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셔서 부담이 되긴 합니다만, 최소한 열심히는 하여보겠읍니다.
이번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이는 몇 글자를 충분히 해득하지 못하여 어려움이 많았읍니다.
대략 읽어보시면 표시가 날 것아오니, 도움을 주시길 앙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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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世<大武神帝>紀
◎元年戊子, 十一月,改元<大武>. 以<多勿候><松義>爲太輔主民. 以母<松>后爲太后. 以妃<珍>公主爲皇后. 如<龍山>告卽位. 時年二十五.
◎원년(단기2361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로 고쳤다. <다물후><송의>를 태보로 삼아 민생을 주관하게 하였다. 모친인 <송>후를 태후로 올렸다. 비(처)인 <진>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 해에 나이 25세였다.
◎二年己巳, 正月, 皇后生子<大解>,大赦天下. <汗南>旱蝗,民飢來投者千餘戶,賑恤而置之<西河>. 十二月,大鍊兵馬于<汗>濱. <烏婁>右輔主兵, <松屋勾><沸流>沛者主刑, <溫祚>改國號曰<伯濟>. 以<解婁>爲太輔,案<解素>之次子也. <帶弗>以<帶素>女<高耶>爲后.
◎2년(단기2362년/AD29)기사, 정월, 황후가 아들 <대해>를 낳았기에, 천하의 죄수들을 크게 풀어주었다. <한남>이 가물고 메뚜기 피해로 인하여 백성들이 굶게되어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천여호가 되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서하>에서 살도록 하였다. 12월, <한>수 가에서 병마 훈련을 크게 하였다. <오루>를 우보로 삼아 군사를 주관케 하고, <송옥구>는 <비류>패자를 삼아 형벌을 주관케 하였다. <온조>가 나라이름을 <백제>로 바꾸었다. <해루>를 태보로 삼았는데, <해소>의 아들일 것이다. <대불>이 <대소>의 딸 <고야>를 후로 삼았다.
◎三年庚寅, 三月,納<烏婁>女爲第三皇后, 其母<藍>公主也. 十一月,鍊兵于<沸流水>上,得白熱大鼎,一軍飽食又得負鼎者.
◎3년(단기2363년/AD30)경인, 3월, <오루>의 딸을 받아들여 제3의 황후로 삼았는데, 그녀의 모친은 <람>공주이다. 11월, <비류수> 상류에서 크게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마침) 흰빛으로 작열하는 큰 솥을 얻게되어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였으며, 이 솥을 지고다닐 사람도 얻었다.
◎四年辛卯,十二月,以右輔<乙豆智>爲行軍大注簿,親征<東扶餘>,至<利勿林(□得利界)>宿夜,聞金聲,使人尋之,得金璽 인等兵物. <高婁>曰:"天賜也.", 上拜受之. 翌日,得<北溟>人<怪由>爲先鋒,<赤谷>人<麻盧>爲遊擊進援括街( 遠)<松江(通江)>. 是年上納<芻殼素>妻爲大 夫人.
◎4년(단기2364년/AD31)신묘, 12월, 우보 <을두지>를 행군대주부로 삼고, 친히 <동부여>를 정벌하려 <이물림(□得利界)>에 이르러 밤을 지내는데, 쇠붙이 소리가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더니, 금새(금도장)와 보검 등 병물을 얻었다. <고루>가: "하늘이 내려 준 것이다."라 하니, 상은 엎드려 받았다. 다음날, <북명>사람 <괴유>를 얻어 선봉으로 삼고, <적곡>사람 <마로>를 얻어 유격으로 삼아 <송강(通江)>으로 나아가는 길을 도맡아 돕게 하였다. 이 해에 상은 <추각?소>의 처를 받아들여 대보부인으로 삼았다.
◎五年壬辰, 二月, 進軍於<柵城>之南, 營于高丘, 四面泥 , 人馬俱沒于泥中. <高婁>太子軍與<帶弗>戰于泥中, 太子立於軍前督軍, 中流矢而落馬, 兵不能, 故不能救之. 上召<怪由>命救之,<怪由>拔인號吼越泥擊之, 一軍賴鎰力直衝本陣, 執<帶弗>斬頭而出, 餘衆驚潰. <帶万>軍亦披靡而退己, 而知其兄死, 號哭誓死而進諸軍, 圍高丘數 .
◎5년(단기2365년/AD32)임진, 2월, <책성>의 남쪽까지 진군하여 높은 언덕에 진영을 차렸는데, 사면이 진창이어 인마가 모두 진창에 갇히게 되었다. <고루>태자의 군대가 진창 속에서 <대불>과 맞붙어 싸웠는데, 태자가 군대의 앞에 서서 싸움을 독려하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이 <괴유>를 불러 태자를 구하라 명하니, <괴유>는 칼을 빼어들고 크게 고함지르며 진탕 속으로 들어가 <대불>의 군사를 무찌르니, 한 무리의 군사들이 이에 힘입어 적의 본진을 곧바로 들이쳐서, <대불>을 잡아 목을 치고 내닫자, 나머지 (<대불>의) 군사들은 놀라서 무너졌다. <대만>의 군대도 아수라장에서 물러나더니만, 자기의 형이 죽은 것을 알고는 호곡하면서 죽기를 맹세하고 모든 군사를 진격시켜 그 높은 언덕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上憂 曰:"恨,不用溫祚之諫." <乙豆智>曰: "聖母之神必有陰助, 陛下勿憂." 果然, 大霧七日, 不辨 尺, <帶万>恐有變, 而少退, 乃立萬偶疑兵于營而潛. 天且凍泥得脫其圍暗夜, 倉皇失神馬大鼎及至<利勿>, 兵飢不興得野戰, 而槁軍旣歸北都.
◎상이 걱정스러워 하며 "<온조>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하니, <을두지>가 답하길: "성모신이 반드시 하늘에서 도울 것이니, 폐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 했다. 과연, 칠일간이나 큰 안개가 끼어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고, <대만>도 불리한 일이 있을까 걱정하여 좀 물러나서 병사의 모습을 닮은 수많은 허수아비를 진영에 세워놓고 잠적하였다. 하늘(날씨)의 도움으로 진창이 얼어붙어 야밤에 그 포위망을 벗어났는데, 창황 중에 신마와 큰솥, 그리고 <이물림>에서 얻은 (귀한) 것들까지 잃었고, 병사들도 굶주려 싸움을 북돋울 수도 없게 되어, 피로에 지친 군사를 북도(북쪽 도성)로 물러나게 하였다.
◎宴赴戰將卒數日, 吊死問疾, 慰其父母曰: "朕以不德,輕罰<扶余>,難殺<帶弗>,未滅其國,多失我軍,朕之過也." 國人感帝德義,皆許殺身於國事. 稱曰朱留民志以爲國士之本義.
◎(상은) 전장에 임했던 장졸들에게 수일간 편안케 하여 주고, 죽은 이를 조문하고 상한 이를 찾아, 그 부모들을 위로하여 말하길: "짐이 부덕하여, <부여>를 가벼이 벌하려 하였더니, <대불>을 죽이는 것도 힘들었고, 그 나라는 멸하지도 못하였으며, 우리의 군사도 많이 잃었다. 짐의 과오이다." 하였다. 나라의 사람들은 황제의 덕의에 감복하여, 모두가 나랏일에 몸바칠 것을 원하였다. 대저, 백성의 나라를 위하는 뜻을 살피는 것이 벼슬하는 이들의 본분이라!
◎葬<高婁>太子于<桂>后陵. 上謂<珍>皇后曰: "<桂>后母子爲國而死. 生子當如<桂>后." <珍>后曰: "爲人妻子皆欲爲夫而死. 陛下棄妾而遠征, 妾焉得死乎. 上笑曰:"汝乃再生之人,不亦可愛乎." <珍>以<召>后之出, 容 絶美, 性媚 要寵, 而己初爲<解明>妻, 而不死不勤守寡. 上,十歲以嚴命娶之生子女,雖有外華,皆近不肖,故上言如是.
◎<고루>태자를 <계>후릉 안에 장사했다. 상이 <진>황후에게 이르길: "<계>후 모자는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살아있는 이들은 마땅히 <계>후에게 가봐야 한다." 하니, <진>후 왈: "사람이라면 처자들은 모두 지아비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그냥 놔두고 원정에 나서셨습니다, 제가 죽기를 바라십니까?"라 하였고, 상은 웃으며 말하길: "그대는 다시 사는 사람이니, 다시 사랑받을 만하지 아니하오?" <진>후는 <소>후의 소생인데, 그 용모가 출중하고 성품도 애교가 있어 총애를 탐하였다. 처음엔 <해명>의 처가 되었다가, 따라 죽거나 과부로 수절하지도 아니하였다. 상이 십년간(?) 엄명으로 그녀를 취하여 자녀를 낳게 하니, 오히려 겉모양은 화려해졌고, 가까운 모든이에게 볼성사납게 처신하여, 상이 이렇게 이른 것이다.
