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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남당유고 고구려사략 고구려사초 제13대 서천대제기西川大帝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7.
동천왕이 영토를 빼앗겨 동쪽으로 후퇴하였고 점차적으로 서진하여 중천왕 서천왕에 이르렀다.
임금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는데 미천왕 때에 잃었던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였으니 美를 붙였다.
서천대제의 첫호칭은 약노대왕이고 그의 이름은 약우였다. 중천제의 둘재 아들이다. 어머니는 연태후이다. 백성들이 아끼는 사람들을 서천대제도 좋아하였기에 백성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서천대제의 원년은 경인년(AD270)이다. 겨울 10월에 졸본으로 가서 시조사당에 배알을 했다. 2년은 신묘년(AD271)이다. 봄 1월에 우씨를 황후로 세웠다. 9월에 상루는 국상의 자리를 거절하였다. 겨울 12월에 지진이 있었다. 3년은 임진년(AD272)이다. 봄 1월에 농사와 뽕치기를 장려하였다. 6월에 가물었다. 11월에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4년은 계사년(AD273)이다. 가을 7월 정유일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전년에 가물었으므로 흉년이 들어 진휼하였다. 5년은 갑오년이다. 가을 8월에 유화성모의 신묘에 제사를 지냈다. 서진국(晉)이 유주의 5군을 평주로 삼았다. ......

14. 第十三世 西川大帝紀 제13세 서천대제기

帝, 初號<薬盧大王>, 諱<若友>, <中川帝>苐二子. 母, 曰<椽>太后. [性]寛聰悟, 愛民好士, 國人愛敬之.

제는, 초호가 <약노대왕{薬盧大王}> 휘는 <약우{若友}>이며, <중천제{中川帝}> 둘째 아들이고, 모친은 <연{椽=椽葉}>태후이다. [성품은] 너그럽고 후덕하였으며 총기 있고 영민하였다. 백성을 아끼고 뜻있는 인사들{또는, 선비나 武士들}을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 元年庚寅, 冬十月, 與<椽>太后, 如<卒本>謁始祖廟而還.

○ 원년{단기2603년/AD270}경인, 동10월, <연{椽}>태후와 함께 <졸본{卒本}>으로 가서 시조 사당을 배알하고 돌아왔다.

◎ 二年辛卯, 春正月, 立<于>氏為皇后. 后, 「西部」大使者<于漱>之女也. 明美善歌且有孝友之行. 十四入太子宮, 善事<椽>太后. 至是, 登坤, 干預國定.  秋七月, 國相<陰友>薨. 上問;“誰可代卿.” <友>曰;“國有三輔, 可決大政. 所謂國相, 調節其間者. 臣子<尙婁>代臣為政者久矣. 可以任事.” 上, 乃命<尙婁>代之, <尙婁>固辞不出. 群臣, 亦皆以為無如<尙婁>, 待其服閱. 九月, <尙婁>, 辞之不得, 登相府視事.  冬十二月, 地震. 京, 人畜多害. 禁酒.  <朱>后生<芬>太子.

○ 2년{단기2604년/AD271}신묘, 춘정월, <우>씨를 황후로 세웠다. 후는 <서부>대사자 <우수>의 딸인데, 명랑하고 노래를 잘하였으며, 또한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다. 14살에 태자궁에 들어와서, <연>태후를 잘 모셨으며, 지금에 와서 곤위에 올랐고, 국정을 간예하였다.  추7월, 국상 <음우>가 죽었다. 상이 “누가 경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를 물었을 때, <음우>가 답하였기를; “나라엔 3보{三輔}가 있으니 중대한 정사를 처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국상{國相} 자리는 그들의 의견을 사이에서 조절하는 자리이옵니다. 신의 자식 <상루>가 신을 대신하여 정사를 보아준 지 오래되었으니, 그 일을 맡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었다. 이에, 상이 <상루>에게 대신하라 하였더니, <상루>는 고사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군신들 또한 모두가, <상루>만한 이가 없다고 여겨, 그가 관복 입고 문서들을 열람하기를 기다렸다.  9월에도 <상루>는 고사하다가 할 수 없이 상부{相府}에 등청하여 일을 살폈다.  동12월, 지진이 있었다. 경도의 사람과 가축들이 많이 상하였다. 금주하였다.  <주>후가 <분>태자를 낳았다.

