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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남당유고 고구려사초 고구려사략 제8대 신대제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6.
신대제의 이름은 백고인데 태조대제의 별자이다. 어머니는 상온의 딸 천화인 상태후이다. 의표가 영특하여 성품이 어질고 너그러워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차대제가 무도하자 백성과 신하들이 친하게 지내기를 꺼렸다. 화를 당할까봐 백고도 맥부에 사자로 갔다가 산속에 피했었다. 이때 차대가 백고를 의심해서 상후에게 "백고가 누구의 자식인가?"라고 묻자 상후가 仙帝의 자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차대가 화를 내어 백고가 태어났을때 그대는 상황 태조의 총애를 받던 후였는데 어찌 백고가 仙제의 자식이 될수있냐고 하였다. 그래서 상후와 멀리 떨어져 있던 백고는 위급해졌고 상후는 명림답부에게 도움을 청하고 차대에게 독을 먹였으나 죽지 않았다. 이에 명림답부가 차대를 죽이고 채대의 심복들을 모두 척살하였다. 이후에 즉위하게 되었다.

09. 第八世新大帝紀 제8세 신대제기

帝, 諱<伯固>, <太祖>之別子也. 母, <尙>太后, <溫>之女也. 儀表英特, 性仁恕有大志. <次大>無道, 民臣不親. 恐禍及己, 使「貊部」而不返遯于山谷. <次大>, 疑之, 問於<尙>后, 曰;“<伯固>, 誰子.” 后, 欺以為<仙帝>出. <次大>, 怒, 曰;“<伯固>生時, 汝爲上皇之寵后. 胡云<仙帝>出乎.” 遂, 與后相隔索, <伯固>甚急. 后, 乃通<明臨答夫>為援, 進毒于<次大>, 毒而未薨. <答夫>, 乃入帳中, 刺脅殺之, 秘不發喪, 捕<次大>心腹壯士, 凡十日而盡殺之. 然後, 迎帝于<淌水宮>卽位.

제의 휘는 <백고>이고, <태조>의 별자이다. 모친은 <상온>의 딸{<천화>}인 <상>태후이다. 의표는 영특하고 성품은 어질고 너그러웠으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차대>가 무도하자 백성과 신하들이 가까이 지내길 꺼려하였다. 화를 당할까 두려워 {<백고>도} <맥>부에 사자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산곡에 피해 있었다. 이에 <차대>가 <백고>를 의심하며, <상>후에게 “<백고>가 누구 자식이오?”라 물었고, 후가 <선제{仙帝}>의 자식이라고 거짓으로 아뢰었더니, <차대>가 화를 내며 “<백고>가 태어났을 때, 당신은 상황{<太祖>}의 총애를 받던 후였었는데, 어찌 <백고>가 <선제>의 자식이란 말을 하시오?”라고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니, <상>후와 멀리 떨어져 있는 <백고>는 상황이 위급하여졌다. <상>후는, <명림답부>에게는 연통하여 도움을 청하고, <차대>에게는 독이 든 음식을 먹였으나, 독을 먹고도 죽지 않았다. 이에 <답부>가 장막 안으로 들어와 <차대>를 칼질하고 졸라서 죽이고는,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였으며, <차대>의 심복 장사들을 체포하기를 열흘이나 계속하여, 마침내 모두를 척살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제를 <창수궁{=탕수궁?}>으로 맞아들여 서 즉위하게 되었다.

◎ 元年乙巳, 十一月, 右輔<箊疾>献璽于帝, 曰;“先君, 不幸棄世, 有子不肖, 天人之心皈于陛下. 願, 為億兆, 登祚.” 上, 俯伏三讓以後受寶, 登壇而受百官万民之山呼. 天日復明.  以<穆度婁>女為皇后.  <松奇>太輔, <箊疾>左輔, <尙庚>右輔. <答夫>, <淹淲>沛者, 妻以帝女.  <索頭>, <[梪]山>殂. 子<真>立, 以<裶>公主妻之.  太史<米肯>請改元<光國>. 上, 曰;“德不稱位, 猶恐背天違民. 何敢改元, 效嚬哉.”  <[梪]真>, 分其國為三部. 自<扶餘>至<烏孫>, 云.