◎三月,**失馬<巨婁>將<扶余>馬百匹俱至<鶴盤岺><車回谷>,**上出郊迎之. 撫而慰之曰馬至,而鼎不歸耶. 夏四月,<曷思王><山解>,<解素>之子也, 知國之將亡, 與從者百余人至<鴨 谷(街津口)>, 見<海頭王(末曷酋長)>出獵, 而請同獵, <海頭>傲而無禮, 遂殺之而取其百姓, 請都于<曷>濱(□得利), 以治<河>北<布倫(水名)>之地(<海頭>之故地), 許之. <解素>,聖母所生<蛙>王之子也, 常諫<帶素>之無道, 而庇我及其沒次子<解婁>. 歸我,而輔<溫祚>. <山海>亦至是而歸, 以女納後宮, 以其艶而有德封爲皇后, 皇后身香而皎潔如魚, 得傳上寵.
◎3월, **잃었던 말 <거루>가 <부여>말 백마리를 이끌고** <학반령><거회곡>에 도착한다 하기에 상이 교외로 이 맞으러 나갔다. 말의 갈기를 어루만지며 말하길: "말은 돌아왔는데, 그 솥은 돌아오지 않는구나."라 하였다. 여름 4월, <갈사왕> <산해>가, <해소>의 아들인데, 자기의 나라가 곧 망할 것을 알고는 따르는 자 백여명과 함께 <압록곡(가진구)>에 이르니, <해두왕(말갈추장)>이 사냥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함께 사냥하자 청하였더니, <해두>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백성도 빼앗았다. <갈>수 가에 도읍하면서 <하>북의 <포륜>땅을 다스리며 살고싶다 청하기에, 허락하였다. <해소>는 성모와 <와>왕 사이에서 생긴 아들인데, 늘상 <대소>가 무도하다고 간하면서, 우리와 이미 죽은 둘째 아들 <해루>를 바교하다가, 우리에게 귀의하였기에 <온조>를 도우라고 붙여주었다. <산해> 역시 이 때에 귀의하여 딸을 후궁으로 바쳤다. 그녀는 요염하기도 하지만 덕망스러워 황후로 삼았는데, 몸이 향내가 나고 살결도 물고기 같이 희고 깨끗하여 상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
◎七月, <曷思王>從弟<絡文(<解素>弟<解万>亦聖母所生也.<絡文>,<解万> 子)>亦將万余人來降曰願爲聖人之民,上出郊迎之,待以賓禮,尋封爲安西大王,置之< 那部(勾茶國地西豊開原)>. 時<東扶余>大亂自相殘滅. 十月, '征<余>將軍'<怪由>卒. <由>以巨力之人,<柵>南之戰,身被重創,至是卒. 以一品大加,禮葬于<北溟山>陽(黑河省佛山).
◎7월, <갈사왕>의 종제인 <락문(<해소>제<해만>역성모소생야.<낙문>,<해만>자)> 또한 만여명을 이끌고 찾아와 항복하며 성인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여 달라고 청하니, 상이 교외로 나가 맞이하여 손님으로 대접하고, <안서대왕>으로 삼아서 <연나부>에 살게 하였다. 이때 <동부여>에서는 큰 난리로 서로를 잔인하게 죽였다. 10월, '정<여>장군' <괴유>가 죽었다. <괴유>는 힘이 엄청 센 사람이어, <책성> 남쪽에서 전쟁할 때, 창을 여러 개나 맞았었는데, 이제와서야 죽었다. 1품 대가의 예로써 <북명산(흑하성불산)> 남쪽에 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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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癸巳, 正月, <思曷>后生子<好童>. 十一月, 遣使□漢(出/求)兵□□□□□□□史記等書□□通□之□.
◎6년(단기2366년/AD33)계사, 정월, <사갈>후가 아들 <호동>을 낳았다. 11월, --이하 해득 불능 ---
◎七年甲午, 五月, <松>太后崩, 春秋六十七. 后, <松讓>之女. <光明帝>自<扶余>時, 依於后家. <義>薦之, 及卽位. 納之, 而生<都助>·<解明>·帝及<解邑朱>·諸公主, 端麗有德, 好神仙, 善畵, 能樂, 以淡素養之. 十月, □□病□□□子<純>降於秀□□死.
◎7년(단기2367년/AD34)갑오, 5월, <송>태후가 죽었다. 춘추 67세이었다. 후(后)는 <송양>의 딸이다. <광명제>가 <부여>에서 나와 후의 집에 의탁한 적이 있다. <송의>가 그(대명제)를 천거하여 즉위하였고, (<송>태후는) 불려들어가서 <도조>, <해명>, 현 황제(대무), <해읍주> 등과 여러 공주를 낳았다. 용모와 품행이 단려하고 덕성스러웠으며, 신선에 탐닉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에 능하였는데, 담담소박하게 할 뿐이었다. 10월, --이하 해득 불능---. **
◎九年丙申, 十月, <蓋馬>主<小 >妻<半乙>殺< >而立子<叔乙>. < >子<厚滿><狗文>等相爭, <厚滿>先入城殺<叔乙>, <半乙>與<狗文>潛通而納之. <厚滿>來奔,上親征誅<狗文>,以其國爲<蓋馬郡>. 十二月, <勾茶王><厚燐>聞<蓋馬>滅,擧國來降. <厚潾>,<閃尼>子也., 以其< 那部>讓於<絡文>, 而陰有反意, 反< >死. 授<狗文>而約伐<西河><南口>, 事發而國除, 以其都爲南蘇(□□□), 西路皆拓.
太輔<松義>薨, <松>太后胞兄也. 其母<貫貝>氏, 勸<松讓>獻國, 或<義>以忠, <義>守其母訓,爲國盡忠,持身儉約, 歷事三世,德望蘇然, 勝於父矣. 以其弟<屋句>爲左輔, <乙豆智>太輔, <麻勁>右輔. <勁>,<摩離>子也.
<蓋馬>反衆與<漢人>來侵<句麗城(林西)>, <玄 >太守<勾芻>往救, 疾作而薨, <松屋勾>代之而平之(劉秀使吳漢滅蜀□公□□夷其族).
◎9년(단기2369년/AD36)병신, 10월, <개마>주인 <소쾌>의 처 <반을>이 <쾌>를 죽이고 아들 <숙을>을 세웠다. <쾌>의 아들인 <후만>과 <구문>은 서로 다투었는데, <후만>이 먼저 입성하여 <숙을>을 죽이니, <반을>은, <구문>과 밀통하고는, <구문>을 받아들였다. <후만>이 도망하여 오자, 상은 친히 <구문>을 정벌하고, <개마국>을 <개마군>으로 삼았다. 12월, <구다>와 <후린>이 <개마>가 멸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후린>은 <섬니>의 아들이고, <연나부>를 <락문>에게 넘겼는데, 속으로는 뒤집을 생각이 있었고, <쾌>에 반하다 죽었다. <구문>에게 넘겨주면서 <서하>와 <남구>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였었으나, 일이 생겨서 나라가 사라졌고, 그 도읍도 <남소>가 되어, 서쪽으로 길을 열었다.
태보 <송의>가 죽었는데, <송>태후의 동복 오라비였다. 그의 모친 <관패>씨는 <송양>에게 나라를 (고구리에) 바치라 권하였었고, <송의>가 충성스러워서, 모친의 훈계를 잘 지켜,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자신은 검약하여, 삼대가 벼슬을 하였고 덕망이 소연하여, 아비를 능가하였다. 그의 동생 <옥구>는 좌보가 되고, <을두지>는 태보가 되었으며, <마경>은 우보가 되었다. <마경>은 <마리>의 아들이다.
<개마>의 반중과 <한인>이 함께 <구려성(임서)>에 쳐들어 왔는데, <현토>태수 <구추>가 달려가서 구하다가, 병이 나서 죽으니, <송옥구>가 대신하여 싸워서 이를 평정하였다(유수사오한멸촉□공□□이기족).
◎十年丁酉,七月,<漢>兵又猝至<丘利城(□倫上)>, 上親至<南口>督戰. <屋句>曰被今盜賊蜂起,何暇,無名之戰哉. 此皆邊將之窺利,擅侵也.待其師老,而出寄破之必矣,乃入<蔚岩(卓리克國)>,而斷其來路,賊拔<盖馬(開魯)>而馳至圍<蔚岩>數里. 日加,而兵益多盖,以爲城中無水,而攻之愈急也. 乃用<豆智>計,以魚酒饋之,賊知有水而退. 時,上,自<南口>來援, 夾擊大破之. 是謂<蔚岩大戰>. 賊慮其中斷, 而不直至<南口>與小城, 虛勞而致敗, <盖馬>諸城悉平.
冬,<溫祚>傳位<多婁>.
◎10년(단기2370년/AD37)정유, 7월, <한>의 병사들이 <구리성(□윤상)>에 갑자기 밀려들었다. 상이 친히 <남구>에 나아가 독전하였다. <옥구>가 말하길;** "지금 저 도적들이 일어난 것은 하도 심심하여 일으킨, 별볼일 없는 싸움이며, 이런 싸움은 대개 변방 장수가 (자신의) 이득을 엿보면서** 제멋대로(조정의 뜻과 무관한) 침입한 것이니, 저쪽 군사들의 사기가 무디어지길 기다렸다가 나아가 갑자기 쳐부수면 되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리고는 <울암(탁리극국)>으로 들어가 그들이 들어올 길을 끊었다. 적은 <개마(개로)>를 뭉개고 나서 치달아와 <울암>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해는 뜨거워지는데, 병사들은 엄청 두터운 군복을 입고 있었고, 성 안에는 물이 별로 없었으니, 저들을 공격하는 것이 급하게 되었다. <을두지>의 계략을 쓰기로 하고, 적에게 물고기 안주와 술을 가져다 주니, 적들은 성 안에 물이 많은 줄로 알고 물러났다. (때마침) 이때 상이 <남구>로부터 구원하러 왔기에, 협격하여 적들을 크게 쳐부쉈다. 이름하여 <울암대전>이라 한다. 적도들은 더 이상 <남구>와 작은 성들로 곧바로 쳐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적들은 애쓰고도 패배하였으니, <개마>의 여러 성들은 저절로 평안하여 졌다.