◎ 三年壬辰, 春正月, 詔曰;“農・桑, 國之大本也. 昔, 我<芻牟>神皇, 親播鳩麥, 垂範万世, 從今以徃. 朕當親耤, 皇后親蚕.” 命有司考典序儀.  夏四月, 霜害穀.  六月, 大旱. ㉮<于>皇后曰;“吾夫妻耤蚕而祀先農. 而反不如他年, 奈何.” 帝曰;“但恨誠不足, 不敢有怨尤.”
{㉯<于>皇后曰;“吾夫妻, 耤蚕而祀, 先農而反, 不如他年, 奈何. 帝曰;“但恨誠不足, 不敢有怨尤.”}
十一月, <百濟>伐<新羅>.  <伊鹿肥>入朝, 以<雲>公主妻之.

○ 3년{단기2605년/AD272}임진, 춘정월, 조서를 내려 이르길; “농사와 양뽕 기르기는 나라의 큰 기본이오. 옛적에 우리 <추모>신황께서는 비둘기{가 물어 온} 보리를 친히 파종하시어 만세에 모범이 되시었고, 지금에 이르렀소. 짐도 직접 밭을 갈고 황후도 손수 양잠을 할 것이오.”라 하고는, 관리에게 명하여 제반 기록을 근거하여 방법과 순서를 살피게 하였다.  하4월에 서리가 내려 곡물이 해를 입었고, 6월엔 가뭄이 심하였다. ㉮<우>황후가 아뢰길; “우리 부처가 밭 갈기와 뽕 가꾸기를 하고 선농{<신농>께} 제사도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다른 해보다 못하니{서리가 내리고 가물어서 흉년이 듦}, 어떻게 된 일이죠?”라 하니, 제가 이르길 “다만 {우리의} 정성이 부족한 것을 탓할 것이지, 감히 {하늘을} 원망하거나{怨天} {다른 이를} 탓할 수 있겠소{尤人}?”라 하였다.
{㉯<우>황후가 아뢰길; “우리 부처가 밭 갈고 누에치기를 하고나서 제사하였습니다. 농사일을 먼저 하여 반대로 되었던 것이 다른 해와는 달랐습니다. 어쩌지요?”라 하니, 제가 이르길; “단지 정성이 부족하였음을 한 할 뿐이지, 감히 그것{순서가 뒤바뀐 것} 탓은 아닐 것이오.”라 하였다.}
11월, <백제>가 <신라>를 쳤다.  <이록비>가 입조하였기에, <운>공주를 처로 삼아주었다.

◎ 四年癸巳, 秋七月, 丁酉朔, 日食. 發倉賑民.

○ 4년{단기2606년/AD273}계사, 추7월, 정유일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였다.

◎ 五年甲午, 秋八月, 祀<柳花>聖母神庙.  <晉>分<幽州>五郡為<平州>; 一云, <笵陽>・<上谷>・<北平>及<遼西>. 而一云, <昌黎>・<遼東>・<帶方>・<楽浪>・<玄菟>. 然, 此等地皆已非<晉>之有也. 虗設校尉・太守・叅軍, 不亦可笑乎.

○ 5년{단기2607년/AD274}갑오, 추8월, <유화>성모의 신묘에 제사하였다.  <{서}진>이 <유주>의 다섯 군을 떼어내어 <평주>로 삼았다; 일설엔 <범양>・<상곡>・<북평>과 <요서>을 말하고, 또 다른 설에는 <창려>・<요동>・<대방>・<낙랑>・<현도> 등을 말하고 있으나, 이들 모두는 이미 <진>의 땅이 아니었었다. 교위・태수・참군을 허설(虗設)한 것이었으니, 또한 웃을 일 아니겠는가?