○ 원년{단기2498년/AD165}을사, 11월, 우보 <어질>이 제에게 옥새를 바치며 아뢰길; “선군{<차대제>}께서는 불행하게 세상을 등지셨으며, 아들이 있으나 불초하여, 하늘과 사람들의 뜻이 폐하께 돌아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억조창생을 위하여 황제의 위에 오르십시오.”라 하였다. 이에 상은 부복하여 세 번을 사양한 후에 새보를 받고, 등단하여 백관과 만민의 만세를 받았다. 하늘의 해가 밝음을 되찾았다.  <목도루>의 딸을 황후로 삼았다.  <송기>를 태보로, <어질>을 좌보로, <상경>을 우보로 삼았다. <답부>는 <엄표>패자로 삼고, 제의 딸을 처로 삼아주었다.  <색두>의 <[두]산>이 죽어, 아들 <[두]진>이 섰기에, <비>공주를 처로 삼아주었다.  태사 <미긍>이 연호를 <광국>으로 바꾸자고 청을 하였더니, 상이 답하길; “덕이 제위를 칭할 만큼 되지 못하니, 오히려 하늘의 뜻을 등지고 백성의 뜻을 거스를까 걱정스럽소. 어찌 연호를 바꾸어 비웃음 사겠소!”라 하였다.  <[두]진>이 자기의 나라를 세 부로 나누었다. <부여>에서 <오손>까지였다고 한다.

◎ 二年丙午, 正月, 辛亥朔, 日食. 大赦<次大>之囚, 而兼赦<次大>之族. <次大>子<芻安>来謁請罪, 勞之, 曰;“叔父不仁妄殺無咎, 天人怒矣. 汝則無罪, 不須逃匿.” 乃賜<狗山瀨>․<豆婁谷>二所爲食邑, 號以<讓國君>. 命<答夫>緫執兵馬之権兼統<梁貊>諸國事. 位與三輔齊, 三輔之権盡皈於<答夫>. 是, 乃國相之始. <答夫>時, 稱以「輔外太大加」. <乙巴素>時, 號以「國相」.

○ 2년{단기2499년/AD166}병오, 정월, 신해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차대>가 가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풀어주고, 겸하여 <차대>의 가족들도 풀어주었다. <차대>의 아들 <추안>이 찾아와 죄 주기를 청하니, 위로하며 이르길; “숙부는 어질지 못하여 죄 없는 이들을 함부로 죽였기에 하늘과 사람들이 노하였다. 너는 죄가 없으니 쓸데없이 도망하여 숨지 말거라.”라 하고는 <구산뢰>와 <두루곡> 두 곳을 식읍으로 주었으며, <양국군>이라 불렀다. <답부>에게는 군권을 총괄하게 하였고, 겸하여 <양맥>국의 모든 정사도 맡아보게 하였다. 지위는 삼보와 나란하였으나, 삼보의 권한은 모조리 <답부>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국상」제도가 시작되었음이고, <답부>시절엔 「보외태대가」라 불렀고, <을파소>시절엔 「국상」이라 불렀다.

◎ 三年丁未, 二月, <松奇>薨. <箊疾>太輔, <尙庚>左輔, <白面>右輔, <淵合>大注簿.  <幽州><公孫域>, 自稱<玄菟>太守, 来侵<丘利>. <禾晉>擊破之.
七月, <濟>, 伐<羅>國西二城, 虜千余人[而]去. 八月, <羅>一吉飡<興宣>二万兵圍<濟>東六城, 其主自将八千勁騎掩至<漢水>. <濟>人, 大惧還其所俘, 而和.
九月, 如<卒本>祀祖庙. 十月, 還.

○ 3년{단기2500년/AD167}정미, 2월, <송기>가 죽었다. <어질>을 태보로, <상경>을 좌보로, <백면>을 우보로, <연합>을 대주부로 삼았다.  <유>주의 <공손역>이, <현도>태수를 자칭하면서, <구리>에 쳐들어왔다. <화진>이 이를 격파하였다.
7월에 <백제>가 <산라>의 서쪽 두 성에 쳐들어가 1,000여 명을 잡아갔더니, 8월에 <신라>의 일길찬 <흥선>이 2만병으로 <백제>의 동쪽 여섯 성을 포위하였고, 그의 주인이 굳센 기병 8,000을 이끌고 <한수>에 엄습하여 다다랐다. <백제>인들은 크게 두려워서 잡아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화약하였다.
9월, <졸본>으로 가서 조상의 사당에 제사하고, 10월에 돌아왔다.

