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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 전문번역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7.

金謂肅宗元年爲衛尉丞同正. 新羅末有僧道詵入唐學一行地理之法而還作秘記以傳.

김위제(金謂)는 숙종(肅宗) 원년(元年)에 위위승(衛尉丞) 동정(同正)이 되었다. 신라(新羅) 말기에 도선(道詵)이란 승려가 당국(唐國)에 들어가 일행(一行)의 지리에 대한 법을 배우고 돌아와 비기(秘記)를 지어 전했다.


 

學其術上書請遷都南京曰: “道詵記云: ‘高麗之地有三京松嶽爲中京木覓壤爲南京平壤爲西京十一十二正二月住中京三四五六月住南京七八九十月住西京則三十六國朝天.’ 又云: ‘開國後百六十餘年都木覓壤.’ 臣謂今時正是巡駐新京之期.

위제(謂)가 그것을 배워 남경(南京)으로 천도하기를 상서하여 청하며 말하기를 “도선기(道詵記)에서 이르기를 고려(高麗)의 땅은 삼경(三京)이 있는데 송악(松嶽)이 중경(中京)이고, 목멱양(木覓壤)이 남경(南京)이며, 평양(平壤)이 서경(西京)이 됩니다. 11월, 12월, 1월, 2월은 중경(中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3월, 4월, 5월, 6월은 남경(南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7월, 8월, 9월, 10월은 서경(西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36개의 나라가 조공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라를 연 후에 160여 년은 목멱양(木覓壤)에 도읍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지금이 새로운 수도(남경)에 순주(巡駐)할 시기입니다.”라고 하였다.

 

臣又竊觀道詵踏山歌曰: ‘松城落後向何處? 三冬日出有平壤! 後代賢士開大井漢江魚龍四海通.’ 三冬日出者仲冬節日出巽方木覓在松京東南故云然也. 又曰: ‘松嶽山爲辰馬主嗚呼! 誰代知始終? 花根細劣枝葉然纔百年期何不罷? 爾後欲覓新花勢出渡陽江空往還四海神魚朝漢江國泰人安致*大平.’ 故漢江之陽基業長遠四海朝來王族昌盛實爲大明堂之地也. 又曰: ‘後代賢士認人壽不越漢江萬代風若渡其江作帝京一席中裂隔漢江!

신이 또한 도선(道詵) 답산가(踏山歌)를 몰래 보았는데 이르기를 ‘송성(松城)이 떨어진 뒤에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삼동(三冬)의 해가 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에 현사(賢士)가 큰 우물을 여니 한강(漢江)의 물고기와 용이 사해(四海)로 통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삼동(三冬)에 해가 뜬다는 것은 중동절(仲冬節)에 해가 손방(巽方, 동쪽과 남쪽 사이)에서 뜬 다는 것이요, 목멱(木覓)이 송경(松京)의 동남쪽에 있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송악산(松嶽山)은 진한과 마한의 주인이 되나니 누구의 대에 그 끝과 마지막을 알 것인가? 화근(花根)이 가늘고 용렬하며 지엽(枝葉)이 그러하니, 겨우 100년의 때에 파하지 않으리요? 이후에 새로운 화세(花勢)를 찾고자 하여 나가서 양강(陽江)을 건너면 헛되이 갔다가 돌아올 뿐이요 사해(四海)의 신어(神魚)가 한강(漢江)에 나라를 이룩하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녕하여 태평에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강(漢江)의 북쪽에 도읍하면 기업(基業)이 장원(長遠)하고 사해(四海)에서 조공하며 왕족(王族)이 창성할 것이므로 이는 실로 큰 명당(明堂)의 땅입니다. 또 이르기를 ‘후대에 현사(賢士)가 사람의 수명을 인식하여 한강(漢江)을 넘지 않는다면 만대(萬代) 동안 국가의 기세가 뻗칠 것이요(風), 만약 그 강을 넘어 제경(帝京)을 만든다면 한 자리의 가운데가 찢기어 한강(漢江)이 막히리라.’고 하였습니다.

 

 

又三角山明堂記曰: ‘擧目回頭審山貌背壬向丙是仙鼇陰陽花發三四重親袒負山臨守護案前朝山五六重姑叔父母山聳聳內外門犬各三爾常侍龍顔勿餘心! 靑白相登勿是非內外商客各獻珍賣名隣客如子來輔國匡君皆一心壬子年中若開土丁巳之歲得聖子憑三角山作帝京第九之年四海朝.’ 故此明王盛德之地也.