◎ 六年乙未, 春二月, 上親耤園中, <于>皇后・<椽>太后親蚕宮中. 分遣田官于「五部」, 敎以農・畜之事.  秋九月, 王弟<逸友>矯詔殺沛者<苟仁>, 上以至親免其死.
<應鹿>次子<伊鹿肥>為<索頭>主.

○ 6년{단기2608년/AD275}을미, 춘2월, 상이 친히 과수원에서 땅을 갈고, <우>황후와 <연>태후는 궁중에서 친잠하였다. 「5부{동・서・남・북・중부}」에 전관{농사 기술관리}을 나누어 보내서 농・축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추9월, 왕인 동생 <일우>가 거짓 조서를 내세워 패자 <구인>을 죽였는데, 상은 지친이라 하여 죽음을 면케 해주었다.
<응록>의 차자 <이록비>가 <색두>의 주인이 되었다.

◎ 七年丙申, 夏四月, 如<柵城>, 巡視<新城>, 與太后・皇后, 獲白鹿. 帝以爲太后之力, 太后以爲皇后之力. 八月, 還都.  九月, 神雀集宮殿.  上, 聞<末{曷}>不修宮室, 曰;“政在愛民, 不在宮・宮室.” 命書其言示<雉葛>太子, 為民父母者當如此.

○ 7년{단기2609년/AD276}병신, 하4월, <책성>으로 가서 <신성>을 순시하고, 태후 및 황후와 더불어 흰 사슴을 잡았다. 제는 태후가 애썼기 때문이라 하였고, 태후는 황후가 애썼기 때문이라 하였다. 8월에 환도하였다.  9월엔 신작이 궁전에 몰려들었다.  상이 <말{갈}>은 궁실을 꾸미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르길; “정사는 백성을 돌보는 것이지 궁{임금}이나 궁실{임금의 여자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라 하고는, 그 말을 글로 써서 <치갈>태자에게 백성들의 부모가 된 자는 응당 이렇게 해야 함을 알리라 명하였다.

◎ 八年丁酉, 春正月, 以民饑, 禁宮中酒事.  五月, 畋于<倭山>, 宴父老.  秋[八]月, <檀林>新宮成, 搆以香木・玉石.

○ 8년{단기2610년/AD277}정유, 춘정월, 백성들이 굶주리기에, 궁중에서도 술판 벌이는 일을 금하였다.  5월, <왜산>에서 사냥하여 부로{어버이와 노인 또는 마을 유지}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추8월, <단림>의 새 궁이 완성되었다. 향나무와 옥석으로 치장되었다.

◎ 九年戊戌, 春正月, 上, 與后妃, 夜宴, 有霹歷之聲, 火光如狗飛入<咄固>太子寢殿. 太史<于先>奏, 曰;“<天狼星>落于宮中, 必生貴子. 是年十月, <乙>氏生<乙弗>, 五雲繞室而香. <乙弗>, 豊雋奇傑. 人多稱之.  四月, <羅>有暴風拔木. -十月, <濟>攻<羅><槐谷城>圍之. 甚急<羅>, 以海飡<正源>領兵, 救之.  以<術>公主妻<穆秫>, <于術>出也.

○ 9년{단기2611년/AD278}무술, 춘정월. 상이 후・비 들과 밤에 연회를 하는 중, 벽력소리가 나면서 작은 개 모양의 불빛이 <돌고>태자의 침전으로 날아들었다. 태사 <우선>이 아뢰길; “<천랑성>이 궁중으로 떨어졌으니, 반드시 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해 10월에 <을>씨 가 <을불>을 낳았더니, 오색구름이 궁실을 감싸고 향기가 있었다. <을불>은 체구가 풍성하고 기이하게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4월, <신라>에서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고, 10월엔 <백제>가 <신라>의 <괴곡성>을 공격하여 에워싸니, 형세가 심히 위급한 <신라>는 해찬 <정원>을 시켜 병사를 이끌고 가서 이를 구하였다.  <술>공주를 <목출>의 처로 주었는데, <우술>의 소생이었다.