◎ 四年戊申, 五月, <濟>人<都彌>來降, 置之<蒜山>.  <羅>, <継元>死, <興宣>伊飡.  <穆>后生女<玉陽>.
十二月, <禾白>・<禾晉>・<高德>・<穆巴>等, 分四道伐<幽>・<幷>二州, 驅其大姓十二家而来. 命與公卿相婚. 櫛․梭․萡․織․金․銀諸工, 使居<西河>. 經籍医薬之士, 皆授以官.
命<白面>畵<東明>像, 頒于仙院, 曰;“<芻牟>, 神而非人也. 夙興孜孜二十余年如一日. 况吾輩乎, 仙院政院一律, 夙興孜孜克己, 然後可答聖像及修鏡五十七繪卷.”

○ 4년{단기2501년/AD168}무신, 5월, <백제>사람 <도미>가 항복하여 왔기에 <산산>에 살게 하였다.  <신라>에서는 <계원>이 죽어, <흥선>이 이찬이 되었다.  <목>후가 딸 <옥양>을 낳았다.
12월, <화백>・<화진>・<고덕>・<목파> 등이 네 길로 나누어 <유주>와 <병주> 두 주를 정벌하고, 큰 성씨 12 집안을 몰아왔기에, 공경들과 서로 통혼하여 살게 하였으며, 즐사{櫛梭; 두터운 천을 짜는 일}・박직{箔織; 얇은 비단 천을 짜는 일}・금은{金銀; 금과 은을 야금하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들은 <서하>에 살게 하였고, 모든 경적{經籍}・의약{医藥} 관련 관리였던 이들에게는 관직을 주었다.
<백면>에게 <동명>의 모습을 그리게 하여 선원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르길; “<추모>께서는 신이셨지 인간이 아니시었소.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시길 20여년을 하루같이 하시었소. 나를 따르는 무리들이여! 선원과 정원 모두 하나같이 일찍 일어나 부지런 하여 자신을 극복한 연후에 성상{聖像}에 답하고{≒은혜에 보답하고} 대경 그림 57권도 닦아 나갑시다.”라 하였다.

◎ 五年己酉, 二月, <幽州>賊<喬玄>來寇<句麗城>, <禾晉>擊其軍於<河山>破之.
四月, 閱兵於<西河>, 詔曰;“兵者, 國之元氣也. 朕, 與士卒同甘苦, 以禦賊. 大小官民, 悉體此旨.”
<漢>人<耿臨>, 自稱<玄菟>太守, 與<喬玄>, 來寇<丘利>地. <禾白>, 擊退之, 獲其妻子圖釼.

○ 5년{단기2502년/AD169}기유, 2월, <유주>적 <교현>이 <구려성>에 쳐들어와 노략질하기에, <화진>이 <하산>에서 그 군대를 쳐부쉈다.
4월에 <서하>에서 열병하고, 조서로 이르길; “군병은 나라의 근본을 지키는 힘이오. 짐도 사졸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도적을 막을 것이오. 대소 관리들과 백성들 모두는 이 뜻을 새기어야 할 것이오.”라 하였다.
<한>인 <경림>이, <현도>태수를 자칭하고, <교현>과 함께, <구리>의 땅에 쳐들어와 노략질하였다. <화백>이 이를 쳐서 물리치고 그들의 처자와 인장{또는, 그림} 및 보인을 노획하였다.

◎ 六年庚戌, 正月, 以<紇>氏為宮人, <于恢>為使者. <紇>氏, <桶口王>妃也. 年五十.
三月, 丙寅晦, 日食.
十月, <濟>侵<羅>邊.

○ 6년{단기2503년/AD170}경신, 정월, <흘>씨를 궁인으로 삼고, <우회>를 사자로 삼았다. <흘>씨는 <통구>왕의 비였으며, 나이는 50이었다.
3월, 병인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10월, <백제>가 <신라>의 변경을 침략하였다.

◎ 七年辛亥, 五月, <箊疾>夢見<高福章>疾作将移水閣, <福章>子擊殺之. 朝廷難其事. 命移于<柵城>.
<尙庚>太輔, <白面>左輔, <穆崇>右輔, <陽弼>・<高衡>左・右大評者, <穆天>中宮大使者.  <羅>, 穀貴民飢.