겨울, <온조>가 <다루>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十三年更子,四月,<乙豆智>薨. <松屋句>太輔, <摩勁>左輔, <烏婁>右輔. 七月, <買溝谷>人<尙須>與其弟<尉須>堂弟<于刀>等, 率衆千餘,牛馬萬餘頭, 而來謁, 以<尙須>爲大畜大加. <買溝谷>卽<水谷城(柳河界)>也.
◎13년(단기2373년/AD40)경자, 4월, <을두지>가 죽었다. <송옥구>를 태보로, <마경>을 좌보로, <오루>를 우보로 삼았다. 7월, <매구곡>사람 <상수>와 친동생인 <위수>및 종제인 <우도> 등이 천여명의 사람들과 우마 만여마리를 끌고 와서 알현하기에 <상수>를 '큰짐승대가'로 삼았다. <매구곡>은 곧 <수곡성(유하계)>이다.
◎十四年辛丑, 冬十一月, 有雷無雪. 是歲<淹><호>大漲, <彌鄒忽>盡被水害, 移其民於<西河>, 以<淹호王><虎力>爲<龍山公>. 初<芻牟帝>,以<沸流>,爲<沸流>沛者,食其邑. <光明>初,進封王. 娶<曼>公主, 生< 人>, < 人>娶<眞>公主, 生<虎力>. 三世六十七年, 而國除. 以<涉得>爲<紫蒙王>, <得><臣>之子也. 其母<乙蒸>賢, 敎<得>以禮義爲人忠厚. 上, 以<紫蒙>反復無常, 遣<得>治之. <烏>皇后生子<解憂>.
◎14년(단기2374년/AD41)신축, 겨울11월, 천둥은 치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 해에 <엄>수와 <호>수가 크게 불어나, <미추홀>이 수해로 초토화 되어, 백성들을 <서하>로 옮기야 되었기에, <엄호왕>인 <호력>을 <용산공>으로 삼았다. 초에 <추모>제 시절, <비류>는 <비류>패자에게 식읍으로 주었었는데, <광명>초에는 봉왕되었었다. <만>공주와 혼인하여 <양인>을 낳았고, <양인>은 <진>공주와 혼인하여 <호력>을 낳았다. 3대 67년만에 나라의 문이 닫혔다. <섭득>을 <자몽왕>으로 삼았는데, <득>은 <신>의 아들이다. 그 모친 <을증>이 현명하여 <득>을 교육하였더니 예의를 알고 충성심이 두터웠다. 상이, <자몽>은 등돌리기를 밥먹듯 하여 <득>을 보내 다스리도록 하였다. <오>황후가 아들 <해우>를 낳았다.
◎十五年壬寅,三月, 黜大加<仇都><逸苟><焚永>等爲庶人. 三人皆以<召>皇后舊臣,奪人妻妾財貨,恣其□慾人皆忿死以致洪水. 使<沸流國>除, 法當斬誅, 以其爲<東明>舊臣, 不忍極法, 放爲庶人. 以南部使者<鄒殼素>爲<沸流部>長(順奴沛者也)以化之. 九月,行<東明大祭>于<龍山>. <多婁>獻<汗南>故地, 而南下, 遣兵伐<新羅>, 以助<多婁>.
◎15년(단기2375년/AD42)임인, 3월, 쫓겨난 대가 <구도>, <일구>, <번영> 등을 서인(벼슬없는 평민)으로 만들었다. 세 사람은 모두 <소>황후의 옛 신하이었는데, 타인들의 처첩, 재화 등을 강탈하여, ??그 죄와 탐욕이 자심하고, (이꼴을 당한) 사람들 모두는 울화통이 터져 죽는 것이 마치 홍수와 같아서,?? <비류국>에게 이들을 다스리라 하였으나, 법에 따르면 목베어 죽일 일인데 <동명>의 옛 신하는 극형을 면하게 되어있어, 서인으로 놓아주게 된 것이었다. 남부사자 <추각소>를 <비류부>의 우두머리(순노패자야)로 삼아 이들을 깨우치게 하였다. 9월, <용산>에서 <동명대제>를 지냈다. <다루>가 <한남>의 옛땅을 (고구리에) 바치고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하기에,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쳐서, <다루>를 도왔다.
◎十七年甲辰,七月, 小<松>太后崩. <松>太后之妹而上之乳母也. 上長於后,以后五女皆爲妃. 春秋六十八.
◎17년(단기2377년/AD44)갑진, 7월, 작은 <송>태후가 죽었다. <송>태후의 여동생으로 상의 유모였다. 상은 이 작은 <송>태후의 품에서 자랐고, 작은 <송>태후는 딸이 다섯이 있었는데 모두 비가 되었다. 춘추 68세였다.
◎二十年丁未,三月,<樂浪>反,上親征其都<沃沮(浦鹽斯德之尼古里,高麗之吉州也)>拔之,<崔理>北走<南沃沮(鴨滿界)>. <蠶支落>部<戴升>反屬于<漢>. 本<盖馬>臣也. 奸巧無比, 往來<赤城><蠶支落><河間>,而蠶食<盖馬>者也.
◎이십년(단기2380년/AD47)정미, 3월, <낙랑>이 배반하여, 상이 친히 그 도읍인 <옥저(포염사덕지니고리,고려지길주야)>를 뿌리뽑으니, <최리>가 <남옥저(압만계)>로 패주하였다. <잠지락>부의 <대승>이 배반하고 <한>으로 갔다. 본래 <개마>국의 신하였었는데, 간교하기가 비할 데 없어, <적성>,<잠지락>,<하간>을 오가더니 <개마>국을 잠식하였다.
◎二十一年戊申, 四月, <曷思>后生<再思>태자. <松屋句>薨. <麻勁>太輔, <烏婁>左輔, <松보>右輔.
◎21년(단기2381년/AD48)무신, 4월, <갈사>후가 <재사>태자를 낳았다. <송옥구>가 죽었다. <마경>을 태보로, <오루>를 좌보로, <송보>를 우보로 삼았다.
◎二十二年乙酉,正月, 遣將軍<于刀><烏義>等伐<戴升>于<潛支落河(□□河)>柵(犬汶塔拉)斬于柵南(奈曼王府)進援<赤城><蠶支(□場)>, 遂率<紫蒙>王<滿離斯古><涉得>等分四道進功<右北平><漁陽><上谷><太原>等地奪其寶玩美色絹織珍味等多數. 歲以爲常<蔡 >大 約修年貢乞和. 是年<호花>太后生於<柵城>, <玉文>女也. 母<高耶>,<帶素>女也.
◎22년(단기2382년/AD49)을묘, 정월, 장군 <우도>와 <오의> 등을 보내 <잠지락하>의 목책에서 <대승>을 쳐부숴 목책의 남쪽에서 <대승>의 목을 베고, 진격하여 <적성>과 <잠지>를 돕고는, <자몽>왕 <만리사고>와 <섭득> 등을 이끌고 네 갈래로 나누어 진격하여 <우북평>,<어양>,<상곡>,<태원> 등을 쳐서 그곳의 보물, 놀이개, 미색, 비단, 진미 등 다수를 빼앗았다. 이 시절, <채동>은 늘상 크게 두려운 나머지 매년 조공하기로 약속하고 화친을 구걸하였다.
이 해에 <호화>태후가 <柵城>에서 출생하였는데, 즉 <옥문>의 딸이고, 모친은 <대소>의 딸인 <고야>이다.
◎二十四年辛亥,三月,東部雹. <扶余>太師<王文>卒. <加順><當覃>等作亂, 上遣<松보><絡寄>定其亂, 而擒其女主<高耶>爲后. <東扶余>四十七國, 皆爲國土. 自<解夫婁>歷<金蛙><帶素><高耶>四世, 百十年而國除. 中間<帶弗>竊位十九年.
◎24년(단기2384년/AD51)시해, 삼월, 동부에 우박이 내렸다. <부여>태사 <왕문>이 죽었다. <가순>과 <당담> 등이 반란을 일으켰기에, 상이 <송보>와 <락기>를 보내 평정하고, 여주인 <고야>를 잡아다 후로 삼았다. <동부여> 47개 마을 모두는 (고구리의) 국토가 되었다. <해부루>로부터 시작하여 <금와>, <대소>, <고야>에 이르기까지 4대를 전하여 110년을 이어오다가 나라의 문이 닫혔는데, 중간에 <대불>이 왕자리를 19년간 훔친 적이 있었다.
