>, 東宮<恪>女 -> <俶>, 東宮<恪>女
(5) 임자 대장2년 6월기사 해석 : 6월, 상이 <홍>황우에게 명하여 -> 6월, 상이 <홍>황후에게 명하여
(6) 임자 대장2년 7월기사 : <奚>王<査出> -> <奚>王<梪出>, 해석: <해>왕 <사출>에게 -> <해>왕 <두출>에게, 與<文藏>相愛為夫婦 -> 與<文藏>相爱為夫婦
(7) 임자 대장2년 11월기사 : <爾朱榮>以女妻<自攸>而見誅 -> <爾朱榮>以女妻<子攸>而見誅, 夫婦楽有在於此 -> 夫婦之楽有在於此
(8) 계축 대장3년 춘정월기사 : <平成>太子妃<淑>公主(十七). 上命<淑>公主 -> <平成>太子妃<俶>公主(十七). 上命<俶>公主, 印宮之位傳 -> 以 東 宮之位傳, 位吊宮上 -> 位在 東宮上, 해석 : <숙평>공주<사완(21세)> -> <숙평공>비<사완(21세)>
(9) 계축 대장3년 2월기사 : <兆>入<竆山>自縊於<査> -> <兆>入<竆山>自縊於<梪>, 해석 : <조>는 <궁산>으로 도망하여 들어갔다가 <사{출}>과 -> <조>는 <궁산>으로 도망하여 들어갔다가 <두{출}>과
(9) 계축 대장3년 3월기사 : 微行至<峰嬉>庄留歓 -> 微行至<峰姬>庄留歓,
(10) 계축 대장3년 4월기사 : <平陽>□禱<魏>祚 -> <平陽>䓁禱<魏>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