또한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에서 말하기를 ‘눈을 들어 머리를 돌려 산의 모양을 살펴보니 壬(북쪽)을 등지고 丙(남쪽)을 향한 것이 선오(仙鼇)요, 음양의 꽃이 세네 겹으로 피었으니 친히 옷을 벗고 산을 짐지고 수호하는 것을 임하였다. 생각하건대 앞의 조산(朝山)이 대여섯 겹이고 고(姑) 숙(叔) 부(父) 모(母)의 산이 솟았다. 솟은 곳의 안팎의 문의 개가 각각 세 마리인데, 너는 항상 룡안(龍顔)에 다른 마음을 두지 말며 청백(靑白)을 서로 등용하되 옳고 그른 것을 가르지 말라. 안팎의 상객(商客)이 각각 보배를 바치고 이름을 파는 이웃한 손님이 자식같이 오며 나라를 돕고 임금을 바루게 함이 모두 한 마음이다. 임자년(壬子年)에 만약 땅을 넓히면 정사(丁巳)의 해에 성자(聖子)를 얻을 것이요 삼각산(三角山)에 의지하여 제경(帝京)을 건설하면 아홉 번째 해에 사해(四海)가 조공하러 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는 왕이 덕(德)을 풍성하게 할 땅이 명백한 것입니다.

 

又神誌祕詞曰: ‘如秤錘極器秤幹扶踈樑錘者五德地極器百牙岡朝降七十國賴德護神精首尾均平位興邦保*大平若廢三諭地王業有衰傾.’ 此以秤諭三京也極器者首也錘者尾也*{}幹者提綱之處也松嶽爲扶踈以諭秤幹西京爲白牙岡以諭秤首三角山南爲五德丘以諭秤錘. 五德者中有面嶽爲圓形土德也北有紺嶽爲曲形水德也南有冠嶽尖銳火德也東有楊州南行山直形木德也西有樹州北嶽方形金德也此亦合於道詵三京之意也. 今國家有中京西京而南京闕焉伏望於三角山南木覓北平建立都城以時巡駐此實關社稷興衰臣干冒忌諱謹錄申奏”

또한 신지비사(神誌祕詞)에서 말하기를 ‘저울과 저울추와 저울판와 같으니, 저울대는 부소량(扶踈樑)으로 하고 저울추는 오덕지(五德地)로 하며 저울판은 백아강(百牙岡)으로 하면 70나라가 조공하러 항복할 것이요, 덕(德)에 의지하고 신정(神精)에 보호하고 (저울대의) 꼬리와 머리를 균등히 하여 평형을 유지하면 나라가 흥하여 태평을 보전할 것이다. 만약 삼유(三諭)의 땅을 폐하면 왕업(王業)이 쇠경(衰傾)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울의 깨달음이 삼경(三京)입니다. 저울판은 머리요, 저울추는 꼬리요, 저울대는 이것들을 들어올리는 근본이 되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송악(松嶽)이 부소(扶踈)가 되는 것은 (첫 번째) 깨달음의 저울대가 되고, 서경(西京)이 백아강(白牙岡)이 되는 것은 (두 번째) 깨달음의 저울의 머리(저울대)가 되며, 삼각산(三角山)의 남쪽이 오덕구(五德丘)가 되는 것은 (세번째) 깨달음이 저울추가 되는 것입니다. 오덕(五德)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데, 가운데에서 면악(面嶽)이 있어 원형이 되니 이는 토덕(土德)이요, 북쪽으로는 감악(紺嶽)이 있어 곡형(曲形)이 되니 이는 수덕(水德)이요, 남쪽으로는 관악(冠嶽)이 있어 첨예(尖銳)하니 이는 화덕(火德)이요, 동쪽으로는 양주(楊州) 남행산(南行山)이 있어 직형(直形)이 되니 이는 목덕(木德)이요, 서쪽으로는 수주(樹州) 북악(北嶽)이 있어 방형(方形)이 되니 이는 금덕(金德)입니다. 이것은 역시 도선(道詵)의 삼경(三京)의 뜻과 부합합니다. 지금 나라에 중경과 서경은 있으나 남경이 빠져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삼각산(三角山)의 남쪽 목멱(木覓)의 북쪽의 평지에 도성을 건설하여 때마다 순주(巡駐)하시옵소서. 이는 실로 사직(社稷)의 흥하고 쇠함에 관한 것인데 신이 감히 꺼림을 무릅쓰고 신록(申奏)을 삼가 기록합니다.

 

於是日者文象從而和之睿宗時殷元中亦以道詵說上書言之.

이것에 일자(日者) 문상(文象)이 좇아 그것에 화답하였다. 예종(睿宗) 때에 은원중(殷元中)이 또한 도선(道詵)의 설에 상서(上書)하여 말하였다.