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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솟대] 과장된 한漢 강역의 실상 : 사기史記, <조양沮陽>은 장성이남長城以南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7.
< 조양造陽>이 남몽골-내몽골-의 오르도스지역의 황하변임이 밝혀져 있지만 원래 지명이 <조양沮陽>임을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가 밝힘으로써 <조양沮陽>이 훨씬 아래녁인 섬서성지역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였습니다.


그림 1. 운영자님께서 밝혀주신 <조양造陽> 이동도



그림 2. 운영자님께서 밝혀주신 수,당나라때의 <조양造陽>의 실제위치


그런데, 사기史記를 찾아보니 <조양沮陽>이 장성이남長城以南임을 밝힌 명백한 기록을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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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校本史記三家注/新校本史記/世家/卷五十七 絳侯周勃世家第二十七

燕王盧綰反,勃以相國代樊噲將,擊下薊,得綰大將抵﹑丞相偃﹑守陘[一]﹑太尉弱﹑ 御史大夫施,屠渾都[二].破綰軍上蘭[三],復擊破綰軍沮陽[四].追至長城[五],定上谷十二縣,右北平十六縣,遼西﹑遼東二十九縣,漁陽二十二縣. 最從高帝[六]得相國一人,丞相二人,將軍﹑ 二千石各三人;別破軍二,下城三,定郡五,縣七十九,得丞相﹑大將各一人.
[四] 集解 徐廣曰:「在上谷.」駰案:服虔曰沮音阻.索隱按:地理志沮陽縣屬上谷.
正義括地志云:「上谷郡故城在媯州懷戎縣東北百二十里.燕上谷,秦因不改,漢為沮陽縣.」
[五] 正義即馬邑長城,亦名燕長城,在媯州北,今是.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반란을 일으키자,주발周勃은 상국相國으로써 번쾌樊噲를 대신하여 군사를 이끌고 계薊를 공격해 함락하여 노관盧綰의 대장大將 저抵, 승상丞相 언偃, 수守 형陘﹑[一], 태위太尉 약弱, 어사대부御史大夫 시施를 포로로 잡고,혼도渾都[二]를 무너뜨렸고 상란上蘭[三]에서 노관군盧綰軍을 깨뜨렸다.
다시, 노관군盧綰軍을 조양沮陽[四]에서 공격해 격파하여 장성長城[五]까지 추격하였다. 이로서, 상곡上谷 12현縣,우북평右北平 16현縣,요서遼西․요동遼東 29현縣,어양漁陽 22현縣을 평정하였다.
모두 말하자면, 고제高帝[六]를 따라 종군하여 상국相國 1명,승상丞相 2명,장군將軍과 2천석石 식읍을 가진자 각 3명을 포로로 잡았고 홀로 2군軍을 격파하고,3城을 함락시키고,5郡과 79縣을 평정하여 승상丞相﹑대장大將 각 1명을 포로로 잡았었다.

[四] 집해集解에 서광徐廣이 이르길,「상곡上谷에 있다.」하였고 배인裴駰이 상고하기를, 복건服虔이 말하길 <沮>의 음音은 <조阻>라 하였다.색은索隱에 상고하기를, 지리지地理志에 <조양현沮陽縣>은 상곡上谷에 속한다고 하였다.
정의괄지지正義括地志에 이르길, 「상곡군上谷郡 옛 성城은 규주媯州 회융현懷戎縣 동북東北 120리里에 있다.연燕 상곡上谷은 진秦나라로 인하여 이름이 고쳐진 것이 아니고,한漢나라에 의해 조양현沮陽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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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료원문에 수록되어 있듯이 한漢의 상국相國인 주발周勃이 노관盧綰의 반란을 번쾌를 대신하여 평정하기 위해 출전하여 노관군盧綰軍을 조양沮陽[四]에서 격파하고 북으로 장성長城[五]까지 추격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燕王盧綰反,勃以相國代樊噲將,擊下薊,得綰大將抵﹑丞相偃﹑守陘[一]﹑太尉弱﹑ 御史大夫施,屠 渾都[二].破綰軍上蘭[三],復擊破綰軍沮陽[四].追至長城[五]"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한漢의 조양沮陽이 장성이남長城以南이라는 것으로 한漢의 북쪽 끝이 오르도스사막의 남변에도 미치지 못했음이  명명백백하여졌고 그 위치는 아무리 올려보아도 현 섬서성 연안시일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림 3. 섬서성 북변과 남몽골-내몽골- 오르도스지역


그림 4. 고지도에서 본 조양沮陽의 위치로 유력한 연안延安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