◎二十七年甲寅,四月, <好童>太子將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女爲之破鼓角而迎, 王師大軍自<沃沮(尼古□)>浮海而入拔其都, 虜<崔理>夫妻而歸, 以其地爲<竹苓郡>. <樂浪>自<柴吉>四世八十餘年而國除. 七月,<大解>太子薨.
◎27년(단기2387년/AD54)갑인, 4월, <호동>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좋아지내었더니, 그녀가 <호동>을 위해 고각을 망가뜨리고 (호동을 성 안으로) 받아들이니, 왕이 대군을 <옥저>에서부터 움직여 들어가서 그 도읍을 뿌리뽑고 <최리> 내외를 사로잡았더니 귀복하였고, 그 땅은 <죽령군>이 되었다. <낙랑>은 <시길>로부터 4대 80여년만에 나라의 문을 닫게 되었다. 7월, <대해>태자가 죽었다.
◎二十八年乙卯,二月,築<盖馬(開□)><河城(通遼)><丘利(□倫)><高顯(開通)>< 南口(遼原)><紫蒙(昆都)><句麗(林西)><車蘭(北□)><河陽(遼陽□堡)>< 西安平(□平)>等十城以備<漢>及<鮮卑>. <麻勁>病免, <烏婁>太輔, <松보>左輔, <乙祥>右輔.
◎28년(단기2388년/AD55)을묘, 2월, <개마(개□)>, <하성(통요)>, <구리(□윤)>, <고승(개통)>, <남구(요원)>, <자몽(곤도)>, <구려(임서)>, <거란(북□)>, <하양(요양□보)>, <서안평(□평)>등 10성을 쌓아 <한>과 <선비>에 대비하였다. <마경>이 병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니, <오루>를 태보로, <송보>를 좌보로, <을상>을 우보로 하였다.
◎二十九年丙辰,七月,<紫><浪><余>衆與<東沃沮(河□□東鴨九之北)>反, 遣將軍< 卑神>伐<東沃沮>拔之爲<海西郡>, 置<樂浪>余衆于<桓可(桓因界)>.
◎29년(단기2389년/AD56)병진, 7월, <자몽>,<낙랑>,<동부여>의 무리들이 <동옥저>와 함께 반란하기에, 장군 <어비신>을 보내 <동옥저>를 뿌리뽑아 <해서군>으로 만들고, <낙랑>의 남은 무리들은 <한가(한인계)>에서 살게 했다.
◎三十二年己未,四月, 如<孤□淵(烏蘭□海)>觀魚釣赤翅白魚( )于廟. 七月石大水漂沒民屋.
◎32년(단기2392년/AD59)기미, 4월, <고□연(오란□해)>에 가서 낚시하니 붉은 날개(지느러미)의 흰빛 물고기가 낚였는데 ??묘당쪽으로 공격하듯이 날아갔다??. 7월, 서쪽 도성에 큰물이 나서 민옥이 뜨거나 잠겼다.
◎三十三年庚申,十一月,<好童>伏인而死. <好童>顔色美好,<烏>皇后愛而欲狎之,不得反說于上曰;"<好童>無禮". 上不肯罪之,后乃聲言于外. <好童>不自釋曰; "我若釋之,顯母之惡,而胎父之憂." 遂自殺.
◎33년(단기2393년/AD60)경신, 11월, <호동>이 칼에 엎어져 죽었다. <호동>은 안색이 곱고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오>황후도 <호동>이 탐이나고 희롱하고 싶었었는데, 상께 부득이 거꾸로 설명하여 이르길; "<호동>이 무례하다" 하였으나, 상이 그 말을 곧이듣지 않고 <호동>을 벌주려 하지 않으니, <황후>는 밖으로 소리가 나가도록 언성을 높혔다. <호동>은 자신이 벗어나고자 하지 않으며, 말하길; "내가 벗어나려 하면, 어머니의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아버지를 걱정하게 해드리는 것이다."라 하고는 스스로 죽어버렸다.
◎三十四年辛酉,四月,<松보>妻<乙蒲>生子<豆智蒲>以爲上子,不受. 自先帝時公卿之妻被幸者多,獻子. 至是弊益甚故廢其風.
◎34년(단기2394년/AD61)신유, 4월, <송보>의 처 <을포>가 아들 <두지포>를 낳아 상에게 바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제의 시절엔 공경들의 처가 피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리하여 낳은) 아들은 (상에게) 바쳐졌다. 지금에 이르러 그 폐단이 지나치게 심해지니, 이 풍속을 없애버렸다.
◎三十七年甲子,八月,<多婁>與<新羅>爭<蛙山>. <涉得>遣子<射旭>來朝. 冬十月,上崩於石. 遺命傳位於皇太弟<解邑朱>. 春秋六十一, 葬于<大獸林原(拉林鎭近地)>.
◎37년(단기2397년/AD64)갑자, 8월, <다루>가 <신라>와 <와산>을 놓고 싸웠다. <섭득>이 아들 <사욱>을 보내 입조하였다. 겨울 10월, 상이 서쪽 도성에서 죽었다. 황태제인 <해읍주>에게 전위한다는 명을 남겼다. 춘추 61세이었으며, <대수림원(납림진근지)>에 장사했다.
◎論曰; "<大武>勇毅沈( ),能成大業繼. <光明>守成之後, 征<扶余>討<盖馬>,遠及<上谷><太原>使<漢>人膽寒. 又能孝友,見其子之不肖,而傳于弟. 可謂知大體然. 溺於<烏>后而殺<好童>, 縮<濟><羅>而遺禍于後. 盖英雄有'惟薄之患'. 聖人養兄弟之禍者. 此歎."
<東明><光明><大武>三代之治謂之<三代鏡>. <麗>人以之爲政經能傳七百年. <光明><大武>不愧爲<東明>之子孫.
◎찬자가 평하길; "<대무>는 용감하며 굳세고 매우 사나웠으며, 훌륭하게 대업을 이었었다. <광명>이 지켜서 대업을 이룬 후, <부여>를 정벌하고 <개마>를 토벌하였으며, 멀리는 <상곡>과 <태원> 등지까지 정벌하여 <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었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는 훌륭하였는데, 자기 아들의 불초함을 보고는 동생에게 제위를 넘겼다. (왕업에 대한)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할만하다. <오>후에게 빠져서 <호동>을 죽게 했으며, <백제>와 <신라>를 오그라뜨려 후세에 화를 남겼다. 대개 영웅들의 '유박지환(가벼이 생각함에 따르는 우환)'이라 할 것이다. 성인(대무)이 형제들에게 닥쳐올 화를 키웠음을 한탄한다. <동명>,<광명>,<대무> 3대의 치적을 일컬어 <삼대경>이라 하는데, <고구리>사람들은 이들의 치적에 힘입어 칠백년을 이어나아갔다. <광명>와 <대무>는 <동명>의 자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았다."고 한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편은 좀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봅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1)

이번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이는 몇 글자를 충분히 해득하지 못하여 어려움이 많았읍니다.
대략 읽어보시면 표시가 날 것아오니, 도움을 주시길 앙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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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世<大武神帝>紀
◎元年戊子, 十一月,改元<大武>. 以<多勿候><松義>爲太輔主民. 以母<松>后爲太后. 以妃<珍>公主爲皇后. 如<龍山>告卽位. 時年二十五.
◎원년(단기2361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로 고쳤다. <다물후><송의>를 태보로 삼아 민생을 주관하게 하였다. 모친인 <송>후를 태후로 올렸다. 비(처)인 <진>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 해에 나이 25세였다.
◎二年己巳, 正月, 皇后生子<大解>,大赦天下. <汗南>旱蝗,民飢來投者千餘戶,賑恤而置之<西河>. 十二月,大鍊兵馬于<汗>濱. <烏婁>右輔主兵, <松屋勾><沸流>沛者主刑, <溫祚>改國號曰<伯濟>. 以<解婁>爲太輔,案<解素>之次子也. <帶弗>以<帶素>女<高耶>爲后.
◎2년(단기2362년/AD29)기사, 정월, 황후가 아들 <대해>를 낳았기에, 천하의 죄수들을 크게 풀어주었다. <한남>이 가물고 메뚜기 피해로 인하여 백성들이 굶게되어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천여호가 되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서하>에서 살도록 하였다. 12월, <한>수 가에서 병마 훈련을 크게 하였다. <오루>를 우보로 삼아 군사를 주관케 하고, <송옥구>는 <비류>패자를 삼아 형벌을 주관케 하였다. <온조>가 나라이름을 <백제>로 바꾸었다. <해루>를 태보로 삼았는데, <해소>의 아들일 것이다. <대불>이 <대소>의 딸 <고야>를 후로 삼았다.
◎三年庚寅, 三月,納<烏婁>女爲第三皇后, 其母<藍>公主也. 十一月,鍊兵于<沸流水>上,得白熱大鼎,一軍飽食又得負鼎者.
◎3년(단기2363년/AD30)경인, 3월, <오루>의 딸을 받아들여 제3의 황후로 삼았는데, 그녀의 모친은 <람>공주이다. 11월, <비류수> 상류에서 크게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마침) 흰빛으로 작열하는 큰 솥을 얻게되어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였으며, 이 솥을 지고다닐 사람도 얻었다.