◎ 十一年庚子, 冬十月, <肃愼>來侵屠害邊民. 上, 謂群臣, 曰;“朕, 以不德謬襲邦基. 德不能綏, 威不能震, 致此隣敵. 思得将才, 誰其可乎.” 群臣曰;“王弟<達賈>之智勇, 足以當此.” 上, 乃使<達賈>徃伐之. <達賈>, 出寄掩擊, 拔其<檀盧城>. 女将<祖環>戰死, 年三十一. 乃殺其酋長, 遷其六百余家于<扶餘>南<烏川>, 以降部落七所為附庸.

○ 11년{단기2613년/AD280}경자, 동10월, <숙신>이 쳐들어와 변방 백성을 도륙하여 해쳤다. 이에 상이 군신들에게 말하길; “짐이 부덕하여{나라를 온전히 건사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이 없어서} 나라의 기틀을 잘못 계승하고 있음이오. 덕은 {나라를} 편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나라 밖에} 떨치지 못하여, 이웃한 적을 불러들인 것이오. 장수 될 사람을 찾고 있는데, 누가 적절하겠소?”라 물으니, 군신들이 아뢰길; “왕제인 <달가>의 지략과 용맹이면 이 일에 족히 합당할 것입니다.”라 답하였다. 그리하여 상이 <달가>에게 가서 무찌르라 하였다. <달가>는 조용히 출병하고 엄격하여 그들의 <단노성>을 빼앗았다. {이 싸움에서} 여자 장수 <조환>이 전사하였는데, 서른 한 살이었다. 마침내 그곳의 추장을 죽이고, 그곳에 있던 600여 가를 <부여> 남쪽인 <오천>으로 옮겨 살게 하였으며, 항복한 부락 일곱 곳은 부용토록 하였다.

◎ <達賈>, 本<玉帽>之子, 故宗室不遇. 至是, 上, 用之, 立大功, 故封為<安國君>・使知內外兵馬事兼統<梁貊>・<肃愼>之諸部落.(<梁貊>ㆍ<肃愼>,名雖不同,皆是<末曷>之族.居<嫩河>者謂之<梁貊>,居<西伯利>者<肃愼>也).  初, <達賈>将之<梁貊>引<咄固>而偕徃. 上, 抱<乙弗>于膝, 而送之. <乙弗>, 三歲, 能言必大捷, 故上以初勝地<戞河>為<乙弗邑>, 令<咄固>理之.
<羅>, 旱, 錄囚.

○ <달가>는, 근본이 <옥모>의 소생이어, 종실들이 대우하여 주지 않았었다. 이때가 되어서 상이 등용하니,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그 공로로 <안국군>・사지내외병마사가  되었으며 <양맥>과 <숙신>의 모든 부락도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애초에, <달가>는 <양맥>으로 떠날 때 <돌고>를 함께 데리고 갔다. 상은 <을불>을  품에 안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전송하였다. <을불>은 3살이었는데도 필히 크게 이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첫 싸움에서 얻은 땅 <알하>를 <을불읍>으로 삼고 <돌고>가 직접 다스리게 하였다. (<양맥>과 <숙신>은 이름은 달라도, 모두 <말갈>족이고, <눈하>에 살고 있는 이들은 <양맥>이고, <서백리>에 살고 있는 이들은 <숙신>이다).
<신라>에서는 가뭄이 들자 죄수들을 다시 심사하였다.

◎ 十二年辛丑, 正月, 以<乙>氏為<檀林宮>主, <乙弗>為太子.
<羅>, <弘權>伊伐飡, <良質>一吉飡, <光謙>沙飡. 二月, 謁廟. 九月, 大閱<楊山>西.

○ 12년{단기2614년/AD281}신축, 정월, <을>씨를 <단림궁>주로, <을불>을 태자로 삼았다.
<신라>에서는 <홍권>을 이찬, <양질>을 일길찬, <광겸>을 사찬으로 삼았고, 2월엔 조묘를 참배하고, 9월엔 <양산{안휘성과 강소성 경계지역}> 서쪽에서 크게 군사를 사열하였다.