○ 7년{단기2504년/AD171}신해, 5월, <어질>이 꿈에 <고복장>을 보고나서 병이 들어 곧 물가의 정자를 옮기려 하자, <복장>의 아들이 이를 죽였다. 조정은 이 일로 난감하였다. <책성>으로 떠나라고 명하였다.
<상경>을 태보로, <백면>을 좌보로, <목숭>을 우보로, <양필>과 <고형>을 좌・우 대평자로, <목천>을 중궁의 대사자로 삼았다.  <신라>에서는 곡식이 귀하여져서 백성들이 굶주렸다.

◎ 八年壬子, 正月, <穆>后生<晉岐>太子.  九月, <公孫域>・<耿臨>・<喬玄>等, 與<索頭>, 合兵来寇<句麗>・<盖馬>等城, 皆潰. <禾晉>自<丘利>退保<河城>, <答夫>徃<南口>淸野以待之, 不過旬月果飢而退. 此, 所謂“千里運糧勢, 不能久者.”也. 乃以勁騎七千, 擊之. <禾晉>亦至, 合擊于<坐原>, 大破之, 匹馬不得返. 是謂<坐原>大捷. 賜<答夫><坐原>地, 後改以<質山>.  是年, <羅>, <仇道>海飡, <仇須兮>一吉飡. 二月, <羅>, 大疫, 禱其祖庙.

○ 8년{단기2505년/AD172}임자, 정월, <목>후가 <진기>태자를 낳았다.  9월, <공손역>・<경림>・<교현> 등이, <색두>와 함께, 병력을 합하여 쳐들어와 <구려>・<개마>성 등을 궤멸시켰다. <화진>은 <구리>에서 물러나 <하성>을 지켰고, <답부>는 <남구>로 가서 들판을 불태워 비우고 기다리니, 불과 한 달도 아니 되어 먹을 것이 떨어지니 물러갔다. 이를 두고, “군량을 1,000여 리나 실어 날라야 할 형세라면 누구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답부>가} 굳센 기병 7천으로 몰아치고, <화진> 또한 답지하여 함께 쳐서, <좌원>에서 이들을 대파하였더니, 말 한 필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이를 두고 <좌원대첩>이라 한다. <답부>에게 <좌원>의 땅을 주었고, 후에 <질산> 땅으로 바꿔주었다.  이해에 <신라>에서는 <구도>가 해찬이 되고, <구수혜>가 일길찬이 되었다. 2월에 <신라>에서는 돌림병이 크게 돌자, 조상의 사당에 빌었다.

◎ 九年癸丑, 正月五日, 宮人<朱>氏生<延優>太子, 香滿室. 上, 大喜, 封爲<馬山宮>妃, 以其父<輅>為採供使. <輅>, <文>之別子也.  五月, <倭>女主, 與<羅>, 修好.

○ 9년{단기2506년/AD173}계축, 정월 5일에 궁인 <주>씨가 <연우>태자를 낳았는데, 방 안이 향기로 가득하였었다. 상이 크게 기뻐하며 <마산궁>비로 봉하여 주고, 그녀의 부친 <주로>를 채공사로 삼았다. <주로>는 <주문>의 별자{서자}였다.  5월, <왜>의 여주{=卑彌呼?}는 <신라>와 잘 지내기로 하였다.

◎ 十年甲寅, 正月, <尙庚>病免. <白面>太輔, <穆崇>左輔, <陽弼>右輔, <米肯>大評者. <肯>, <漢>人也. 通天文, 明<史記>, 精律令. 上, 以寡公主妻之, 遂大用能. 謙讓勤儉, 敎誨不倦.  是月, <羅>雨土, 而二月, 旱, 井水渴.  置評府・劾府・供府・採府・賓府・奴府・王子私兵府. 皆, 以大加, 領之. 次以大評・[大]劾・大供・大採・大賓・大奴・将軍等, 主其事. 乃<米肯>之奏也.