◎四年辛卯,十二月,以右輔<乙豆智>爲行軍大注簿,親征<東扶餘>,至<利勿林(□得利界)>宿夜,聞金聲,使人尋之,得金璽 인等兵物. <高婁>曰:"天賜也.", 上拜受之. 翌日,得<北溟>人<怪由>爲先鋒,<赤谷>人<麻盧>爲遊擊進援括街( 遠)<松江(通江)>. 是年上納<芻殼素>妻爲大 夫人.
◎4년(단기2364년/AD31)신묘, 12월, 우보 <을두지>를 행군대주부로 삼고, 친히 <동부여>를 정벌하려 <이물림(□得利界)>에 이르러 밤을 지내는데, 쇠붙이 소리가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더니, 금새(금도장)와 보검 등 병물을 얻었다. <고루>가: "하늘이 내려 준 것이다."라 하니, 상은 엎드려 받았다. 다음날, <북명>사람 <괴유>를 얻어 선봉으로 삼고, <적곡>사람 <마로>를 얻어 유격으로 삼아 <송강(通江)>으로 나아가는 길을 도맡아 돕게 하였다. 이 해에 상은 <추각?소>의 처를 받아들여 대보부인으로 삼았다.
◎五年壬辰, 二月, 進軍於<柵城>之南, 營于高丘, 四面泥 , 人馬俱沒于泥中. <高婁>太子軍與<帶弗>戰于泥中, 太子立於軍前督軍, 中流矢而落馬, 兵不能, 故不能救之. 上召<怪由>命救之,<怪由>拔인號吼越泥擊之, 一軍賴鎰力直衝本陣, 執<帶弗>斬頭而出, 餘衆驚潰. <帶万>軍亦披靡而退己, 而知其兄死, 號哭誓死而進諸軍, 圍高丘數 .
◎5년(단기2365년/AD32)임진, 2월, <책성>의 남쪽까지 진군하여 높은 언덕에 진영을 차렸는데, 사면이 진창이어 인마가 모두 진창에 갇히게 되었다. <고루>태자의 군대가 진창 속에서 <대불>과 맞붙어 싸웠는데, 태자가 군대의 앞에 서서 싸움을 독려하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이 <괴유>를 불러 태자를 구하라 명하니, <괴유>는 칼을 빼어들고 크게 고함지르며 진탕 속으로 들어가 <대불>의 군사를 무찌르니, 한 무리의 군사들이 이에 힘입어 적의 본진을 곧바로 들이쳐서, <대불>을 잡아 목을 치고 내닫자, 나머지 (<대불>의) 군사들은 놀라서 무너졌다. <대만>의 군대도 아수라장에서 물러나더니만, 자기의 형이 죽은 것을 알고는 호곡하면서 죽기를 맹세하고 모든 군사를 진격시켜 그 높은 언덕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上憂 曰:"恨,不用溫祚之諫." <乙豆智>曰: "聖母之神必有陰助, 陛下勿憂." 果然, 大霧七日, 不辨 尺, <帶万>恐有變, 而少退, 乃立萬偶疑兵于營而潛. 天且凍泥得脫其圍暗夜, 倉皇失神馬大鼎及至<利勿>, 兵飢不興得野戰, 而槁軍旣歸北都.
◎상이 걱정스러워 하며 "<온조>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하니, <을두지>가 답하길: "성모신이 반드시 하늘에서 도울 것이니, 폐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 했다. 과연, 칠일간이나 큰 안개가 끼어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고, <대만>도 불리한 일이 있을까 걱정하여 좀 물러나서 병사의 모습을 닮은 수많은 허수아비를 진영에 세워놓고 잠적하였다. 하늘(날씨)의 도움으로 진창이 얼어붙어 야밤에 그 포위망을 벗어났는데, 창황 중에 신마와 큰솥, 그리고 <이물림>에서 얻은 (귀한) 것들까지 잃었고, 병사들도 굶주려 싸움을 북돋울 수도 없게 되어, 피로에 지친 군사를 북도(북쪽 도성)로 물러나게 하였다.
◎宴赴戰將卒數日, 吊死問疾, 慰其父母曰: "朕以不德,輕罰<扶余>,難殺<帶弗>,未滅其國,多失我軍,朕之過也." 國人感帝德義,皆許殺身於國事. 稱曰朱留民志以爲國士之本義.
◎(상은) 전장에 임했던 장졸들에게 수일간 편안케 하여 주고, 죽은 이를 조문하고 상한 이를 찾아, 그 부모들을 위로하여 말하길: "짐이 부덕하여, <부여>를 가벼이 벌하려 하였더니, <대불>을 죽이는 것도 힘들었고, 그 나라는 멸하지도 못하였으며, 우리의 군사도 많이 잃었다. 짐의 과오이다." 하였다. 나라의 사람들은 황제의 덕의에 감복하여, 모두가 나랏일에 몸바칠 것을 원하였다. 대저, 백성의 나라를 위하는 뜻을 살피는 것이 벼슬하는 이들의 본분이라!
◎葬<高婁>太子于<桂>后陵. 上謂<珍>皇后曰: "<桂>后母子爲國而死. 生子當如<桂>后." <珍>后曰: "爲人妻子皆欲爲夫而死. 陛下棄妾而遠征, 妾焉得死乎. 上笑曰:"汝乃再生之人,不亦可愛乎." <珍>以<召>后之出, 容 絶美, 性媚 要寵, 而己初爲<解明>妻, 而不死不勤守寡. 上,十歲以嚴命娶之生子女,雖有外華,皆近不肖,故上言如是.
◎<고루>태자를 <계>후릉 안에 장사했다. 상이 <진>황후에게 이르길: "<계>후 모자는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살아있는 이들은 마땅히 <계>후에게 가봐야 한다." 하니, <진>후 왈: "사람이라면 처자들은 모두 지아비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그냥 놔두고 원정에 나서셨습니다, 제가 죽기를 바라십니까?"라 하였고, 상은 웃으며 말하길: "그대는 다시 사는 사람이니, 다시 사랑받을 만하지 아니하오?" <진>후는 <소>후의 소생인데, 그 용모가 출중하고 성품도 애교가 있어 총애를 탐하였다. 처음엔 <해명>의 처가 되었다가, 따라 죽거나 과부로 수절하지도 아니하였다. 상이 십년간(?) 엄명으로 그녀를 취하여 자녀를 낳게 하니, 오히려 겉모양은 화려해졌고, 가까운 모든이에게 볼성사납게 처신하여, 상이 이렇게 이른 것이다.
◎三月,**失馬<巨婁>將<扶余>馬百匹俱至<鶴盤岺><車回谷>,**上出郊迎之. 撫而慰之曰馬至,而鼎不歸耶. 夏四月,<曷思王><山解>,<解素>之子也, 知國之將亡, 與從者百余人至<鴨 谷(街津口)>, 見<海頭王(末曷酋長)>出獵, 而請同獵, <海頭>傲而無禮, 遂殺之而取其百姓, 請都于<曷>濱(□得利), 以治<河>北<布倫(水名)>之地(<海頭>之故地), 許之. <解素>,聖母所生<蛙>王之子也, 常諫<帶素>之無道, 而庇我及其沒次子<解婁>. 歸我,而輔<溫祚>. <山海>亦至是而歸, 以女納後宮, 以其艶而有德封爲皇后, 皇后身香而皎潔如魚, 得傳上寵.
◎3월, **잃었던 말 <거루>가 <부여>말 백마리를 이끌고** <학반령><거회곡>에 도착한다 하기에 상이 교외로 이 맞으러 나갔다. 말의 갈기를 어루만지며 말하길: "말은 돌아왔는데, 그 솥은 돌아오지 않는구나."라 하였다. 여름 4월, <갈사왕> <산해>가, <해소>의 아들인데, 자기의 나라가 곧 망할 것을 알고는 따르는 자 백여명과 함께 <압록곡(가진구)>에 이르니, <해두왕(말갈추장)>이 사냥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함께 사냥하자 청하였더니, <해두>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백성도 빼앗았다. <갈>수 가에 도읍하면서 <하>북의 <포륜>땅을 다스리며 살고싶다 청하기에, 허락하였다. <해소>는 성모와 <와>왕 사이에서 생긴 아들인데, 늘상 <대소>가 무도하다고 간하면서, 우리와 이미 죽은 둘째 아들 <해루>를 바교하다가, 우리에게 귀의하였기에 <온조>를 도우라고 붙여주었다. <산해> 역시 이 때에 귀의하여 딸을 후궁으로 바쳤다. 그녀는 요염하기도 하지만 덕망스러워 황후로 삼았는데, 몸이 향내가 나고 살결도 물고기 같이 희고 깨끗하여 상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
◎七月, <曷思王>從弟<絡文(<解素>弟<解万>亦聖母所生也.<絡文>,<解万> 子)>亦將万余人來降曰願爲聖人之民,上出郊迎之,待以賓禮,尋封爲安西大王,置之< 那部(勾茶國地西豊開原)>. 時<東扶余>大亂自相殘滅. 十月, '征<余>將軍'<怪由>卒. <由>以巨力之人,<柵>南之戰,身被重創,至是卒. 以一品大加,禮葬于<北溟山>陽(黑河省佛山).