◎ 十三年壬寅, 秋九月, 行<東明祭>于<卒本>.  <張華>遣使来朝, <馬韓>及附於<華>.  <芻牟鏡>七十卷新成.

○ 13년{단기2615년/AD282}임인, 추9월, <졸본>에서 <동명제>를 지냈다.  <장화>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자, <마한>은 <장화>에게 붙기에 이르렀다.  <추모경> 70권을 새로이 꾸몄다.

◎ 十四年癸卯, 夏五月, 命<雉葛>巡視<梁貊>.  九月, <濟>, 侵<羅>邊, 十月圍其<槐谷城>. 命一吉飡<良質>禦之.

○ 14년{단기2616년/AD283}계묘, 하5월, <치갈>에게 명하여 <양맥>을 순시하게 하였다.
9월 <백제>가 <신라>의 변방을 침입하더니 10월엔 <괴곡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일길찬 <양질>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 十五年甲辰, 二月, <方回>・<大發>為<乙弗>師.  營<西川宮>.  十月, <羅>, <味鄒>殂. <助賁>子<儒禮>嗣之. 其母, <朴>氏(葛文王<奈音>女)甞夜行, 星光入口而娠, 云.

○ 15년{단기2617년/AD284}갑진, 2월, <방회>・<대발>이 <을불>의 스승이 되었다.  <서천궁>을 지었다.  10월, <신라>에서는 <미추>가 죽었다. <조분>의 아들 <유례>가 그 뒤를 이었는데, 그의 어미는 <박>씨(갈문왕<내음>녀)였는데, 일찍이 야행 중에 별빛이 입{구멍}으로 들어와 생겼다 한다.

◎ 十六年乙巳, 春正月, <灌奴>于台<椽吉>進大虎雌雄, 命圉人育字之.  <朱>后崩, 春秋八十二. 事帝有儀, 執志甚堅. 后, 鑑中人也.
<卑離王><依慮>為<慕容廆>所敗而自殺, 其屬来奔于<咄固>. 命賜羊安之. 時, <慕容剛>被殺, 故<廆>以<涉皈>之子<継>統其衆.(<涉皈>,<廆>母之後夫.< 継>,<廆>母之出也). <廆>以其母為妻.  二月, <儒禮>, 以<弘權>為舒弗邯, 委以機務.  三月, 伐<帶方>, <濟>人来救, 移攻<濟>城拔其二.
駙馬<穆秫>, 論皇子私兵之弊, 請罷之, 不聼.

○ 16년{단기2618년/AD285}을사, 춘정월, <관노> 우태 <연길>이 큰 호랑이 암 수 한 쌍을 바쳐 와서, 짐승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먹이를 주어서 기르게 하였다.  <주>후가 춘추 82세에 죽었다. 제를 섬김에 법도가 있었고, 뜻을 지킴이 매우 강하였다. 후는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비리왕><의려>가 <모용외>에게 패하여 자살하자, 그 권속들은 <돌고>에게로 도망하여 왔다. 양을 나누어 주고 안주토록 하였다. 그 시절 <모용강>이 피살되자, <모용외>는 <섭귀>의 아들 <계>가 그 무리를 이끌게 하였다(<섭귀>,<외>모지후부.<계>,<외>모지출야). <외>는 자신의 어미를 처로 삼았다.  2월, <유례>가 <홍권>을 서불감으로 삼고 기무를 맡겼다.  3월에 <대방>을 쳤더니 <백제>사람들이 달려와서 구원하기에, 공격을 <백제>로 돌려 그들의 성 두 개를 빼앗았다.
부마 <목출>이 황자 사병들의 폐단을 거론하며 그들의 사병을 없애길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十七年丙午, 正月, 以<于先>為<乙弗>師, 敎以<孝經>. <乙弗>, 年九歲能騎射, 一日請于上, 曰;“徒尙武而不知禮, 必如<逸友>. 請, 習禮而知孝.” 乃有是命.
<濟>, 欲抗我, 而媎<羅>, 質女以修和.
二月, 賜弟<逸友>・<素勃>死. 二人, 皆以不倫之出, 驕傲成習. 上累責之, 不悛. 自去来以年, 與其黨謀反, 稱病而徃溫泉, 戱樂無節, 出言悖逆. 故僞許拜相而召之, 執而誅其黨(<逸友>同母,<素勃>同父).  三月, <羅>旱.
十一月, <濟>, <古爾>殂. 子<責稽>立, 身長大而志氣雄傑. 葺<尉禮城>・<阿旦城>・<蛇川城>, 以備我. <責稽>妻<宝果>, <帶方>女, 故救<帶方>而抗我者也.

