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지리지

요사 지리지 서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2.
제(帝) 요(堯)는 천하를 가지런히 하여 9개의 주(州)로 하였다. 순(舜)은 기주(冀)와 청주(青)의 땅이 커서 유주(幽) 병주(并) 영주(營)로 나누어 12 주(州)로 하였다. 유주(幽州)는 발해(渤)와 갈석(碣)의 사이에 있고, 병주(并州)는 북쪽으로 대군(代)와 삭방(朔)이 있으며, 영주(營州)는 동쪽으로 요해(遼海)에 미친다. 그 땅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띠처럼 두르고 있고 그 백성은 창과 방패를 잡고 무위(武衛)를 떨치며 풍기(風氣)가 굳세니 예로부터 무(武)를 다스리는 땅이다. 태조(太祖)는 덕렬륵(徳哷勒, 혹은 첩랄(叠剌) 혹은 질랄(迭剌)) 부락 백성을 가지고 약니씨(約尼氏, 또는 요련씨遙輦氏)를 대신하여 림황(臨潢)에서 일어나 황도(皇都)를 건설하였다. 동쪽으로 발해(渤海)를 병탄하여 성읍 103개를 얻었다. 태종(太宗)은 후진(晉)을 세웠다. 유주(幽) 탁주(涿) 단주(檀) 계주(薊) 순주(順) 영주(營) 평주(平) 울주(蔚) 삭주(朔) 운주(雲) 응주(應) 신주(新) 규주(媯) 유주(儒) 무주(武) 환주(寰) 등의 16개 주가 있었는데, 이때에 고대의 유주(幽)와 병주(并)와 영주(營)의 지경을 빼앗아 차지한[跨]  것이다. 동쪽에 있는 왕조[朝]인 고려(髙麗)와 서쪽에 있는 신하국[臣]인 하국(夏國)과 남쪽에 있는 아들벌 나라인 석진(石晉)과 형제벌 나라인 조송(趙宋)과 오월(吳越)과 남당(南唐) 등은 바다를 항해하여 공물을 실어왔다. 아 그 성대함이여!
帝堯畫天下為九州. 舜以冀青地大, 分幽并營為州十有二. 幽州在渤碣之間, 并州北有代朔, 營州東暨遼海. 其地負山帯海, 其民執干戈, 奮武衛, 風氣剛勁, 自古為用武之地. 太祖以徳哷勒部衆代約尼氏, 起臨潢, 建皇都.., 東併渤海, 得城邑之居百有三. 太宗立晉, 有幽涿檀薊順營平蔚朔雲應新媯儒武寰十六州, 於是割古幽并營之境而跨有之. 東朝髙麗, 西臣夏國, 南子石晉而兄弟趙宋, 吳越 南唐 航海輸貢. 嘻, 其盛矣!

요국(遼國) 그 선조는 거란(契丹)이라고 한다. 원래 선비(鮮卑)의 땅으로 요택(遼澤) 가운데에 살았었다. 유관(榆關)까지 1130리가 떨어져 있고 또한 유주(幽州)까지 714리 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황룡(黄龍)을 견제하고 북쪽으로 황수(潢水)를 띠처럼 두르고 있고 랭형(冷陘)이 오른쪽을 병풍처럼 가리고 있으며 요하(遼河)가 왼쪽으로 참호처럼 되어 있다. 높은 들녘에는 느릎나무와 버드나무가 많고 아래쪽 습지에는 냇버들[蒲]과 갈대[葦]가 넉넉하다. 원위국(元魏, 북위)때에는 수백리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국(唐)에 이르러 달호리씨(達呼哩氏, 大賀氏)가 부여(扶餘)와 실위(室韋)와 해(奚)와 말갈(靺鞨)의 (영역을)  잠식하여 지방(地方) 2천 여리가 되었다. 정관(貞觀) 3년에 그 땅에 현주(玄州)를 설치하고 얼마 안되어 송막도독부(松漠都督府)를 설치하였다. 8부(部)를 세워 주(州)로 삼았으며 (각각)  자사(刺史)를 두었다. 덕제부(徳濟部, 달계부達稽部라고도 함)는 초락주(峭落州)라 하였고 혁백부(赫伯部, 흘편부紇便部라고도 함) 는 탄한주(彈汗州)라 하였고 도호부(都呼部, 독활부獨活部라고도 함) 는 무봉주(無逢州)라 하였고 방아부(芳阿部, 분아부芬阿部라고도 함)는 우릉주(羽陵州)라 하였고 도륵빈부(圖勒彬部, 돌편부突便部라고도 함)는 일련주(日連州)라 하였고 예해부(芮奚部)는 도하주(徒河州)라 하였고 탁진부(卓津部, 추근부墜斤部라고도 함)는 만단주(萬丹州)라 하였고 부부(富部, 복부伏部라고도 함)는 필려주(匹黎)와 적산주(赤山) 등 2개의 주로 하였다. 달호리씨(逹呼哩氏) 고극(庫克)로 사지절십주군사(使持節十州軍事)로 삼았다. 주(州)를 나누고 관(官)을 세운 것은 대개 으며 이때에 시작된 것이다.