◎7월, <갈사왕>의 종제인 <락문(<해소>제<해만>역성모소생야.<낙문>,<해만>자)> 또한 만여명을 이끌고 찾아와 항복하며 성인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여 달라고 청하니, 상이 교외로 나가 맞이하여 손님으로 대접하고, <안서대왕>으로 삼아서 <연나부>에 살게 하였다. 이때 <동부여>에서는 큰 난리로 서로를 잔인하게 죽였다. 10월, '정<여>장군' <괴유>가 죽었다. <괴유>는 힘이 엄청 센 사람이어, <책성> 남쪽에서 전쟁할 때, 창을 여러 개나 맞았었는데, 이제와서야 죽었다. 1품 대가의 예로써 <북명산(흑하성불산)> 남쪽에 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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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癸巳, 正月, <思曷>后生子<好童>. 十一月, 遣使□漢(出/求)兵□□□□□□□史記等書□□通□之□.
◎6년(단기2366년/AD33)계사, 정월, <사갈>후가 아들 <호동>을 낳았다. 11월, --이하 해득 불능 ---
◎七年甲午, 五月, <松>太后崩, 春秋六十七. 后, <松讓>之女. <光明帝>自<扶余>時, 依於后家. <義>薦之, 及卽位. 納之, 而生<都助>·<解明>·帝及<解邑朱>·諸公主, 端麗有德, 好神仙, 善畵, 能樂, 以淡素養之. 十月, □□病□□□子<純>降於秀□□死.
◎7년(단기2367년/AD34)갑오, 5월, <송>태후가 죽었다. 춘추 67세이었다. 후(后)는 <송양>의 딸이다. <광명제>가 <부여>에서 나와 후의 집에 의탁한 적이 있다. <송의>가 그(대명제)를 천거하여 즉위하였고, (<송>태후는) 불려들어가서 <도조>, <해명>, 현 황제(대무), <해읍주> 등과 여러 공주를 낳았다. 용모와 품행이 단려하고 덕성스러웠으며, 신선에 탐닉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에 능하였는데, 담담소박하게 할 뿐이었다. 10월, --이하 해득 불능---. **
◎九年丙申, 十月, <蓋馬>主<小 >妻<半乙>殺< >而立子<叔乙>. < >子<厚滿><狗文>等相爭, <厚滿>先入城殺<叔乙>, <半乙>與<狗文>潛通而納之. <厚滿>來奔,上親征誅<狗文>,以其國爲<蓋馬郡>. 十二月, <勾茶王><厚燐>聞<蓋馬>滅,擧國來降. <厚潾>,<閃尼>子也., 以其< 那部>讓於<絡文>, 而陰有反意, 反< >死. 授<狗文>而約伐<西河><南口>, 事發而國除, 以其都爲南蘇(□□□), 西路皆拓.
太輔<松義>薨, <松>太后胞兄也. 其母<貫貝>氏, 勸<松讓>獻國, 或<義>以忠, <義>守其母訓,爲國盡忠,持身儉約, 歷事三世,德望蘇然, 勝於父矣. 以其弟<屋句>爲左輔, <乙豆智>太輔, <麻勁>右輔. <勁>,<摩離>子也.
<蓋馬>反衆與<漢人>來侵<句麗城(林西)>, <玄 >太守<勾芻>往救, 疾作而薨, <松屋勾>代之而平之(劉秀使吳漢滅蜀□公□□夷其族).
◎9년(단기2369년/AD36)병신, 10월, <개마>주인 <소쾌>의 처 <반을>이 <쾌>를 죽이고 아들 <숙을>을 세웠다. <쾌>의 아들인 <후만>과 <구문>은 서로 다투었는데, <후만>이 먼저 입성하여 <숙을>을 죽이니, <반을>은, <구문>과 밀통하고는, <구문>을 받아들였다. <후만>이 도망하여 오자, 상은 친히 <구문>을 정벌하고, <개마국>을 <개마군>으로 삼았다. 12월, <구다>와 <후린>이 <개마>가 멸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후린>은 <섬니>의 아들이고, <연나부>를 <락문>에게 넘겼는데, 속으로는 뒤집을 생각이 있었고, <쾌>에 반하다 죽었다. <구문>에게 넘겨주면서 <서하>와 <남구>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였었으나, 일이 생겨서 나라가 사라졌고, 그 도읍도 <남소>가 되어, 서쪽으로 길을 열었다.
태보 <송의>가 죽었는데, <송>태후의 동복 오라비였다. 그의 모친 <관패>씨는 <송양>에게 나라를 (고구리에) 바치라 권하였었고, <송의>가 충성스러워서, 모친의 훈계를 잘 지켜,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자신은 검약하여, 삼대가 벼슬을 하였고 덕망이 소연하여, 아비를 능가하였다. 그의 동생 <옥구>는 좌보가 되고, <을두지>는 태보가 되었으며, <마경>은 우보가 되었다. <마경>은 <마리>의 아들이다.
<개마>의 반중과 <한인>이 함께 <구려성(임서)>에 쳐들어 왔는데, <현토>태수 <구추>가 달려가서 구하다가, 병이 나서 죽으니, <송옥구>가 대신하여 싸워서 이를 평정하였다(유수사오한멸촉□공□□이기족).
◎十年丁酉,七月,<漢>兵又猝至<丘利城(□倫上)>, 上親至<南口>督戰. <屋句>曰被今盜賊蜂起,何暇,無名之戰哉. 此皆邊將之窺利,擅侵也.待其師老,而出寄破之必矣,乃入<蔚岩(卓리克國)>,而斷其來路,賊拔<盖馬(開魯)>而馳至圍<蔚岩>數里. 日加,而兵益多盖,以爲城中無水,而攻之愈急也. 乃用<豆智>計,以魚酒饋之,賊知有水而退. 時,上,自<南口>來援, 夾擊大破之. 是謂<蔚岩大戰>. 賊慮其中斷, 而不直至<南口>與小城, 虛勞而致敗, <盖馬>諸城悉平.
冬,<溫祚>傳位<多婁>.
◎10년(단기2370년/AD37)정유, 7월, <한>의 병사들이 <구리성(□윤상)>에 갑자기 밀려들었다. 상이 친히 <남구>에 나아가 독전하였다. <옥구>가 말하길;** "지금 저 도적들이 일어난 것은 하도 심심하여 일으킨, 별볼일 없는 싸움이며, 이런 싸움은 대개 변방 장수가 (자신의) 이득을 엿보면서** 제멋대로(조정의 뜻과 무관한) 침입한 것이니, 저쪽 군사들의 사기가 무디어지길 기다렸다가 나아가 갑자기 쳐부수면 되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리고는 <울암(탁리극국)>으로 들어가 그들이 들어올 길을 끊었다. 적은 <개마(개로)>를 뭉개고 나서 치달아와 <울암>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해는 뜨거워지는데, 병사들은 엄청 두터운 군복을 입고 있었고, 성 안에는 물이 별로 없었으니, 저들을 공격하는 것이 급하게 되었다. <을두지>의 계략을 쓰기로 하고, 적에게 물고기 안주와 술을 가져다 주니, 적들은 성 안에 물이 많은 줄로 알고 물러났다. (때마침) 이때 상이 <남구>로부터 구원하러 왔기에, 협격하여 적들을 크게 쳐부쉈다. 이름하여 <울암대전>이라 한다. 적도들은 더 이상 <남구>와 작은 성들로 곧바로 쳐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적들은 애쓰고도 패배하였으니, <개마>의 여러 성들은 저절로 평안하여 졌다.
겨울, <온조>가 <다루>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十三年更子,四月,<乙豆智>薨. <松屋句>太輔, <摩勁>左輔, <烏婁>右輔. 七月, <買溝谷>人<尙須>與其弟<尉須>堂弟<于刀>等, 率衆千餘,牛馬萬餘頭, 而來謁, 以<尙須>爲大畜大加. <買溝谷>卽<水谷城(柳河界)>也.
◎13년(단기2373년/AD40)경자, 4월, <을두지>가 죽었다. <송옥구>를 태보로, <마경>을 좌보로, <오루>를 우보로 삼았다. 7월, <매구곡>사람 <상수>와 친동생인 <위수>및 종제인 <우도> 등이 천여명의 사람들과 우마 만여마리를 끌고 와서 알현하기에 <상수>를 '큰짐승대가'로 삼았다. <매구곡>은 곧 <수곡성(유하계)>이다.
◎十四年辛丑, 冬十一月, 有雷無雪. 是歲<淹><호>大漲, <彌鄒忽>盡被水害, 移其民於<西河>, 以<淹호王><虎力>爲<龍山公>. 初<芻牟帝>,以<沸流>,爲<沸流>沛者,食其邑. <光明>初,進封王. 娶<曼>公主, 生< 人>, < 人>娶<眞>公主, 生<虎力>. 三世六十七年, 而國除. 以<涉得>爲<紫蒙王>, <得><臣>之子也. 其母<乙蒸>賢, 敎<得>以禮義爲人忠厚. 上, 以<紫蒙>反復無常, 遣<得>治之. <烏>皇后生子<解憂>.