○ 17년{단기2619년/AD286}병오, 정월, <우선>을 <을불>의 스승으로 삼아서 <효경>을 가르쳤다. <을불>은 나이 아홉 살에 능히 말 타고 활쏘기{騎射}를 하였으며, 하루는 상께 아뢰길 “무{武}만을 숭상하고 예{禮}를 모르면 꼭 <일우> 같아집니다. 예{禮}를 익히고 효{孝}를 배우고 싶습니다.”라 하였더니, 그리 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백제>는 우리에게 대항하려고 <신라>를 서방질하면서 딸을 인질로 보내어 화친하였다.
2월, 아우 <일우>와 <소발>에게 죽음을 내렸다. 이들 둘은 모두 불륜의 자식이었고, 교만방자하고 버릇없기가 습성이 되어 있어서, 상이 여러 번 이를 질책하였으나 뉘우치지는 않았다. 스스로들 년 중 오가면서 자기들의 무리와 반역을 모의하였으며, 칭병하고 온천으로 가더니 희락함에 절제함이 없었고 내뱉는 말은 패역하였다. 이런 까닭에, 거짓으로 그에게 재상의 자리를 준다고 하여 불러들여 붙잡았고, 그 무리들도 주살하였다.(<일우>동모,<소발>동부).  3월, <신라>가 가물었다. 
11월, <백제>에서는 <고이>가 죽었다. 그의 아들 <책계>가 섰는데,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으며, 의지와 기개가 크게 뛰어났다. <위례성>・<아단성>・<사천성>을 수리하여 우리를 대비하였다. <책계>는, 처가 <대방>왕의 딸이어서, <대방>을 편들고 우리에게 덤볐던 것이다.

◎ 十八年丁未, 正月, <咄固>為<梁貊>校尉.  <卑離><依羅>, 與<晋><賈沈>, 伐<廆>斬<孫丁>而復其旧地, 請援於<咄固>故遣<貊>助之. 四月, <倭>, 襲<羅><一禮>燒之, 虜千余人而去.

○ 18년{단기2620년/AD287}정미, 정월, <돌고>를 <양맥>교위로 삼았다.  <비리>의 <의라>가, <{서}진>의 <가침>과 함께, <외>를 정벌하여 <손정>을 참하고 옛 땅을 회복하였으며, <돌고>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맥>을 보내서 도왔다. 4월, <왜>가 <신라>의 <일례>{성}을 습격하여 불태우고 1,000여 사람을 붙잡아 돌아갔다.

◎ 十九年戊申, 四月, 幸<柵城>, 營<新城>. 古柵頹落故也.  <海谷>太守<尙介宝>献鯨目, 夜有光.  八月, 東狩獲白鹿. 九月, 地震. 十一月, 自<新城>還.

○ 19년{단기2621년/AD288}무신, 4월, <책성>에 거둥하여 <신성>을 {새로} 고쳤다. 옛 성책이 퇴락하였기 때문이었다.  <[동]해곡>의 태수 <상개보>가 고래눈알을 바쳤는데, 어두워지면 빛이 났다.  8월, 동쪽으로 수렵을 나가서 흰 사슴을 사로잡았는데, 9월엔 지진이 있었다. 11월에 <신성>에서 돌아왔다.