遼國其先曰契丹, 本鮮卑之地, 居遼澤中.., 去榆關一千一百三十里, 去幽州又七百一十四里. 南控黄龍, 北帯潢水, 冷陘屏右, 遼河塹左. 髙原多榆柳, 下濕饒蒲葦. 在 元魏時, 有地數百里. 至唐, 達呼哩氏蠶食 扶餘 室韋 奚 靺鞨 地方二千餘里. 當 貞觀三年, 以其地置玄州. 尋置松漠都督府, 建八部為州, 置刺史.. 徳濟部曰峭落州, 赫伯部曰彈汗州, 都呼部曰無逢州, 芳阿部曰羽陵州, 圖勒彬部曰日連州, 芮奚部曰徒河州, 卓津部曰萬丹州, 富部曰 匹黎 赤山 二州. 以 逹呼哩氏 庫克 為 使持節十州軍事. 分州建官, 昉此.

오대(五代)에 이르러 영토를 개척하여 동서로 3000리가 되었다. 약니씨(約尼氏, 요련씨遙輦氏라고도 한다)는 8부를 바꾸어 달이찰부(達爾扎部, 혹은 단리개부旦利皆部)와 이사혼부(伊斯琿部, 혹은 을실활부乙室活部)와 사혼부(舍琿部, 혹은 실활부實活部)와 낙이위부(諾爾威部, 또는 납미부納尾部)와 파마부(婆摩部, 또는 빈몰부頻沒部)와 눌고제부(訥古濟部, 또는 내회계부內會雞部) 제륵금부(濟勒錦部, 혹은 집해부集解部)와 실곤부(實衮部, 또는 해올부奚嗢部)로 하고 이에 속한 현은 41개였다. 모든 부마다 자사(刺史)를 두었고 현에는 령(令)을 두었다. 태종(太宗)은 황도(皇都)를 상경(上京)으로 삼고 유주(幽州)를 승격시켜 남경(南京)으로 하였으며 남경(南京)을 고쳐 동경(東京)으로 하였다. 성종(聖宗)은 중경(中京)에 성을 쌓았다. 흥종(興宗)은 운주(雲州)을 승격시켜 서경(西京)으로 하였는데 이때에 5경(京)이 갖추어졌던 것이다. 또한 정벌하여 사로잡은 자들로 금요(襟要, 즉 요해처를 말한다)의 땅에 주를 설치하였고 (포로들이) 옛날에 살던 이름으로 (새로 설치한 주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노(私奴)들을 그 주에 투하하여 설치하기도 하였다. 전부 경(京)이 5이고 부(府)가 6이며 주(州)와 군(軍)과 성(城)이 156이고 현(縣)이 209이며 부족(部族)이 52이며 속국(屬國)이 60이니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김산(金山)과 류사(流沙)에 미치며 북쪽으로 려구하(臚朐河)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백구(白溝)에 이르니 폭원(幅員, 즉 너비) 가 1,0000리이다.
迨 五代, 闢地東西三千里. 約尼氏更八部曰 達爾扎部 伊斯琿部 舍琿部 諾爾威部 婆摩部 訥古濟部 濟勒錦部 實衮部 屬縣四十有一. 毎部設刺史, 縣置令. 太宗以皇都為上京, 升幽州為南京, 改南京為東京, 聖宗城中京, 興宗升雲州為西京, 於是五京備焉. 又以征伐俘户建州襟要之地, 多因舊居名之., 加以私奴置投下州. 總京五, 府六, 州 軍 城 百五十有六, 縣二百有九, 部族五十有二, 屬國六十. 東至于海, 西至金山, 暨于流沙, 北至臚朐河, 南至白溝, 幅員萬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