◎14년(단기2374년/AD41)신축, 겨울11월, 천둥은 치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 해에 <엄>수와 <호>수가 크게 불어나, <미추홀>이 수해로 초토화 되어, 백성들을 <서하>로 옮기야 되었기에, <엄호왕>인 <호력>을 <용산공>으로 삼았다. 초에 <추모>제 시절, <비류>는 <비류>패자에게 식읍으로 주었었는데, <광명>초에는 봉왕되었었다. <만>공주와 혼인하여 <양인>을 낳았고, <양인>은 <진>공주와 혼인하여 <호력>을 낳았다. 3대 67년만에 나라의 문이 닫혔다. <섭득>을 <자몽왕>으로 삼았는데, <득>은 <신>의 아들이다. 그 모친 <을증>이 현명하여 <득>을 교육하였더니 예의를 알고 충성심이 두터웠다. 상이, <자몽>은 등돌리기를 밥먹듯 하여 <득>을 보내 다스리도록 하였다. <오>황후가 아들 <해우>를 낳았다.
◎十五年壬寅,三月, 黜大加<仇都><逸苟><焚永>等爲庶人. 三人皆以<召>皇后舊臣,奪人妻妾財貨,恣其□慾人皆忿死以致洪水. 使<沸流國>除, 法當斬誅, 以其爲<東明>舊臣, 不忍極法, 放爲庶人. 以南部使者<鄒殼素>爲<沸流部>長(順奴沛者也)以化之. 九月,行<東明大祭>于<龍山>. <多婁>獻<汗南>故地, 而南下, 遣兵伐<新羅>, 以助<多婁>.
◎15년(단기2375년/AD42)임인, 3월, 쫓겨난 대가 <구도>, <일구>, <번영> 등을 서인(벼슬없는 평민)으로 만들었다. 세 사람은 모두 <소>황후의 옛 신하이었는데, 타인들의 처첩, 재화 등을 강탈하여, ??그 죄와 탐욕이 자심하고, (이꼴을 당한) 사람들 모두는 울화통이 터져 죽는 것이 마치 홍수와 같아서,?? <비류국>에게 이들을 다스리라 하였으나, 법에 따르면 목베어 죽일 일인데 <동명>의 옛 신하는 극형을 면하게 되어있어, 서인으로 놓아주게 된 것이었다. 남부사자 <추각소>를 <비류부>의 우두머리(순노패자야)로 삼아 이들을 깨우치게 하였다. 9월, <용산>에서 <동명대제>를 지냈다. <다루>가 <한남>의 옛땅을 (고구리에) 바치고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하기에,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쳐서, <다루>를 도왔다.
◎十七年甲辰,七月, 小<松>太后崩. <松>太后之妹而上之乳母也. 上長於后,以后五女皆爲妃. 春秋六十八.
◎17년(단기2377년/AD44)갑진, 7월, 작은 <송>태후가 죽었다. <송>태후의 여동생으로 상의 유모였다. 상은 이 작은 <송>태후의 품에서 자랐고, 작은 <송>태후는 딸이 다섯이 있었는데 모두 비가 되었다. 춘추 68세였다.
◎二十年丁未,三月,<樂浪>反,上親征其都<沃沮(浦鹽斯德之尼古里,高麗之吉州也)>拔之,<崔理>北走<南沃沮(鴨滿界)>. <蠶支落>部<戴升>反屬于<漢>. 本<盖馬>臣也. 奸巧無比, 往來<赤城><蠶支落><河間>,而蠶食<盖馬>者也.
◎이십년(단기2380년/AD47)정미, 3월, <낙랑>이 배반하여, 상이 친히 그 도읍인 <옥저(포염사덕지니고리,고려지길주야)>를 뿌리뽑으니, <최리>가 <남옥저(압만계)>로 패주하였다. <잠지락>부의 <대승>이 배반하고 <한>으로 갔다. 본래 <개마>국의 신하였었는데, 간교하기가 비할 데 없어, <적성>,<잠지락>,<하간>을 오가더니 <개마>국을 잠식하였다.
◎二十一年戊申, 四月, <曷思>后生<再思>태자. <松屋句>薨. <麻勁>太輔, <烏婁>左輔, <松보>右輔.
◎21년(단기2381년/AD48)무신, 4월, <갈사>후가 <재사>태자를 낳았다. <송옥구>가 죽었다. <마경>을 태보로, <오루>를 좌보로, <송보>를 우보로 삼았다.
◎二十二年乙酉,正月, 遣將軍<于刀><烏義>等伐<戴升>于<潛支落河(□□河)>柵(犬汶塔拉)斬于柵南(奈曼王府)進援<赤城><蠶支(□場)>, 遂率<紫蒙>王<滿離斯古><涉得>等分四道進功<右北平><漁陽><上谷><太原>等地奪其寶玩美色絹織珍味等多數. 歲以爲常<蔡 >大 約修年貢乞和. 是年<호花>太后生於<柵城>, <玉文>女也. 母<高耶>,<帶素>女也.
◎22년(단기2382년/AD49)을묘, 정월, 장군 <우도>와 <오의> 등을 보내 <잠지락하>의 목책에서 <대승>을 쳐부숴 목책의 남쪽에서 <대승>의 목을 베고, 진격하여 <적성>과 <잠지>를 돕고는, <자몽>왕 <만리사고>와 <섭득> 등을 이끌고 네 갈래로 나누어 진격하여 <우북평>,<어양>,<상곡>,<태원> 등을 쳐서 그곳의 보물, 놀이개, 미색, 비단, 진미 등 다수를 빼앗았다. 이 시절, <채동>은 늘상 크게 두려운 나머지 매년 조공하기로 약속하고 화친을 구걸하였다.
이 해에 <호화>태후가 <柵城>에서 출생하였는데, 즉 <옥문>의 딸이고, 모친은 <대소>의 딸인 <고야>이다.
◎二十四年辛亥,三月,東部雹. <扶余>太師<王文>卒. <加順><當覃>等作亂, 上遣<松보><絡寄>定其亂, 而擒其女主<高耶>爲后. <東扶余>四十七國, 皆爲國土. 自<解夫婁>歷<金蛙><帶素><高耶>四世, 百十年而國除. 中間<帶弗>竊位十九年.
◎24년(단기2384년/AD51)시해, 삼월, 동부에 우박이 내렸다. <부여>태사 <왕문>이 죽었다. <가순>과 <당담> 등이 반란을 일으켰기에, 상이 <송보>와 <락기>를 보내 평정하고, 여주인 <고야>를 잡아다 후로 삼았다. <동부여> 47개 마을 모두는 (고구리의) 국토가 되었다. <해부루>로부터 시작하여 <금와>, <대소>, <고야>에 이르기까지 4대를 전하여 110년을 이어오다가 나라의 문이 닫혔는데, 중간에 <대불>이 왕자리를 19년간 훔친 적이 있었다.
◎二十七年甲寅,四月, <好童>太子將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女爲之破鼓角而迎, 王師大軍自<沃沮(尼古□)>浮海而入拔其都, 虜<崔理>夫妻而歸, 以其地爲<竹苓郡>. <樂浪>自<柴吉>四世八十餘年而國除. 七月,<大解>太子薨.
◎27년(단기2387년/AD54)갑인, 4월, <호동>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좋아지내었더니, 그녀가 <호동>을 위해 고각을 망가뜨리고 (호동을 성 안으로) 받아들이니, 왕이 대군을 <옥저>에서부터 움직여 들어가서 그 도읍을 뿌리뽑고 <최리> 내외를 사로잡았더니 귀복하였고, 그 땅은 <죽령군>이 되었다. <낙랑>은 <시길>로부터 4대 80여년만에 나라의 문을 닫게 되었다. 7월, <대해>태자가 죽었다.
◎二十八年乙卯,二月,築<盖馬(開□)><河城(通遼)><丘利(□倫)><高顯(開通)>< 南口(遼原)><紫蒙(昆都)><句麗(林西)><車蘭(北□)><河陽(遼陽□堡)>< 西安平(□平)>等十城以備<漢>及<鮮卑>. <麻勁>病免, <烏婁>太輔, <松보>左輔, <乙祥>右輔.
◎28년(단기2388년/AD55)을묘, 2월, <개마(개□)>, <하성(통요)>, <구리(□윤)>, <고승(개통)>, <남구(요원)>, <자몽(곤도)>, <구려(임서)>, <거란(북□)>, <하양(요양□보)>, <서안평(□평)>등 10성을 쌓아 <한>과 <선비>에 대비하였다. <마경>이 병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니, <오루>를 태보로, <송보>를 좌보로, <을상>을 우보로 하였다.
◎二十九年丙辰,七月,<紫><浪><余>衆與<東沃沮(河□□東鴨九之北)>反, 遣將軍< 卑神>伐<東沃沮>拔之爲<海西郡>, 置<樂浪>余衆于<桓可(桓因界)>.
◎29년(단기2389년/AD56)병진, 7월, <자몽>,<낙랑>,<동부여>의 무리들이 <동옥저>와 함께 반란하기에, 장군 <어비신>을 보내 <동옥저>를 뿌리뽑아 <해서군>으로 만들고, <낙랑>의 남은 무리들은 <한가(한인계)>에서 살게 했다.
◎三十二年己未,四月, 如<孤□淵(烏蘭□海)>觀魚釣赤翅白魚( )于廟. 七月石大水漂沒民屋.