◎ 二十年己酉, 正月, <卑離><依羅>入朝.  五月, <倭>寇<羅>.  九月, 幸<西川>觀稼, 賜父老酒.

○ 20년{단기2622년/AD289}기유, 정월, <비리>의 <의라>가 입조하였다.  5월, <왜>가 <신라>를 노략하였다.  9월, <서천>에 거둥하여 농사를 살피고, 부로(父老)들에게 술을 내렸다.

◎ 二十一年庚戌, 正月, 與<于>后, 入<西川宮>「溫湯」.  五月, <羅>大水<月城>頹毁.  <馬韓>七國来附.

○ 21년{단기2623년/AD290}경술, 정월, <우>후와 함께 <서천궁>「온탕」에 들었다.  5월, <신라>에서는 홍수가 나서 <월성>이 무너져 내렸다.  <마한>의 일곱 나라가 찾아와서 귀부하였다.

◎ 二十二年辛亥, 正月, <加耶>・<馬韓>等十二國, 来朝.  五月, 上幸<安國君>第. 君, 與妃, 作農立於泥中, 故賜宴慰之. 君, 累請<雉葛>暗昏, 不可継位. 上, 知之而惑於<于>后, 不能廢.  <羅>, <末仇>二伐飡, 忠貞有智略.  <加洛>, <麻品>殂. 子<今勿>立(是為<德王>).

○ 22년{단기2624년/AD291}신해, 정월, <가야>와 <마한> 등 열 두 나라가 찾아와 입조하였다.  5월, 상이 <안국군>의 집에 거둥하였더니, <안국군>은, 비와 함께, 농사일을 하면서 진창 가운데 서있었기에,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안국군>은, <치갈>은 어리석고 둔하니 보위를 잇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누차 청하였다. 상도, 이를 알고 있었으나, <우>후에게 미혹되어서 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말구>가 이벌찬이 되었는데, 위인이 충정하고 지략도 있었다.  <가락>에서는 <마품>이 죽어, 아들 <금물>이 섰다(시위<덕왕>).

◎ 二十三年壬子, 二月, 上暴崩于<西川宮>, 春秋五十三, 葬于<西川陵>.