○ 10년{단기2507년/AD174}갑인, 정월, <상경>이 병들어 물러나니, <백면>을 태보로, <목숭>을 좌보로, <양필>을 우보로, <미긍>을 대평자로 삼았다. <미긍>은 <한>인인데, 천문을 달통하고, <사기>에 밝았으며, 율령에 정통하였다. 상이 홀로 된 공주를 처로 삼아주고는 그의 능력을 크게 썼다. 겸양근검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다.  이 달{정월}에 <신라>에서는 흙이 비처럼{심한 황사? 화산재?} 내렸고, 2월에는 가뭄에 우물물이 말랐다.  평부・핵부・공부・채부・빈부・노부・왕자사병부를 두었다. 모두 대가들이 수령을 맡고, 대평・[대]핵・대공・대채・대빈・대노・장군 등이 차석이 되어, 그 부의 일을 맡아보았다. 이 일 또한 <미긍>이 아뢴 것이었다.

◎ 十一年乙卯, 三月, 上, 以<玄>太子徒善而好仙, 欲立<男武>太子為東宮. <男武>曰;“不可以越兄.” 按行州邑, 至<提那>而淹留. <玄>太子徃諭, 而還.  <發岐>娶<虎川>.  <朱>氏生女<夐>.

○ 11년{단기2508년/AD175}을묘, 3월, 상이, <현>태자는 선하기는 하였으나 선(仙)하기를 좋아하기에, <남무>태자를 동궁으로 삼으려 하였더니, <남무>는 “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는 주와 읍을 두루두루 살피며 <제나>에 이르러서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으며, <현>태자가 찾아가서 알아듣도록 하였더니, 돌아왔다.  <발기>가 <호천>에게 장가를 들었다.  <주>씨가 딸 <형>을 낳았다.

◎ 十二年丙辰, 三月, 以<男武>為正胤, 后兄<穆天>為東宮大夫, <于素>東宮皂衣.  <白面>薨, 年八十, 美容儀, 善画繪. 以<尙>太后外族, 居中用事六十年, 未有一失. 人稱其難, 然, 德不普身, 器不容國, 非宰相才, 云. <穆崇>太輔, <陽弼>左輔, <高衡>右輔.  <盖婁>殂, <肖古>立.

○ 12년{단기2509년/AD176}병진, 삼월, <남무>를 정윤으로 삼고, 후의 오라비 <목천>을 동궁대부로, <우소>를 동궁 조의로 삼았다.  <백면>이 나이 80으로 죽었다. 용모와 행동거지가 가지런하였으며, 비단 폭에 그리기를 잘 하였다. <상>태후의 외가 식구로, 벼슬살이를 60년이나 하면서도, 허튼 일은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하면서도, “덕이 몸에 널리 배어있지 않고, 그릇이 나라를 담아내지 못하여 재상감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목숭>이 태보가, <양필>이 좌보가, <고형>이 우보가 되었다.  <개루>가 죽고, <초고>가 섰다.

◎ 十四年戊午, 三月, 以 東 宮 皂衣<于素>女為東宮妃. 加<素>爵為<提那>沛者.  十月, 丙子晦, 日食. 上, 泫然流涕, 曰;“朕, 以不德, 忝居寶位. 上不能孝母, 下不能慈民. 昔, 我<東明仙皇>, 日行百善而猶以為不足. 朕, 欲日行一善而不及, 豈不悲哉.” 左右悚然. 是日, 太輔<穆崇>薨, 年六十九, <弼>代之. <高衡>左輔, <穆天>右輔.

○ 14년{단기2511년/AD178}무오, 3월, 동궁 조의 <우소>의 딸을 동궁비로 삼았다. <우소>에게는 작위를 더하여 주어서 <제나>패자로 삼았다.  10월, 병자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상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이르길; “짐이 부덕하여 보위를 더럽히고 있소. 위로는 모친께 효를 다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자애롭지 못하였소. 일찍이, 우리 <동명선황>께서는 하루에 백 가지의 좋은 일을 하시고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하셨소. 짐은 하루에 한 가지의 선행을 하고자 하여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소!”라 하였다. 좌우가 송연해 하였다{송구해서 등골이 오싹했다}. 이날, 태보 <목숭>이 죽어, <양필>이 대신하게 되었고, <고형>이 좌보가, <목천>이 우보가 되었다.