◎32년(단기2392년/AD59)기미, 4월, <고□연(오란□해)>에 가서 낚시하니 붉은 날개(지느러미)의 흰빛 물고기가 낚였는데 ??묘당쪽으로 공격하듯이 날아갔다??. 7월, 서쪽 도성에 큰물이 나서 민옥이 뜨거나 잠겼다.
◎三十三年庚申,十一月,<好童>伏인而死. <好童>顔色美好,<烏>皇后愛而欲狎之,不得反說于上曰;"<好童>無禮". 上不肯罪之,后乃聲言于外. <好童>不自釋曰; "我若釋之,顯母之惡,而胎父之憂." 遂自殺.
◎33년(단기2393년/AD60)경신, 11월, <호동>이 칼에 엎어져 죽었다. <호동>은 안색이 곱고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오>황후도 <호동>이 탐이나고 희롱하고 싶었었는데, 상께 부득이 거꾸로 설명하여 이르길; "<호동>이 무례하다" 하였으나, 상이 그 말을 곧이듣지 않고 <호동>을 벌주려 하지 않으니, <황후>는 밖으로 소리가 나가도록 언성을 높혔다. <호동>은 자신이 벗어나고자 하지 않으며, 말하길; "내가 벗어나려 하면, 어머니의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아버지를 걱정하게 해드리는 것이다."라 하고는 스스로 죽어버렸다.
◎三十四年辛酉,四月,<松보>妻<乙蒲>生子<豆智蒲>以爲上子,不受. 自先帝時公卿之妻被幸者多,獻子. 至是弊益甚故廢其風.
◎34년(단기2394년/AD61)신유, 4월, <송보>의 처 <을포>가 아들 <두지포>를 낳아 상에게 바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제의 시절엔 공경들의 처가 피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리하여 낳은) 아들은 (상에게) 바쳐졌다. 지금에 이르러 그 폐단이 지나치게 심해지니, 이 풍속을 없애버렸다.
◎三十七年甲子,八月,<多婁>與<新羅>爭<蛙山>. <涉得>遣子<射旭>來朝. 冬十月,上崩於石. 遺命傳位於皇太弟<解邑朱>. 春秋六十一, 葬于<大獸林原(拉林鎭近地)>.
◎37년(단기2397년/AD64)갑자, 8월, <다루>가 <신라>와 <와산>을 놓고 싸웠다. <섭득>이 아들 <사욱>을 보내 입조하였다. 겨울 10월, 상이 서쪽 도성에서 죽었다. 황태제인 <해읍주>에게 전위한다는 명을 남겼다. 춘추 61세이었으며, <대수림원(납림진근지)>에 장사했다.
◎論曰; "<大武>勇毅沈( ),能成大業繼. <光明>守成之後, 征<扶余>討<盖馬>,遠及<上谷><太原>使<漢>人膽寒. 又能孝友,見其子之不肖,而傳于弟. 可謂知大體然. 溺於<烏>后而殺<好童>, 縮<濟><羅>而遺禍于後. 盖英雄有'惟薄之患'. 聖人養兄弟之禍者. 此歎."
<東明><光明><大武>三代之治謂之<三代鏡>. <麗>人以之爲政經能傳七百年. <光明><大武>不愧爲<東明>之子孫.
◎찬자가 평하길; "<대무>는 용감하며 굳세고 매우 사나웠으며, 훌륭하게 대업을 이었었다. <광명>이 지켜서 대업을 이룬 후, <부여>를 정벌하고 <개마>를 토벌하였으며, 멀리는 <상곡>과 <태원> 등지까지 정벌하여 <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었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는 훌륭하였는데, 자기 아들의 불초함을 보고는 동생에게 제위를 넘겼다. (왕업에 대한)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할만하다. <오>후에게 빠져서 <호동>을 죽게 했으며, <백제>와 <신라>를 오그라뜨려 후세에 화를 남겼다. 대개 영웅들의 '유박지환(가벼이 생각함에 따르는 우환)'이라 할 것이다. 성인(대무)이 형제들에게 닥쳐올 화를 키웠음을 한탄한다. <동명>,<광명>,<대무> 3대의 치적을 일컬어 <삼대경>이라 하는데, <고구리>사람들은 이들의 치적에 힘입어 칠백년을 이어나아갔다. <광명>와 <대무>는 <동명>의 자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았다."고 한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편은 좀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봅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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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좋은 글 보고 있습니다. ㅎ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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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3대에 걸쳐서 송양(宋讓)의 이름이 나오고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현록표도(懸鹿漂都)의 싸움에서 지면, 대(代)를 이어서 같은 이름만 쓰도록 하는 불문율(不文律)이라도 있었던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군요. 또한 “온조(溫祖)가 전쟁을 말렸다.”는 것도 고구리, 백제, 신라의 관계를 전혀 새롭게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시면서, 기존 관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안으면서 계속 이끌어 갈 수밖에 없는 고충이 넉넉히 짐작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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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벌써 기다리셨던 같이 들르셨었읍니다 ! 감사합니다. "<고구리>사략 권지2"의 "민중제기"부터는 혹사당한 눈과 머리를 좀 식히면서 작업하여 올릴 생각입니다. 제가 한문 문장과 문자를 잘 알지 못하여 잘 보이지 않는 글짜, 찾아보아도 해득하기 어려운 글짜가 복병같이 지키고 있어 점점 조심스러워집니다. <수제>와 <현록표도>에 관하여,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아래의 <안재국>님의 코멘트성 글에 꼬리로 달아놓았읍니다. 견해가 다를 수도 잇을 것으로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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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좌계가 쓴 ‘남당(南堂)의 일사(逸史)와 현록표도(懸鹿漂都) 미스테리’란 글에 대해서 ‘안재국’님께서 무척 짧은 댓글을 달았는데, 이곳에 사천 선생께서 쓰신 ‘긴 댓글’을 읽었습니다. 사천(史穿) 선생께서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잇을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정말로 ‘견해가 다릅니다.’ 매우 이상한 말씀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진 느낌입니다. 좌계가 이곳 coo2.net 에 와서 사천(史穿) 선생과 길고 긴 필담(筆談)을 해온 경험과 또 그간의 사천 선생의 해석문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천(史穿) 선생께서 ‘경악스러울 정도의 신비한 직관(直觀)’이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긴 한문(漢文)을 읽어나갈 때, “이점은 잠시 접어두고, 읽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놀라운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상국, 대한국의 사료(史料)를 읽을 때에는 과감히 ‘산을 넘고, 물의 건너’는 식으로 직선적인 거리감을 접어두었으며, 이번 남당(南堂) 선생의 고구리(高句麗) 사료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지리적 위치’를 잠시 접어두자.”는 방침 아래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천 선생만이 가지는 탁월성 때문에, 오히려 좌계가 사천 선생과 견해가 다른 점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천 선생의 직관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접어두고 볼 때에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좌계가 볼 때, 사천(史穿) 선생의 직관은 “ ‘피라미드’ 문명 - 평양(平壤)이란 지역명이 고대인에게 무엇을 뜻하였나?! - 평양은 독특한 도시구조에 대한 명칭이 아니겠는가? - 사슴 키우기(양록(養鹿)) - 중심에서 벗어난 자들의 애환(哀歡)과 재활(再活)”이란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상관성을 감지(感知)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좌계 역시 이러한 사천 선생의 직관을 존중하고 계속 생각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신(答信)은 지금 (A), (B), (C) 식으로 긴 연재형으로 쓰고 있는 글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후에나 본격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무거운 짐으로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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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꼬리글까지 따라가서 읽어주셨읍니다. 고맙습니다. 접어두고 대략을 먼저 살피자는 저의 생각은 수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역사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그 기록 자체는 상당부분 당시를 주무르던 세력에 의해, 그들이 필요한 만큼 주물러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멍난 그물의 구멍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그물을 펼쳐보면 찾지않아도 그냥 보이게 되지요. 처음보는 기록을 보면서 시시콜콜 따지기 시작하면 대체를 보기도 전에 지치게 될 것입니다. 이래저래 손을 타고서도 살아남은 것만을 보고 살기에 지워진 부분을 끼워넣고 나서 살아남은 기록들과 함께 보자는 취지입니다.// 좌계 선생님이 하시는 방법 역시 통치그룹 사람들의 손을 덜 탄 것을 가지고 해오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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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내용들을 덕분에 잘 읽고 있습니다. 수 많은 인물들과 지명, 너무나 구체적인 사건 기술등으로 볼 때, 한 사람이 이런 파노라마를 무에서 창작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이것은 '그 때 당시 일어났던 실제 역사'에 대한 기록임을 확신해도 되겠다 이말이죠. 이런 구체적인 역사가 아직도 펄펄 살아 숨쉬고 있다니 정말 기적이군요. 듣자하니, 방송국에서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다룬다고 하던데, 이 사초를 기초로 극을 전개해 나간다면 밀도있는 짜임새를 갖춘 기념비적인 드라마가 될 것입니다. 사실, 주몽등 여태까지의 고대사 관련 드라마들은 기본적으로 식민사관에 기반해 창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료부실로 극 내용 자체도 엉성할 수 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단박에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구체성있고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고대사 드라마가 만들어져 방영된다면, 우리 국민들과 전세계인들에게 올바른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대미문의 논쟁을 촉발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올바른 역사의 회복, 식민사학의 청산이 훨씬 수월해 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