○ 23년{단기2625년/AD292}임자, 2월, 상이 <서천궁>에서 갑자기 죽었다. 춘추 53세였고, <서천릉>에 장사하였다.//


김영채 (2007-10-27 22:37:34)      
(1) 처음기사 : “惟貫厚聰悟” -> “惟寛厚聰悟”
(2) 2년기사 : “登相府親事” -> “登相府視事”
(3) 3년기사 : “<芻牟>神皇” -> “昔我<芻牟>神皇”
(4) 7년기사 : “聞<末曷>不修宮室” -> “聞<末芻>不修宮室”
(5) 9년기사 : “有霹靂之聲” -> “有霹歷之聲”
(6) 11년기사 : “梁貊肅愼名不用皆先末曷之族” -> “梁貊肅愼名雖不同皆是末曷之族”
(7) 11년 해석기사 중 : “상이 <돌고>를 품안에 안았다가 {토닥거려서?} 보내주었다. <돌고>는 세 살 적에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두겠다고” -> “상이 <을불>를 품안에 안았다가 {토닥거려서?} 보내주었다. <을불>은 세 살 적에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두겠다고”
(8) 16년기사 : “十六年己巳” -> “十六年乙巳”, 해석 중 “16년{단기2618년/AD285}기사” -> “16년{단기2618년/AD285}을사”
(9) 19년기사 해석 중 : “<해곡>의 태수가” -> “<해곡>의 태수 <상개보>가”
김성겸 (2007-10-28 10:48:56)      
고맙습니다.
강영구 (2008-01-29 15:19:34)      
·원년 : 待其服閱 관복 입은 채로 도열하여 기다렸다. =>‘그의 服閱을 기다렸다.’ 服은 ‘승복하다’로서 ‘받아들이다’의 의미로, 閱은 ‘들어가다’는 뜻이 있으니 여기서는 ‘참여하다’의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그가 국상 자리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렸다.’
·3년 :吾夫妻耤蚕而祀. 先農而反, 不如他年, 奈何.” 帝曰; “但恨誠不足, 不敢有怨尤우리 부처가 밭 갈기와 뽕 가꾸기를 하고나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농사일을 먼저 하여 반대로 되었던 것이 다른 해와는 달랐습니다. 어쩌지요?”라 하니, 제가 이르길; “단지 정성이 부족하였음을 한 할 뿐이지, 감히 그것{순서가 뒤바뀐 것}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 부부가 적잠하고 제사를 올리며 먼저 농사를 하였는데(백성이 농사일을 하기 전에 솔선수범한 것) 도리어 다른 해보다 못하니(서리가 내리고 가물어서 흉년임) 어떻게 된 일이죠?’ 하니 제가 이르길 ‘다만 (우리의) 정성이 부족한 것을 탓할 것이지, 감히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이를) 탓하겠소?’라고 하였다. (怨尤는 不怨天, 不尤人에서 온 말입니다)
·11년 :朕以不德, 謬襲邦基. 德, 不能綏威不能震致此隣敵짐이 부덕하여{나라를 온전히 건사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이 모자라서} 나라의 터전이 잘못된 습격을 받게 되었고, 있는 덕이라곤 가까이 있는 이 적을 미리 겁주지도 못하고 떨게 하지도 못하였소.
=>朕以不德, 謬襲邦基. 德不能綏, 威不能震, 致此隣敵 ‘짐이 부덕하여 나라의 기틀을 잘못 계승하고 있습니다.(여기서 襲을 ‘계승하다’로 풀이) 덕은 (나라를) 편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나라 밖에) 떨치지 못해 이웃한 적을 불러들였습니다. ~’
·初, <達賈>將之<梁{貊}>, 引<咄固>而偕往, 上抱<乙弗>于膝而送之. <乙弗>, 三歲, 能言必大捷, 애초에 <달가>는 <양맥>으로 가서 <돌고>를 데리고 함께 가려고 하였었는데, 상이 <을불>을 품안에 안았다가 {토닥거려서?} 보내주었다. <을불>은 세 살 적에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두겠다고 말 한 적이 있었던 까닭에,
=>해석이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듭니다. 이 문장은 <달가>가 양맥(숙신)을 쳐부수러 가기 직전의 장면입니다. ‘애초에 <달가>가 장차 <양맥>으로 떠나려 할 때 <돌고>를 이끌고 같이 가려고 했다. 상이 (그때) <을불>을 무릎 위에 품고 있으면서 전송했다. <을불>이 (이때) 3살이었는데, 반드시 크게 이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乙弗>三歲能言 言必大捷이라고 했으면 더 명료할 것 그랬습니다.
·17년 :稱病而往溫泉戱樂, 無節出言{悖}逆. =>稱病而往溫泉 戱樂無節 出言{悖}逆 ‘희락에 절제가 없고, 출언이 패역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김성겸 (2008-01-30 01:13:11)      
확인이 늦었습니다.
월말에 생업이 몰리는지라, 미처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실에 나가서 조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 선생님!
김영채 (2008-05-17 13:32:16)      
처음부분이 삭제 되었네요

帝, 初號<薬盧大王>, 諱<若友>, <中川帝>苐二子. 母, 曰<椽>太后. 惟寛聰悟, 愛民好士, 國人愛敬之.
제의 초호는 <약노대왕>이고, 휘는 <약우>이며, <중천제>의 둘째 아들이고, 모친은 <연{椽葉}>태후이다. 오직 너그럽고 후덕하였으며 총기 있고 영민하였다. 백성을 아끼고 뜻있는 인사들을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 元年庚寅, 冬十月, 與<椽>太后, 如<卒本>謁始祖廟而還.
○ 원년{단기2603년/AD270}경인, 동10월, <연>태후를 데리고 <졸본>으로 가서, 시조 사당을 배알하고 돌아왔다.
김성겸 (2008-06-05 18:39:43)      
김 영채 선생님, 고맙습니다.

채워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