◎ 十五年己未, 九月, <梁貊公>・摂政<明臨答夫>暴薨, 年五十二. 葬以<梁貊大王>・駙馬都尉之禮于<質山園>. 有膽力権智, 謀事必成. 人以為天. 得<尙>太后寵, 專國政十五年, 內外洽然.
十二月, 上, 崩於「西 都」<鸞宮>, 春秋五十九, 葬于<故國谷>. 上, 寬厚好仁, 喜聞<漢>人經籍, 擇師而講. 欲行聖人之治, 而権委於<尙>太后・<明臨答夫>, 故不得如意而終. 惜哉.

○ 15년{단기2512년/AD179}기미, 9월, <양맥공>이며 섭정이었던 <명림답부>가 나이 52살에 갑자기 죽어, <양맥대왕>․부마도위의 예를 갖추어서 <질산원>에 장사하였다. 담력 있고 권도{위급 시에는 변통하는}의 지략이 있어서, 도모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었다. 사람들이 하늘처럼 여겼다. <상>태후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15년이나 도맡아 보았는데, 도성 안팎 모두가 흡족해 하였다.
12월, 상이 「서도」의 <란궁>에서 춘추 59세로 죽어, <고국곡>에 장사했다. 상은, 너그럽고 어질었으며, <한>인들의 경적 내용을 즐겨 들었고, 스승을 두어 강의하게 하였으며, 성인의 다스림을 펼치고 싶어 하였으나, 정사를 <상>태후와 <명림답부>에게 위임하였던 까닭에, 뜻과 같이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서글픈 일이었다.//


김영채 (2007-10-14 22:12:01)  
9년기사 : "<延優>太子" -> "<延優>太子"입니다.
김성겸 (2007-10-15 09:26:36)  
고맙습니다.!
강영구 (2008-01-26 14:39:24)  
·<次大>無道, 民臣不親 恐禍及己 使{貊}部而不返, 遯于山谷 =>‘<차대>가 무도하여 백성과 신하가 친부하지 못했다.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 맥부에 사자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산곡으로 숨었다.’
· 與后相隔索, <伯固>甚急 <상>후와 멀리 떨어져 있는 <백고>의 상황이 위급하여졌다.=>與后相隔 索<伯固>甚急 ‘후와 사이가 멀어졌고, <백고>를 찾는 것이 매우 급박해졌다.’
·원년 :“先君, 不幸棄世. 有子不肖, 天人之心歸于陛下. 願, 爲億兆登祚. 上俯伏三讓以後受寶, 登壇而受百官万民之山呼>.” 天日復明 =><어질>이 한 말은 登祚에서 끝나므로 여기까지 따옴표를 해야 합니다. ‘“~ 원컨대 억조창생을 위하여 황제 위에 오르십시오.”하고 말했다. 상은 부복하여 세 번 사양한 후에 옥새를 받고 단에 올라 백관과 만민의 산호를 받았고, 하늘의 태양이 다시 밝아졌다.’
·11년 :按行州邑, 至<提那>而淹留. <玄>太子往諭而還. 섬마을로 피해나가 <제나>에 꼭꼭 숨어있었다. <현>태자가 찾아가서 명을 전하고 돌아왔다. =>‘안행’은 ‘살피면서 가다’라는 뜻이고, ‘엄류’는 ‘오래 머물다. 체류하다’는 의미이며, 여기서 주어는 <남무>이므로 ‘환’은 ‘<남무>가 돌아왔다’는 의미를 살려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주읍을 살피며 행하다가 제나에 이르러 오래도록 머물렀다. <현>태자가 가서 깨우치게 하자(좋은 말로 달래자) 돌아왔다.’
·12년 :人稱其難. 然, 德不普身, 器不容國, 非宰相才=>사람들이 매우 힘든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덕이 보신하지 못하고 기량이 용국하지 못해 재상감은 아니라고 했다.
·14년 : 豈不悲哉. 슬퍼할 줄도 몰랐소 =>어찌 슬프지 않겠소!
김성겸 (2008-01-27 00:33:00)  
고맙습니다.
김영채 (2008-05-10 21:28:03)  
(1) 12년기사 해석 : 후의 오라비 <목천>을 동궁대가로 -> 후의 오라비 <목천>을 동궁대부로
(2) 14년기사 : 十四年戊午, 三月, 印宮皂衣<于素>女為東宮妃 -> 十四年戊午, 三月, 以 東 宮皂衣<于素>女為東宮妃
김성겸 (2008-06-05 17:53:42)  
김 영채 선생님, 고맙습니다.

바로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